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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애슬레틱스

last modified: 2015-04-07 17:36:17 Contributors

MLB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소속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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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매리너스
(Seattle Marin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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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Los Angeles Angels of Anahe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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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애슬레틱스
(Oakland Athl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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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레인저스
(Texas 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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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애스트로스
(Houston Ast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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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로고[1] 구단 로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Oakland Athletics
창단 1901년
연고지 캘리포니아오클랜드
현재 연고지로 이전 1968년
구단 연고지 변천 필라델피아 (1901~1954)
캔자스시티 (1955~1967)
오클랜드 (1968~)
구단명 변천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Philadelphia Athletics) (1901~1954)
캔자스시티 애슬레틱스 (Kansas City Athletics) (1955~1967)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Oakland Athletics) (1968~)
홈 구장 콜롬비아 파크 (Columbia Park) (1901~1908)
샤이브 파크 (Shibe Park) (1909~1954)
뮤니시펄 스타디움 (Municipal Stadium) (1955~1967)
O.co 콜리세움 (O.co Coliseum) (1968~)
구단주 루 울프 (Lew Wolff) & 존 피셔 (John J. Fisher)
사장 마이클 크롤리 (Michael Crowley)
단장 빌리 빈 (Billy Beane)
감독 밥 멜빈 (Bob Melvin)
월드 시리즈 우승
(9회)
1910, 1911, 1913, 1929, 1930, 1972, 1973, 1974, 1989
아메리칸리그 우승
(15회/14회)[2]
1902, 1905, 1910, 1911, 1913, 1914, 1929, 1930, 1931, 1972, 1973, 1974,
1988, 1989, 1990
지구 우승
(16회)
1971, 1972, 1973, 1974, 1975, 1981, 1988, 1989, 1990, 1992, 2000, 2002,
2003, 2006, 2012, 2013
와일드카드 획득
(2회)
2001, 2014
홈페이지
유니폼
원정 얼터네이트

Contents

1. 개요
2. 연혁
2.1. 필라델피아 시절
2.2. 캔자스시티 시절
2.3. 리 핀리와 1970년대의 영광
2.4. 월터 A.하스와 1980년대의 영광
2.5. 빌리 빈의 머니볼 시대
2.6. 2006년의 성공과 추락.
2.6.1. 2010년
2.6.2. 2011년
2.7. 2012년~현재 : 머니볼 시즌 투
2.7.1. 2012년
2.7.2. 2013년
2.7.3. 2014년
2.7.4. 2015년
2.8. A's의 포스트시즌 실패 요인?
2.8.1. 선발 대결에서 밀렸다?
2.8.2. 수비가 불안하다?
2.8.3. 떨어지는 주루 능력?
2.8.4. 결국은 운이 지독히도 나빴다?
2.8.5. 클린치 게임에서의 부진
3. 특징
4. 홈구장 O.co 콜리세움 & 연고 이전 문제
5. 라이벌
5.1.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5.2.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5.3. 텍사스 레인저스
6. 이야기거리
6.1. 마스코트
6.2. 유니폼
7. 역대 프런트
7.1. 구단주
7.2. 단장
8. 영구 결번
9.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9.1. 트리플 A
9.2. 더블 A
9.3. 싱글 A
9.4. 루키

1. 개요

MLB의 프로야구단.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오클랜드.

월드시리즈 우승 9회를 기록한 MLB의 명문팀 중 하나이다. 팀의 닉네임이 운동선수들이라는 다소 어이없는 명칭[3]이다. 여기서는 운동선수들이라기 보다는 직접적으로 야구선수들이라는 의미를 띄고 있는데, 이건 원래 19세기 말에 팀의 정식명칭이 Philadelphia Athletic Club(필라델피아 운동 클럽)이었던 데에 기인한다. 뉴욕 메츠가 원래 풀네임이 New York Metropolitan Baseball Club인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사실 그냥 야구선수들인데는 이유가 있다. 필라델피아 시절 팀을 창단하고 아메리칸 리그의 창립 멤버로 참가하게 되면서 1870년대에 있었던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라는 팀 이름을 그대로 이어 받은 것. 팀명을 줄여서 A's라고들 하는데 언론이나 팬들이나 이쪽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미국의 야구팬들사이에서 풀네임인 애슬레틱스라고 거추장스럽게 다말하면 따돌린다는 소문이) 야구에서 에이스보다 훌륭한것도 별로 없으니. 해외야구 갤러리에서의 별명은 콩클,[4] 오크. 국내 메이저리그 팬덤 초창기에는 뚱뚱한 선수가 많다고 오돼지네.[5]


오클랜드로 옮겨온 이후 성적은 대단히 좋다. 한때는 슈퍼스타 군단으로 군림하던 때도 있었지만, 90년대 중반부터 구단주가 예산을 줄인 이후 스몰마켓으로 운영되고 있다.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단장 빌리 빈의 지휘 하에 좋은 성적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2. 연혁

2.1. 필라델피아 시절


1914년 보스턴 브레이브스 vs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월드시리즈 기념 경기 기록부
1910, 1911, 1913년 월드시리즈 우승한 어른 코끼리가 1914년 아기 코끼리 응원해주지만, 0승 4패로 졌다.

1901년 아메리칸 리그의 창립과 동시에 리그에 참가한 에이스는 내셔널 리그에서 포수 겸 감독을 지낸적이 있는 코니 맥을 구단 공동 소유주 겸 감독으로 영입하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1914년까지는 6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하는 강팀이었다. 그러나 이후 긴축 재정 때문에 전력이 약해지면서 꼴찌로 추락하는 비운을 맛본다. 하지만 1925년부터 다시 상승세를 타서 1929년부터 1931년까지 3년 연속 리그 우승 및 1929과 1930년, 다시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이때 주축으로 활약한 것이 레프티 그로브미 팍스다. 하지만 제대공황으로 인해 구단주이자 감독인 코니 맥의 재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다시 긴축 재정으로 돌입했기 때문에 레프티 그로브 및 지미 팍스와 같은 우수한 선수들을 팔아치우며 몰락했고, 코니 맥 시대에는 다시 우승을 하는 일이 없었다.

필라델피아 시절은 그냥 코니 맥의 시대라고 봐도 된다. 팀의 창단과 동시에 공동 구단주 겸 감독이었으며 감독은 그의 나이 87세까지 맡으며 무려 50년간 역임했고, 1936년부터 1954년까지는 단독 구단주였다. 구단주를 겸하고 있었기에 조금 눈에 난 선수나 연봉 많이 받는 선수는 그냥 다른 팀으로 보내버린 적도 있었다. 짠돌이 구단의 전통은 필라델피아 시절부터 앞에서 언급한 대공황기의 대규모 방출도 물론이고, 당대 최고의 강타자였던 지미 팍스는 술을 좋아하던 사생활을 이유로 쫓겨났다.

2.2. 캔자스시티 시절

코니 맥의 아들인 얼 맥은 재정난 때문에 구단을 시카고 출신의 사업가인 아놀드 존슨에게 매각한다. 새 구단주인 존슨은 팀이 성적 부진에다 관중 동원도 되지 않았기에 바로 1955년에 캔자스시티로 연고를 이전한다. 연고 이전한 해에는 130만이 넘는 관중을 동원했지만 이겨야 관중이 오지(...) 결국에 캔자스시티에서 마지막 4년은 리그에서 팀 성적이 10-7-10-10으로 좆망하고, 관중 동원도 9-9-10-9를 찍었다. 캔자스시티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기록한건 연고 이전한 해인 1955년의 6위. 게다가 존슨은 선수를 키울만하면 선수를 팔아넘기고, 해당 구단의 퇴물 선수 몇 명 받아오는 막장 운영을 해댔는데, 에이스 농장을 가장 많이 이용했던 것은 다름아닌 뉴욕 양키스였다. 로저 매리스를 필두로, 퇴물이 됐던 에노스 슬래터[6]를 에이스가 겨우 살려 놓으니 도로 가져가버리곤 했다. 양키스에서 망한 유망주였던 밥 서브의 경우에는 에이스가 살려놓으니, 양키스로 도로 데려가버리고는 또다시 망한 사례. 그런 말도 안 되는 트레이드한 뒤에는 돈 라슨[7] 같은 퇴물만 받아오니 성적이 유지될 수가 없었다.

6년 동안 이 구단을 소유하고 있던 존슨은 결국 60년에 구단을 리 핀리에게 매각하였다. 핀리는 팀을 살리기 위해 칙칙한 유니폼을 노란색으로 바꿨고 68년에는 오클랜드로 연고지를 이전했다.

2.3. 리 핀리와 1970년대의 영광

팀을 살리기 위해 핀리는 갖은 노력을 하였고, 인기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녹색 유니폼이 바로 이 때 생겼다. 그 전까지는 단순히 검정, 회색, 하얀색 밖에 유니폼에 없었는데 노란색, 녹색 등의 원색 유니폼을 통해 이미지를 참신하게 바꿨다. 또한 공격적인 야구를 위해 70년대에 들어서는 지명타자제를 제안하여 73년부터 실시되어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의 차별점을 두었다. 채택되지는 않았으나 스트라이크 아웃을 스트라이크 두개로, base on balls를 볼셋으로 바꾸는 것도 제안했다. 월드 시리즈를 야간 경기로 제안한 것도 핀리였다. 팀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위해 장발이나 수염도 허용했다. 70년대에 에이스에 장발이나 수염 선수들이 많은 것이 바로 이 이유. 필라델피아 시절의 기억을 지우고, 오클랜드 고유의 상징을 도입한 것도 핀리 시절의 일이다.


1973년 10월 21일 뉴욕 메츠를 제압하고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의 순간. 유니폼이 태평양 돌핀스 같다.

1969년부터 아메리칸 리그에도 지구제가 실시되었고, 마침 롤리 핑거스, 캣피시 헌터, 레지 잭슨, 바이다 블루, 진 테나스와 같은 뛰어난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1971년부터 1975년까지 5년 연속 지구 우승 및 1972년부터 1974년까지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한다. 양대 리그를 통틀어 양키스를 제외하고 3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한 것은 이 시기의 에이스가 유일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때 선수들의 연봉이 상승하고 야구 환경으로 변화로 인해 프리 에이전트 제도가 실시되면서 자금력이 부족한 에이스는 주력 선수를 차례차례로 내 보낼수 밖에 없었다. 결국 우수한 선수들이 떠나면서 팀 전력은 약해졌고, 결국 핀리는 오너의 자리를 물러났다.

2.4. 월터 A.하스와 1980년대의 영광

핀리가 팀을 판 후, 한동안 침체에 빠졌던 팀은 야구를 좋아하던 터 A.하스가 새로운 구단주로 등장하면서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하스는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던 인물이었고, 그 결과 오클랜드에는 다시금 우수한 선수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핀리 시절에 잠시 사라졌던 흰 코끼리와 같은 상징도 재도입하면서 긴 역사를 가진 팀을 다시금 상기하기도 했다.

이런 투자와 함께 1986년 토니 라루사 감독이 부임하면서 상승세를 타게 된다. 이 때 오클랜드에서 뛴 유명한 선수가 최초의 40홈런 - 40도루 달성자인 호세 칸세코, 최고의 강타자인 마크 맥과이어의 배쉬 브라더스(Bash Bros.), 역대 최고의 리드오프 리키 헨더슨, 1이닝 마무리의 원조 데니스 에커슬리, 팀의 에이스인 데이브 스튜어트 등이다. 이들의 활약 속에 오클랜드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3년 연속 리그 우승을 하면서 전성기를 맛보게 된다.

그러나 이 최고의 전성기에 차지한 월드시리즈 우승은 1970년대와 달리 한 번 뿐이었다. 1988년에는 LA 다저스에게 1차전 앞서고 있는 상황에서 크 깁슨에게 역전 끝내기 홈런을 맞으면서 흔들리며 결국 시리즈 패배.


1989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베이 브릿지 시리즈[8] 에서 4:0 스윕으로 우승에 성공했지만, 1990년에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라던 신시내티 레즈에게 0:4 스윕 패배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게 되었다.

1992년 디비전 타이틀은 획득했지만, 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에서 패하면서 그들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구단주 월터 A.하스가 1995년 타계했고, 구단은 이제 돈을 쓸 수 없는 팀이 되었다. 그러면서 라루사 감독도, 전성기의 최고의 선수들도 모두 팀을 떠나면서 약체로 전락했다.

2.5. 빌리 빈의 머니볼 시대

90년대 중반에 3개 지구로 재편되면서 LA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텍사스 레인저스, 시애틀 매리너스와 같은 지구가 되었다. 더 이상 많은 돈을 쓸 수 없던 그들의 형편 상, 전력에서 뒤쳐지며 1990년대 후반부에는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빌리 빈이 단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 그 유명한 머니볼을 통해 적은 돈을 통한 효율적인 야구로 이름이 높았다.

연봉 총액도 낮고, 선수들의 면면도 그리 좋지 않아 보이던 이 팀은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엄청난 돌풍을 일으켰다. 매번 예상을 뒤엎고 미친 활약을 선보인 것. 2000년과 2001년에는 제이슨 지암비라는 뛰어난 타자가 버티고 있었다고 해도, 그가 FA로 팀을 떠난 뒤에도 2002년 20연승 기록을 세우고, 2003년에도 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빌리 빈이 만들어낸 팀에 대해서 크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 시기의 문제라면 결국 디비전 시리즈에서 매번 한 끗 차이로 아쉽게 탈락했다는 점. 2승 3패로 모두 떨어지면서 월드시리즈에 도전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머니볼이란 마이클 루이스의 책을 통해서 이름이 정립된 것인데, 거칠게 요약하면 이른바 5-tool이라고 일컫어지는 툴 중에서 쓸 데 없이 몸값을 올린다고 판단한 수비, 주루의 부분을 최대한 배제하고 선구안과 배트 스피드를 바탕으로 한 타격 툴에 비중을 두는 것이다. 사실 점수생산에 공헌하는 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세이버메트릭스라면 머니볼은 거기에 예산 투입까지 고려했다. 때문에 과대평가되었다고 생각한 수비나 주루에 대한 비중을 줄인 것인데, 물론 다른 팀 관점에서 보면 신경도 안 쓰는 선수들이지만 이런 선수들이 모여 플옵에 나가는 경우가 매우 자주 있었다. 단 절대로 수비나 주력을 무시하고 선구안을 중시하는 것만이 머니볼은 아니다. 여담으로 이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의 책은 국내에도 번역되어 나와있고 상당히 재미도 있으니 한번 책을 보는 것도 괜찮지만, 저자가 내용의 재미를 위해서인지 약간 틀어놓은 점도 있다. 다소간의 비평은 필요하다.

머니볼 시대의 특징을 본다면, 먼저 선발 중시, 불펜 천시의 팀이라는 것이다. 선발은 싸고운 좋으면 연장 계약도 하고, 오기도 하는데 불펜은 연장 계약도 없고 값 오를 때쯤 되면 짤없이 팔린다. 즉 주요 마무리 수출 팀 중의 하나다. 근 10년 간 제이슨 이스링하우젠, 빌리 코치, 키스 폴크, 최고의 자질 가진 옥타비오 도텔, 휴스턴 스트리트, 앤드류 베일리 등이 팔려나간 바 있으며, 팔린 마무리들의 일관된 공통점은 바로 옮긴 팀에서는 신나게 불쇼를 저질렀다는 것. 게다가 마크 멀더치 하든의 부도로 인해 믿고 쓰(면 큰일나)는, 유망주는 아낌없이(흠집내서) 주는 오클랜드 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다... 라곤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오클랜드 산 선발은 괜찮은 평가를 받는다. 팀 허드슨 사례도 있고, 댄 해런 사례도 있고...


특히 2000년대 초반 팀 허드슨-마크 멀더-배리 지토로 이어지는 영건 트리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그렉 매덕스-톰 글래빈-존 스몰츠로 이어지는 3인방에 밀리지 않는다는 평을 들었다. 이들은 최고의 활약을 보이던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허드슨과 멀더가 81승, 지토가 72승을 거두며 대활약했다. 그 뒤를 받치던 테드 릴리, 마크 레드먼, 애런 하랑, 코리 라이들 등도 준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투수였다.[9] 하지만 연봉 문제로 허드슨과 멀더를 트레이드시키면서 첫 번째 3인방은 해체되었다.

2.6. 2006년의 성공과 추락.

몸값이 싸던 지토만 재계약에 성공한 뒤 치 하든과 지토 중심의 선발진이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새로운 영건인 댄 해런[10]조 블랜튼이 성장하며 지토와 뉴 영건 트리오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 영건 트리오의 경우 하든의 꾸준한 부상[11], 블랜튼의 성장 정체[12] 등으로 사실상 댄 해런-배리 지토의 원투 펀치 수준으로 봐야 무방한 기간이었다.

그래도 프랭크 토마스라는 로또도 터지면서 2006년 마침내 미네소타 트윈스를 스윕하며 디비전 시리즈를 통과했지만, 결국 월드시리즈에는 진출에 실패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게 0:4 스윕 패배를 당하면서 탈락한 것. 그리고 이 때의 절정기를 끝으로 길고 긴 구장 이전 문제와 리빌딩에 돌입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구단 소유주도 새롭게 바뀌면서 구장 이전 문제로 인해 많은 지출은 어렵게 되었고, 언제 이전할지 모르는 구단에 정을 주지 않으면서 구단의 재정은 과거보다 더 악순환의 늪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결국 빌리 빈의 리빌딩 결정으로 새롭게 형성한 선발진인 블랜튼, 하렌, 하든, 지토가 모두 팀을 떠나며 불펜에 있던 저스틴 듀셔러와 댈러스 브레이든이 선발로 전환하게 되었다. 이 둘은 사실상 낀 세대였지만 듀셔러는 2008년 중반까지 사이영 페이스를 보였고, 브레이든은 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도 하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스위셔 트레이드에서 주워온 지오 곤잘레스, 하렌 트레이드에서 얻어온 브렛 앤더슨, 그리고 팀에서 원칙을 깨고 고등학생을 뽑은 몇 안 되는 유망주 레버 케이힐이 2009~2010년에 터지면서 새로운 영건 트리오를 결성했다. 이렇게 결성된 오클랜드 선발 투수진은 영건 트리오 Ver. 3+댈러스 브레이든 정도에 5선발로 빈스 마자로, 타이슨 로스, 조시 아웃맨, 브랜든 매카시가 거쳐가는 형태다. 이 세번째 영건 트리오는 2009~2011년 5월까지 78승을 합작해냈는데, 중간중간에 앤더슨이 부상으로 빠졌다던가, 2009년은 지오 곤잘레스가 피칭에 눈뜨기 전이었던가 하는 점, 정작 중요한 오클랜드의 승률이 5할 주변에서 맴돌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오클랜드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머니볼 시대에는 끝내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성취를 얻는데는 실패했다. 이렇게 된 것에는 잘나갈 때는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머니볼이지만, 그것도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이야기고, 그 이야기가 널리 퍼진 이후에는 그런 이론은 30개 구단 모두 다 안다는 점에 있다. 결국 방법이 같으면 돈이 밀리는 오클랜드는 힘들기 마련. 단적으로 돈 많이 쓰는 오클랜드식 운영을 보여준 팀이 테오 엡스타인보스턴 레드삭스. 여기에 빌리 빈의 트레이드에 대해 이제 사람들이 더 이상 속지 않으면서 화려한 트레이드로 상대를 속이는 전략은 취하기 힘들어졌고, 빅 마켓 구단 역시 더 이상 팜을 등한시 하지 않으면서 결국 돈에 밀리는 오클랜드는 혁신의 결과물을 오래 독점하지 못했다.

여기에 머니볼 드래프트로 알려진 2002년 드래프트의 성과물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 반면[13]에 구체제파로 묘사된 구 드래프트 팀의 성과물은 상당히 괜찮았던 편[14]이었다. 이 드랩의 평가는 애매한데, 1라운드 픽 7개를 가지고 있으면서 메이저 선수 2명에 트레이드 카드 하나만 건졌다는 것은 분명히 실패작이지만 애초에 계약금의 제약까지 고려하면 반박도 가능하긴 하다. 그리고 빌리 빈의 황태자라고 불리던 에릭 차베즈가 부상에 이은 실력 저하로 오클랜드의 짐이 되어버렸다.[15] 또한 이 기간에는 빌리 빈의 장기였던 트레이드를 통한 전력보강도 잘 통하지 않았다. 튼 브래들리의 대가로 내준 안드레 이디어가 준수한 선수로 거듭났고, 맷 홀리데이의 경우는 그를 데려올 때 콜로라도에 내준 카를로스 곤잘레스가 대폭발한 반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홀리데이를 보내고 받은 선수들은 모두 실패하면서, 빌리 빈의 커리어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이런 실패가 겹치면서 머니볼 시스템에 대한 회의도 커졌다. 2007년부터 11년까지 팀 성적이 5할을 넘지 못했던 5년간은 짧지만 암흑기라고 볼 수 있다.

2.6.1. 2010년

2010년엔 댈러스 브레이든퍼펙트 게임을 달성하기도 했고 리그 최고의 평균자책점을 찍었지만 타선의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에 간신히 5할 승률을 찍으며 서부지구 순위 2위에 그쳤다. 오랜만의 5할 승률 복귀에 만족하고, 리빌딩에 들어갈 모양새.

...는 훼이크고

2.6.2. 2011년

2011년 스토브리그에서, 데이비드 데헤수스를 트레이드로 데려온 것으로 시작해서 마쓰이 히데키,랜트 발포어,라이언 푸엔테스[16]를 FA로 영입해왔다.

일본프로야구의 이와쿠마 히사시도 한 번 찔러 봤다가 예상 가격이랑 안 맞자 그냥 철수해버리기도 했다.[17]

2011 시즌, 압도적인 영건 3인방+브레이든의 힘으로 시즌 초반 무섭게 달려나가 5월에 아주 잠깐 1위에 등극했다. 하지만 글러먹은 타선의 힘과 경험부족으로 인해 헤맨 영건 3인방의 부진으로 무섭게 치고 내려갔다. 2011년 초반, 강력하게 달려나가던 영건 3인방+브레이든과 기타 등등(매카시, 로스, 하든, 모스코소 등등...)이 시즌 중반 크게 부진했다. 앤더슨은 다시 부상으로 토미 존 서저리, 케이힐은 여름 시작과 동시에 대부진, 그나마 잘나가던 곤잘레스는 7월 이후에 대부진. 브레이든은 애시당초 수술하면서 사실상 시즌아웃이 확정되어 있었다. 그나마 기타등등들이 3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해줬기 때문에 이나마라도 했다.

다행히 만만치 않은 타선을 가진 지구 라이벌 시애틀 매리너스이 더 빠르게 추락하는 바람에 3위로 올라갔다. 여담으로 8월 26일 경기에서 곧 총계 20만 경기에 도달하는 길고 긴 MLB 역사 사상 최초로 경기 루홈런 방을 맞았다.

2.7. 2012년~현재 : 머니볼 시즌 투

2.7.1. 2012년

2012 오프시즌엔 지구 라이벌 LA 에인절스 역시 알버트 푸홀스 10년 계약을 지르는(…) 에이스로선 상상도 못할 현질을 저지르는 등 에이스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결국 레버 케이힐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지오 곤잘레스워싱턴 내셔널스로, 클로저 앤드류 베일리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시키면서 리빌딩에 돌입했다.

...인줄 알았는데...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영입 경쟁에서 4년 $36M(!)을 베팅하여 마이애미 말린스, 시카고 컵스 등의 경쟁자들을 벙찌게 하며 낚아채는데 성공, 이장석의 2011-12 넥센 히어로즈와도 같은 모습을 보였다(...)

경쟁자들이 워낙 흠좀무한 페이스를 보여주는 상황이라 2012 시즌은 좀 힘들지 않나 보였지만 5할을 맞추는 것을 넘어 후반기에 뉴욕 양키스와의 홈 4연전을 스윕하는등 상승세를 보였고, 급기야 7월 24일 경기에서 와일드카드 레이스 1위인 앤젤스와 동률을 이루었다! 한편 시즌 중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지명할당된 KIA 타이거즈 출신 트래비스 블래클리가 A's의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며 국내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상승세의 중심에는 앤드류 베일리의 유산인 조시 레딕, 지오 곤잘레스의 유산인 미 밀론, 레버 케이힐의 유산인 이언 쿡, 러드 파커, 로또로 지른 스 스미스, 바톨로 콜론, 트래비스 블래클리가 모두 터졌다는 점이 크다. 빌리 빈의 선수 보는 눈혹은 사기치는 재능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모든 딜에서 보여준 시즌이었다. 오프시즌 주축 투수들을 트레이드하고 유망주들을 끌어온 것은 결국 콩단장의 신의 한 수로 결론나는듯. 결국 10월 1일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9월 말 텍사스 레인저스의 행보가 조금 찜찜하다는 평이 있어서 디비전 우승에 대한 희망이 있었는데, 마침 마지막 시리즈가 텍사스와의 홈 3연전이기에 더욱 주목받았다. 그리고 2차전, 선발 이름값에서 해리슨에게 많이 밀린다는 평을 받던 트래비스 블래클리가 인생 최고의 투구를 선보이며, 텍사스와 동률을 이루었다. 결국 시즌 최종전이 순위 결정전이 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세간에서는 머니볼 시즌 2로 영화 한 번 더 찍어도 되겠다는 평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 조시 해밀턴히 드랍 더 볼에 힘입어 텍사스를 12대 5로 대파하고 2006년 이후 첫 AL 서부지구 타이틀을 가져갔다. 더불어 시즌 마지막 9경기를 남기고 5경기 차를 뒤집어 지구 우승한 팀이 되었는데, 이는 MLB 최초라고. 또한 단 하루만 1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 우승을 달성한 역대 세 번째 팀이다. 앞선 팀은 1951년의 뉴욕 자이언츠 , 2006년의 미네소타 트윈스

ALDS에서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원정에서 2패를 당하고 홈에서 히 드랍 더 볼을 시전하긴 했지만 코코 크리습의 끝내기를 포함해 시리즈를 2-2로 만들었지만 홈 5차전에서 저스틴 벌랜더의 완봉투에 무참히 관광당하며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 팬들은 그래도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보여준 팀을 위해 "Let's go Oakland"를 외치며 경기장에 끝까지 남아서 박수를 보냈다.

2.7.4. 2015년

오프시즌 팀의 과제는 팀의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2014 시즌 끝나고 상당히 많은 선수들이 FA가 되었고, 스몰마켓인 오클랜드는 선수들이 연봉조정만 들어가도 부들부들 떨어야 하는 팀이다. 일단 2015 시즌까지 계약된 선발투수 스캇 카즈미어제프 사마자를 두고 이들이 있는 2015 시즌까지는 강한 팀을 만들며 승부를 보고 그 다음에 리빌딩에 들어갈지, 아니면 이들을 지금 팔아서 애디슨 러셀이 나가고 부족해진 팀의 유망주나 미들 인필더진을 보완할지 하는 문제다. 빌리 버틀러와 3년 30M 에 계약했을 때 사람들은 오클랜드가 2015 시즌에도 대권에 도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봤다.

그런데 조시 도널드슨을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했다!!! 루머조차 없이 갑작스럽게 MVP급 선수를 팔았다는 것에 사람들은 놀라고, 도널드슨을 주고 받아온 것이 브렛 로리와 중간급 유망주 셋. 토론토가 자랑하는 젊은 선발들을 하나도 못 데려왔다는 데 사람들은 다시 놀랐다. 오클랜드 팬과 분석가들은 말 그대로 충공깽. 마침 그 날 국내에서도 이보다 더한 무브가 터졌다[18]

빌리 빈은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 링크 해석하자면 리빌딩을 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빌리 버틀러의 영입과 브렛 로리를 데려온 것으로 볼 때 리툴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브렛 로리의 컨트롤 기간이 3년으로 도널드슨의 4년보다 짧긴 하지만, 로리가 90년 1월생인 반면 포텐이 뒤늦게 터진 도널드슨은 85년 12월생으로, 에이징 커브, 나이가 들면서 선수들 퍼포먼스가 하락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널드슨을 그 가치가 최고조인 때 팔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받아온 선수들. 공개입찰했을 때 토론토의 이 패키지보다 훨씬 좋은 패키지를 받아올 수 있었다는 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게다가 오클랜드의 약점인 즉전감 유격수 혹은 2루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빌리 빈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머리를 깨서라도 알고 싶어 하고 있다.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라 카더라 [19]
그리고 논텐더된 아이크 데이비스를 데려오고, 얼마 뒤에는 제프 사마자를 화이트삭스, 브랜든 모스를 클리블랜드, 주전포수 데릭 노리스를 샌디에고로 각각 유망주 패키지와 무더기로 교환하며, 내년 시즌은 리빌딩으로 점쳐지는 중.

...이라는 말도 있었지만...

벤 조브리스트를 트레이드해왔다!! 그것도 팀내 탑 유망주인 대니얼 로버슨을 포함, 대니얼 로버슨, 존 제이소, 북 파웰을 주고 조브리스트와 유넬 에스코바를 데려왔다. 이미 버틀러와 로리 영입으로 일반적인 리빌딩은 아니라는 것으로 보였지만 FA 1년 남은 조브리스트를 탑유망주 보내고 데려오면서 리빌딩은 아닌 것으로 확정.

원래 켄 로젠탈에 따르면 오프시즌 초기 어슬레틱스의 플랜은, 브렛 로리를 2루로 전환시키고 체이스 헤들리를 영입해 3루수로 쓰는 것이었다. FA시장에 전문 2루수 매물이 전무한 상태에서 나름 참신한 계획이었지만, 헤들리가 8M을 더 오퍼한 에이스 대신 양키스 잔류를 택하면서 무산되었고, 이로 인해 후속 무브들이 추가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20]
벤 조브리스트를 포기하면서 대니얼 로벗슨을 내 주었지만, 현재 에이스 프런트는 하위 마이너에 내야수만 무지막지하게 쌓아두고 있던 터라 애초에 정리가 필요했고, 결국 2014년 스탁턴에서 브렉아웃한 로벗슨-올슨-누네즈 삼총사 중 가장 가치가 뛰어오른 로벗슨을 보낸 것이다.(BA 오프시즌 유망주 랭킹에서, 올해 빅리그로 올라갈 놀린과 그래이브먼을 제외하면 알칸타라와 오버튼 둘만 투수고 나머지 여섯은 내야수, 그 중 올슨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격/3루수에다가 모두 올해 미들A~더블A에서 시작할 선수들이다(채드 핀더도 원래 유격수인데 로벗슨 때문에 2루로 뛰었었다) 또한 로젠탈에 따르면 원래 레이스는 파웰 대신 올슨을 달라고 했으나, 팀내 거의 유일한 1루수 좌타 슬러거인 올슨을 지키기 위해 파웰과 현금으로 대체했다고.(확실히 오프시즌 초기 발표처럼 레이스가 페이롤에 관해 오너쪽에서 축소 명령을 내린게 맞는 듯 하다.)
빌리 빈은 조브리스트 트레이드 이후 5M의 여유가 남아있으며, 아직 자신들의 무브는 끝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조브리스트가 아니었다면 쿠바 2루수 헥터 올리베이라 영입에 강하게 대쉬하던걸 지속했겠지만, 좁이 오면서 좌익수 파워히터 쪽으로 선회할 것 같다. 아마 좌타자로.
현재 전력으로도 팬그래프 프로젝션으로는 88승 찍는다. 도널슨 레스터 사마자 모스 다 나가면서 fWAR 17정도 빠져나가고 들어온 건 10도 안되는데도 왜 작년과 같은 승수로 프로젝션되냐면, 작년 오클랜드의 피타고리안 승수는 98승이기 때문이다(;;;) 워낙 전반기 득점을 잘 벌어두고 투수진은 후반기에도 잘 버텨줬기에 피타고리안 승수와 실제 승수간의 엄청난 격차가...

1월 14일에는 워싱턴 내셔널스로 벤 조브리스트와 함께 데려온 유넬 에스코바를 보냈다. 대가는 내셔널스의 불펜 투수 타일러 클리파드.

그리고 조용히 지나가나 했으나...2월 17일. 배리 지토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해야갤은 지톸ㅋㅋㅋㅋㅋㅋㅋ로 터졌다

2.8. A's의 포스트시즌 실패 요인?

많은 이들은 정규시즌에 극강의 모습을 보이는 머니볼 시스템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저력이 포스트시즌만 가면 약해지는 것에 의아해했다. 여기서는 그에 대한 그럴듯한 근거를 하나둘씩 찾아보기로 한다. 추가로 과거에 왜 에이스는 우승을 못하는가에 대한 분석이 있었는데 관련 글은 여기를 참고하라.

2.8.1. 선발 대결에서 밀렸다?

실제로 뉴욕 양키스(정규시즌 87승 74패)에 3-2로 패퇴한 2000년의 오클랜드(91승 70패)에는 3점대 ERA 혹은 조정ERA 120 이상의 선발이 없었다.[21][22] 게다가 마무리에는 마리아노 리베라가 든든했고.
2001년(102승 60패)에도 뉴욕 양키스(95승 61패)와 만나는데 이 해 양키스에는 마이크 무시나-로저 클레멘스-앤디 페팃이 3점대 ERA로 200이닝을 돌파하는 활약을 보였다.[23]
그러나 2002년(103승 59패) 상대팀인 미네소타 트윈스(94승 67패)에는 정규시즌 200이닝 선발이 없었다! 2003년(96승 66패) 만난 보스턴 레드삭스(95승 67패) 역시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제외하면 오클랜드를 압도할만한 선발은 없었고, 2006년(93승 69패) ALCS에서 만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95승 67패)도 선발진이 오클랜드보다 매우 좋은 편은 아니었고, 2012년 디트로이트(88승 74패) 역시 저스틴 벌랜더를 제외하면 마찬가지.

그래도 이는 5차전에 믿고 내보낼 수 있는 절대 에이스가 있느냐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수긍이 가는 편인데 2000년 ALDS 5차전의 선발 대결은 페팃 - 길 헤레디아, 2001 ALDS 5차전은 멀더 - 클레멘스, 2003 ALDS 5차전은 페드로 - 지토였다. 포스트시즌 경험이 풍부한 백전노장들과 영건들의 대결에서 패한 것이란 분석이 가능하다. 2006년 ALCS에서도 경기 내용상 디트로이트 선발진에게 봉쇄당한 것이 컸고, 2012년 ALDS 5차전에서는 영건 1선발 러드 파커를 내세웠다가 7회 급격히 무너지고 타선은 벌랜더에게 완봉을 당했다.

하지만 에이스가 단기전의 보증수표는 아니다. 2014년 포스트시즌에서 범가너 정도를 제외하면 기존의 에이스들은 모두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에이스로 단기전에 막강한 성적을 내던 존 레스터를 데려온 오클랜드 역시 무너졌다.

2.8.2. 수비가 불안하다?

이 부분은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는 사항이다. 특히나 수비 때문에 매번 플레이오프마다 뒷목을 잡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팬들이라면 더더욱.

현재 가장 신뢰도가 높은 수비 스탯 중 하나인 Ultimate Zone Rating이 계산되기 이전인 2000년에 오클랜드는 리그에서 2번째로 많은 134개의 실책을 범했다. 2001년에도 리그에서 3번째로 많은 125개의 실책을 범했고[24], 2002년부터 계산된 UZR 데이터에 따르면 2002년 오클랜드는 비록 표면상으로 드러난 실책은 102개로 전에 비해 적었지만 UZR은 -29.1로 영 좋지 않다.[25] 2003년에도 마찬가지로 리그 하위권 수비진을 데리고 역시 하위권 수비진을 보유한 보스턴과 만나지만 3차전에서 한경기 4실책의 위엄을 자랑하며(...) 패퇴. 그런데 DS 전체 실책은 보스턴이 더 많았다. 2006년에는 전체 실책 84개, UZR도 플러스를 찍으며 이전에 비해 상당히 호전된 모습을 보였고 실제로 DS에서 미네소타의 실책에 힘입어 3-0으로 스윕하고 CS에 진출했지만 역시나 리그 최고의 수비진을 자랑한 디트로이트에게 장렬한 스윕패.

그러나 가장 2012년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는데,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수비진을 데리고 텍사스 레인저스를 스윕[26]하며 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야심차게 디비전시리즈에서 디트로이트[27]를 만났지만 이번에는 원정 2연전을 먼저 치르면서 2패를 안고 시작한 탓인지, 5차전에서 제대로 임자 만난 탓인지 결국 탈락했다.

물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근거지만, 수비에 있어서만큼은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의 수비진이 좋지 않았던 반면 2008년 월드시리즈 진출 등 리그 최고의 수비진을 앞세워 돈 없는 구단도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탬파베이 레이스의 사례도 있으니, 무엇보다 결정적인 상황마다 실책으로 자멸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플레이오프 단골 애틀랜타의 사례도 있으니 한 귀로 흘릴 종류의 문제는 아니다.

2.8.3. 떨어지는 주루 능력?

사실 수비나 선발 대결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꼽혔던 것인데, OPS 위주의 타선은 장타 생산과 출루 능력이 좋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루 능력이 떨어지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정규시즌에는 떨어지는 주루 능력을 장타나 출루로 상쇄할 수 있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점수를 짜내고 그것을 지켜야 하는데 점수 짜내기가 안되다 보니 오클랜드가 번번히 무너졌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오클랜드에도 발빠른 선수가 없는 건 아니었다. 외야수인 벤 그리브나 테렌스 롱, 자니 데이먼 같은 선수들이 빠른 발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데이먼을 빼고는 적극적으로 도루를 시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들은 얼마 안있어 트레이드로 팀을 떠났으며, 에릭 번즈나 레이 더램, 그리고 2000년대 후반에 영입된 라자이 데이비스를 빼면 도루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없었다. 이렇게 되면서 자연스레 홈런에 의존한 뻥야구 스타일이 되었으며 2007년부터 지속된 팀 타격 침체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다만 2000년대 후반에 리그에서 적극적인 주루플레이를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탬파베이 레이스 같은 팀들이 호성적을 거두자, 빌리 빈도 여기에 착안해 넓은 구장의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해 발빠른 선수들을 지명 혹은 영입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앞에서 말한 라자이 데이비스, 애리조나로 이적한 클리프 페닝턴, 키 윅스의 동생인 저마일 윅스, 5툴 플레이어인 요에니스 세스페데스와 페닝턴을 주고 데려온 크리스 영이 있다.

2.8.4. 결국은 운이 지독히도 나빴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들보다 더 큰 것이, 포스트시즌은 샘플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운빨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빌 제임스가 개발한 log5 시스템 등 여러 포스트시즌용 세이버메트릭스 지표들에 의하면 A's는 몇번 더 CS에 진출할 수 있었다. 시리즈 총 스코어도 2000년에는 19-23으로 양키스에 앞섰고, 2002년에는 트윈스 27-26 A's, 2003년에는 레드삭스 17-18 A's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5차전마다 상대 에이스 투수에게 가로막힌다거나 실책을 남발하며 장렬히 전사...

2.8.5. 클린치 게임에서의 부진

상술한 것처럼 애슬레틱스는 시리즈를 끝낼 수 있는 엘리미네이션 게임에서 특히 부진했는데, 2000년 이후 ALDS 5차전에서 단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으며 2013년 종료 시점을 기준으로 최근 13경기에서 무려 1승 12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둔다. 이는 2000년대 이후 한번만 더 지면 탈락하는 시리즈 벼랑 끝 경기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정반대. 위에서 언급된 슈퍼 에이스의 부재라든가 팀 전체적으로 뒷심이 부족했다든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도 있지만 13경기에서 12번이나 졌을 정도면 뭔가 꼬여도 한참 꼬였다는 것.

3. 특징

아메리칸리그 창립 멤버이기도 한 이 팀은 리그에서 가장 꼴찌를 많이 한 팀이기도 하나, 역으로 아메리칸 리그에서 뉴욕 양키스 다음으로 리그 우승(15)/월드시리즈 우승(9)이 많은 팀이기도 하다. 양키스(36~39, 49~53, 96~00)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월드시리즈 3연속 우승(72~74)을 달성한 팀이기도 하다.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없지만 유망주 하나는 끝내주게 잘키우는[28] 팀 중 하나다. 현재까지 월드시리즈만 9번 우승한 명문팀, 팀이 배출한 대표적인 유명선수는 캣피시 헌터, 마크 맥과이어, 호세 칸세코, 제이슨 지암비, 배리 지토, 팀 허드슨, 마크 멀더 등이 있다. 라이벌 팀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는 서로 만 하나를 두고로 마주보고 있다, 자이언츠와 애슬레틱스의 대결은 일명 '베이브릿지 시리즈'로 유명하다. 특히 1989년 월드시리즈에서는 이 두 팀이 붙어서 에이스가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다만 그 해 월드시리즈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시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인해 더 크게 기억되는 편... 샌프란시스코 항목 참조.

1980년대 후반, 리그 3연패 하던 시절에는 옆동네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연고지 이전을 고려할 정도[29]로 관중동원도 잘 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 오클랜드 시측과 잠시 마찰을 빚어서 로스앤젤레스로 튀었던 NFL 팀 레이더스가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오면서 암운이 드리워지게 되는데. 원래 레이더스가 오클랜드 시절에 수퍼볼을 2번이나 제패한 명문이어서 로스앤젤레스로 튄 이후에도 10년이 넘는 동안 여전히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어서 복귀와 동시에 애슬레틱스의 독점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게다가 레이더스의 복귀와 더불어 구장을 다시 풋볼을 하기 좋게 개조를 해 버리는가 하면 우선 세입자의 권리를 레이더스에게 줘버리는 등 애슬레틱스를 완전히 서자취급한데다 문제는 오클랜드 지역의 시장성이 끝내주게 안 좋아서 잘나가던 시절에도 관중동원력이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그 까닭에 구단수익이 적다보니 별 수 없이 빌리 빈 단장은 비싼 FA 지를 바에야 다른 구단에서 버린 퇴물[30]을 영입하거나, 유망주를 적당히 쓰다가 서비스타임 이후 연봉조정/FA 자격 취득 직전에 트레이드라 쓰고 사기 혹은 팬클럽 회원들에게 강매라고 읽는다시키는 형태로 구단을 운영하였다.

물론 이러한 구단 운영은 자칫 막장이 되기 십상이었으나, 오클랜드 단장 빌리 빈의 독특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했고, 월드시리즈에도 나간 적이 있기 때문에 2004년 이후로 스몰마켓 팀들에게 오클랜드산 머니볼 열풍을 불러오기도 했다. 요즈음의 성공사례는 캔자스시티 로열스(?)[31], 탬파베이 레이스[32]등.

4. 홈구장 O.co 콜리세움 & 연고 이전 문제

O.co 콜리세움 항목 참조.

5. 라이벌

5.1.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과거 연고지 이전하기 전 각각 필라델피아와 뉴욕을 연고지로 하고 있을 때 밑에 언급되지만 자이언츠가 '너네 이기는 건 흰코끼리보다 더 드물다.'라고 도발하자 당시 빡친 애슬레틱스가 흰코끼리를 정식 마스코트로 쓰면서 월드시리즈에서 관광태우는 등 악연은 두 팀이 이웃지역에 위치하기 전부터 있었다. 현재에 접어들어서는 인터리그가 아니면 만날 일이 없지만[33] 구장과 연고지 문제에 나와있듯이 여전히 쭉 사이가 나쁘다. 자이언츠는 같은 지구 숙적 다저스와 인터리그로 만나는 양키스를 주적으로 삼고 있지만 텃세 및 여러 이유를 내세우며 애슬레틱스를 가난한 구단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원인을 제공하는지라 애슬레틱스 팬들은 달갑지 않게 여긴다.[34] 한마디로 애슬레틱스 입장에서는 같은 지구 텍사스와 에인절스를 제외한 앙숙을 한팀 꼽으라면 자이언츠다.

5.2.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같은 아메리칸리그 서부 지구라 자주 만나고, 에인절스는 캘리포니아 남부, 오클랜드는 북부라 지역감정까지 겹쳤으며, 오클랜드가 지구 우승을 할 때는 에인절스의 승수 조공도 작용해 에인절스가 이를 갈고 있다. 2014 시즌에는 오클랜드의 추락에는 에인절스에게 연속적으로 털린 것도 작용했다.

5.3. 텍사스 레인저스

텍사스가 리빌딩에 성공하며 2009년부터 본격적인 강호로서 도약을 하지만 같은 지구 오클랜드에게 몇 번이나 지구 우승을 내주고, 선두 경쟁 때마다 자주 부딪치는지라 자연스럽게 지구 라이벌 구도가 세워졌다.

6. 이야기거리

6.1. 마스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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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image (Unknown)]


독특하게 코끼리를 팀의 마스코트로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또 기구한 사연이 있다.

뉴욕 자이언츠의 감독이던 존 맥그로는 이 팀을 '흰 코끼리'라고 놀렸다가[35] 이 말을 듣고 빡돌은 당시 감독겸 구단주 코니 맥[36]이 아예 흰 코끼리를 마스코트로 삼고 월드시리즈에 자이언츠를 상대로 승리해버렸다. 이후로 코끼리를 팀 마스코트로 사용하고 있다. 이름은 Stomper. 이후 찰리 핀리가 구단주로 취임한 이후에는 잠시 찰리-0-뮬이라는 마스코트를 사용한적이 있는데. 이유는 정치적 문제때문인데. 코끼리가 현 미국 공화당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했던 정치적 병크. 이후 월터 A.하스가 이후 핀리의 막장짓을 지우기 위해 다시 부활시키고 찰리-0-뮬은 결국 핀리의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6.2. 유니폼

유니폼이 촌스럽기로 유명하다. 디자인은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기본적인 컬러링은 약 40년 넘게 유지 중. 물론 이는 엄연히 취향 차이라 좋아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그 예로 한국에서 비슷한 색을 가졌던 현대 유니콘스는 초-노 계열이었지만 역대 최고의 유니폼으로 꼽힌다.) 하지만 초록색+노란색은 좀. 농협 애슬레틱스 팀을 오클랜드로 옮긴 찰리 핀리가 골수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아일랜드의 상징 색인 초록색을 팀 컬러로 정한 이후로 이렇게 됐다. 그리고 90년대 후반부터는 아예 바지 밑단을 스타킹이 안 보이게 내리거나 무릎까지 끌어 올리고 종아리를 전부 감싸는 스타킹이 유행이라 잘 보이지 않지만, 스타킹 밑에 신는 양말은 샛노란 색이다. 80년대 이전 이 팀의 자료화면 사진을 보면 초록색의 끈형 스타킹 밑으로 누런 색 양말이 부조화를 더하고 있다.


80년대의 유니폼은 다음과 같다. 사진은 1989년 월드시리즈 우승 당시 사진. 바지 밑의 노란 양말이 인상적이다. 참고로 지금도 선수들은 스타킹 밑에 저 색 양말을 신고 있다. http://brad.photoshelter.com/image/I0000b2HK13nTd7w

7. 역대 프런트

7.1. 구단주

기간 이름 비고
(1901~1921) 벤 시브 코니 맥과 공동 구단주.[37]
(1901~1954) 니 맥 벤, 톰, 존 시브와 1937년까지 공동 구단주, 이후 단독 구단주. 1951년부터는 자식들과 공동 구단주.
(1921~1937) 톰 시브 & 존 시브 코니 맥과 공동 구단주.
(1951~1954) 얼 맥 & 로이 맥 코니 맥과 공동 구단주.
(1954~1960) 아놀드 존슨 캔자스 시티로 구단을 옮김.
(1960~1980) 찰리 핀리 [38]
(1980~1995) 월터 A.하스 [39]
(1995~2005) 스티브 쇼트& 켄 호프먼 [40]
(2006~현재) 루 울프 [41]

7.2. 단장

기간 이름 비고
(1901~1950) 코니 맥 구단주 겸임
(1950) 미키 코크레인 탑 스타 플레이어 포수 출신.
(1950~1953) 아더 엘러스
(1954~1959) 조지 셀커크 양키스의 탑 스타 플레이어 출신.
(1959~1960) 파크 캐롤
(1961) 프랭크 레인
(1961~1965) 팻 프라이데이
(1965~1967) 행크 피터스
(1968) 에디 로팟
(1969~1980) 찰리 핀리 공석이나 구단주 겸임이나 다름 없음.
(1981~1982) 빌리 마틴 감독 겸임
(1983~1997) 샌디 앨더슨 [42]
(1998~현재) 빌리 빈

8. 영구 결번

필라델피아 시절에도 레프티 그로브, 코니 맥, 미 팍스, 알 시몬스 같은 명예의 전당 인물들이 있지만, 등번호도 없던 시절이기도 하고, 너무 옛 일이고 또 멀리 떨어진 동네 일이기도 해서 결번으로 기념하지는 않고, 애슬레틱스 프랜차이즈의 한 역사로만 남았다. 그래서 영구결번된 선수들은 모두 오클랜드 시절 선수들.

9. 레지 잭슨(Reggie Jackson) : 통산 563홈런을 자랑하는 강타자. 오클랜드와 뉴욕 양키스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하고 월드시리즈 MVP가 되었던 선수이자 두 구단에서 모두 영구결번된 명예의 전당 외야수. 별명도 10월의 사나이(Mr.October).

24. 리키 헨더슨(Rickey Henderson) :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1번 타자.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7. 캣피시 헌터(Catfish Hunter) : 1960년대 말~70년대 초반을 풍미한 이닝 이터 에이스. 오클랜드의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끈 후, 뉴욕 양키스로 건너가 1977,78년 2연패에 공헌했지만 지나친 혹사로 일찍 무너진 선수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멤버.

34. 롤리 핑거스(Rollie Fingers) : 1970년대 오클랜드의 전성기 당시 팀의 마무리로 맹활약했던 선수. 통산 341세이브를 기록한 투수이자 1974년 월드시리즈 MVP.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멤버.

43. 데니스 에커슬리(Dennis Eckersley) : 통산 197승 390세이브를 기록한 1이닝 마무리의 원조. 1992년 사이영상과 리그 MVP를 동시에 수상했는데, 2011년 저스틴 벌랜더가 수상하기 이전까지 투수로서는 마지막 기록이다. HoFer이자, 1980년대 후반 오클랜드의 전성기 주역.

월터 A.하스(Walter A. Haas, Jr.) : 1980년대 팀의 구단주로 애정을 아끼지 않고 투자를 해서 팀을 강호로 만든 업적을 기려 따로 기념하고 있다. 콜리세움 우측 펜스에는 하스의 이름이 들어간 유니폼이 붙어있다.

42. 재키 로빈슨 : 전 구단 공통

9.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9.1. 트리플 A

내슈빌 사운즈
Nashville Sounds
창단 1978년
계약년도 2015년
소속 리그/지구 퍼시픽 코스트 리그/아메리칸 컨퍼런스/남부지구
연고지 테네시 주 내슈빌
홈구장 퍼스트 테네시 파크
  • 2014년까지는 밀워키 브루어스와 계약을 맺고 있었다. 2015년부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을 체결했다.

9.2. 더블 A

미들랜드 락하운즈
Midland RockHounds
창단 1972년
계약년도 1999년
소속 리그/지구 텍사스 리그/남부지구
연고지 텍사스 주 미드랜드
홈구장 시티뱅크 볼파크

9.3. 싱글 A

스톡턴 포츠
Stockton Ports
창단 1941년
계약년도 2005년
소속 리그/지구 캘리포니아 리그/북부지구
연고지 캘리포니아 주 스톡턴
홈구장 배너 아일랜드 볼파크

벨로잇 스내퍼스
Beloit Snappers
창단 1982년
계약년도 2013년
소속 리그/지구 미드웨스트 리그/서부지구
연고지 위스콘신 주 벨로잇
홈구장 해리 C.폴먼 필드

버몬트 레이크 몬스터즈
Vermont Lake Monsters
창단 1977년
계약년도 2011년
소속 리그/지구 뉴욕 펜 리그/스태들러 지구
연고지 버몬트주 벌링턴
홈구장 센테니얼 필드

9.4. 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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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글자색이 노란색인 모자는 원정 갈때 쓰는 모자이다. 홈경기에서는 글자색이 흰색인 모자를 사용한다.
  • [2] 월드시리즈 출범 전인 1903년 이전 우승을 제외하면 14회
  • [3] 닉네임 안 붙이기로 유명한 유럽 축구에서 적잖게 볼 수 있다.
  • [4] 단장이 빌리 빈인데 빈이 영어로 콩이라 콩클이라 부른다.
  • [5] 뚱뚱한 선수가 많았던 것은, 후술하지만, 머니볼의 영향 때문이었다. 수비와 주루보다는 선구안과 장타율을 보다 보니 뚱뚱한 선수들이 많을 수밖에.
  • [6]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레전드로, 광란의 질주라고 불리는 월드시리즈 결승 홈 쇄도로 유명하다. 카디널스에서 나온 뒤에는 주로 양키스에서 활동했다.
  • [7] 메이저리그 사상 유일한 월드시리즈 퍼펙트 게임을 달성한 선수로, 양키스에서는 중상정도의 활약을 펼친 선수였다. 물론 캔자스 오고나서는 1승 10패 크리를 먹으며 몰락하기 시작한다.
  • [8] 어떻게 보면 가장 아찔한 월드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지진. 1989년 10월 4일에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홈구장인 캔들스틱 파크에서 월드 시리즈 3차전이 펼쳐지기로 했는데 경기 시간 30분 전에 진도 7.1의 강진이 샌프란시스코를 덮쳤다! 이 지진이 유명해진 가장 큰 이유는 TV로 생중계된 지진이었다는 것.당시 ABC 방송 TV 방송 역사상 최고(!)의 오프닝입니다."라는 앨 마이클스(現 NBC Sunday Night Football의 캐스터)의 멘트가 압권이다(...) 결국 이 3차전은 취소되었고 무기한 연기 조치되었다.
  • [9] 참고로 릴리, 하랑, 라이들은 에이스를 떠난 후 자리잡은 팀에서 에이스 역할을 해주던 선수들이다.
  • [10] 멀더 트레이드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오클랜드로 이적.
  • [11] 뉴 영건트리오를 형성한 2005~2008년 전반기까지 평균자책점은 2점대 중반으로 화려했으나 선발 등판 수는 44번에 승수는 20승에 그쳤다.
  • [12] 이전의 영건트리오에 비하면 부족한 성적이었다. 딱 준수한 2, 3선발 수준. 그래도 그 기간 동안 51승 챙겼다. 하지만 필라델피아로 간 이후에는... 플러스원 취급.
  • [13] 그나마 성공작은 1픽이었던 닉 스위셔이지만, 스위셔는 기존 틀에 집어넣어 보아도 충분한 1픽감이었다. 그 외는 조 블랜튼 정도가 성공작이고, 마크 티헨도 있었지만 빛을 본 것은 오클랜드를 떠난 다음이었다. 그외의 선수들은 대부분 메이저 진출 실패, 특히 머니볼 드래프트를 상징하는 선수인 제레미 브라운도 결국 메이저에 발도 제대로 디뎌 가지 못하고 방출당했다.
  • [14] <머니볼> 책에서는 고졸 로또들을 지르는 1라운드 팀들을 비웃지만, 그해 고졸 로또들의 면면이 B.J. 업튼, 잭 그레인키, 프린스 필더, 콜 해멀스, 맷 케인, 존 레스터(...) 실제 스카우트들도 사이너빌리티 같은 문제들을 제외하면 "아 올해는 고졸이 대세구만"이라는 평가였다. 반면 대딩 투수라고 "그래도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대딩 뽑잖아"라고 칭찬했던 데이브 리틀필드의 1픽 브라이언 벌링턴은 2011년 현재 일본프로야구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에이스가 되었다(...)
  • [15] 2006년부터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연봉이 1000만불이 넘던 2008~2010 시즌에는 부상으로 거의 시즌 전체를 거르면서 3년 도합 3홈런 25타점에 그친다. 오클랜드에서 푹 쉰 뒤... 2012 시즌부터 성적이 반등하는 중
  • [16] 더 놀라운 것은 발포어와 푸엔테스는 불펜투수다!! 그 빌리 빈이 불펜을 FA로 물어오다니!!
  • [17] 타 팀 견제용이었다는 설도 있다. 이와쿠마 히사시 항목 참조.
  • [18] 한국시간 11월 28일 새벽에 이대형KT 위즈로 넘어간다는 것이 알려졌고, 미국시간 11월 28일 저녁에 이 트레이드가 터졌다.
  • [19] 마침 이날 11월 28일이 랙 프라이데이.
  • [20] 하지만 브렛 로리유리몸 기질을 생각하면 대단히 위험한 계획. 토론토는 최근 2루수 포지션에 대단히 약점을 갖고 있었는데 왜 로리를 3루수로 유지했을지 생각해 보면 결코 간단한 선택은 아니다. 그리고 로리가 3루수에서라도 건강히 버텨줄지도 의문이다. 로리의 건강은 이 트레이드의 성패를 가름짓는 핵심 요소.
  • [21] 팀 헛슨은 갓 데뷔하여 20승이나 거두며 다승 위주의 투표를 하던 사이영 투표 기자단에 의해 사이영상 2위까지 오르긴 했지만 200이닝을 돌파했지만 평균자책을 고려하면 솔리드한 선발 수준이지 에이스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반면 양키스에서는 로저 클레멘스가 13승과 3.70 ERA, 204⅓이닝을 먹은 바 있다.
  • [22] 다만 2000년만큼은 ALDS에서 2패를 당한 주인공이 클레멘스였기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 [23] 그러나 A's는 이 해 배리 지토, 헛슨, 그리고 마크 멀더라는 통칭 영건 3인방이 자리를 잡았다. 이들의 활약은 사실 양키스의 쓰리펀치보다 앞서면 앞섰지 밀리진 않았다.
  • [24] 뉴욕 양키스와의 ALDS 5차전에서 실책으로 자멸하는 장면은 영화 <머니볼>의 초반부에 잘 나타난다.
  • [25] 참고로 2002년 ALDS에서 애슬레틱스를 물먹인 미네소타는 2002년 UZR이 64.0으로 메이저리그 1위였다. 월드시리즈에서 대결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애너하임 에인절스 역시 MLB 탑5에 드는 수비진을 보유하고 있었다.
  • [26] 잘 알려져 있다시피 텍사스 중견수 조시 해밀턴은 마지막 경기에서 히 드랍 더 볼을 저질렀다(...) 그 결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와일드카드 게임으로 밀려났고 레인저스는 거기서도 패배.
  • [27] 2012년 디트로이트는 수비로 일냈다 리그 최악의 수비진을 보유했다. 팀 UZR -28.1
  • [28] MLB의 현대 유니콘스? 인기팀들 사이에 낑긴 비인기팀, 2000년대 한정 돈 없는 팀, 그래도 성적은 좋았던 팀, 심지어 유니폼 색까지 초록색 계통인 팀이라는 공통점까지 공통점이 상당히 많은 팀이지만 현대는 이젠 역사속으로...
  • [29] 이 당시 여러 대도시에서 자이언츠를 유치하려 했었고, 그 중 하나였던 탬파-St.피터스버그에서 이를 대비하기 위해 경기장을 지었으니 그게 바로 현재 탬파베이 레이스의 홈구장인 트로피카나 필드였다.
  • [30] 예를 들면 에루비엘 두라조, 스캇 해티버그, 노마 가르시아파라, 마이크 피아자, 프랭크 토마스, 마이크 스위니, 제이슨 지암비, 마쓰이 히데키, 잭 커스트 등이 있다. 특히 지명타자 포지션에서 이런 사례가 많은 편.
  • [31] 하지만 에이스는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가보기라도 했지 로얄스는... 잭 그레인키는 신문 인터뷰에 "내가 이 팀에 6년동안 있는데 리빌딩 선언만 4번을 했다"면서 하소연을 했다. 그래도 팜은 2011년 현재 MLB 전체 2위
  • [32] 이 팀의 단장 앤드류 프리드먼은 MLB의 신 거성으로 손꼽힌다. 조 매든 감독과 함께 힘을 합쳐 2008~11 4시즌 연속 5할 승률 이상, 2008년 월드시리즈 진출, 2010~11 포스트시즌 진출 등 굵직한 결과를 냈다. 로열스보다도 성과가 월등히 앞서며, 2011년 현재 MLB 전체 팜 순위 1위.
  • [33] 고정 인터리그인 베이 시리즈라 매년 만나기는 한다.
  • [34] 다저스와는 공동의 적을 가졌다는 동질감 때문인지 묘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저스와 애슬레틱스의 또 하나 공동의 적은 밑에서 언급되는 에인절스.
  • [35] 자연 상태에서 알비노증에 걸린 흰 코끼리를 찾기란 정말로 어렵다. 이 때문에 부진하던 당시 애슬레틱스의 성적을 가지고 맥그로는 '이 팀은 이기는 날을 찾는 게 흰 코끼리만큼 어렵내여 ㅋㅋㅋ'라고 조롱한 것이다.
  • [36] 이 사람은 50년동안 감독을 했기 때문에 통산 3731승으로 역대 1위이다. 다만 패한 것도 3,948패로 1위이다. 참고로 50년간 감독을 한 것은 그가 구단주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
  • [37]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의 홈구장이었던 시브 파크의 주인.
  • [38] 괴짜 구단주로 유명했다. 난쟁이를 타석에 세운다거나, 지명타자, 지명주자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오클랜드로 구단을 또 옮겼다.
  • [39] 구단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구단주로 손꼽힌다. 구단에서도 꼽히는 기념비적인 구단주로 알려져있다.
  • [40] 돈을 지나치게 아꼈고, 이는 역설적으로 머니볼이 탄생한 배경이 된다.
  • [41] 절망적인 마켓 상황에 연고지 이전이라는 강수를 두는 것으로 지역 팬들에게 매우 까이고 있는 구단주이다. 이도 어쩔 수 없던 것이 처음에는 실리콘 밸리 쪽에 찔렀다가 까이고, 오클랜드 시도 풋볼팀에만 간 쓸개 다 내다주고 있으며, 이후에도 프리몬트, 라스베가스, 포틀랜드, 새너제이 다 찔러 봤는데 잘 안 되고 있다. 그런 소문이 도는 동안 지역 팀 팬들은 하나 둘 팀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 것.
  • [42] 세이버매트릭스를 구단 경영에 도입한 최초의 단장들 중 하나. 그의 이론은 그의 밑에서 일하던 빌리 빈에게 큰 영향을 미쳐 현재의 머니볼의 기초가 되었다. 현재는 뉴욕 메츠의 단장을 맡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