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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단

last modified: 2019-03-09 23:39:04 Contributors


義和團

근대 중국에서 개화를 반대하던 무술집단. 의화단 운동의 주역.[1]

Contents

1. 개요
2. 배경
3. "의화단의 난"


1. 개요

원래는 의화권(義和拳)이라는 무술을 수련하던 권법집단이었으나 개항 이후 부청멸양(扶淸滅洋 - 왕조를 받들어 외세를 물리친다)이라는 이름 아래 반란을 일으켜 열강에 대항했다. 당초에는 전형적인 반청복명 계통의 비밀결사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나, 지도층이 청나라 황실과 조정에게 포섭되면서 친청으로 방향이 선회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일본의 신센구미, 구한말의 빈당과 비슷한 성격의 조직으로, 신선조처럼 합법적인 무장깡패들이나 마찬가지인 조직. 물론 정부가 조직, 편성한 신센구미와 민간의 자원집단인 의화단은 개념이 좀 다르다.

의화단은 무술 종교적 요소가 강하게 포함되었는데, 의화권을 익히면 금강불괴 도검불침의 몸이 되어 을 맞아도 문제가 없다고 선전하고 다녔다. "총을 가진 상대라면 패왕상후권을 쓸 수밖에 없다"라는 상식은 잘못된 것이다. 의화권을 사용해서 튕겨내면 된다(…).[2]


권법 간지!...는 개뿔...

그들은 통일된 조직도, 권법도 없었다. 다만 공통점이라면 스스로를 권민(拳民)이라고 부르며 기독교를 믿는 교민(敎民)과 대적하며, 누런 황포로 머리를 감싸고 배는 붉은 색으로 가리고, 양권을 하여 신령을 몸으로 부르고, 큰 칼로 배를 내보여서 자르는 시늉을 한다든지, 로 창끝을 버티는 력쇼를 벌렸다(...) 권법을 배우면 '도창불입(칼과 창이 들지 않음)'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어디 자르고 나서 이야기해볼까 #

나이대도 10대부터 노인까지 골고루였다. 《삼국지》, 《수호지》 등에 나오는 호대장 등의 호걸들을 신봉하였으며 패왕상후권보다 더 총을 상대하기 적합한 의화권의 미신적 힘과 당시의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 신천지로 나아가자는 환상에 민중들에게 급하게 확산되었다. 이렇게 세가 커지다보니 향촌의 신사들도 이들의 물주가 되어주었다.

2. 배경

의화단의 등장은 그동안 진행된 태평천국 까지를 포함한 기독교문화에 대한 반발과 청일전쟁이후 극심해진 서양 열강의 침략, 그리고 이를 전혀 막지 못하는 무능한 청나라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다. 서양 열강의 침략으로 인한 배상금 등의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일반 백성들에게 전가된데다가 열강의 철도 부설과 내륙 항행권 획득으로 서양 물건이 해안뿐만 아니라 중국 내륙까지 밀려들고 철도와 전신, 증기선이 점차 들어오게되자 그전까지 수공업이나 범선을 이용한 운송업 등에 종사하단 사람들이 도저히 경쟁하지 못하게되고 파산하거나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것.

특히 기독교의 예배(미사)와 고해성사 문화는 "난교"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고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어 기르는 것을 영아유괴[3]로 오인하고 공격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에 포교는 허락되었으나 원래부터 그렇게 기독교에 호의적이지 않았던 청 관료들의 시각이 가세했다.[4] 백련교의 잔당도 나중에 이들에 합류했다.

3. "의화단의 난"

의화단이 산동에서 1899년에 반기독교 운동을 벌여 교회를 불태우고 선교사와 기독교인들을 살해하며 소란을 일으키고 서양 외교관들이 여기에 항의하자 청 왕조는 의화단 편을 들던 산동 순무 육현[5]을 파면하고 대신 위안스카이를 보내 이를 진압하였으나[6] 오히려 의화단이 산동 외부로 퍼져나가 중국 각지로 파급되었으며 급기야철도와 전신(외국 세력 침투의 상징) 등을 파괴하며 북경까지 확산되었다.[7] 이후 성격이 반기독교 운동에서 '부청멸양'을 구호로 내세우는 반외세운동으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의화단의 세에 혹한 황족과 대신들의 주도로 청 정부가 이들과 손을 잡으면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항목 참조.

그러나 전투 끝에 8개국 연합군은 톈진에서 청 정부와 의화단의 연합 군대를 개발살내버렸고[8], 이후 수도 베이징으로 진격해서 이를 점령했으며, 이후 신축조약을 체결하여 청을 사실상 반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민간인 살상과 더불어, 주로 청조 황실 및 귀족의 재산에 대한 대대적인 약탈이 자행되었다.

영어권에서는 의화단 운동을 'Boxer Rebellion'이라고 부르는데, 이거는 당시에 서양 선교사들이 의화단이 무술과 체조를 중요시하는 걸 보고 "권투선수(Boxer)들 같다"고 평한 데서 나왔다고 한다.

중국권법에 큰 타격을 준 사건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가끔 중국권법인들은 많은 고수들이 여기에 참가했다가 죽어버려서 비기가 끊어졌다고 둘러댄다(…) 그러니까 여하간 총은 못막는다 하지만 영화에서 황비홍은 날아오는 총알을 손으로 쳐내버린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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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두 항목은 분리되어 있다.
  • [2] 영화 《황비홍 2》에서도 백련교주가 이렇게 나온다. 의화권을 익혀서 총에 맞아도 안 죽었지만 알고보니....옷 속에 두툼한 철판을 숨겨서 총에 맞아도 안 죽었던 것. 그러나 황비홍의 발차기에 맞고 날아가 뾰족한 곳에 등이 뚫려 죽는다...
  • [3] 아이들을 유괴해서 은으로 만든다거나 약으로 만든다는 괴담이 널리 퍼져있었다.
  • [4] 여기에는 기독교에 대해 무지한 청 백성들이 이런저런 중상으로 서양 선교사나 중국인 기독교도들을 소송하면, 관리들은 항상 일을 시끄럽게 했다며 문초하면서도, 막상 기독교도들에 대한 오해를 푸는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니 "관리들이 정당하지 못하게 기독교도들을 편들고 있다"라는 오해가 더욱 퍼지게 되었다. 이는 청 조정과 지방정부, 신사층들이 반서양 감정을 부추기는데도 잘 이용되었다.
  • [5] 이 양반은 얼마안가 산서 순무로 복직해서 의화단과 함께 대대적으로 선교사와 기독교인들을 학살하고 교회를 파괴하다가 결국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입성한 이후 협상조건으로 처형당한다.
  • [6] 위안스카이는 의화단이 정말 도창불입인지 확인해보거나 총알을 튕겨내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 [7] 위안스카이가 이들을 부추겨 자멸을 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8] 당연하지만 의화권은 총을 막는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의화단에게는 매우 불행한 일이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