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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철

last modified: 2015-04-06 13:56:33 Contributors


13년만에 롯데로 돌아오다! 유니폼에 27번 종이로 써진 스티커가 보이는것 같으면 지는거다.
롯데 자이언츠 No.27
임재철(林載哲)
생년월일 1976년 4월 8일
출신지 충청남도 천안시
학력 남산초-천안북중-천안북일고-경성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롯데 자이언츠 2차 3라운드 지명 (전체 17순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9~2002)
삼성 라이온즈 (2002~2003)
한화 이글스 (2003~2004)
두산 베어스 (2004~2013)
LG 트윈스 (2014)
롯데 자이언츠 (2015~)
등번호 7(롯데)
2(삼성)
17(두산)
37(LG)
27(롯데)
응원가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
김동수(2000-2001) 임재철(2002~2003)[1] 안상국(2003)
두산 베어스 등번호 17번
차명주(1999~2004) 임재철(2004~2013) 오재원(2014~ )
LG 트윈스 등번호 37번
이윤학(2013) 임재철(2014) 루카스 하렐(2015~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7번
용덕한(2012~2014) 임재철(2015~ ) 현역

Contents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응원가
4. 프로 선수 시절
4.1. 롯데 자이언츠 시절
4.2. 삼성 라이온즈 시절
4.3. 한화 이글스 시절
4.4. 두산 베어스 시절
4.4.1. 2012 시즌
4.4.2. 2013 시즌
4.5. LG 트윈스 시절
4.5.1. 2014년
4.6. 롯데 자이언츠 2기 시절
4.6.1. 2015년
5. 연도별 성적
6. 성격 및 기타

1. 개요


별명은 타신(타격의 신), 수달(수비의 달인), 임고철, 임헬멧 등이 있다. 타신은 김현수홍성흔 등이 타격을 잘 치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타신이라고 한 것이 임재철의 별명이 되었다. 수달이라는 별명은 팬들이 붙여준 것. 인터뷰에서도 타신이라는 별명은 부담스럽고, 별명으로는 수달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우승 경험은 2002년(삼성), 준우승 경험은 1999년(롯데), 2005년, 2013년(이상 두산). 전성기와 선수생활의 상당 기간을 두산 베어스에서 보냈기 때문인지 두산맨이라는 이미지가 꽤 강한 편인데, 의외로 저니맨이기도 하다. LG로 이적하면서 총 5개의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2. 플레이 스타일

수달이라는 별명이 결코 허풍은 아닌 것이, 실제 임재철의 외야 수비는 KBO 전체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2013년 LG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보여준 결정적인 보살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강하면서도 정확한 송구 능력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것은 바로 타구판단 능력이다. 빠른 발에 다이빙캐치를 자유자재로 해내는 정수빈보다도 더 좋은 외야 수비수라는 평가를 듣는데, 임재철은 타격과 거의 동시에 반응하여 낙구 지점으로 달려가서 안정감 있는 수비를 해내기 때문. 나이가 든 후로는 예전처럼 운동능력을 활용한 수비가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코너 외야수로는 최고 수준의 수비수이다.

공격력도 나쁜 편이 아니다. 오히려 백업 외야수로 쓰기에는 사치다 싶을 정도로 좋은 편. 장타력은 없지만 두산 이적 후 2할 후반대의 타율을 보일 정도로 컨택트 능력이 있고 출루율로 대변되는 선구안은 나이가 들수록 좋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좌투수 킬러 이미지도 있어서 상대 투수에 따라 플래툰 선발요원이나 대타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우 건실한 백업 외야수로 뒤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주는 선수. 또한 같은 팀 선수들을 잘 챙기고 리더십이 있어 후배들을 이끄는 역할도 맡는다.

3. 응원가

두산 베어스 시절 응원가는 한 때 비틀즈Let It Be를 개사하여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2009년 시즌부터 개신교의 복음 성가 '내게 강 같은 평화'를 개사하여 "두산 임~ 재~ 철~ 안타!"로 시작되는 가사로 사용되는데, 이 응원가는 다른 타자들의 경우처럼 두산 베어스의 응원단장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딸이 그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두산 베어스의 팬페이지인 '곰들의 대화'에서 왜 찬송가를 쓰냐며 항의했기 때문.

그 후 타석에 서면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임재~철! 불꽃 사랑 임재~철!"이라는 구호를 외쳤었다. 때문에 임재철은 응원가가 딱히 없으나 현재는 오히려 그것이 임재철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4. 프로 선수 시절

4.1. 롯데 자이언츠 시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롯데 자이언츠 시절. 그리고 롯데를 떠난지 13년만인 2015년에 돌아왔다.

1999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사직 야구장에서 펼쳐진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20승 투수였던 정민태를 상대로 프로 첫 타석[2]을 섰고 좌익선상 적시 2루타를 치며 역전승을 만들어내 "무서운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기도 했다.

그 해 좌완투수들을 농락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이더니, 가을 야구에서 구대성 등 내로라하는 투수들을 상대로 맹활약을 펼쳤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7차전에서는 김민재가 2루타를 칠 때 역전을 하는 득점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롯데는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한화 이글스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하는데 만족해야했다.

4.2. 삼성 라이온즈 시절

(출처 : 포토로)
2002년 4월 김태균, 이명호를 상대로 삼성 라이온즈트레이드됐다.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여기서 임창용과 함께 찍은 사진 모습도 있다. 의외로 삼성팬 아닌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4.3. 한화 이글스 시절

(출처 : 포토로)
2003년 시즌 중 한화 이글스트레이드되며 준수한 활약을 보이게 되었다. 이 트레이드는 당시 한화 이글스유승안 감독이 삼성 라이온즈김응용 감독에게 요청하여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화의 성골이나 다름없는 북일고등학교 출신임에도 고향 팀인 한화 이글스를 상당히 싫어한다. 당시 개판 5분전이었던 한화의 시설에 학을 뗀 나머지 트레이드될 당시 "롯데보다 X같은 곳은 처음 봤다"라는 임팩트 강한 한마디를 남기고 갔다. 그리고 그의 말이 전혀 틀린게 아님을 2008년부터 성적으로 증명했다.(...)[3]

다만 이범호 등 후배 한화 선수들에게 자기 집에 선뜻 묵게해준 것을 볼 때, 선수들과는 별 문제 없이 잘 지낸 듯하다.

4.4. 두산 베어스 시절

(출처 : 포토로)

(출처 : 스포츠동아)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 2004년 6월 차명주를 상대로 두산 베어스트레이드됬다. 커리어 하이였던 2005 시즌 준우승 이후 병풍사건에 연루되어 군입대, 이후에는 상근 예비역으로 활동하다가 두산으로 복귀했고 페이스가 떨어진 전상렬 대신에 우익수를 맡아 꾸준히 활약을 하였다. 2010년 이후로는 정수빈, 민병헌 등의 등장으로 백업으로 밀려나 심심찮게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는 등 출전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뛰어난 수비 센스와 뜬금포를 갖춘 공격력 덕분에 필요할 때마다 계속 기용되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4타수 5안타 2볼넷 3사구(死球) 2타점 6득점, 타율&장타율 .357, 출루율 .526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2010년 10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스코어 팀이 8:6으로 지던 11회말 무사 만루에서 2타점 2루타를 쳐서 동점을 만들어 팀의 스코어 8:9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날 임재철은 4회초부터 대수비로 출장하여 3타수 1안타 1볼넷 2타점을 기록했다.

임재철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3타수 4안타 5볼넷 1도루 4타점 1득점, 타율 .308, 장타율 .385,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2승 3패로 패하여 탈락했다.

임재철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기복이 심한 이성열 대신 주전으로 낙점되어, 27타수 9안타 7볼넷 3사구(死球) 1도루 6타점 9득점, 타율 .333, 장타율 .370, 장타율 .514를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2011년 11월 19일, FA 자격을 얻어 두산 베어스와 2년 간 5억 원(계약금 1억 5,000만 원, 연봉 1억5,000만 원, 옵션 5,000만 원)에 재계약했다.

4.4.1. 2012 시즌

2012년 4월 27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홈 경기에서 호수비와 스코어 0:0이던 7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결승 투런 홈런을 때리면서 팀의 주장다운 플레이로 그 날 최고의 선수가 되었며, 팀의 0:2 승리와 이용찬의 시즌 2승에 크게 기여했고, 팀은 단독 선두가 되었다. 여러모로 주장다운 선수.그런데 타율이 .111
이날 임재철은 3타수 1안타 2타점 1득점 1병살타를 기록했다.

2012년 5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홈경기에서는 팀이 스코어 8:7로 지던 9회말 2사 1, 2루 상황에서 우중간 깊숙한 끝내기 3루타를 기록했다! 그것도 정우람을 상대로. 그리고 수훈선수로 선정.
이날 임재철은 5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3피삼진은 덤

2012년 5월 18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홈경기 에서는 팀이 2:3으로 지고 9회말 2사 2루에 대주자로 나갔으나 어이없는 견제사를 당하면서 LG측의 수훈선수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루플레이 미스로 인한 손가락 골절로 한동안 2군에 있다 올라왔다. 하지만 여전히 허술한 플레이나 타격 부진으로 속을 썩이고 있었으나,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이후로 각성, 호수비에 좋은 타격을 보여주고 있다.인태야 보고있니 아무래도 신인 지명에서 외야수 보강에 힘을 쓴 구단의 모습을 보고 자극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9월 8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대구 원정경기에서는 연장 12회 초 결승 싹쓸이 2루타로 3타점을 만들어내며 팀의 승리를 굳히는 데 기여한다. 오오 타신의 친정복수안타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4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7번타자, 3차전은 대수비로 출장하여 13타수 1안타 1득점 1볼넷, 타율, 장타율 .077, 출루율 .143을 기록하며 타석에서는 부진했지만 외야에서 알토란같은 수비를 해주며 분투했다. 하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4.4.2. 2013 시즌

타격은 전에 비해 부족하지만, 수비에서는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정신적 지주 역할도 하였다.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3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대수비, 2, 3, 5차전은 대주자로 출장하여 1득점만을 기록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상대 선발 투수신재웅을 노리고 선발 우익수 겸 2번타자로 출전하여 3타수 1안타 2볼넷 3득점으로 쏠쏠한 활약을 해주었다. 특히 두번의 출루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에 불과했으니, 팀이 스코어 4:5로 앞선 9회초 1사 2루 상황에서 정성훈의 좌전 안타 타구를 4회초부터 좌익수로 수비를 바꾼 임재철이 잡아 정확하고 빠른 홈송구로 2루주자 이대형을 아웃시켰다. 그리고 스코어 4:5, 2사 2루 상황에서 이병규의 안타 때 나온 우익수 민병헌의 보살과 최재훈의 2루주자 문선재를 막는 혼신의 블로킹이 나와 팀은 9회초 대위기를 수비진 덕에 극복하고 3차전을 승리로 가져갔다.

임재철은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2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2번타자, 4차전은 선발 좌익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5타수 1안타 2볼넷 1사구(死球) 3득점, 타율&장타율 .200,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임재철은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은 선발 우익수, 7차전은 대수비로 출장하여 6타수 1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167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앞서다 내리 3연패를 당하여 준우승에 그쳤다.

임재철은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 11타수 2안타 2볼넷 1사구(死球) 4득점, 타율&장타율 .182, 출루율 .357을 기록했다.

2013년 11월 22일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를 통하여 LG 트윈스로 이적하였다. LG팬들은 어깨 좋은 우타 외야수가 들어왔다며 풍악을 울렸지만, 두산 팬들은 왜 임재철을 보호선수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냐며 프런트를 향해 극딜을 퍼부었다. 게다가 프런트에서 은퇴 제의를 했다는 소식은 분노한 팬들에게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버렸다. 거기에 표본이 적기는 하지만 2013시즌에 4할이 넘는 출루율을 기록한 것을 보고 왜 로스터에서 제외시켰는지 팬들은 다시 한번 의문을 가졌다.

4.5.1. 2014년

다리 부상이 있어서인지, 시범경기 마지막 날인 3월 23일 KIA전에 박용택과 교체되어 중견수로 나와 2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이후 몇차례 더 출전하였으나 도저히 눈뜨고 못봐줄 성적을 기록하며 전격 2군행. 2군에서조차 뒷목을 잡게 하는 성적으로 팬들에게는 잘못된 영입이라 "저거 왜 데려왔냐"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6월 26일 NC전을 맞아 이보다 더 나쁜 용병은 없다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조쉬 벨이 2군으로 가며 반작용으로 1군으로 올라왔다. 첫 타석에서 유격수 앞 땅볼을 쳤고, 전일수 1루심이 아웃을 선언하자 헬멧을 땅에 집어던지며 심판에게 항의하였다. 느린 그림으로 돌려본 결과 임재철의 발이 먼저 들어가 세이프. 팬들은 속이 다 시원하다며 임재철을 찬양했다.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는 선발 중견수로 출장하였다. 매 경기 안타를 쳐내면서 시즌 초반 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7월 5일 NC전에서 또 다시 오심을 당했다. 세 번째 타석에서 기습번트를 댓는데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손이 먼저 베이스에 들어갔음에도 불구 이기중 1루심은 아웃을 선언했다. 다행히 후속 타자인 최경철이 적시타를 치며 팀이 스코어 2:0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7월 23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으나 2군으로 내려가지 않고 1군과 동행했다. 그리고 8월 2일자로 1군 엔트리에 다시 등록되었다가 8월 12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다시 말소되었다.

그러다가 확장 엔트리 때 다시 1군에 콜업되어 대수비로 간간히 출장했다. 그리고 10월 9일에 8번 타자 봉중근의 대타로 나와 희생번트를 성공시키며 대망의 1,100경기 출장을 달성하였다.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2014 시즌 후 본인이 방출을 요구하여 LG 트윈스를 떠났다.

그런데 의외로 여러 팀에서 임재철의 영입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본인도 FA가 된 기분이라고. 밑에도 나와 있지만 워낙 인성이 뛰어나 고참으로서 팀 분위기를 잡아주고, 외야수로서도 아직은 나쁘지 않기 때문.

그러다가 2014년 11월 27일, 친정 팀 롯데 자이언츠와 연봉 1억 5,000만 원에 계약하여 이적하였다.[4] 이종운 감독이 직접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4.6. 롯데 자이언츠 2기 시절

4.6.1. 2015년

4월 3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8회말, 대타로 나와 함덕주로부터 솔로홈런을 뽑아냈다.

5.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9롯데 자이언츠 23 59 .322 19 4 2 1 9 6 4
2000 40 59 .136 8 1 0 1 3 11 1
2001 114 216 .269 58 14 1 3 26 37 1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2 롯데 / 삼성 104 72 .194 14 4 0 1 4 13 3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3 삼성 / 한화 119 270 .241 65 14 2 7 26 38 6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4 한화 / 두산 51 103 .175 18 2 0 0 5 13 0
2005두산 베어스 109 336 .310 104 13 3 3 30 41 10
2006 99 279 .258 72 7 4 0 20 37 9
2007군복무(공익근무)
2008
2009두산 베어스 121 359 .281 101 13 1 6 50 61 11
2010 96 130 .292 38 5 2 3 18 27 7
2011 36 84 .321 27 8 0 2 10 20 0
2012 66 136 .243 33 4 2 2 14 16 4
2013 70 112 .259 29 5 1 0 10 19 2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14 LG 트윈스 53 66 .242 16 1 0 0 3 13 0
통산 1101 2281 .264 602 95 18 29 228 352 67

6. 성격 및 기타

쾌활하고 넉살 좋은 성격이어서 선수단 사이에 인망이 높다. 특히 후배들 챙기는 면에 있어서는 알아주는데, 임재철이 뛰었던 지방 구단에서 이적한 선수들은 거처를 구하기 전에 일단 임재철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본다. 특히 최준석은 롯데에서 이적했을 때 임재철의 신혼집에서 지냈을 정도였다.
조규수김창훈이대수와의 트레이드두산 베어스에 이적하자 아니나다를까 임재철의 집에 임시로 짐을 풀었다. 이범호일본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임재철의 집에 묵기도 했다.

부인은 대전시립무용단에서 무용을 전공한 바 있다. #

2012년 8월 8일 둘째 아이로 아들이 태어났다. 태명은 축복이.

저니맨으로서, 김혜연의 노래 제목 그대로 서울(두산,LG)-대전(한화)-대구(삼성)-부산(롯데)를 전부 찍었다. 단 순서는 역순. 결국 역순으로 돈 끝에 친정팀 롯데로 귀환했다. 즉 경부선 저니맨 새마을호 타고 올라가서 KTX 타고 내려온 셈[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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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시즌 중 트레이드
  • [2] 대타로 들어갔다.
  • [3] 메이저리그 시설에 익숙한 박사장이 한화에 온다면(...)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 [4] 이적 당시에는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알려지지 않았다.
  • [5] 재미있게도, 두산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KTX가 개통하지 않던 시기였다가(2004년 4월에 KTX가 개통했으니 임재철은 개통 2개월 후에 두산으로 보내졌다), 부산에 내려올 때는 KTX가 이미 2단계 구간까지 개통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