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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

last modified: 2016-07-25 22:16:13 Contributors


서태지와 아이들의 전 멤버이자 댄스 아카데미 DM SKOOL의 대표. 1967년 2월 10일[1] 생. 본명은 이상우로, 당시 잘 나가던 솔로 가수인 이상우와 동명이인이었기 때문에 이를 피해서 주노라는 가명을 쓴 것으로 보인다.[2]

1995년에 발매된 서태지와 아이들 콘서트 앨범('95 다른 하늘이 열리고)의 수록곡 중 이주노의 솔로곡인 '너희가 소망이 되어'는 그가 작사, 작곡하였으며, 이상우라는 이름을 앨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소문난 춤꾼으로 박남정, 박철우 등과 함께 한국 비보이 1세대로 분류되며, 80년대 후반부터 각종 비보이팀은 물론이거니와 인순이, 승진, 박남정 등의 유명 가수의 댄서로써 활동해왔다. 이른바 장판 갖고 다니면서 춤추던 시절이었다고.

서태지와 아이들에 발탁되기 전인 1991년 '제미니 뉴스'라는 팀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 제미니 뉴스에 대한 정보는 전무한 상태.[3]

아무튼 양현석과 함께 서태지와 아이들의 안무 담당 멤버로 발탁된 이주노는 인생의 큰 반전을 맞이하게 됐고, 4년간의 짧다면 짧은 서태지와 아이들로써의 활동을 통해 충분히 대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외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며 궁핍한 삶을 살았던 이주노로써는 인생에 큰 반전을 맞이한 셈.

그러나 이 시기 나머지 두 멤버에게 외면당하는 경향이 컸다고 하는데, 심지어 다른 지방에 행사를 갔을 때 서태지와 양현석 둘이 같은 방을 쓰고 이주노는 매니저와 같은 방을 써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마도 1967년생으로 팀내 최연장자였던 이주노를 1972년생인 서태지와 1970년생인 양현석[4]이 대우하기 껄끄러워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추측이 중론이긴 한데 진실은 본인들만 알뿐. 일단 팀 해체의 원인은 이것과 관련이 없었다고 이주노가 분명히 못을 박아놨다. 그래도 이주노가 어려운 사정에 빠진 와중에도 서태지나 양현석이 일절 도움을 주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5]

1996년부터 KBS 2FM에서 '이주노의 FM인기가요'의 DJ로 활약. 밤 10시 라디오 프로그램의 최강자였던 MBC '별이 빛나는 밤에', 그것도 초인기 DJ 이문세와 경쟁했다. 당시 수도권에서는 별밤의 인기가 단연 독보적이었으나, 지방에서는 별밤을 지역 MC가 진행했기 때문에 FM인기가요가 인기가 더 높았다.[6]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이주노는 기획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 1996년에는 댄스 그룹인 '영턱스 클럽'을 발굴 및 육성하여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비슷한 시기 역시 기획자로 전향한 양현석의 킵식스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었기에 더 빛났던 성공.

그러나 영턱스의 인기는 앨범이 거듭될수록 떨어져 3집부터 완연한 쇠락세를 걷기 시작하고, 영턱스에서 탈퇴한 성은의 솔로 1집 또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1999년에는 본격 힙합에 눈을 돌려 허니 패밀리를 발굴해내지만 역시 큰 인기를 얻진 못했다. 차라리 딴 멤버 다 내치고 리쌍만 남겨뒀더라면... 비슷한 시기 킵식스로 나락을 맛봤던 양현석은 지누션과 원타임의 히트에 힘입어 정상을 향해 치고 오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2000년에는 김준선의 프로듀싱하에 '무제의 귀환'을 타이틀곡으로 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담은 솔로 1집 '6 mill Bionic Juno'를 내놓으며 오랜만에 다시금 무대에 올랐다. 이 새끼들이! 내가 직접 나서겠다. 그러나... 이 앨범은 서태지와 아이들 세 멤버의 첫 솔로 앨범 중 제일 실패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기획자 및 솔로 가수로써의 실패는 결국 기획사가 문을 닫는 결과를 낳아버렸고 한 때 잘 나가는 가수였던 이주노는 연이은 사업 실패와 사기 등을 겪으며 40억의 빚을 떠안은 신용불량자 신세까지 굴러떨어지게 된다. 이에 뮤지컬[7] 제작이나 배우, 그리고 스타 골든벨 고정 게스트 출연 등 이리 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며 2009년 결국 빚을 다 갚긴 갚았다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40억을 다 갚는 것을 보면 그 역시 능력자다. 지금은 웨딩홀 및 댄스 아카데미를 경영하며 살림이 안정된 것 같으니 다행.[8]

2011년에는 SBS 플러스에서 '90년대 톱가수들의 재기'라는 컨셉으로 방영된 리얼리티쇼 '컴백쇼 톱10'에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참고로 같이 출연한 이들은 조진수[9], 김성수, R.ef, 김정남, 구피, 리아, 김현성, 클레오 등등 듣기만 해도 절로 아련해지는 이름들.


또한 2011년에는 마흔다섯의 나이로 자그마치 23살 연하의 여자친구 박미리와 혼인신고를 하여 화제가 되었다. 장인과의 나이 차이가 불과 4살, 장모와의 나이 차이가 불과 2살(...)#로 거기에 혼전임신이라 그야말로 도둑 중의 상도둑. 게다가 이주노가 서태지와 아이들 1집 활동을 할 때 박미리는 갓난아기였다. 아직도 장모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결혼식은 2012년 9월에 성대하게 치뤘으며 서태지도 이주노 부부에게 축하의 화환을 보냈다고 한다.2012년 딸 이재이의 탄생과 함께 아버지가 되었다. 방송에서 장모가 만나주지 않는다는 식으로 불쌍함을 자주 어필하며 장모를 압박한다는 식으로 있어 까이는 측면도 있다.

2012년 결혼이 임박하면서 서태지에 대한 언플이 약간 있었는데, 워낙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이주노를 뺀 나머지 두명의 존재감은 한국 연예계에서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그냥 저냥 묻혔다. 서태지와 있는 친분은 다 과시하는데 정작 연락처는 모른다며 서태지의 부모도 모를것이라 했다. 하지만 8집때 서태지의 텔레비전 활동을 보면 알겠지만 이외로 활동중이지 않을때 조용히 살면서도 친한 사람들과는 잘 논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서태지와 양현석은 실제로 친했고, 그 둘과 이주노의 관계는 친하지 않고 아마 철저히 사무적인 관계라는게 중론이다.

그리고 양현석이 힐링캠프에 나왔을때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당시에 수익배분을 공개했는데 당연히 서태지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양현석은 이에 대해 작사와 작곡을 서태지가 했으니 서태지가 많이 가지는게 당연하다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이주노는 상당히 뒤끝있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2014년에 서태지의 평창동 자택에서 부부 동반 모임을 가졌다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 사이가 나쁘다고 보긴 어렵다. 그냥 서태지의 성격이 히키코모리라서 이상한거다
http://www.wowtv.co.kr/newscenter/news/view.asp?bcode=T30001000&artid=A201404170310

늦게 얻은 딸이 애지중지한지 방송에서 딸바보 모습을 보인다. 2013년에는 아들 이산희를 낳았다. 가끔 세바퀴분좋은 날 같은 프로에 출연해서 근황토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2015년 3남매!의 아빠가 되었다.23살의 나이차에 3남매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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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처음 데뷔때는 1969년생으로 프로필 등록되었다.
  • [2] 실제로 가수 이상우의 히트곡 중 하나인 '그녀를 만나는 곳 100미터 전'의 안무를 가르쳐 주었다.
  • [3] 80년대 중반 잠시 관심을 끌었던 '골목길'이라는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는 이재민이라는 뮤지션의 프로젝트였다는 정도로만 언급되고 있다. 참고로 '골목길' 발표 당시 백댄서 중에 박철우가 있다.
  • [4] 게다가 서태지와 양현석은 팀 결성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다.그런데 이주노와 앙현석도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 이전에 같은 댄스팀에 소속되어 있어 면식이 있었다.
  • [5] 일단 이주노는 자존심 때문에 서태지나 양현석한테 손을 벌릴 순 없었다고 해명했다.
  • [6] 당시에는 밤 10시에 지방에서도 2FM을 릴레이하던 시기였다.(2001년 가을 개편 후 사실상 1FM화됬다.) FM인기가요는 2001년 KBS 제2라디오로 이전했다가,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7] 주로 논버벌 퍼포먼스라 하여 대사없이 동작과 율동만으로 이끌어나가는 뮤지컬을 맡았다.
  • [8] 그 이전에 팝핀 현준, 허니패밀리 출신의 MC주라 등과 Asian이란 프로젝트를 기획했으나, 역시 보기 좋게 말아먹었다. 양현석이 자신의 솔로를 말아먹었어도 YG패밀리라는 거대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것을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릴 뿐이다.
  • [9] 과거 ZAM 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