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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종

last modified: 2015-01-31 22:05:42 Contributors


LG 트윈스 No.107
이형종(李炯宗)
생년월일 1989년 6월 7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양천중-서울고
포지션 투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8년 1차 지명
소속팀 LG 트윈스(2008~2010, 2013~)

LG 트윈스 등번호 35번
진필중(2004~2007) 이형종(2008) 이진영(2009~ )
LG 트윈스 등번호 47번
봉중근(2007~2008) 이형종(2009) 서승화(2010~2011)
LG 트윈스 등번호 20번
서성종(2009) 이형종(2010) 박동욱(2011)
LG 트윈스 등번호 40번
김효남(2013~2014) 이형종(2014) 이승현(2015~ )

등판한 거에 비해 더럽게 많네

Contents

1. 개요
2. 커리어
2.1. 눈물의 에이스
2.2. 프로 입단과 짧은 활약
2.3. 임의탈퇴, 방황
2.4. 복귀
3. 플레이 스타일

1. 개요

LG 트윈스의 투수. 에이스 유망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우여곡절 많은 개인사로 방황하며 비운의 선수로도 꼽혔다. 방황 끝에 2013년 LG로 복귀.

2. 커리어

2.1. 눈물의 에이스

서울고 출신의 우완 투수다. 이형종은 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특급 에이스감으로 주목을 받은 재목인데, 양천중학교에서 서울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연회비 전액 면제에 장학금까지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1년 선배인 임태훈, 이병용(2007년 삼성 지명받았으나 은퇴) 등과 함께 서울고의 마운드를 꾸려 왔으나, 상대적으로 약체에 속했던 당시 서울고 전력 덕분에 성적 자체는 안습. 그러나 고3이 된 후 2007년 봄에 열린 대통령배에서 진가가 드러났다.


소속팀인 서울고를 결승까지 끌어올려 전통의 강호 광주일고를 상대로 9회 2사까지 리드를 지켜가지만 끝내 역전을 허용하며 마운드에서 눈물을 흘리며 공을 던진다.[1] 이때 붙은 별명이 눈물의 에이스.

하지만 이 대회가 끝난 뒤 우승팀인 광주일고의 정찬헌보다 먼저 LG와 계약을 체결하며 일찌감치 프로행 티켓을 거머쥔다.[2]

여담이지만 이때 대통령배 결승전의 심판은 심수창의 아버지인 심태석이다.

2.2. 프로 입단과 짧은 활약

2007년 드래프트 1차 지명자인 이용찬과 마찬가지로 4억 5천만 원(첫 해 연봉 포함)에 계약을 체결하고 LG 트윈스의 유니폼을 입지만, 부상으로 첫 시즌은 1군 데뷔도 못하고 끝낸다.[3]

그리고 2010 시즌에는 팀에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새로 부임한 박종훈 감독이 이형종을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하면서 "아직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자 이에 반발, 미니 홈페이지에 "너랑 싸우고 싶다. 1군도 2군도 가기 싫고 군대나 가겠다"는 글을 올려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이상훈이 구단에 엿먹은 일을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사건, 봉중근 2군행에 대한 봉중근의 와이프의 미니 홈페이지 쌍욕(...) 과 함께 그 해 LG의 시즌 초 3대 인터넷 전쟁(...)으로 보도되었다. 이 두 사건이 시즌 개막 후 한 달 내의 일임에 비해 이형종의 일은 개막전을 전후한 일이었는데, 같이 묶이면서 결국 꽤 오래 회자되었다. 안습.

하지만 곧 오해를 풀고 2010년 5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 5이닝 5피안타 1피홈런 2탈삼진 2실점으로 데뷔 후 첫 승리를 따내며 꽤나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뤘다. 최고 구속은 152km/h. 2010시즌 초반 박종훈 감독의 선발진 구상이 '봉중근+에드가 곤잘레스+박명환+심수창+미지의 5선발'이었기 때문에 대뜸 유력한 5선발 후보로 대두되었다. 그러나 5월 23일 두산 베어스 전에서는 4⅔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였기에 곧바로 선발자리는 꿰차지 못했다. 그 후 5선발 자리는 김광삼에게 돌아가지만 심수창이 똥같은 구위를 보이면서 선발진은커녕 투수도 아닌(...) 활약으로 완전히 이탈하여 또 선발 한 자리가 비게 되었는데 어쩐 일인지 그 이후로 선발이든 뭐든 전혀 등판을 하지 못했다.

2.3. 임의탈퇴, 방황

실은 두 번째 등판 이후 부상이 도져서 2군으로 내려가 재활조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재수술이 필요한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그런데 본인은 너무 아파서 못 던지겠다고 주장하고 구단은 믿어주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이형종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결국 또 그놈의 미니 홈페이지에 "힘들어 못해먹겠다"는 글을 올리면서 잠적해버렸다.

그리고 2010년 8월 10일 임의탈퇴가 요청되어 최소 1년간은 그라운드에 복귀할 수 없게 되었다. LG 팬들은 1차 지명 잔혹사를 다시 떠올렸다(...). 잠재력이 상당하다고 인정받았고 실제로 1군 기록이 양은 적지만 나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팀내에 이런 선수도 있어서 비교가 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형종의 재활에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안타깝다고 하였다.

이후 또 그놈의 싸이월드에 다른 운동을 시작한다는 뉘앙스의 코멘트가 올라오고 지인드립까지 합쳐져서 골프로 전향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야갤이 잠시 술렁이기도 했다.

자신의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팔이 정말 좋아진다면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스포츠조선의 기사(링크)에서 야구선수로서의 복귀가 아닌 골프선수로 전향을 하기 위해 훈련중이고 9월에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를 한다고 밝혀졌다.

그런 와중에 이번에는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와 팬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심경의 변화는 사람이라면 있을 수도 있지만 너무 생각없이 내뱉고 말바꾸고 한다고 까이기도 했다.

와중에 2011년 8월을 기점으로 박종훈 감독의 무능&혹사&삽질&안좋은 얘기 등등이 더해지며 이형종 & 서승화 등이 왜 박종훈 감독에게 반발을 했는지 동정론이 늘기도 했다.

2011년 12월 21일 복귀를 원한다는 인터뷰 기사가 떴다. 실제로 골프를 준비했었던 모양. 조브 클리닉에서 두번째 토미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4]

그 후 공익근무로 복무하였으며 공익 퇴근 후에는 류제국과 함께 몸을 만들고 있다는 페이스북이 올라왔으며, 류제국이 이형종의 멘탈을 잡아주는 훈훈한 풍경이 페이스북에 잡히기도 했다.

2.4. 복귀

팔꿈치 수술이 성공하여 이형종이 시속 150km를 상회하는 강속구를 뿌리는 모습을 본 LG는 이형종을 2013년 6월 18일에 정식 선수로 등록했다. 원래는 2014시즌에 정식선수 등록을 할 계획이었지만 차명석 코치의 요청으로 등록이 빨리 이루어졌다.

역시 빙빙 돌아(...) LG로 오게 된 류제국이 2013년에 선발로 출장하며 야잘잘을 몸소 보여주면서, 이형종에 대한 기대감도 점점 높아졌다.

그러나 2014시즌에는 신고선수로 전환되었고 시즌 중반에 김효남이 방출되면서 공석이 된 40번을 가져가게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타자로 전향한다는 기사가 나왔다.기사 타격과 외야 수비 훈련을 받고 있다고. 그리고 등번호도 다시 107번으로 바꿨다.

3. 플레이 스타일

우완 정통파 스타일이다. 데뷔전에서 보여준 152km/h 직구에서 알 수 있듯이 파워가 장점이다. 제구력도 준수한 편이나 아마추어 수준에서의 얘기이고 프로에서는 다듬어야 할 부분이 더 많이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배 결승전에서는 제구가 전혀 안 되는 모습이었는데 결승전까지 팀의 중심타자이자 에이스로서 지나치게 무리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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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패배가 결정된 뒤 운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울면서 투구. 소년만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
  • [2] 그 후 당초 당연히 연고팀인 KIA의 1차 지명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 정찬헌이 낙마함에 따라, 2006년도에 최하위(...)를 한 LG는 정찬헌마저 2차 지명 1순위로 입단시킨다. 당시 KIA가 정찬헌을 버리고 선택한 카드는 전태현.(이후 전우엽으로 개명)
  • [3] 얼핏 이닝과 투구수만 봐서는 혹사라고 보기 어려울 것 같지만, 문제는 짧은 등판 간격에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대통령기에서 무리한 후의 이형종은 그 전의 이형종과는 확연히 다른, 지친 모습을 보였다.
  • [4] 여담으로 이 당시 이형종은 한창 방황하며 욕을 먹던 시절이었고, LG의 어수선한 상황까지 겹쳐서인지 댓글들이 하나같이 험하다.(...) 네이버 뉴스 댓글창이라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