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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카와 세이이치

last modified: 2014-12-22 09:12:24 Contributors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1
우치카와 세이이치(内川聖一)
생년월일 1982년 8월 4일
국적 일본
출신지 오이타현 오이타 시
포지션 외야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드래프트 1순위
소속팀 요코하마 베이스타즈(2001~201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010~)

2011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MVP
와다 츠요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우치카와 세이이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요시카와 미쓰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일본프로야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소속의 야구선수.

데뷔 이후 매년 2할 8푼 이상의 우수한 타격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1루수, 2루수, 좌익수 수비가 가능하다.
센트럴리그 동네북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시절에는 무라타 슈이치와 함께 손꼽히는 간판선수였다.
...그러나 이 내용들보다 한국인들에게는 2009년 2회 WBC때 찍힌 이 짤방 하나로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성적이 눈에 안들어온다

이 덕분에 한국 내에서의 별명은 일본산 턱돌이. 사실 일본에서도 턱이 비정상적으로 길다라고 놀림받고 있으며(…) 거기서 불리는 별명은 '아고질라(일본어로 을 뜻하는 아고+마쓰이 히데키의 별명인 고질라)'. 눈도 상당히 신경쓰입니다만

고교 시절 골농양[1]에 걸려 세 번에 걸쳐 수술을 받는 등 고생을 했음에도 고교 3년 동안 홈런 41개를 쳐내며 모교의 코시엔 대회 준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그 덕에 요코하마가 1순위로 2001년에 지명해 지금에 이른다. 노력으로 성공한 말 그대로 입지전적인 타입.

2008년 0.378의 고타율로 타격왕을 수상했는데, 소속팀인 요코하마는 그 해 자신의 타율보다 낮은 승률(0.338)을 기록했다. 약팀의 비운이다. 안습.

2010 시즌 종료 후, FA 권리를 행사하여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계약을 맺고 이적했다. 그리고는 2011 시즌에도 미친듯히 치고있다. 투고타저의 시즌이라고는 믿기지가 않을정도. 2011년의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1위하는 원인이 야구의 기본 중 하나인 투타의 조합이 아주 잘 이루어진 결과이긴 하지만 타석에서 우치카와의 존재감은 미칠듯한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도 그럴만한 게 1~2점대 방어율이 넘쳐나는 사상 유례가 없는 투고타저 시즌에 3할 3푼 8리의 고타율을 찍었다.[2] 6월 말부터 7월말까지 부상으로 중간에 빠지면서 규정타석 미달로 타격 순위에서 빠지기도 했으나 시즌이 막판으로 접어든 9월 22일 규정타석을 채워서 다시 수위타자로 복귀, 결국 2위와 무려 2푼 가까운 차이를 벌리면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두번째로 양대리그 수위타자 타이틀을 획득하였다[3]. 역대 FA 최고 성공사례로 기록될 만한 대활약. 하여튼 소프트뱅크로서는 정말 좋은 영입으로 인해 타선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교류전이 끝나고부터 1위를 질주, 2년연속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참고로 소프트뱅크가 9월 17일에 매직넘버를 켰는데, 이게 우치카와 야구 인생에서 처음 경험하는 매직넘버라(...), 너무 기쁜나머지 약간 디스실언을 한게 있어서 전 소속팀인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팬들에게 포풍같이 까였다. 내용인 즉슨 아무런 긴장감이 없는데서 플레이 하는것보다, 이런 곳에서 플레이 하는게 보람이 느껴진다. 즉, 전 소속팀인 만년 꼴지 요코하마는 긴장감이 없는 팀이라는 소리(...). 물론 요코하마 팬층이 얇고 인기도 없는 팀이라 요코하마 팬들의 까임은 그냥 묻혔다(...). 오히려 우치카와의 말에 공감하며 피식 웃고 넘기는 다른 팀 팬이 더 많으니. 디스 당해도 부정할 수가 없는 요코하마만 안습(...). 이일이 있고 불과 1년뒤, 우치카와와 타격의 양대 축을 이루던 라타 슈이치마저 헹가래 치는 모습이 부럽다면서 요코하마를 떠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떠났다. 요코하마는 이제 꿈도 희망도 없어.

교류전에서도 FA이적후 처음으로 방문한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과거의 홈팀 팬들의 열화와 같은 야유를 받았지만 선제 홈런을 날려서 관중들을 침묵시키기도 했다. 요코하마는 2005년부터 통산 소프트뱅크 전에서 9승 23패의 참담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그리고 본인 야구 인생에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포스트시즌, 세이부와의 1, 2차전에서 선제 타점을 올리면서 큰 무대에서의 긴장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활약으로 승리에 공헌. 일본시리즈에서는 클라이맥스 시리즈만큼은 아니지만 중간중간에 쐐기타점 및 호수비 등으로 팀의 8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도 공헌했다.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맹타를 휘두르고 오승환에게 안타를 뽑아냈으나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하지만 교류전 MVP, 클라이맥스 시리즈 MVP에 퍼시픽리그 시즌 MVP까지 획득하면서 역대 FA 최고 성공사례중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만큼의 활약상을 보여줬다.

2012년에는 등번호를 1번[4]으로 바꾸었다. 시즌 초반에는 부진한 타격을 보여주며 팀의 하락세를 부채질했으나, 팀의 UTU와 함께 페이스를 끌어올리며 결국 5시즌 연속 3할 타율을 사수하고 157안타로 퍼시픽리그 최다안타 타이틀을 따내는 등 야구는 잘 하던 놈이 잘 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푸에르토리코와의 준결승전을 치를 때, 8회말에 결정적인 본헤드 플레이[5]를 범하며 일본의 4강 탈락에 일조하고 말았다. 그나마 눈물까지 흘리며 자책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동정은 받았다. 네덜란드한테 발렸다며 낄낄댄 모 선수는 반성해야 한다 다행히도 정규시즌에서는 180안타를 치며 198안타를 친 같은 팀의 세가와 유야에 이은 최다안타 2위를 차지하고 .316 .376 .477 OPS 853의 비율스탯을 찍는 등 여전한 안타제조기의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팀은 치바 롯데 마린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밀려 4위를 차지하는데 그쳤다.

2014년 시즌 일본시리즈에서 MVP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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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뼈에 완두콩 크기의 구멍이 생기면서 고름이 나오는 병
  • [2] 부상 직전까지 3할 6푼대의 타율을 찍었었다. 더구나 2011년이 사상 유례없는 투고타저 시즌인 점을 감안하면, 타고투저 시즌이었으면 4할도 찍었을 기세.
  • [3] 첫번째는 에토 신이치, 세리그의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2회(1964, 65), 파리그의 롯데 오리온즈에서 1회(1971) 획득하였다. 퍼시픽 리그를 평정한 재일동포 대타자 장훈(야구선수)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획득할 기회가 있었으나 놓친 적이 있다.
  • [4] 팀의 감독인 아키야마 코지의 현역 시절 등번호이다.
  • [5] 1:3 1아웃에 2루에 이바타 히로카즈가, 그리고 1루에 우치카와가 있던 상황에 사인 미스로 우치카와는 2루로 뛰는데 이바타는 2루에 그냥 머물면서 우치카와가 아웃되고 말았다. 이 당시 푸에르토리코 포수였던 야디어 몰리나가 공을 들고 2루까지 직접 뛰어와서(...) 우치카와를 아웃시켰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감독이 더블스틸과 함께 그린라이트 사인을 냈다는 말이 있다. 이바타는 낚시용으로 뛰는척을 한건데, 엉뚱하게도 우치카와가 거기에 낚여서 2루로 뛴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는것이다. 자세히 아는 위키러의 확인 및 수정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