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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 FC

last modified: 2015-03-27 02:14:53 Contributors

2014-15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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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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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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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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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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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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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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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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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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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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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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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날
(Arse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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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톤 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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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튼
(Eve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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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브롬
(West B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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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 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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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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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 파크 레인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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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 팰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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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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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ll)

에버튼 FC
Everton F.C.
정식 명칭 Everton Football Club
창단 1878년[1]
소속 리그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English Premier League)
연고지 잉글랜드 리버풀(Liverpool, England)
홈 구장 구디슨 파크(Goodison Park)
(40,157명 수용)
라이벌 리버풀[2]
구단주 빌 켄라이트(Bill Kenwright)
감독 로베르토 마르티네즈(Roberto Martinez)
주장 필 자기엘카(Phil Jagielka)
애칭 The Toffees, The Blues, The School of Science
공식 홈 페이지 http://www.evertonfc.com

이웃 때문에 묻힌 감이 있지만 사실은 그 이웃 못지않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리버풀 시의 원조 구단.

Contents

1. 소개
2. 역사
3. 우승 경력
4. 최근 시즌
4.1. 2008-2009 & 2009-2010 & 2010-2011 시즌
4.2. 2011-2012 시즌
4.3. 2012-2013 시즌
4.4. 2013-2014 시즌
4.5. 2014-2015 시즌
5. 리즈 시절
6. 이모저모
6.1. 서포터
6.2. 최초의 기록들
6.3. 기이하게도 운이 없는 클럽
6.4. 리그 컵과의 악연
7. 구단주에 대하여
8. 1군 스쿼드
9. 그 외


1. 소개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소속팀. 연고지는 잉글랜드 지사이드 주 리버풀 시이다. 프리메라 리가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틱 빌바오, 세리에 A인테르와 같은 1부 리그 개근 팀이 없는 잉글랜드 리그에서, 2014년 현재 1부 리그에서 110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으며, 강등 없이 60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는, 1부 리그에 가장 오랜 시간 머무른 팀이다.[3] 통산 9회의 1부 리그 우승 경력은 잉글랜드 전체 클럽 중 4번째로 많으며(20회의 맨유, 18회의 리버풀 FC, 13회의 아스날 FC 다음이다) FA 컵도 5회 우승을 기록, 명문 클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엠블럼에 있는 'Nil satis nisi optimum'은 라틴어로 '오직 최고만이 필요하다'라는 의미다.

2. 역사

1878년 세인트 도밍고스 풋볼 클럽(St. Domingo's Football Club) 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고 1879년에 에버튼 FC로 이름을 바꾸었다. 본래는 홈 구장으로 앤필드를 사용했으나 존 훌딩이 앤필드의 주인이 되면서 임대료를 올려버리자 구디슨 파크로 구장을 옮겼다. 에버튼이 구장을 옮긴 바람에 생긴 구단이 바로 리버풀 FC이다. 덕분에 리버풀과는 전통적으로 라이벌 관계이며 두 팀의 경기는 머지사이드 더비라고 불린다.

가난한 노동자들의 스포츠 정도로 귀족들이나 기득권들에게 무시당하던 프로 축구를 제대로 인식하게 한 구단이기도 하다. 1916년 구디슨 파크에 영국 왕세자 일행이 처음으로 보러 와서 인식을 다르게 만들었다.

잉글랜드 1부 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골(1927/28 시즌, 60골)을 집어넣은 윌리엄 랄프 '딕시' 딘이 이 구단 소속이었다. 그가 최다 골 기록을 갱신하기 전까지 최고 기록은 59골이었고 그가 57골을 기록했을 때는 단 한 경기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결국 기록을 깨려면 해트트릭을 기록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상대가 아스날이라 모든 사람들이 최다 골 기록을 깨지 못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그는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그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딕시 딘 시대(1920년대와 1930년대)와 1960년대, 19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으며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여러 악재(잦은 감독 교체, 재정난, 적절한 선수 이용의 실패 등)가 겹치면서 이렇다 할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1995년에 FA 컵 우승과 커뮤니티 실드 우승을 이루어냈으나 그때뿐이었고, 하락세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이때는 매년 강등권을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대탈출'이 이어졌을 정도로 팀 사정이 암울했다. 특히 구단주 피터 존슨이 에버튼 타투를 새길 정도로 팀을 사랑하던 팀의 간판 공격수 던컨 퍼거슨을 감독 몰래 뉴캐슬로 이적시키면서 팬들이 일어섰고, 그 이후 현 구단주인 빌 켄라이트가 부임하게 된다.[4]

그러다가 2002년에 프레스턴 노스 엔드의 감독이었던 데이비드 모예스를 영입하였는데 이 영입이 에버튼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모예스가 다시금 에버튼의 상승세를 불러오게 된 것이다. 점점 머니 게임이 되어가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많이 떨어지는 에버튼의 상황에도 가격 대비 성능비가 뛰어난 선수들을 영입하고 유소년 선수들을 대폭 기용하면서 팀의 전력을 상승시킨 것이 모예스의 대표적인 공적.

모예스 감독의 부임 이후 2004-05 시즌 리그 4위,[5] 2007-08 시즌 칼링 컵 4강, 2008-09 시즌 FA 컵 준우승 등 가시적인 성과가 계속 나오고 있으며 리그에서는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2013-14 시즌부터 로베르토 마르티네즈 감독이 부임하여 새로운 에버튼의 시대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3. 우승 경력

  • 잉글리쉬 풋볼 리그 디비전 1/프리미어 리그: 9회
    1890/91, 1914/15, 1927/28, 1931/32, 1938/39, 1962/63, 1969/70, 1984/85, 1986/87
  • 잉글리쉬 풋볼 리그 디비전 2/챔피언십 리그: 1회
    1930/31
  • FA 컵: 5회
    1906, 1933, 1966, 1984, 1995
  • FA 채리티 실드/커뮤니티 실드: 9회
    1928, 1932, 1963, 1970, 1984, 1985, 1986, 1987, 1995
  • UEFA 컵 위너스 컵: 1회
    1985

4. 최근 시즌

4.1. 2008-2009 & 2009-2010 & 2010-2011 시즌

5. 리즈 시절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에버튼의 최전성기, 즉 리즈 시절은 1980년대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80년대에 리그 우승 2회, FA 컵 우승 2회, 채리티/커뮤니티 실드 우승 4회, 특히 에버튼의 유일한 유럽 대회 우승 경력인 UEFA 컵 위너스 컵[6] 우승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시즌(84/85 시즌)에 리그 우승도 하면서 더블까지 이룩해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높여갈 즈음 헤이젤 참사 크리를 맞아 5년간 유럽 대회 진출을 못하게 된다. 망했어요.[7] 또 04/05 시즌에는 리버풀에게서 4위 자리를 뺏어온다. 챔피언스 리그에 참으로 오랜만에 출전하게 되나 결과는... 역시 돈이 없[8]

6. 이모저모

6.1. 서포터

에버트니언(Evertonian) 혹은 토피(Toffees. 카라멜 비슷한 그것!)라고 주로 불린다. 리버풀 시와 잉글랜드는 물론, 전 세계에 광범위한 서포터층을 자랑하는 리버풀 FC에 상대적으로 밀리는 편이고 한국에선 더더욱 리버풀의 서포터 수에 비해 한참 밀리는 모습이다.[9] 오죽하면 아이러브사커의 한 에버튼 팬이 에버튼을 응원하다가 제발 한국인이면 맨유좀응원합시다란 소리를 들었겠는가. 그래도 과거 강호이자 명문구단으로 역사가 있기에 여기도 세계적으로 서포터층이 있는 편이다.

국내에서 제일 팬이 많은 사이트는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evertonthetoffees이며 다음 카페 http://cafe.daum.net/goodison에서 비교적 전문적인 정보들과 빠른 뉴스들을 볼 수 있다. 2000년 초반에 축구인 서형욱이 에버튼을 방문했는데 구디슨 파크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에버튼 서포터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그들도 동아시아인이 오는 것은 반갑다고 맞이하더란다. 주로 아시아 쪽 축구 팬이 너무나도 리버풀을 알아준다며 속상하다고 할 정도이다. 그나마 에버튼에서 중국인 선수들이 뛸 때에는 중국인 서포터들이 늘어났지만 워크 퍼밋 및 여러 조건이 강화되면서 중국인들이 떠나자[10] 중국인 서포터들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그래도 둘러보면 여기저기 서식하는 에버튼 서포터들이 조금씩 보인다. 유명인 에버튼 서포터로는 비틀즈폴 매카트니, 실베스타 스탤론이 있으며 스탤론은 영국에 오면 여길 자주 들를 정도로 팬이라고 한다. 실제로 에버튼 구단 박물관에 가보면 에버튼 머플러를 들고 웃으며 사진을 찍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최근, 에버튼의 서포터들이 재정위기에 처한 구단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겨서 폴 매카트니에게 애정을 갖고 구단을 인수해달라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감당할 범위가 아니라고 말했다.

라이벌 팀의 양대 전설이 된 스티븐 제라드제이미 캐러거도 유년 시절 에버튼 서포터였다는 얘기가 있으며[11][12] 이와 같이 리버풀 FC에서 선수 생활을 한 에버튼 서포터로는 로비 파울러, 마이클 오웬 등이 있다. 캐러거의 경우 어린 시절부터 에버튼의 선수로 리버풀에게 골을 넣는 것이 소원이어서, 리버풀 대 에버튼의 자선 경기를 개최하여 에버튼이 얻은 페널티킥을 대신 차 넣으며(...) 어린 시절의 소원을 성취하기도. 잘 알려져 있다시피, 에버튼 유스 출신인 웨인 루니의 경우 맨유에서 뛰면서 에버튼 팬들에게 유다 취급을 받으면서도 "한번 블루는 영원히 블루다"라고 떠들고 다니면서 갓난아기 아들도 에버튼 서포터로 등록시킨 진성 에버튼 서포터이다. 그러면서 맨유로 이적 안 시켜준다고 모예스 감독한테 대들었냐

6.2. 최초의 기록들

에버튼은 축구와 관련해서 다양한 최초의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우선 에버튼의 홈 경기장 구디슨 파크는 세계 최초의 축구 전용 경기장이며, 여기서 최초의 FA 컵 결승전이 개최되었다. 경기장에 조명 스탠드와 스코어 보드, 선수단 대기 더그아웃을 가장 먼저ㅡ 설치하며 축구 경기장의 현대화에도 기여했다. 위에 나온 대로 하층 노동자들이나 본다고 무시당하던 프로 축구에 처음으로 왕세자가 찾아온 것도 에버튼 경기이다.

1933년에는 최초로 선수들의 유니폼에 등번호를 넣었다. 1888년 풋볼 리그 창설, 1992년 프리미어 리그 창설 때 원년 멤버로 참가하였다. 또한 최초로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르는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70년 유러피언 컵, vs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6.3. 기이하게도 운이 없는 클럽

괴이하게도, 에버튼은 우승을 거두고 상승세를 탈 즈음에 항상 사건들로 인해서 가로막혔다. 1914/15 시즌에 1부 리그 우승을 달성하고나서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리그가 중단되었고, 1939/39 시즌에 1부 리그 우승을 했으나 이번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리그가 중단되었으며 클럽 역사상 가장 전성기를 누렸던 1980년대에는 UEFA헤이젤 참사의 책임을 물어 잉글랜드 클럽들의 유럽 대회 출전을 금지 조치하여 2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이 당시에는 유러피언 컵)와 1번의 UEFA 유로파 리그(이 당시에는 UEFA 컵)진출 기회를 놓쳤다. 그 외에도 69/70시즌 3위로 시즌을 마치며 UEFA컵 출전 자격을 획득했으나, 1도시 1구단이라는 악법 때문에 2위인 리버풀에게 밀려 출전하지 못하는 등 실력에 비해 지독히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이쯤 되면 안습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지경. 특히 헤이젤 참사로 인해서 유럽에서의 더 큰 성공이 가로막히게 되자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리버풀에 대한 에버튼 서포터들의 증오와 반감이 커지게 되었다.

6.4. 리그 컵과의 악연

잉글랜드에서 손꼽히는 명문인 에버튼이 풋볼 리그 컵(2013년부터는 캐피탈 원 컵. 스폰서에 따라서 컵 이름이 계속 바뀐다)에서 우승 경력이 없다는 사실은 흠좀무. 준우승 기록만 2번 있을 뿐이다(1977, 1984). 참고로 역대 리그 컵 우승팀들을 살펴보면 레스터 시티(우승 경력이 무려 3회!), 미들즈브러(동궈 이동국이 한때 뛰었던 그 팀), 루턴 타운(현재 5부 리그 팀) 등등이 있다. 10-11 시즌 리그 컵에서는 3라운드에서 3부 리그 팀 브렌트포드와 맞붙어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명경기졸전 끝에 패배, 자이언트 킬링의 희생양이 되며 좀처럼 풀릴 기미가 안보이는 악연을 지속하게 되었다. 이후 시즌들도 역시 3~4라운드에서 꾸준히 광탈하고 있다.

7. 구단주에 대하여

국내에 에버튼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인지 구단주인 빌 켄라이트에 대한 왜곡된 정보가 나돌고 있다.

켄라이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구단을 매각하지 않는다라는 이야기가 떠도는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에버튼이 팔리지 않는 이유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낙후된 구장과 입지 조건 때문이지,[13] 켄라이트가 일부러 붙잡고 있어서가 아니다. 적은 관중 수입과 작지만은 않은 주급 규모 때문에 에버튼은 선수 영입을 하지 않아도 적자가 나는 구조이다. 구단주가 가져다 먹을 수 있는 수입이란 게 나올 수가 없다. 빌 켄라이트는 본업인 연극 사업으로만 돈을 벌고 있으며 리그에서 무급으로 일하는 유일한 구단주이다.

켄라이트가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구단 경영권을 장악하는 과정이 불투명했고, 이후 에버튼의 재정난을 타개할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두 차례의 구장 신축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점, 투자 유치에 실패했다는 점 등등이다. 쉽게 말해 무능한 것이다.[14] 켄라이트와 주주들이 클럽 매각시 시세 차익을 원하기 때문에 요구 금액이 지나치게 높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그리 잘못된 행동도 아닌 것이 지금의 에버튼 재정 상황은 EPL 구단 내에서도 가장 건실한 측면에 속하며 유스 시스템과 보유한 선수들의 가치 역시도 상위권에 속한다. 문제는 그렇게 벌어들이는 돈만으로 이익을 내기에는 에버튼의 글로벌 네임 밸류가 그리 높지 않다는 점과, 기반이 되는 도시인 리버풀의 경기 악화로 인한 영업 이익을 내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 구단을 쪽쪽 빨아먹고 뒷돈을 빼먹는다는 말들은 클럽과 사이가 틀어진 블루 유니온이라는 서포터 연합이 일방적으로 전하는 주장이고 근거 없는 음모론이다.

한 마디로 말해 켄라이트는 인간적인 면과[15] 무능한 면, 욕심 많은 면이 모두 있는, 나름대로의 사정이 공존하는 구단주이다. 진정 에버튼에 관심이 있다면 켄라이트에 대한 이러한 상반된 견해 중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주장을 선택해 사실에 기반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길 바란다. 뭐 저 문제는 석유 갑부라도 오지 않는 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만수르 쯤 되면 모를까 일개 축구 구단주가 심시티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8. 1군 스쿼드

2014-2015 시즌 에버튼 FC 스쿼드
등 번호 국적 포지션 한국 명칭 영어 명칭[16]
1스페인GK엘 로블레스Joel Robles
2잉글랜드DF니 히버트Tony Hibbert
3잉글랜드DF레이튼 베인스Leighton Baines
4아일랜드MF런 깁슨Darron Gibson
6잉글랜드DF필 자기엘카(주장)Phil Jagielka(C)
7아일랜드MF에이든 맥기디AIden McGeady
8코스타리카MF라이언 오비에도Bryan Oviedo
9코트디부아르FW루나 코네Arouna Kone
10벨기에FW로멜루 루카쿠Romelu Lukaku
11벨기에FW케빈 미랄라스Kevin Mirallas
14스코틀랜드FW스티븐 네이스미스 Steven Naismith
15프랑스DF실뱅 디스탱Sylvain Distin
16아일랜드MF제임스 맥카시James McCarthy
17보스니아MF무하메드 베시치Muhamed Bešić
18잉글랜드MF가레스 배리Gareth Barry
19가나FW리스티안 아추[17]Christian Atsu
20잉글랜드MF로스 바클리Ross Barkley
21잉글랜드MF리온 오스만(부주장)Leon Osman
22남아공MF스티븐 피에나르Steven Pienaar
23아일랜드DF셰이머스 콜먼Seamus Coleman
24미국GK팀 하워드Tim Howard
25잉글랜드MF아론 레논[18]Aaron Lennon
26잉글랜드DF존 스톤스John Stones
27잉글랜드DF아스 브라우닝Tyias Browning
29잉글랜드DF크 가벗Luke Garbutt
30파라과이DF톨린 알카라스Antolín Alcaraz
32잉글랜드DF렌던 갤러웨이Brendan Galloway
35잉글랜드FW너 맥알레니Conor McAleny
36체코GK드르지흐 스타넥Jindřich Staněk
38잉글랜드DF튜 페닝턴Matthew Pennington
39잉글랜드MF너 그랜트Conor Grant
40아일랜드FW 바이른Sam Byrne
41잉글랜드FW리스 롱Chris Long

9. 그 외

2012년 8월 8일(현지시간), AEK 아테네와의 친선 경기에서는 한 수비수가 골을 넣자 열광한 팬들이 피치로 난입해 선수들과 같이 골을 축하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골의 주인공은 토니 히버트. 10살 때부터 에버튼 유스에서 축구를 시작한 그는 2001년 데뷔 이후 12시즌 동안 에버튼 유니폼만을 입으며 주전 수비수로 활약했던 '원 클럽 맨'이다. 308경기를 출장해온 그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그 동안 골을 못 넣었다는 점. 서포터들도 "히버트는 그가 원할 때 골을 넣는다(When Hibbo scores, We Riot)"라는 응원가를 부르며 그의 골을 학수고대해 왔는데... 드디어 이날 경기에서 골을 넣은 것이다. 그것도 그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치러진 친선 경기에서. 기쁠 만하다.그런데 어째 직역하면 "히버트가 골 넣으면, 우리는 난동을 피울 것이다"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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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세인트 도밍고스 F.C.로 창단.
  • [2] 자세한 내용은 머지사이드 더비 항목에서 참조바람.
  • [3] 연속 참가 기록은 1부 리그에서 93시즌째 버티고 있는 아스날에게 뒤지지만, 1부 리그에서 보낸 시즌은 리그 최다.
  • [4] 정확히는 1999년도에 에버튼의 원래 구단주인 필립 카터에게 넘겼다가, 2004년도에 켄라이트에게 넘겼다. 참조
  • [5] 소위 '빅 4' 체제를 깨기 힘들었던 최근 프리미어 리그 상황을 보면 이 것도 꽤 큰 업적이다. 4위 안에 들어야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32강도 못가고 3차 예선에서 비야레알에게 2패로 허무하게 탈락했다. 그리고 2009-10 시즌 토트넘 핫스퍼가 리그 4위로 진출하여 챔피언스 리그 8강까지 간 것에 견주는 경우도 있다...
  • [6] 후에 UEFA 컵 위너스 컵으로 이름을 바꾸는데, 국내 컵대회 우승팀들이 겨루는 대회였다. UEFA 챔피언스 리그 확장을 위해 98/99년 폐지.
  • [7] 그런데 웃기는 건 그 다음 시즌인 85/86 시즌 리버풀에 밀려 준우승하였고 준우승의 분이 가라앉지 않은 시점에서 FA 컵에서도 3년 연속 결승 진출, 그것도 역사상 처음으로 머지사이드 더비 결승이 벌어지지만 또 리버풀에게 역전패당한다. 또 바로 다음 시즌인 86/87 시즌에는 또 리버풀과 우승을 다투었다. 결과는 에버튼의 우승.
  • [8] 플레이오프에서 만난 팀이 바로 그 시즌 4강 신화를 창조한 비야레알. 하지만 그 비야레알은 10년도 안 가서 2부 리그로 강등당했으니...
  • [9] 에버튼의 유니폼 스폰서가 바로 태국 맥주 회사인 창(Chang)이다. 에버튼 서포터들은 창이 스폰서가 되자 '뭐냐 그런 업체도 있냐?'라는 반응이었고 반대로 태국에서는 '에버튼은 뭥미?'라는 반응이었다. 태국에선 리버풀이 워낙 인기가 많아 에버튼은 가려졌고, 전 태국 총리이자 맨시티 구단주였던 탁신 치나왓은 리버풀을 소유하면 태국 내 입지가 강화된다고 계산하여 리버풀을 사려고 했을 정도이다. 참고로 창은 에버튼 경기장에선 창 맥주만 판매하라는 방침을 내세웠다가 에버튼 서포터들이 반발하여 없던 일로 했다. 구디슨 파크 매점에서 창 맥주를 팔긴 하지만 당연히 인기는 진짜 없다.
  • [10] 프리미어 리그가 피파 랭킹 70위 내 나라들 선수들로 영입 조건을 강화하면서 중국인 선수들은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
  • [11] 사실 제라드가 원래 에버튼 서포터는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는 열렬한 리버풀 서포터였고, 제라드의 삼촌이 에버튼 서포터였다고 한다. 그래서 둘은 항상 제라드를 각자 자기들이 응원하는 팀의 서포터로 만들려고 했다고... 제라드의 어린 시절 에버튼 유니폼을 입고 찍은 사진이 있어서 그가 에버튼 서포터였다고 설명이 돼 있는 거 같지만 그건 그의 삼촌이 제라드의 아버지 몰래 에버튼 경기에 데리고 가면서 찍었다고 한다. 이 삼촌의 아들이자 스티브의 사촌동생인 앤서니 제라드(허더스필드 타운 소속, 중앙 수비수)는 실제 에버튼 유스로 축구 인생을 시작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제라드는 어느 한 팀이 중요한 게 아니고 축구 자체가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한테 토트넘, 맨유(!)같은 여타 팀의 유니폼을 사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어느 팀이든지 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 게 즐거웠다고 한다. 어찌 되었든 현재에 와서는 삼촌을 따라 에버튼 경기장에 간 것이나, 에버튼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은 것이 조금은 부끄러운 과거라고 선수 본인이 자서전에 기고한 바 있다.
  • [12] 제이미 캐러거는 진짜 어릴 때는 에버튼 서포터맞다. 그래서 포포투 인터뷰때 처음 프로 데뷔했을 때는 리버풀과 에버튼이 둘 다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느날 중요한 경기에서 패하고 울적한 기분으로 펍에 갔더니 에버튼 서포터들이 리버풀을 조롱하는 것에 빡쳐서 팬심을 버렸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지금은 에버튼이 무조건 졌으면 좋겠다고.
  • [13] 리버풀 시 자체가 상당히 퇴락한 동네이다. 같은 동네의 리버풀 FC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존 헨리 구단주가 인수하기 전까지 자금난에 시달린 적이 많다.
  • [14] 이 역시 앞서 말한 대로 구단과 연고 도시의 제반 상황이 너무 안 좋기 때문에 켄라이트 혼자 책임을 지긴 억울한 면이 있다. 리버풀도 같은 문제로 인해 결국 신축구장 취소된 상황이니.
  • [15] 일반 서포터들과 주변인에게 매우 잘 대해준다. 때문에 선수단과 감독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팀 케이힐은 시즌 중 블루 유니온에게 시위를 중지하고 보드진에 지지를 보내달라 말하기도 하였다.
  • [16] 강조 표시는 유니폼 마킹명.
  • [17] 첼시 FC에서 임대
  • [18] 토트넘에서 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