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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안니스 5세

last modified: 2014-11-01 13:07:02 Contributors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안드로니코스 3세 요안니스 5세 요안니스 6세
팔레올로고스 황조 팔레올로고스 황조 팔레올로고스 황조
요안니스 6세 요안니스 5세, 마타이우스 안드로니코스 4세, 요안니스 7세
팔레올로고스 황조 팔레올로고스 황조 팔레올로고스 황조
안드로니코스 4세, 요안니스 7세 요안니스 5세 요안니스 7세
팔레올로고스 황조 팔레올로고스 황조 팔레올로고스 황조

그리스어 : Ίωάννης Ε' Παλαιολόγος (요안니스 5세 팔레올로고스)

생몰일 : 1332.6.18 ~ 1391.2.16

1341년부터 1376년까지, 1379년부터 1390년까지, 1390년부터 1391년까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 재위했다.

요안니스의 즉위는, 말기에 이른 비잔틴 제국이 본격적으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하는 신호와도 같았다.[1][2]

열 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이후 예순의 나이로 병사할 때까지 그 생애는 참으로 파란만장했는데, 먼저 두 번이나 폐위당했다 복위하기를 반복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여러 번의 내전을 경험했다. 미카일 8세가 비잔틴 제국을 복원한 이래 제국 멸망 때까지 내전이 네 차례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 무려 세 번이 요안니스의 치세에 일어났으며, 그러다 보니 역대 비잔틴 제국의 황제들 가운데 두번씩이나 폐위당했으면서도 그때마다 복위에 성공한 예는 이분이 유일.

다음으로, 요안니스 5세의 치세는 오스만 제국유럽 침공이 본격화한 때이기도 하다. 물론 오스만 제국과 비잔틴 제국이 처음으로 충돌한 때는 요안니스의 할아버지 때인 드로니코스 2세 때지만, 오스만이 유럽까지 건너온 것은 요안니스 5세 치세[3]. 이에 요안니스는 1369년에는 직접 로마로 달려가 교황으로부터 군사 지원을 받는 대가로 방 정교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까지 해야 했으며[4][5], 1371년에는 제국 역사상 최초로 황제가 다른 나라의 봉신이 된다는 치욕을 맛보기도 했다[6].

마지막으로, 하필이면 이런 상황에서 비잔틴 제국의 북쪽 및 북서쪽 국경에 접한 이웃나라들인 세르비아불가리아가 하나같이 잘 나가고 있다는 악재까지 겹쳐버렸다. 세르비아의 왕인 슈테판 우로시 4세(Stephen Uroš IV, 재위: 1331~1355)[7]는 비잔틴 제국의 내전을 이용하여 제국의 영토를 야금야금 갉아먹더니 1346년에는 황제를 자칭하기에 이르렀으며[8], 2차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인 이반 알렉산더르(Ivan Alexander, 재위: 1331~1371)도 세르비아만큼 잘 나가지는 못했지만 역시 비잔틴 제국의 내전을 이용하여 이런저런 이익을 많이 챙겨갔다[9].

하지만 이쪽은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이, 슈테판 우로시 4세가 급사한 이후 세르비아 제국은 급격히 쇠퇴[10]했고 불가리아 제국도 이반 알렉산더르 치세 말부터 분열하려는 조짐을 보인데다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을 제대로 방어해내지 못했던 것[11]. 하지만 이때는 이미 오스만 제국이 발칸 반도의 지배자로 군림하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비잔틴 제국이 이 틈을 기회로 이익을 챙길 수는 없었다.

아무튼 이래저래 고생이 정말 많았던 황제로, 잦은 내전과 오스만 제국의 침입.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의 융성이라는. 비잔틴 제국의 가장 큰 멸망 요인들을 몸소 체험(...)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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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요안니스의 아버지이자 선제인 안드로니코스 3세 때까지만 하더라도, 비록 이기지는 못했어도 오스만 제국의 침공에 적극적으로 응수하고. 다른 지방에서도 영토를 지켰을 뿐만 아니라 일부 확장하기까지 했다. 즉 안드로니코스 3세까지의 비잔틴 제국은 예전만은 못했어도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잦은 내전과 이웃나라인 세르비아, 불가리아의 강성, 오스만 제국의 침입 등으로 그 희망마저 꺼져버린 것이, 요안니스 5세의 치세.
  • [2] 이렇게 쓰면 폭군같이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사실 특별히 잘못한 일은 없다. 비잔틴 제국 최후의 황제인 콘스탄티노스 11세와 마찬가지로, 시대를 잘못 타고나 망했어요가 된 경우.
  • [3] 1354년에 리폴리 반도에 대지진이 일어났는데, 1341년부터 1347년까지 장장 7년동안 계속된 내전의 결과 심각한 수준으로 약해진 비잔틴 제국은 피해 복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오스만 제국이 꿀꺽.
  • [4] 비잔틴 제국 역사상 최초로 개종했는지는 수정바람.
  • [5] 물론, 교황의 지원 약속은 말뿐이었다.
  • [6] 물론, 그 상대는 오스만 제국이었다.
  • [7] '슈테판 두샨(Stephen Dušan)' 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린다.
  • [8] '세르비아의 황제' 였다면 그나마 다행이었겠지만, 그 타이틀은 무려 '세르비아인과 그리스인의 황제(Emperor of the Serbs and Greeks)'. 당시 그리스인이라고 하면 곧 비잔틴인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므로, 이건 곧 '시망 직전인 비잔틴 제국은 밀어버리고, 내가 그 후계자가 되겠음!' 이라고 선언한 거나 같았다. 실제로 이후 슈테판은 네치아공화국과 연계하여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려고까지 하지만, 베네치아의 거절로 인해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 [9] 영토 확장과는 별개겠지만, 이반 알렉산더르의 치세에 2차 불가리아 제국은 문화적인 전성기를 맞는다.
  • [10] 급사하는 바람에 확장한 영토에 대한 효율적인 통치체제를 구축하지 못했고, 각지에 파견한 지방 귀족들의 세력이 강력해지는 것도 제압하지 못했다. 그런 데다, 후계자인 슈테판 우로시 5세는 아버지와는 대조적으로 병약한 인물이었다. 결국 슈테판 우로시 5세의 치세에 세르비아 제국은 하나둘씩 분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1371년에 슈테판 우로시 5세가 후계자 없이 요절하면서 제국은 공중분해되었다.
  • [11] 실제로 불가리아 제국은 셋으로 나뉘어 내부 항쟁을 계속한 결과 1395년에 멸망하기에 이른다. 이반 알렉산더르가 죽고 겨우 24년 뒤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