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일본국유철도

last modified: 2015-01-31 00:39:21 Contributors

일본국유철도 분할 민영화 이후의 JR 7개사
JR 홋카이도JR 히가시니혼JR 도카이JR 니시니혼JR 시코쿠JR 큐슈JR 화물
日本国有鉄道 / Japanese National Railway (JNR)

일본국유철도
日本国有鉄道
설립 년도 1949년
해체 년도 1987년
영업 지역 일본 전역
보유 선로 19,639㎞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노선
4. 관련 영상
5. 관련 항목


1. 개요

일본의 국유 철도를 운영하던 국토교통성(당시 운수성) 산하 공기업으로, 현재 JR의 전신이다. 한국으로 치면 철도청과 현재의 코레일의 중간격 형태라 볼 수 있겠다[1].

본사는 도쿄도 지요다구 마루노우치쵸메에 위치했으며, JR 그룹이 발족할때 JR 히가시니혼이 한동안 이곳에 본사를 두기도 했다.

JR 설립 직전 신칸센과 재래선을 모두 합쳐 국철의 보유 선로의 연장은 19,639㎞에 달했으며, 그와 동시에 총 연장 30㎞의 선박 노선과 총 연장 11,739 km에 달하는 버스 사업도 가지고 있었다. 여러모로 흠좀무.

2. 역사

1949년에 운수성의 철도 총국을 공기업화하면서 태어났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 일본에서 전쟁 기간 동안 파괴된 철도의 복구 작업이 계속되었으나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복구 작업에 투입한 인력들에게 지급할 막대한 인건비로 인해 철도 총국의 재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그리고 GHQ에서 철도의 공기업화를 요구함에 따라 1949년 4월 1일에 '일본국유철도법'이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설립되었다.

1964년에는 도카이도 신칸센을 개통하는 등 일본의 승객과 화물을 쓸어담으며 리즈 시절을 누렸다. 하지만 동시에 점점 적자가 늘어나기 시작, 1970년대에 접어들어 정치권에서 신선 건설 요구가 잇따르고, 도로·항공 등 대체 교통 인프라의 발전과 오일 쇼크에 따라 막대한 적자를 떠안게 된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파업도 잦아 국민들의 신뢰도도 바닥을 쳤다.

국철은 특정지방교통선(로컬선)[2]을 지정해서 적자 노선을 폐선하거나 제3섹터로 넘기고, 10만명을 정리해고하는 등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했으나 결국 1987년 4월 1일에 경영 합리화를 위해 JR 7개사와 철도연구소, 철도정보시스템으로 분할 되었으며, 특정지방교통선 중 30개 노선을 사철이나 제3섹터로 넘겼다.

1987년 채무 37.1조엔중 동일본회사(4.2조엔),동해회사(0.5조엔), 서일본회사(1.1조엔),화물회사(0.1조엔), 나머지 섬철도회사는 채무승계를 하지 않았다.
저들이 합친 채무는 6.9조엔... 즉 애초에 이들 회사는 저 빚을 전부 떠안지 않았다.
막대한 채무는 일단 '일본국유철도 청산사업단'에서 떠안았으나 국철 소유의 토지 매각 등을 통해 채무의 6할 이상을 상환하려던 계획은 버블 경제가 붕괴되어 차질을 빚게 되었고, JR 혼슈 3개사에 추가 부채 부담을 시켰음에도 30조엔 장기채무 상환을 못한채(오히려 이자 지급 등으로 증가함)결국 1998년에 사업단은 해체되고 채무의 5할은 정부가 탕감했다.(즉 나라빚이라는 거다) 나머지 채무는 철도 건설·운수 시설 정비 지원기구 내의 국철 청산 사업본부가 담당하였다.(결론은 전부 나라빚) 현재도 매년 원금 4000억 이자 6600억 합계 1조엔이상을 세금으로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철에 대한 민영화는 일본 내외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JR 7사의 재정 상태가 호전되었기 때문이다. 1985년 당시 국철은 1조엔 이상의 적자를 내고 있었는데, 이나마 일본 정부가 6000억엔의 보조금을 투입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국철 말기의 난국은 JR 7사의 성립 이후 2005년 5000억엔 이상의 흑자로 돌아 섰다.
또한 운임 인상을 반복했던 국철과 달리 JR 성립 이후에는 1997년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운임 인상이 없었다는 점[3], JR 성립 이후 철도 서비스 전반의 질적 향상이 있었다는 점도 국철의 민영화가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뒷받침하고 있다.

여담으로, 오랫동안 관습에 지나지 않았던[4] 지적확인을 처음 제도화시킨 곳이 국철이었다.

3. 노선

JR 그룹 각 항목 참고. 다만 민영화 이후 잘려나간 노선이 많아 민영화 직후 노선과는 다소 다르다.

4. 관련 영상

1957년(!) 당시 전동차에 관한 영상. 참고로 영상 맨 앞의 사진은 JR 히가시니혼이 1997년까지 사용한 옛 본사(=일본국유철도 본사) 빌딩이다.
1960년(!) 당시 디젤 동차에 관한 영상. 1편도 있는 데, 여기서는 동차의 역사를 다룬다. 근성의 가솔린 동차 중련
일본국유철도가 JR로 바뀌기 직전의 영상(1987년 3월 31일). 제법 찡하다.
영상의 시계가 자정,그러니까 1987년 4월 1일 자정부터는 현재의 JR로 이어지게 된다.

5. 관련 항목

  •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팀의 시발점은 일본국유철도가 창단한 고쿠테츠 스왈로즈였다. 스왈로즈의 닉네임도 창단 당시 가장 빠른 열차였던 츠바메호에서 유래했다. 그러나 국영기업 특성상 일반 사기업처럼 프로야구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없었고 만년 하위를 전전하다가 산케이 신문, 야쿠르트에 차례차례 매각되어 현재의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됐다. 야쿠르트의 팀 인수 이후 일본시리즈 우승 5번을 달성하였고 현재도 플레이오프 진출권에서 다크호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도권 국철폭동
  • 아게오 사건
  • 야마구치 모모에
  • 일본 국철 3대 미스테리 사건
  • DISCOVER JAPAN
  • RAIL WARS
  • 히로시마 시티 네트워크: 국철 해체 후 25년이 넘은 지금도 국철 시절의 차로 땜빵해서 돌린다는 이유로 일본 철덕들한테서 아직도 일본국철 히로시마지사에서 운영하냐는 소리를 듣고 있다.
----
  • [1] 공사화되었다는 점에서는 코레일과 비슷하나, 운수성 산하였다는 점에서는 철도청과 비슷하다.코레일도 국토해양부 산하 공기업인데 중간격 형태가 아니라 아예 코레일에 가까운 형태 아닌가...
  • [2] 특정지방교통선의 조건은 1977년~1979년의 3년간 평균 수송밀도가 4천명/1일 미만인 노선(다만 피크타임에 시간당 1천명 이상 이용, 대체수송도로가 없거나 적설로 1년에 이용불가능한 날짜가 10일 초과할 경우 등 일부 예외조건이 있었다)
  • [3] 하지만 90년대 이후 버블경제가 무너지면서 일본 물가상승률이나 이자가 거의 바닥급이었다는건 감안해야한다.
  • [4] 코레일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때에도 환호응답은 존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