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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종

last modified: 2016-12-23 00:40:57 Contributors


KIA 타이거즈 No.54
양현종(梁鉉種)
생년월일 1988년 3월 1일
신체 183cm, 85kg
출신지 광주광역시 남구
출신학교 학강초-광주동성중-광주동성고-광주대학교[1][2]
포지션 포수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7년 KIA 타이거즈 2차 1순위 지명
소속팀 KIA 타이거즈 (2007~ )
응원가 노브레인(feat.킹스턴 루디스카) '연'[3][4]

2010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강봉규(삼성 라이온즈) 양현종(KIA 타이거즈) 김선우(두산 베어스)
2014년 최동원 상
신설 양현종(KIA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 등번호 37번(2007~2008)
조경환(2006) 양현종(2007~2008) 전태현(2009~2010)
KIA 타이거즈 등번호 54번(2009~)
이준수(2007~2008)[5] 양현종(2009~) 현역

Contents

1. 소개
2. 프로 데뷔 후
2.1. 2007 ~ 2008 시즌
2.2. 2009 시즌
2.3. 2010 시즌
2.4. 2011 시즌
2.5. 2012 시즌
2.6. 2013 시즌
2.7. 2014 시즌
2.8. 2015 시즌
2.9. 2016 시즌
3. 여담
4. 자네 지금 뭐하는 겐가?
5. 별명
6. 소덕
7. 윤석민과 반비례?
8.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무등의 마지막과 챔피언스 필드의 시작을 함께한 타이거즈의 신흥 간판투수

KIA 타이거즈투수.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오라는 좌완 파이어볼러. 문제는 문자 그대로 파이어볼러였다. 조..좋은 방화범이다 아이 러브 베이스볼에서 김석류 아나운서가 말하길 양현종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란다. 정확히는 지옥에서 데려온 파이어볼러.

광주동성고 재학 당시 김광현의 뒤를 잇는 당해 랭킹 2위의 좌완 투수로 기대를 모았다. 당시 공식전 최고 구속은 140km 초중반대였지만, 프로에서 메카니즘을 좀 더 다듬고 근력을 끌어 올린다면 더 빠른 구속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래서 KIA 타이거즈가 사상 최초로 꼴등(...)을 하면서 얻은 2차 지명 전체 1번으로 입단하였다. 정영일 ㅅㅂㄻ 하지만 동성고의 에이스이자 양현종의 1년 선배로, 계약금 10억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었던 한기주(...)만큼 기대치가 높았던 것은 아니었다.

현재로서 KIA 타이거즈의 좌완 에이스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로 몇 몇 기록들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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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사실 포수라 카더라

2. 프로 데뷔 후

2.1. 2007 ~ 2008 시즌

입단 첫 해엔 1승 2패 방어율 4.17을 기록하였고, 다음 해인 2008 시즌 시범경기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6] 기대를 품게 했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중간계투로 뛰면서 무승 5패 방어율 5.83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불쇼를 선보여 KIA팬들에게 불현종이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기대를 모았던 좌완 강속구 투수였지만 제구가 안 되어 볼넷이 폭주하였다. 덤으로, 양현종을 끝까지 1군에 데리고 다녔던 조범현 감독도 함께 까였다.

이 당시에는 마인드 컨트롤도 잘 안 되었던 모양. 김태균에게 홈런을 맞고 강판당한 후, 덕아웃에서 질질 짜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찍히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2009년 스토브 리그에서 안습이었던 KIA 내야진[7] 보충을 위해 트레이드 카드로 이름이 올랐지만, 구단과 감독이 양현종은 죽어도 못 내준다는 입장을 보이며 트레이드는 성사되지 않았다. 두산팬들은 그 때 배짱을 튕긴 프런트를 원망하였다.(...)[8]

2.2. 2009 시즌

하지만 2009년 스프링캠프에서 양현종을 주목하라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포텐셜을 터트리는데 성공하였다!

선발투수로 출장, 2009년 6월 6일 기준으로 10경기 5승 2패 방어율 2.23(1위)을 기록하며 KIA 타이거즈의 좌완 에이스로 부상했다. 특히, 윤석민이 작년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양현종-구톰슨 원투펀치는 KIA의 강력한 상승 동력 중 하나로, 좌완 에이스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의 계보에서 간만에 좌완 에이스 투수가 나오면서 KIA팬들을 설레게 했다. 하지만 2009년이 풀타임 선발투수로는 첫 해였기 때문인지, 6월 중반 이후로 급격히 체력이 달리는 모습을 보여 몇 차례 난타당했고 결국 중간계투로 잠시 보직을 변경했다. 물론, 완전히 중계투수로 돌아선 건 아니었고 장마와 올스타 브레이크로 투수진이 남아돌자 경기감각 유지도 하고 겸사겸사 체력도 쌓기 위해 임시로 돌린 것. 타팀팬들은 부러울 지경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선발로 복귀해 후반기 첫 등판이었던 롯데전에서는 부진했지만, 스스로 반성하고 각성한 끝에 다음 등판이었던 2009년 8월 4일 LG전에는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였고, 8월 11일 롯데전에서는 7⅓이닝동안 무실점 10삼진으로 호투하여 8승째를 올리며 10승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8월 16일 삼성전에서는 5이닝동안 언터쳐블이었다가 6회에 갑자기 무너지면서 4실점을 허용하여 816 대첩의 서막을 올렸지만 9승을 챙겼다. 그리고 8월 26일 한화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드디어 10승 투수가 되었다! 불펜에서 불을 질러대었던 2008 시즌의 모습과 비교해보면 어마어마한 발전이 아닐 수 없다.

2009 시즌 최종 성적은 29경기 출장(148⅔이닝), 12승 5패 1홀드, 평균자책 3.15, 삼진 139개. 지난 시즌과 대비하면 정말 놀라운 성적이기는 하지만 호투하는 상황에서도 매 경기 5회나 6회 이후에 교체되는 등의 지속적인 관리를 받은 덕분에 기록한 성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관리에 보답하여 최소 4선발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조범현 감독의 양현종 사랑은 계속될 듯 하다.

한국시리즈에서는 4, 6, 7차전에 나왔다. 4차전에서는 선발로 나와 초반에는 잘 던지다가 박재홍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다. 이 날 성적은 5⅔이닝 3실점, 패전. 6차전에서는 원 포인트로, 7차전에서는 2-0으로 팀이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장작을 쌓은 선배 한기주가 풀 죽어 들어오자 선배를 위로하며 다음 투수로 당당하게 마운드로 나갔으나 한기주의 주자를 분식회계하는 것도 모자라 나주환, 정상호에게 연속 안타를 쳐맞았다. 야이 새....
최정이 번트를 댄 후 1사 2, 3루 상황에서 조동화의 대타로 들어온 김강민에게 성급하게 승부를 걸다가 우익수 앞 플라이를 주며 4-1을 만들었고 다음 타자인 박재상에게 2루타를 내주며 5-1까지 만들었다. 선배를 위로하며 갔다가 오히려 자신이 뽜이야.[9] 만약 KIA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했다면 이용규와 함께 미친 듯이 까일 뻔 했다. 역시 불펜으로 쓰면 안 된다는 걸 보여줬던 케이스.

2009 시즌이 끝난 후, 경기장에서 쓰던 개그포텐을 마구 분출하였다. 우승 후 KBS에서 방영한 우승 기념 다큐멘터리에서 윤석민을 두고 '얼굴도 웃기게 생겼..푸푸풉!'이라는 인터뷰를 했다. 이에 윤석민은 후배가 선배를 까고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11월 14일 한일 클럽 챔피언십에서는 신종플루 확진을 받은 상황에서 출전, 5⅔이닝동안 최고 151km에 달하는 위력적인 직구와 체인지업으로 6삼진 3안타 1실점의 호투를 선보이며 요미우리 타선을 완벽히 틀어막았다. 불펜이 퐈이야(...)하는 바람에 호투가 빛이 바랬지만 김광현에 이은 또 한 명의 일본 킬러로서의 가능성을 보였다.

2.3. 2010 시즌

2010 시즌에는 윤석민의 손 부상, 그리고 아킬리노 로페즈의 부진 등의 이유로 실질적인 에이스 역할을 담당해야 했다.

6월 2일 대구 삼성전에서 데뷔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투구수 129개, 피안타 4개, 사사구 2개, 삼진 9개). 이날 인터뷰에서 가장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라는 질문에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호세 리마[10]가 생각난다'고 대답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해에 상당히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상당히 진행된 상태의 혈액암에 시달렸던 팬이 마지막 소원으로 양현종 선수와 통화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부탁을 하여 이례적으로 프론트가 허가를 해주었으나, 그 팬이 갑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되면서 의식불명 상태가 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통화시도가 무산되었다. 결국 해당 팬의 부모님과 통화를 한 후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고 이후 원정경기 때 중환자실에 직접 찾아가[11] 자신의 사인볼과 팀원들의 사인이 담긴 종이를 전달하며 20승에 도전할 때 VIP석에 초대하겠다며 완쾌를 기원했지만[12]...

결국 6월 28일 새벽에 미니홈피를 통해 그 팬의 사망 소식을 알리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 때 양현종은 슬픈 눈물을 흘렸다고. 관련기사 보기 그리고 그 다음날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이후 7월 9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5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면서 11승째를 올렸고, 팀 16연패를 끊었다. 승리투수는 되었지만 경기 내용은 (양현종 입장에서) 아쉬웠다.

7월 21일 광주 삼성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12승째, 그리고 7월 29일 사직 롯데전에서 5⅔이닝 3실점으로 13승째를 올렸다. 이날 타선은 한 이닝 사이클링 홈런으로 10득점을 포함하여 무려 12점이나 내주었다.

8월 3일 광주 LG전에서 5⅓이닝 3실점으로 14승째를 올렸다.

하지만 그 이후 5경기서 5이닝 이상 던진 경기가 단 2경기에 불과했다. 나올 때마다 발리고 발리고 반복. 에이스라는 놈이 이 모양이라 팀의 4강행은 점점 더 멀어져갔다. 거기다 개인 4연패까지 당했다. 팬들은 4강행 호흡기 떼더니 무덤자리까지 알아봤냐,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못 가면 어쩌냐며 까는 중. 탱구의 9번을 달면 버프가 생기려나?[13] 게다가 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친KIA적 성향의 기자들이 좌완 트로이카 운운하며 설레발을 치는 바람에 안티도 증가했다.(...)[14]

9월 6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로 발탁 되었지만 4점대의 방어율과 볼넷은 풀타임 선발투수 중 최고. 후반기의 모습과 최종 성적으로 미루어볼 때 이보다 성적이 좋았던 다른 팀 투수도 있었던지라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9월 7일 군산 한화전에서 6이닝 1실점으로 15승을 달성하며 타이거즈 좌완 최다승을 기록했다.

9월 14일 광주 두산전에서 7⅓이닝 2실점 11K 호투로 16승을 챙겨 다시 다승 공동 1위에 오르며 다승왕 경쟁에 더욱 더 가까워졌다.[15] 다행히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로 발표된 이후의 2경기에선 호투했다. 반면 윤석민은..

9월 19일 잠실 LG전에선 7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17승을 눈앞에 뒀으나, 불펜진의 방화로 승수는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방어율을 3점대로 낮추면서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로서의 체면은 세웠다.

마지막 경기인 9월 26일 대전 한화전에서 공동 다승왕을 노렸으나 3⅔이닝 9피안타(2피홈런) 8실점의 처참한 투구를 보여주며 무너졌다. 10시즌 방어율은 4.25로 치솟았고 남은 건 볼넷왕(103개로 리그 1위)의 칭호뿐이었다. 최종 성적은 16승 8패 ERA 4.25 WHIP 1.58(리그 13위).

허약한 KIA 타선이 이상하리만큼 양현종만 나오면 분발하며 높은 득점지원을 받았고, 동시에 양현종의 좋은 구위가 합쳐지며 가장 먼저 10승을 달성하며 다승왕에 한 걸음 더 다가섰으나 후반기에 부진하면서 류현진을 위시한 다른 투수들에게 승수를 따라잡혔다. 시즌 초, 중반엔 좋은 구위를 앞세운 힘으로 밀어붙이는 투구로 높은 WHIP과 피안타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방어율을 유지했으나 시즌 후반기에 체력이 떨어지면서 난타당해 그나마 좋았던 방어율마저 4점대로 치솟고 말았다. 방어율 4점대 다승왕 후보 야구팬들 사이에 논란은 있었지만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병역 문제를 해결했다.

후반기에 들어와서 투구 내용이 심하게 나빠졌다. 전반적으로 보면 작년에 이어 10승 이상을 달성하는데 성공하면서 일단 10승급 투수로 자리잡기는 했지만, 전반기와 후반기의 투구 내용이 매우 큰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풀타임을 뛰기에는 체력이 매우 부족한 듯. 실제로 후반기 경기들을 보면 당일 두 자리수 방어율 찍은 경기가 많았다. 거기다가 2008 시즌을 연상케 하는 볼질마저 시전하였다. 얼마나 심각하냐면 시즌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이 유원상에 비견될 정도였으며, 피안타는 로페즈에 이어 리그 2위에 투구수는 30이닝 가까이 더 던진 류현진보다 100개 이상 많았다. 본인도 이 부분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아 폭식을 할 정도였다고. 공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메달을 따고 병역 문제를 해결했으니 겨우내 체력훈련을 단내나도록 해야 할 듯.[16][17]

10월 27일, 국가대표 훈련 중 넥센 김시진 감독에게서 컷 패스트볼을 단 10분만에 배웠다고 한다. 얼마나 만족스러웠는지 조범현 감독이 넥센 전에선 쓰지 말라고 농담을 했다고.[18][19]

11월 18일, 광저우 아시안게임 준결승 중국전 선발로 나와 6이닝 1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스탯만 보면 괜찮은 성적을 찍었다고 볼 수 있으나, 사실 대부분의 공이 코너워크 그런 거 없이 배팅코스로 들어가는 직구였다! 그것도 병역 면제에 목마른 미필 선수들의 물샐틈 없는 호수비가 아니었더라면.. 닥치고 남자의 직구만 던지는 투수는 이젠 중국 상대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서 대만을 꺾은 중국 야구의 성장세를 증명해보이기도 했다.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당연하게도 폭풍처럼 까였다. 아마야구 수준인 중국에게 첫 점수를 헌납한 프로선수라면서..

같은 좌완 영건이었던 롯데의 장원준이 2011년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경찰청 야구단에 입대하고, 반대로 양현종은 군면제를 받고도 2011년 들어 볼질로 폭망하는 모습을 보여서 롯데팬들에게 본의 아니게 까이기도 했다. 하지만 2010년 성적은 양현종이 근소한 차이로 더 좋았다.[20] 양현종의 타선 지원에 힘입어 얻은 16승과 탈삼진쇼, 그리고 2009년의 우승 프리미엄이 양현종이 국대에 발탁되는데 크게 작용한 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2.4. 2011 시즌

본격 양붕개 시즌
작년에 금메달도 땄고, 병역 혜택도 받았으므로 기분좋게 2011 시즌을 맞이할 수 있었어야 했는데, 지금까지 활약했던 양현종은 어디가고 밸런스가 망가진 모습을 보이며 팬들을 매우 실망시켰다. 또한, 새로운 좌완 영건 심동섭이 등장하면서 양현종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양현종/2011 시즌 참고.

2.5. 2012 시즌

선동열 감독 부임 이후, 동계훈련 때는 완전히 공기가 돼버렸다. 김진우는 재기 가능성을 보였고 한승혁김희걸도 쓸만해 보인다는 소리가 나왔는데, 양현종에 대해선 전혀 코멘트가 없었다. 선 감독이 윤석민을 제외하면 선발진은 정해진 게 전혀 없다고 말한 걸 보면 양현종 자신이 치열하게 2012 시즌을 준비하지 않는 한 선발진에서 탈락해서 불펜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커 보인다. 불펜 가도 불지를텐데..

선 감독 부임 후 본인도 꽤 노력을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선 감독이 5월에나 등판 가능하다고 밝혀서 부상 사실이 밝혀졌다. 알렉스 그라만이 계약도 못하고 쫓겨간 마당에 양현종도 부상으로 시즌 개막부터 뛰지 못하게 되면서 왼손 선발 요원을 놓고 선 감독의 골치가 지끈거릴 듯.

이후 재활을 마치고 2군에서 등판하면서 실전경험을 쌓았다. 2군에서의 성적은 별로 좋지 않은 듯. 5월 5일에 2군 경기에 선발로 등판했을 때 선동열 감독이 직접 관전하기도 했지만 선 감독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는지 1군 콜업이 늦어졌다. 대체로 5월 셋째주에 1군에 콜업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5월 1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5차전에서 드디어 마운드에 올라왔다. 3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던 윤석민에 이어서 등판하여 2이닝동안 36개의 공을 던지며 2피안타 1사사구 1실점을 기록,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팬들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박동희 블로거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시즌 부진의 이유를 밝혔다. 아시안게임에 국대로 뽑힌 건 좋았는데 문제는 국대 이후에 어떻게 몸관리를 해야되는지 요령을 몰라서 그냥 푹 쉬어버린 탓에 어깨 근육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투구를 하다가 어깨 통증이 오게 된 것이라고. 그러나 본인은 병역 면제를 받고 몸을 사린다는 비난을 듣기 싫어서 참고 던지다가 탈이 난 것이었다고 한다. 심적으로도 부모님에게서 독립해서 나가 살았더니 주색잡기를 즐긴다는 루머에 시달린 끝에 이순철 수석코치의 명으로 다시 부모님과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음고생이 많았던 모양.

5월 22일 무등야구장에서 벌어진 한화 이글스와의 6차전에서 8회초 무사 2루 상황에서 등판, 하주석에게 희생번트를 맞긴 했지만 이후 정범모강동우를 땅볼로 잡아내며 깔끔하게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후 8회말에 KIA가 역전에 성공하였고, 9회초 호라시오 라미레즈유동훈이 꾸역꾸역 한화의 추가 득점을 막아내면서 승을 챙겼다.

6월 7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8차전에 시즌 첫 선발 등판하여 1회 때는 공 9개로 막아 부활하는가 싶었더니, 2회부터 안습한 모습을 보이며 칼같이 강판되었고 투수는 유동훈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올라오기만 하면 제구 난조를 보이며 불을 지르면서 팬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트레이드 카드로 쓰자는 말까지 나올 정도. 하지만 좌완 덕후(...)인 선동열 감독의 특성상 어떻게든 써먹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8월 21일 무등야구장 LG 트윈스전에서 깜짝 선발로 등판하였으나 기대대로(...) 볼넷을 남발하며 2이닝 4실점을 기록하며 강판되었고 투수는 홍성민으로 교체되었다. 팀은 8:2로 크게 패하면서 7연패의 늪에 빠졌다. 이 날은 2이닝 12타자 60투구수 7타수 4피안타 1피홈런 4사사구 1탈삼진 4실점 3자책점을 기록하였다. 이래가지고 내년에 선발할 수 있겠냐

결국 9월 7일, 2군으로 내려갔다. 하루빨리 투구밸런스를 찾는 게 시급해졌다.

9월 이후로 KIA의 4강이 사실상 좌절되면서 서서히 내년 시즌을 준비하게 된 상황. 선발투수진은 그나마 안정된 상황이라, 양현종의 부활이 2013년 팀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1]

2.6. 2013 시즌

전반기에는 2009~2010 모드, 후반기에는 2011~2012 모드 대투수와 붕개 사이
양현종/2013 시즌 항목 참고.

2.7. 2014 시즌

국내투수중 다승 1위, 탈삼진 1위, FIP 1위, FWAR 1위를 기록하며 초대 최동원 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동시에 냉혹한 평가를 해외로부터 받기도 한 해.
양현종/2014년 해당 항목 참조.

2.8. 2015 시즌

3월 28일의 LG와의 개막전에서 홈경기 개막전 선발투수로 등판한다. 이번 시즌 유일한 국내파 개막전 선발투수. 상대 투수는 헨리 소사.

잦은 선두타자 출루를 허용하며 약간 불안불안한 모습을 모였지만 6이닝 무실점으로 QS+를 기록하며 잘 틀어막았다. 그러나 타선이 변비야구를 시전하며 마찬가지로 1점도 내지 못해 승패없이 물러났다. 여담으로 양현종이 내려가자마자 타선은 이범호의 귀신같은 솔로홈런을 시작으로 3점을 뽑아냈다.(...)

4월 3일 KT와의 첫 경기에서 두 번째 등판을 가졌고,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이며 KT타선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7이닝 동안 5피안타 2볼넷 7탈삼진 무실점으로 투구수는 104개. 이번에는 타선도 최희섭홈런 두 방에 힘입어 5점을 뽑아 두 경기만에 시즌 첫승을 거뒀다.

5일 휴식후 4월 9일 NC와의 3연전 마지막 시합에 선발로 출장했으나 NC의 마산 불빠따에 크게 고전하며 6이닝 4실점 4자책으로 패전투수가 되었다. 거의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는 등 엄청나게 고생했으며 더군다나 테임즈에게 2루타 2방과 솔로홈런을 맞으며 사이클링 히트 작성에 일조하는 굴욕을 당했다. 양현종이 특별히 못했다기보단 강력한 NC의 공격력이 돋보였던 경기.

2.9. 2016 시즌

10승 12패, 평균자책점 3.68로 성적만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주축이 될 만한 선수가 거의 없던 2016 시즌 KIA에서 고군분투를 해 주며 팀의 와일드카드 진출을 도왔다.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하여 해외 진출 등을 타진했으나 돌연 국내 잔류로 선회했는데, 문제는 당시 KIA가 양현종이 당초 해외로 진출할 것이라 판단하고는 최형우 영입에 돈을 쏟아붓느라 정작 양현종에게 거액을 안겨주기 힘들었고, 타 팀들 또한 지난 몇 년간 계속된 FA 거품 때문에 양현종을 영입하기 껄끄러워하여 주목도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입 의사는 썰렁했다.

결국 KIA는 양현종에게 1년 22억 5천만 원이라는 다소 모양새 빠지는 금액에 재계약을 맺었다. 4년 기준으로 90억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계약 후 해외 진출을 적극 돕겠다고 밝혔다.


3. 여담

정이 많은 성격으로 보이는데, 2008년 용병 호세 리마가 방출되었을 때 매우 아쉬워했으며 2010년 5월 24일 호세 리마가 죽자 미니홈피에 호세 리마와 같이 찍었던 사진을 올리며 그를 애도했다. 지금 쓰는 등번호 54번도 원래 입단 동기였던 친구 이준수의 번호였는데, 2008 시즌이 끝나고 이준수가 방출당하자 친구를 위해서 달았다고 한다. 2012 시즌 후, 이두환이 KIA에서 뛰어보지도 못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모자에 이두환의 이니셜인 DH를 써넣으며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년 선배인 박경태가 장난치자 정색하는 장면에 로페즈에게 반말[22]하는 것 때문에 까이기도 했다.

로만 콜론이 큰 손을 이용해서 공을 한 손으로 다루는 묘기를 해보면서 양현종에게 해보라고 했는데, 전혀 하질 못하자 로만 콜론이 때리려고 했다기 보단 "이것도 못해?" 하면서 갈궜다. 물론, 양현종은 정말 쫄았다.[23]

온라인게임 마구마구에 나오는 자신의 투구폼이 실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개발진에 직접 수정을 요구해 2009년 10월 28일 업데이트 때 반영되었다. 기사 보기

같은 팀의 코치인 김종국과 묘하게 닮았다. 그리고 네이버 웹툰 라이징패스트볼의 작가 박현수와 정말 많이 닮았다. 리플들이 가관


2010년 광주 MBC의 캠페인인 "무등산을 사랑하자"에 출연했다. 마운드에서 혼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뒤에 무등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대사 때문에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무등산에나 가라고 비아냥거렸다. 산악인 형저뫼는 어디에?

KIA 타이거즈가 센터 내야수를 보강하려고 이리뛰고 저리뛰고 할 때 두산 베어스에서 이대수를 제시하면서 양현종을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KIA 타이거즈는 거절하였다. 물론, 두산이 꼭 이걸 성사시키려고 했다기보단 혹시나 해서 찔러본 거겠지만.. 그리고 결국 이대수는 한화

일상 생활을 할 때에는 뿔테 안경을 쓰고 경기할 때는 무테 안경을 쓴다. 조성환의 말을 빌리면, 무테 안경을 착용하면 시야에 방해를 받지 않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때 안경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끈으로 머리에 고정시키는데, 뒤통수에서 삐져나온 끈이 마치 꽁지머리같이 보이기도 한다. 색깔도 딱 검은색이라..

한때 양현종이 삽질했을때(11~12 시즌)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양현종의 사진은 혐짤다. 일단 올리면 달리는 게 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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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이런 짤. 기아루상이무니다
하지만 13시즌부터 예전의 실력을 되찾으면서 지금은 오히려 잘생겼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룬다(...).역시 야구를 잘하는 놈이 잘생겼다

2014년 시즌이 끝난 후 친누나와 함께 배구장에 관중으로 온 모습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양현종엔 관심이 없고 전부 친누나 얘기만 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단순히 KIA 타이거즈의 왼손 투수일뿐이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설명은 야구선수 양현종의 이야기이다.

이 아래에는 인간 양현종에 대한 설명이 시작된다.

4. 자네 지금 뭐하는 겐가?

윤석민을 노리는 날카로운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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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홍은 내꺼 우유빛깔 양현종 연적이 KBO 금지어[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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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즈를 괴롭히는 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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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 혼삿길 막는 양현종(최희섭 옆에 있는 선수가 안치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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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앞에서 대놓고 이종범의 아들 정후군에게까지..

심지어 김원섭의 딸까지 노리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 짤들은 그의 행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귀엽다고 생각하면 지는 거 이로 인해 어장관리가 쩌는 남자, 마성의 후로게이로 낙인 찍혀버렸다. 지못미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강정호에게까지 손을 뻗는 무서운 후로게이. 후로게이는 후로게이를 알아본다고..

참고로 여자친구가 있다. 2009년 전지훈련 때 차였으나 그 이후로 다시 만나기 시작하였다. 그것 때문에 그 당시 야구가 손에 안 잡혀서 결국 짐싸서 귀국할 뻔 했다고.(...) 근데, 중계화면마다 보이는 남정네들에게 페로몬을 발산한 듯한 장면들이 포착되었다. 여친이 그거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여친이 부녀자라면 다행..일까?


5. 별명

한창 방화를 해대던 시절에는 숨만 쉬어도 별명이 양산되는 수준이였다. 이 당시 양산된 별명으로는 운현종[25], 햄종이[26], 막내딸, 양소퀴[27], 퀄뭐[28], 2011 시즌과 2012 시즌에 자주 사용되었던 별명은 안경쪼다[29], 양모지리, 양시구, 양삼밀, 볼넷쓰리런[30], 양붕괴[31], 양붕개[32], 양볼넷, 내이투[33], 어둠의 피쳐[34], 붕개나이트, 양민폐, 양멸망, 선크림귀신, 가부키 배우, 임동귀신. 에이스로 거듭난 지금은 쓰기 쉬운(...) 양붕개 빼고는 거의 사장되었고 KIA갤에서는 대투수란 별명을 미는 중.물론 어디까지나 잘 던질 때 한정.

6. 소덕

2009 시즌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에서 공연하는 소녀시대태연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고, 그 이후 기자를 통해 싸인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여자친구는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적어도 게이소리 듣는 것보다는 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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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은 양현종에게 사인 외에 10승 달성~!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파이팅!!이라는 문구를 써 주었는데, 이 사건이 기사로 나가자 이강철 코치에게 엄청나게 털렸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팀 선배들도 엄청나게 놀려댔다고.

그리고 진짜로 10승을 달성했다. 다음 시즌에는 20승 달성해달라고 써줘야 하나?

게다가 KBS N 스포츠 야구 프로그램인 야생야사에서는 '자신의 10승 달성과 팀 우승은 태연 덕분'이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제대로 소덕 인증한 셈.

11월 9일에 열린 우승 축하행사에 소녀시대가 초대가수로 왔으나 막상 양현종이 감기 몸살을 앓는 바람에 병원에서 뒤늦게 와 선수들이 앉은 앞자리도 아닌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 후 출연했던 출발 드림팀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에요?" 라는 질문이 나오자 태연을 언급한 후 태연에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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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인사이드 태연 갤러리야구 갤러리에 태연이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열성적으로 시청하는 흡사 모니터에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올라와 진성 탱빠 인증에 성공, 뭇 갤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였다.

이런 건들로 인해 그에게 붙은 별명이 소퀴.

그런데 이상형이 이 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양아섭

2014년 6월 19일 태연과 EXO 백현의 열애설이 터졌다(...)그리고 SM이 인정했다(...)분노의 완봉승?

7. 윤석민과 반비례?

상당히 재미있는 부분은 기아팬들이 가장 바라는 부분인 우완 에이스 윤석민-좌완 에이스 양현종의 공동 대폭발이 한번도 이뤄진적이 없다라는 부분이 아이러니컬하다. 양현종의 포텐이 터진 2009년부터 살펴보면 양현종이 10승 투수를 하며 잘나갈때 윤석민은 정작 2009년에 초반 부진했다가 후반부에 호투를 이어나갔다. 실상 이 시즌은 구톰슨-로페즈의 용병선발 듀오가 더 대활약해서 기아를 우승까지 이끌고 갔으니...

2010년에는 양현종이 나올때마다 팀의 연패를 끊고 승리를 챙기면서 다승그룹에 이름을 올리는(!) 에이스 행보물론 완벽한 에이스라기엔 좀 운빨도 따르긴 했다 였던 반면에 윤석민은 SK전에서 승리가 날아가며 락커룸에서 자해(...)부상을 입어 2군행, 이후 복귀후에는 롯데전에서 연속 사구 사건을 일으키며 바람잘날 없는 시즌을 보냈다. 결국 그해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에 뽑힌 양현종은 금메달로 병역면제를 받고 다음 시즌 기분좋게 시작하나 했는데...

2011년, 둘의 처지는 정반대가 되는데 윤석민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완벽하게 부활한 반면에 전해 다승그룹에 있던 양현종은 관속으로 드러누었다(...) 아시안게임 이후 몸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투구 밸런스가가출 실종돼버린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2012년에는 윤석민은 전해의 특급 투수같은 면모는 보여주지 못했고 불운도 겹치긴 했으나 일반적인 A급 투수의 모습은 보여주었고, 양현종은 계속 관속에 누워있었다(...)

2013년에는 양현종은 겨우내 단내나는 훈련으로 좌완 에이스의 면모를 회복하는 듯했으나 결국 후반기를 말아먹으면서 추락. 양현종은 부상 후 선동열의 무리한 복귀 앞당기기로 말아먹었다고 평가 된다. 그리고 윤석민은 타이중 참사에 어깨 문제 등으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 특히 후반기에 윤석민은 사실상 강제로 마무리로 전환하지만 마지막 경기까지 별 재미를 못보았다. 결국 둘 다 사이좋게 안 좋은 한 해를 보내버려 반비례 징크스는 깨진 셈. 무엇보다 2014년부터 윤석민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 반비례 관계는 따지기도 애매해졌다.근데 결국 양현종 9승 윤석민 3승

여담으로, 2014년 윤석민은 미국으로 건너가 AAA에서 10경기 연속 홈런 기록을 세우는 동안, 양현종은 기아의 토종 에이스로서 위엄을 보였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KIA 타이거즈 31 49⅔ 1 2 0 0 0.333 4.17 39 7 33 48 24 23 1.409
2008 48 75⅔ 0 5 0 5 0.000 5.83 77 4 49 56 49 49 1.652
2009 29 148⅔ 12 5 0 1 0.706 3.15
(5위)
133 14 60 139
(4위)
55 52 1.285
2010 30 169⅓ 16
(2위)
8 0 0 0.667 4.25 169 9 104 145
(3위)
84 80 1.577
2011 28 106⅓ 7 9 0 0 0.438 6.18 116 9 73 74 74 73 1.740
2012 28 41 1 2 0 2 0.333 5.05 51 3 35 26 25 23 2.000
2013 19 104⅔ 9 3 0 0 0.750 3.10 99 10 49 95 38 36 1.357
2014 29 171⅓ 16
(2위)
8 0 0 0.667 4.25 162 12 81 165
(3위)
85 81 1.395
KBO 통산(8시즌) 242 866⅔ 62 42 0 8 0.596 4.33 846 68 484 748 434 417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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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 못믿겠다면, 링크로 참조하면 된다.놀랍게도 한기주와 같이 학사수여받으니 경사났네 경사났어
  • [2] 사실은 고졸 선수들이 군입대를 미루기 위해 대학에 이름만 올려두는 것. 물론 일종의 편법이긴 하나, 양현종만 이런 것이 아니고 프로 운동 선수나 연예인들이 널리 애용하는 수단이다. 덕분에 김별명은 대전대를 나왔고, 하하는 석사 출신이다. 특히 운동 선수들 사이에선 워낙 널리 퍼져 있는 군 입대 연기 방법이기 때문에, 운동선수들, 특히 프로 야구, 축구 선수들의 공식 프로필에선 이런 종류의 학사 경력을 아예 빼버린다. 상식적으로 정말 학교에 출석 열심히 해서 졸업장 받았을 것 같냐?
  • [3] 양현종 힘차게 오! 워~ 양현종 힘차게 오! 워~ 양현종 힘차게 오! 워 ~ 타~이~거~즈 양현종 (x2)
  • [4] 원곡인 라이너스의 연을 노브레인이 당시 불후의 명곡에서 편곡한 버전의 도입부를 응원가로 사용한다.
  • [5] 양현종의 동기로 방출되자 친구 몫까지 열심히 한다는 이유로 등번호를 물려받았다. 후에 군복무를 마치고 한화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여 정식선수로 임명됐다.
  • [6] 2008년 3월 21일 히어로즈전에서 5이닝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했다.
  • [7] 조범현 감독이 이종범을 내야수로 쓸 생각까지 했을 정도. 2009년 주전 유격수는 이현곤이었으나, 이현곤은 갑상선 질환 때문에 스태미너가 떨어졌다. 남은 카드는 김종국 뿐이었는데, 그러면 2루수가 비는 상황이었다. 이 문제는 2009년 2차 1순위 지명자 안치홍을 2루수로 보냄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리고 구멍이었던 3루는 시즌 중에 트레이드로 김상현을 받아 오면서 해결. 게다가 이 때 내야 대수비 요원 박기남까지 함께 오면서 때아닌 내야수 풍년이 들었다. 사랑해요 LG 이후 차기 주전 유격수로 꼽혔던 김선빈이 포텐을 터뜨렸고, 2011년에는 3루수 이범호를 영입하면서 당분간 내야 걱정은 없게 되었다.
  • [8] 물론, 이대수가 나쁜 선수는 아니었으나, 이미 1군에서 계속 써먹으려고 끌고 다니는 좌완 파이어볼러와 팀 내에서도 사실상 잉여 전력이 되어 1군에도 붙박이가 못 되는 유격수 사이의 가치 차이는 상당히 컸다.
  • [9] 사실 박재상의 2루타의 경우엔 홈으로 쇄도했던 정상호가 이미 김상훈의 태그에 걸려 아웃이 되어야 했을 상황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임채섭 주심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더 웃긴 건 당시 해설을 하던 SBS 박노준 해설위원은 김상훈이 공을 놓쳤다고 했는데, 실제로 김상훈은 정상호와의 홈 접전에서 끝까지 공을 놓지 않고 있었다!
  • [10] 호세 리마가 KIA에 있었을 당시 가장 친했던 선수가 양현종이었다고 한다. 서로 아버지 아들 하면서 지낼 정도였을 지경. 특히, 그렇게 지냈던 때가 양현종의 암흑기임을 감안한다면 그 만큼 각별했다고 할 수 있다.
  • [11] 관련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호흡기 때문에 대화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방문 이후에서야 문자로 고마움의 뜻을 밝혔다고.
  • [12] 모자에 그 팬의 이니셜을 새기기도 했다.
  • [13] Oh 뮤비 보면 태연의 배번이 9번이니까.
  • [14] 애시당초 양현종 본인도 류현진, 김광현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지만..
  • [15] 블론 직전에 두산 주자 유재웅이 다리를 다쳐 홈으로 들어오지 못하면서 승리를 챙겼다. 끝내기 햄스트링
  • [16] 일단 투구폼이 지나칠 정도로 다이나믹해서 체력소모가 많다. 거기에 제구력이 좋은 투수도 아니라서 투구수 관리에도 애를 먹었다.(실제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하지만 투구수를 보면 꾸준히 120개 정도를 던졌다.) 유연성을 키우고 투구폼을 교정해 체력소모를 줄이거나 제구를 확실하게 잡는 방법밖에 없지만 하나같이 쉬운게 아니라서..
  • [17] 게다가 작년 투수코치로 있던 칸베 토시오 코치가 짜준 중심나누기 훈련을 2010 시즌 들어 쪽팔리다는 이유로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시즌 중반 이후 무지막지한 볼질과 체력 방전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 [18] 물론 이런 걸 실전에서 쓰려면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10분만에 배웠다는 것은 컷 패스트의 개념 및 던지는 방법을 익혔다는 얘기고, 실전에서 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 중국전에서 던지긴 던져봤다.
  • [19] 재미있게도 2012년 양현종의 투구밸런스가 무너진 원인 중 하나가 이 때 배운 커터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원래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단순히 커터를 배운 것만으로 밸런스가 무너졌다고 할 수는 없을 듯. 김시진 감독님은 무슨 죄
  • [20] 양현종은 30경기 169⅓이닝 16승 8패 ERA 4.25 169피안타 104사사구 145탈삼진 84실점 80자책점, 장원준은 26경기 144⅓이닝 12승 6패 ERA 4.43 158피안타 56사사구 113탈삼진 77실점 71자책점.
  • [21] 선 감독은 양현종이 선발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면 외국인 투수 중 1명을 마무리로 영입할 생각이 있음을 내비쳤다. 사실상 양현종이 부활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2013년 KIA의 마운드 운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
  • [22] 로페즈는 KIA 투수진에서 이대진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
  • [23] 로만 콜론은 KIA에 오기 전에 마이너리그에서 백인 투수 한 명을 골로 보내서 당시에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로 큰 폭력사건을 일으킨 경험이 있다. 양현종이 위축되는 것도 당연하다.
  • [24] 임태훈과는 벨트를 빌려주는 등(!) 상당히 막역한 사이다. 하지만 이젠 가까이해서 좋을 거 없다.
  • [25] 2010 시즌의 폭발적인 타선 지원과 기록되지 않은 각종 행운으로 16승을 달성하며 붙은 별명이다.
  • [26] 햄스터+현종이. 움짤로도 만들어졌다. 양현종 햄스터 드립이라 불린다.
  • [27] 4번 소덕 항목 참조
  • [28] 조범현 감독이 질책하자 그래도 퀄리티 스타트했다며 개드립 시전. 이에 열받은 조 감독이 '퀄뭐?'라고 답해 그대로 양현종의 별명이 되고 말았다.
  • [29] 13 이후로는 주로 분탕종자들이 쓰는 별명. 갸갤러들은 잘하면 대투수, 못하면 붕개라고 부른다
  • [30] 하지만 모 팀에서 이를 뛰어넘은 볼넷 그랜드슬램이 터졌다.
  • [31] 2011년 4월 3일 광주 삼성전에서 양현종이 볼넷쓰리런을 기록하자 다음 중계에 양현종 붕괴라고 떠서 생긴 별명이다.
  • [32] 양현종 붕괴 + X새끼. 사람으로 거듭난 13 이후로도 붕괴하는 기미가 보이면 갸갤은 양붕개로 뒤덮힌다.
  • [33] 2011년 7월 31일 광주 넥센전에서 4이닝 4실점하자 스포츠조선에서 내가 이런 투수란 말인가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뜨면서 생긴 별명이다.
  • [34] SK전 6이닝 2실점하자 어려운 팀을 구하는 어둠의 피쳐라는 기사가 뜨면서 생긴 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