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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제국

last modified: 2015-03-20 19:41:07 Contributors

The Indian Empire / British Empire in India.

브라질 제국의 후배, 만주국의 선배[1]

1876년부터 1947년까지 70년 넘게 존속한 인도제국. 인도 역사상 최대 판도를 이루었으며 당시 단일 국가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부양하던 대제국. 오오...


인도에서는 British Raj(reign)[2]이라 표현한다.

Contents

1. 영국 통치 시기
1.1. 역대 황제
1.2. 역대 부왕
1.3. 연혁
2. 독립 이후
3. 그 외



1. 영국 통치 시기


지도 설명: 빨강색은 영국 직접 통치, 보라색은 토후국을 통한 사실상의 영국 통치.[3]

순식간에 독립했던 브라질 제국과 더불어 한 시대에 제국과 식민지 타이틀을 모두 획득한 국가. 만주국도 1934년 국호를 만주제국으로 고쳤기 때문에 괴뢰국도 같은 범주로 포함시키면 이와 같은 케이스가 된다. 또 베트남 역시 2차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베트남 제국이라는 괴뢰국이 세워진 적이 있다. 인도 제국이라고 쓰고 인도 독부라고 읽는다.

1.1. 역대 황제

황제/여제 즉위연월일 퇴위연월일 재위기간 대관식(Delhi Durbar)
빅토리아 1877.1.1 1901.1.22 24년 21일 1877.1.1
에드워드 7세 1901.1.22 1910.5.6 9년 104일 1903.1.1
조지 5세 1910.5.6 1936.1.20 25년 259일 1911.12.12
에드워드 8세 1936.1.20 1936.12.11 10개월 22일 없음
조지 6세 1936.12.11 1947.8.14 10년 249일 없음

1.2. 역대 부왕

작위 이름 임기시작 임기종료
백작 캐닝 1세
(1st Earl Canning)
찰스 존 캐닝
(Charles John Canning)
1858. 11. 1 1862. 3. 21
백작 엘긴 8세
(8th Earl of Elgin)
제임스 브루스
(James Bruce)
1862. 3. 21 1863. 11. 20
1대 막달라의 네이피어 남작
(1st Baron Napier of Magdala)
로버트 코널리스 네이피어
(Robert Cornelis Napier)
1862. 11. 21 1863. 12. 2
윌리엄 토머스 데니슨 경
(Sir William Thomas Denison)
1863. 12. 2 1864. 1 12
1대 로런스 남작
(1st Baron Lawrence)
존 레어드 메어 로런스
(John Laird Mair Lawrence)
1864. 1. 12 1869. 1. 12
6대 마요 백작
(6th Earl of Mayo)
리처드 사우스웰 버크
(Richard Southwell Bourke)
1869. 1. 12 1872. 2. 8
존 스트레이치 경 [4]
(Sir John Strachey)
1872. 2. 9 1872. 2. 23
10대 네이피어 경
(10th Lord Napier)
프랜시스 네이피어
(Francis Napier)
1872. 2. 24 1872. 5. 3
1대 노스브룩 백작
(1st Earl of Northbrook)
토마스 조지 베어링
(Thomas George Baring)
1872. 5. 3 1876. 4. 12
1대 리턴 백작
(1st Earl of Lytton)
에드워드 로버트 리튼 불워리튼
(Edward Robert Lytton Bulwer-Lytton)
1876. 4. 12 1880. 6. 8
1대 리폰 후작
(1st Marquess of Ripon)
조지 프레더릭 새뮤얼 로빈슨
(George Frederick Samuel Robinson)
1880. 6. 8 1884. 12. 13
1대 더퍼린과 아바 후작
(1st Marquess of Dufferin and Ava)
프레더릭 해밀턴템플블랙우드
(Frederick Hamilton
-Temple-Blackwood)
1884. 12. 13 1888. 12. 10
5대 랜스다운 후작
(5th Marquess of Lansdowne)
헨리 찰스 키스 패티피츠모리스
(Henry Charles Keith Petty-Fitzmaurice)
1888. 12. 10 1894. 10. 11
9대 엘긴 백작
(9th Earl of Elgin)
빅터 알렉산더 브루스
(Victor Alexander Bruce)
1894. 10. 11 1899. 1. 6
1대 케들스턴의 커즌 후작
(1st Marquess Curzon of Kedleston)
조지 너새니얼 커즌
(George Nathaniel Curzon)
1899. 1. 6 1905. 11. 18
4대 민토 백작
(4th Earl of Minto)
길버트 존 엘리엇머리킨마운드
(Gilbert John Elliot-Murray-Kynynmound)
1905. 11. 18 1910. 11. 23
1대 펜스허스트의 하딩 남작
(1st Baron Hardinge of Penshurst)
찰스 하딩
(Charles Hardinge)
1910. 11. 23 1916. 4. 4
1대 첼름스퍼드 자작
(1st Viscount Chelmsford)
프레더릭 네이피어 세시저
(Frederic John Napier Thesiger)
1916. 4. 4 1921. 4. 2
1대 리딩 후작
(1st Marquess of Reading)
루퍼스 아이작스
(Rufus Isaacs)
1921. 4. 2 1926. 4. 3
1대 핼리팩스 백작
(1st Earl of Halifax)
에드워드 프레더릭 린들리 우드
(Edward Frederick Lindley Wood)
1926. 4. 3 1931. 4. 18
1대 윌링든 후작
(1st Marquess of Willingdon)
프리먼 프리먼토머스
(Freeman Freeman-Thomas)
1931. 4. 18 1936. 4. 18
2대 린리스고 후작
(2nd Marquess of Linlithgow)
빅터 알렉산더 존 호프
(Victor Alexander John Hope)
1936. 4. 18 1943. 10. 1
1대 웨이벌 백작
(1st Earl Wavell)
아치볼드 퍼시벌 웨이벌
(Archibald Percival Wavell)
1943. 10. 1 1947. 2. 21
1대 버마의 마운트배튼 백작
(1st Earl Mountbatten of Burma)
루이스 프랜시스 앨버트 빅터 니컬러스 조지 마운트배튼
(Louis Francis Albert Victor Nicholas George Mountbatten)
1947. 2. 21 1947. 8. 15

1.3.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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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크고 아름다운 인도 제국의 위엄.[5]


1909년 당시.

지금의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의 4개 나라, 그리고 미얀마[6], 아프가니스탄, 부탄의 일부 지방까지를 포함했던 명실상부 식민지계의 메이저로, 흔히 문화나 민족 차원에서 인도를 칭할 때는 현재의 인도 공화국이 아닌 바로 이 인도 제국을 의미한다. 인도 제국의 최대 면적

제국이라는 타이틀 탓인지 무굴 제국과 혼동되는 경우가 많은데, 무굴 제국은 인도 제국이 성립하기 전 북인도에 존재하던 별개의 이슬람계 주권 국가로서 강역이 인도 제국에 크게 못 미친다. 세계사 시험에 자주 페이크로 출제되는 사항이니 유의하자.

그래도 무굴 제국 시기까지는 형식적으로 동인도 회사가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국가로서의 주권은 존중하는 것이었으나, 인도 제국은 대영제국 정부가 동인도 회사를 해산시키고 직접 통치하던 속령이다. 지배 주체가 바뀐 계기는 세포이 항쟁.

그리고 이 때부터 섬나라 영국은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국 타이틀을 획득해 황제참칭주장할 수 있었다. "인도 제국이 우리 것인데 우리도 제국 아니냐"는 것으로, 그 이름도 찬란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다만 영국은 관용상 '대영제국'으로 부르는 것과는 달리 스스로 제국을 칭한 바가 없었고, 따라서 영국의 왕인 동시에 인도 제국의 황제로서 인도 한정으로 황제에 오른 것이다.[7]

제국급의 식민지에 제국 타이틀을 달아준 것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실제적 지배는 영국의 총독이 했지만.[8][9][10]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인도는 식민지가 되면서 완전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다.[11] 때문에 인도 전역이 통일된 것은 인도 제국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전 인도를 지배한 왕조가 하나도 없었다.[12] 도저히 융합이 불가능해 보이는 인도 내의 수많은 민족, 종교, 계급, 이해세력을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대영제국의 강력한 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다만 이것은 바꿔서 말하면 '인도'라는 민족성 자체가 대영제국의 식민지배를 통해 탄생했다는 얘기도 된다. 실제로 북부의 아리안계와 남부의 드라비다계는 종교를 제외하면 언어도 문화도 역사도 전혀 다르다. 쉽게 말하면 한국만주, 혹은 한국일본을 '통일'시켜놓은 것과 같다.

하지만 그 영국조차도 선교계 최강의 힌두교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적어도 인도 본토에서는 말이다. 더구나 과거에도 불교이슬람교의 도전을 모두 나가떨어지게 만들었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도 인도는 최종던전이다.

인도 제국이 세계사적으로 끼친 가장 유명하면서도 악명높은 업적은 아편이다. 당시 인도는 아편의 주산지였는데, 영국이 중국에 대한 거래대금으로 이걸 뿌리는 바람에 아편전쟁이 터졌고,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을 몰락시킨 간접 원인이 되면서 인도 제국은 중국의 붕괴를 사주한 꼴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외에는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투쟁이라든가 하는 독립운동 이외에 별다른 세계사적 족적이 없다. 제국이면서.

그래도 잘 살펴보면 인도인들이 영국군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한 편이다. 식민지에서 '영국군'으로 싸운 군인들 중 인도인들이 은근히 많다. 인도 군인들은 을 공격하는데 동원되기도 했으며 이는 중국과 인도 관계가 틀어지는 사실상의 시발점이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시는 영국 인도군이라는 이름으로 서부 전선, 갈리폴리 등에 투입.

2. 독립 이후

분명 인도는 외세의 도움이 아닌 자주적으로 식민지를 벗어난 나라다. 하지만 인도 제국은 독립되기 무섭게 분열의 투쟁에 휘말리기 시작한다.

독립 투쟁을 지휘했던 간디는 기껏 이뤄놓은 통일 인도의 분열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들었지만 오히려 그에 반감을 산 청년에게 암살당했고, 독립과 함께 인도 제국은 3개의 나라로 쪼개졌으며, 이 과정에서 힌두교도들은 인도, 이슬람교도들은 파키스탄, 불교도들은 스리랑카로 터전을 이주했다. 특히 역사적으로 철천지 원수였던 인도와 파키스탄간에는 전쟁의 위기까지 고조되었다.[13]

마침내 결국 1947년 카슈미르를 놓고 내전과 국제전 성격을 모두 가진 전쟁이 터졌으며 결과 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은 지금까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지도를 찾아보면 인도-파키스탄간 카슈미르의 국경은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두고 동족혐오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원래 이들은 문화도 종교도 언어도 상당히 이질적인 민족들을 영제강점기 치하에 한 나라로 묶인 것이다. 예를 들어 영제가 한국과 일본, 만주를 한 나라로 묶어서 '동아시아제국' 따위의 이름으로 통치했다면 영제가 떠나간 이후에 이들간의 분열으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테고 이를 동족혐오라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현재 아프리카의 수많은 국가들이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아직까지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 있다.)

1962년에는 인도와 중국간에 국경분쟁으로 전쟁이 터졌고(중인전쟁 또는 중국-인도 국경분쟁), 이때 인도는 한 마디로 개발살났다. 그리고 이때 문제가 되었던 국경 역시 지금도 점선이다. 이것은 역사상 최초로 인도계 국가와 중국이 국가 주도의 전쟁을 수행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1965년에는 파키스탄이 인도가 중국에게 털렸던 것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는지, 석유가 묻혀있는 구자라트를 차지하겠다고 선공을 날렸다. 이 전쟁은 UN소련의 중재로 유야무야 끝났다.

인도 제국의 분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번엔 파키스탄 내부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인도 제국 시절에는 벵골 주에 속했으며 독립 후 동파키스탄으로 불리던 방글라데시가 저희끼리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1971년 터진 이 전쟁은 파키스탄의 내전으로 시작되었으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도가 개입해 방글라데시를 해방시켜주었다. 그 결과 인도는 방글라데시를 우군으로 끌어들였지만 파키스탄과의 관계는 더더욱 악화되었다.

그리고 인도 제국의 분열은 아직도 완전히 수습되지 않았다. 섬나라 스리랑카는 기나긴 내전을 겪었고, 정부군의 승리로 끝난 지금도 그 상처가 가시지 않았다. 내전의 양상이 조금 달랐다면 인도 제국에서 떨어져나온 다섯 번째 국가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일련의 분열 과정은 인도 제국 시절의 역사와도 긴밀한 관련이 있다. 바로 1905년 영국이 인도의 지역감정을 조장할 목적으로 실시한 골 분할령이 그것. 인도인들의 통합을 막고 분열을 야기할 목적으로 실시한 이 정책은 아주 기가 막히게 효과를 봐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3국 분열 모두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대망의 1998년, 3개월 차이로 인도와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개발했다!
종교적 이견에서 출발한 갈등은 마침내 종교가 지구멸망을 초래할 수준에 도달해버린 것이다.[14]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진원지로 가장 유력한 후보가 카슈미르라고 한다.

3. 그 외

인도 제국은 알게 모르게 한국의 역사에도 간접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바로 1905년 2차 영일동맹 당시 영국이 인도 제국의 지배를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일본의 조선 지배를 공인해버린 것.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입김이 강했던 영국이 한국 보호국화를 인정해버렸다.[15] 그렇다고 한일병합을 긍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영국은 1910년 한일병합 당시에는 일본에 항의할 것을 고려해보기도 했다.
물론 40년 뒤 일본은 보기 좋게 약속을 파기한다. 하지만 그 결과는…….

흔히 알렉산드로스 대왕인도까지 정ㅋ벅ㅋ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알렉산더 대왕은 인도대륙 본토에 침입하기는 커녕 지금의 파키스탄 언저리만 살짝 찔러보고 회군해버렸다.[16]그래도 일단 '인도 제국' 기준에서 '인도'는 '인도'인지라….

그 유명한 간다라 미술도 본국인 인도 입장에서는 파키스탄 일부 지방의 변방 민속 예술 수준에 불과하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윌리엄 셰익스피어만도 못하다고 했던 인도는 아직 인도 제국이 성립하기 한참 전이었다. 즉 당시의 인도는 식민지가 아닌 교역국 대우였다. 만약 인도 제국을 성립시켰더라도 셰익스피어랑 안 바꾼다고 했을지는….

지배국인 영국이 그래도 젠틀하게 독립을 허용해줘서인지, 인도 제국에서 갈라진 네 나라 모두 영연방에 가입해 있는 상태.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불화 문제로 1972년 연방을 잠시 탈퇴했으나 2004년에 복귀했다. 32년이 잠깐은 아닌것같다

인도 제국에서 갈라진 4국은 하나같이 인구가 어마어마하다.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의 인구가 2200만. 인도 동쪽에 조그맣게 끼어있는 방글라데시 인구가 1억 5천만.[17] [18] 파키스탄의 인구가 1억 7천만.[19] 그리고 인도의 인구는 12억 3천만[20]. 이 인구를 다 합치면 15억에 육박하며, 중국 인구를 압도한다.

더구나 산아제한정책으로 출산율이 세대교체율을 밑도는 중국과는 달리 이들 인도계 국가는 하루가 다르게 인구 폭증, 해마다 수천만 단위로 인구가 늘어난다. 인도 하나의 인구만으로도 2025년쯤 중국을 앞지르게 될 것이라고 한다(…).

만약 인도 제국이 간디의 소망대로 분열 없이 쭉 이어졌다면 중국은 지금 같은 대국의 위상을 꿈꿀 수 없는 인구 콩라인이 되었을지도. 아니 현재 서서히 콩라인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래서 문명 5의 간디 특성이 그렇게 된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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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식민지에게 제국 타이틀을 달아준 건 브라질이 원조다. 다만 이쪽은 2개월만에 바로 독립을 해서 그렇지만.
  • [2] 대략 번역하면 영국치하, 영제시대, 영제강점기(...) 정도 되려나.
  • [3] 세포이 항쟁 이후 영국 편을 든 토후국은 영국의 지배권 하에 두어 남겨 놓았다.
  • [4] 전임자 마요 백작이 암살당해 부왕 자리가 공석이 되자 임시로 맡음.
  • [5] 여기서 인도제국에 포함되지 않는 지역이 두 군데 있는데 하나는 포르투갈 식민지인 고아와 프랑스 식민지인 폰디체리다
  • [6] 미얀마 전역이 인도 제국에 편입된 시기도 있었으나 편입 시기가 인도 본토보다 훨씬 늦고 1937년에는 인도 제국과 별도로 영국의 직할령이 된다. 그리고 1942년부터는 일본의 식민 통치에 들어간다.
  • [7] 영국이 세계 최고의 국력임에도 불구하고 자국 왕을 황제로 올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로마 제국의 정통성과 무관했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 멸망 이후 황제를 자처한 제국 - 랑크 제국, 신성 로마 제국(후일 오스트리아까지), 러시아 제국, 심지어 오스만 제국까지도- 은 반드시 로마 제국의 정통 후계임을 자처했다. 잉글랜드 왕과 프랑스 왕이 신성 로마 황제 선거에 도전할지언정 자국의 황제를 자처하지 않았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로, 이런 전통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이르러서 깨진다. 나폴레옹은 스스로 권위를 창출하여 황제에 올랐고, 샤를마뉴의 후계자임을 자처했다. 물론 그가 마지막 케이스였지만.
  • [8] 그리고 정작 인도에서는 두 번 다시 황제를 칭할 일이 없어지게 되었다.
  • [9] 그리고 인도 총독의 공식직함은 인도 부왕(Viceroy of India). 이전의 인도 총독들과는 달리, 황제를 대리해서 인도 제국을 통치하는 인도 부왕은 오로지 작위를 가진 귀족만이 취임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위에서 역대 부왕 목록에서 귀족들의 작위의 상당수가 1대라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부왕직에 임명되면 작위를 수여하는 방식으로 평민출신에게도 어느 정도 개방되었다. 평민인 웨이벌 원수도 인도 부왕직에 오르기 위해서 자작위를 받았다.
  • [10] 참고로 식민지에 제국 타이틀을 달아준 건 포르투갈이 만든 브라질 제국이 원조다. 다만 이쪽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본토는 탈탈 털리고 브라질이 독립을 해서... 사실 브라질 왕국으로 할 수도 있었는데 굳이 제국을 자칭한 걸 보면 황제 호칭을 바라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 [11] 포르투갈(고아, 다우,다드라 나가르 하벨리)이나 프랑스가 지배한 곳(폰디체리, 찬데르나고르)도 있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통일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포르투갈과 프랑스가 점유한 지역은 영국이 점유한 지역에 비하면 그야말로 코딱지만큼 작았던지라...
  • [12] 우리아 왕조가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을 흡수하여 남인도 지역을 포함한 인도 대부분을 통일하고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이란 일부 지역까지 지배하기는 했다. 영문 위키피디아의 Maurya Empire 항목 참조.
  • [13] 파키스탄은 무굴 제국 및 이슬람계 왕조를 계승하는 입장이다.
  • [14] 다만 아직 둘 다 보유하기는 했어도 투사력은 둘째치고 위력이 확실한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 상황이다. 특히 인도는 어떨지 몰라도 파키스탄은...
  • [15] 엄밀히 말하면 이미 반석에 오른 인도의 통치보다는 '인도의 국경선을 보장', 즉 영국이 병합한 지 얼마 안 된 미얀마의 병합을 승인하는 목적이 강했다. 참고로 영일 동맹의 가장 본질적인 조건은 영국 제1의 적이었던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 [16] 포루스 왕이 이끄는 코끼리 군단에게 의외의 고전을 한 마케도니아 병사들은 "사실 포루스 왕은 인도의 군벌 중 가장 약한 녀석이었지! "라는 소문에 경악해 겁에 질려버렸고, 천하의 알렉산더도 끝내 부하들의 사기를 되돌리지 못하고 바빌론으로 회군한 후 병사한다.
  • [17] 세계 7~8위. 방글라데시 인구가 러시아를 능가한다. 러시아 지도와 방글라데시 지도를 번갈아 비교해보면서 놀라주자. 일부 출처에서는 1억 6500만까지도 올라간다.
  • [18] 더군다나 여기는 더 놀랄 일이 따로 있다. 바티칸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이 나라가 세계 인구밀도 1위이다. km²당 인구가 1100명에 달한다.2위가 대한민국인건 안 자랑. 대한민국은 km²당 인구가 500명 2.2배나 차이나잖아
  • [19] 세계 6위. 일부 출처에서는 1억 9천만까지도 올라간다.
  • [20] 세계 2위이며 아프리카 대륙의 모든 인구를 합친 것보다 많다. 다만 아프리카의 인구가 고속으로 증가중이라 2030년이면 아프리카가 더 인구가 많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