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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문

last modified: 2017-10-08 01:30:55 Contributors

KBO 리그 현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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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영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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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
(키움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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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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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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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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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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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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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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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덕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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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kt 위즈)

2014년 플레이오프 2차전에 앞서.

LG 감독 취임식 모습. 머리 크기은근히 비슷하다?


그리고 그는 승패마진이 -16이였던 김기태가 도망가고 버린 팀을 수습하여 4강까지 이끌고 갔다.[1]

LG 트윈스 No.79
양상문(楊相汶)
생년월일 1961년 3월 24일 [2]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
학력 대연초-동성중-부산고-고려대학교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5년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85~1986)
청보 핀토스-태평양 돌핀스 (1987~1993)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투수코치 (1994~1997, 1999~2001, 2010)
LG 트윈스 투수코치 (2002~2003, 2007~2008)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04~2005)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2009)
LG 트윈스 감독 (2014~2017)
LG 트윈스 단장 (2017~)

롯데 자이언츠 11대 감독
백인천(2002~2003) 양상문(2004~2005) 강병철(2006~2007)
LG 트윈스 11대 감독
김기태(2012~2014.4.26)
조계현(수석코치 체제, 2014.4.27~5.10)
양상문(2014.5.11~2017.10.3) 류중일(2017.10.3~)

역대 감독 전적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04 롯데 자이언츠 133 50 72 11 8위 -
2005 126 58 67 1 5위 -
통산 259 108 139 12 ­
연도 경기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4 LG 트윈스 95 52 42 1 4위 4위[3]
2015 144 64 78 2 9위
2016 144 71 71 2 4위 4위[4]
통산 383 187 191 5 ­
총계 642 295 330 17 ­

Contents

1. 개요
2. 경력
2.1. 선수시절
2.1.1. 연도별 주요성적
2.2. 코치 1기 시절
2.3.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
2.4. 해설위원 1기
2.5. 코치 2기 시절
2.5.1. 투수코치로서의 평가
2.5.2. 퇴진 이후
2.6. 해설위원 2기
2.7. LG 트윈스 감독 시절
2.7.1. 2014년
2.7.2. 2015년
2.7.3. 2016년
2.7.4. 2017 시즌
2.8. LG 트윈스 단장
3. 기타

1. 개요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

선수시절에는 고교야구를 평정하고 암흑기였던 청보의 짧은 역사에서 유일하게 믿을 만했던 팀의 에이스.
투수코치로서는 2000년대 전반 무너졌던 LG의 투수진을 일으켜 세운 명 투수코치.
그러나 2000년대 후반 LG와 롯데 투수코치 시절의 평은 한마디로 실드불가.[5]
하지만 감독으로서는 롯데의 비밀번호를 끊게 하는 기반을 다졌고, LG에서도 런동님선장이 도망친 팀을 일으켜 세운 사령관.[6] 실제로 양상문은 LG 감독을 맡은 이후에 어느 정도 명예회복을 한다. 감독일 땐 괜찮은데 코치일 땐 최악 이순철 리버스 버젼


롯데 자이언츠,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을 거치면서 활동한 야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투수. 은퇴 후 지도자 경력을 시작하여 롯데 자이언츠LG 트윈스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고, 현장에서 물러나 있을 때는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2005년에 롯데 감독을 한 시즌 맡았고 2014년 5월 11일 김기태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LG에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별명은 수도 없이 많지만 양별명 가장 대표적인 것은 롯데 감독 시절 널리 퍼진 양상치.[7] 2014년 LG 감독 부임 이후 최하위 나락에서 4위까지 극적으로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제갈양상문, 양갈량, 잠실부처, 양상타치(...)란 익숙하지 않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 외에도 입동님이라는 별명도 있다. [8] LG 감독 부임후로는 평소에 인터뷰를 많이 잘 해서 입동님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그리고 양상문 부임후 LG의 성적이 많이 올라가자 위의 양상치의 파생 별명으로 갓상치, 잠실부처(...)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롯데 투수코치 시절에는 한화 이상군 투수코치와 더불어 대표적인 철밥통 무능력자로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는 존재 자체가 악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대한불교 천태종 신자라 생명나눔 홍보대사에 위촉되었다.

2. 경력

2.1. 선수시절


안경쓴 에이스 양상문

부산 출신의 안경잡이 에이스라는 것 때문에 최동원의 후계자로 기대를 받았다. "한국야구사"에서는 1977년을 부산고등학교의 해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 주역이 바로 양상문. 1977년 대통령배 준우승을 이끌면서 이름을 알린 양상문은 1978년 정부 방침으로 출전 제한이 걸려 3개 대회만 나가게 된 상황에서 부산고가 출전한 대통령배, 청룡기, 화랑대기에서 모두 우승을 이끌면서 부산지역 야구팬들에게 화려한 시절을 선사했다.

부산고 졸업 후 고려대학교를 거쳐 실업 리그에서 뛰다가 1985년 1차 지명을 받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하지만 당시의 사람 잡는 학원 야구에서 열심히 혹사당한 결과 롯데 자이언츠 입단 당시에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강속구는 물건너갔고 제구로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당시 롯데 구단을 쥐락펴락했던 박종환 전무(뒤에 KBO 사무총장 역임)의 눈 밖에 나서 2시즌만에 1987년 임호균과 함께 청보 핀토스로 트레이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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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시절 투구 모습

트레이드 상대로는 롯데: 임호균, 양상문, 경환, 이진우, 진근, 청보: 구선, 성만, 경하. 트레이드 핵심은 롯데의 '양상문 + 삼미 시절 활약했던 임호균'과 청보에서 가장 날렸던 2루수 구선의 트레이드였다. 전반적으로는 청보가 좀 더 득을 많이 본 트레이드로 기록된다.

이후 팀이 태평양 돌핀스로 바뀌고 신인투수 삼총사가 등장할 때까지 꾸준히 에이스 노릇을 해주다가, 1993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후 1994년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코치로 임명되어 지도자 경력을 시작한다.

투수로서의 능력만 본다면 꽤 쓸 만한 기교파였지만 통산 기록은 63승 79패 13세이브 40완투(10완봉) 평균자책 3.59로, 팀이 안습의 절정을 달린 청보와 태평양이다 보니 까먹은 성적이 많다. 청보를 기준으로 본다면 짧은 역사를 대표할만한 선수이고, 인천 야구 팬들 입장에서는 암흑기에 그나마 버틴 에이스. 선수 시절의 평판은 통산 기록에 비해서는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2.1.1. 연도별 주요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5 롯데 자이언츠 33 101 6 3 4 - 0.667 3.83 120 7 30 58 57 43 1.436
1986 21 37⅓ 1 2 0 - 0.333 1.93 27 2 14 21 8 8 0.964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7 청보 핀토스 36
(2위)
209⅓
(3위)
12 13 0 - 0.480 3.10 188 18 71 84 87 72 1.213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8 태평양 돌핀스 38
(2위)
169⅓
(5위)
9 12 3 - 0.429 3.83 185 12 56 68 89 72 1.411
1989 35 161⅔ 8 11 4 - 0.421 3.28 131 12 77 91 60 59 1.249
1990 34 162⅓ 11 9 1 - 0.550 3.22 151 10 57 68 72 58 1.269
1991 25 123⅓ 6 9 1 - 0.400 3.50 122 6 46 80 54 48 1.354
1992 28 144⅓ 7 8 0 - 0.467 4.55 134 22 78 83 78 73 1.455
1993 22 101 3 12 0 - 0.200 4.46 110 9 50 46 62 50 1.545
KBO 통산(9시즌) 272 1209⅔ 63 79 13 - 0.444 3.59 1168 98 479 599 567 483 1.335

2.2. 코치 1기 시절

은퇴 직후 롯데의 투수 코치로 재직하다[9] 1997년에 한번 잘리고 1999년에 돌아와서 2001년까지 투수코치를 했다. 그 후 2002년 LG 트윈스로 팀을 옮겨 스승인 김성근 감독 밑에서 투수코치를 맡았다.[10]


이 시기 양상문은 그 전 시즌 팀 방어율이 5점대를 넘으며 막장이 된 LG 투수진을 개선시켜 팀 방어율을 3점대 중반으로 낮추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적어도 2002~2003년에는 뛰어난 투수코치라는 평판을 얻었다. 김성근 감독도 투수코치로써 양상문의 능력을 거듭 높이 평가했다.

2.3.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



백골퍼 그란도 시즌백인천의 후임으로 2004년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참고로 롯데 자이언츠 최초의 부산고 출신 감독이다. 그 전까지는 경남고와 부산상고 출신만 감독을 역임했다. 당시 롯데는 8888577의 절정기(...)로 전년도 성적이 딱 3할을 간신히 찍었던 막장의 극을 보여주고 있었다. 2004년 시즌에 팀을 맡았던 양상문 감독 체제 하에서 롯데는 그해도 꼴지로 끝마치긴 하였지만, 막장이었던 전년도에 비해 승률을 4할대로 끌어올리며 나름 고무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어 2005 시즌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뒤엔 DTD가 따라오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4년 연속 꼴지의 사슬을 끊고 5위를 기록, 재계약이 유력해 보였으나 구단의 새로운 투자계획이 발표되면서 재계약 무산 크리. 그리고 롯데는 다시 77 후임자로는 강병철 감독이 부임. (당시 롯데 자이언츠 프런트는 팀을 상위권 전력이라고 오판해서 우승을 내부목표로 정하고 순조롭게 리빌딩을 진행중이던 양상문을 짜르고 우승경험이 있는 강병철을 영입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이 시절 감독으로서의 평가는 투수코치 양상문과는 달리 상당히 호의적인 편인데, 일단 4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던 팀을 5위로 끌어올렸으며 백인천 시절 트레이드당할 뻔하는 등 부진에 빠져 있던 에이스 손민한을 다시 일으켜 세워 2005년 MVP를[11] 타게 하기도 했으며, 이대호, 박기혁, 강민호 등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는 등 리빌딩에 꽤 공헌했다는 평가다. 여하튼 그의 재임기간에 롯데가 도저히 답이 안나오는 막장팀에서 그래도 미래가 존재하는 팀으로 바뀐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로이스터 시절에 롯데가 상위권으로 도약한데는 양상문 감독 재임 시절의 리빌딩이 기여한 바가 분명히 있다. 그의 뒤를 이은 강병철 감독이 다시 77을 기록한 것도 고평가에 한몫했다.

물론 어두운 면도 있다. 가장 큰 것은 리빌딩 과정에서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면서 고참 선수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했던 부분 때문에 결국 팀 케미스트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더구나 그 본보기가 공교롭게도 박정태였던지라 일부 롯데 팬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욕을 얻어먹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쾌조의 컨디션이었던 박정태를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개막 엔트리에서 빼버리고 롯데 2루수급 자원들이 돌아가면서 줄부상을 당해도 끝끝내 박정태를 올려서 쓰지 않고 외면했다. 당시 롯데 주전 2루수였던 조성환이 골절로 시즌 아웃되고 나서 대체 자원인 신명철, 신종길박준서까지 죄다 줄줄이 부상으로 쓰러져 2루수 자원이 바닥인 상태에서마저도 끝끝내 박정태를 올려 쓰지 않고 신인인 박진환을 올렸고, 박현승 또한 양상문 감독 재임기간 중에는 거의 전력 외 취급을 받았다. 꾸준히 1할대의 타율을 마크하던 박기혁은 철밥통으로 기용하면서 고참들에게는 공정한 기회조차 주지 않으니 팬들은 물론 선수들조차도 납득할 수가 없었던 모양. 롯데팬들이 참다참다 5월달부터는 롯데 구단 홈페이지 갈매기 마당에 '박정태 1군 등록 릴레이'를 펼치고 심지어 홈경기 외야석에 '우리는 악바리 박정태를 원한다' 는 플랜카드를 걸고 시위까지 벌이며 농성한 끝에 가까스로 박정태는 8월에 1군으로 콜업될 수 있었지만, 그나마도 양상문은 어쩌다가 한 타석씩 대타로만 기용하며 쳐다보지도 않았다.[12] 그러나 당시 팀을 장기적인 계획하에 리빌딩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노장 박정태를 배제하고 신진 선수들을 기용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양상문 시절 고참들의 홀대로 감독과 선수들간의 위계질서가 흐트러지며 선수들 통제에 문제점을 나타냈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지금은 은퇴한 한 고참선수와는 사람들이 지켜보는데서마저 서로 언성을 높였고, 현재 롯데를 떠나 타 구단에서 활약중인 모 선수는 공개된 자리에서 대놓고 양상문의 별명을 부르며 까댔다는 카더라가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왜 후임감독이 하필 꼰대스타일의 강병철이었는지가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당시 롯데 팀 분위기 자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수년간 꼴지를 하면서 팀분위기가 망가져 있었고 위계질서가 사라졌던 것이다. 로이스터 시절이긴 하지만 김성근 감독이 롯데를 모레알 같은 팀이라 이야기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홍성흔도 처음 롯데에 왔을 때 팀내 위계질서가 없는 점을 지적했다. 양상문 감독과 갈등을 일으켰던 고참도 있지만 양상문 감독에 의해 키워졌던 선수들은 양상문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백인천 감독, 강병철 감독 등과 계속 트러블을 일으켰던 손민한도 양상문 감독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양상문 감독이 재임하던 2005년에는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소소한 것들로는 첫 해 2004년 중간계투인 임경완을 100이닝 넘게 굴린 혹사라든지[13], 물론 양상문이 직접적으로 연관되었다고 말하긴 힘드나 양상문의 재임기간에 가 일어난 것이라든지.(...)류현진이 양상문의 코칭을 받고도 그 성적을 거뒀을지는 일단 넘어가자 류현진 대신 나승현을 뽑은 것은 프런트 책임이므로 이걸로 깔려면 스카우터나 이상구 단장을 깔 것.

2.4. 해설위원 1기

양상치 라이즈
롯데의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2006년에는 MBC ESPN에서 해설을 했고, 도하 아시안 게임 국대 투수코치를 맡아 도하 참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2.5. 코치 2기 시절


이 때의 양상문이 지금의 양상문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LG 트윈스에서 투수코치를 역임했다. 양상문이 부임하기 직전인 2005년~2006년 엘지의 팀방어율은 2년 연속 꼴지를 기록하고 있었다. 양상문 부임 이후 엘지는 2007년 팀방어율은 6위, 2008년은 8위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정영기 감독을 이어 롯데 2군 감독이 되었다. 여기에 이강돈양용모라는 검증된 무능력자들을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 하나로 2군 타격 코치, 배터리 코치로 집어넣었다. 그 결과 전임 정영기 감독시절 팬들의 희망이었던 롯데 2군은 하루아침에 망했고 그 결과 2010 시즌에도 롯데 2군은 퓨처스(구 2군) 남부리그 4위를 기록하였다.

2010년에는 아로요 코치의 뒤를 이어 롯데의 1군 투수코치를 지냈다. 2010년 양상문 코치 하에서 롯데 투수진이 폭망했다고 평하는 팬들도 있지만 이전 시즌 혹사로 인해 조정훈, 손민한 두 에이스가 동시에 이탈한 점을 감안하면 아로요 시절보다 2단계 떨어진 팀방어율 6위를 기록했던 2010년이 객관적으로 나빴다고 보긴 어렵다. 2010년 양상문 투수코치 시절을 비판하는 이들에 따르면 2007 시즌에 팀 세이브 최하위였다가 아로요 투수코치 하에서 2008, 2009 시즌을 거치며 안정적으로 변해왔던 불펜진의 경우 2010 시즌 들어서 양상문 코치가 오자마자 문자 그대로 사망 상태가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 롯데 투수진 자원 자체가 썩 좋지 않았고 부상이 많았다. 특히 손민한조정훈 두 에이스의 동시 이탈은 뼈아펐다. 이는 선발야구를 하고 있던 롯데에게는 엄청난 악재였다. 2009년 다승왕을 차지하며 맹활약했던 조정훈은 포크볼의 과도한 사용으로 부상의 우려가 컸었는데, 역시나 2010년 초부터 부상으로 고전하더니 결국 이탈하여 이듬해에 공익으로 훈련소에 입대하고 말았다. 전국구 에이스 손민한의 이탈 역시 타격이 컸다. 부상으로 2009년 WBC에서 한 경기도 출장하지 못했던 손민한은 부상 와중에도 2009년 14경기에 등판하며 팀에 기여했다. 그러나 손민한은 2010~2012 세 시즌 동안은 아예 한 경기도 나오지 못하고 팀을 떠나야 했다. 또한 외국인 용병 두 명 모두 투수인 경우가 많았던 당시 타 팀에 비해서, 투수 사도스키와 타자 가르시아를 용병으로 쓰던 롯데는 상대적으로 투수력에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2010년에는 선발진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부상으로 빠지다보니 불펜 투수들의 출장 수가 늘어나며 혹사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고, 전반적으로 투수 운영에 큰 어려움에 겪을 수 밖에 없었다.

2.5.1. 투수코치로서의 평가


왼쪽의 멱살잡히고 있는 선수는 조정훈. 양상문은 이 사진을 이리와서 말 좀 들어보라는 식으로 잡은 것이지 절대 멱살을 잡은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허나 이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본문에 언급되어 있듯이 조정훈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양상문의 안목을 까는 대표적인 에피소드기 때문에 이 사진은 양상문이 어떤 코치인지 알려주는 상징적인 짤방으로 야구팬들 사이에서 굉장히 많이 사용된다. 양상문을 높게 평가하는 야신이 이 사진을 봤을려나 모르겠다[14]

양상문의 최고 업적은 롯데에서 방출당한 것이다.

양상문의 투수 코칭은 한마디로 요약가능하다. 변화구는 슬라이더로 통일하고 스트라이드는 무조건 좁혀서 상체위주의 투구를 한다. 양상문의 투구철학은 스트라이드를 좁혀 각을 날카롭게 한 횡 슬라이더와 포심 패스트 볼의 투 피치.

양상문이 이상적으로 여긴, 그리고 완성형으로 본 투수는 전성기 시절 포심(직구)-슬라이더 투 피치만으로 리그 탑에 올랐던 박명환이다. 나중에 먹튀의 대명사로 웃음거리로 전락했지만 빠른 직구를 던지는 투수에게 슬라이더를 장착시키며 제2의 박명환을 만들려고 하였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LG에선 이범준, 정찬헌 그리고 롯데에선 진명호.

나름대로 투수코치로 경력이 있다는 사람이 제대로 가르칠 줄 아는 변화구가 횡 슬라이더 하나 뿐이다. 현대 야구에서 중시되는 종으로 떨어지는 구질이나 옆구리 투수에게 필수적인 잠기는 구질은 전혀 못 가르친다. 양상문이 슬라이더 외의 브레이킹 볼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는 MLB 해설 중 한 한 마디로 드러난다. 이 날 클레이튼 커쇼의 커브를 보고 양상문은 커브는 안 좋은데 패스트 볼이 좋아서 커브도 먹힌다 라는 망발을 내뱉었다. (...)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양상문의 투구이론은 일단 스트라이드 되는 오른발의 내딛는 위치를 조정해 축이되는 왼발과 스트라이드되어 뻗는 오른발의 위치를 좁게해서 상체의 반발력과 회전반경을 크게 해서 공의 구력을 높이고 적절하게 릴리스 포인트를 조절해 즉시전력으로 만들어 써먹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때 대한민국의 레오 마조니로 불리던 김시진과 유사하지만 김시진보다 능력이 더 떨어져서 이 이론조차 제대로 적용시키지 못한다. 최소한 김시진김수경-정민태-임선동이라는 무시무시한 쓰리펀치와 장원삼이라는 준수한 투수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참고로 김수경, 정민태, 임선동, 장원삼 모두 투수 다승왕 수상자들이다! 장원삼은 김시진 밑을 떠난 삼성 시절에 수상했지만, 그 기초는 김시진이 만들어 준 것이다. 심지어 2011 시즌 장원삼이 극도로 부진하자 류중일 감독이 직접 김시진 감독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그 때문에 릴리스 포인트를 전혀 못잡아 탄착군 형성이 불완전하고 무조건 강압적으로 뜯어고치는 방식이다보니 투수들이 제대로 적응을 못한다.

게다가 이런 투구폼은 당장 급하게 써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동양인의 체구적 특성에는 맞지 않는다. 일단 하체 힘의 전달력이 좋지 못하니 상체의, 특히 어깨의 반발력에 기대는 점이 커서 온 몸을 이용해서 던질 때보다 어깨에 충격이 더해져 장기적으로는 부상을 야기시킨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자신의 이론에 갇혀서 투수들의 신체적 특성이나 스타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투구폼을 획일화시키는 것. 그나마 상체위주 투구폼이 맞았던 선수들은 어느 정도 성장하지만 그렇지 않은 투수들은 시 to the 망 그나마 위에서 말했듯이 양상문은 그 문제많은 이론조차 제대로 못 가르쳐서 제대로 성장하는 투수가 없다. 롯데 감독으로 재임하던 시절 장원준의 투구폼을 제대로 못 가르쳐서 4번이나 폼을 바꿔며 해맨 일화가 있다.

LG 트윈스 투수코치로 있던 시절 봉중근, 이범준, 정찬헌의 투구폼을 전부 똑같이 뜯어고쳤고 2010년 투수코치로 부임하자마자 송승준, 장원준 등 롯데 투수들의 스트라이드가 전부 좁아졌다. 여기에 어깨 부상있는 조정훈을 무리하게 기용해 팔꿈치까지 박살나게 만드는데 공헌했다.[15]

이명우는 경험이 부족한 선수를 군 제대하자마자 철지난 슬라이더 하나 장착시키고 풀 타임 선발로 굴려먹으려다가 부상, 팔꿈치 부상이 있으며 역시 군제대 후 바로 굴려먹히고 있는 사이드암 투수 이재곤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2009년 롯데 2군 감독으로 있는 동안 2군 투수진은 이미 박살냈다. 허준혁, 정동, 진명호 등 2군 투수 유망주 태반이 이미 양상문화되었다.(해당 기사) 결국 선발 대체 요원들은 로이스터 감독이 직접 찾은 이재곤김수완.[16] 이쯤 되면 투수코치가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롯데에서 투수코치 따위는 장식일 뿐.

투수 혹사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2004년 임경완은 한 경기 84구를 던지는 등 시즌내내 혹사당하다 허리가 부러진채로 군에 입대한 뒤 언더핸드 수준으로 스트라이드를 내리고 나서야 간신히 재기할 수 있었고, 신인이었던 조정훈을 고교 시절 혹사의 여파가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급하게 올렸다가 강병철 감독 2년 내내 2군에 머물게 만들었다.

선수보는 눈이 없다는 비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들의 주장도 다소 편파적이다. 조정훈을 뽑은 스카우터진에게 왜 쟤를 뽑았냐고 조정훈이 보는 앞에서 불만을 토로했다. 근데 양상문의 말도 틀린 게 아닌 게, 당시 타팀에서는 윤석민, 오승환 등을 뽑았던 것 비해 롯데는 상위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훈을 선택했던 것이다. 조정훈 선택에 대해서는 당시에도 롯데 팬들 사이에 말이 말았다. 조정훈이 2009년 팬들과 전문가들의 심각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구장창 포크볼을 뿌려대며 공동 다승왕[17]을 차지할 때는 롯데의 선택이 옳고 양상문의 판단이 틀린 듯 하기도 했으나... 김수완은 원래 양상문이 2군에 있을 시절 방출하려고 했었으나 박정태를 위시한 2군 코칭스탭들이 뜯어말려서 방출은 면했다.[18], 이후 김수완이 잠깐 빤짝했을 때 김수완을 방출하려 했던 양상문이 까이기도 했지만, 결국은... 시즌 초 양상문이 직접 선발후보가 될 수 있다라고 했던 진명호의 경우 2009년 3경기 선발로 나와 3경기 동안 7.1동안 16실점 하면서 평균자책점 19.64라는 아름다운 성적을 기록하면서 진명호를 추천한 양상문까지 같이 까였지만, 2011년에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오히려 팬들로부터 혹사 걱정을 받고 있다.

가장 간단하게 납득하고 싶다면 LG와 롯데의 경기를 보자. 양상문이 투수코치를 넘어 감독까지 하는 곳투수코치를 넘어 감독까지 했던 곳의 대결을 보면 확연히 이해가 될 것이다.엘 꼴라시코

2010년 8월 13일 라이언 사도스키가 볼넷으로 만루를 채웠을 때 양상문이 올라왔었는데, 그 후 이종범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그러자 인터넷에서는 양상문 디버프, 양상문 왜 올라왔냐!면서 까댔다. 사도스키는 결국 퀄리티 스타트를 했으니 까일 여지가 적었을지도 모른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 연임 지지 광고가 팬들에 의해 올라왔는데, 고작 사흘만에 천만 원을 찍었다. 이에 롯데 프런트는 당혹감을 보였는데, 이에 대해 팬들은 '계획이 들통나서 당황했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2010년 롯데의 성적을 보면 문제는 불펜진인데 롯데의 블론세이브가 2010년 16개인데[19] 이 중 절반만 세이브 했어도 시즌 2, 3, 4위 싸움은 혼전이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게다가 롯데의 엄청난 공격력을 고려해본다면 1위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이 책임을 첫 번째가 감독이 져야 된다고 하더라도 두 번째는 투수코치다. 그런데 성적이 안 좋다는 이유로 감독을 잘라 놓고 역시 책임을 져야 할 투수코치가 차기 감독이 된다면... 이 광고는 롯데 팬들이 구단을 얼마나 불신하는지 잘 보여주며 만약 그들의 계획대로 된다면 얼마나 많은 팬을 잃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 일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양상문 투수코치다. 거기에 양상문 코치 스스로도 자신을 차기 감독감으로 생각하고 움직였음이 로이스터 감독 해임 과정에서 드러났다. 로이스터 감독 재계약 불발 기사에 다른 구단의 일본인 코치설마 스기모토?에게 함께 일하자고 권유한 '로이스터와 함께 해임된 코치'의 존재가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니셜도 필요 없었다.

이후 이재곤김수완이라는 롯데 구국(?)의 영웅을 자신이 길러냈다고 언론플레이하는 게 목격되었고 대차게 까였다.[20] 무엇보다 이재곤 비상의 가장 큰 핵인 싱커는 경찰청 선배 신용운의 권유와 손승락 등의 도움, 그리고 이재곤 본인의 피나는 노력으로 경찰청 야구단 시절 체득했다. 날로먹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롯데 구단이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3년 연속 고배를 마신 제리 로이스터 감독, 박영태 수석코치와 함께 세트로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함에 따라 몇 년 묵은 뭇 롯데빠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로이스터 연임 찬성과 반대를 떠나서 롯데에 관심있는 이들은 박영태, 양상문 해임에 한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굳이 하나 잘한 점을 꼽자면 있기는 하다. 2001년 다승왕을 거머쥔 이후 2년 연속 추락을 거듭하며 무너지고 있던 손민한의 멘탈을 바로잡아 다시 한 번 국내 최정상급 투수로 일으켜세운 사람이 양상문이다. 실제로 손민한은 양상문을 매우 따른다고. 그런데 결국 이것도 Skill상으로는 도움 준게 아니잖아?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건 투수코치때 한 일이 아니라 감독떄 한 일이잖아?

LG 감독 부임 이후에는 임정우에게 스플리터를 가르쳤는데, 과연 양상문이 종 변화구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가의 평가 척도가 될 확률이 높았다.

2.5.2. 퇴진 이후

퇴진이 발표된 후인 2010년 10월 6일, 롯데 자이언츠 사이트의 팬 게시판인 갈매기 마당에 #작별 편지(?)를 올렸다.
투수코치에서 물러남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으로 간추리면 자기는 다 잘했고 실패는 전부 다 제리 로이스터 때문이라는 자기변명이다...아무리 외국인이라지만 일개 코치가 공개적으로 상관인 감독을 비판한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사례로 사실상의 자폭. 게다가 같이 짤린 박영태 前 수석코치가 그나마 허심탄회하게 소감을 밝히고 쿨하게 물러나는 인터뷰를 한 것과 대비되어 더더욱 까였다. 양상문의 능력과 대한민국의 정서상 프로 구단에서 더이상 기용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 자폭으로 롯데 자이언츠 팬들은 다시는 양상치 볼 일 없게 되었다라며 환호했다.

하지만 로이스터 안티 성향인 갈매기 마당의 일부 팬들은 글 내용에서 보다시피 투수코치 말도 안 듣는 로이스터야말로 막장 감독이다라는 주장을 내세우며 양상문을 무능한 감독 덕에 함께 휩쓸린 희생양으로 몰았지만 저것이 사실이더라도 양상문이 무능하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이후 롯데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물러난 양승호 감독의 빈 자리를 찾고 있는 고려대학교와 접촉 중이라고 전해져 대학 최고를 자랑하던 고려대 투수진도 박살나지 않을까 했지만, 고려대에서는 일단 길홍규 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승격시킨 채 대학리그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고려대 투수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카더라

창원시를 연고로 한 제9구단 엔씨소프트의 감독 선호도 조사에서 선동열, 제리 로이스터 다음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가을의 전설 최동원보다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기사 롯데 감독 시절 4년 연속 꼴찌였던 막장팀을 일으켜 세워 리빌딩을 하면서 동시에 성적도 어느정도 냈던 감독으로써의 역량이 크게 반영된 듯 하다. 반면 최동원 감독은 한화 2군 감독 시절의 성적 때문에 감독으로써의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작용하였을 것이다.

스프링캠프 기간에 충격적이게도 SK 와이번스에서 양상문을 투수 인스트럭터로 데려가 병역 문제로 출국할 수 없었던 고효준전담코치로 붙여줬다. 롯데가 양상문을 자른 것에 이렇게 깊은 뜻이

김성근 SK 감독은 양상문의 지도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 했으나, 3월 17일 시범경기에서 놀라운 양상문 매직의 힘, 월미도 바이킹 제구! 고효준 그는 좋은 투수였습니다 하지만 이때 임팩트가 엄청나서 그렇지, 막상 정규 시즌에 들어왔을 때는 고효준은 전년에 비해 나쁘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탈삼진과 승수가 떨어진 것을 제외하면 좌완 롱맨 보직도 꾸준히 등판했고, 전지훈련을 못 간 것치고는 준수한 시즌을 보낸 편이었다.

2.6. 해설위원 2기


왼쪽부터 손혁, 양상문, 허구연, 차명석 그렇지만 허구연만 남았다
결국 야구 현장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2011시즌부터 다시 MBC SPORTS+ 해설위원을 맡게 되었다. 3월 15일 롯데 덕아웃에 방문해 선수들과 인사를 나눴는데, 강민호에게 한 말만 봐도 정말 뻔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이 할 농담이 아니야너 때문이야[21]

다만 해설위원 양상문의 능력 자체는 자신의 대학원 석사 과정 동안 접한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이미 2006년에 해설위원을 하면서 그 탁월함은 인정받았기 때문에 평가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보일 수 있지만 양상문의 지나치게 편협하고 노골적인 편파해설은 늘 항의를 받고 있다. 같은 방송국의 이순철 해설위원이나 축구의 박성화 감독과 비슷하다.[22] 그러나 지나치게 롯데 위주로 해설을 한다는 롯데 출신 해설위원들의 단점을 그대로 장착했다.(…) 그래서 다른 구단 팬들에게 먹지 않아도 될 욕을 먹고 있다.

거기에 SK 팬들에게는 SK가 치르는 경기의 해설로 배정될 때마다 상대 팀을 일방적으로 띄워주는 새로운 편파해설의 거성으로 떠오르면서 눈엣가시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고롤코 보내버린 주제에 정식 코치로 안받아줬다고 이러기냐? 이 편파판정의 피해자에 한화 이글스가 추가되면서 한화 팬들도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다. 이희근이 끝내기 안타를 칠 때 양상문이 중계석에서 내뱉은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한화 팬을 넘어 전 KBO팬들이 과연 양상문이란 소리를 하게 만들었을 정도였다. 한화와 SK가 투닥투닥할때는 SK를 응원한다. 그래도 잠시 몸담았던 팀이라 그런가?

그런데 딱 한 팀, KIA 타이거즈에게는 의외로 호의적이다. 친정팀인 롯데 자이언츠와 맞붙은 경기를 중계할 때는 도리어 KIA쪽을 더 편드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역편파(?) 해설을 하기도 한다. 또 넥센 히어로즈에도 호의적이다. 넥센에 호의적인 해설가를 손가락에 꼽을만 했던 시절에[23] 양준혁과 함께 거의 유이하게 넥센 편을 들며 혀갤러들을 놀라게 하였다. 아마 구 청보 핀토스 -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약했던 것 때문에 팀이 해체 후 재창단하였어도 애정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스포츠동아에 이런 것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뭐? 누가? 누구를? 그래서 지금까지 그러셨어요?
넥타이를 놀린 죄로 장성우에게 고자킥(?)을 날린게 사진에 잡혔다.

양상문 : 감히 내 넥타이를! 장성우 : 고자라니!

(...)
2011년 에이스급 좌완투수들의 집단 부진에 대해 진단을 했다. 나의 혜안 쥐기지?
2012년 시즌이 끝나고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에 선임되었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3년 1월말, SK 재활군에 있다가 신체검사에서 불합격해 전지훈련에서 탈락한 박희수를 전담코치하게 되었다. 2년만에 다시 들리는 SK팬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진행된 타이중 참사 기간 동안 기가 막힌 투수교체 타이밍을 선보이면서 화려한 상치매직으로 팬들을 감동시켰다. 물론 안좋은 의미로.재박량이 이론 물리학자라면 양상문은 실험 물리학자다 물론 물리학자 게다가 전담한 박희수는 나름대로 잘 활약해 주었지만 끝내 귀국하기가 무섭게 왼쪽 팔꿈치 인대 부상이 확인되면서 2013년 4월까지 박희수는 SK 전력에서 이탈했다.

메이저리그 해설도 가끔 하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할 때마다 어이가 공중으로 날아가는 발언과 틀린 정보를 많이 퍼뜨린다. 대표적인 예가 클레이튼 커쇼를 두고 커브는 그다지 쓸만하지 않은데 속구가 좋아서 선수들이 커브에 당한다고 한 것.[24] 그것 외에도 맷 하비를 두고 놀란 라이언 이후 강속구 투수가 등장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강속구 투수가 다시 나타났다 라면서 하비의 95마일 패스트볼을 두고 '정말 빠른 공이죠' 라고 말했다. 정작 95마일은 하비의 패스트볼 평균 속도. 하비의 패스트볼은 가장 빠를 때 100마일을 넘어간다. 거기에 당연하지만 성공 여부가 아닌 강속구만 놓고 본다면 놀란 라이언과 맷 하비 사이에는 마이너리그만 쳐도 세 자리수를 넘어가는 투수들이 등장했다. 그냥 '저 놀란 라이언 이후 미국 야구 안 봤어요 헤헤헤' 라는 소리로 알아들으면 편하다.[25]

거기다 시도때도 없이 동양야구 예찬을 자주 하는데, 부진에 빠진 히스 벨을 두고는 '투구폼이 살짝 안 좋은데, 한국 투수 코치들에게 코칭을 받으면 더 좋아질 수 있다. 분명한 건 메이저와 한국 투수 코치들 사이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라는 발언과 그렇다는건 양상문은 한국인이 아닌건가?? 미국 포수보다 한국 포수들의 미트질이 더 좋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2013년에는 국저스 LA 다저스월드 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자 양상문이 보스턴 레드삭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월드시리즈를 현지중계하러 가는 참사가 발생하며 뭇 야구팬들의 고막을 고문했다.[26] 월드시리즈에서도 주옥같은 헛소리 명언들을 많이 남기고 있다. 도루 시도가 2013년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28위였던 세인트루이스를 기동성이 무기라고 하지를 않나, 우에하라의 1루 견제구 끝내기(...)를 두고 '동양야구가 미국야구에 비해 저런 게 좋죠' 라면서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나 [27], 존 래키가 불펜 등판한 것을 두고 동양 야구의 영향이라고 하질 않나 [28], 2013년 행크 애런 상미겔 카브레라가 탔다는 말을 캐스터가 하자 '홈런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라는 기본적인 지식조차도 결여된 소리를 작렬하지 않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행크 애런 상은 홈런왕이 아닌 가장 훌륭한 타자에게 주는 상이며, 애초에 2013년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은 카브레라가 아니라 크리스 데이비스다. 이렇듯 메이저리그 해설로서 받는 평도 좋지 못한 편이다.

2.7. LG 트윈스 감독 시절

2.7.1. 2014년

"야구 지도자" 양상문의 역량이 재평가된 시즌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하다.

2014년 시즌 초 김기태가 버리고 도망간 꼴찌를 하던 LG를 위기에서 구원하고 다시 가을야구를 할 수 있게 해준 감독

2014년에도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해설위원으로 계속 활동하던 중 5월 11일 김기태 전 감독의 사퇴로 공석이 된 LG 트윈스의 새로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7.2. 2015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3연패를 당하여 LG 트윈스 갤러리 등에서 까이고 있다. 주로 까이는 이유는 명장병에 걸렸다는 것 등이다. 다행히 4월 1일 첫 승을 따내긴 했지만, 안 좋은 성적으로 일관한다면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2015 시즌 9위에서 심정지.
그렇게 엘지 트윈스는 포스트시즌 탈락이 확정됐다.

2.7.3. 2016년

2016년 시즌에 앞서 양상문에게 기대를 건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프런트의 팀에 대한 투자도 눈에 띄지 않았고, 작년의 처참한 성적 때문에 대부분의 팬들은 성적만 내려가면 언제든지 까겠노라고 눈을 번뜩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5월까지 유지하던 중위권 유지가 6월에 무너지는 분위기가 되자 팬들은 급기야 현수막 시위를 통해 양상문 감독의 퇴진 요구까지 할 정도였다.

그러나 주장 류제국이 나서서 양상문 감독에 대한 신임을 천명하였고, 본인도 묵묵히 팬들의 비난을 감내하며 팀을 이끈 끝에 7월 말부터 반등을 시작해 8월 초 9연승을 비롯하여 수 차례 연승 행진을 이어나가 팀을 다시 4위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 결국 시즌 막바지에 정규시즌 4위를 결정짓는다.

그 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1차전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2차전에서의 끝내기로 어렵게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지난 포스트시즌에서 패배를 당했던 넥센 염경엽 감독을 상대로 3승 1패의 우세한 스코어를 올리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는 타선의 부진을 극복하지 못한 끝에 1승 3패로 패퇴하며 시즌을 마감했으나, 팬들의 근시안적인 비난을 뒤로 하고 묵묵히 리빌딩을 준비하여 그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다만 팀 프랜차이즈에 대한 냉대라던가(대표적으로 이병규 등)[29], 지나친 작전 구사로 오히려 경기 흐름을 말아먹는 등의 비판은 여전히 남아 있다.

2.7.4. 2017 시즌

2017 시즌에는 리그 수위권의 투수진을 바탕으로 중위권을 유지했으나 그와 반비례하는 물타선은 내내 불안요소였고, 결국 후반기 들어 하락세를 보이며 결국 시즌을 6위로 마감하였다. 강점이었던 투수진도 감독의 무원칙적인 기용으로 인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평가.

2.8. LG 트윈스 단장

시즌 종료일인 2017년 10월 3일에, LG 트윈스는 송구홍 단장을 2군 감독에 선임하고 양상문을 새 단장에 선임했다. 이는 양상문이 내세우던 '리빌딩' 기조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잠깐, 뭐라고요?!) LG의 신임 감독에는 류중일삼성 라이온즈 감독이 선임되었다.

3. 기타

선수 시절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석사 출신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두뇌파, 학구적이란 이미지에 비해 실제 지도력은 너무나 형편없다는 혹평을 받으며 학벌로 생명을 이어가는 불사조라고 코치 시절 내내 까였다.

이래저래 욕 많이 먹은 지도자였지만 롯데에 대한 애정만큼은 확실했다. 2011년 해설위원으로 컴백했을때 롯데팬들의 반응은 "이제 마이크 잡았다고 과거 이야기하면서 롯데 무진장 까겠군." 이라며 견제했지만 오히려 해설내용은 친 롯데. 그 때문에 롯데팬들은 타팀 출신의 마음에 안드는 스태프가 있을 경우 양상문은 롯데를 사랑하기라도 했지라며 깐다(…).

게다가 2012년 시즌 예상에서 롯데를 4강 후보로 꼽았던 몇 안되는 인물이며 유일하게 4강 진출팀을 모두 맞췄다. 그래서 의리의 양상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13년 시즌 예상에서도 유일하게(!) 롯데를 4강후보로 꼽았다. 다만 이 예상은 이번에는 빗나갔다.

김성근 감독은 양상문을 높게 평가한다. 김성근의 책 중 하나인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를 보면 양상문을 똑똑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기도 하며 양상문을 믿으며 제대로 된 리더로 키우고 싶었다는 말까지 한다. 실제로 김성근과 양상문은 태평양 돌핀스 시절 한 팀이었다.그러나 김성근 감독이 2014시즌 특별해설을 맡았을때 LG 경기를 해설했는데 그때 양상문 감독을 대차게 까버렸다. 김기태도 호되게 까인 것은 덤이다. 이 까임의 효과 덕분인지 양상문의 LG는 이후 4강에 진출하면서 김성근의 안목에 대해서 재평가가 이뤄지게 된다.

투수코치로써 양상문의 자질을 심하게 비난하는 이들이 있지만 팀방어율 등 객관적인 지표로 볼 때 이들의 주장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감독일때는 롯데에서는 장원준, 강민호등을 키워내면서 비밀번호 탈출의 기반을 다졌고 LG에서는 기존의 이동현,유원상만 혹사당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탄탄한 불펜진을 구축하면서 -16까지 떨어진 LG를 4위로 구원했다.

2014 시즌 후 올해 유독 과열된 FA 시장의 거품 논란을 잠재우려면 FA 선수를 공개입찰을 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비웃음을 들었다. 이는 FA 제도 목적이 뭔지 모르는 발언인데 FA 자격을 얻은 선수가 자유롭게 팀을 골라 선택할 자격을 주지 않으면 FA의 근본적인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지극히 선수에게 불리한 방법이다. 자유계약선수(Free Agent)가 아니라 자유경매(Free Auction)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양상문 감독과 비슷한 생각으로 실행했다가 비웃음을 들으며 꼬리를 만 경우가 있는데, KESPA가 예전 E-스포츠에서 이런 식의 FA를 했다가 질타만 들었다.

2014 시즌후 FA를 선언한 차일목이 2년 4.5억에 계약하자 44년 4억에 계약해도 안 데려올거라고 기자들에게 말한게 공개되면서 논란이 되었다. 다른 팀 선수에게 쓸데없이 비난을 했다는 평. 물론 차일목의 기량, FA 계약 후 발언 등으로 차일목이 어그로를 끌었지만 굳이 저런 발언을 할 건 있냐 싶은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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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서는 밀워키 브루어스가 1991년에 -17차이에서 5할 승률을 맞춘 기록이 있다.
  • [2] 그런데 실제 나이보다 학교를 1년 빨리 들어가서, 1960년생과 동기가 된다.
  • [3] 준플레이오프에서 NC에게 승리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넥센에게 패배하면서 최종 순위가 4위로 결정됐다.
  • [4] 준플레이오프에서 넥센에게 승리하였으나 플레이오프에서 NC에게 패퇴하였다.
  • [5] 양상문의 모든 악평은 이 시절에 쌓였으며, 롯데팬들에게 한때 "죄인 양상문 죄목 양상문"으로 통한 지도자 시절 최대의 흑역사.
  • [6] 시즌 초 꼴찌에 머물던 LG는 기어이 4위로 가을야구에 합류했다.
  • [7] 2011년 SK 와이번스 스프링 캠프에서 인스트럭터로 잠시 영입되어 고효준의 폼을 봐주다 시범경기에서 고효준이 3연속 폭투를 저지르며 무너지는 장면이 나오자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당시 상하이 한국 영사 섹스 스캔들의 스파이 덩신밍에 빗대어 '양신밍'이라고 깠다.
  • [8] 확실히 전임 김기태런기태감독에 비해서는 말이 조금 많은 편이다. 다만 선수들 개별에 대한 인터뷰를 줄이고 감독에게 인터뷰를 몰리게 했다는 말도 있어서 평가는 유보.
  • [9] 이 시기에도 신고선수 출신의 박지철, 박석진을 전천후 스윙맨으로 키워냈다.
  • [10] 이 때문인지 김성근 감독은 의외로 양상문의 코칭 능력을 준수하게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아직 병역을 필하지 못해 해외 전지훈련에 가지 못한 고효준의 전담 인스트럭터로 잠시 양상문을 붙여준 적도 있다.
  • [11] 프로야구 역사상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팀에서 시즌 MVP가 나온 것은 2005년의 손민한과 2012년의 박병호 단 두 명뿐이다.
  • [12] 당시 롯데의 베스트 라인업 가운데 2할 5푼 이상을 치는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 했음에도, 타격감 유지가 힘든 대타 포지션에서도 출루율이 5할을 넘을 정도로 감이 좋았던 박정태를 그토록 철저하게 외면한 점에서 어떻게 보면 선동열양준혁에게 했던 짓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 [13] 하지만 이는 임경완2004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걸려들면서 자연스럽게 묻혔다.(...)
  • [14] 그런데 조정훈은 사실 2008년까지는 1,2군을 왔다갔다하는 평범한 투수였지만, 본인의 첫 풀타임 시즌인 2009년 새로 배운 포크볼을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자신의 능력치 이상을 뽑아내며 공동 다승왕을 차지한 경우다. 결국 조정훈은 2009년 시즌 직후에 부상을 입게 되었고 2010년 시즌 후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등판한 적이 없다. 2014년에는 결국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 설령 부상을 회복하고 복귀를 한다고 해도 포크볼을 던지지 않는다면 위력적인 투수가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 [15] 여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조정훈은 2009년의 포크볼 혹사가 부상의 주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 [16] 이때 케이블로 롯데의 퓨처스 리그 경기를 본 로이스터 감독이 왜 이런 투수가 있다는 것을 여태 보고 안했냐고 심하게 화를 냈다는 일화가 있다. 제리 로이스터 항목 참조.
  • [17] 두명도 아니고 로페즈, 윤성환과 3인 공동 다승왕이었다.
  • [18] 김수완은 인터뷰 때 유독 양상문에게는 고마움을 표현하지 않았다. 게다가 구단이 그 건 이후 언론플레이까지 했으니...
  • [19] 주자가 루상에 있는 상태에서 블론세이브되는 터브블론세이브는 절반인 8개.
  • [20] 시즌 막판과 포스트 시즌에서의 모습을 보면 이 둘은 이제 다른 팀 타자들에게 장단점이 모두 분석된 것으로 보여진다. 즉, 양상문이 진짜 이들을 길렀다고 언론플레이를 하려면 그 약점부터 메워야 하는데 그게 될까?
  • [21] 다만 좌측 해당기사 때문에 양상문과 강민호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2012년 6월 7일 한화와의 주중 마지막 시즌 경기 오프닝 멘트 이전에 서로 만나 강민호가 양상문이 낀 안경으로 간단히 장난치는 것을 카메라에 녹화하었고 2회초 강민호가 타석에 있을때 잠시 보여주었다. 서로간의 반응도 서로 웃고 좋게 넘어가는 것으로 봐서는 적어도 서로간의 관계가 나쁜 편은 아니다.
  • [22] 참고로 양상문처럼 이론은 잘 아는데 실전에서 망했었고 편파해설을 자주하는 해설위원이 하나 더 있다. 허구연 참조.
  • [23] 2013년 현재는 구 현대 시절 해설가들이 많이 생겼다. 이숭용, 박재홍, 조용준 등등
  • [24] 아예 두고두고 까려는 모양인지 포스트시즌에서 탬파베이 경기를 중계 하다가도 깐다.
  • [25] 하비 이전에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만 봐도 너도나도 괴물이라 이야기하던 마당에.... 박찬호만 해도 전성기 LA 다저스 시절 95~6마일 포심을 잘만 뿌렸고, 저스틴 벌랜더는 선발투수임에도 경기 후반에 100마일 공을 뿌릴 정도로 강속구 투수로 유명하다. 구원 쪽에서는 아롤디스 채프먼100마일을 우습게 찍는다.
  • [26] 다저스가 진출했다면 그나마 나은 허구연이 해설할 가능성이 높았다.
  • [27] 한국 프로야구가 2008년 봉중근이 견제사 6개로 1위, 두 개호세 리마가 2위를 차지하는 동안 메이저리그는 그렉 스미스가 15개로 1위, 앤디 페티트가 9개로 2위였다. 그 밑에 자잘한 선수들이 수십 명씩 3~4개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봉중근도 호세 리마도 메이저리그 출신
  • [28] 어차피 오늘 이기지 못하면 내일이 없는 단기전에서 선발을 불펜 등판시키는 것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흔한 일이다. 당장 한국에도 잘 알려진 2001 월드 시리즈 7차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구원투수는 전날 선발투수였던 랜디 존슨이었다. 게다 앞서 등판한 미겔 바티스타도 선발이었다.
  • [29] 양상문은 과거 롯데 시절에도 박정태 등 팀 노장에 대한 대우가 박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