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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농구선수)

last modified: 2015-04-14 21:59:39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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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모비스 피버스 No.6
양동근(梁東根)
생년월일 1981년 9월 14일
국적 한국
출신학교 용산고 - 한양대학교
포지션 포인트가드
신체 사이즈 181Cm, 81Kg
프로입단 2004년 드래프트 1번(전주 KCC 이지스)
소속팀 울산 모비스 피버스(2004~ )

2005~2006 한국프로농구 MVP
신기성(원주 TG삼보 엑서스)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서장훈(서울 삼성 썬더스)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6~2007 한국프로농구 MVP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서장훈(서울 삼성 썬더스)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김주성(원주 동부 프로미)

2014~2015 한국프로농구 MVP
문태종(창원 LG 세이커스)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2015-16 시즌

2008 농구대잔치 MVP
강병현(중앙대학교) 양동근(상 무) 유병재(상 무)

2004~2005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
이현호(서울 삼성 썬더스)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방성윤(서울 SK 나이츠)

2006~2007 한국프로농구 이성구기념상(국내선수)
현주엽(창원 LG 세이커스)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강대협(원주 동부 프로미)

2006~2007 한국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MVP
강혁(서울 삼성 썬더스)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김주성(원주 동부 프로미)

2012~2013 한국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MVP
오세근(안양 KGC인삼공사)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문태영(울산 모비스 피버스)

2014~2015 한국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MVP
문태영(울산 모비스 피버스)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2015-16 시즌

2012~2013 한국프로농구 최우수수비상
김주성(원주 동부 프로미) 양동근(울산 모비스 피버스) 양희종(안양 KGC인삼공사)

Contents

1. 개요
2. 기록
3. 선수 경력
3.1. 프로 입문과 신인상
3.2. 두 번의 MVP와 군입대
3.3. 군입대와 국가대표(2006~2009)
3.4. 군 복무 이후(2009~2012)
3.5. 모비스 왕조의 주역(2012~
4. 플레이 스타일
5. 이모저모


1. 개요

모비스의 영원한 캡틴
한국 농구계의 유재석[1]
KBL 출범 후 가장 화려한 커리어를 보유한 리빙 레전드

울산 모비스 피버스의 캡틴이자 포인트가드. 자타공인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중반까지 KBL을 대표하는 포인트가드. 단순히 경기를 조율하는 고전적인 포인트가드라기보다는 돌파와 슛 능력도 갖춘 듀얼가드의 성향이 짙다

아울러 기아자동차 농구단의 연결 고리가 사실상 끊어진 모비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

2. 기록

정규 시즌
423경기(2014.12.07) 33.9분 12.6점 3.0리바운드 5.2어시스트 1.56스틸 FG 47.5% 3P 38.0% FT 81.7% PER 15.11

플레이오프
25경기(2014.10.17) 37.3분 13.8점 4.6리바운드 5.7어시스트 1.84스틸 FG 42.0% 3P 35.8% FT 87.5% PER 15.61

챔피언 결정전
27경기(2014.10.17) 37.6분 13.5점 3.7리바운드 5.0어시스트 1.07스틸 FG 47.2% 3P 30.3% FT 76.2% PER 12.67

3. 선수 경력

3.1. 프로 입문과 신인상

용산고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했다. 한양대를 진두지휘하면서 종횡무진 누비면서 한동안 약세를 면치 못하던 한양대 농구의 돌풍을 주도했다. 물론, 대학 시절에는 결국 연세대나 상무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지만, 한양대의 리더로서 일찍부터 대학선발이나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선발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히 2004년 드래프트 최대어로 손꼽히게 되었다.

2004년 드래프트에서 전주 KCC 이지스에 의해 전체 1순위로 지명받았다. 하지만, KCC는 2003-2004 시즌 도중 모비스의 센터 R.H. 바셋을 임대 영입하는 과정에서 KCC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전체 드래프트 1순위를 양도했고, 그 결과 모비스는 비록 형식은 전주 KCC가 가진 지명권이었지만, 그들이 실질적으로 지명권 1순위를 행사해 양동근을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마침 모비스는 팀 재건을 위해 한 때 좋지 않게 헤어졌던 유재학을 전자랜드에서 파격적인 금액을 불러 모셔오는데 성공했고,[2] 유재학 감독의 합류와 그의 갈굼 지도 아래 양동근은 프로에서도 한양대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며 팀을 지휘한다. 비록 5할 승률에 미치지 못한 성적이었지만, 신인 첫 해 평균 11.5점 6.1어시스트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을 내며 신인상을 타는데 성공.

3.2. 두 번의 MVP와 군입대

박수교, 최희암, 장일의 시대를 거쳐 팀의 전설들도 다 떠나고, 막장으로 치달았던 모비스는 유재학 감독의 취임 이후, 달라지기 시작했고, 그 일선에는 양동근이 있었다. 그리고 모비스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 크리스 윌리엄스까지 가세하면서 모비스는 하위권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돌풍을 일으키며 일약 정규시즌 우승이라는 사상 최고의 이변을 연출한다. 외국인 선수에게 따로 MVP를 주기 때문에 국내 선수 중에서 MVP 선정을 해야 하는데 정규시즌 2위인 서장훈과 치열한 경합을 거친 끝에 결국 둘 다 MVP를 받았다.

사실 성적만 놓고 보면 서장훈이 받는 것이 더 나아 보였던 것은 사실. 서장훈은 평균 19.6득점 5.6리바운드를 기록하면서 국내 선수 중에서 으뜸가는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어쨌거나 정규시즌 우승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양동근은 평균 12.5득점, 4.83 어시스트라는 준수하지만 다소 평범할 수 있는 성적으로 MVP를 수상했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만난 두 선수는 모두 챔프전의 주역이 되지 못했다. 일단 양동근은 챔프전에서 평균 15.5득점 7.1어시스트로 분전하기는 했지만, 서울 삼성 썬더스와 치열한 접전에서 4전 4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했다. 높이에서 우세한 삼성이 정작 높이 대신에 강혁이트 존슨의 픽 & 롤을 들고 나오면서 모비스가 완전히 말린 것. 그래서 서장훈도 조연에 그쳤다. 경기 내용은 그리 일방적이지 않았지만, 승리는 항상 삼성의 몫이었다.

그러나 양동근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2006-2007 시즌에 다시 팀의 정규 시즌 우승에 크게 기여한다. 2005-2006 시즌에 비해 훨씬 향상된 성적을 거두며, 전년도에 팀빨로 수상했다는 비평을 말끔히 씻어낸 것. 평균 15.7득점, 5.9 어시스트, 1.9스틸로 더 향상된 기량을 선보이며 팀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여기에 굴하지 않고, 부산 KTF 매직윙스와의 7차전까지 가는 챔프전 접전에서 평균 19.1점을 집어넣는 맹활약으로 팀의 두 번째 우승의 주역이 되었고, 그 자신은 챔피언결정전 MVP에 올랐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에는 대학 시절 만난 연인과 결혼까지.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에게 찾아온 것은 바로 입대 영장이었다(...)

3.3. 군입대와 국가대표(2006~2009)

어쩔 수 없는 것이 병역 특례의 유일한 기회였던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은 삽질의 연속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8강에도 못 들면서 탈락해 버렸고, 자연히 신체건강한 양동근은 신혼의 단꿈을 꾸자마자 바로 상무로 갔다. 그래도 상무에서도 몇 차례 계속 대표로 차출되기도 했다.

다만, 국가대표로서 특히 국제전에 양동근의 모습은 한계가 자주 보였는데, 뛰어난 경기 조율 능력을 선보인 것도 아니었고, 양동근 특유의 닥돌 역시 국제전에서는 다소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무기력하지는 않고, 근성을 보였다는 점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아서 덜 까이기는 했지만. 단신 듀얼가드가 KBL에서는 돌파도 되고, 스피드로 상대를 제압했지만, 국제 무대에서는 돌파는 상대의 키에 제압되고, 그렇다고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시야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이 문제가 드러난 것이 2007년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 앞선 세대인 강모씨, 이상민과 비교되면서 한국의 가드가 약점이라는 평가가 나올 때, 주전 가드였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어쨌든 군대에서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하면서 뛰다가 무사히 전역했다.

3.4. 군 복무 이후(2009~2012)

복귀 첫 시즌에는 신인 시절과 같은 성적을 냈다. 이 때 팀의 주축은 어차피 함지훈 위주로 돌아가던 시절이었고, 양동근은 복귀 첫 시즌에는 전년도 김현중이 보여준 센세이션까지는 아니었다.[3] 하지만 모비스는 어쨌거나 두 시즌 연속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했고, 2008-2009 시즌과 달리 2009-2010 시즌에는 정규시즌 우승과 챔피언 결정전 우승 모두에 성공했다.

그리고 2010-2011 시즌에 양동근은 다시금 예년 MVP 시즌 때의 모습을 되찾았다. 비록 국제 무대에서는 한계가 보였다고 하지만, KBL 무대에서는 여전히 양동근의 돌파와 패스는 잘 먹혀 들어갔다. 생애 최다인 16.5득점을 기록하며 맹활약. 다만, 모비스는 함지훈의 입대 공백을 메우지 못했고, 얇은 선수층의 한계도 극복하지 못했다. 덕분에 양동근 혼자 죽어라 뛰고 달리는 지경이었고 팀성적도 하위권에 머물렀다.

2011-12 시즌도 마찬가지로 가드진의 지원이 미비한 상황에서 양동근 혼자 죽어라 슛쏘고 패스하면서 혼자 백코트진을 책임졌다. 외국인 선수 테렌스 레더와 상무에서 제대하고 시즌 후반 합류한 함지훈의 활약을 바탕으로 PO 4강까지는 올랐지만 당시 극강이던 동부산성을 넘지 못하고 3:1로 패배. 그래도 양동근은 유재학 감독이 정말 고생했다고 미안해하고, 안티가 0에 수렴하는 선수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4]

3.5. 모비스 왕조의 주역(2012~

2012-2013시즌 혼혈 귀화선수 문태영과 신인드래프트 1순위 포인트가드 김시래의 합류로 모비스에서의 공격에서의 롤은 예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덕분에 데뷔 이후 가장 낮은 스탯을 기록중이지만 팀에서의 중심점 역할과 상대 가드진을 봉쇄하는 앞선 수비는 여전히 살아있다는 평. 정규시즌 2위에 이어 서울 sk나이츠와의 챔피언결정전에서 1차전 역전 3점포 및 4차전 28득점의 신들린 활약으로 본인 선수인생의 두번째 기자단 만장일치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였다.

2013 국제농구연맹 아시아 남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도 공격면에서는 별로였지만 수비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다. 하지만 흑역사를 또한번 썼으니 4강전 필리핀전에서 상대 가드진에게 완전히 압살당하면서 한국은 필리핀에게 패배했다.[5] 하지만 3/4위전에서는 다시 한번 뛰어난 수비력을 발휘해 한국이 2014년 세계농구월드컵으로 나가는데 큰 공을 세웠다.

2013-2014시즌 확실히 예년보다 둔화된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양동근 노쇠화론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장기이던 스크린 받고 돌아나오는 풀업점퍼의 성공률이 확실히 낮아졌다. 평균득점 한자리수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던 와중, SK전에서는 돌파과정에서 주희정 선수의 발을 밟고 양동근 선수 인생 최초로 부상으로 리그경기에 결장하는 보기 드문 모습도 연출되었다. 그러나 당초 결장이 길어질거란 우려를 깨고 2주 만에 부상을 털고 경기에 빠르게 복귀하였다. 그 후로도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5라운드부터 다시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30%정도의 3점슛을 40%까지 끌어올릴 정도로 슛감이 올라오자 전성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플레이들을 계속해서 보여줬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LG의 양우섭의 집중 마크에 고전했지만, 3차전에 양우섭의 마크를 기어이 이겨내고, 4쿼터에만 17점을 넣는 쇼타임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왜 모비스의 리더인지를 보여줬다. 비록 3차전은 졌지만, 모비스는 4승 2패로 창원 LG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시즌 MVP는 문태종에게, 챔피언결정전 MVP는 문태영에게 내줬지만 양동근의 2013-14 시즌도 성공적이었다.

2014 아시안게임에서는 유재학 감독의 로테이션 농구에서도 경기 시작과 중요한 순간에 출전하는 주전가드로 낙점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경기력에 비해 국가대표에서는 그답지 않은 턴오버와 사라진 공격력 등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선전의 분수령이었던 필리핀 전에서는 부진한 모습에 김태술에게 주전가드를 내주는 모습도 보였다. 준결승전인 일본전에서는 공격에서 미들점퍼로 간만에 존재감을 보이며 다소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란과의 결승전에서는 턴오버 5개로 경기 내내 끌려다니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4쿼터 막판 75-70에서 따라가는 3점슛 성공 및 이어진 김종규의 역전 골밑슛 앤드원을 어시스트하는 등 승부처에서 주전가드 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대한민국의 10년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일조하였다.

2014-15 시즌에서는 아시안게임의 여파인지 시즌 초반이지만 양동근 농구인생중 가장 부진하는 중. 1라운드 3점 성공률이 14%에 머무르는 충격적인 수치를 보여주며, 그동안 두자리수를 사수하던 평균득점도 한자리수로 하락했다. 1라운드는 역대 최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디어 양동근도 노쇠화가 왔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2라운드부터 갑자기 슛 성공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며 2라운드 9경기 만에 3점 성공률을 40%까지 끌어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라운드 도중 문태영이 부상으로 몇 경기 결장하고, 작년 챔피언결정전에서 발목부상을 당한 함지훈이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동안 수비에 치중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모처럼 득점본능을 뽐내며 팀원의 공백을 메웠고 그 결과 11월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 후로도 득점과 어시스트에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11월에 이어 12월에도 SK의 박상오와 공동으로 12월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올스타전 기간이 다가올수록 평균출장시간 1위(35분)의 누적된 피로가 부담으로 다가오면서 올스타전 전후 2경기에서 혼자서 실책 12개를 기록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팀도 5경기 중 1승 4패로 부진하며 독주하던 1위자리를 SK에게 내주었다. 올스타전 이후로는 체력이 다소 회복된듯 다시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이다. 정규리그 우승에 가장 중요한 대목이었던 6라운드 SK-동부전 키게임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올시즌 유독 중요한 경기와 클러치 상황에서 강한 모습을 보였다. 11월, 12월에 이어 2월에도 이달의 선수에 선정되는 등 외국인 선수상이 재설되는 올해 가장 유력한 정규리그 MVP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통산 어시스트 2,208개를 기록중이던 강혁 전 선수의 기록을 넘어서며 역대 어시스트 5위로 올라서는 기록도 수립하였다.

2014-15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는 4강 엘지를 상대로 양우섭의 뛰어난 맨마킹 수비를 극복하고 평균 18득점의 활약으로 3승 2패, 결승에서는 정규리그 2위였던 동부를 맞아 챔프전 평균 20득점 4.8리바운드 4.8어시스트로 4:0 모비스의 완승을 진두지휘하였다. 기자단 64표 중 60표를 받아 챔피언결정전 MVP로 선정되었다. 아울러 정규리그 4회 우승, 정규리그 MVP 3회, 플레이오프 5회 우승, 플레이오프 MVP 3회 등 KBL 출범 이래 가장 뛰어난 커리어를 보유한 리빙 레전드로 등극했다.

4. 플레이 스타일

공.수 밸런스가 적절히 조화된 공수겸장의 포인트가드로 공격력이 뛰어난 공격형 포인트가드이지만 동시에 최고의 수비력까지 갖춘 만능선수. 양동근의 진정 무서운 점은 역대 가드 중 최상급의 공격력은 물론이거니와 수비에서도 상대 에이스가드를 막는 스토퍼로서 공수에 동일한 에너지를 쏟는게 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주 공격옵션은 용병 선수나 국내선수의 스크린을 타고 쏘는 점퍼나 3점슛이다. 돌파력도 준수한 편이지만 양동근 공격의 7~80%는 이 루트이다. 스크린을 이용한 풀업점퍼는 거의 오픈이나 다름이 없고 모비스의 움직임이 워낙 조직적이어서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바디밸런스가 상당히 좋아 슈팅자세나 릴리즈가 안정적인 것 또한 강점이다.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체력. 체력이 받쳐주다보니 공격과 동시에 수비에서도 계속해서 상대를 따라다니게 되고, 상대선수가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전에도 비교적 멀쩡하여 득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즉 본인은 15점을 내고 5점으로 막는 선수.

단점으로는 경기를 지휘하는 포인트가드임에도 패스와 시야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는 본인도 인정한 사실이다. 다만 그 비교대상이 역대 최고의 시야를 가졌던 가드인 이상민이나 김승현, 강모씨와 같은 포인트가드들이라서 더 지적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며 이제는 리그에서도 김태술 정도를 제외하면 현역 가드중에서 그보다 리딩이 좋다고 꼽을 만한 가드조차 없다. 패스나 시야를 중요시하는 정통 포인트가드 옹호론자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저평가를 받는 선수 중 하나이다.

5. 이모저모

  • 사촌형이 전 농구선수이자 천하의 개쌍놈 양경민이라(양동근 입장에서 큰아버지의 아들) 드래프트 당시에 화제가 되었었는데, 가정사 문제가 있는건지 사이는 좋지 않은 듯 하다. 양경민의 존재 자체가 KBL의 흑역사 급이기도 해서 그런지 언급 자체가 터부시되는 느낌.[6] 일요신문과의 인터뷰 때, "경민이 형과 내가 연관되는게 부담스럽다"며 "경민이 형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 바 있다.

  • KIA 타이거즈꽃범호이범호와 절친이다. 이범호가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시절 초등학교 친구인 당시 KIA에서 활약하던 이영수가 앙동근을 연결해 줘서 절친이 됐다. 이후 이범호가 2009년 WBC 때 등번호를 6번으로 달았고, 양동근은 반대로 이범호의 등번호인 7번을 국가대표팀에서 달고 뛰기도 했다. 또한, 모 스포츠신문에서 야구선수의 절친에게 편지를 쓰고 거기에 답장을 받는 꼭지[7]에서도 이범호와 양동근이 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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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실력도 좋고 겸손한 모습을 보여서가 그 이유이다.
  • [2] 유재학은 부상으로 인해 기아자동차에서 조기 은퇴하는데, 그가 부상 재활을 포기하고 은퇴한데는 기아가 중앙대 위주로 굴러간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한다.
  • [3] 무엇보다 혼혈선수들의 가세가 주목을 받았고 전태풍문태영이 맹활약 하면서 조금 잊혀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챔피언 결정전에서 전태풍이 매경기 하이라이트 필름을 써내려가는 활약을 펼쳐 어쩔수가 없었다.
  • [4] 하지만 일부 극성 빠들이 설치면서 다시 슬슬 안티가 나오고 있는중. 빠가 까를 만드는 상황이다
  • [5] 사실 양동근이 못했다기 보다는 개인기가 월등히 뛰어난 상대 가드진이 너무나 잘했다. 양동근 뿐만 아니라 김태술, 김민구도 상대 가드진을 막지 못했다. 다만 김민구는 공격에서 27점을 넣긴 하였다
  • [6] 양경민은 KBL의 최초의 영구제명자로 악명이 높다. 자신의 팬클럽 회장에게 자기가 출전하는 플레이오프 경기 토토 대리구매를 시켜 이걸로 36경기 출전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프로선수의 복권 구입은 전적으로 금지된 행위이기 때문에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다. 덤으로 그 팬클럽 회장은 미성년자였고, 그 회장을 강간했다는 혐의까지 붙었다. 강간은 무혐의로 처리됐지만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혐의가 인정되어 민사소송에서 패해 6천만원을 배상하였고, 어쨌든 복권 구입에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등 프로선수로서는 절대로 용서 받지 못할 행동을 했기에 KBL에서 영구제명이라는 철퇴를 날렸다. 이로 인해 양경민은 양토토, 양토간이라는 당연하지만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었다.
  • [7] 여담으로 이 꼭지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로 우규민이 초등학교 때 동창이었던 배우 윤은혜에게 편지를 썼으나 답장을 못 받은 일화가 있다. 이택근현대 유니콘스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FA 이적한 박진만에게 보낸 편지도 유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