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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동 호프 화재사고

last modified: 2015-04-14 22:40:11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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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hon_hof_01.jpg
[JPG image (Unknown)]


사고 직후의 모습.

Contents

1. 개요
2. 사건 당시 상황
2.1. 비상구가 없었나?
2.2. 내부 구조 문제
3. 기타

1. 개요

1999년 10월 30일에 인천광역시 중구 우현로 83번 길 10번(인현동 27-43)에 있는 호프집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사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이 일어난 지 4달밖에 안되었는데 일어난 사망 55명, 부상 78명의 대참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세 번째 규모의 대형 화재사고다.

2. 사건 당시 상황

문제의 인현동 호프는 5층짜리 상가 건물로 지하에는 노래방, 2층에는 호프, 3층, 4층에는 당구장이 있었다. 지하의 노래방은 내부수리 공사중이었는데 이 노래방에서부터 불이 나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화재의 원인은 전기 스파크로 인해 노래방 바닥에 있던 신나에 불이 붙은 것. 노래방에서 시작된 불은 진압되었으나 유독가스가 1층->2층->3층->4층까지 올라갔고 당연히 그 위층의 사람들은 이미 막힌 출입구로 내려올 수도 없는 상태. 그래서 꼼짝없이 패닉 상태에서 엄청난 희생자들이 나온 것이다.

다행히 1층은 화재를 금방 알아채고 대피했고 3층과 4층도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면서 부상자가 발생하긴 했으나 사망자는 없었다. 모든 사망자는 2층 호프에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 호프는 마침 학교 축제가 끝난 뒤 뒤풀이를 하던 고등학생들이 꽉꽉 들이차 있었다. 사망자 57명도 대부분이 고등학생들. 희생자 중 일부는 중학생들도 포함되었다. 당연히 학교 축제가 끝난 직후라 모두 교복을 입고 있었으며 이때문에 사고 후에도 계속 질타가 나오게 되었다.[1]

2.1. 비상구가 없었나?

비상구가 있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한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불 자체는 이미 화재 시작 후 30분만에 진압되었고 비상구가 있었다면 모두 비상구를 통해 탈출하면 되는 것이었다. 비상구가 있긴 있었는데 마침 비상구를 베니어판으로 막아버렸고 내부수리를 하며 창문도 개폐식이 아닌 통유리로 갈아버린 데다가 간판으로 쓰려고 모두 판자를 박아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창문으로 뛰어내리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호프집이 2층이었으므로 창문에서 뛰어내린다면 어디 한 군데 부러지기는 해도 적어도 죽지는 않았을 상황.

거기다가 호프집 주인의 정신나간 조치로 인해 화재로 고등학생들이 빠져나가려고 하자 대왕코너 화재사고 때처럼 "돈 내고 나가라" 면서 유일한 출입구를 막아서버렸다. 결국 이렇게 해서 마지막 출입구까지 봉쇄해버렸다.

2.2. 내부 구조 문제

당시 호프집 내부는 탁자와 의자가 꽉꽉 들어차 있었고 50여평 규모의 호프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앉아있었으며 사람이 돌아다닐 만한 통로는 겨우 한 사람이 빠져나갈 만한 아주 비좁은 길밖에 없었다. 계단 역시 폭 1.2m 정도밖에 안되는 아주 좁은 계단이라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때문에 완전히 정체 상태였고 불이 나자 계단이 굴뚝 역할을 해 연기를 윗층으로 올려보냈다.

내부 구조물들도 주로 인화성 물질로 만들어져 있던 탓에 불이 붙으면서 치명적인 유독가스를 뿜어냈다. 사고 후 경찰의 검시 결과 밝혀진 사망자 대부분의 사인도 유독가스로 인한 질식사였다. 몇몇 사람들은 환풍구를 통해 탈출하려는 부질없는 시도를 하기도 했고 그 결과 환풍구까지 시체가 꽉꽉 메워져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처음 화재가 시작된 지하 노래방 천장에 설치된 비상 소화 장치인 스프링클러도 수리한다는 명목으로 모두 제거된 상태였다. 스프링클러만 제대로 달려 있었어도 초기 진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실 이 업소는 1999년 3월에 안전기준 미달로 적발되어 중구청으로부터 영업장 폐쇄 명령을 받은 상태였으나 화재 당시 업소 주인이 인수하여 무허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물론 뇌물로 공무원들을 매수했기에 가능한 불법 영업이었고 사고 후 뇌물을 받은 공무원들 역시 구속되었다.

3. 기타

2012년 현재 이 상가 건물은 수리 후 계속 영업하다[2] 4분기경에 2층과 3층에 있던 노래방과 당구장이 폐업하면서 임대 매물로 내놓은 상태이다. 사고가 난 당시에는 미성년자이면서 호프집에 갔다는 이유로 오히려 학생들을 매도하는 여론이 많았었다.

여담으로 당시 사망한 희생 학생의 90% 가량이 인천 앞바다에 유골이 뿌려졌다.

1990년대까지 인천의 중심지로 잘 나갔던[3] 인현동을 비롯한 동인천역 상권은 화재 사고로 인한 마이너스 이미지와 인천 도시철도 1호선 개통으로 구월동, 부평구, 계양구, 연수구지역이 개발되면서 망했어요.

만악의 근원인 호프집 주인은 며칠 후에 자수했는데도 불구하고 변호사 타령을 하거나 뇌물 같은 거 주지 않았다는 등 여전히 당당한 태도를 유지해 사방팔방에서 어그로를 끌었다. 이후 5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한 이후에는 CCM 가수로 변신하면서 교도소 등을 돌아다니며 찬양사역을 하고 있다는 기사 댓글 달린 기사가 2007년도에 나오면서 피해자들을 다시 분노케 했었다. 피해자들에게 사과는 안하는 것이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

2011년 SK 와이번스김성근 감독 해임 후 이만수 감독대행(현 감독)이 올라오는 과정에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의 갤러들이 통구이 드립을 치자 이에 대항하여 이 사고로 고인드립을 쳤다.

당시 피해자로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곽은희 씨는 이후 2000년 방송된 그것이 알고 싶다-화상 그 후 편에 등장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동안은 공부를 위해서 안면성형수술도 하지 않은 채 학업에 전념하여 일리노이 주립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방송에서 곽은희 씨는 얼굴을 드러내고 생활하고 있으며 화상 환자들은 전염병을 가진 사람이 아니니 노골적으로 피하지만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2007년 3월경에 공개된 당시 신인 가수 SAT의 '이게 나에요' 뮤직비디오는 이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졌으며 호프집 장면 이후에 나온 내용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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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인천 항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천은 전국에서 가장 교육 환경이 나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사고가 난 동인천 권역에는 여러 학교들 주변에 유흥가가 많았던 것도 문제. 당시 뉴스 동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마땅히 놀 곳이 없다" 며 한탄하는 그 지역 학생 인터뷰도 있었다.
  • [2] 네이버 거리뷰 참조. 로드뷰에서 뒤쪽에 보이는 PC방이 바로 그 화재가 난 자리이다. 그 증거로 옆에 있는 'NBA 당구장' 이 보인다.
  • [3] 당시 희생자 중에 인천 구도심권 학교 출신 뿐만 아니라 부평, 계산지역 학교 학생들도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