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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기번

last modified: 2015-04-14 17:15:22 Contributors


(1737-1794)

영국의 역사가. 문필가.로마덕후 공공의 적 세종대왕도 그렇고 역사를 좋아하면 턱이 두개가 되나

Contents

1. 개요
2. 관련 항목


1. 개요

1737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기번의 할아버지 역시 이름이 에드워드였는데 빠삭한 군납업자였고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그러나 기번의 할아버지는 영국사회를 뒤흔든 남해회사 사기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의회의 결의에 따라 10만 6,500파운드의 재산중 1만 파운드만 남기고 모조리 몰수당하고 말았다. 물론 교묘한 그는 죽기전에 대부분의 재산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기번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처럼 능수능란하지 못해서 점점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기번의 어린시절은 불우 그 자체라고 할만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기번 자신도 허약한 체질에 병까지 겹쳐서 의사를 찾아 병원들을 전전해야 했다. 그렇지만 의사의 잘못된 치료 때문에 흉터만 남기게 된 기번은 일생동안 의사와 의료행위에 심한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고모 캐서린 포튼의 보살핌으로 겨우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던 기번은 어린 시절부터 독서에 취미를 붙여 방대한 독서로 많은 지식을 쌓게 되었다. 1752년, 옥스포드의 막달렌 대학에 입학했지만 기번의 지적수준이 너무 높은 탓에 박사조차도 쩔쩔 맬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이 높은 지적수준의 학생을 가르칠 교수나 학생이 아무도 없었고, 기번은 막달렌 대학을 다니면서 종교서적을 많이 읽었고 결국 국교회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해 버렸다.

당시 영국은 아직 가톨릭 교도에 대한 차별이 폐지되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가톨릭으로의 개종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기번의 아버지는 격노해서 아들을 개종시킨 자를 대라고 윽박질렀지만 소용이 없게 되자 스위스 로잔으로 보내버렸다.

로잔에서 기번은 칼뱅파 목사인 파비야르의 집에서 지내면서 학문의 방법론을 익혔고 결국 5년만에 가톨릭에서 다시 개신교로 전향했다. 물론 독실한 신앙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1]

이후 본격적으로 기번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 시기에는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낸 것은 아니었다. 유럽과 영국을 오가면서 지내던중 1764년 로마에 도착한 기번은 《로마제국 쇠망사》를 집필할 구상을 하게 된다.

1770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재산문제를 정리한 후 기번은 본격적으로 《로마제국 쇠망사》를 집필하기 시작해 제1권을 완성했다. 한편으로는 1774년, 돈 많은 사촌의 도움으로 국회의원이 되어 8년동안 의회에서 연설한번 없이 의석을 지켰다. 당시 미국 독립전쟁 문제가 불거지자 기번은 은근슬쩍 식민지편을 지지하는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그러나 무역식민부에 관직을 얻게 되자 침묵해버렸다.(…).

이러는 와중에도 《로마제국 쇠망사》의 집필은 계속되어서 1781년에 2, 3권을, 4, 5, 6권은 1788년에 출판되었다. 집필은 이미 1787년에 끝나있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기번을 명사로 만들어 주었고 전 유럽에 큰 화제거리가 되었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완성한 후, 기번은 의욕상실에 걸렸다(…)하얗게 불태웠어.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한때 흥분뿅가죽네하기도 했지만, 결국 말년에 건강이 나빠져 고생하다가 1794년 1월 런던에서 56세로 사망하게 된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영국 역사상 뛰어난 역사책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인지라 현대 역사학적으로 보면 기번의 관점은 많이 낡은 편이다(예를 들면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관점이라든지).[2] 그러나 기번의 문장은 명문장으로 꼽히며 영국 역사상 많은 명사들이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었다. 윈스턴 처칠제2차 세계대전중에 여러번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독했으며 영국수상 레멘트 애틀리도 북아일랜드 분리독립 문제라는 난제를 놓고 《로마제국 쇠망사》를 두 번 통독하고 결론을 얻었다고 할 정도다. 아이작 아시모프파운데이션을 쓸 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문장은 만연체이다. 기번은 문장을 지으면서 화려한 수식어를 덧붙이기를 즐겨하였는데 이는 고전 라틴어 문장을 영어에 적용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개 어떤 언어의 문장에 다른 언어의 문장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대입시키면 괴상한 문체가 나오기 십상인데 기번은 그런 것을 극복하고 기번체라고 불러도 무방한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이런 점에서 기번을 굇수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다만 실수나 억측이 없는건 아니다. 콤모두스가 하렘을 거느렸다느니 같은 억측을 하는가 하면 3세기 인물인 성 제오르지오(게오르기우스)를 4세기의 아리우스파 신도로 소아시아에서 온갖 패악질을 한 게오르기우스와 착각해서, 패악질 부리다 죽은 사람이 영국의 수호성인이 되었다고 비꼬기도 하는등의 오류가 종종 보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로마제국 쇠망사의 내용보다는 기번의 훌륭한 문장에 더 집중하라고 조언할 정도(...). 사실 당연한거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역사학계에서 출간된 책은 10년만 지나도 매우 낡은것으로 간주된다. 연구사 정리할때나 참고하는 정도. 그런데 300년이나 된 기번의 책을 로마사를 공부하는 사료로 쓴다는것 자체가 어불성설. 게다가 기번의 책은 심지어 근대 역사학 연구방법론이 정립되기도 한참 이전에 쓰인 책이다. 지금 기번의 책은 문학적 가치로 인정받는 고전이지 로마사의 사료로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이상하게 기번을 읽고 로마사 마스터했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있을뿐.

2.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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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 보기로 기번은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불태운 게 이슬람 세력 탓이라던 종전 유럽 역사학계에 대하여 비아냥거리며 기독교 세력이 저지른 더러운 짓은 죄다 이슬람 탓한다고 까던 사람이다.
  • [2] 일단 18세기에 쓰인 책이라 특히 로마제국 후기 유목민들을 잘모르는 안습함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