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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리코의 전투

last modified: 2015-06-30 20:59:2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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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Contents

1. 개요
2. 내용
3. 의의
4. 과학적 검토
5. 윤리적 검토
5.1. 개신교의 해명
5.2. 여호와의 증인의 자폭
5.3. 가톨릭의 해명
5.4. 비종교인들의 결론
6. 영향
7. 대중매체
8. 참고 항목


1. 개요


성경(구약성서 여호수아서)에 묘사되는, 히브리인(유대인)과 나안인의 전투. 전장이 현재 이스라엘의 예리코(여리고)였기 때문에 흔히 예리코의 전투라고 불린다. 개신교에서는 여리고의 전투라고 부른다.

현재 유대인이스라엘을 차지하는 가장 근원적인 명분이자 시오니즘의 실질적인 당위성이 되는 사건. 물론 더 이전에 있었던 출애굽 사건 같은 것도 있지만 명분 제공 차원을 넘어 본격적인 실천에 옮긴 것은 이것이 최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전까지 유대인은 어떤 도시에도 정착하지 못한 이집트 출신 난민이었다. 그러나 이 전투를 통해 가나안 주민들로부터 예리코를 강탈함으로써 유대인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들의 '조국' 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참고로 아브라함 시절의 경우는 어디까지나 남의 땅 더부살이 차원이었지 가나안을 통치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게다가 어느 정도 사료적 증명이 되는 예리코 전투 이후와 달리 이집트 이전 시대의 행적은 나중에 가나안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꿰어맞춘 전설에 가깝다는 견해도 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전쟁은 종교적인 이유로 매우 미화되어 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명백한 침략 전쟁이다. 구약성서의 다른 전투들도 상당히 미화되었지만 예리코의 전투의 경우 성경에 묘사된 그대로를 따르자면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 예리코를 먼저 쳐들어간 것도, 그리고 그 예리코의 힘 없는 노약자와 유아까지 다 살육한 것은 바로 유대인이다. 침략 및 살육 행위를 역사/종교적으로 미화하여 노래까지 만들어 부른다고 생각을 해보자. 살던 사람을 싹 다 죽여버렸기 때문에 따질 사람마저 남지 않았다. 그래서 다 죽인 건가

하지만 그렇게 살육했어도 가나안 완전정복에는 실패하고 유대와 혼합되어 버린다. 다만 이를 실제역사라고 볼 수 있는 역사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어떻게 받아들이든 묘사 자체는 잔혹함이 변함이 없기 때문에 저연령층에게 구약 성경공부를 시킬 때 이 사건은 대충 넘기거나 그냥 빼고 넘어간다. 사실 구약성경 자체가 잔혹하고 현대인 관점에서 비윤리적인 대목이 많기 때문에 한국이든 미국이든 저연령층은 구약이 아니라 신약부터 가르치는 편이다.

성경중에서도 구약, 그중에서도 특히 예리코의 전투 부분은 '과연 성경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축자적으로 참인가, 유기적으로 참인가?' 등의 개념이 잡혀있거나 최소한 비슷한 개념이라도 잡혀 있어야 이해할 수 있기에 저연령층에게 교육하기가 쉽지가 않다. 또한 교육하더라도 학살을 옹호하는 식으로 주화입마 당하는 아이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골치아픈 문제.

실제로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간에 어린이 구약교육의 경우는, 주님이 세상을 창조했고 아담과 하와가 잘못을 했다(에덴동산),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고 착하게 살면 구원 받는다(노아의 방주)는 정도의 교훈에서 그친다. 구체적이고 진지한 신학적인 견해는 성인들의 성경교육에서 배우게 된다. 그리고 이쯤부터 서로 상대종파를 열렬히 까게 된다

본 항목이 성경의 역사 기술 방식과, 고대 전쟁에 대한 이해가 없이 쓰여졌다는 기독교인들의 항의가 있었다.

그러나 비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해당 내용은 기독교 측에서 자기 편한 식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으며, 이런식의 성경 풀이는 야훼와 성경의 신성성이 사라지는 결과가 나올 뿐으로 보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성경이 왜곡이 섞여있고 편집과 필사상의 비의도적 오류도 있으며 고대인들의 낙후된 세계관과 유대인들의 민족성 등이 섞여있는, 인간적인 한계가 있는 경전임을 감안하게 되면, 성경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두교 신화, 군 신화와 다를 바가 없는 단순한 이스라엘 신화집으로 보일 뿐이다.

2. 내용


당시 유대민족은 이집트로부터 벗어나긴 했지만 앞날이 막연하기만 했던 떠돌이 집단으로 첫 지도자였던 모세는 계시를 통해 가나안 땅이 하느님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이라며 그 땅의 선주민들을 축출하고 가나안을 차지할 것을 명했다. 하지만 정작 이를 실천할 능력이 되지 못해 40년간 광야만을 떠돌았을 뿐이었다.

성경에 따르면 이런데, 실제로는 40년이 아니라는 이야기부터 당시 팔레스타인람세스 2세의 전쟁 때문에 유대인들이 정착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서에 나오는 여호수아포도 이야기와 저주는 예리코 전투 이전 유대인들이 나안에 정착하려다 실패했음을 암시한다는 분석도 있다.

종교적 해석에 따르면 처음에는 유대인이 이집트를 나와서 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는데 정찰을 위해 보낸 스파이 12인 중 단 둘, 여호수아만이 하느님을 믿고 바로 침공하자라고 주장하고 나머지 10인은 가나안에 가면 다 죽는다고 유대인을 선동하다가 하느님의 분노를 사서 여호수아와 갈렙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세 포함 아무도 40년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막을 뺑뺑이 돌라는 벌을 받았다. 근데 이거 아무리 봐도 40년 동안 뺑뺑이 돌리는 '벌' 이 아니라 40년 동안 세력을 기르고 있었던지 아니면 40년 동안 쫄아서 못 들어간 걸 정신승리하는 문구로밖에 안 보인다

이후 모세의 사후 리더의 자리는 여호수아가 잇게 되었다. 그는 유대민족을 전투종족으로 개량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고 체계적인 가나안 공격에 착수했다. '하느님이 약속해준 땅이다' 라는 미명하에 마침내 유대군이 요르단 강을 넘어 가나안 침략을 개시했으나 가나안 주민들이 '어서 와줍쇼' 할 만큼 정신줄 놓은 사람들이 아니므로 당연히 자신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맞서 항전했다.

예리코의 방어가 예상보다 굳건하여 교착 상태에 빠지자 유대 침공군은 차츰 전의를 잃어갔다. 여호수아서 6장에 따르면 이때 여호수아에게 하느님의 계시가 있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성채를 일곱 번 돌고 제사장이 나팔을 불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외치면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백성이 성에 들어가 성 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고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했으며 무리가 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다고 되어 있다. 이렇게 적으니 설명이 좀 긴데 한 마디로 파괴, 살육, 방화, 약탈을 했다는 것이다. 혼돈, 파괴, 망가!

다만 약탈에는 반론의 여지가 있는 게 예리코를 발굴했을 때 집집마다 곡식이 쌓인 채 남아있었다고 한다. 식량의 확보가 최우선이었던 고대에 곡식을 챙기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 당장 성경 내에서도 약탈에 대한 구절이 있는 마당에 약탈에만 반론의 여지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성경에서 말하는 예리코의 전투 자체가 실제로는 없었던 일이라고 보는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

어찌되었든, 예외적으로 유대스파이들을 숨겨준 기생 라합과 그 일가는 살려줬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라합의 자손에서 다윗예수가 나왔다는 건 주목할 일. 그런데 가나안 선주민 입장에서 보면 한 짓이 아즈텍에서 말린체가 한 짓이나 진배없다 성서에서는 붉은 줄을 내린 성벽 부분만 무너지지 않아 라합 일가는 살아 남았다고 한다.

이렇게 진멸[1] 당한 예리코는 유대민족 최초의 거점이 되었고 가나안 정복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예리코 전투 이후로도 가나안을 둘러싼 싸움은 당연히 계속되었다. 다만 초토화와 몰살이 자행된 예리코 성과는 달리 다른 가나안 정착민들에 대해서는 유화적으로 구슬린 사례도 종종 있다. 이 경우는 그 부족 대표가 속임수를 써서 머나먼 곳에 있는 부족에서 온 것처럼 구라를 쳐 동맹를 맺은 후 나중에 진상이 밝혀져서 그 대표가 종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어쩌면 패해서 평화조약을 맺은 것을 완곡히 이야기 했을 수도 있다.

3. 의의


이 신화적 사건이 종교적으로 후대에 야기한 파급력은 엄청나게 크다. 당장 팔레스타인 분쟁 자체가 이 전투의 결과에서 싹이 텄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며 십자군이 편성될 당시에도 성전이라는 명분에 대한 주요한 근거였다. 아니 애초에 예리코를 공격하지 않았으면 성경이 쓰여질 수조차 없었다. 곧 세계사마저 뒤바꿔놓은 전투였다.

물론 성경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본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실 유대교가 바알 신앙으로부터 분리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며 그 이전까지는 사실 종교적 차이가 있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출애굽기나 유대 민족이란 것이 존재했는지가 의문이란 것. 사마리아만 봐도 알 수 있다.

예리코 자체가 서아시아아프리카 사이 길목에 놓인 요충지로서 고고학적인 조사에 의하면 인류 최초의 도시들에 맞먹을 정도로 오래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가 불탄 곳이라는 점을 들어 이렇듯 처참한 사건은 예정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예리코 전투 이후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계시랍시고 파괴시킨 도시에 대해 아예 재건을 금하도록 했다. 그리고 저주까지 내렸다.

성경에 따르면 그 뒤 북이스라엘에서 국방 목적으로 성을 개축했는데 건축 책임자의 자식들이 모두 죽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언급된다. 이 점은 근동에서 자주 일어나는 건축물에 대한 인신공양을 빗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예리코를 개축할 당시 유대인들은 야훼 신앙에서 다소 마음이 떠나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고대의 일이었다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엄연히 침략에 전쟁 범죄를 저지른 셈이며 성경에서 부정하는 악마의 행위들을 히브리족 스스로가 주의 이름으로 벌인 셈인데 그것을 과오로서 인정하지 않고 신성한 전쟁이라고 주장하는 행위에 대해 비판이 많다.

실제로도 기독교 세력에서 이슬람지하드는 비판하면서 예리코 전투는 언급도 안하거나 심지어 옹호하는 이중적인 언행은 지금도 끊임없이 시비와 언쟁이 벌어지는 영원한 떡밥이다(...)

4. 과학적 검토


이런 성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과학적 사실에 관한 의문점을 남긴다.

  • 40년 동안의 방황이 가능한가?

문제는 탈출기에 보이는 40년 동안의 방황은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데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라므세스를 떠나 수꼿으로 향했는데 딸린 식구를 빼고 장정만도 육십만 가량이 되었다. 그 밖에도 많은 잡식구들이 따라 나섰고 소와 양 등 가축들도 떼지어 따랐다. (출애굽기 12:37~38)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인이 야훼의 인도를 받아 탈출할 때 첫날은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이란 곳까지 행군을 했다고 한다.

'출애굽' 에 동참한 사람은 유아와 여자 및 잡족을 제외하고 장정만 헤아려도 60만 가량이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장정이란 노략질 전투에 참가할 수 있는 군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집트 내 히브리인 인구는 400만을 넘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집트 탈출 때의 히브리인은 줄잡아도 300만 이상은 됐을 것이다.

젊은 장정에게는 부모가 있었을 것이고 늙은 장정에게는 자식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각종 가축까지 포함하면 생명체가 적어도 1000만 이상은 됐을 지도 모른다. 성경 속의 히브리 민족는 당시 남녀노소, 병자, 임산부, 가축 및 가재도구 등 일체가 포함된 잡다한 오합지졸이다. 가재 도구를 비롯한 생활 필수품 일체가 함께 움직이는 거대한 집단이었을 것이다.

실제 라암셋과 숙곳의 거리는 약 40km 쯤 된다. 행군할 때의 앞뒤 사람(생명체)의 거리를 1m로 가정하면 60만 명 항오(行伍, 5열)의 길이는 600km가 되며 300만 명 항오의 길이는 3,000km가 된다. 가축까지 포함된 생명체가 1,000만이라면 그 항오의 길이는 자그마치 10,000km가 된다. 여기서는 간단히 계산하기 위하여 60만과 1,000만을 빼고 가장 그럴싸한 300만 명으로 생각하기로 한다. 다시 말해서 이집트 탈출을 위한 히브리인 300만 명의 항오 행렬의 길이가 3,000km라는 말이다. 그러면 라암셋과 숙곳 사이(40km)에는 75열 종대로 늘어서야 된다.

이렇게 75열 종대로 서고도 맨 앞사람은 숙곳에 이르렀으나 맨 뒤의 사람은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당시 출애굽이 있을 법했던 시절에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지방 사이에는 좁은 길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75열 종대는 불가능하다. 맨 앞이 숙곳에 도착했다고 해도 맨 뒤는 아직 이집트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게 된다. 공간왜곡이라도 걸지 않은 이상 말이 안 된다

한 술 더 떠보자. 이집트의 라암셋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400km 쯤 된다. 따라서 여기에다 300만 명을 늘어 세워도 7~8열의 종대가 된다. 이것도 버겁다.

다만 여기서 나오는 규모는 기본적으로는 장정 60만이라는 문구를 기초로 어림짐작한 규모이기 때문에 정확한 산출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장정 외 부수적인 인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시대에 60만이라는 난민도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될 정도로 굉장히 큰 규모이다. 처음 기록 때 숫자가 부풀려졌다던가 하는 가능성도 생각해둘 것. 또 그 시절에 장정 60만이면 뭉치기만 하면 나라 하나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는 숫자니 굳이 도망칠 필요도 없다.

병력 1만 명만 넘게 동원해도 큰 전투라고 불리던 시절인데 전투 병력만 60만이라니, 이것은 현재의 미국 정도 되는 강대국이 나라를 버리고 항공모함 등 강력한 병기들을 대동한 전국민을 이끌고 떠돌아다니는 것과 같다. 고대판 초시공요새 히브리 참으로 무섭다

애초에 이 정도 머릿수였으면 인구수 500만의 이집트한테 박해나 받고 있었을 리가 없다. 거꾸로 이집트를 정복하면 정복했지. 오죽하면 히브리는 제2중간기의 히타이트나 힉소스와 같은 정복민족이었고 신왕조에서 본토 원주민들에게 패배해서 탈출을 하게 된 것이란 가설까지 나오겠는가!

  • 나팔을 불고 하나님의 영광을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고?

물론 성경에는 실제로도 그대로 되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현실은 시궁창.

고고학적 연구에 의하면 예리코 성벽은 여호수아의 침공 전부터 무너져있던 상태였다고 한다. 한 마디로 빈집털이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근거는 무너진 이유가 갑작스런 강풍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근데 이걸 또 기독교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7번 돌고 나니 강풍과 기타 등등으로 하나님이 무너뜨렸다고 써먹는다. 같은 것을 서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이 쓰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엄청난 함성으로 공명이 이루어져 우연히 토성(흙벽)의 진동수와 맞아 무너졌을지도 모르겠다는 드립도 있다(<바이블 사이언스>의 경우). 물론 과학성에서는 완전히 꽝. 사람의 성량은 유리컵 하나 제대로 깨뜨리지 못한다.

히스토리 채널의 고대의 전투를 주제로 한 시리즈 다큐에서는 여리고 성의 함락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는데 성경에서는 여호수아의 첩자들이 자신들을 도와준 라합에게 '나중에 우리가 공격할 때 너와 너의 친지들을 해치지 않게 너네 집이 어디인지 창가에 줄을 내려서 표시를 하라' 고 하는데 라합의 집은 성벽에 있었으므로 나중에 침공군이 성벽을 돌면서 수비대의 시선을 뺏는 동안 일부 특공대가 몰래 이 밧줄을 타고 성 내로 들어와 성문을 열어주고 불을 지르는 등의 사보타주를 벌여 함락시켰다는 것.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주목해야 할 것은 '성이 무너졌다' 는 사실이 아니라 성이 무너진 뒤 일어난 일이다. 이 부분은 아래 부분에서 더 자세하게 다룬다.

5. 윤리적 검토


성경에 나타나는 야훼의 학살과 기독교의 해명을 다루는 항목이다.

사실 예리코의 전투 뿐 아니라 구약 성경에는 출애굽해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미 다른 민족들이 살고 있던 가나안을 침략하고 전멸시킨 내용들이 심심찮게 나와 있다. 직접 확인해보자.

그러나 너희 하느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이 민족들의 성읍들에서는 숨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그러니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 (신명기 20:16~17, 공동번역성서)

참고로 중세 유럽에서 악마라고 부르며 그렇게도 싫어하던 징기스칸 역시 '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죽여라' 식의 비슷한 명령을 즐겨내렸다. 동족혐오 또한 이런 전통(?)은 후로도 이어진다.

사무엘사울에게 전하였다. "야훼께서 나를 보내시어 그대에게 기름을 부어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으로 세우라고 하셨소. 그러니 이제 야훼의 말씀을 들으시오. 만군의 야훼께서 하시는 말씀이오. '아말렉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한 짓, 즉 이집트에서 올라오는 이스라엘을 공격한 그 일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기로 하였다. 그러니 너는 당장에 가서 아말렉을 치고 그 재산을 사정 보지 말고 모조리 없애라. 남자여자, 아이와 젖먹이, 떼와 떼, 낙타나귀 할 것 없이 모조리 죽여야 한다'." (사무엘기 상 15:1-3, 공동번역성서)

이젠 아예 빼도박도 못하게 유아 살해를 야훼께서 직접 명하셨다(...). 이제 예리코의 전투를 살펴보자.

백성들은 고함을 지르고 나팔 소리는 울려 퍼졌다. 나팔 소리가 울리자 백성은 "와!"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성벽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백성은 일제히 성으로 곧장 쳐들어가 성을 점령하였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이건 나귀건 모조리 칼로 쳐 없애버렸다. (여호수아 6장 20~21절, 공동번역성서)

온 세상을 창조한 사랑 넘치고 전지전능하다는 야훼가 자기를 믿지 않는 자유의지를 행한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인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준답시고 전멸시키는 것도 충격과 공포지만 젖먹이 아기까지 죽이는 짓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말 그대로 극단적인 편애 행위.
신자들이 이 내용을 옹호하거나 미화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주로 예리코는 아기인신공양하는 사악한 집단이기에 진멸당해 마땅하다고 한다. 그런데 '''제물로 바쳐질 그런 아기를 구하지도 않고 같이 죽였다(...). 한 마디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개드립.

5.1. 개신교의 해명


사랑 넘치고 전지전능하다는 야훼가, 자기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인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준답시고 젖먹이 아기까지 죽이는 짓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에 대해 R.A 토리[2]외에 기독교인들은 다음과 같이 해명한다.

가나안과 예리코의 장정들 뿐 아니라 힘 없는 노인과 아녀자, 갓난 아기까지 죽이라고 한 하나님의 명령이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만큼 그들 민족의 죄악이 심각했다고 봐야한다. 이 죄악은 너무도 심각한 것이어서, 당시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에 심각한 패해를 주는 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암세포를 제거해내야 했다. 암세포를 절제하는 수술은 매우 무서운 수술이지만, 나머지 건강한 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해 도덕적인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였던 것이다.

암세포도 생명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전술했지만, 갓 태어난 아기는 그 부모의 죄와는 상관없다.''' 연좌제? 또한 가나안과 예리코인들이 그 정도로 타락했다는 이야기 자체가 그들의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설사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전지전능하다는 야훼가 교육이나 제도 정비를 통해 교화하는 방법을 충분히 생각해냈을 법한데 이런 방법 밖에 생각해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야훼는 전지전능하지 않다는 것이 되는데, 기독교인이 그것을 인정할 리는 없다. 따라서 어떤 변명을 덧붙이더라도 이러한 학살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상 유명한 학살자들도 자신들의 학살 행위에 온갖 변명과 핑계, 명분을 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좀 더 도발적으로 말하면, 이게 홀로코스트와 뭐가 다른가? 나치스가 할 만한 변명에 똑같이 대입해보자.

유대 민족의 장정들 뿐 아니라 힘 없는 노인과 아녀자, 갓난 아기까지 죽이라고 한 히틀러의 명령이 얼핏 보면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만큼 그들 민족의 죄악이 심각했다고 봐야한다. 이 죄악은 너무도 심각한 것이어서, 당시 사람들의 도덕과 윤리에 심각한 폐해를 주는 암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암세포를 제거해내야 했다. 암세포를 절제하는 수술은 매우 무서운 수술이지만, 나머지 건강한 몸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히틀러는 인류를 위해 도덕적인 암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니?

만일 가나안 인들과 예리코인들이 멸절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인들과 예리코 인들에게 멸절됐을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였다.

이 역시 어이 없는 변명이다. 애시당초 침략한 쪽은 이스라엘이다. 북한적화통일이나 한국전쟁을 가지고 저따위 소리를 뇌까린다고 생각해보자. 참고로 이거 개독교 호모포비아들이 성 소수자들을 린치하면서 써먹는 레파토리 중 하나다. ("성 소수자들을 가만히 놔두면 저들이 이성애자들을 시킬 것이다") 그리고 야훼가 전지전능하면 굳이나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시키지 않더라도 새로운 땅 하나 정도는 뚝딱하고 만들어서 이스라엘 인들을 거주하게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 야훼는 결국 전지전능하지 않은 것 아닌가?

  • 예수가 킹왕짱

부모들의 타락으로 인해 아이들도 오염되었을 것이며 이는 예수의 복음으로만 치유할 수 있는데, 당시는 예수가 오기 전이었다.

예수가 야훼보다 전지전능한가? 전지전능한 야훼도 못하는 게 있나 보다. 그리고 부모의 타락으로 아이들이 오염되었다는 말도 동의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우생학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전지전능하다면 일이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 터, 갓난아이를 죽이고 미래에 태어날 아이들의 가능성마저 미리 끊어버릴 정도라면 처음부터 가나안과 예리코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도록 했으면 되었을 게 아닌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타락 때문에 아이들을 미리미리 죽이면서, 세상에 넘쳐나는 온갖 범죄자들은 미리미리 처단하지 않는 이유가 참으로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 구약 시대니까 그 시점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성경에서 여리고 성 전투의 시점은 분명히 구약이고, 이방인들의 믿음과 구원이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진 시점은 신약이다. 즉 구약 시대에는 선택받은 민족인 유대인만의 야훼였으므로 성경에 쓰인 기록을 문제삼지 않을 수 있다. 처음부터 모두의 구원자로 기록되지 않았고, 여리고 전투 당시에는 선택 받았다는 유대인만의 야훼였던 시대에 쓰여졌으므로 성경의 중심 사상에서 전체를 놓고 보면 벗어나지만 쓰인 시점만을 놓고 보면 문제가 없다.

구약 시대니까 그럴 수도 있다는 말도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구약 레위기에서 야훼는 스스로도 분명, 부모의 죄로 그 자식을 죽일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그래놓고 자신을 믿지 않는 아말렉의 젖먹이 아기까지 참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이 구약이 쓰여졌던 그 당시 시대를 감안해도 야훼의 행위는 21세기 현대의 보편 타당한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충분히 비윤리적이며 잔악하기 때문에 비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구약 성경의 내용을 21세기 현대에 가치 있는 내용으로 받아들일 하등의 이유가 없다.


  • 최후의 발악

하나님의 계획은 크고 광대해서 지각이 제한된 인간은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또 지긋지긋한 궤변이 나오셨다. 이건 전형적인 무지에 의거한 논증이다. 그리고 '지각이 제한된' 인간이 '함부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그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다가 벌이고 다니는 게 신이라면 인간은 그런 신을 숭배할 이유 따위는 없다. 크툴루 숭배하자는 말과 뭐가 다른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가나안과 예리코의 아이들은 타락한 사회에 있느니 차라리 죽어서 하나님 품에 있는게 나았을 것이다.

  • 신약성경 패치 드립

최소한 현대에 사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이 이야기 가지고 타 종교 배척을 정당화하면 안된다. 그런데 일부 기독교인들은 구약이 아니라 예수님 하신 말씀을 제발 듣자(...)면서 왠지 모르게 신약과 예수를 가지고 기독교의 이미지를 미화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기독교 교리로 봐도 잘못된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기독교는 구약과 신약을 동일하게 존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구약이 원본이라면 신약은 패치(?)와 같은 개념이기 때문에 구약과 신약이 충돌하는 부분은 신약에서의 관점이 더 완전한 관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까놓고 말해 신약에서 예수에 의해 야훼의 성향이 다르게 그려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야훼가 구약에서 저지른 이러한 학살 행위를 미화하거나 덮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왕년에 잘나가던 조폭 큰 형님이 개심해서 목사가 되었으면 그 조폭 형님이 왕년에 사람들을 죽였던 범죄 혐의도 사라지는 건가

기독교 교리에 의하면 예수는 성자 하나님으로서 태초부터 존재했으며 만물이 이 말씀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진 것이 없다고 언급한다. 따라서 야훼가 명한 예리코의 학살이 이루어지는 동안 예수도 그 야훼의 우편에서 그 모든 것을 지켜봤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덧붙여 참조하면 그런 예리코의 유아 학살 행위를 직접 시행한 것이 예수(=야훼) 자신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 성경도 좀 틀릴수도 있지?

여기에 대해 극소수의 개혁적인 개신교인들은 성경에 나온 내용을 사실 그대로 믿는 것은 사실 근본주의적인 것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기독교장로회, 감리교와 예장 통합 측의 아주 적은 부분적 교세가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수 교단에 비하면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을 그대로 믿으면서도 구약의 야훼의 학살을 애써 무시하며 조롱해도 상관 없지만 성경이 신화도 섞여있으며 왜곡도 섞여있고 편집과 필사상의 비의도적 오류도 있으며 고대인들의 낙후된 세계관과 유대인들의 민족성 등이 섞여있는 경전임을 받아들이는 기독교인 혹은 비신자, 무신론자라면 이 문단의 비판은 사실 조금 핀트가 맞지 않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비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진보적 개신교인들의 주장에 대해, 성경이 신화도 섞여 있으며 왜곡도 섞여 있고 편집과 필사 상의 비의도적 오류도 있으며 고대인들의 낙후된 세계관과 유대인들의 민족성 등이 섞여 있는, 말하자면 인간적인 한계점이 존재하는 경전이라면, 성경이 그리스 로마 신화나 단군 신화와 같은 다른 신화와 다를 바가 대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사실 애초부터 모든 기독교 종파를 해석하는 통일되고 권위있는 해석이란 전무하며, 성경의 어느 구절이 비유인지 어느 구절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인지 알 수 있는 기준 역시 없다. 성경/논란 항목의 4중적 해석법 단락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여기에 대해 크게는 가톨릭과 개신교, 그리고 개신교 내부의 25000여개의 종파들마다 저마다의 성경 해석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은 더더욱 시궁창에 가깝다.

이렇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나타나는 유아 학살이나, 곤충이 네 발로 기어다닌다는 등의 비합리적인 부분들처럼 문자적으로 해석하기 불리한 부분에 대해서 풍유적/영적 해석 운운하는게 아니냐는 비기독교인들의 지적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성공회를 제외하면 성서무오설을 국내 개신교 종파들의 대다수가 지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고신측),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측),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측), 순복음, 침례, 합동 보수, 성결교, 감리교, 그리고 C.C.C. 예수전도단, 밀알 등등의 대부분의 기독교 동아리 조차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과 교회가 성서 무오설을 지지하는 교단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여기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의 합동과 통합이 우리나라의 제일 큰 교단이다.

  • 성서무오설?

이처럼 개신교의 경우, 성서무오설을 지지하는 교단들이 대다수이다. 그러나 개신교 교단 중 소수이긴 하나 성서무오설을 지지하지 않는 이들도 있음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장 칼뱅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신학자가 말하는 '성서무오설'이 '성경 전체의 맥락과 논리 체계 안에서 성경이 참'을 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성경은 문자 하나 하나가 참이며, 역사적 사실과 과학적 진실을 담는다."는 주장과는 다른 것이다. 칼뱅만 하더라도, 그러한 식의 '성서무오설'은 오히려 부정했다.

그러나 비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칼뱅 식 내지는 신학자 식의 성서무오설' 또한 일정의 설정 놀음으로 비칠 수 있으며, 예리코에서의 학살과 같은 성경 내부의 비윤리적이고 전근대적인 내용들을 직접적으로 옹호할 수 없으니 돌려서 합리화 한다고 보일 단점은 있다.

애초에 기독교 신학이라는게 '선하고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에 합리성을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니, 이러한 설명들은 교회 내부에서 이미 신앙을 가진 교인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는데나 사용할 수 있으며, 비기독교인들을 설득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에 가깝다.

  • 성경은 기독교적 해석법을 가지고 읽으라고 있는 책이다.

원래 성경 뿐 아니라 모든 종교의 경전은 그 종교의 교리적 관점에서 읽으라고 있는 책이다. 매우 당연한 소리. 기독교인의 입장에선 비신자들이 성경을 소설처럼 읽고 캐릭터들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겠지만, 기독교인의 입장과 비신자의 입장을 따지기에 앞서, 학술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성경에 나타나는 역사적 사건들은 환단고기와 마찬가지로 주변국 기록과 제대로 교차 검증되는 것이 거의 전무하기에, 성경에 나타난 대부분의 주변국 관련 기록들이 사실이었을 가능성은 한 없이 0에 수렴한다.

바빌론 유수페르시아에 지배를 받은 것, 이집트에 대한 기록 등은 개략적으로 성경에도 나와 있긴 하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보면, 이집트 총리 대신을 역임했다는 요셉부터, 모세, 아론여호수아 등등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고대 이집트 왕조의 기록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집트인들은 그 자신이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해가는 과정까지 기술한 사람들로서, 그 자신들에게 불리하다 하여 기록을 누락시켰다는 개신교인들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 말에 이집트인이 다 똑같냐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이 밖에도 예는 많다. 더 들어보자면, 다니엘서에서 짐승으로 변했다고 묘사하는 느부갓네살은 해당 시기에 멀쩡하게 옆 나라 왕과 영토 문제를 논의하고 있었으며, 성경과 비슷한 내용은 보이지도 않는다. 다니엘서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은 짐승으로 변해 정사를 돌보지 못했다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왕이 짐승으로 변했다는 디테일한 기록은 무리이더라도 최소한 대리 통치인이나 섭정이 바빌론을 통치했다는 기록이라도 있어야 정상이다. 아니, 그 이전에 느부갓네살이 총애했다던 다니엘에 대한 기록도 바빌론 역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또한 히브리 여인으로서 아하수에로(크세르크세스)의 둘째 왕비가 되었다던 에스더의 기록도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내용과 상충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의하면 크세르크세스는 왕비가 교체된 적이 없으며, 그 왕비는 페르시아 장군의 딸인 후타오샤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정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하게도 비신자들은 성경을 소설책보다도 못한, 환단고기 수준의 책으로 여길 수 밖에 없다.

또한 세계 그리스도교의 주요 종파인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회는 성경을 소설책처럼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는데, 해당 종파도 성경의 내용 중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디까지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어디까지를 풍유적이며 영적(...)으로 해석하는 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것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논란 항목의 4중적 해석법 단락을 보면 알겠지만, 가톨릭과 정교회, 성공회, 루터 교회는 성경 해석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없다. 한마디로 어디까지를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어디까지를 풍유적으로 해석하는지 그 기준이 다 제각각이라는 소리다.

게다가 매우 우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기독교인들이 비유적인 의미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성경 구절이 공교롭게도 대부분 야훼의 비윤리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이나, 비과학적이거나, 교차 검증이 되지 않는 구절들이다 보니, 비신자들의 입장에서는 답변하기 곤란한 것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해석법 운운하며 변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3]

5.2. 여호와의 증인의 자폭


집총거부 문제로 군대를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도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전투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집총 문제의 경우 이들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지구의 정부에 대한 권위는 자신들의 신으로부터 내려진 것이라 인정하지만 실제 자신들의 나라는 하늘 왕국이라고 믿고 교리에 의해 군대를 거부하기 때문.

물론 하느님의 군대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무기를 잡을 준비도 되어있지만 이들은 교리적으로 성서의 '복수는 하느님의 것(아마겟돈)' 이라고 여기며 폭력, 살인 등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리코 주민들에 대한 학살에 대해선 이들은 물론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으니 아주 당연하게 여긴다.

뭐 길게 떠들 것도 없이 공식 사이트의 내용을 확인해보라. 이 이중잣대야말로 여호와의 증인이 가장 크게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다.

5.3. 가톨릭의 해명


신명기를 저술한 ‘학파’에 속하면서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최근(기원전 7-6세기)의 체험에 비추어 묵상하려는 편집자가 이러한 사실을 기초로 해서, 그 때까지 형성된 여호수아기의 자료들을 재해석하게 된다. 이러한 묵상은, 이전 작품에 가한 수많은 손질 외에, 특히 1장과 23장에 나오는 긴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로써 가나안 땅의 정복은 이제 일부 이스라엘인들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의 일로 제시된다(10, 28-39 참조). 그리고 이 책에서는 요르단 동쪽 지파들이 계속 언급되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의 일치가 위협받는 시대에 그것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다(1,12-16; 12,1-6; 13,8-32; 22,1-6 참조).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이스라엘에게 나뉘지 않은 온전한 마음으로 그분을 위하여 투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다른 신들을 섬기는 민족들과 공존함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충성이 언제든지 훼손될 수 있다. 그래서 여호수아기에 이 충성에 관한 생생한 관심이 배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가나안 땅에 사는 민족들을 전멸시켜야 한다고, 곧 그들을 모두 “완전 봉헌물”로 바쳐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전망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6,17.21; 11,12.14). 이 책을 읽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이러한 조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기보다는, 이 책이 쓰일 당시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인 설명이다. 이는 이스라엘인들이 피할 수 없었던 우상 숭배의 위험을 뼈 저리게 경험하고 난 뒤의 생각을 과거의 역사적 사건들에 투영시킨 것이다.


가톨릭에선 후대의 저자 혹은 편집자의 의도가 반영되어서 그렇게 쓰여졌으며, 이 전투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기보다는 이 책이 쓰일 당시의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위한 하나의 이론적인 설명이라고 본다.

성경에는 유다인들이 가나안을 단기간에 모조리 밀어버린 뉘앙스로 나오지만, 역사적으로도 고고학적으로도 오랜기간 그곳 원주민과 공존한 것이 확실하다. 이 과정에서 우상숭배 등 원주민들의 영향이 나타났고, 후대의 유다인 편집자는 그때 원주민 놈들 전멸시켰으면, 우린 오염되지 않았을텐데 ㅜㅜ라는 의도를 가진것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 역시 흡사 나치삘이 나는 병맛 논리이고, 기원전 사람들의 현대적 가치와는 동떨어진 논리가 반영되어 있지만, 성경에 고대인의 사상이나 도덕 등이 반영된다는 것을 가톨릭에서 성경의 권위가 죽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신앙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시고, 많은 것을 주려고 하신다."이지, 누구누구를 죽여라 하는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역시 종교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죽여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간단한 예시로, 동화 백설공주의 결말은 백설공주와 왕자가 계모를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동화는 어린이들에게 "계모가 너희 괴롭히면 죽여도 된단다"고 가르치는 책이 아니다. 이 동화에서 중요한건 권선징악이다. 물론 성경을 동화책처럼 생각해서는 안되지만, 중요한 것은 책이 애초에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이다.

명심하자. 성경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당대인의 사상을 감안하고, 경전이 본래 하고자 하는 말을 파악하며 읽는 것이다. 쿨타임 됬다. 성서무오설 까자. 물론 성경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만들어진 책이지만, 그것이 문자 하나하나가 참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런식으로 성경을 읽는 태도는, '예리코의 전투'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한 태도이다. 이런 것들을 감안하지 않고 성경을 읽을 경우 자칫 근본주의 성향을 가지거나, 성경의 참 뜻과는 10000광년 쯤 멀어진 신앙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에서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사상이나 문화 같은게 성경에 반영되었다는걸 너희들은 인정하지? 그러면 성경도 기독교의 신도 권위가 없는거 아니냐?"라는 식의 비아냥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성서무오설과 오히려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근본주의자들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사상이나 문화 같은게 성경에 반영되었다는걸 인정하면, 성경과 신의 권위가 추락한다."고 주장한다. 단지 "그러니까 기독교는 사기""그러니까 성경은 100% 무오함"이라는 결과만이 다르게 나왔을 뿐이다.

비록 비신자가 보기에는 설정놀음에 불과해 보이고, 복잡하기 이를데 없는 설명이기는 하다. 그러나 가톨릭은 내부적으로 비록 고대인들의 사상이나 문화가 반영되었지만 성경의 권위를 믿는 자체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다. 즉 가톨릭에서도 주장하지 않는, 오히려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성서무오설이 가톨릭을 비난하는 근거가 된다면, 가톨릭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하기 이를데 없는 일이다.

  • 비판

사실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1500년동안 자신들이 성경을 해석해 왔는데, 500년전 갑툭튀한 개신교 종파들이 자신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한다고 주장하며 그 중에서도 극단적인 보수파들이 주장하는 성서무오설이 가톨릭을 까는 근거가 된다면 매우 억울한 일이긴 하다.

참고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개신교를 보는 가톨릭의 시선은 "빼도 박도 못하는 이단종파놈들!!"이였다. 물론 현대 가톨릭은 개신교를 이런식으로 보지 않으며, 신앙의 형제들로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저 가증스러운 프로테스탄트 놈들이 우리의 형제들입니까? 인정 못합니다. 교황성하 통촉하시옵소서~~"라고 주장하는 성 비오 10세회의 핵심멤버들이 파문을 먹었다(...) 물론 현대 가톨릭이 개신교를 보는 시선이 매우 온건하더라도, 성경 해석의 권위는 가톨릭의 해석을 제일로 친다.

그러나 성경/논란 항목의 4중적 해석법 단락을 보면 알겠지만, 대체 어느 부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어느 부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가톨릭 신자들은, 신학자나 공의회가 이런식으로 '명확한 기준 없이' 해석한 것을 받아먹고 있을 뿐이다.

또한 가톨릭 내부에서 성경은 초월적인 구원의 논리를 담은 책이므로 그 권위는 여전하지만, 비신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단순한 도덕책이나 역사책 이상으로 이를 믿어야 할 합리적인 이유는 전혀 없다. 따라서 가톨릭의 해석 역시 단지 그들만의 해석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결국 가톨릭 측의 해명은 기독교의 해명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내부에서 이미 신앙심을 가진 교우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는데나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5.4. 비종교인들의 결론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개신교의 해명은 물론, 비교적 온건한 가톨릭의 해명 역시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신자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는데나 쓰일 뿐, 비신자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시원치가 않다.

비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볼 때, "성경이 시대적 한계가 분명한 당대인의 사상임을 감안한다면 성경이 그리스 로마 신화나 단군 신화나 여타 다른 신화와 다르다는 그 어떠한 근거도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를 두고 소수의 진보적 개신교인들과 가톨릭 교도들은 이것은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니 뭐니 하지만, 객관적인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이게 근본주의면 신화와 당시 역사적인 상황을 감안해서 신화를 파악하려는 모든 시도가 근본주의다.

사실 까놓고 말해 비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 야훼를 비교하여 야훼만이 실존하는 신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성경은 온갖 오류와 이문과 상호 모순과 비과학과 전근대적인 내용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경이 인간적인 한계가 분명히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진리로 믿는다는 말 자체가, 여기에는 기독교도들의 신앙심이라는 주관적인 요인 외에 어떠한 합리적 이유도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비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신자들의 마음 속의 신앙심을 제외하면 외부적으로 볼 때 성경이 다른 종교의 경전이나 여타 다른 신화와 비교해서 다르다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야훼 또한 제우스오딘, 토르, 사우론이나 간달프(...)와 동급으로 보인다."는 소리다. 물론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에 대한 신앙심이 없으니 처음부터 이 논증에 포함되지 않는다.

야훼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존재라고 하면서 어째서 야훼의 유아 학살을 문제시 삼느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으나, 이러한 부분에 대해 비판적인 비기독교인들은 허구라 하더라도 그러한 야훼를 합리화/옹호하는 행위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임을 근거로 든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라도 유아 학살을 자행했다면 그 인물을 미화/합리화 하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한 마디로 성서무오설을 일관되게 주장하자니 자승자박에 빠져버리고, 이것을 포기하고 유연한 해석을 하면 신자들에게나 효과가 있을 뿐, 비신자들에게는 성경의 권위가 일반적인 신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이 이 예리코의 전투의 내용과 관련된 성경의 딜레마라고 하겠다.

6. 영향


땅밟기를 위시한 이른바 영적전쟁 운운하는 각종 교계 병크들의 근거도 바로 이것. 특히 부산 지역 기도회에서 있었다는 "부산시내의 모든 (불교) 사찰이 무너지게 하소서." 등의 발언을 보면 이른바 '마귀의 세력' 이 예리코 성마냥 무너지고 불타기를 소망하는 뉘앙스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신천지 매스게임을 생각하자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을 통해 종교라는 미명하에 빚어지는 인간의 잔학성으로서 이 사건을 매우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또 이 책의 386~388쪽에는 이스라엘 어린이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예리코의 전투 내용을 읽어주고 그 반응을 파악한 표본조사도 실려있다. 어린이들은 여호수아와 예리코의 전투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았는데 내용 전개는 그대로 두고 침략자를 유대인 대신 린장군으로 살짝 바꿔 소개해줬더니 대부분 침략자 쪽을 나쁜놈이라고 보았다 한다(...). 패드립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할 것.

이 일화를 동화처럼 재밌게 묘사해서 아직 역사에 대한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어린이에게 읽게 한다는 사례도 있다. 아무래도 미친 것 같아요 기독교의 친유대주의 성향이 강한 몇몇 기독교인들이 이러는 일도 있고, 이딴 미친 짓을 국가 정책으로 시행하는 이스라엘은 말 할 것도 없다. 고대의 엄연한 침략 전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전쟁 자체에 대한 분노를 키워야 할 나이에 전쟁과 학살을 미화하는 사상을 주입시키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인권이나 국제법 따위는 있을 리가 없던 고대 민족 간의 치열한 점령 전쟁을 미화해서 설명한 것인데 그걸 현대 기준에 적용시키는 것이 무리라고는 할 수 있다. 모든 종교의 경전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전형적으로 담고 있다. 게다가 구약은 유대민족들의 역사책이라고 생각하는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실제로 구약을 가지고 역사를 배운다!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그래도 차마 창세기부터 역사로 배우지는 않지만

물론 구약이 역사서라는 주장은 당연히 근거가 부족하다. 일단 교차검증이 안 되기 때문에 주류 사학자와 고고학자와 문헌 비평가들은 성경이 역사서라는 주장을 가볍게 개드립 취급한다.

  • 신의 뜻이다!

그리고 이를 신의 뜻이라고 옹호, 미화하는 것은 더 문제다.

비슷한 사례를 참고로 들자면 윌리엄 셰익스피어조차도 백년전쟁잔 다르크에 대해서 그 당시 자신과 영국의 시각으로 편협하게 역사왜곡 사극들을 썼는데 문제는 전세계 곳곳의 셰익스피어의 지지자와 팬들이 현대에서도 그걸 지나치게 옹호하고 원판 그대로 공연을 하여 어그로를 끈 경우가 있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라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극할 때 꼭 원안대로 가지는 않고 연출자의 의도에 따라 내용을 새롭게 바꾸는 경우 있기도 하다.

그러나 원판 그대로 공연을 하는 경우에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며 주입시키는 문제는 똑같이 나타난다. 다만 이쪽은 프랑스인, 세례명 잔 다르크를 쓰는 가톨릭 신자들처럼 항의할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도 모른 척 하거나 조용하다는 점이 다르지만. 빠가 까를 만든다는 진리 자세한 사례는 잔 다르크 항목의 셰익스피어와 잔 다르크 부분윌리엄 셰익스피어 항목의 비판 부분 참조. 시오니즘도 참조하면 좋다.

결정적으로 제국주의 시대 때 강대국들이 아시아, 아프리카의 약소국을 침략, 수탈할 때 써먹던 논리 중 하나가 이 사례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백인의 의무가 있다.

사실 백인의 의무에 관해서는 "미개하고 더럽긴 한데 황인과 흑인을 우리가 고생해서라도 사람이 되게 이끌어주고 깨우치게 하자!" 는 그 당시 상대적으로는 유색인종을 생각해주는 논리였다는 주장이 있긴 한데 애초부터 유색인종들을 백인들보다 못한 존재로 상정했다는 것부터가 에러다. 생각해주긴 개뿔. 실제 결과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미 확인사살이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노예를 열등종족 취급하면서 학대한 사람과 노예가 열등하긴 하지만 우리가 고양이 잘 대해주려고 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돌봐주는 사람의 차이 정도일 것이다. 물론 실제 노예 입장에선 후자가 그나마 낫긴 할 것이다.

사실 미개한 집단을 우리가 잘 깨우쳐주자는 선민의식은 인종 뿐만 아니라 모든 집단 사이에서 자주 일어나는 병크이다. 당장 동아시아에서도 역대 중국 왕조들이 오랑캐 교화드립을 치기도 했다(...). 중국까지 갈 것도 없이 조선 시대 때도 여진족왜구들을 힘으로 누르기보다는 군자의 덕으로 이끌어주자는 주장이 많았다. (...) 예를 들면 조광조가 여진족을 기습해서 토벌하자는 작전에 반대하며 상대를 기습하는 건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7. 대중매체

폴아웃: 뉴 베가스의 DLC Honest Hearts의 내용은 예리코의 전투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인물의 이름이 조슈아 그레이엄인 데다 이 사람 출신지가 뉴 가나안이고 무엇보다 신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정복과 파괴를 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있다.

흑인 영가 중에 이를 소재로 한 것이 있다. 제목은 Joshua fit the battle of the Jericho. 19세기 초에 만들어져 1865년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었다. 주인의 종교를 받아들인 흑인 노예들이 불가능한 승리를 다룬 이 찬송가를 무슨 생각으로 불렀을지...

프로레슬러 크리스 제리코의 링네임과 대표 피니쉬인 월스 오브 제리코(Walls of Jericho)에 들어 있는 제리코가 여기에서 딴 것이다.

나치 독일폭격기였던 Ju87의 급강하 사운드가 여기에서 비롯된 '제리코의 나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토니 스타크가 개발한 무기의 이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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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이것도 성경에 나오는 표현이다.
  • [2] 1856~1928 미국의 신학자,목사, 신학성향이 복음주의자다. 그의 1907년 저서 <성경의 난제 해석>에 잘 나와 있으며, 아래의 의견도 여기서 발췌한다.
  • [3] 성경/논란 항목의 전지전능한 신의 뜻이라 인간은 모른다 항목을 참조할 것. 해당 항목과 매우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