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irected from page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E,AHRSS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last modified: 2015-04-14 19:47:33 Contributors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Central League) / 파리그
tsubakuro.png
[PNG image (Unknown)]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Tokyo Yakult Swallows)
Y-Giants.png
[PNG image (Unknown)]
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
Baystars.png
[PNG image (Unknown)]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Yokohama DeNA BayStars)
C-Dragons.png
[PNG image (Unknown)]
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Hanshin_tiger_logo.gif
[GIF image (Unknown)]
한신 타이거스
(Hanshin Tigers)
New_Carp.gif
[GIF image (Unknown)]
히로시마 도요 카프
(Hiroshima Toyo Carp)

star_man.png
[PNG image (Unknown)]
로고 마스코트 DB 스타맨[1]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Yokohama DeNA BayStars
横浜DeNAベイスターズ
구단 법인명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株式会社横浜DeNAベイスターズ)
창단 1950년
연고지 카나가와요코하마
현재 연고지로 이전 1955년
구단 연고지 변천 야마구치 현 (1950~1952)
교토 부 (1953~1954)
카나가와 현 (1955~)[2]
구단명 변천 타이요 훼일즈 (1950~1952)
타이요쇼치쿠 로빈스 (1953)
요쇼 로빈스 (1954)
타이요 훼일즈 (1955~1977)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 (1978~1992)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1992~2011)
쇼난 시렉스 (2군: 2000~2010)[3]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2012~)
홈 구장 시모노세키 구장 (1950~1952)
오사카 스타디움 (1953~1954)
가와사키 구장 (1955~1977)
요코하마 스타디움 (1978~)
2군 구장 요코스카 스타디움
모기업 DeNA
감독 나카하타 키요시 (中畑 清)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60, 1998
센트럴 리그 우승
(2회)
1960, 1998
공식 홈페이지
60년이 넘는 팀 역사에서 우승 두번이 전부다.(…) 그래도 한신보단 우승 많이 했다.

Contents

1. 개요
2. 홈구장 : 요코하마 스타디움
3. 구단 역사
3.1. 2008년 이후
3.1.1. 2008년 시즌
3.1.2. 2009년 시즌
3.1.3. 2010년 시즌
3.1.4. 2011년 시즌
3.1.5. 2012년 시즌
3.1.6. 2013년 시즌
3.1.7. 2014년 시즌
3.1.8. 2015년 시즌
4. 팀 특징
4.1. 팀이름은 베이'스타즈'인데 스타가 없어(!)
4.2. 요코하마 팬의 십계명
4.3. 기타
5. 유니폼
6. 대표적인 선수들(2014년 기준)
6.1. 감독 및 코치
6.2. 투수
6.3. 포수
6.4. 내야수
6.5. 외야수
6.6. OB
6.6.1. 투수
6.6.2. 포수
6.6.3. 내야수
6.6.4. 외야수
6.7. 팀 출신 메이저리거

1. 개요

긴장감 없는 팀 (by 우치카와 세이이치)[4]
일본판 삼미 슈퍼스타즈?[5]


팀명에 쓰는 마스코트는 오랫동안 훼일즈[6], 즉 고래를 써왔었는데 당시 모기업이 고래잡이를 했었기 때문. 하지만 고래잡이가 점점 논란거리가 되어서인지 1992년부터 베이스타즈라는 아주 일본스러운 영어로 바꾸었다. 말 그대로 요코하마 만(Bay)의 별들이라는 뜻.[7]

2011년 시즌까지 방송국인 TBS가 모기업으로서 운영해 왔으나, TBS조차도 꿈도 희망도 없는 요코하마 보다 요미우리의 경기 중계에 더 힘을 쏟아왔다. 모기업도 버린 안습 그 자체인 셈. 2010년 시즌 종료 후 구단 매각을 선언하여 유력 후보로 住生活グループ(쥬세이카츠 그룹 - 건축 관련 기업의 합동기업)이 거론되었으나, 교섭결렬로 2011년 시즌 까지는 TBS가 구단을 운영해 왔다.

결국 2011년 11월 4일, 모바일 게임 사이트 '모바게(Mobage)'이름부터가 그냥 모바일 게임이라는 뜻이다[8]를 운영 중인 DeNA(디엔에이)가 요코하마의 모기업인 TBS 홀딩스와의 매입 협상을 완료하고 구단을 인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회사 재무구조와 향후 사업계획 등의 실사를 마치고 12월 1일 구단주 회의에서 DeNA[9]의 요코하마 구단 인수를 승인함에 따라 팀 명칭은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로 변경되었다. 이에 따라 약호도 요코하마의 横에서 DeNA의 De(혹은 ディ)로 바뀌고 표기도 요코하마 DeNA[10]로 변경되었다. 랜덤 가챠 팔아서 구단 운영하는 팀. 아시아 시리즈에서 NC 다이노스와의 게임사 더비가 기대된다. 물론 요코하마 때문에 불가능하겠지만

3. 구단 역사

공식적인 센트럴리그 동네북. 센트럴리그 우승은 고작 2회(1960년, 1998년)이다. 게다가 덤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은 고사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못 나간 유일한 팀이 바로 이 팀이다. 그런데 고작 두번 진출해본 일본시리즈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2005년 창단해서 2013년 첫 일본시리즈 진출후 우승한 도호쿠 라쿠텐과 함께 아직까지 일본프로야구에서 일본시리즈에서 패한 적이 없는 유일한 구단...게다가 1998년 일본시리즈 3차전에서 패하기 전까지는 일본프로야구 12개구단 중에서 유일하게 일본시리즈에서 한게임도 진 적이 없는 구단의 타이틀을 보유하기도 했다...나름대로 흠좀무.

1950년 포경(고래잡는)회사인 다이요 어업을 모기업으로[11] 하는 다이요 훼일즈로 시모노세키에서 창단된 뒤 1953년 영화회사인 쇼치쿠가 모기업인 쇼치쿠 로빈스와 합병하여 다이요-쇼치쿠 로빈스로 이름을 바꾸고 쇼치쿠의 텃밭인 교토로 이전. 1955년 쇼치쿠가 야구단에서 손을 떼면서 다시 다이요 훼일즈로 이름을 바꾸면서 가와사키로 연고지를 바꾼다. 1978년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개장에 맞춰 요코하마시로 연고지를 옮겨 요코하마 다이요 훼일즈, 그 후 1993년 포경업에 대한 세계적인 여론 악화와 맞물려 기존의 포경업 이미지를 버리고자 시민구단을 표방하면서 팀 이름에서 기업명을 빼고 요코하마 베이스타즈가 되었다. 그 후 못나가는 팀에 쌓여가는 적자, 본업인 원양어업 및 수산물 가공업의 부진으로 지분의 80%를 보유하고 있던 마루하[12]TBS 측에 지분을 다 떠넘기면서 구단에서 완전히 손을 탈탈털고 TBS가 2011 시즌까지 단독으로 운영했다.

모기업이 고래나 잡고 오뎅이나 만들어 팔던 회사였던 덕분에 구단에 대한 지원이 빈약하여 태생적으로 센트럴리그 공인 동네북의 운명을 짊어져 왔다.

그래도 1950년대에는 모기업조차 없어서 시민들의 성금으로 운영하던 진정한 시민구단 히로시마 카프보다는 사정이 조금 나았다. 그 후 마츠다 자동차가 경영권을 인수한 히로시마가 안정된 재정상황을 바탕으로 강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반면 다이요는…. 지금은 두 팀 다 짠돌이 모기업 덕분에 하위권에서 친하게 지내는 단짝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다이요 훼일즈 시절인 1959년 리그 꼴찌를 차지한 뒤[13], 니시테쓰 라이온즈를 기적의 3연패로 이끈 명장 미하라 오사무를 감독으로 영입하여 1960년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일본시리즈에서 다이마이 오리온즈(치바 롯데 마린즈의 전신)을 4승무패로 꺾고 우승하였는데, 전년도 꼴찌팀이 다음해 일본시리즈에서 바로 우승한 최초의 경우다. 그러나 이듬해인 1961년 다시 꼴찌로 추락, 다음해인 1962년 한신 타이거즈와 치열한 우승경쟁을 한 끝에 2위로 우승을 놓친 후로는...약 40년간 하위권으로 지내왔다. 참고로 이 1962년이 한신 타이거즈가 양대리그 분립후 처음으로 차지한 리그 우승이다. 일본 제2의 도시인 오사카의 맹주이자 일본프로야구에서 거인과 쌍벽을 이루는 초절정 인기팀인 한신타이거즈보다 리그우승도 일본시리즈 우승도 먼저였다. 나름대로 흠좀무.

일본시리즈 두 번째 우승은 1998년에 나왔다. 명실상부한 베이스타즈 최고 전성기의 절정으로, 당시 일본프로야구 특급 마무리었던 사사키 카즈히로시이 타쿠로, 루 토시오, 즈키 타카노리, 로버트 로즈, 마다 노리히로, 에키 타카히로, 니시게 모토노부 등이 포진한 머신건 타선을 앞세워 두번째 우승을 차지한 것.

2ch야구판의 익명의 롯데 담당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뭔가가 잘못되어서 운좋게 우승했는데 그걸 실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팀…이라고는 하는데 이 시기의 요코하마는 강한 팀이었다. 1997~1999년 까지의 3년간이 안습의 역사로만 점철된 팀의 최고 전성기 였으며, 선발투수가 조금 약한 편이기는 했지만 머신건 타선[14][15]과 투수출신인 도 히로시 감독의 마무리 사사키 카즈히로를 중심으로 한 절묘한 투수진 운용으로 구단 역사상 유일하게 3년 연속 A클래스를 기록한 시기였다. 1997년 후반기부터 갑자기 팀이 미치기 시작, 당시 격년제로 잘 하기는 했지만 최강이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와 맞짱을 뜰 정도로 상승세를 타면서 2위로 시즌을 종료. 1990년 이후 7년만에 A클래스에 진입하더니 급기야는 1998년엔 리그 우승을 거두고, 일본시리즈에서 세이부 라이온즈마저 꺾어버리며 38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도 차지해버렸다. 리그 우승의 순간, 일본시리즈 우승의 순간. 친절한 세이부 씨[16]

1999년은 개막 초반에 비틀거려 하위권으로 쳐지는 바람에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리그의 주도권을 내주고 끝내 우승은 놓쳤지만 그래도 시즌 끝나고 나니 3위였다. 그래도 이 해 '머신건 타선'만큼은 절정에 달해서, 팀타율이 2할 9푼 4리에 달하고, 용병 로버트 로즈192안타[17], 타율 .369, 35홈런 153타점의 역대급 활약을 하는 등 절호조의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1999년 시즌을 끝으로, 팀을 더 강하게 탈바꿈 시킬 확실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바라던 선수들과의 갈등으로 자율야구를 추구하던 곤도 감독이 사임을 한 뒤, 정 반대 스타일의 관리야구의 대명사인 모리 마사아키를 감독으로 맞이한게 결정적으로 패착이 됐다. 세이부 라이온즈에서는 일본시리즈를 6번이나 우승하는 등 명감독으로 이름을 날린 모리였지만 이 팀에 와서는 그동안의 팀컬러에 맞지 않는 관리야구로 팀이 서서히 공중분해. 1999년 시즌을 마치고 팀의 기둥뿌리였던 사사키 가즈히로가 메이저리그로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3년연속 A클래스 + 우승을 경험해본 선수들의 끗발로 2001년까지는 어떻게 버티며 2년연속 3위를 차지해 5년 연속 A클래스에 성공했다. 그렇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몰락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음은 누가 봐도 확연했다. 결국은 2002년 49승 86패로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완전 몰락.

팀이 이 모양 이 꼴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역지명제가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친 90년대 후반부터 불리해질수밖에 없었던 비인기팀의 한계때문에 최고의 신인은 늘 교진과 같은 인기 구단들에게 빼았겼던 것이나, 구장이 유흥가와 가까운덕에 이기면 기뻐서 한 잔 걸치고 지면 잊기위해 한잔 걸치는 막장스런 팀 분위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코치들의 역량 부족 등이 어우러져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3.1. 2008년 이후

3.1.1. 2008년 시즌

이전부터 캐망이였지만 특히 08년 시즌부터 부터 3년 연속 연속 꼴찌를 기록하는 등 일본인에게 동네북 이미지를 다시 한번 각인시키고 있다. 특히, 2008년은 리그최고타율을 기록한 팀의 수위타자인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타율(.378)보다 더 낮은 승률(.338)을 기록. 후새드 안습.[18]

3.1.2. 2009년 시즌

3년연속 꼴찌의 책임을 물어 시즌 중반부터 원 감독인 오오야 아키히코 감독을 중간에 짤라버리는 초 강수를 뒀다...만 어차피 팀 꼬라지가 막장이라 그놈이 그놈. 결국 2010년부터 명 투수 조련사로 불리는 오바나 타카오 전 요미우리 투수코치가 지휘봉을 잡게 된다.

이해의 기록은 51승 93패로 정규시즌 우승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승차 42.5(...). 그리고 2년연속 90패초과. 1년만 더 90패 초과하게 되면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최다 기록 갱신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1.3. 2010년 시즌

2010 시즌을 앞두고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트레이드로 선발투수 시미즈 나오유키, 포수 하시모토 타스쿠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강타자 터멜 슬레지를 영입하는 등 의욕적으로 출발, 시즌 초반부터 삽질을 거듭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바닥을 깔아주며 센트럴리그 4위까지 올라가는 등 뽀록 선전했으나, 역시나 한계였던지 야쿠르트가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꼴찌로 주저앉고 말았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

감독으로 명투수코치 출신인 오바나가 감독을 맡았는데도 투수진이 전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줄곧 센트럴리그 꼴찌를 달리다가, 결국 센트럴리그 3년 연속 꼴찌가 확정되었다. 그것도 3년연속 승률 3할대. 더불어 사상최초로 3년연속 90패도 확정. 8-8-8-8을 찍은 시절의 롯데 자이언츠도 3년연속 90패는 안 했다.[19] 역시 센트럴리그 공인 동네북.

물론 투수력만 구려서 못 이긴다고 생각하면 착각. 팀타율 역시 1위와 3푼 이상이 차이나는 압도적인 꼴등을 기록했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본 게 사회인 야구에서 뛰다가 2010년 신인으로 입단한 카가 시게루. 신인임에도 꼬박꼬박 로테이션을 지키며 145이닝을 던져서 방어율 3.66이라는 훌륭한 피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정한 타자들은 그에게 3승 12패라는 처참한 기록만 안겨주었다. 그의 항목에 올라와 있는 방어율 순위표를 보면 참 눈물이 쏟아진다.

오프시즌에 구단 매각관련해서 홍역을 치웠으나 결국 매각처와의 교섭결렬로 2011년까지 계속 이 꼴로 갈듯. 게다가 뒤숭숭한 팀 분위기에 FA최대어인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타구단과 교섭하겠다고 선언, 재정축소로 그냥 풀어주는 분위기상 팀 전력은 더 나락으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때문에 이 해 드래프트는 즉전력으로 쫙 깔고, 4명 지명하고 끝내는 팀도 있는판에 8명이나 대량으로 지명하여 전력 땜빵을 시도하고 있다. 이래저래 안습. 그나마 라타 슈이치는 어떻게 어떻게 잔류시키는데에는 성공했으나, 우치카와 세이이치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떠나버렸다. 사실 우치카와의 경우는 오이타 출신이기 때문에, 인접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상당히 선호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력도 좋아 항상 우승후보로 꼽히고 못해도 플옵은 가는 팀이라 그놈의 플옵 징크스가 문제기는 하지만 요코하마보다 싼 값을 불러도 갈판이었다. 금상첨화로 돈지랄로 유명한 호크스의 모기업은 당연히 우치카와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줬다. 안 뺏기는게 이상한 상황.

그래도 그 와중에 FA로 풀린 한국계로 유명한 모리모토 히초리를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3.1.4. 2011년 시즌

여전히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기존 선수들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지라 새로 들어온 신인 선수나 용병들을 마운드에 올리거나 타석에 올리지만 마찬가지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2011년은 통일구 덕분에 유독 두드러진 투고타저의 시즌이 돼서 무라타나 브렛 하퍼, 터멜 슬레지의 장타력만으로 해결해야하는 팀의 입장에서는 곤란하게 됐다.

다행히도(?) 투고타저의 시즌을 맞이해서 선발투수 타카사키 켄타로의 안정적인 투구[20]와 더불어 에지리 신타로[21]의 계투가 빛을 바라고 있다. 투고타저의 시즌이긴 하지만 오바나 감독의 투수 조련술이 어느정도 빛이 난듯한 느낌. 마무리도 확실하다 야마구치 슌이 확실하게 마무리 해줄 수 있는 투수이다.[22]다만 타선(혹은 불펜진)이 안따라줘서 세이브 찬스가 없는게 문제지 그외에도 시노하라 타카유키, 후지에 히토시, 우시다 시게루 불펜들도 잘 던진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었던 투수들인 만큼 오바나 감독의 능력을 볼 수 있는 사례.

다만, 다른 투수들은 별볼일 없는데다가...큰 문제는 확실한 선발을 해줄만한 선수가 타카사키 켄타로 말고는 없다는 점...2010년까지 히로시마가 마에다 켄 한 명 가지고 버틴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23] 이것은 요코하마가 올시즌도 꼴찌에 3할 승률을 할 수 밖에 없어보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물론, 타선도 시원찮지만...어차피 2011시즌은 투고타저의 시즌이기도 하고 다른 팀에 비해서 딱히 팀타율[24]이 밀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투수진의 안정이 남은 기간의 성적을 책임진다고 볼 수 있겠다.

투고타저의 시즌이니 만큼 오바나 감독이 마운드 하나는 제대로 휘어잡는 수 밖에 없을 듯. 얼마나 투고타저의 시즌이 심한지 요코하마에서 3할타자가 안나올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 됐다. 7월 30일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슬렛지 선수가 5타석 5안타 3홈런(!) 8타점이라는 성적을 기록해 9-5로 승리하였다. 한 선수가 한 경기에 3홈런 때리는 것도 힘들고 8타점 올리는도 쉽지 않다. 올시즌 투고타저라지만 의미있는 기록이 하나 나온셈이다.

결국 그러거나 말거나 결국 2011년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진 거 없이 4년연속 최하위 확정. 거기다 4년 연속 승률 3할대를 기록. 다행히도(?) 전력 절약을 위한 시간제한 규정 덕분에 무승부가 미친 듯이 늘어나서(11무승부) 사상 초유의 4년연속 90패는 면했다. 그럼에도 86패를 했으니 만약 지진이 안 나고 예년처럼 연장전이 시간 제한 없이 12회까지 가는 승부였으면 아마도 4년 연속 90패는 확실하게 했으리라 예상된다. 그리고 팀을 떠난 우치카와로부터는 긴장감 없는 팀, 뛰는 보람이 없는 팀이라고 공개 인터뷰 상에서 디스까지 당했다. 하지만 다들 동의한다. 그걸 내놓고 얘기해서 우치카와가 욕을 좀 먹었지만.

결국 갈수록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희망도 없어지고, 거기다 홈에서 주니치가 우승을 확정짓고 오치아이 감독을 헹가래 치는 꼴을 직관하는 굴욕까지 겪게된 타선의 주축 라타 슈이치가 팀에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2011시즌 종료 후 FA권을 행사해서 팀을 떠나버렸다. 이제 진짜로 요코하마는 꿈도 희망도 없게됐다.

2000년대 초반까지 개판의 극을 달리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투수진을 지금과 같은 투수왕국으로 만들고, 2000년대 중반에 무능한 호리우치 밑에서 붕괴됐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마운드를 완전히 재건하면서 투수조련의 달인으로 불렸던 바나 타카오를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리빌딩을 꾀하여 뭐 이건 키우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는 수준이니 더딘 속도이지만 마운드쪽은 그나마 젊은 선수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었다. 이른바 오바나 효과...[25] 그런데 그 오바나 감독을 2011년을 끝으로 구단이 매각되면서 잘랐다.

3.1.5. 2012년 시즌

위에 언급된 대로 2012년 시즌부터는 DeNA를 모기업으로 새출발 하게 되었다. 구단 매각을 계기로 내년 시즌엔 뭔가 변화된 모습을 보이길 기대할 수밖에...그리고 새 감독을 인선했는데 원래 쿠도 키미야스가 유력했으나 이사람이 나 선수도 겸할거햠 뿌잉뿌잉 하면서 뻗대는 바람에 결국 감독인선이 무산되었고[26] 검토끝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랜차이즈 스타이자 간판타자였던 카하타 기요시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헌데 이분... 요미우리 출신 답지 않게 상당히 개그맨 기질이 탁월하시다. 요코하마의 팀 분위기에는 딱 맞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팬들은 경기에서 죽을 쑤든 팀이 꼴찌로 떨어지든 감독 인터뷰가 재미있다며 낄낄낄(…).

그런데 문제는 나카하타가 나가시마 시게오의 대표적 심복으로 골수 요미우리 OB라는 점이다. 본인으로서는 오매불망 요미우리의 감독 자리만 바라고 타팀의 코치 제안도 거절하고 해설자 생활만 했건만 정작 요미우리는 후배인 하라 타츠노리로부터 새카만 후배인 타카하시 요시노부로 바통을 넘겨줄 준비를 하면서 본인은 감독 후보로 고려도 안 하는 상황. 그대로 가다가는 프로에서 감독생활 한번 못 해보고 그대로 죽겠다 싶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요코하마의 지휘봉을 잡았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감독이 된 요미우리 낙하산 OB들의 성과가 별로 좋은 적이 없었다는 점. 보통 이런 경우 감독이라는 인간들이 자기 팀의 전력상승보다는 요미우리의 내부의 사정에 더 관심을 보이면서 맡은 팀이 어떻게 되든 말든 방치(...)하는 경우가 많은지라 팀이 더더욱 막장화가 가속화되는 원인이 되기도 해서 꾸준히 팀을 응원해 온 팬들은 싫어하는 경우가 많다. 워낙 개그맨 기질이 뛰어나서 기자들에게는 인기가 많지만 과연 선수들과 팬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나카하타가 우익정당인 '타치아가레 닛폰(일어나라 일본)'의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한 것도 있어서 은근히 욕을 얻어먹는 중.

결국 2012년 시즌도 별로 나아진 건 없어보인다. 아니 더 나빠 보인다. 시즌 초반부터 히로시마의 에이스 마에다에게 노히트 노런의 굴욕을 당하는 등 4경기 연속 완봉패로 38이닝 연속 무득점을 기록. 그리고 2012년 7월 19일 시점에서 1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21게임차, 5위 한신 타이거스와 6게임차로 독보적 꼴찌. 한국의 모 야구단도 2012년 비슷한 처지...

그리고 2012년 6월 28일에는 요미우리 하라 타츠노리 감독의 불륜 협박 사건에서 나카하타 감독이 야쿠자에게 하라 감독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사실이라면 망했어요. 오바나 당장 불러와!

한편 2012년 7월 18일에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홈 경기에서 4-0으로 승리, 시즌 최초로 3연승을 기록하였다. 이로써 요코하마는 2012 시즌 최초로 타구단과의 전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당시 야쿠르트 상대로 7승 1무 5패)(...). [27] 그러나 결국 팀 전력은 어디 안 가는 듯 후반기 야쿠르트의 폭풍반격으로 상대전적 10승1무13패로 열세로 끝났다. 올스타전 이후로 3승8패로 완전히 열세.

신임 감독 나카하타가 위에서 우려했던 것 처럼 팀을 팽개친 정도는 아니었지만 오로지 요미우리 감독직만 바라보고 해설자 생활만 했던 초짜 감독이 4년연속 최하위에 승률 3할대를 기록하던 팀에 천지개벽을 일으키기를 기대하는 것도 결국은 무리였다. 2012년에 완전히 폭망해서 리빌딩 모드에 들어간 한신 타이거즈조차도 한번도 넘지 못한 채 5위와 9.5게임차라는 꿈도 희망도 없는 게임차로 당당히 5년연속 최하위를 차지. 5년 연속 승률 3할대도 덤. 이제 이 팀조차도 비교를 불허하는 영역에 들어섰다. 그리고 비밀번호6-4-6-6-6-6-6[28]. 참고로 저 4는 혼동하면 안 되는게 NPB는 센트럴리그 6팀 퍼시픽리그 6팀이고 가을야구는 각 리그별 3위까지 할 수 있으니 한국야구로는 5를 찍은 것과 같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라면 점점 패수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 이것도 다 시간제한 무승부 규정 덕분이다. 승수는 거의 안 늘어났다.[29] 시즌 종료 5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80패를 기록, 5년 연속 85패의 기록은 기록은 면할 가능성이 커졌...나 했더니 그 남은 경기를 다 패하면서 기어이 5년연속 85패의 기록을 달성하는 근성을 발휘했다(...). 2년만 더 꼴찌에 머무르면 자신들이 세운 6년연속(1954~59) 최하위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20년 연속 B클래스 기록에 도전하는 이 팀이나 연속 최하위 기록에 도전하는 이 팀이나... 이쯤되면 엘넥한의 일본버전으로 요가 등장할지도

3.1.6. 2013년 시즌

꿈도 희망도 없을 줄 알았……는데 개막 이후 연승으로 3256일, 약 9년만에 리그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가는 쾌거(…)를 이룩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DTD가 발동. 결국 3위로 떨어져 어렵사리 A클래스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지만...

주니치에서 데려온 토니 블랑코가 기록적인 홈런 페이스를 보여주며 타선 하나는 남부럽지 않은 팀이 되었다. 후반기에는 유망주 가지타니 다카유키가 생각지도 않던 타격포텐 대폭발을 보여주며 팀의 미래를 밝게 하였다. 하지만 문제는 투수력.. 파리그의 오릭스 버팔로즈DTD하는 데 한 달도 안 걸렸다. 이 팀도 내려갈 지도 모른다.. 결국 교류전에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퍼시픽리그 팀들에게 동네북이 되고 말았다. 교류전에서 7승 17패로 최하위로 굴러떨어지면서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교류전 종료 시점까지는 야전병원야쿠르트가 부진을 보이면서 밑바닥을 깔아주고 있는 덕분에 최하위까지는 아니지만 3위부터 6위까지 3.5게임차 안에서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잘하면 탈꼴찌 뿐만 아니라 승률이야 어찌됐든 꿈에도 그리던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가능성도, 못하면 연속 최하위 타이기록을 세울 가능성도 있는 불안불안한 상태.8월 11일 현재 5위지만 그래도 3위인 주니치와는 단 3게임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꼴지 야쿠르트와의 게임차도 단 3게임.

결국 10월 8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신 타이거스와의 최종전에서는 7대 5로 승리했지만, 최종 순위는 달라지지 않은 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23게임 차이인 5위로 이번 시즌을 마쳤다.[30] 올 시즌에 완전히 막장화된 야쿠르트보다도 더욱 높은, 독보적인 팀 방어율 4.50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는 점에서[31], 꼴찌는 면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성적이다. 그래도 팀 타율은 요미우리와 더불어 리그에서 가장 높은 .262로 공동 1위를 기록했는데도 5위했다는 점이 슬프다. 그리고 2007년 시즌 이래 최고 승률, 다시 말해서 최근 6년 동안 가장 적은 79패만을 당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자(...) 최종 성적은 64승 1무 79패.

오프시즌에는 한신 타이거즈로부터 FA로 베테랑 우완 선발요원인 구보 야스토모를 영입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다 메이저리그를 잠시 경험했던 베테랑 좌완 다카하시 히사노리를 영입했다.어째 다 노장들... 야수쪽에서는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이대호와 클린업을 이루던 우타 3루수 롬 발디리스를 영입했다. 그런데 영입과정에서 정말로 바보같은 짓을 하고야 말았는데 구보 야스토모의 보상선수로 팀에서 가장 경험많은 포수인 쓰루오카 가즈나리를 한신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2014년 시즌은 포수 최고참이 20대 중반인데다 출전경기수도 100경기 남짓한 경험이 부족한 구로바네,다카조와 신인포수 미네이 등으로 1년을 운영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3.1.7. 2014년 시즌


그래도 팀을 체질개선하겠다는 새 구단주의 의욕이 통했는지 점점 팀같은 팀의 꼴을 갖춰는 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비밀번호 연장을 막은 건 아니지만.

나카하타 감독도 경험치가 쌓이면서 선수시절 전매 특허였던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살려서 팀을 잘 추스르고 있다. 처음 부임시 우려됐던 부정적인 측면보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으며, 선수들도 과거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점점 탈피해가고 있다. 비록 순위는 5위였지만 시즌 중반에는 한 때 3위자리를 넘보기도 했고 4위인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불과 1게임차로 아깝게 5위에 그쳤다. 승수도 증가하여 4위인 주니치와 같은 67승이나 거뒀으며 패수도 최근 7년간 가장 적은 75패에서 멈췄다. 그리고 2007년이후 무려 7년만에 승패마진을 마이너스 한자릿수로 줄였다(...)

일단 투수진에서 FA로 영입해온 쿠보 야스토모가 12승 6패로 에이스 역할을 해줬고, 영건인 이노우와 야마구치 듀오, 용병 모스코소가 안정적인 로테이션을 형성하면서 선발투수진에서 계산이 서게 되었다. 그리고 팀내 최고참 미우라 다이스케는 스팟 스타터로서 역할을 충실하게 해주는 등 선발진이 최근 몇년간 보여준 적이 없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요코하마 성적 상승의 원동력이다. 타선에서는 주니치와 오릭스에서 데려온 블랑코와 발디리스가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여줬지만 토종 4번타자인 쓰쓰고가 3할 22홈런으로 타선의 중심을 잡아줬고 시즌 도중에 쿠바에서 영입한 율리에스키 구리엘[32] 등의 활약으로 장타력 부족이 아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난 안습의 세월처럼 궤멸적인 타선은 아니었다.그리고 1위인 요미우리를 상대로 13승 11패로 유일하게 상대전적에서 앞섰다.

2014시즌을 정리하면 최근 몇년의 안습상태에서 벗어나 조금씩 희망의 싹이 보이기 시작한 시즌이라고 할 수 있겠다.

3.1.8. 2015년 시즌


율리에스키 구리엘이 쿠바정부의 방침상 쿠바리그를 끝내고 와야하고 부상등을 이유로 개막후 늦게 합류하는것이 확실시 된지라 2014년말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요코하마 킬러 세 로페스를 획득. 팀의 타선의 주축중하나로 평가받은 구리엘이 빠진 타선으로도 오픈전2위라는 준수한 성적을 뽑아내며 팬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헌데, 믿고있던 율리에스키 구리엘이 부상을 핑계로 합류를 미루다 음신불통이 되는 사태까지 발전하자 결국 참다못한 프론트가 폭발, 구리엘을 계약해지 해버렸다.[33] 결국 거인한테 버림받은 로페스와 작년 부진하던 롬 발디리스등을 데리고 시즌을 시작하게되었는데,작년에 보이던 희망의 싹이 드디어 개화한건지 전 타선이 불을뿜고, 답이없던 선발투수진이 호투를 하기 시작하면서 4월8일 8년만에 3연승으로 3저금(...)을 이루어 내며 마찬가지로 포텐셜을 폭발시키고있는 주니치와 공동수위에 등극했다.
2015년 4월 10일 현재 주니치,야쿠르트를 2위로 밀어내면서 무려 1위(!)를 기록중이다.
초반 성적이 굉장히 좋은데 과연 시즌 중후반에 DTD를
시전할지가 굉장한 관심사 아직 시즌 15경기 밖에 안치렀지만

4. 팀 특징

4.1. 팀이름은 베이'스타즈'인데 스타가 없어(!)

그나마 이 팀에서 뛰는 스타급 선수로는 오랫동안 팀 투수진을 떠받쳐온 '반초(대장)' 미우라 다이스케정도. 미우라는 성적으로 보면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선수지만 팀이... 게다가 이미 만 40을 넘겨 은퇴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외에 한국 야구팬들에게 알려진 선수는 재일교포 모리모토 히초리가 있었고 한국에서 활약한 카도쿠라 켄이 일본프로야구 커리어의 최전성기를 보낸 곳도 여기였다.

한 때 이 팀을 대표하는 선수로는 2007, 2008년 센트럴리그 홈런왕이자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국가대표로 참가한 거포 3루수 라타 슈이치가 있...었으나, 2012년 시즌에 FA를 선언하고 요미우리로 이적해버렸다... 그리고 일본 턱돌이로 유명하며 고타율과 2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홈런을 쳐내어 우리나라를 울리기도 했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우치카와 세이이치도 이 팀 소속이다.

이러다 보니 결국 팀에서 뛰는 주목받는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 담당 기자들도 선수보다는 개그맨 감독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오늘은 어록으로 쓰일만한 뭐 한마디 안 나오나 기다리는 게 일이다. 오죽하면 카네모토 토모아키가 은퇴 경기에서 "DeNA는 나카하타 감독이 가장 눈에 띈다. 선수가 주목받지 않으면 (안 된다.)"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꿈도 희망도 없어.

그나마 2014년 시즌 들어와서 쓰고 요시토모가 3할 22홈런으로 토종 4번타자로서 활약을 보이면서 프랜차이즈 스타 후보로서 떠오르고 있고 FA 선언해서 딴 팀으로 옮기지만 말아라... 선발 로테이션의 이노 쇼이치와 야마구치 슌이 주목할만한 활약을 보이고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다른 팀의 주축 선수보다 개성도 화제성도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4.2. 요코하마 팬의 십계명

아래는 요코하마 팬으로 사는 십계명이라고 한다.[34]
1. 시합은 원래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관전한다.
2. 경기 도중 단 한 군데라도 희망이나 좋은 점을 찾아낸다.
3. 시합에 이기든 지든, 감독의 수수께끼같은 선수기용이나 작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4. 이긴 날은, 오늘이 야구 뉴스를 즐거운 기분으로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본다.
5. 언젠가는, 언젠가는 초 거물 용병선수가 입단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6. 상대팀의 에이스 투수가 선발로 나서는 날은 결코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고 패배를 확신한다.
7. 팀 내 루키의 성장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는다.
8. 도저히,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괴로울 때면 98시즌 우승했을 때의 비디오를 몇 번이고 돌려본다.
9. 경기가 없는 매주 월요일은 오늘은 절대 지지 않는 날이라며 마음 편히 하루를 보낸다.
10. 팀이 지고 있을 때면,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패기록을 보며 마음을 달랜다.

최근 몇 년간 센트럴리그 꼴지를 도맡아해온 베이스타즈의 상황을 비꼬는 유행어로 베리그가 있다. 매년 다른 팀과 엄청난 차를 벌리면 꼴등으로 가라앉은 채 그대로 시즌이 끝나버리는 거의 독립적인 위치라는 점 때문에 베이스타즈가 사실은 다른 리그였다! 라는 뜻으로 센트럴리그를 줄여서 세리그, 퍼시픽리그를 파리그라고 부르는 것에 빗대어, 베이스타즈에서 「베」를 따 베리그라고 부른다. 기본적으로는 베이스타즈 혼자 소속된 리그이지만 자국리그나 타국 리그에서 헤매는 팀들을 여기로 승격시켜서(...) 순위를 가리곤 하는데, 공교롭게도 파리그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MLB시애틀 매리너스와 함께 한화 이글스가 여기 단골로 일본에서 유명하다. 하지만 라쿠텐은 2013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단 베리그 탈출에 성공했고, 시애틀 매리너스도 서서히 전력을 끌어올리면서 탈출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화만 안습(...) 결국 매년 수위는 베이스타즈가 차지한다. 물론 패가 많을수록 순위가 높은 베리그 기준으로. 허정무컵?

4.3. 기타

  •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에 98년 베이스타즈의 우승을 기념하며 국물이 파란색인 베이스타즈 라면을 팔던 칸톤(廣東)이라는 중국음식점이 있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는 듯. 2014년 현재는 폐점.

  • 요코하마에서 다른팀으로 이적해 활약한 선수들이 이적직후에 남긴 코멘트가 있는데 가관이다.
    우치카와 세이이치(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 "요코하마에서는 누굴 믿어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35]
    루키 카츠아키(오릭스 버팔로즈 → 현 미국 독립리그 하와이 스타즈) - "(요코하마에 재적하고 있던 때부터 이적하고 싶어서)연습이 제대로 안됐다"
    루오카 카즈나리(현 한신 타이거스) - "(자이언츠의 연습을 보며)1군의 선수가 이렇게 (많이)연습하는줄은 몰랐다"
    토 고스케(현 한신 타이거스) - "강한팀은 강한 이유가 있었네요. 그걸 하루에도 몇차례씩 느끼고, 저도 빨리 그 (강한)팀의 일원이 되고싶습니다. [36]
    쿠도 키미야스(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감독) - "요코하마의 선수는 연습안해"

5. 유니폼

유니폼의 경우 가와사키 구장을 전전하던 70년대 중반까지는 대만 프로야구의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스를 연상케 하는 초록색-주황색의 유니폼[37]을 착용하기도 하였으나./원정, 요코하마 구장으로 본거지를 옮기면서 홈/원정 유니폼 모두 항구도시인 요코하마의 이미지를 살린 감색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다사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전환한 지금까지도 팀 컬러는 파란색 계통으로 대체로 같게 유지되고 있다.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로 이름이 바뀐 1993년부터 2008시즌까지는 홈이 흰 바탕에 파란 줄무늬(사진)/원정이 메이저리그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파란색 원정 유니폼과 같은 짙은 파란색(사진)인 삼성 라이온즈틱한 유니폼을 썼으나, 2009년부터 바뀐 유니폼은 파랑과 검정, 회색을 조화로 이룬 간지 유니폼이 나왔다. 센트럴리그 동네북 유니폼 치고는 의외로 잘 나온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아니 이 팀은 유니폼만 잘 나온다. 심지어는 2군팀인 쇼난 시렉스의 유니폼이 감색과 아쿠아색이 조화를 이뤄서 한 때 1군팀의 유니폼보다 훨씬 간지난다는 평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당시 요코하마가 성적이 안 나오는 이유가 2군 유니폼이 1군 유니폼보다 멋있어서 선수들이 2군에만 머무르려 하기 때문이라는 웃기 힘든 농담도 있다. 현실은 1군 유니폼이 2군 유니폼보다 더 잘 나온 감이 있지만...


2012년 유니폼이 바뀌었는데, 홈 유니폼은 기존의 줄무늬 유니폼에서 로고와 글씨체만 살짝 바꾼데에 비해, 원정유니폼은 남색을 베이스로 나름 간지나게 바뀌었다.

130312_04_01c.jpg
[JPG image (Unknown)]

2013년 시즌부터 주말 원정경기에만 착용하는 제3 유니폼이 등장하였다. 컬러는 1998년 우승당시 원정 유니폼의 '베이스타즈 블루'색을 유지하며 모자와 유니폼 가슴 부분에는 새로 바뀐 모기업의 로고를 적용하였다. 이 유니폼을 착용했을 때 승률이 괜찮았던 탓에 2014년 시즌에는 이 유니폼을 베이스로 가슴의 로고만 DeNA로 바뀐 형태를 정식으로 원정 유니폼으로 채용하였다.[38]


2015 시즌 유니폼.

6. 대표적인 선수들(2014년 기준)

6.1. 감독 및 코치

6.2. 투수

6.3. 포수

  • 32. 카조 슈토
  • 59. 로바네 토시키

6.4. 내야수

  • 7. 시카와 다케히로
  • 23. 치무라 켄스케
  • 25. 츠고 요시토모
  • 52. 롬 발디리스
  • 99. 카무라 노리히로

6.5. 외야수

6.6. OB

6.6.1. 투수

6.6.2. 포수

6.6.3. 내야수

  • 리트 보이어 (1972 - 1975)
  • 시핀 (1972 - 1977)
  • 마시타 다이스케 (1974 -1988)
    70~80년대 팀을 대표하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 1976년부터 83년까지 8년연속 유격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 츠바라 마코토 (1962 - 1980)
    60~70년대 팀을 대표하던 강타자이자 일본프로야구계의 진정한 무관의 제왕. 무관의 제왕에 소개된 다른 선수들은 타격과 관련된 주요 타이틀만 못 땄을 뿐 신인왕, 골든글러브, 베스트나인 등등 기타 수상경력이 있는 '불순물'임에 반해 이 선수는 선수생활 20년동안 통산 2095안타, 331홈런, 1180타점을 기록한 강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상도 수상하지 못한 순도 100% 무관의 제왕이다. 이 정도 성적을 남긴 선수가 주요 타격 타이틀은 고사하고[39] 포지션별로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나 베스트나인 조차도 수상하지 못한 이유는 포지션 때문인데 이 선수의 주 포지션이 1루수와 3루수였다. 문제는 이 사람이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기가 나가시마 시게오오 사다하루의 전성기와 정확히 겹친다는 것(...). 저 두 사람이 3루와 1루에서 포지션 관련 상을 쓸어가니 상을 받을래야 받을 수 가 없었다. 그나마 이 사람이 현역으로 있는 동안 시즌 최다안타는 2번 기록했지만 그 당시에는 최다안타는 수상항목이 아니었다(...) 안습 다만 현역 마지막 해인 1981년 요미우리로 트레이드 되어 일본시리즈 우승을 맛보고 우승반지 하나는 끼고 은퇴해서 안습아닌 듯 안습인 현역 커리어를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기는 했다.
  • 시로 토미오 (1973 - 1991)
  • 카기 유타카 (1981 - 1993)
  • 시이 다쿠로 (1989 - 2008)
  • 로버트 로즈 (1993 - 2000)
  • 라타 슈이치 (2003 - 2011)
  • 타이론 우즈 (2003 - 2004)
  • 율리에스키 구리엘 (2014)

6.6.4. 외야수

  • 쓰루 마코토 (1950 - 1952)
    초창기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했던 강타자. 일본 프로야구 시즌 최다타점(161), 최다득점(143), 최다루타(376) 기록 보유자이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시즌 50홈런을 기록했다. 모두 일본에서 양대리그가 시작된 1950년의 기록인데 이 해의 기록이 타율 .355, 51 홈런, 161 타점, 출루율 .450, 장타율. 729로 OPS만 무려 1.179를 기록했다(...) 다만 방계구단으로 취급받는 쇼치쿠 로빈스 소속이었고 쇼치쿠가 다이요와 통합됐을 무렵에는 히로시마로 이적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어 위키피디아에서는 요코하마 OB로 취급하지 않는 듯 하다.
  • 곤도 카즈히코 (1958 - 1972)
  • 시키 카나메 (1978 - 1993)
  • 토 히로카즈 (1983 - 1990)
  • 를로스 폰세 (1986 - 1990)
  • 파치올렉 (1988 - 1991)
  • 즈키 다카노리 (1991 - 2008)
  • 에키 타카히로 (1993 - 2010)
  • 우치카와 세이이치 (2001 - 2010)
  • 모리모토 히초리 (2011 - 2013)
  • 알렉스 라미레즈 (2012 - 2013)
  • 나이저 모건 (2013)

6.7. 팀 출신 메이저리거

----
  • [1] 모기업이 DeNA로 변경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마스코트. 이전 마스코트였던 불가사리 삼남매 홋시,홋시나,홋시조는 졸업(?)하여 예전에 쓰던 마스코트가 되었다.
  • [2] 현재 연고지인 요코하마 시로 옮긴 것은 1978년
  • [3] 2000년부터 2010년까지 2군 팀만 이름을 달리해서 쇼난 시렉스(湘南シーレックス, Shonan Searex)라고 했다. 2014년 이후의 넥센 히어로즈(1군)와 화성 히어로즈(2군)의 관계와 같다.
  • [4] 곡절은 본인 항목 참조
  • [5] 요코하마인천은 항구도시로서, 미국으로부터 야구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이라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도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팀들이 오랫동안 꿈도 희망도 없는 만년 하위권 팀이었다는 것 역시 닮아있다... 그리고 둘 다 1998년에 처음 우승했다는 것도 비슷..할려나? 일단 다이요 훼일스가 요코하마로 온 게 1978년부터니까.
  • [6] 한글로 웨일즈나 웨일스로 표기하기도 한다. 현대 영어의 많은 화자들이 Whales의 wh 부분을 /hw/(정확히는 [ʍ])로 발음하지 않고 /w/로 발음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
  • [7] 전형적인 일본식 영어라서 미국 매체들이 메이저리그탬파베이 레이스처럼 지명 자체에 '베이'가 붙고 팀명에도 그걸 사용하는 케이스들처럼 착각해서 요코하마 + 베이스타즈가 아니라 요코하마베이 + 스타즈로 인식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금은 요코하마 뒤에 DeNA가 붙었으니 오해의 가능성이 줄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요코하마 DeNA 베이' + '스타즈'로 오해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 [8] 모바일 게임의 일본식 표기인 モバイルゲーム를 줄인 モバゲー를 그대로 로마자로 적어서 Mobage라고 쓴 것이다.
  • [9] 우리나라에서는 다음과 합작해 다음의 모바일 게임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대학 취업설명회 시즌에도 일본 본사에서 일할 한국인 인재를 모집하고 있다.
  • [10] 지역명 빼고 DeNA만 쓰기도 하지만, 이쪽은 중계에서 별로 쓰지 않는다. 아직도 국내 언론에서는 '요코하마'로 잘못 호칭하고 있다. 'DeNA'라고 호칭하는데는 인색한가보다.
  • [11] 그래서 팀명에 훼일스(고래)라는 이름이 들어가있었다.
  • [12] 다이요어업에서 마루하로 개칭한 이름. 단, 개명 이전에 다이요 어업에서 썼던 브랜드로 다이요 웨일스 시절 한때 동그라미 안에 'は'가 박힌 로고를 소매패치로 쓰기도 했다.
  • [13] 1954년부터 6년연속 최하위였다.
  • [14] 이 때의 요코하마 타선은 특별히 거포라고 할 만한 선수는 없어서 단타, 2루타 위주로 득점을 내기는 했지만 타선이 마치 기관총을 난사하듯, 1번부터 8번까지 정신을 못차릴 정도의 연타로 상대팀 마운드를 KO시키는 게 주특기였다.
  • [15] 이 시기동안 요코하마는 1997년에서 2000년까지 수위타자를 독점한다. 즈키 타카노리(97년, 98년), 로버트 로즈(99년), 죠 타츠히코(00년).
  • [16] 사이타마 세이부는 결승에서 한신 타이거스에게 패배한 유일한 팀이기도 하다.
  • [17] 당시 센트럴리그 최다안타기록. 이 기록은 2005년 202안타를 친 아오키 노리치카에 의해 깨지고, 2010년에 214안타를 친 맷 머튼에 의해 다시 한번 깨진다.
  • [18] 이 때부터 우치카와가 완전히 각성(?)하게 되어서 3할 타자에 장타력도 보유한 중장거리형 타자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흑화한다.
  • [19]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해선 안 되는 점이, 요코하마는 144경기에서 90패를 한 거고, 롯데 자이언츠는 133경기에서 2년 연속 90패를 했다는 것. 요코하마가 144경기 중 54승 90패를 거두었다면, 승율이 .351이 되는데, 한국프로야구 기준으로 3할5푼 승율 찍을려면 133경기에서 47승 86패이다. 즉, 일본에서의 90패와 한국의 85패가 승율이 같다는 소리. 하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론 2001년 70패, 2002년 97패, 2003년 91패, 2004년 72패로, 85패 이상도 2년연속으로 끝냈다.
  • [20] 7월30일 현재 4승 7패 108.2이닝 방어율 2.73
  • [21] 7월30일 현재 2승 2패 39.2이닝 방어율 2.50
  • [22] 7월30일 현재 1승2패 18세이브 방어율 2.01
  • [23] 그나마 히로시마는 2011년에는 벌링턴이 가세하면서 좀 나아지긴 했는데 이번에는 마에다가 부진의 늪 속으로...
  • [24] 7월30일 현재 .238으로써 주니치나 요미우리보다 높다 센트럴 리그 4위
  • [25] 오바나 타카오가 요코하마의 감독을 맡으면서 2010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투수진은 그대로 붕괴되어 버렸다. 그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코치였다는 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경우에는 워낙 재능이 훌륭한 선수가 많았던지라 아직도 잘 버티고 있다.
  • [26] 선수로써는 사실상 끝난거나 다름없는데도 현역을 고집해서 몆년전에만 해도 노장의 투혼이라고 박수를 받았지만 2010년 이후에는 쓸 데 없는 똥고집 부린다고 야구팬들에게 대차게 까이고 있다. 나이로 보았을때 코치로 시작하기에도 많은 나이라 지도자 전향이 더 늦어지면 프로에서 감독 코치하긴 힘들듯 하다. 하지만 2015년 시즌에 아키야마 코지의 뒤를 이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아무렴 요코하마 감독보다 소뱅 감독자리가 백배 나았겠지.
  • [27] 7월 16일과 17일의 시합에서도 야쿠르트를 상대로 각각 7-5, 6-2로 승리(둘 다 홈 경기). 이 탓에 안그래도 히로시마에게 추격당하던 아쿠르트는 7월 19일 현재 공동 3위가 되었다(...) 여담으로 히로시마는 그 전인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3경기에서 요코하마를 상대로 전승을 기록하였다.
  • [28] 참고로 2006 시즌의 경우, 완전 폭망해서 이승엽 혼자서 버티던 교진군이 5위 찍었다(...)... 07년 5위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 6위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29] 위키백과에 등재된 시즌 기록에 의하면, 5년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는 동안 승수는 48-51-48-47-46. 어째 승수도 같이 줄어들고 있다(...)
  • [30] 2013년 10월 9일 기준으로 센트럴리그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는 6게임, 4위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1게임, 그리고 꼴찌 야쿠르트 스왈로즈와는 5게임 반 차이.
  • [31] 다시 말하면 투수진이 아직도 막장이라는 뜻이다... 안습. 참고로 야쿠르트는 팀 방어율 4.26을 기록
  • [32]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 마지막 타석에서 병살타로 한국의 금메달 획득에 공헌했던 그 구리엘 맞다.
  • [33] 이후 구리엘은 미국언론과 양키스에 입단하고 싶어서 그랬다는 논지의 인터뷰를 해버려서 요코하마 팬들한테 영구 까임권을 획득했다.
  • [34] 출처 리라하우스.
  • [35] 우치카와 본인은 그런뜻으로 했던 말은 아니었다고 후에 부정했지만, 그럼 위의 발언은 원래는 뭔뜻이었냐는말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 [36] 지바 롯데에 이어 두번째 방출이었으나 한신에 완전히 정착했다.
  • [37] 다이요의 연고지인 쇼난 지역을 지나는 토카이도 본선 열차의 색상과 같았다고 한다.일본 위키 참고.
  • [38] 'YOKOHAMA'는 오른팔에 부착.
  • [39] 3대 타격 타이틀(수위타자, 홈런, 타점)을 수상하지 못한 선수로는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