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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last modified: 2019-08-29 03:44:06 Contributors




LG 트윈스 No.18
이동현(李東炫)
생년월일 1983년 1월 12일
출신지 경상남도
학력 서울영일초 - 서울영남중 - 경기고등학교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드래프트 1차 지명
소속팀 LG 트윈스(2001~2019)
등장곡 Taio Cruz - Higher

2014년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퍼펙트 피쳐 우승자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이동현(LG 트윈스) 2015년 우승자

LG 트윈스 등번호 18번
이정길(1998~2000) 이동현(2001~2019) 현역

Contents

1. 소개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2.2. 프로 입단
2.2.1. 2001 시즌
2.2.2. 2002 시즌
2.2.3. 병역비리와 부상
2.2.4. 복귀
2.2.5. 2011 시즌
2.2.6. 2012 시즌
2.2.7. 2013 시즌
2.2.7.1. 포스트시즌
2.2.8. 2014 시즌
2.2.9. 은퇴
3. 플레이스타일
4. 연도별 주요 성적
5. 기타

1. 소개

LG 트윈스의 투수. 방출된 서승화, 김상태와 함께 LG트윈스의 암흑기를 그대로 보여 주는 투수. 다만 김상태, 서승화는 그냥 암흑의 상징이라면, 이동현은 암흑기를 견뎌낸 산 증인이다. 애초에 저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이동현에겐 실례다.

그리고 이병규, 박용택과 함께 2000년대 LG 트윈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선수 중 하나
-2013년 10월 5일, LG 트윈스가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지은 날의 최훈 카툰 中-
두 캐릭터는 LG에 입단해 마지막 가을야구를 보고 11년 동안 한팀에 있으면서 암흑기를 보낸 인간문화재 박용택과 이동현이다.

2. 커리어

2.1. 아마추어 시절

중학교 때까지는 외야수였지만 경기고등학교 입학 후 투수로 전향했다. 경기고등학교의 야심찬 야구명문 부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학하게 됐는데, 언더핸드에서 정통파 오버핸드로 투구 폼까지 교정하면서 곧 전국 레벨의 투수로 성장하게 된다. 고2 때인 1999년에 박찬호 야구 장학금도 받았다. 이동현의 원맨팀이나 다름없던 경기고등학교는 그가 3학년이던 2000년,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100년만에 메이저 대회 우승의 숙원을 풀었다. 이동현은 이 대회에서 MVP와 우수 투수상을 차지했다. 같은 해 대통령배는 준우승을 차지했고 여기서는 뜬금없이 타격상(..)을 받았다. 12타수 6안타로 타율이 5할이다(..) 대통령배가 먼저 열렸는데, 여기서 우승했다면 혹사를 피할 수도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배에서 추신수가 이끌던 부산고등학교에 패하면서 준우승, 그래도 기어이 신일고등학교를 누르고 황금사자기를 우승했다. 참고로 이 때 신일고 멤버가 채병용이다. 이 때는 타자였지만.

한편 경기고등학교는 메이저 대회 우승을 위해 유망주들을 대거 수집했는데, 이동현과 함께 대표적인 선수가 본래 한서고등학교의 간판 투수였던 오승환이다. 그러나 승승장구한 이동현과 달리 동창인 오승환은 고2 때의 부상으로 점차 퇴보하게 되고 결국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채 단국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오승환단국대학교에서 수술 후 재기에 성공하여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면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낸 2005년은, 이동현에게는 흑역사였다. 그리고 오승환이 2008년 이후 알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진 사이, 이동현은 성공적으로 재기하여 LG 불펜의 핵심으로 자리잡는다. 결과적으로 얘들은 2010년경까지 같이 잘 나간 적이 없다. 시소놀이 그나마 2011년 이후로는 둘 모두 준수하게 활약했다.

2.2. 프로 입단

연고 구단이 둘인 탓에 LG와 두산이 경쟁했지만 지명 직전 LG가 이동현과 3억 계약을 따냈고, 두산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LG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잠실벌 돈지랄의 역사가 그리고 이 때부터 양 팀이 주사위로 1차 지명 우선권을 획득하던 관례가 사라지고, 먼저 돈질로 선수를 확보하는 팀이 이기는 방식이 되었다. 그리고 휘문고등학교의 황규택을 1차 지명한 두산은….

2.2.1. 2001 시즌


아무튼 2001년 LG 트윈스 소속으로 프로 무대를 밟게 되었다. 당시 LG 트윈스는 양준혁, 이병규, 김재현의 막강 클린업 트리오FA홍현우를 데려오고 한화의 검증된 외국인 선수 로마이어까지 영입하면서 막강 타선을 구성하였다. 반면 투수력은 김용수가 2000년을 끝으로 은퇴했고 장문석, 최향남, 최원호가 모두 전력에서 이탈하면서[1] 선발진이 극히 약화된 상태였다. 2010년은 데자뷰였다 아니 사실 그 이후로 쭉 그러고 있다 이동현으로서는 고졸 신인이지만 강하게 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2001 시즌 개막전 선발 출장을 포함하여 총 33경기에 출장했고 그 중 19경기에 선발 투수로 출장했으며 최종 기록은 4승 6패 평균자책점 5.37 이었다.[2]

2.2.2. 2002 시즌

한편 2001 시즌 초반, 2할대의 승률을 기록하자 이광은 감독이 해임되고 감독대행을 거쳐 후임으로 2군 감독[3]이었던 김성근 감독이 2001 시즌 후 정식 임명된다. 개판 5분 전인 팀을 중도에 맡았으나 닥치고 신윤호만 패서 팀을 추스려 6위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그 김성근 감독의 지도하에 이동현은 2002년, 2년차 징크스 같은 것은 없다는 듯 대활약한다. 2002 시즌에는 신윤호가 부진하자 마무리 투수로, 이상훈이 돌아오자 중간계투로 활약하는 등 전천후 불펜으로 뛰면서 8승 3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67을 기록했다. 특히 78경기는 2002시즌 팀내 최다 출장 기록이었다. 이런 이동현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서 2002년 LG에는 리그 방어율 10위권 내의 투수가 단 한 명도 없었지만 팀 평균자책점은 리그 3위를 기록했고, 4위로 턱걸이한 포스트시즌에서는 한국시리즈까지 내달렸다. 그리고 2002년 한국시리즈야신으로 대표되는 명승부였다. 특히 이 포스트시즌에서 이동현의 활약은 눈부셨는데, 진통제를 맞아가며 위기상황마다 등판하면서도 10경기 3승 평균자책점 1.99로 역투했다. 그리고 이동현은 이 때의 활약으로 영구까임방지권을 획득했다.

2.2.3. 병역비리와 부상

2003년에는 새 감독 이광환에 의해서 선발로 전환하였으나 33경기 4승 10패 평균자책점 4.05의 그다지 좋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2004년에는 이상훈이 새 감독 이순철과의 마찰로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 되고, FA로 영입한 진필중의 부진으로진필패는 나의 원쑤 다시 마무리를 맡아 48경기 1승 3패 12세이브 평균자책점 2.87로 합격점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2004년 9월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이동현도 연루되어 불구속으로 입건되었다. 그리고 이진영, 이호준 등이 그랬듯이 역시 입영 연기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국 패소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그리하여 2005년 말부터 2006년 5월까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다.

다시 시계를 돌려서 2004년, 마무리로 던지다가 8월쯤 해서 팔꿈치 부상으로 2군에 내려갔는데 이때부터 장장 5년의 끔찍한 수술 재활 사이클이 시작된다. 물론 입단 직후부터 약 3년 반을 무자비하게 굴러다녔던 것이 사실이지만 누가 봐도 가장 영향이 컸던 건 2002년의 다소 무리했던 투구였다. 때문에 아직도 김성근 감독의 혹사 논란에서 이름을 찾을 수 있고, 또 그 혹사가 무의미한 혹사가 아니라 LG 팬들에게 가장 최근으로 남아있는 한국시리즈의 기억(...)에 대한 공헌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대다수의 LG 팬들이 이동현을 까지 못한다. 심지어 블론해도 이동현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나왔다. 아무튼 2004년 12월에 첫 번째 토미존 수술을 받았는데 새로 오신 감독놈8개월만에 그를 실전력으로 써먹기 위해 무리한 재활을 지시, 결국 정작 써먹지도 못했는데 또 팔꿈치가 아작난[4] 이동현은 겨우 1년만에 2번째 팔꿈치 인대 수술[5]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그 감독놈이 남긴 말이 압권이었다. 재활은 마운드 위에서 하면 된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말인가! 앞에서 언급한 공익근무는 이 수술을 받은 직후 시작했고, 결국 6개월만에 소집 해제되었다(..) 그 뒤 2007년 1월 LG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하여 훈련을 시작했는데 인대가 또 늘어났다(.....) 이 때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지만[6] 주위의 도움과 그 자신의 굳은 의지로 결국 2007년 11월에 두 번째 토미 존 수술을 받는다. 약 2년간의 재활을 거쳐 마침내 마운드에 복귀한 것은 2009년 5월 20일 광주 KIA전. 최고 구속은 138km/h, 기나긴 시련이었다.[7]

2.2.4. 복귀

2009 시즌에는 34경기에 나와 1승과 평균자책점 5.23을 기록했지만 성적 같은 건 중요하지 않고 일단은 성공적으로 복귀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다. 아니, 그냥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로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리고 2010 시즌, 셋업맨으로 활약하며 오상민, 김광수 등과 함께 LG 불펜의 필승조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시즌 초반에는 LG로서는 꿈 같은 이야기인 막강한 불펜을 형성하며 팀내 핵심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봉중근을 제외한 선발진이 이닝을 먹어주지 못하고 부진하자 곧 불펜의 부담이 심해졌고, 노장인 오상민, 이상열 등이 먼저 컨디션을 잃어가면서 이동현의 부담은 더 커졌다. 결국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페이스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여름 들어 마무리인 오카모토가 맞아 나가자 점차 마무리로 등판하는 일이 잦았고 시즌 후반 그 자신도 구위가 떨어져 김광수에게 바통을 넘기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마무리 역할도 했었다. 마치 2002년과 같은 시즌이었고 성적은 2002년에는 조금 못 미치지만 68경기 7승 3패 4세이브 15홀드 평균자책점 3.53. 뭣보다 이게 5년 재활하고 인대수술 세 번 한 투수의 성적이라는 거다. 흠좀무

오카모토가 퇴출된 2011시즌, 김광수와 함께 가장 유력한 클로저 후보군에 속해 있었다.

2.2.5. 2011 시즌

처음에 실점을 제법 한것에 비해서 갈수록 나아지는 피칭을 보였다. 4월 10일 한화전에서도 등판해 1이닝을 깔끔히 막고 2탈삼진을 기록했다. 부상 복귀의 여파인지 연투를 하면 팔꿈치가 안 좋아지지만 그래도 2경기당 1이닝씩은 막고 들어가 줄 순 있었다.

다만 못할 때는 문자 그대로 훅 가버린다는 것이 단점.

그러면서 5월초반까지 김광수와 더불어서 주자쌓는 나뭇꾼 노릇하면서 방어율이 7점대를 넘기기까지 하는 등 2010년의 많은 이닝 소화가 문제가 된게 아니냐는 말이 많았는데 그걸 감안해도 너무 긴장을 많이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5월 중순부터 구위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얻어 맞아서 문제이지만...그 사이에 평균자책점도 6.48까지 어찌어찌 낮췄다. 그리고 5월 2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1⅓이닝을 깔끔하게 막고 마지막타자는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얼마만이냐 롸켓 이 경기에서 연신 150Km/h 이상을 뻥뻥꽃고 제구도 웬일로 잘되더니만 154Km/h까지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2011년 자신의 최고구속을 경신했고 더군다나 제구까지 잘됐다. 구위를 되찾은 이동현의 향후모습이 기대될 했다.

그후 좋은 모습을 보이며 6월 7일 한화 이글스전에서도 ⅔이닝을 삼진 두개로 끝내버리며 평균자책점도 4점대 중후반까지 끌어내렸다. 그러나 6월 15일 대구 삼성전에서 아웃카운트 겨우 한개 잡고 5실점하면서 무너져버렸다.

2011 시즌 들쑥날쑥한 피칭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는 여러 지적이 있지만 대체로 2010시즌 무리한 투구가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있었다. 팔꿈치가 좋지 않은 투수가 68경기나 나와서 74이닝이나 던지게 한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는 평. 당시 LG가 일찌감치 DTD를 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종훈 감독은 너무나 자주 그를 기용했다. 여기에 시즌 초반 구속이 전혀 살아나지 않는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동현에게 2군행 등을 통해 휴식을 주지 않은 박종훈 감독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2011년 6월 28일 현재 LG가 치른 66경기 중 자그마치 30경기에 출장했으며 이닝도 26⅔이닝이나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19살 고졸신인 임찬규까지 보직도 없이 노예로 구르다가 부진에 빠지고, 김선규가 출근도장 찍으면서 혹사당하고 있는 판국과 맞물려 박종훈의 투수진 운영에 대한 많은 비판이 일었다.

다만 선수 본인 역시 예전과 달리 지나치게 긴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었다. 큰 점수 차에선 부담 없이 잘 던짐에도 불구하고[8] 박빙의 상황에선 지나친 변화구 구사로 볼카운트를 불리하게 가져가다가 얻어맞는 패턴을 보였다.

게다가 부진한 결과를 보이는 상황에서 팬들이 실망한 반응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반응하면서 일부 팬들은 서서히 까로 돌아서는 모습을 보였다.

전반기 막판 2군으로 떨어졌다가 후반기 시작과 동시에 양승진과 함께 1군에 올랐다.

아는 사람들만 아는 8월 8일 쌍마 청문회(라고는 해도 그냥 열명 남짓이 LG팀 버스 내리는데서 항의시위)에서 넘버 원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야구 빠따를 들고 나왔다...고 후기에 나와있는데 나중에 나온 현장영상의 분위기와 후기가 워낙 달라서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9]. 할 말 있으면 내 앞에서 해

시즌 최종 성적은 38경기 출전 33이닝 1승 2패 2세이브 7홀드 30탈삼진, 평균자책점 6.27로 작년에 비해 크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2.6. 2012 시즌

초반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며 퓨처스리그로 내려갔지만, 복귀 후에 유원상과 더불어 승리조로 활약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2경기 출전 56⅔이닝 2승 2패 6홀드 56탈삼진, 평균자책점 3.02를 기록하였다.

2.2.7. 2013 시즌

유원상이 부상으로 빠져 있는 가운데 팀의 중간계투로 만점 활약을 했다. 특히 5월 26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에서 스코어 0:0, 5회초 2사 만루 상황에 등판해 이재원에게 3구 연속 볼을 던져 위기를 맞았지만, 풀카운트를 만든 뒤 6구째 슬라이더로 이재원을 루킹 삼진 처리했다. 풀카운트에 몰린 상황에서 변화구를 뿌리는 배짱투로 실점 하지 않고 위기를 넘긴 것이었다.
여전히 스코어 0:0인 7회초에는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 세우는 등, 이동현은 이날 3이닝 46투구수 1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팀은 팀은 9회말에 정의윤이 끝내기 안타를 쳐서 스코어 0:1로 승리했다.

5월 30일 한화전에서는 3:0으로 지고 있던 8회초에 등판하여 김태균추승우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무사 1,2루의 위기를 자초했지만 김경언한상훈을 각각 병살타와 땅볼로 처리한 뒤 8회 팀이 놀랍게도 5득점하면서 시즌 2승째를 기록했다.

7월 5일 넥센과의 대결에서 주자 1, 3루 상황에 박병호와 승부를 펼치지만, 박병호에게 3점 홈런을 내주며 팀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다.

8월 16일까지 성적은 48경기 출전 55.1이닝 6승 무패 1세이브 19홀드 평균자책점 2.44로 LG의 필승조로서 좋은 성적을 냈다. 다만 시즌 후반 들어 타이트한 경기가 많아지면서 너무 자주 나왔다는 게 문제. 정현욱유원상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 혼자서 필승조 역할을 도맡아야 했다. 그 여파로 페이스가 떨어졌고, 그 결과 8월 28일 넥센과의 홈경기에서 8회초 1아웃에서 이택근에게 2루타를 맞은 뒤 7월 5일 자신을 상대로 홈런을 쳤던 박병호에게 또 홈런을 허용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다만 이번 시즌에 이동현은 넥센에 몹시 약했다. 다름 팀 상대로는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는데 넥센 상대로는 16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거기에 넥센의 4번타자 박병호 상대로는 5타수 5안타에 피홈런 두 개.

9월 들어 유원상이 가을전어 모드 자기 폼을 되찾으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정규시즌 최종 성적은 64경기 72이닝 6승 3패 1세이브 25홀드(2위) 53탈삼진에 ERA 3.00 FIP 3.81로 타고투저였던 2013시즌에서 리그 정상급 우완 중계투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약이 기대되었다.

2.2.7.1. 포스트시즌
10월 16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스코어 2:2인 6회초 1사 1, 2루 상황에서 선발 투수류제국에 이어 등판하여 9번타자 김재호를 더블플레이로 잡고 이닝을 끝냈다.
여전히 스코어 2:2인 7회초에 선두 타자 이종욱에게 안타, 정수빈에게 희생번트를 허용하고 이상열로 교체되었는데, 이상열이 3번타자 김현수를 2루땅볼 진루타로 잘 잡아내고 바뀐 투수 유원상이 4번타자 최준석을 상대로 내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3-유 간에 크게 원바운드된 타구를 유도했지만, 이를 3루수 정성훈이 잡지 못하는 실책을 저지르는 바람에 3루주자 이종욱이 홈으로 들어와 이동현이 실점했다.
결국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되어 팀이 스코어 4:2로 패하는 바람에, 이동현은 이날 1이닝 8투구수 1피안타 1실점 비자책점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10월 17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는 레다메스 리즈가 8이닝 무실점 호투하고 봉중근이 1이닝을 삼자범퇴로 처리하여 팀이 스코어 0:2로 이겼기 때문에 이동현은 이날 등판하지 않았다.

10월 1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3:5으로 지던 7회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유원상에 이어 5번째 투수로 나와 승계주자를 포함하여 한 점도 내주지 않고 2이닝 20투구수 무피안타 무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팀은 스코어 4:5인 9회초 1사 2루에서 안타 2개를 치고도 외야수 홈 보살을 두 차례 당하며 패하였다.

10월 2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1:4로 지던 8회말 1사 3루에서 봉중근에 이어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민병헌에게 초구만에 1타점 적시타를 맞았으나 다음 타자인 최재훈을 상대로 6-4-3 병살을 유도해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날 이동현은 0⅔이닝 3투구수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5로 패해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면서 이동현도 2013시즌을 마감했다.

이동현은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3⅔이닝 2피안타 1탈삼진 1실점 비자책점,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다.

시즌 전체를 평하자면 2009년 이후 최고의 시즌으로 평할 만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혹사를 견디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기에 2014년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2010년에도 2013년과 비슷한 경기수와 이닝을 소화했지만 다음 해에 드러누웠었다. 이 팀은 뭔 구원투수들이 죄다 격년제인 겨

정국노였던 어떤 투수의 삼성 시절, 안지만이 그의 응아를 치우다 2013년 롸켓 역할을 하다 드러누운 게 떠오를 정도로 2013년에 이동현은 심할 정도로 굴렀다.

2.2.8. 2014 시즌

해당 항목으로.

2.2.9. 은퇴

2019 시즌에 통산 7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웠고, 그 다음날인 8월 24일에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당초 구단에서는 박용택과 함께 1년을 더 선수로 활동한 뒤 은퇴할 것을 권유했으나 본인의 의사가 강해 결국 이를 존중하기로 하고, 그 대신 2019 시즌동안 1군 선수단과 동행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트윈스의 역사의 증인이라 할 수 있는 선수의 현역 생활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3. 플레이스타일

우완 정통파 오버핸드 투수로, 큰 키에서 나오는 위력적인 강속구와 낙차 큰 포크볼이 주무기였다. 그러나 부상과 수차례의 수술 이후로는 팔꿈치를 많이 소모시키는 포크볼은 거의 봉인하고 슬라이더나 너클커브 등을 섞어서 던지는 쪽으로 스타일을 변화시켰다.

LG 트윈스에 없다시피한 강속구 투수이기도 하다. 상대를 힘으로 눌러버리는 돌직구는 전성기 시절 150km/h에 육박했고, 세 번의 수술을 거친 2010년 이후 그 구속을 거의 회복했다. 더욱이 2010시즌 불펜 투수들이 하나 둘 나자빠지면서 혼자 장판파의 장비마냥 막아내야 했던 기간이 길었던터라 연투 능력도 좋아졌다. 고난이 사람을 키운다

한편, 큰 키와 빠른 구속, 묵직한 구위에서 주는 이미지와 다르게 제구력도 준수한 편이다. 다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귀한 몸이라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젠 갖다붙일 인대도 없다

넥센전에서는 재앙에 가까운 성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넥센팬들에게 생긴 별명중 하나가 넥동현(......)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1 LG 트윈스 33 105⅔ 4 6 0 0 0.400 5.37 130 15 58 51 71 63 1.760
2002 78
(1위)
124⅔ 8 3 7 6 0.727 2.67 110 13 48 106 39 37 1.227
2003 33 95⅔ 4 10 0 0 0.286 4.05 105 14 45 57 47 43 1.516
2004 48 53⅓ 1 3 12 5 0.250 2.87 46 1 27 48 18 17 1.350
2005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06
2007 1군 기록 없음
2008
2009 34 41⅓ 1 0 0 1 1.000 5.23 39 7 28 30 24 24 1.621
2010 68
(5위)
74 7 3 4 15 0.700 3.53 65 5 37 58 38 29 1.338
2011 38 33 1 1 2 7 0.500 6.27 39 3 25 30 29 23 1.848
2012 52 56⅔ 2 2 0 6 0.500 3.02 43 1 18 56 20 19 1.076
2013 64
(5위)
72 6 3 1 25
(2위)
0.667 3.00 70 4 28 53 29 24 1.319
2014 61 59⅓ 5 1 2 23
(3위)
0.833 2.73 54 2 29 38 18 18 1.264
KBO 통산(12시즌) 509 715⅔ 39 32 28 88 0.549 3.73 701 65 343 527 333 297 1.417

5. 기타

  • 별명은 롸켓으로 통일. 직구의 구위가 로저 클레멘스급인 유망주라는 의미에서 로켓보이였는데[10], 나이가 들더니 로켓청년, 로켓아저씨, 혹은 롸켓 혹은 롸켓맨. 그러나 불을 지를 때는 롸로호가 된다고 한다.

  • 존경하는 선배는 이상훈, 김재현, 박명환, 박용택LG 선배와, 재활 기간 동안 동고동락을 함께 한 김병곤 트레이너.

  • 성공한 라뱅이병규 팬이다.

  • 인터뷰 1편 2편 여기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대호와 어릴 때부터 야구를 같이 한 친구인데 2010 시즌 중 벤치클리어링 때 말다툼하고 그 이후로 서먹하다고(…) 했다.

  • 모바일게임 마구마구2013에서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은퇴선수도 아닌데 가명인 이만식으로 나온다. 그리고 같은 팀에 김상완이라는 가명을 쓰는 선수도 있다.

  • 은근히 묻히는 사실이지만 야구계의 대표적인 대두선수중 하나이다하지만 아쉽게도 좌투는 아니다. 하지만 한번 양준혁과 셀카를 찍은 적이 있는데 이때는...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11]

  • 2014년 12월 6일 결혼했다. 한편 이날 결혼식 주례와 관련한 특이한 일화가 있다. 그가 막 입단한 신인이었던 어느 날, 평소 잘 따르던 어느 투수코치에게 대뜸 "저 나중에 결혼할 때 코치님이 주례를 해 주세요" 라고 장난을했고, 당시 그 코치도 어차피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는지어우 야~~ 별 생각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코치는 다름아닌 양상문으로 세월이 흘러 진짜 결혼 때는 감독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감독이 된 양상문도 주례를 맡기로 하면서 무려 13년 간의 약속이 이루어지나 싶었지만...결혼식 당일 아침, 양상문 감독이 갑작스럽게 부친상을 당하여 급히 부산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주례는 LG스포츠 남상건 사장이 대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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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LG 사상 최고의 용병 투수 중 하나로 꼽히는 니 해리거가 남아 있었으나 결과론적으로 그도 2001년에 8승 11패 평균자책점 4.62로 부진했다. 2000년 기록은 17승 10패 평균자책 3.12.
  • [2] 한편 2001 시즌의 신데렐라는 신윤호였다. 15승 6패 18세이브 32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3.12로 3관왕(다승, 승률, 구원)을 차지했다. 거기에 골든 글러브. 참고로 그의 선수 생활 13년 통산 승수는 28승이다(…).
  • [3] 2000년에 2군 감독으로 영입되었으나 2001년 팀이 부진에 접어들즈음 수석코치로 승격.
  • [4] 첫 번째 수술 때 수습되지 못한 뼛조각들이 인대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 [5] 토미 존 수술은 아니다. 뼛조각 제거와 인대를 다시 핀으로 고정하는 수술이었다.
  • [6] 인대수술 세 번하고 복귀한 선수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실제 전 세계적으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 [7] 2013년, 정말로 토미 존 서저리를 3번 받게 된 투수가 나왔다. 바로 권오준.
  • [8] 다만, 공 자체의 위력이 떨어진 건지 7월 30일 삼성 전에선 7점 차의 큰 리드 속에서 나왔음에도 상대한 2명의 타자에게 연속 2루타를 허용하면서 바로 교체되었다.
  • [9] 영상 자체엔 이동현 관련 내용은 없다.
  • [10] LG에서 얼마 없는 우완 강속구 투수라서라는 점도 있다.
  • [11] 여담으로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아무리 이동현 머리가 커도 헬멧을 주문제작(...)하는 분과 비교하면 쓰냐는 소리까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