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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카사노바

last modified: 2015-04-06 08:46:38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1.1. 비범한 바람둥이
1.2. 노년
2. 그의 이유
3. 명언?
3.1. 여담
4. 한계
4.1. 베네치아에서의 탈옥
4.2. 여성 관계에 있어서 도덕적 결함
4.3. 정치적 수구성

1. 소개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Giacomo Girolamo Casanova, 1725년 4월 2일 ~ 1798년 6월 4일)는 이탈리아에스파냐계 모험가, 시인, 소설가이다. 베네치아에서 태어났다.

1.1. 비범한 바람둥이

원조 하렘마스터
일반적으로 희대의 바람둥이로 알려져 있는 인물. 그래서인지 문란한 난봉꾼, 말썽꾼들에게는 카사노바라는 호칭이 붙곤 한다.

허나 사실 희대의 엄친아이고 천재다. 머리좋지, 잘생겼지, 비율좋지[1], 아는거많지, 말솜씨 좋지... 난봉꾼판 레오나르도 다빈치다.여자가 괜히 꼬이는 게 아니다.
15세에 수도원장, 16세에 법학박사 그런데 불륜왕, 그리고 의학, 화학, 수학에 능통했고 특히 18세기 사람으론 드물게 통계학에 능통하여 프랑스 국영 복권의 조직을 위탁받기도 했다. 그 이후 시인, 비단 제조 공장 운영, 염색 공장 운영, 바이올리니스트, 격투가, 역사가, 마술사, 엔지니어 등으로 활동했으며, 프리드리히 대왕과 함께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를 가동하는 일에 대해 의논하기도 했다. 그의 이력대로 오만 가지 부문에 대한 저서도 무척 많이 남겨서 후대에 그의 서적을 연구하는 '카사노바 연구회'까지 만들어졌다.

특히 버버리 등에서 쓰이는 체크무늬 패턴을 세계에서 처음으로 옷에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시대를 선도한 패셔니스트이기도 했다.

게다가 카사노바는 난봉꾼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이었다. 자신의 성적철학이 확고한 인간이고, 수많은 재능과 지식, 그리고 명불허전인 성적 매력과 능력뿐 아니라 여성을 위하는 마음과 세련된 매너까지. 당대 모든 남성들 공공의 적인 초월자다. 성적 능력과 매력만 믿고 나대는 난봉꾼과는 다르다, 이럼에도 그가 희대의 바람둥이라 알려진 이유는 위에 열거한 그의 많은 직업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다기보다는 그의 여자 사귀는 능력이 너무 뛰어나고 건드리면 안될 곳까지 건드렸을 정도로 문란한지라 그의 다른 능력이 묻혔기 때문이다.[2] -다른 부분이 일반적인 교수급이라면 여성에 관해서는 오일러 아인슈타인급 한마디로 다재박덕(多才薄德)의 대표적인 케이스.

1.2. 노년

하지만 그렇게 지나치게 자유로운 생활을 한 탓인지 40대 중반에 성기능 장애가 와서 쓸쓸하게 살다가 73세에 죽었다고 한다. 마지막 유언은 "나는 철학자로 살았고 기독교도로서 죽는다." 고자가 되었으니 기독교 십계명중에 간음하지 말라는 말도 지키고 죽는다

카사노바의 여성편력을 보면 젊었을때 엄청 행복하게 살았을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빚과 자신의 그 여성편력 때문에 여러번 감옥에 가거나 추방을 당한 인생이다. 카사노바가 생전에 유럽을 떠돌아 다닌 이유도 이런 것 때문. 어찌보면 자신의 그 엄청난 능력과 천재성을 본능에 쏟아부어서 천재성이 묻혀버린 비운의 천재일지도.아니 이런 여성편력 자체가 천재라는 걸 증명해준다고 생각하는데[3]

2. 그의 이유

카사노바 연구회에서는 그의 여성편력을 양성평등에서 나아가 인간평등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본다. 실제로 그가 사귄여성은 귀족 마나님은 물론이고 하녀, 중산층 주부, 시인, 창부, 과부 등등 그야말로 그 시대의 전 여성계층과 정사를 한 거나 마찬가지라고. 온갖 계층의 여성들과 사귀면서도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고 동일한 대우를 해줬다는 것이 카사노바의 진가다.[4] 온갖 계층과의 정사 자체가 그에게는 인간애이며 인간평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쓰였다고 한다. 벗겨놓으면 창부도 귀족여인도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는 식. 누군가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과 사귈 수 있는가 물어봤더니, 자신은 상대의 칭찬을 많이 해줬다고 한다.

또한 그렇게 많은 수의 여인과 사귀면서도 단 한 명도! 임신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이건 그가 무정자증이어서가 아니라, 완벽 피임법을 구사했기 때문인데, 그 방법이 정말 본좌다.[5]

일단 그는 콘돔을 사용했으며, 그 당시에는 콘돔이 완벽치 않았기에 자신이 개발한 특별한 비법을 함께 사용했다. 그 방법은 주네브의 세공사에게 큰 돈을 주고 특별 제작한 지름 18mm, 무게 60g의 금구슬황금 구슬이라는 특별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인데, 그것을 여성의 몸에 삽입해서 정액을 몸 안에 들여보내지 않고 밀어내게 하는 효과를 냈다. 지금으로 치면 루프와 비슷한 격. 또 레몬을 반으로 갈라서 과즙을 짜낸 뒤 반구형의 껍질을 안에 넣음으로써 정자를 죽이게 했다. 일종의 살정제의 역할을 도모했던 셈.[6][7]

참고로 여인들과 놀러 가기 전에 을 한 접시 가득 까먹고 갔다고 한다. 역시 굴은 스태미너 음식.


3. 명언?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어떤 철학자비슷한 말을 떠올리면 지는 거다[8]
 
나는 여성을 사랑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사랑한 것은 자유였다.
 그는 위와 같이 간지나는 그러나 설득력 없는 허세 어떤 여자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다른 여자들을...명언도 많이 남겼다.

3.1. 여담

동시대 음악가인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오페라 < 조반니>를 작곡하고 있었을 때 60대 중반의 노년 카사노바가 그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카사노바는 그에게 자신의 혁혁한 여성편력사를 자랑하며 돈 조반니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는데, 안 그래도 부도덕하고 문란한 주인공을 묘사하는 게 영 난감했던 모차르트는 그 이야기를 듣고 차라리 돈 조반니가 훨씬 낫겠다며 원래 이야기 그대로 진행했다는 에피소드.카사노바 지못미

영화에서도 여러 차례 다뤄졌다. 카사노바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알랭 들롱 주연의 '카사노바'(1993년작)과, 히스 레저 주연의 '카사노바'(2005년작).

영국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카사노바의 이야기를 그린 미니시리즈로, 젊은 카사노바 역에는 10대 닥터 역으로 국내 인지도가 높아진 데이비드 테넌트가, 노년의 카사노바 역에는 거장 배우 피터 오툴이 연기했다. 클래식한 시대극이 아니라 B급 느낌이 나면서도 영상미가 빼어나며 코믹적인 요소를 함께 버무려 카사노바를 재해석했다는 데 좋은 평을 얻었으며, 시청률 또한 매우 좋았다.

4. 한계

다만, 카사노바라는 이름이 바람둥이나 문란한 난봉꾼, 심하면 변강쇠(...)의 대명사처럼 사용되는 것에 대한 반박으로 카사노바가 당대의 뛰어난 지성인이자 교양인이었음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이 인물의 행적이나 업적을 순수하게 따져본다면 희대의 천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젊어서는 성직에 뜻을 두었다가 그 후에는 군인의 길을 걸으려고 했고, 그 뒤에는 모험가(고급 백수)로 평생을 보내면서 예술가, 작가, 엔지니어, 사업가, 연금술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이지만, 그 대부분의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의 씨앗을 엿볼 수 있었을 뿐, 뚜렷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 했다. 말하자면 어떤 한 분야에 평생에 걸쳐 매진했다면 여자에만 매진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ㅎㄷㄷ 역사에 빛나는 이름을 남길만한 인물이었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인물.[9]

일단, 그나마 카사노바의 이름이 남은 분야가 작가로서의 카사노바인데, 여자가 아니고??[10] 카사노바가 평생에 걸쳐 남긴 상당히 많은 작품 중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은 딱 하나, 분량은 방대하고 진위는 의심스러운 자서전뿐이다. 다른 작품들은 어지간한 카사노바 연구자(카사노비스트)들도 재미도 교훈도 없다고 깔 정도.(...) 그리고 대부분의 이탈리아 문학사 연구자들은 카사노바의 자서전이 가진 높은 문학적 가치는 인정하지만, 그것을 카사노바의 문학적 성취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요컨데 카사노바는 작품같은 인생을 산 인물이긴 하지만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는 아니었다는 이야기. 자기 인생을 그대로[11] 기록한 자서전은 읽기에도 재미있고 생동감 넘치는 당시 시대의 기록으로서 대단한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작가로서 직접 만들어 낸 작품의 수준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원작 없이는 창작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는 것인데, 이래서야 작가로서 높은 평가를 주기는 힘들다.

그리고 작가 이외에 다른 영역에서의 활동은 더 초라하다. 저서는 많은데 독창적이거나 획기적인 발상은 없다. 결국, 여러 분야에 두루 능통한 지식인이자 교양인이었지만 독립적인 업적을 이룰 정도의 성취를 이룬 분야는 없는 전형적인 딜레탕트였던 셈. 유럽의 왕이나 왕족, 교황, 추기경, 볼테르등의 명사들과도 교류할만한 교양인이기는 했지만, 사실 당시의 명사들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일이었고, 적당한 사람의 소개를 받아 손님으로 찾아가면 누구나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카사노바는 저런 명사들과 대화한 것을 영광으로 여겨 꼼꼼하게 자서전에 기록했지만 카사노바와 교류한 명사들은 카사노바를 자신들의 살롱에 머무르는 교양인들 중 하나로밖에 여기지 않고 딱히 기록을 남기지도 않았다. 당시 유럽이 살롱을 중심으로 하는 교양인들간의 교류 문화가 절정에 달하던 시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카사노바 역시 수 많은 살롱의 교양인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

예를 들어, 카사노바와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대담(?) 내용을 보더라도 생각보다 내용이 별로 없다.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정도.

상수시 궁전의 정원에서 산책중이던 프리드리히 대왕과 카사노바가 만났다. 카사노바가 인사 꾸벅. 프리드리히 대왕은 인사를 받고, 말을 걸어준다(당시 예법으로는 신분이 낮은 사람이 먼저 말을 걸 수는 없었으므로).

프: 이 궁전 촘 멋있지 않조?[12] 베르사유 궁전에 비교해도 안 밀릴거요.
카: 네. 쩔어주네요. 근데 분수가 없어서 완성됐다고는 못하겠군요.
프: 아, 나도 분수 짓고 싶었는데 물 끌어들이기가 빡세서 말이오. 베르사유에는 분수 많소?
카: 분수가 많아서 멋집니다. 폐하도 베르사유 이기고 싶으면 분수 멋있는걸로 지으시죠. 음악에 맞춰서 춤추는 거 같은걸로.
프: 오, 좋네. 기술자들 불러서 설계해보라고 해야겠소.
(잠시 카사노바가 기록하지 않은 잡담)
카: 그런데 프러시아에서도 복권 사업 해 보는거 어떠십니까? 재원 마련하는데 좋지요.[13]
프: 그거 하다가 왕이 손해보면 어떡하오?
카: 계산만 잘하면 괜찮습니다. 뭐 100번에 한번쯤 밑질수도 있긴 한데, 그건 99번 이익본걸로 충분히 메꾸고 이익 남지요. ㅋㅋ 해보세요.
프: (잠시 생각하다가) 그래도, 왕이 나서서 사기치는 거 같아서 별로 하기 싫소.
카: 하긴, 복권이 좀 사기같은 면이 있기는 하지요. ㅠ_ㅠ
(또 잠시후)
프: 근데 가만보니까 자네 꽤 잘생겼구려? 특히 코가 꽤 멋지군?
카: 감사합니다.


카사노바가 자서전에 기록한 바에 따르면 대충 이정도다.
이 대담에서 카사노바의 한계를 볼 수 있는데, 물을 끌어들이지 못해서 분수를 못 지었다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이야기에 카사노바는 음악에 맞춰 춤추는 분수 같은 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제대로 했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라고 아는척까지 했다. 이를 들은 프리드리히도 구미가 당겼는지, '수력학에 조예가 있느냐'고 흥미로워 했고. 여기서 만약 카사노바가 화려한 언변만큼 실력이 있는 인물이었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피력하여 왕에게 인정받고 적당한 관직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14] 하지만, 아이디어를 내고 왕의 구미를 당길 정도의 말빨은 있지만 그걸 실행할 정도의 실력은 없는 카사노바로써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포기하고 어물어물 말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즉,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고 상대방을 솔깃하게 만들수 있는 말빨을 가진 사람이긴 한데 행동력은 아니올시다라는, 허당끼가 있는 사람이란 것.
이 외에 러시아에서 예카테리나 2세와의 대담도 자서전에 기록했지만 이건 더 짧다. 카사노바가 왜 러시아는 더 과학적인 그레고리력을 쓰지 않고 율리우스력을 쓰냐고 묻자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 정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성인들의 축일이 사라진다는 것을 예로 들어 달력을 바꾸면 생길 혼란을 설명하는 걸로 끝.

이와 같은 예로 볼 때, 카사노바는 왕이나 최고의 명사들 앞에 나서도 당당하게 대화할 수 있는 당대의 교양인 중 하나였지만, 그런 교양인들 사이에서는 특별히 대단한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여러 분야에 두루 능통했던 것 역시, 학문의 분야가 세분화되지 않았던 당시로서는 별로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카사노바의 한계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중요한 것이 도덕적 문제점인데... 사실 이 문제는 꽤 심각하다. 카사노바가 평생에 걸쳐 전 유럽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도덕성 문제였던 것. 오늘날에는 카사노바가 바람둥이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덕분에 카사노바의 도덕적 문제라면 여자에 관련된 문제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당대에는 이 문제는 별로 중요시되지 않았고[15] 금전에 관련된 문제, 특히 사기치다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위에 소개된 카사노바의 행적에 '연금술사' 가 있는데, 카사노바는 연금술의 비법을 알고 있다고 사기를 쳐서 돈을 아주 자주 우려냈다.(...) 다만, 자서전에는 당당히 '나 연금술 비법같은거 몰라! 돈 필요해서 사기쳤졍ㅋ' 라고 정직하게 밝힌 것은 아주 재미있지만... 그래도 프랑스에서 공작 부인을 남자로 환생시켜주겠다고 뻥을 쳐서 남자아기로 환생한 공작 부인의 보호자가 되어주겠다는 핑계로 전 재산을 우려내려고 했던 사건은 좀 지나쳤던 듯... 자신의 애인을 임신시킨 뒤, 애인이 낳을 아이가 남자 아이이고, 그 아이에게 공작 부인의 영혼이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속여서 (어차피 오늘내일 하는 공작 부인이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죽으면) 그 아이를 공작 부인이 가진 모든 재산의 상속자로 인정하게 해서 재산을 꿀꺽한다는 무지막지한 계획이었다. 결국 부인이 죽은 후에 때려죽이려 드는 부인의 친척들을 피해서 프랑스에서 도망치게 되지만.

결국, 카사노바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이로 살아야 했던 것은 여자문제뿐이 아니라 이런 식으로 돈을 쉽게 벌려는 '모험가적' 태도 때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수입이 괜찮은 성직자 자리를 여자 문제로 잃은 후 돈이 없어서 도박이나 떳떳하지 못한 일로 돈을 벌려고 했고, 그러다보니 정직한 자리에서 일하기는 더욱 어렵게 된 것에 가깝지만, 결국 카사노바의 행적 자체는 전형적인 파락호의 행적에 가깝다. 카사노바의 업적 중 그나마 실질적인 검증이 가능한 '프랑스 복권의 창시자 중 하나' 라는 것 역시 당시 복권사업이 썩 떳떳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16] 가능했던 것이며, 여러 나라에서 투옥당했던 것 역시 이런 범죄행각 때문이었던 것.

종합하자면, 카사노바 자신이 '나는 느낀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고 말한 것처럼 카사노바는 평생을 감각적인 쾌감을 위해 살았고, 이 과정에서 언제나 도덕적으로 옳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만년의 불행했던 카사노바가 자신이 장래에 잊혀질것이라고 생각한 것과는 달리 카사노바의 삶은 역사에 남을만한 작품이 되어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것이다. 이 부분에서 카사노바가 평생을 바쳐 이룩한 업적(...)을 폄훼할 이유는 없지만, 사실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바람둥이 이외의 영역에서 카사노바가 이룩한 업적이라고 할 만한 건 딱히 없으며, 따라서 카사노바의 이름이 희대의 난봉꾼으로 알려지는 것이 딱히 억울할 이유도, 난봉꾼이라는 명성 때문에 다른 천재성이 묻혔다고 여길 이유도 없을 듯.

4.1. 베네치아에서의 탈옥


리그베다위키의 베네치아항목에서 '탄식의 다리'부분에도 나와있지만, 카사노바는 베네치아의 감옥에서 탈옥한 적이 있다. 문제는, 알고보면 그냥 평범한 탈옥에 불과한 이 탈옥 이야기가 자꾸 극적으로 변모한다는 것. 보통 '탄식의 다리를 건너 감옥에 갖힌 사람 중 유일하게 탈옥에 성공한 사람이 카사노바이며, 여인들의 도움을 받아 탈옥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탈옥에 성공한 카사노바는 "나는 여인들을 사랑했다. 하지만 자유를 더 사랑했다." 라는 말을 남겼다' 라는 식으로 알려진 경우가 많다.

그런데, 위 일화는 거의 사실이 아니다. 일단, 탈옥에 성공한 사람이 거의 없다거나, 심지어는 카사노바가 유일하다는 것 부터가 사실이 아닌 것이, 당장 카사노바 자서전을 보면 카사노바에게 탈옥 동기인 가톨릭 수사(修士)가 한명 있었고, 카사노바가 탈옥할 당시 함께 탈옥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무서워서 동참하지 못했던 노 귀족이 카사노바의 성공에 자극받아서 수년 후 몇 명의 동료와 함께 탈옥을 시도하여 또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즉, 수년 사이에 탈옥에 성공한 사람이 적어도 대여섯명은 되는 것.

그리고, 카사노바의 이미지 때문인지 여인들의 도움을 받아서 탈옥했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지만, 이 부분 역시 확실히 사실과 다르다. 이 부분의 경우, 카사노바가 아예 자서전에 자신의 탈옥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았다.(...) 일단 간수를 매수해서 감시를 허술하게 한 뒤 그 틈에 감방에서 빠져나가고, 나머지는 간수들이 순찰하는 구역의 사각을 노리고 지붕과 성벽 위를 걸어서(당연히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떨어져서 죽거나 크게 다칠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고 한다) 탈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체 탈옥이 왜 이렇게 쉬웠느냐는 것이 문제인데, 이 부분은 현재 카사노바의 재판기록에 대한 명확한 자료가 없고, 자서전에서도 (탈옥에 대한 설명이 상세한 것과는 달리)재판과 투옥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모호한 부분이 많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카사노바가 갖혀있던 감옥이 두칼레 궁 옆에 있는 그 감옥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설이 정설이다. 일단, 당시 두칼레 궁에서 10인 위원회 재판을 거쳐 탄식의 다리를 건너 투옥되는 것은 주로 국사범이나 정치범들이 밟던 수순인데, 단순한 형사범으로써 처벌받았던 카사노바가 그와 같은 과정을 거쳤을 가능성은 낮다는 것. 또한, 카사노바가 상세히 기록한 탈옥과정을 보더라도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 한가운데의 감옥에서 지붕 위를 걸어서 탈출할 경우 남의 눈에 띄기 쉬우니 성공 가능성이 몹시 낮고, 탈옥 직후에 멀리 탈출하기 위해 역참에서 마차를 탔다는 설명을 보더라도 석호지대 내에 있는 투칼레 궁 옆 감옥이 아니라 내륙지대에 있는 교외의 감옥에서 탈옥한 것이라고 볼 여지가 크다. 결국, '탄식의 다리를 건너는 카사노바' 라는 극적 이미지와 실제 상황은 상당히 달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당시 카사노바가 투옥된 죄목 자체가 풍기문란죄 비슷한 것이었기 때문에, 베네치아 공화국 정부 입장에서도 철저히 감시해야 하는 국사범이나 흉악범과는 달리 (어차피 탈옥하고 나서 베네치아 공화국 영내에는 못 머무를 테니까) 감옥에 갇혀있든 해외로 도주하든 국내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건 마찬가지이니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라는 관측 역시 가능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탈옥하면서 카사노바가 남겼다는 편지의 내용 역시 위 내용과는 다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간수에게 죄수를 감시할 의무가 있다면 죄수에게는 자유를 갈망할 권리가 있다. 이 탈옥으로 자신이 도덕과 법, 국가에 대한 신의와 충성을 저버리게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을 억누를 수 없기에 탈옥을 결행하겠다. 물론 이러다가 잡히면 더욱 비참한 신세가 되어 자비를 구걸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자유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 정도 되겠다. 뭐, 처음부터 끝까지 자유를 원한다는 점에서는 카사노바다운 편지고, "나는 여인들을 사랑했지만 자유를 더 사랑했다" 가 좀 생뚱맞으면서 허세 쩌는 데 비해 자조와 풍자가 담겨있으면서도 자유에 대한 갈망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카사노비스트 사이에서는 가장 카사노바다운 멋진 편지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다만 공정하게 말한다면, 카사노바가 투옥된 이유가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좀 심하게 충격적이다. '베네치아 명문 귀족 출신의 젊은이들을 방탕한 놀이에 끌어들여 도덕적으로 타락시켰다' 는 것이 투옥의 원인인데, 일단 카사노바가 명문가의 젊은이들과 함께 놀면서 소위 '방탕한 놀이'를 주도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정작 카사노바와 함께 논 그 젊은이들은 가문이 후광 덕에 별다른 처벌이나 제제를 받지 않았고, 카사노바만 시범케이스로 5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갔으니 억울하다면 억울하겠지만...

문제는, 이 '방탕한 놀이' 라는게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게 막나가서 차리리 다른 동료들까지 싹 감옥에 가지 않은게 억울하지, 카사노바가 감옥에 간 게 억울하다고 할 수가 없다.(...) 단순히 매춘부와 어울린 정도가 아니라 양가의 처녀나 유부녀까지 건드렸으니 당시의 도덕관념으로는 엄청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 재주껏 유혹해서 이런 관계를 가진 거라면 나름대로 변명이 가능했겠지만,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한 경우도 많았으니 문제가 더욱 심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카사노바가 역시 자서전에서 당시 자주 사용했던 수법이라고 밝힌 바에 따르면...

1) 교회 같은 곳에서 젊고 매력적인 유부녀를 찾는다.(그 집안에게 보복당하면 곤란하므로 기술자나 직공의 부인을 먹잇감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2) 목표로 삼은 부인의 집을 확인해두고, 한밤중에 10인위원회 직속의 치안요원(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으로 변장해서 그 집에 쳐들어간다.
3) 10인 위원회의 명령으로 체포하겠다고 선언한다. 당연히 가족(희생양인 부인과 그 남편)들은 겁에 질려 반항하지 못하고, 그러면 둘 다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두 사람을 다른 곤돌라에 태운다.
4) 한참 가다가 남편을 으슥한 곳에 내려주고, 오늘 밤에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 만약 발설하면 체포해서 투옥하거나 처형하겠다고 협박한다. 남편은 당연히 겁에 질린 채 집에 돌아간다. 하지만 집에 가도 부인은 없다.
5) 그 사이에 다른 일당들은 부인을 자신들의 은신처로 끌고가서 윤간한다.
6) 그렇게 며칠간 욕정을 채운 뒤, 질리면 다시 부인의 눈을 가리고 집 근처에 데려가서 내려준다. 물론 그동안 있었던 일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 발설하면 다시 체포해서 투옥하거나 처형하겠다고 협박한다.
7) 피해자 가족은 눈이 가려진 채로 끌려갔다 돌아왔으니 범인들의 은신처가 어딘지 찾을수도 없고, 혹시 상대가 진짜 10인위원회 직속요원이라거나, 그들과 줄이 닿은 권력자일지도 모르니 피해 사실을 알리기도 무서워서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런 짓을 하고 다녔으니 베네치아 정부로써도 약이 올라서 카사노바를 체포한 것인데, 정황을 생각하면 오히려 5년형도 너무 적다고 해야 할 지경. 카사노바는 대체로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 정직한 인물이지만, 이런 짓을 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서전에 기록을 남긴 걸 보면 정직한 게 아니라 차라리 뻔뻔하다 싶을 정도다... 심지어 저런 식으로 납치한 부인 중에서 돌려보내지 않은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는 안 나온다. 흠좀무.

4.2. 여성 관계에 있어서 도덕적 결함

또 하나 카사노바에게 흥미로운 점은, 금전적 이익을 위해 저지른 부도덕한 행위는 자서전을 통해 사실대로 밝혔지만(사실은 자랑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언제나 자신이 신사적이었던 것처럼 가장하려 든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후세의 독자들이 카사노바의 문란한 이성관계를 평등주의적 이상의 실천이라거나, 인간애의 표현이었다고 미화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러나 실체를 살펴보면... 글쎄...

일단, 위 항목에서 설명된 베네치아에서의 '방탕한 놀이'를 보면, 자서전에서는 자신들이 저지른 납치극은 가벼운 놀이나 일탈처럼 묘사하고, 그 후 '그녀가 자신들을 사랑해서 돌아가지 않으려고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런데, 멀쩡한 양갓집 유부녀를 기만과 협박으로 납치해서 강간하는 게 가벼운 일탈이나 놀이일수는 없고, 납치 강간 피해자가 납치 강간범을 사랑해서 함께 살자고 말했다는 건 그냥 흔해빠진 야설적 망상일 뿐이다. 아니면 부녀자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이 남자에게 정착하는 걸로 현재 벌어진 사고를 먼훗날 돌이켜 볼 때 해프닝 정도로 취급할 수 있다는 따위의 현실도피를 시작하는, 살짝 정신병에 걸린 증후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카사노바가 그 무수한 여인들을 오직 자신의 매력과 화술로 유혹했다는 것 역시 카사노바에 대한 신화에 불과하다. 카사노바의 여성편력 중에는 금전이 얽힌 경우가 훨씬 많다. 당장 자서전에서도 여성과 관계를 가진 후 '금화를 선물로 주었다'는 서술이 수도 없이 나온다. 다른 것도 아닌 현찰을 준 것을 '연인에게 준 선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이는 명백하게 매춘으로 볼 여지가 훨씬 크다. 특히 돈을 선물로 주었다는 묘사는 주로 낮은 신분의 여성, 그중에서도 여배우나 가수처럼 사회적으로 정조관념을 그다지 요구받지 않는[17] 일에 종사하던 여성이나 가난 때문에 심각한 곤란을 겪고 있던 여성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나온다. 조금 냉소적으로 이야기 한다면 카사노바는 귀족 마나님과는 연애를 했고, 낮은 신분의 여성들과는 매춘을 했다. 다만, 자신이 돈을 내고 매춘을 한 게 아니라, 연인으로써 (돈을)선물했다고 정신승리했을 뿐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카사노바의 여성 편력을 평등주의의 실천이라고 보는 것도 우습다. 그저 연애보다 매춘이 더 쉽고, 높은 신분의 여성이 매춘을 할 리 없으니 낮은 신분의 여성과 많이 어울린 것 뿐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매음굴에 찾아가는 것 보다는 변형된 매춘으로 현대까지 남아있는 계약연애를 더 선호했고, 이를 진짜 연애라고 포장한 것 뿐이기도 하고. 실제 사례를 보더라도 친구네 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도움을 청하러 온 가난한 모녀를 눈여겨 봐 두고, 나중에 접근해서 돈을 주고 딸과 관계를 가졌다거나, 가난한 여성 가정교사에게 시세의 절반 이하 가격으로 방을 빌려주고 그 대신 관계를 가지는 등 금전으로 여성을 유인한 사례가 자신의 매력과 화술로 상대를 유혹한 사례보다 훨씬 많다. 차라리 매력과 화술은 직업적 창녀가 아니지만 계약연애 형태의 매춘을 할 생각은 있는 여성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수단 정도에 불과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게다가, 카사노바가 여성을 임신시킨 적 없다는 것 역시 신화에 불과하다. 카사노바와의 관계로 임신하고, 그 때문에 인생 조진 여성이 최소한 한 명은 있다. 미래가 성직자로써의 길을 걷던 젊은 시절, 카사노바가 부임한 교구에서 그를 높게 평가한 지방 유지가 그를 자기 집에 머무르게 했고, 성실한 성직자 청년이라고 믿었기에 17살짜리 딸이 카사노바와 이야기하거나 가깝게 지내는 것도 만류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그 믿음을 배신했고, 유지의 딸을 임신시키고 튀었다. 결국, 양갓집 처녀였던 이 아가씨는 임신 때문에 집에서 버림받고 창녀로 전락하게 된다. 그리고 카사노바는 20년쯤 뒤, 어쩌다 이 여인을 다시 만났고, 극도의 빈궁과 질병에 시달리던 이 여인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었고, 그의 자서전에서 이 사건은 무슨 아름다운 사랑과 그 슬픈 결말처럼 기술되어 있다.

또 젊은시절의 이야기지만, 이탈리아 중부를 여행하던 카사노바가 단장 역할을 하던 어머니와 큰오빠, 두 여동생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가족 유랑 예술단을 만난 일도 있다. 이들은 당시 받기로 했던 공연료를 못 받아서 돈이 떨어졌기 때문에 다른 도시로 갈 경비가 없어서 크게 곤란한 상황이었고, 카사노바는 자신이 빌린 마차에 이들을 태워주기로 한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그 대가로 요구한 것은 큰 딸이 자신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큰 딸이 카사노바와 하룻밤 같이 자고, 카사노바에게 선물로 돈을 받은 뒤 다음 도시로 출발했다. 그런데... 언니가 가진 금화가 부러웠던 작은 딸이 자기한테도 금화를 달라고 졸랐고, 물론 카사노바는 작은 딸과도 하룻밤을 보내고 돈을 선물했다. 과연 두 사람이 손만 잡고 잤을까? 다음날 여관 시트값을 물어줬다는 걸로 봐서 그건 아닌거 같다. 두 딸의 나이가 12살과 11살이었다는 점은 카사노바의 명예를 위해 취소선으로 가려주겠다 이쯤 되면 로리콘도 아니고 씹페도
그리고 이 가족 음악단에 대한 카사노바의 성적 착취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 목표는 15살짜리 오빠였다.고만해! 자서전에서는 이 오빠가 사실은 남성만이 무대에 설 수 있다는 법 떄문에 카스트라토로 위장한 여자였고, 자신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넘어왔다고 뻥을 치고 있지만, 사실 진짜 카스트라토가 맞다는 쪽이 정설이다. 그런데 왜 사실은 카스트라토가 아니라 진짜 여자였다 운운하는 이야기가 나왔냐 하면... '내 말 안 들으면 네가 여자인데 카스트라토로 위장해서 무대에 올랐다고 고발하겠다'는 협박을 통해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교회법 전문가에 교회 내에도 인맥이 있던 카사노바에게 고발당하면 제대로 재판과 심사를 거쳐야 하고, 이 과정에서 굴욕적인 성별검사를 또 받아야 하는데다, 재판이 진행되는 기간동안 공연도 못하고 도시에 잡혀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가족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는 점을 악용한 협박이었다. 결국 카스트라토 소년이 카사노바의 협박에 굴복함으로써 카사노바는 남매/자매덮밥에 성공했다.

이걸로 안 끝난다.(...) 이번 이야기는 꽤나 황당하면서도 웃기다. 프랑스를 여행하던 카사노바가 친구의 애인 집에 방문했다. 함께 저녁식사를 마친 후 친구와 친구의 애인은 함께 방에 들어가서 밤새 놀고, 카사노바는 별 수 없이 쇼파에서라도 자기로 했는데... 친구 애인의 여동생이 쇼파에서 자기 불편하면 자기 침대를 양보해 줄 테니 3프랑만 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여자아이의 침대를 빌리면 그 여자아이와 함께 잘 수 있을거라고 기대한 카사노바는 기꺼이 3프랑을 지불했지만 여자아이는 자기는 옷을 벗고 자는 게 습관이라서 다락방에 가서 자겠다고 했다. 그 때 소녀의 꾀죄죄한 옷차림과는 달리 소녀의 몸이 아름다울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카사노바는 자기 앞에서 옷을 벗고 알몸을 보여주면 3프랑을 더 주겠다고 제안하고, 보기만 하고 다른 짓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계약 성립. 카사노바의 직감답게 정말 소녀의 몸은 아름다웠다고 한다. 결국 다음날 아침 카사노바는 소녀의 언니(친구의 애인)과 협상한 끝에 소녀를 자신의 애인으로 삼는다는 조건으로 매달 120프랑을 주기로 한다.
그 뒤 이 자매와 카사노바 사이에는 실로 코믹한 능구렁이 배틀이 벌어진다. 자매는 여동생의 나체를 보여주고 화가를 불러 누드화를 그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으면서 매달 120프랑을 받았고, 자신들이 카사노바를 훌륭하게 등 쳐 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그 그림을 들고 부유한 귀족을 찾아가서 소녀를 소개해 주고 소개비를 받아먹었다. 결국 카사노바는 소개비를 벌고, 자매는 카사노바뿐 아니라 부유한 귀족에게도 돈을 받았고, 귀족은 돈을 쓰긴 했지만 어리고 예쁜 애인을 만들었다. 해피엔딩일까? 이번 소녀의 나이는 13세였다.

마지막으로, 카사노바의 여성 문제에서 최대의 도덕적 결함으로 평가받는 사건이 있다. 러시아 여행 중 17살짜리 소녀를 노예로 부렸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소녀를 하녀로 데려가는 대가로 가족에게 100루블을 주고[18](하녀로 팔려가는 본인은 그 돈을 한 번 '''만져''보기만 했을 뿐이다.) 그 대신 먹이고 입히고 매주 1회씩 목욕탕과 교회에 보내주기만 하면 더 이상의 돈은 한 푼도 줄 필요가 없고, 죽이지만 않는다면 어떻게 다뤄도 상관없다는 게약이었는데... 세상 사람들은 이런걸 노예라고 부른다.
카사노바는 자신이 그녀에게 따뜻하게 대하주면서도 종종 호되게 때렸기 때문에 그녀가 자신을 사랑했네 어쩌네 하는데, 이것도 사실 야설적 망상이지 않은가? 그리고 카사노바의 친구로 이 노예구입을 알선한 스테판 지노비예프의 서신에 따르면 카사노바가 '자이르'라는 이름을 지어준 이 소녀를 대하는 태도는 꽤 잔인했던 것으로 보인다. 매를 맞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앉거나 걸어다니기 힘들어했다거나, 등과 엉덩이가 아파서 아무것도 걸치지 못하고 엎드려 있었다는,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카사노바의 요구에 응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쯤 되면 이게 팩트인지 괴악한 소재를 가지고 쓴 야설인지 구분이 안된다... 싶으면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국내에 번역된 카사노바의 자서전은 한길사의 '카사노바 나의 편력'(전 3권)과 휴먼앤북스의 '불멸의 유혹(단권) 두 종류인데, 해당 책들을 읽어본 결과 소개된 에피소드의 대부분이 사실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지 입으로 했다고 떠든거니 할 말 없겠지.(물론, 사실 못 했는데 했다고 뻥친걸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저런 나쁜짓들을 했다고 자서전에 뻥 칠 정도로 해보고 싶었다는 거니 도저히 정당화 안 되기는 오십보 백보.) 다만, 일부 확인이 안 되는 부분이 있기는 한데... 애초에 카사노바 자서전 자체가 완역이 안 됐으니(3권짜리 한길사판조차 전체 내용의 1/4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한다.) 미번역된 다른 부분이나, 카사노바의 행적에 대한 다른 자료에서 해당 내용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나올 만 하다. 아니, 나올것만 같다.(...) 혹시 이전 수정자가 보시거든 정확한 출처 표기를 부탁드리지만,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분명히 있었을 법한 일이다. 일단, 미확인된 부분은 다음과 같다.

  • 러시아에서 17세의 소녀 노예를 사서 성적인 관계를 맺은 것은 사실 확인. 그리고 종종 호되게 두들겨 팬 것[19]도 사실 확인. 다만, 두들겨 패서 눕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관계를 가졌다는 이야기 확인이 안 된다.(...)

  • 유랑 음악가 가족을 만나서 마차에 태워주는 조건으로 11세와 12세인 두 딸과 성적 관계를 가지고, 다음날 여관 시트값 물어준 거 사실 확인. 그것도 모자라 15세의 오빠에게까지 집적거려서 또 성적 관계를 가진것도 확인. 다만, 자서전에서는 오빠가 카스트라토 소년이 아니라 남장한 진짜 소녀였다고 나오고, 협박이 아니라 애정의 보답을 받아서 관계를 가진걸로 나온다. 문제는, 이 카스트라토가 사실은 남장여자였다는 부분에서 자서전의 서술이 대놓고 거짓말 티가 줄줄 나기 시작한다는 것.(...) 언뜻 보면 진짜 남자 성기같고, 그것만 착용하면 서서 소변을 볼 수 있는 희한한 도구를 착용해서 성별 검사를 통과했다고 한다. 무슨 오파츠인가?

  • 다른 에피소드는 그냥 죄다 사실 확인 성공.(...)

  • 참고로, 카사노바 자서전을 보면 '아! 이 부분은 거짓말이다' 라고 딱 티가나는 부분이 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다른 부분들에 비해, 거짓말하는 부분에서는 뭔가 리얼리티도 없고, 교훈적인 훈계조의 작위적인 이야기가 줄줄 이어진다. 위에 나온 카스트라토 시비 역시 딱 보면 '이자식 또 구라친다'는 감이 오는 부분이고, 그 앞까지 여자는 무대에 설 수 없다는 법규 이야기를 하면서 확인하게 해 달라, 신고하겠다 운운하는 부분은 리얼한데 잠시 후 카스트라토 소년이 갑자기 (자기한테 지저분하게 질질 달라붙는 성인 남성에게) 반했다는 부분은 '바람직한 기독교인 소녀의 애정'에 대한 훈시 비슷하게 전개되는 터라.

이래서 금전적 문제에 시달렸구만? 진짜 그런것 같다. 돈 몇푼 벌어서 여자 관련된 일에 쑤셔넣는 일이 워낙 많았던 듯.

4.3. 정치적 수구성

그리고, 카사노바가 당대의 '자유인'이었다는 평가를 의심할만한 근거로 카사노바가 보여준 극단적 수구성이 있다. 위에 소개된 러시아에서의 노예 소유 문제를 보더라도, 카사노바는 당시의 러시아 사회에 만연한 강압과 폭력을 정확히 읽어내고, 이런 폭력적 분위기 때문에 하인과 주인, 부하와 상관 관계에서 윗 사람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아랫사람에게 경멸당하고, 폭력을 행사하면 두려움 섞인 존경을 받아낸다는 것을 정확히 읽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카사노바가 그런 상황을 악용해서 돈으로 사람을 사고, 저항할 수 없는 나이어린 소녀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즉, 카사노바는 사회적 부조리나 불평등에 저항한 인물이 아니라, 그것을 악용한 인물이었다.

이 뿐 아니라, 말년의 카사노바가 프랑스 대혁명에 대해 남긴 평가 역시 충격적이다. 물론 당대의 기준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참혹한 대소동이었던 것은 분명 사실이고, 이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일리있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혁명에 대한 카사노바의 분개는 '천한 것과 추한 것들이 주인이 되고, 그 때문에 아름답고 고귀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었다. 요컨데, 카사노바는 절대로 평등주의자가 아니었다. 카사노바의 정치적 세계관에 따르면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천하고 추한 것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리고, 카사노바 자신도 온 유럽을 떠돌아다니는 편력 과정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을 귀족이라고 사칭했다. 즉, 카사노바는 귀족들의 특권과 오만에 반대한 인물이 아니라, 자신도 그것을 가지고 싶어했던 인물일 뿐이다.

카사노바의 이런 수구적 성향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당대의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해군의 주축인 갤리선의 노를 젓는 노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 부류는 자유인, 즉 월급을 받으면서 일하는 노꾼이었고, 다른 부류는 죄수들, 즉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처벌로 일정기간 갤리선의 노를 젓는 노역에 처해진 사람들이었다. 당연히, 당시 베네치아의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유인 노꾼들은 나름대로의 사회적 존중과 대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죄수 노꾼들은 명예를 잃은 사람들로써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카사노바의 주장에 따르면 이는 '잘못된 것'인데... 그 이유인즉 죄수들은 국가의 강압 때문에 자유를 잃은 사람들이지만 월급을 받는 자유인 노꾼들은 '돈에 자신의 자유를 팔아넘긴 천박한 인간'이니 강제로 자유를 빼앗긴 인간들보다 더욱 경멸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즉, 카사노바에게 있어서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는 것은 천박하고 경멸받아 마땅한 일이었던 것이며, 카사노바 자신도 그 규칙에 따라 평생동안 사기로 울궈낸 돈으로 먹고살지언정 스스로 일하지는 않았다. 이는 시대를 앞서간 자유주의자의 사고방식이라기 보다는 흔해 빠진 귀족 출신 파락호의 사고방식일 뿐이다. 물론, 당시 유럽 귀족들에게 이와 같은 '노동에 대한 경멸' 정서가 강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귀족들조차 사회를 부양하고 자신들을 먹여살리는 것이 누구인지, 그리고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고,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범죄자보다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들을 더 명예롭게 대접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이와 같은 구별조차 무시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종합해 볼 떄, 진지한 카사노비스트들은 카사노바를 결코 도덕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다만, 보기 드물게 화려한 삶을 살아간 인물로써, 그를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할 뿐이다. 이를 넘어 카사노바의 도덕적 측면을 들여다 본다면 남는 것은 그저 사기꾼, 난봉꾼, 파락호의 모습일 뿐이다. 결국, 카사노바는 자신의 자유를 사랑했고, 어떤 정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자신의 자유는 침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의 자유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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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87cm의 키를 가졌다.
  • [2] 당시 교회가 사업하는 곳이었다 해도 수녀그러라고 시킨 수도원장이 아닐텐데까지 건드렸다. 게다가 불륜.
  • [3] 참고로 카사노바와 교류가 있었던 사람들은 유럽의 왕족, 교황, 추기경, 볼테르와 같은 사람들이다. 지금의 3류 제비족들과는 비교 불가
  • [4] 이 시기에 전국적으로 여성들은 천대받고 있었으며 카사노바는 이러한 차별을 싫어했다고 한다.
  • [5] 그런데 일설로는 자신의 친딸과 검열삭제를 해 아들인 동시에 손자를 낳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친딸의 어머니와 몇 년 전에 관계를 해서 낳은 아이로, 친딸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 어머니가 귀띔해줘서 관계만은 막았다고 한다.
  • [6] 정자는 산성 환경에 약하다. 당시의 사후 조치 치고는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과연 천재
  • [7] 참고로 원래 내부와 질 분비물은 pH 4 내외의 산성를 띈다. 레몬즙 또한 비슷한 pH 3 내외의 산성을 띈다.
  • [8] 일설에는 카사노바가 남성과도 검열삭제를 했다고 하는데,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검열삭제 자체를 즐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온 명언일 수도?
  • [9] 요컨대 다재무능한 인물의 표본이라고 할 만하다.
  • [10] 이게 농담이 아니라, 카사노바의 작품중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자서전 뿐이라고 하는데... 카사노바의 자서전은 결국 평생 여자들이랑 놀아난 이야기 모음집이다.(...)
  • [11] 엄밀히 말하면 자서전 내용 중에도 과장이나 각색이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기는 하지만, 말도 안 되는 과장이나 각색으로 글 전체의 수준을 떨어트릴 정도는 아니고 있을 법한 수준에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적절한 과장이나 각색 정도라서 이걸 가지고 문제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쨌건 자서전도 결국은 역사적 전기라기보다는 문학작품이니까.
  • [12] 상수시 궁전은 프리드리히 2세 자신이 설계에 개입해서 짓게 한 것이었으므로, 결국 자기자랑
  • [13] 카사노바는 프랑스 국영 복권 사업에 참여해서 돈을 좀 만진 적이 있었다. 요컨데, 프러시아에서도 한 밑천 잡아보고 싶었던 걸로 추정
  • [14] 실제로, 근세 절대왕정기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런 식으로 기회를 얻어 출세했다.
  • [15] 이는 카사노바가 관계한 여성들이 주로 낮은 신분의 여성들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은 부분도 있다.
  • [16] 프리드리히 대왕과의 대담에서도 나오지만, 당시 복권사업은 일종의 사기라고 받아들여졌다. 사실 카톨릭은 돈 빌려주고 이자 받는것도 싫어하는데 복권같은 사행성 넘치는 사업이 도덕적으로 지탄받지 않을 리가 없다.
  • [17] 즉, 당시 사회에서 이미 문란한 여성이라고 받아들여지던
  • [18] 당대 러시아 문학을 몇개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당시 러시아 농노와 빈민들에게 100루블은 엄청 큰 돈이다..거기다가 예카쩨리나 2세 치하 러시아는 하급 계층에 대한 억압이 팽배했던 시대였다..여러모로 씁쓸한 대목.
  • [19] 참고로, 18~19세기의 러시아는 꽤나 폭력이 성행하는 사회였기 때문에... 여기 기준으로 호되게 때렸다는 건 어지간한 위키니트의 상상을 초월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얼굴을 주먹으로 힘껏 가격해서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게 하는 정도는 '그냥' 때린거고, 어린 여자애를 말채찍이나 울퉁불퉁한 나뭇가지로 때리는 사람이 지칠 때 까지 때려서 울지도 못하고 숨넘어가는 소리가 나도록 하는 것 정도가 '호되게' 때리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