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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

last modified: 2015-04-07 17:51:15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야구선수(투수)
1.1. 선수 소개
1.2. 아마추어 선수 시절
1.3. 프로 선수 시절
1.3.1. 2012 시즌
1.3.2. 2013 시즌
1.3.3. 군 복무
1.4. 연도별 주요 성적
2.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3. 대한민국의 전 군인

1. 대한민국의 야구선수(투수)


LG 트윈스 No.78
이희성(李熙星)
생년월일 1988년 3월 9일
국적 대한민국
체격 185cm, 95kg
출신지 대구광역시
출신학교 칠성초-경상중-대구고-성균관대학교
프로입단 2011년 신인지명 4라운드(전체 30번, 넥센)
소속팀 넥센 히어로즈(2011)
고양 원더스(2012)
LG 트윈스(2012~현재)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57번
박성훈(2010) 이희성(2011) 조용훈(2012~)
LG 트윈스 등번호 78번
이종열(2010~2011) 이희성(2012~ )

1.1. 선수 소개

1.2. 아마추어 선수 시절

대구고 재학 시절 김건필과 함께 팀의 주축 투수로 활약했으나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다. 성균관대학교 4년 동안 62경기에 등판해 18승 5패, 1.71의 평균자책을 기록했고 세계대학야구 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도 뽑혔다.

1.3. 프로 선수 시절

그 재능을 인정받아 2011년 넥센 히어로즈의 4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퓨처스 올스타전에도 출장했으나 2군 34경기에 등판해 2승 2패 4세이브 3홀드, 5.93의 다소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1군에 오르지 못하고 입단 1년 만에 방출당했다.

이듬해인 2012년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에 입단하여 김성근 감독 휘하에서 훈련하였다. 그러다가 2012년 7월 6일, 독립구단 선수로는 처음으로 프로리그 팀인 LG 트윈스에 입단하였다.

1.3.1. 2012 시즌

2012년 7월 25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를 통해 1군에 데뷔했다. 7회말 네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2이닝 21투구수 1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였다. 처음으로 선발로 나서기 전까지 그는 1군에서 평균자책이 없었다.

10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 투수로 등판하였으나 1회를 넘기지 못하고 ⅔이닝 5실점 5자책으로 조기 강판당하고 김선규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결국 삼성의 정규시즌 우승 확정을 조공하며 패전 투수가 되었다.

1.3.2. 2013 시즌

시즌 내내 1군에 오르지 못했다. 퓨처스리그에서 역대 최다경기(56경기)를 등판했고, 북부리그 역대 최다 홀드(15개)를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군에 입대했다.

1.3.3. 군 복무


1.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12LG 트윈스 4 5⅓ 0 1 0 0 8.44 7 1 1
통산 4 5⅓ 0 1 0 0 8.44 7 1 1

2.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

이름 이희성
생년월일 1966년 5월 2일
출신지 전라북도 익산시
학력 원광대학교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9년 태평양 돌핀스 신고선수 입단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1989~1995)
현대 유니콘스(1996)
삼성 라이온즈(1997)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등번호는 태평양, 현대 시절엔 51번이었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태평양 돌핀스의 주전 외야수였다. 1991년에는 LG 트윈스로 이적한 김일권을 대신하여 주전 중견수로 활약하였다. 1군 119경기에 출장하여 93안타를 기록하였으나 타율이 0.229였다.(...) 400타수 이상을 나왔는데 테이블세터로써 출루가 좀 적은 편이었다. 그래도 그 해 도루수가 24개(91시즌 6위)를 기록하고 3홈런,3루타를 7개(91시즌 6위)를 기록하는 등 물빠따(...)였고 정명원, 최창호, 박정현, 은진을 주축으로한 짠물 야구의 투수진으로 먹고 살았던 태평양이 그 해 5위를 기록할 수 있었던 나름 테이블세터 역할을 수행한 타자였다.

1993년에도 114경기에 출장하여 1번 타자로써 임무를 수행하였으나, 여전히 낮은 0.231의 타율에 19도루라는 저조한 도루수가 아쉬웠다. 이 해 태평양 돌핀스는 0.310의 낮은 승률로 압도적인 꼴찌를 기록하고 만다...

이후 현대 시절까지 주전과 백업을 오가는 플래툰 신세를 지다가 1996년 시즌 후 자칭 푸른 피가 흐른다는 강기웅을 상대로 투수 최광훈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되었다. 하지만 강기웅이 현대 이적을 거부하여 1997 시즌 전 임의탈퇴 공시되었고, 삼성에서도 이희성은 몇 경기밖에 나오지 않았고 최광훈은 결국 1군에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이 트레이드는 구단에게 전혀 소득이 없었던 트레이드였다. 1997년 1군 13경기에만 출장하고 시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하여 선수 생활의 커리어를 마무리지었다.

여담이지만, 도루수는 많지는 않았어도 주루센스가 훌륭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는 1996년 한국시리즈 2차전 해태 타이거즈와의 광주 원정 경기에서 대수비로 들어갔다가 11회초에 해태 투수 김정수의 공에 번트를 댔는데 이 번트타구가 절묘하게도 투수와 포수 사이에 떨어져 체공 시간이 긴점을 이용하여 1루에 선착하였다. 이후 도루로 2루까지 간 다음, 바뀐 투수 이강철의 보크를 유도하여 3루로 들어간다. 타자 권준헌의 유격수 기습안타때 득점하여 현대 유니콘스가 2:1로 승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마구마구에서는 이다성이라는 이름으로 선수카드가 등록되어있다.

3. 대한민국의 전 군인


1924년 경상남도 고성군에서 출생하였다.

육군사관학교 8기 출신이다. 10.26 사건 이후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지냈다. 그러다가 12.12 쿠데타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예편되자, 정승화의 뒤를 이어 1979년 12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공식적 군통수권자인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임명했다. 그러나 사실상 전두환이 주도하는 신군부가 군지휘권을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이듬해인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이후 전국계엄사령관을 겸임하면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공식적인 지휘계통에 있었다. 이와 관련해서 김영삼 정권 때의 5.18 재판 당시 본인은 아무런 책임이 없으며 모든 것은 전두환이 주도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회의 후원자인 유학성, 황영시 장군 등과 함께 사실상 전두환과 공모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거리이다.

이후 1981년 12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고, 이후 전두환 정권 때 교통부 장관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