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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군

last modified: 2018-09-29 08:33:2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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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No.78
이상군(李相君)
생년월일 1962년 4월 21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학교 청주중 - 천안북일고 - 한양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5년 드래프트 1차 지명
소속팀 빙그레 이글스 / 한화 이글스(1986~1996,1999~2001)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생활
3.1. 한화 감독 대행
3.2. 감독대행 사퇴 후
4. 역대 기록


1. 개요

선수시절엔 KBO 역대 최고의 제구력 본좌, 이글스의 원조 에이스
코치시절엔 상군매직[1], 사람만 좋은 무능력한 코치의 표본, 최고위급 칰무원[2]
그러나 감독대행 시절엔 온갖 조롱을 감수하며 팀 재건의 기반을 쌓은 숨은 일꾼

한국야구인. 현역 시절의 등번호는 18번.

2. 선수 시절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아버지인 故 김종희 회장이 천안 북일고에 야구부를 만든 후 에이스를 찾다가 청주중학교에서 두각을 드러내던 이상군을 발견, 이상군을 북일고로 데려올 것을 직접 지시하고 상당한 돈과 노력을 쏟아 북일고로 스카우트해왔다. 엄청난 자금을 투자한 것 뿐만이 아니라 형들의 직장까지 책임지는 흠좀무한 조건으로 스카우트 해왔다고 한다.

(출처 : 포토로)
그의 프로 데뷔 시절

(출처 : 포토로)
한화 이글스 초기 시절

이후 이상군은 천안북일고를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어 그것에 보답했고, 김종희 회장이 사망한 뒤 아들인 김승연 회장이 바톤을 이어서 대학을 졸업한 이상군을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멤버로 불러들였다.[3] 이상군은 바로 두각을 드러내 팀의 에이스로 등극한다. 즉 이글스의 초대 에이스이다. '컴퓨터 제구력'이라 불릴 정도로 정교한 제구력이 특징[4]이었으며 1986년에는 3경기 연속 완봉승과 '48과 1/3이닝 연속 무사사구' 기록을, 1987년에는 7경기 무사사구 경기 기록을 세웠을 정도였으며, 혹사로 인해 1990년대 이후로는 에이스자리를 송진우를 비롯한 후배들에게 내줄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이후로도 이글스의 투수진(주로 불펜진에서)의 한 축을 맡았다. 1996 시즌 후 은퇴하고 코치직 수행 중 1999년에 다시 플레잉 코치로 복귀하여 한용덕, 김해님[5], 구대성과 함께 불펜진의 한 축을 맡으면서 빙그레 시절 못 봤던 우승을 보게 되었고 2001년에 은퇴했다. 1999~2001년은 플레잉코치(1군투수코치)였는데, 선수 겸 코치인지라 다행히 이 시기 망가뜨린 선수는 없었다.

여담이지만 역대 KBO 최다패 공동 8위이다. 그런데 이때 방어율이 2.63 흠좀무. 86년에 기록했는데 방어율이 저 정도면 당시 강팀에 있었다면 15승도 가능할 수치였다. 86년의 빙그레는 창단팀으로 최약체였기 때문에 패전이 많았던 것... 2할대 승률을 찍으면서 무난히(?) 당시 꼴찌였던 7위를 했다.

심판들이 스프링캠프를 차려서 스트-볼 판정훈련을 할 때 이상군을 불러 미리 약속해둔 로케이션으로 공을 던지게 하고 그 판정기록을 가지고 심판들을 훈련시킨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하일성이 그에게 붙인 별명은 심판 훈련용 선수...#

창단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약체팀이었던 빙그레의 마운드를 지탱했던 선수였으며, 86년 같이 데뷔한 동갑내기 한희민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뤄 마운드에서 버텨주면서 빙그레 이글스라는 팀은 빠른 시간 내에 강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만큼 선수 이상군은 이글스의 역사에서 손꼽히는 투수이다.

통산기록으로 봐도 15시즌(97,98은 코치직 수행으로 제외라 실질적으론 13년)동안 320경기 100승 77패 30세이브 62완투[6] 10완봉 1411.2이닝 방어율 3.30으로 엄청난 투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3. 지도자 생활

선수생활을 마치고 코치로 새 인생을 시작한 이상군은 맡는 팀의 투수진을 전부 개발살을 내는 위업을 발휘했다.이 당시 LG 감독은 이순철.... LG 트윈스로 이적한 뒤 LG투수진을 박살내놓고 한화로 돌아온 뒤 한화 투수진도 박살내버렸다.(...) 특히 선수시절 주특기였던 '컨트롤'을 전혀 후배 투수들에게 가르치지 못하고 오히려 구위만 떨어뜨리는 최악의 결과만을 잇따라 선보였다. 이쯤 되면 선수 시절에 '후배 투수들을 제물로 삼아 컨트롤을 올리는 악마와의 계약'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지경.[7]

한화에선 한용덕 코치가 1군 코치에서 김인식 감독과의 충돌로 인해 2군으로 밀려나자 대신 1군으로 올라왔는데 한용덕 코치가 있었을 당시에 상위권이던 방어율이 꼴찌로 급추락해버리며 큰 대비를 보여줬으며, 이 때 용덕매직과 대비되는 단어인 '상군매직'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상군매직 - 1년차: 약간의 제구력 상승과 급속한 구위하락, 2년차: 제구력 하락, 3년차: 시 to the 망[8] 대표적인 상군매직의 피해자론 유원상이 꼽힌다. 이후 선배투수의 은총으로 어찌어찌 버텨나갔지만, 결국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된 후 2012년에 반짝했으나 2013년에는 정작 팀의 비밀번호 탈출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했다.

2009년 꼴찌를 할 때까지 팀에 꾸준히 머물러 있었고, 이 덕분에 팀의 최강 파벌인 북일고 출신에 북일고 출신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케이스라 북일고 파벌의 수장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에 북일고 파벌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다. 다만, 이 라인이 없었다면 같은 북일고 출신이었던 한용덕 코치가 부활할 기회도 잡지 못했을 거란 아이러니는 있지만...[9]

결국 2009년 하반기에 한화 이글스 2군으로 내려가고 이후 프런트로 이동, 잠시 이인영 대리와 함께 스카우터로 일하다가 다시 2군 재활군 투수코치로 복귀했다. 다만 유창식의 등판경기에 이인영 대리와 함께 모습을 나타낸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 걸 보면 둘 다 같이 업무를 봤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2001년 이후로 한화의 스카우터진을 진두지휘했던 2011년 김정무 운영팀장이 사퇴하고, 그 후임으로 부임. 핼리코상군 살아서 장까지 이제 단장까지 얼마 안 남았다

이상군 본인의 성격은 온화하고 주변의 평가도 좋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성격 때문에 코칭에서도 선수에게 터치를 안해서 코치로서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게 문제라는 이야기가 많다.(...) 그래도 조정훈 멱살 잡아놓고 가까이 와서 말 들어라고 언플한 양상문을 보면.......

과거 빙그레-한화의 대투수로 명성을 날렸음에도 다른 야구선수들의 항목이 많이 작성된 이후에야 항목이 작성된 것만 봐도, 코치가 된 후의 그의 실적과, 그로 인해 자신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정말 사람은 참 좋으신 분(...)인데 지도자로서는 빵점이라는게 중론. 송신영 영입 건으로 그나마 코칭스텝만 아니면 된다는 말도 있었지만, 송신영의 먹튀화와 그의 손을 거친 것으로 알려진 용병 투수들이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스카우트로서의 자질 역시 최악임이 입증되었다. 선수 생활 빼곤 야구는 안하시는게...

한화의 장점이라고 하는 레전드에 대한 대우의 어두운 면을 잘 드러내는 사례.

김응룡 감독의 부임 이후에도 용케 잘리지 않고 살아남았다.(...)[10] 정말 질기다... 동시에, 한화 2군은 '시신 안치소' 유력...

2014시즌부터는 육성군 총괄 겸 투수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팬들은 거품을 물며 경악하는 중. 유망주들 망했어요 심지어 2014 시즌 후 한용덕, 이정훈과 같이 차기 감독 후보로 경합 중이라는 어용성 기사가 나오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차기 감독으로 선임되는 여부와 관계없이 짤릴 가능성은 제로라고 볼 수 있다. 하기사 故 김종희 회장이 직접 데려온 인물 + 김종희 회장 장례식에서 관을 들었을 정도로 회장 가족과 가까운 사이(!) + 김승연 회장의 술친구라는 시너지가 합쳐 절대 잘릴 리 없는 인물 중 하나이니 팬들은 그냥 단념하는 게 좋을지도...

결국 김성근 감독 취임 후에도 김재현, 김정준 등 김성근 사단 코치진이 취임하고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코치칰무원들이 잘려나가는 가운데[11] 끝까지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인물이 되었다. 팬들도 차라리 사람은 좋으니 현 자리에서 만족하고, 1군 요직에만 앉는 일이 없기만 바라는 상황. 한화 이글스의 팬들에게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이상군은 단지 코치로서의 능력이 부족할 뿐이지 명예욕/권력욕이 심하거나 딱히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 팀 케미스트리를 망가뜨리거나 감독의 팀 장악을 방해할 성격은 아니라는 평이 많다는 것.

이러한 추측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이상군은 한화그룹의 전대 회장이 직접 손을 써서 데려왔고 현 회장의 술친구인 동시에 전대 회장의 장례식에서 관을 운구한 4명 중 1인일 정도로 오너 일가와의 친분이 각별한 인사이다. 본인이 마음만 먹었더라면 SK의 신영철이나 민경삼, 두산의 김태룡, 요즘 핫한 롯데의 배재후, 이문한, 공필성 같은 인물들은 애교로 보일 수준의 막장 깽판을 부리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그런 적은 없다. 선수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은 몰라도 선수단과의 불화, 직접적인 갈등/마찰을 빚은 적은 없다는 것. 때문에 1군 요직이 아닌, 직함은 거창하지만 실권은 거의 없는 사실상의 명예직 정도로 타협하면 딱히 팀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 타입이므로 어찌어찌 감수하고 안고 갈 수는 있는 부류의 사람이긴 하다. 일단 2015년 보직은 육성군 총괄만 맡고 투수코치는 이정호로 확정되었다.

3.1. 한화 감독 대행

2014년 시즌 종료 직후 부임한 이래 여러가지 구설수를 일으켰던 김성근 감독이 2017년 5월 23일에 결국 경질되면서 2017 시즌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당초엔 김광수 수석코치가 물망에 올랐으나, 김성근 감독 경질 직후 김광수 수석 코치도 사의를 표명하여 연공서열에 따라 이상군 코치가 감독 대행이 된 것. 이상군 코치가 감독 대행이 됨에 따라 1군 투수코치에는 정민태 투수코치가 1군 투수코치로 올라왔다. 근데 정민태도 투수들 손 보는 데에는 영 소질이 없는 작자인데...

KBO 최장기간 감독대행으로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판단미스를 거치며 외부로부터 수많은 비난과 조롱을 들었고 팀의 최종 순위도 8위에 그쳤으나, 이 기간 동안에 유망주들을 과감히 기용하여 이듬해 시즌에 팀이 반등할 수 있는 기반을 물려주었으며, 특히 김성근 감독이 떠난 팀은 (투수진 붕괴로) 팀 평균자책점이 폭등하는 징크스까지 최초로 극복하는 숨은 업적을 일궈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전임 감독과 달리 제대로 된 지원 하나 못 받은 상태에서 일궈낸 업적이었다.

3.2. 감독대행 사퇴 후

2017 시즌 종료 후 정식 차기 감독 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본인은 자신이 감독의 그릇이 아님을 자각하고 있었고, 결국 2018시즌 차기 감독은 한용덕 전 두산 수석코치가 선임된다. 감독대행 사퇴 후에는 이글스 연고지의 고교들을 돌며 고교선수들에게 지도를 해 주었다.

4. 역대 기록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6 빙그레 이글스 35 243⅓
(3위)
12 17 1 - 0.414 2.63 216 17 54 104
(5위)
88 71 1.064
1987 33
(4위)
246⅔
(1위)
18
(2위)
11 2 - 0.621 2.55
(5위)
233 13 62 85
(5위)
83 70 1.155
1988 38
(2위)
135 10 3 16 - 0.769
(2위)
2.40
(4위)
120 7 25 47 38 36 1.052
1989 27 140⅓ 16
(3위)
5 3 - 0.762
(3위)
2.57 138 9 38 74 45 40 1.240
1990 19 86⅓ 6 4 0 - 0.600 3.13 91 5 25 30 35 30 1.332
1991 9 12⅓ 3 2 0 - 0.600 13.86 36 2 21 20 25 19 4.459
1992 29 96⅔ 10 2 2 - 0.833
(2위)
3.82 89 12 40 55 46 41 1.252
1993 29 128⅓ 7 7 3 - 0.500 2.52 115 5 49 51 41 36 1.223
1994 한화 이글스 21 107⅔ 6 7 1 - 0.462 4.26 116 4 39 46 59 51 1.375
1995 21 97 6 8 1 - 0.429 4.73 106 11 43 43 56 51 1.485
1996 9 23⅔ 0 3 0 - 0.000 8.75 35 5 15 11 26 23 2.028
1999 30 57 5 5 1 - 0.500 4.42 59 6 16 38 34 28 1.281
2000 10 30⅓ 1 2 3 0 0.333 4.75 32 6 8 15 19 16 1.253
2001 10 7 0 1 0 1 0.000 7.71 10 2 8 3 6 6 2.571
KBO 통산(14시즌) 320 1411⅔ 100 77 30 1 0.565 3.30 1396 104 443 622 601 518 1.259

완투, 완봉기록
년도 완투 완봉
1986년 19완투
(1위)
4완봉
(3위)
1987년 24완투
(1위)
3완봉
(3위)
1988년 3완투 1완봉
(8위)
1989년 7완투 1완봉
1990년 0완투 0완봉
1991년 0완투 0완봉
1992년 0완투 0완봉
1993년 5완투 1완봉
1994년 3완투 0완봉
1995년 1완투 0완봉
1996년 0완투 0완봉
1999년 0완투 0완봉
2000년 0완투 0완봉
2001년 0완투 0완봉
통산 62완투
(10위)
10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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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아래에 서술하겠지만, 물론 안좋은 의미이다.
  • [2] 사실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다른 칰무원과는 달리 그룹 고위층과 친밀한 관계이니... 기업 위주로 돌아가고 있는 한국프로야구에서도 이 정도로 구단/모기업 고위층과 친밀한 관계를 가진 선수는 극히 드물다.
  • [3] 이 때의 인연으로 지금도 김승연 회장의 술친구라고 한다. 게다가 김종희 회장이 사망했을 때 일가족과 함께 운구까지 했다. 이러니 구단에서 짜를 수가 없지...
  • [4]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일구회와의 경기에서도 등판했었는데, 선수에서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칼같은 제구력을 가지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전성기에는 홈플레이트에 10원짜리 동전을 놓고, 그걸 맞췄다는데... 이건 믿거나 말거나 수준인 듯?
  • [5] 이 선수에 대해 언급이 없는 게 아쉽다.커리어와 포텐셜이 눈에 띄는 수준은 아니지만 배번은 58번으로 97년 데뷔, 이후 불펜과 선발진을 오가면서 무너져가는 이글스 투수진의 희망이 되어주었던 선수이며 99시즌 우승의 주역 중 한명이기도 하다. 01~03시즌 부상으로 날려먹은 것을 제외한 04~07시즌 성적은 좋은 편이고 특히 05~07시즌에는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특히 05시즌에는 선발진을 담당하면서 좋은 성적(5이닝 페드로라는 애매한 별명이 있었지만)을 보여주었고 이후 최영필과 함께 셋업 및 계투로써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으나 훈련태도 불성실 및 김인식 감독과의 불화로 결국 선수생활을 접게 되었다. 잘 던졌을 때는 선동렬햇살쇼 혹은 햇님투구, 햇살투구라는 별명을 가졌던 프랜차이즈 투수이며 은퇴 후 서울 해치 투수코치로 재직하고 경북고 투수코치로 재직하였다가 롯데 자이언츠의 스카우트군으로 활동중이다. 통산성적은 통산 11시즌 4.84 21승23패 5세 10홀 537.1이닝.
  • [6] 대부분이 86~89년에 이뤄낸 거지만...
  • [7] 그와 관련된 도시전설로 LG투코시절 어떤 유망주가 이상군에게 제구력을 잡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자 이상군은 자신의 현역시절 비디오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비디오 보고 뭘 어쩌라고? 선수 시절 자신의 투구폼을 참고하면서 답을 찾자는 의미였겠지만...
  • [8] 제구를 잡기 위해 팔스윙을 느리게 가져가니 구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팔스윙을 느리게 가져가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당장 잡힌 듯하던 제구도 시간이 지나면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와중에 몸상태도 느리게 던지는 데에 익숙해지면서 구속도 당연히 떨어지고,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 [9] 하지만 한화에 실제로 북일고 파벌이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는 확인된 적이 없으며, 다른 구단 사례를 가지고 추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 실제 이상군은 감독 제의를 받은 적이 있으나 자신은 감독감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이와 관련해 당시 김상국 북일고 감독이 이상군의 한화 감독 취임을 기정사실화하고 북일고 감독직을 버렸다는 설이 있었으나 사실은 사생활 문제(도박)가 드러나 해임된 것이었다.
  • [10] 감옥에 계시긴 하지만 김승연 회장의 술친구라는 위의 글을 생각하면 짤리는게 더 이상한 걸지도...
  • [11] 김응룡 사단에서는 김종모, 이종범, 오대석, 이선희, 신용균이 해임되었고, 프랜차이즈 스타칰무원들 중에서는 송진우, 강석천, 조경택이 해임되었다. 그나마 잔류에 성공한 게 장종훈, 이상군, 정민철, 이정훈, 신경현, 임수민인데, 정민철은 10월 30일에 스스로 재계약을 포기했고, 장종훈도 이종운 감독의 부름을 받아 롯데로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