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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티튜드 시대

last modified: 2016-01-10 06:34:3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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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ttitude Era 위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전부 다 안다면 당신은 진정한 매니아.


"다시 프로레슬링을 할 생각은 없다. 10년이 지나도, 그리고 20년이 지나도, 이 업계에서 내가 남긴 자리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을 업적을 이루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에 나는 만족한다." -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

1980년대의 프로레슬링 붐 시기와 함께, WWF - WWE 역사상 최고, 최대의 전성기로 남은 불멸의 시대.


Contents

1. 개요
2. 배경
2.1. WCW의 압박
2.2. 빈스 루소의 각본
2.3. ECW의 영향
3. 전개
3.1. 1996년 : 애티튜드 시대, 서장 - Austin 3:16
3.2. 1997년 : 변화 - D-Generation X
3.3. 1998년 : 새로운 전설의 시작 - The Stone Cold Saga
3.4. 1999년 : 전환점 - The People's Champion
3.5. 2000년 : 비약적인 발전 - The Great One
3.6. 2001년 : 전쟁의 끝, 최후의 승자 - Invasion
3.7. 2002년 : 애티튜드 시대, 종언 - Brand Extension
3.8. 애티튜드의 마지막 황혼
4. 평가

1. 개요


에티튜드 시기의 최전성기인 1999년 RAW is WAR의 오프닝. TV-14 시청제한과 attitude 로고, Thorn In Your Eyes, We Are All Together Now 인트로[1]와 함께 시작한다. 국내에서도 스타TV 시절 많은 팬들이 기억할 오프닝.

에티튜드 로고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97년 12월이지만 WWE가 공식 DVD나 관련 영상등을 통해 정의하는 애티튜드 시대는 영문 위키 설명에 따르면 1996년 킹 오브 더 링을 시작으로[2] 2002년 5월까지이다.[3][4] 뉴 제너레이션 시대(The New Generation)[5]과 브랜드 익스텐션(Brand Extension)으로 일컫어지는 일련의 움직임 이후 소위 파워 이즈 백 혹은 루쓰레스 어그레션(Ruthless Aggression)이라고도 불리우는 시대의 중간 사이에 있다. 이시기 WWF의 인트로에 attitude라는 단어가 삽입되었기 때문에 이를 애티튜드 시대로 보는 것.

1998년까진 PG등급이었으나 1999년부터 상영등급을 TV-14(14세 이상 시청가능)로 올린뒤 더욱 참신하고, 더욱 자극적이며, 더욱 유혈이 낭자한 폭력적인 장면을 앞선에 내세워 성인 팬들을 끌어모았고, 이 과정에서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더 락이라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한 시대에 나타난 두 아이콘이 탄생했다. 이를 통해 WWE는 WCW와의 경쟁을 종결시키고 그들을 몰락시켰으며, 최후이자 최고로 강력했던 경쟁자를 이겨낸 WWE는 지구상을 통틀어 적수조차 없는 압도적인 규모의 공룡급 프로레슬링 단체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2. 배경

2.1. WCW의 압박

WWF를 떡실신 시킨 WCW의 전설, NWO

1980년대 WWF는 빈스 맥마흔이라는 야심찬 인물의 주도 아래 프로레슬링 붐을 일으키며 경쟁단체를 물리치고 프로레슬링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렸다. 이는 헐크 호건이라는 불멸의 아이콘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미국을 강타했던 스테로이드 파동은 1980년대의 프로레슬링 붐을 순식간에 사그라들게 하였으며, 헐크 호건의 뒤를 잇게 하려고 생각했던 얼티밋 워리어는 생각만큼의 흥행력을 보여주지 못한 상태에서 1992년 말에 해고되었으며[6] WWF의 상징이었던 헐크 호건이 1994년부터 WCW에서 일하는 경악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사태는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7]


WWF를 궁지에 몰아넣던 에릭 비숍.

이런 상황에서 WWF는 그 대안으로 이전과 전혀 다른 스타일과 전혀 다른 캐릭터의 레슬러들, 브렛 하트숀 마이클스, 이코 시드레이저 라몬 등을 내놓았고, 언더테이커와 지금은 케빈 내쉬로 유명한 디젤 등의 스타도 탄생했다. 손에 꼽히는 테크니션인 브렛 하트는 '뉴 제너레이션' 이라 불리운 이 시대의 중심적 아이콘으로 활동하며 WWF를 지탱했고, 역사상 최고의 프로레슬러 중 한 명인 숀 마이클스는 슬매니아 10에서 레이저 라몬과 함께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다리 경기를 치루며[8] WWF는 이전에 비하여 크게 변화한 상태였다.

그러나 WWF의 경쟁자인 WCW는 에릭 비숍의 지휘 아래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WWF의 중심 선수들을 빼오기 시작했고, 1996년 역사에 길이 남을 NWO를 출현시켰고 여기에 더해 헐크 호건의 악역 전환이라는 사상 최대의 반전 등 성인 지향적인 스토리를 전개하여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케빈 내쉬와 스캇 홀이 WCW에 등장한 1996년 6월 10일 부터 WCW는 WWF의 시청률을 압도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무려 83주 동안 WWF는 WCW에 시청률 떡실신을 당하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월요일 밤의 전쟁(Monday Night Wars)이 시작된 것이다.

WWF는 WCW와의 경쟁에서 이겨내기 위하여, 보다 정확히 말하면 살아남기 위하여 무언가 바뀔 필요가 있었는데……

2.2. 빈스 루소의 각본


문제적 인물, 빈스 루소.

이런 상황에서 1996년, WWF가 한 해 평균 2.6 레이팅이란 시청률(최저시청률은 10월 14일 방송분이었던 1.8 레이팅)을 기록하며 최악의 행보를 걸어가고 있을 때 희대의 문제적 인물인 빈스 루소가 WWF의 크레이티브 팀에 합류했고, 이후 "Crash TV" 로 불린 자신의 스토리 집필 스타일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9]

헌데 이 빈스 루소가 프로레슬링을 대하는 태도라는것은, 몇몇 팬들 입장에서는 거의 레슬링을 모욕하는 수준에 가까운 편이었다. 빈스 루소는 "경기 잘하는 '좋은 레슬러' 라는건 없다. 연기자(performer)일 뿐이다." "올해의 경기에 선정될 만한 '좋은 경기' 따위를 펼치는건 의미가 없다." "캐릭터를 유지하고 연기하는게 제일 중요하다." 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다.# 어느정도는 근거가 있긴 하더라도 극단적인 사고 방식의 인물인데, 이런 인물이 각본을 책임지게 되자 각본도 자연스레 논란의 여지가 있을 정도로 자극적인, 그러나 화끈하긴 분명히 화끈한 스토리가 탄생하게 되었다.

빈스 루소의 폭력적이며 자극적이고, 때로는 신성모독적이기까지 한 각본은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온갖 상황에서 배신과 선, 악역 전환이 벌어졌고, 선수들은 피니쉬 기술을 맞고도 벌떡 일어나기도 했으며, 레슬링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순전히 재미를 위한 백스테이지 장면과 장애인 비하, 성적인 요소도 TV 쇼에 가득차게 되었다.[10]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과 빈스의 대립, 디 제네레이션 X, 급성장한 더 락 등이 루소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물론 전부 빈스 루소가 혼자 다 했다는것은 오버 중의 오버고 선수들의 능력이 있었기에 뒷받침 되었던 것이지만……

여하간 이러한 루소의 스타일은 이후 독으로 다가오게 되지만, 그가 WWF에 남아 있었던 1999년대 말 까지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2.3. ECW의 영향


북미 프로레슬링 계의 혁명가, 폴 헤이먼.

WWE와 WCW의 경쟁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ECW의 존재인데, 보통 하드코어 단체로만 인식되는 ECW지만 이런 ECW를 이끄는 폴 헤이먼이 끼친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사실 이전부터 WCW 등지에서 일하며 잔뼈가 굵은 인물인 폴 헤이먼은 재야의 스타들을 발굴하여 키우고, 미국 외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크리스 벤와, 에디 게레로, 말렝코, 크리스 제리코, 레이 미스테리오 등을 데려와 스타로 만들었다. 폴 헤이먼이 이렇게 새로운 선수 발굴, 기존에 알려진 선수지만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던 선수를 다시 스타로 만들기 등에 열중했던 이유는 선수 좀 키워 놓으면 WCW와 WWF, 특히 WCW에서 다 가져가버리니까 였다. 이런 ECW 물을 먹은 선수들 중에 일부는 WWF에 왔고, WCW를 먼저 간 선수들도 WCW에서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다가 이후 WWF에 와서 진가를 발휘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경우는 WCW에서는 무시만 당하다가 WWF에 와서는 역대급 선수로 자리매김한 크리스 제리코. 믹 폴리의 경우는 ECW에서 이름을 알린 이후 1996년 WWF에 와서 애티튜드 시대의 중심적 선수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또한 폴 헤이먼은 만화 캐릭터와 같았던 프로레슬링 캐릭터의 깊이를 훨씬 깊게 하여 현실적이며 정교한 기믹을 탄생시켰다. 레이븐샌드맨 등이 대표적인데, 특히 이 샌드맨의 기믹은 스티브 오스틴의 기믹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WWF는 노골적으로 ECW에서 사용했던 연출을 이후에 따라하기도 했으며, ECW의 하드코어 매치에 영향을 받아 여타 기믹 매치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며 한술 더 떠 그랜드슬램에 들어가는 하드코어 챔피언쉽까지 탄생했다.

대신 WWF는 침공각본 혹은 경기를 통해 ECW 선수들이 RAW에도 출현하게도 하여 선수 및 ECW 인지도 상승에 도움을 주었다.

3. 전개

3.1. 1996년 : 애티튜드 시대, 서장 - Austin 3:16

평균 시청률 : 2.6% (3.2%)
최고 시청률 : 4.7% (4.3%)
* ( )은 나이트로의 시청률 기록


1996년 1월 8일, 스티브 오스틴이 WWF에 데뷔했다. 같은 달 21일 로얄럼블에서, 숀 마이클스는 18번으로 등장해 제리 롤러, 요코즈나, 오웬 하트 등을 탈락시키고 마지막으로 디젤마저 탈락시켜 우승을 차지한다. 이로써 숀 마이클스는 2년 연속 로얄럼블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루었다.[11] 이후 숀 마이클스는 챔피언 브렛 하트를 상대로 슬매니아 12에서 전설적인 60분 아이언맨 매치를 치룬 후 마침내 챔피언에 등극한다.[12][13]


같은 시기, 레슬매니아 12에서 스티브 오스틴은 사비오 베가에게 승리를 거두고, 본인이 고안한 링네임인 '스톤콜드' 를 최초로 사용한다. 또한 레슬매니아 12의 흥행을 위해 급하게 복귀시킨 얼티밋 워리어트리플 H를 순식간에 초살시켰다. 그리고 이무렵 세이블(Sable)이 데뷔한다.


4월 1일, 에티튜드 시대의 핵심적인 선수 중 한 명으로 활동했던 믹 폴리가 맨카인드(Mankind) 기믹으로 WWF에 데뷔한다. 이후 그는 언더테이커와 대립을 시작한다.


1996년 5월 19일, 이후 WWF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친 커튼 콜 사건이 발생한다. WWF의 사조직 클릭의 일원이었던 디젤과 레이저 라몬은 WCW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이적하게 된다. WWF는 이를 스토리라인에 반영하여 디젤과 레이저 라몬이 숀 마이클스와 트리플 H에게 패배하면 WWF를 떠나야 한다는 조항을 건 경기를 치루었다는 설정을 했고, 숀 마이클스 & 트리플 H 팀이 승리를 거두면서 두 사람은 각본상 WWF를 떠나게 되며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클릭에서의 인연으로 서로 친했던 네 사람은 이 경기가 끝나고 경기에서의 캐릭터를 버린 채 서로를 끌어안았다. 프로레슬링의 룰을 어긴 행동이었기에 빈스 맥마흔은 크게 분노했으나, 디젤과 레이저 라몬은 WCW로 떠나서 처벌을 할 수 없었고 숀 마이클스는 WWF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핵심적인 스타 선수였기에 감히 건드릴 수 없었다. 결국 독박을 쓴것은 가장 만만했던 트리플 H로, 이후 트리플 H는 예정된 푸쉬를 받지 못하고 동네북 취급을 받으며 안습한 나날을 걷게 된다. 그러는 사이, 스티브 오스틴에게 푸쉬가 몰빵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되었다.[14]


커튼 콜 사건이 벌어진 후 6월 10일, WCW의 먼데이 나이트로에 등장한 디젤, 케빈 내쉬와 레이저 라몬, 스캇 홀은 기존 WCW 선수들을 조롱한 뒤 WCW의 에릭 비숍을 붙잡아 스테이지 밑으로 잭나이프 파워밤을 날려 모두를 충격에 빠뜨렸다. 바로 이 순간을 기점으로 WCW는 WWF를 시청률 경쟁에서 압도하기 시작한다.


"You sit there and you thump your Bible, and you say your prayers, and it didn't get you anywhere! Talk about your psalms, talk about John 3:16…… Austin 3:16 says I just whipped your ass!"

6월 23일, 킹 오브 더 링에서 WWF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그먼트가 탄생했다. 킹 오브 더 링 결승전에서 제이크 로버츠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스티브 오스틴종교를 믿어 새사람이 되었다는 제이크 로버츠를 조롱하며 "오스틴 3장 16절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그저 너의 엉덩이를 걷어찼을 뿐이다!" 라는 WWF 역사에 길이남을 명대사를 날렸다. 이에 팬들은 곧바로 호응을 하며 스티브 오스틴의 캐릭터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고, 이미 킹 오브 더 링 우승 등으로 푸쉬를 받던 오스틴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져갔다. 한마디로 새로운 전설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 오른 것이다.


오스틴의 명대사가 탄생하는 동안에도 WCW발 태풍은 멈추지 않았다. 7월 7월의 배쉬 앳 더 비치(Bash at the Beach)에서 스캇 홀과 케빈 내쉬는 스팅, 스 루거, 마초맨 랜디 세비지를 상대로 메인이벤트 경기를 치루며 '제 3의 멤버' 를 데려오겠다고 예고했다[15] .

그리고 바로 여기서 프로레슬링의 스토리텔링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자, 지금도 끊임없이 회자되며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일대 사건이 발생한다. 미국의 영웅, 아이들의 영웅, 무적 선역 기믹의 상징이자 아이들에게 "기도 많이 하고 비타민을 열심히 먹으라." 고 말했던 그 헐크 호건이, 천하의 무뢰배 기믹이었던 케빈 내쉬, 스캇 홀과 함께 손을 잡아 악역으로 턴힐 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영웅 헐크 호건에서 최강의 악당, 헐리우드 호건(hollywood Hogan)으로 변신한 이 턴힐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 그 자체였고, WCW에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또한 임팩트 있었던 WCW 데뷔 이후 점점 추진력을 잃고 인기와 주목을 상실해가던 호건은 이를 기점으로 다시 자신의 프로레슬링 계의 가장 거대한 아이콘 중에 한 사람임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WCW의 기세는 가히 막을 방법이 없어 보였다.


다음 달인 8월, 대립이 격화된 언더테이커와 맨카인드는 섬머슬램에서 역사상 최초의 보일러룸 매치가 열린다. 이 경기의 종반부에서 언더테이커의 측근이었던 베어러는 언더테이커를 배신하여 맨카인드의 승리를 돕는다. 챔피언 숀 마이클스는 베이더와의 경기에서 탑로프 문설트를 사용하여 그를 물리치고 챔피언을 유지했다.

맨카인드와 언더테이커의 대립은 계속해서 격화되어 10월의 인 유어 하우스 베리드 얼라이브에서는 언더테이커가 승리를 거두지만 경기 후 언더테이커는 다른 레슬러들의 공격으로 생매장을 당하고 만다. 맨카인드와 언더테이커의 대립이 11월의 서바이버 시리즈까지 이어지는 와중에 WWF 챔피언 숀 마이클스는 사이코 시드에게 타이틀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 1996년 서바이버 시리즈의 가장 큰 의미는 다름 아닌 더 락의 데뷔 무대였다는 것이다. 락키 마이비아(Rocky Maivia)라는 링네임을 달고 나온 이 어처구니 없는 패션과 외모의 프로레슬러가 훗날 프로레슬링 계의 가장 거대한 아이콘 중 한 사람이 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나……

3.2. 1997년 : 변화 - D-Generation X [16]


평균 시청률 : 2.6% (3.7%)
최고 시청률 : 4.1% (5.0%)


1997년의 로얄럼블에서 숀 마이클스는 사이코 시드를 꺾고 WWF 챔피언 타이틀을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클스의 부상 때문에 WWF 챔피언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또한 로얄럼블 경기에서 5번으로 출장한 스티브 오스틴은 45분 7초를 버티며 로얄럼블에서 우승, 푸쉬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스틴은 한번 탈락했으나, 심판이 이를 보지 못했기에 몰래 링에 다시 들어와 브렛 하트를 탈락시켜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오스틴은 당시 WWF의 최대 아이콘이었던 브렛 하트와 대립을 벌이게 되었다.


2월 16일, 인 유어 하우스 13 : 파이널 포에서 팬들에게 인기 없었던 재미없는 선수 더 락트리플 H를 격파하고 데뷔 후 3개월만에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에 등극한다. 이 당시는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의 가치가 아주 높았던 시절이었으므로, 락키 마이비아의 이름으로 활동하던 락의 푸쉬는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대단히 보기 드문 수준의 빅푸쉬였다.[17][18]

같은 날, 브렛 하트언더테이커, 스티브 오스틴, 베이더와 경기를 치뤄 승리를 거두었고, 공석이었던 WWF 챔피언이 되어 통산 4회 WWF 챔피언에 등극한다.


그러나 뉴 제너레이션 세대의 아이콘 브렛 하트의 이번 챔피언 기간은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세계 정상급의 테크니션 레슬러로서 진중한 캐릭터였던 브렛 하트의 체제는 각본상으로든 실제로든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고, WWF 팬들은 브렛 하트를 여전히 최고의 선수로 여기면서도 온갖 망나니짓을 보여주던 스타 숀 마이클스는 물론, 빅 푸쉬를 받으며 Bad Ass의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스티브 오스틴에게, 그들이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을지 모르지만) 완고한 캐릭터였던 브렛 하트는 이를 모욕으로 받아들였고, 선역 아이콘이던 브렛 하트는 자극적인 것만 찾는 미국 관중들에게 점차 야유를 퍼붓는가 하면, 미국과 전세계의 팬들에게 캐나다의 우월함을 과시했다. 최고의 테크니션 레슬러였던 브렛 하트는 점차 가시 돋힌 말을 내뱉는 독설가로 변했다. 이 당시는 WCW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수준이 되어 있었고 WWF의 상징이었던 브렛 하트마저 WCW로 이적한다는 소문이 파다했기에, 이러한 각본은 팬들에게 더욱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여기에 더해 브렛 하트는 3월 7일의 [[RAW]]에서 빈스 맥맨을 밀치기까지 하였다. 여기서 그 유명한 "난 과거에 최고였고, 현재도 최고이며, 미래에도 최고일것이다!"[19] 란 명대사가 나왔다. 그리고 선역 메인이벤터이자 아이들의 영웅이며 신사적인 히트맨 캐릭터로 활동하던 브렛의 입에서 최초로 Son of Bitch!Fuck You! Asshole! 이란 수위높은 욕설이 나와서 보는 이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이는 오스틴과 빈스 맥맨의 역사적인 대립이 벌어지기 6개월 전이었다.


한편, 파이널 포 이후의 RAW에서 브렛 하트는 사이코 시드와 타이틀전을 치루었고, 여기서 스티브 오스틴의 도움을 받은 사이코 시드는 브렛 하트를 꺾고 새로운 WWF 챔피언에 등극한다. 이 대립이 레슬매니아 13까지 이어지면서 브렛 하트와 스티브 오스틴은 서브미션 매치를 치루게 되었다.

그리고 실로 역사적인 경기가 탄생했다. 브렛 하트와 스티브 오스틴은 레슬매니아 13에서 엄청난 명경기를 펼쳤다.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는 이 경기를 1997년 올해의 경기 로 선정했으며, 데이브 멜쳐는 이 경기에 별점 다섯개를 주었다.[20] 경기 자체도 엄청난 경기였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것은 스티브 오스틴의 캐릭터를 완성하는 부분이었다. 이 경기의 최후반에서 스티브 오스틴은 브렛 하트의 프 슈터에 걸려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상황에서도 결코 항복을 외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버텼다. 시청자들은 피를 흘리며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를 보이는 스티브 오스틴의 캐릭터에 매료되었으며, 브렛 하트는 경기에서 이기고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급기야 기절한 오스틴을 두들겨 패기까지 하였다.

분명히 경기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오스틴은 손을 내미는 관중들에게 화를 내며 등장하고, 브렛 하트는 관중들과 손바닥을 마주치고 어린아이의 응원까지 받으며 등장했지만, 경기가 끝나자 관중들은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브렛 하트에게 뻐큐를 했으며, 스티브 오스틴이 비틀거리며 걸어가자 그에게 환호하게 되었다. 이 한 경기로 인하여 스티브 오스틴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21]

같은 날 언더테이커는 사이코 시드를 꺾고 통산 2회 WWF 챔피언이 되었지만, 이 경기의 임팩트가 워낙 강했기에 상대적으로 묻혔다. 이후 선역으로 전환한 오스틴과 언더테이커의 대립이 잠깐 벌어지다 숀 마이클스 VS 오스틴의 대립이 킹 오브 더 링까지 이어졌고,[22] 킹 오브 더 링 97에서 트리플 H가 1년간 먼 길을 돌고 돌아 킹 오브 더 링에서 우승을 하게 되었다.[23]



오스틴의 위상이 WWF에서 점차 커지는 와중에, 주목을 독차지하며 연예계 등 여러 방면으로 확장을 꾀하고 있던 WCW는 NBA 시카고 불스의 악동 데니스 로드맨을 97년의 배쉬 앳 더 비치에서 출현시켰고, 심지어 경기를 하게 만들었다. 데니스 로드맨은 헐리우드 호건과 팀을 이뤄 렉스 루거, 더 자이언트를 상대했는데 생각보다 준수한 기량을 보인 로드맨 등으로 인해 의외로 볼만하다는 평과 함께 WCW는 언론의 주목, 흥행 수익을 쓸어담게 되었다.[24]


이 무렵까지의 시청률 경쟁 추이. WWF는 그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2위 단체가 되어 허덕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WWF의 섬머슬램에서는 언더테이커가 브렛 하트에게 챔피언 자리를 내주었다.[25] 그러나 가장 큰 이슈는 스티브 오스틴 VS 오웬 하트의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파일 드라이버가 잘못 들어가는 사고가 터지며 오스틴의 목이 실제로 부러지게 된다. 이후로 오스틴은 지속적인 목 부상에 시달리게 되었을 정도로 큰 부상이었는데, 오스틴은 초인적인 프로정신으로 어찌어찌 롤업으로 경기를 끝내고, 관중들의 환호에 답하며 경기장을 나가는 엄청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당연히 이때 얻은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은 경기를 치룰 수 없어 반납해야만 했다. WWF는 지난 1년간 공들여 푸쉬를 준 특급 선수가 WWF 챔피언 한번 되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놓이고 만다. 실제로 이 목 부상은 이후 커리어 내내 오스틴을 괴롭혔는데 의사들은 더이상 레슬링을 계속한다면 불구의 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오스틴은 복귀를 감행한다. 그리고 WWF는 불행한 사고가 생기더라도 회사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조항까지 넣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실제 상황을 WWF에서 각본으로 이용한 것인데,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라고 주장하는 오스틴과 선수생명을 걱정한 수뇌부의 갈등장면이 Raw Is War를 통해 그려진 것. 이 장면들이 가지는 상징성이 대단한데 엄연히 선수 위의 존재였던 수뇌부들이 일개 선수에게 속절없이 당하는 장면이 시청자들에게 처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시 커미셔너였던 서전 슬로터를 시작으로 해설자 짐 로스에 이어 가장 높으신 이 분 까지 당했다.

youtube(leG3Aq4orCo)
오스틴 VS 맥마흔의 시작점으로 빈스가 당한 첫 스터너. 3분 40초 경 나온다. 감전당한 듯한 회장님의 연기가 일품


이 사이, 또 한 명의 차세대 아이콘 더 락은 1997년 8월 11일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The Nation of Domination)에 가입, 재미없는 무색무취의 캐릭터를 버리고 악역으로 완전히 턴힐한다. 이후 락은 본래 리더였던 파룩마저 쿠데타로 밀어내고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의 리더가 되었으며, 거만을 떨고 흑인식 음담패설과 조롱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우리가 아는 그 더 락 캐릭터를 확립하기 시작했다.


9월 7일 인 유어 하우스 : 그라운드 제로는 WWF 역사상 최초로 4대 페이퍼뷰 이외에 2시간이 아닌 3시간 체제로 방송된 페이퍼뷰였다. 이는 WCW를 견제하기 위한 WWF의 선택이었다. 브렛 하트는 페트리어트를 상대로 승리한 뒤, 성조기로 상대의 목을 조르며 미국을 조롱했다. 10월 5일, 배드 블러드에서는 또다른 역사적인 경기가 탄생했다.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는 역사상 최초의 헬 인 어 셀 매치가 성사되었다. 치열한 경기 끝에 언더테이커는 승기를 잡아 숀을 요리했고 거의 승리 직전까지 갔으나, 갑자기 등장한 케인의 데뷔로 인해 공격을 당하고 패배하고 만다.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에서 1997년 3위 경기에 선정되었으며, 데이브 멜쳐에게 별 다섯개를 받았다.[26]


1997년 9월 22일, WCW 먼데이 나이트로에서 왠 덩치 큰 무명 자버는 휴 모러스와 경기를 치루었다. 경기 결과는 의외로 이 덩치 큰 선수의 승리였고, 팬들은 무명 선수에게 환호를 보내주었다. 이것이 바로 빌 골드버그 무적 전설의 시작이었다.


11월 9일, 그 이후로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된 전설의 서바이버 시리즈가 열렸다. 이때, 4개월 전 목이 부러졌던 스티브 오스틴은 더 레슬링을 계속하면, 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의사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복귀를 감행했고[27] 오웬 하트를 물리쳐 통산 2번째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숀 마이클스의 브렛 하트의 메인이벤트 도중,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인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발생한다. 이 당시, 지난 10년 가까이 WWF의 아이콘이었던 브렛 하트의 WCW 이적은 확정된 상태였다. 빈스 맥맨은 WWF의 이미지와 챔피언의 가치를 고려하여 브렛 하트가 서바이버 시리즈에게 숀 마이클스에게 패배하여 타이틀을 내주기를 바랬다.[28] 그러나 서바이버 시리즈가 열리는 곳은 브렛 하트의 조국, 캐나다의 몬트리올이었다. 조국 팬들 앞에서 사이가 나빴던 숀 마이클스에게 패배하길 원하지 않았던 브렛 하트는[29] 서바이버 시리즈에서는 경기 후반에 하트 파운데이션과 DX의 난입으로 인한 경기 무효 판정으로 타이틀을 방어하고, 그 다음날 RAW에서 타이틀을 내주자는 의견을 내었다.[30] 문제로 브렛 하트와 빈스는 계속해서 다툼을 벌였고 브렛 하트는 불안감에 시달렸으나 결국 브렛 하트의 의견대로 가자고 결정되었다.[31][32] 그리고 결국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이루어졌다!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빈스 맥맨은 내부적으로든[33] 외부적으로든 무수하게 욕을 얻어먹었으나, WWF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빈스 맥맨의 악덕 회장 이미지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이를 스토리라인에 그대로 써먹게 된다. 또한 비록 위대한 테크니션이지만 진중한 레슬러였던 브렛 하트의 이미지 때문에 어느정도 막 나가는데 제한이 있었던 WWF는, 그야말로 개망나니였던 숀 마이클스와 선역이지만 악역들 못지 않게 거침없는 오스틴을 이용해 극한의 자극을 줄 수 있었다.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아 삽시간에 급등한 WWF의 시청률 추이.


이런 WWF의 행보에는 DX가 전면에 있었다. 숀 마이클스, 차이나, 트리플 H 등으로 구성된 스테이블 디 제네레이션 X[34] 대체 어디까지 막나갈 수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온갖 막장짓을 TV쇼에서 여과없이 저지르며 시청자들의 주목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WWF도 이런 DX를 지원했다. 당장 몬트리올 스크류잡이 벌어졌던 서바이버 시리즈 이후 다음 페이퍼뷰 이름이 D-Generation X 였을 정도니…… 이 시기부터 WWF의 시청률은 상승 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부터 더 락과 스티브 오스틴이라는 두 애티튜드 영웅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악역이었던 더 락은 스티브 오스틴이 인터콘티넨탈 챔피언임에도 불구하고 나야말로 진정한 챔피언 이라며 시비를 걸었고, D-Generation X에서 오스틴은 더 락을 박살내버렸다. 그러나 다음 날 RAW에서 빈스 맥맨이 재경기를 가질 것을 요구하자, 오스틴은 이딴 타이틀은 나에게 격이 맞지 않는다, 나는 WWF 챔피언을 노리겠다라며 더 락에게 타이틀을 넘겨준 후, 바로 스터너를 날렸다. 이는 오스틴과 더 락이 가진 대립의 전초전이자 오스틴과 빈스의 대립의 실질적인 시작이기도 했다.


12월 28일의 WCW 스타케이드 1997에서 스팅은 특별 심판으로 나온 브렛 하트의 도움을 받아 헐리우드 호건을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원래 젊었을 때의 스팅은 화려한 페이스 페인팅의 열혈 서퍼 기믹이었는데, WCW에 nWo가 결성된 후 가짜 스팅을 이용하여 WCW팀 선수들을 교란시켜 동료들에게 변절자라는 의심을 받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WCW팀을 떠나면서 기믹을 바꾸게 되었다.
원래는 WCW에 잔류할 것인지, nWo에 가입한 것인지 팬들을 혼란시키기 위한 의도로 검은색과 하얀색의 페이스 페인팅 및 복장을 준비하면서 컨셉을 영화의 크로우에서 따온 것인데[35] 결과적으로 대단히 좋은 반응을 얻어서 대박이 터졌다. 이 경기는 스팅 본인이 자신의 경기중 가장 좋아하는 매치이기도 하다.스팅의 경기중 역대 최고의 간지 입장신이 나오니 스팅의 팬이라면 필견.

3.3. 1998년 : 새로운 전설의 시작 - The Stone Cold Saga

평균 시청률 : 4.35% (4.5%)
최고 시청률 : 5.69% (6.0%)



"나는 레슬링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가, 이 업계 사람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 믹 폴리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해.[36][37]

1998년의 로얄럼블[38]에서 24번으로 등장한 스티브 오스틴은 5번으로 나와 51분 32초를 버틴 더 락을 마지막에 탈락시키고 헐크 호건, 숀 마이클스에 이어 2년 연속 로얄럼블 우승이라는 영광을 달성했다. 이후 그는 WWF 챔피언 숀 마이클스와 대립하게 되었는데, 정작 그 숀 마이클스는 로얄럼블에서 언더테이커와 가진 경기 중 치명적인 허리 부상을 당해 제대로 경기를 치루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STONE COLD! STONE COLD! STONE COLD! He's Going To wrestlemania!"


WCW 역시 완만하게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스티브 오스틴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 WWF의 시청률이 폭등하고 있는 상황.


1998년 4월 20일 빌 골드버그는 레이븐을 격파하며 WCW US 타이틀을 따게 된다.[39]


한편, WWF는 WCW가 그러했던 것처럼 외부 유명인사를 레슬매니아 게스트로 출현시켰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마이크 타이슨. 그런데 오스틴은 이 타이슨에게 뻐큐를 날렸고, 이는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열린 레슬매니아 14에서 숀 마이클스는 부상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경기를 치루었고, 오스틴이 이런 마이클스를 꺾으면서 마침내 WWF 챔피언에 등극하게 된다.[40][41][42] 또한 언더테이커는 툼스톤 3방을 날려 케인을 상대로 승리했다.[43]


레슬매니아 14는 무려 73만 가구의 구매율을 기록하며 작년(23만)은 물론, 98년 한 해 전체를 통틀어 최대 흥행을 기록했고 이후 RAW의 시청률도 상승곡선을 기록하며 4월 13일 WWF RAW가 무려 2년 만에 WCW 나이트로의 시청률을 추월했다.


레슬매니아 다음의 Raw에서, 트리플 H는 디 제너레이션 X의 리더 숀 마이클스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켜 스스로를 DX의 리더로 임명했고, 엑스팍과 뉴 에이지 아웃로스를 새로운 멤버로 불러들였다.[44]


4월 27일, 그 유명한 DX의 WCW 침공이 방영되었다.


7월 6일 먼데이 나이트로에서 빌 골드버그는 헐리우드 호건을 격파하여 WCW 월드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하여, 명실공히 WCW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45]


WWF가 최악의 시기를 이겨내고 반등을 하며 급격하게 치고 올라오는 동안, WCW는 7월 12일의 배쉬 앳 더 비치에서 전년도의 데니스 로드맨에 이어 또다시 NBA 스타를 링 위로 불러들여 경기를 치뤄 흥행성을 가져오려고 시도했다. 이번에도 데니스 로드맨이 참가한 가운데, 여기에 더해 NBA의 파워포워드 레전드인 유타 재즈칼 말론이 경기장에 올라 시합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괜찮은 반응을 얻은 전년도의 배쉬 앳 더 비치에 비하여 헐리우드 호건 & 데니스 로드맨 VS DDP & 칼 말론의 시합은 그야말로 눈이 썩는 경기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로드맨은 잠이라도 자는 듯 했으며 뛰어난 하드웨어를 지닌 칼 말론도 30분 짜리 메인이벤트 시합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니 일단 농구 선수에게 프로레슬링 메인이벤트를 시키는것 자체가……

일단 칼 말론과 데니스 로드맨의 시합이라는 홍보 때문에 흥행과 주목은 최대치에 달하긴 했으니 여기서 끝났다면 그래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WCW는 그만 둘 시기를 놓치고 유명인사 집착증에 계속 매달리고 말았다. 여기서 망조가 보이기 시작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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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이제……이제 그만 됐습니다! 누가 제발 이 경기를 끝내주세요!" - 짐 로스

나는 나중에 언더테이커에게, 그 위에서 나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소름 끼칠 정도로 단순했다. "자네가 죽은 줄 알았다네." - 믹 폴리 자서전 中[47]

1998년의 킹 오브 더 링에서는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의 켄 샴락이 우승했는데, 이 킹 오브 더 링에서 최고의 장면은 다른 경기에서 나왔다.

바로 지금도 전설로 회자되는 언더테이커 VS 맨카인드의 헬 인 어 셀 경기. 위대하고, 경이적이며, 두렵고, 소름끼치는, 이 경기를 치루는 동안 믹 폴리는 철장 위에서 테이블 위로 떨어지고, 셀 구조물 위에서 [48] 쵸크 슬램을 당했으며, 2분간 모든 의식을 상실했으며, 턱이 나갔고 입술 밑에 혀가 통과될 정도의 구멍이 생겼고 치아의 한 개가 절반이 나갔다. 셀 위에서 쵸크 슬램을 당하는 순간에는 잘못했으면 정말 그대로 죽었거나, 반신불수가 될 뻔했다.[49]

믹 폴리는 자신과 언더테이커가 워낙 많이 붙어서 관심이 떨어지기도 했고, 이 당시 언더테이커가 발에 부상이 있어서 제대로 된 경기를 치룰 수 없는 상태이기도 해서 경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래서 별 다섯개를 받은 언더테이커와 숀 마이클스의 경기를 보고, "내가 저 정도 수준의 경기를 과연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냥 농담처럼 말했던, 셀 위에서 떨어진다는 아이디어를 현실화시켰다. 언더테이커는 시합 하루 전까지 믹 폴리의 제안을 묵살했고, "대체 왜 자살행위를 하려고 하느냐." 며 믹 폴리를 말렸으나 믹 폴리의 황소고집에 못 이겨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이 경기에서 쵸크 슬램 이후에 언더테이커가 난데없이 올드 스쿨을 구사한것은 사실 믹 폴리에게 시간을 벌여주려는 행위였다고 한다.[50] 쵸크 슬램 직후 믹 폴리의 상태를 확인하던 테리 펑크도 언더테이커가 천장에서 내려오자 언더테이커에게 덤벼 쵸크 슬램까지 맞아가며 조금이라도 시간 버는 모습을 보였다. 짐 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25년간, 난 이런 시합은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두 사람은 여러분들에게 몸과 영혼을 다 주었습니다."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1998년 경기에서 2위를 차지한다. 또한 이 경기 하나로 언더테이커와 믹 폴리는 WWE의 Don't Try This At Home 광고 영상에 10년 넘게 출연하기도 했다.

한편, WWE 역사를 대표하는 스티브 오스틴 VS 빈스 맥맨 대립이 시동을 거는 가운데, 언포기븐에서 두드 러브를 격파한 오스틴은 킹 오브 더 링에서는 케인을 상대로 퍼스트 블러드 매치(상대에게 먼저 피가 나게 하면 승리하는 경기)를 치루었는데, 언더테이커와 맨카인드가 난입하며 난장판이 된 경기 끝에 언더테이커에게 체어샷을 맞고 패배하며 WWF 타이틀을 내준다. 그러나 다음 날 오스틴은 하루 만에 타이틀을 다시 얻어 통산 2회 챔피언이 되었으며 케인은 1일챔프 사건이 되는 굴욕을 겪었다.


오스틴이 챔피언이 되며 1998년 7월 26일 등장한 스모킹 스컬 벨트(Smoking Skull Belt). 오스틴이 챔피언이었던 1998년, 1999년 한정으로 사용되었으며, 오스틴이 타이틀을 뺏기자 이전 모델인 애티튜드 이글로 돌아왔다. 오스틴이 2001년에 다시 챔피언에 올랐을 땐 이 벨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오스틴과 맥맨의 대립이 이어지면서, WWF는 5점대가 넘는 레이팅을 기록하며 점차 WCW를 역으로 떡실신 시키기 시작한다.

이후 언더테이커와 대립을 이어가던 오스틴은 케인 vs 언더테이커와의 3자 대결에서 패배하여 챔피언 타이틀을 잃는데, 언더테이커와 케인이 오스틴에게 더블 크슬램을 사용하고 동시에 핀폴함으로써 승자가 두 명이 되었다. 빈스 맥맨은 챔피언이 공석이라고 선언한 뒤 타이틀 벨트를 가지고 도망가 버렸으며, 오스틴은 빈스를 습격하다 제지당하자 이후 그 유명한 병원에서의 습격을 감행해 빈스 맥맨을 공격한다.[51]


8월 30일의 섬머슬램에서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을 이끄는 더 락과 디제너레이션 X의 트리플 H는 막상막하의 사다리 매치를 치루었다. 경기에서 승자는 트리플 H였지만, 락의 명성은 계속해서 높아졌다. 이후 네이션 오브 도미네이션이 완전히 해체된다.


스티브 오스틴은 10월 저지먼트 데이에서 펼쳐진, WWF 챔피언을 결정하기 위한 언더테이커와 케인의 경기에서 특별 심판을 맡았으나 시종일관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다 마지막에는 경기를 엉망으로 만들어버렸고, 빈스는 오스틴을 (각본상) 해고한다. 그러자 오스틴은 거의 막무가내로 장난감 총을 들고 빈스를 낚시협박하여 재계약과 함께 타이틀 도전권을 얻어낸다.[52]


또한 저지먼트 데이에서 언더테이커는 베어러와 다시 결합하여 '미니스트리 오브 다크니스' 라는, 악의 교주 컨셉으로 기믹을 변경한다. 그 후로 언더테이커의 집단은 인간 제물, 납치, 십자가형 같은 해괴한 짓을 일삼게 된다.


이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는 공석이 된 상태인 WWF 챔피언을 정하기 위한 토너먼트가 열렸다. 여기서 강력한 우승후보 오스틴은 맨카인드를 상대로 거의 승리 직전까지 갔지만, 심판으로 나온 쉐인 맥맨이 카운트를 거부하여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 한 편 더 락은 빅 보스 맨, 켄 삼락, 언더테이커를 이기고 마지막으로 맨카인드를 상대로 승리하여 처음으로 WWF 챔피언에 등극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맥맨 부자와 야합한 상태였다. [53]



이 서바이벌 시리즈에서는 세이블재클린을 꺾고 위민스 챔피언에 등극했다. 케빈 내쉬의 말에 따르자면, WCW가 WWF에서 가장 두려워하던 사람 중 하나는 바로 세이블 이었다고 한다. 이전에 보지 못한 도발적이고 육감적인 세이블의 캐릭터는 상당히 인기가 있어, 그녀가 등장할때마다 RAW의 시청률이 하늘같이 치솟았기 때문이라고.#[54]


챔피언을 상대로 도전할 방법을 찾던 스티브 오스틴은 내년의 로얄럼블에 참가하여 우승을 해 도전권을 획득하고자 했지만, 맥맨 부자의 방해로 언더테이커를 상대로 생매장 경기를 치뤄 승리해야만 로얄럼블에 참가할 수 있다는 조건이 걸리고 만다. 그러나 오스틴은 케인의 도움으로 언더테이커를 이기고, 기여코 로얄럼블 출전권을 따내고 말았다.


WCW의 시청률 상승은 점점 답보상태에 빠지고, 반대로 WWF의 시청률은 끝을 모르고 상승하기 시작한다.


12월 WCW의 스타게이트에서는 빌 골드버그와 케빈 내쉬의 경기가 열렸다. 최강의 무적 선역과 단체 최악의 악의 근원이라는 빅 매치업에서 케빈 내쉬는 스캇 홀의 도움을 받고[55] 파워밤을 작렬, 마침내 골드버그의 173연승을 종결시켜버렸다.

3.4. 1999년 : 전환점 - The People's Champion

평균 시청률 : 5.90% (3.7%)
최고 시청률 : 8.09% (5.7%)




"Fans, as Hollywood Hogan walks away and you look at this 40,000 plus on hand, if you're even thinking about changing the channel to our competition, fans, do not, because we understand that Mick Foley, who wrestled here one time as Cactus Jack, is going to win their world title. Ha! That's gonna put some butts in the seats, heh."

"팬 여러분들……채널 돌릴 생각하고 있으시다면 그러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저희가 들은 바에 의하면 한때 여기서 캑터스 잭으로 활동했던 믹 폴리가 월드 챔피언이 된답니다. 하! 많은 사람들이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겠군요. 데헷헤헷!"

1999년 1월 4일, 그동안 끊임없이 이어져오던 이 '월요일 밤의 전쟁' 에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 날 WCW는 지난 스타게이트 1998에서 열린 케빈 내쉬 VS 골드버그의 재경기가 열릴 것이라 홍보했다. 그러나 4만명의 관중이 모인 이날 무대에서 열린 경기는 헐리우드 호건을 상대로 케빈 내쉬의 방어전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RAW is War는 생방송과 녹화 방송을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었고, 이날 방송될 Raw는 12월 29일 녹화가 된 상태였다. 즉 생방송으로 방영하는 WCW 먼데이 나이트로와 녹화방송이었던 WWF Raw is War의 대결이었는데, 이때 WCW는 천하의 개쌍놈이나 할만한 짓을 하고 만다. 먼데이 나이트로에서 Raw의 내용을 스포일러 해 버린것.[56] 당시 나이트로의 아나운서인 토니 쉬보니는 믹 폴리가 더 락을 꺾고 새로운 WWF 챔피언이 된다는 사실을 스포일러 했고, "이제 누가 그 경기를 보겠나." 며 조롱까지 했다.

그러나 이렇게 타 단체를 조롱하던 WCW의 경기는 최악 중의 최악의 내용이었다. 케빈 내쉬와 한통속이던 헐리우드 호건이 케빈 내쉬의 가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내쉬는 총이라도 맞은것 마냥 쓰러졌고 이를 커버한 호건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이었다. 이 날의 사건은 핑거포크 오브 둠(Fingerpoke of Doom)이라고 불리우고 있다.[57]

WCW 먼데이 나이트로에서 이 따위 쓰레기 경기를 방영하는 동안, 600,000명의 시청자들이 채널을 돌려 결과가 스포일러 된 Raw를 시청했고, 0.6의 시청률이 Raw에 추가되었다.



"Mankind has achieved his dream, and the dream of everyone else who's been told, "you can't do it!"

"맨카인드가 자신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모두가 이룰 수 없다고 말했던 그 꿈을 말입니다!" ─ 마이클 콜

"아빠가 해냈다!"

그리고 동시간에 방영된 이날 Raw에서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가 탄생했다. 이 날 Raw에서 믹 폴리는 DX와 스티브 오스틴의 도움을 받아 악역이었던 더 락을 물리치고 마침내 WWF 챔피언이 되었다. 비록 믹 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락에게 타이틀을 넘겨주게 되었지만 소년 시절의 꿈, 평생의 꿈을 이룬 믹 폴리는 아이들에게 이 승리를 돌렸고, 비록 스포일러된 결과였지만 이 장면은 WWF를 대표하는 명장면 중의 하나로 남게 되었다.[58]


핑거 포크 오브 둠과 믹 폴리의 역사상 첫 WWF 챔피언 등극이 있었던 1월 4일 이후로, 두 번 다시 먼데이 나이트로는 Raw의 시청률을 추월하지 못했다. [59]

그리고 DX의 수장인 트리플 H차이나와 같이 DX를 배신하고 코퍼레이션으로 이적, 본격적인 악역 커리어를 걷기 시작한다.


믹 폴리의 챔피언 등극 이후, 1999년 로얄럼블에서 더 락과 맨카인드는 아이 큇(i quit) 매치를 치루었다. 이 경기는 역사상 가장 잔인한 락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락은 맨카인드의 머리를 박살이라도 낼 것처럼 미친듯이 체어샷을 날려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카인드는 아이 큇을 외치지 않았지만, 락은 녹음되어있던 음성을 사용해서 결과를 조작하여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에 등극하게 되었다.

한편, 빈스 맥맨은 로얄럼블에서 있을지 모르는 스티브 오스틴의 우승을 막기 위해 오스틴의 출전 번호를 1번으로 하고, 오스틴을 탈락시키는 선수에게 10만 달러를 주겠다는 선언을 하더니, 난데없이 자신이 30번으로 로얄럼블에 출전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커미셔너 숀 마이클스는 빈스 맥맨을 2번으로 바꾸고 만다. 결국 빈스는 아들 셰인 맥맨과 지옥 훈련을 감행하는데, 록키를 패러디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세그먼트는 애티튜드 역사상 가장 웃긴 세그먼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60]


말이 필요 없다. 보자.


로얄럼블에서 빈스 맥맨은 코퍼레이션 수하들의 도움을 받아 악전고투하는 오스틴과 함께 최후의 2인까지 남게 되었고, 더 락의 도움으로 ''우승'''까지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오스틴은 숀 마이클스의 지지를 얻고 인 유어 하우스에서 로얄럼블 우승자의 타이틀 도전권을 놓고 철장경기를 벌이자며 빈스를 도발해 경기를 성사시켰다. 경기 당일 오스틴은 당연히 시종일관 빈스를 압도했다. 심지어 빈스는 철장에서 아나운서 테이블로 추락사고까지 당해 들것에 실려나갔으나 오스틴은 억지로 빈스를 다시 링으로 끌고 왔다. 그러나 실컷 두들겨 패주고 이제 여유롭게 나가려는 찰나에 빈스의 깡다구 뻐큐에 오스틴이 다시 철장으로 그들어오면서 경기가 재개되는데런 와중에 WWF에 데뷔한 빅 쇼가 난입하여 오스틴을 공격했으나, 빅 쇼가 오스틴을 철장 벽에 무너뜨리는 바람에 오스틴은 레슬매니아로 직행할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빅 쇼 역시 데뷔하면서 자신의 괴력을 어필하여 훗날 메인이벤터로 자리잡게 되는 초석을 마련하게 된다.



한편, 믹 폴리는 슈퍼볼의 휴식 시간에 펼쳐진 무관중 경기였던 '하프타임 히트'에서 지게차로 더 락을 누르고 핀해 타이틀을 되찾았으나, 다시 락에게 타이틀을 내주었다. 레슬매니아 15에서 락과 오스틴의 경기가 확정된 이후, 3월 22일의 Raw에서 오스틴은 빈스 맥맨 일당인 코퍼레이션에게 맥주 세례를 퍼붓는 화끈한 세그먼트를 선보였다.


레슬매니아를 보았을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끝났군.' - 케빈 내쉬

이리하여 애티튜드의 절정기에 펼쳐진 레슬매니아 15는 800,000의 구매율을 기록하여 당시까지만 해도 경이적이라고 보였던 레슬매니아 14의 구매율을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이라는 아이콘 vs 아이콘 대결에서, 더 락은 역대 최초로 스터너를 킥아웃 하는데 성공했고, 갑툭튀한 빈스 맥맨은 심판의 죽빵을 때린 후 오스틴을 죽도록 했다.[61] 그러자 맨카인드가 또 갑툭튀하여 빈스를 패서 몰아내고 자신이 심판 노릇을 했는데[62], 락은 오스틴에게 락 바텀을 날리고 오스틴을 조롱하며 피플스 엘보우를 썼으나 오스틴은 이를 피했고, 이후 오스틴의 킥을 방어한 락이 다시 한번 락바텀을 시도했으나 이를 벗어난 오스틴이 스터너를 날려 결국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마무리는 화끈하게 빈스를 박살내면서, 경기전개 부터 마무리까지 그야말로 정신없는 애티튜드 스타일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이후 백래쉬에서 락과 오스틴의 재경기가 확정된 가운데, 락은 오스틴의 타이틀을 훔치고 그를 강물 위에서 밀어버린 후 오스틴을 추모한다면서 타이틀을 자기가 가지려는 속셈을 보였으나 오스틴은 몬스터 트럭을 몰고 귀환하여 난장판을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백래쉬에서는 경악스럽게도 빈스의 도움을 받아 락과 특별 심판 쉐인을 엿 먹이고 챔피언 자리를 지키게 된다.


스티브 오스틴과 빈스 맥맨이 손을 잡은 이유는 다름아닌 언더테이커 때문. 백래쉬에서 언더테이커는 스테파니 맥맨리무진을 마음대로 운전해서 스테파니를 납치하고는, 스테파니와 결혼식을 올리려 했다. 이는 스테파니를 손에 넣어 WWF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백래쉬 다음 날인 4월 26일 Raw에서 언더테이커는 스테파니를 꽁꽁 묶어서 데려와 세상에서 가장 불경한 결혼식을 올리려 했으나, 전날 빈스에게 도움을 받은 스티브 오스틴이 난입하여 꺵판을 침으로써 결혼식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이 후 언더테이커와 스티브 오스틴은 대립에 들어갔고, 빈스와 셰인이 각각 심판이 되어 5월의 오버 디 엣지에서 결전을 치루었으며, 언더테이커의 승리로 끝났다. 이때 셰인 맥맨은 광속 카운트로 1,2,3를 찍어 언더테이커의 승리를 도왔다.


그런데 이 날의 오버 디 엣지에서는 최악의 비극이 나오고 말았다. 당시 '우스꽝스러운 수퍼히어로' 라는 컨셉의 블루 블레이저로 활동하던[63] 오웬 하트는 공중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다가 링 위에 매달려 버둥대는 장면을 연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악의 안전사고로 인해 그대로 공중에서 떨어졌고 비극적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페이퍼뷰는 10여분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다.

이때 스티브 오스틴과 언더테이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선수들은 오웬이 추락하는 장면을 라이브로 봤다고 한다. 오웬이 떨어지자 오스틴과 언더테이커는 "오웬이 추락……" 이라는 말만 짦게 내뱉으면서 패닉에 빠졌고, 1분 30초 뒤에 오웬이 죽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스티브 오스틴은 그 날 경기 하는 동안 정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다음날 Raw에서는 그동안 스토리라인을 접어두고 선악 상관없이 오웬 하트를 추모하는 선수들의 경기와 인터뷰가 방영되었다. 오스틴은 마지막에 나와 아무 말 없이 맥주를 마시며 추모의 뜻을 밝혔고 언더테이커는 여기에 참석하지 않고 직접 브렛 하트를 찾아가 그를 위로했다.


4월 29일, 스맥다운이 첫 방송되었다. 초창기에는 WCW의 서브 쇼였던 썬더를 견제하기 위해 편성한 쇼였고 히트와 비슷한 위치였지만 점차 RAW IS WAR와 맞먹는 대형 쇼로 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히트는 이후로 쩌리급으로 전락하기 시작. 그리고 이 시기부터 엑스 팍과 케인이 같이 태그팀을 이루게 되어 케인에게 인간적인 면모가 생겨나는 각본이 진행되었는데, 이 역시 대 히트를 쳤다.


한편 빈스와 언더테이커가 연합하면서 스티브 오스틴은 궁지에 빠진다. 헌데 빈스의 아내인 린다와 스테파니가 자신들의 주식을 (각본상) 스티브 오스틴에게 넘기면서, 오스틴은 삽시간에 WWF의 CEO가 되었다.


CEO로 활약(?) 하는 스티브 오스틴.

그러나 6월 27일 킹 오브 더 링에서 맥맨 부자와의 핸디캡 래더 매치에서 패배하여 오스틴은 CEO 자리를 내놓았으나, 다음 날 Raw에서 언더테이커를 격파하여 WWF 타이틀을 되찾아오고 통산 4번째 챔피언이 되었다.

그리고 7월 풀리 로디드에서 빈스 맥맨과 스티브 오스틴이 질 경우 오스틴은 영원히 타이틀 도전 불가능, 빈스 맥맨이 질 경우 빈스의 WWF 퇴출이 걸린 퍼스트 블러드 매치에서도 승리하면서, 빈스를 실업자로 만들어버렸다.

6월 29일에는 매트 하디, 제프 하디의 하디보이즈가 처음으로 그팀 타이틀 챔피언이 되었다. 섬머슬램에서는 트리플 H, 맨카인드, 스티브 오스틴의 트리플 쓰렛 매치가 치루어졌고, 이 경기에서 맨카인드가 승리를 거둠에 따라 맨카인드는 통산 3번째 WWF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트리플 H에게 타이틀을 빼앗기고 말았다.


8월 9일, 또 한 명의 위대한 슈퍼스타인 크리스 제리코가 충격적인 WWF 데뷔를 하게 된다. 지금에 와서 제리코는 WWF 역사에서도 길이남을 선수 중에 한 사람이지만, 이 당시는 WCW에서 미들카터 대우를 받고 거의 굴욕을 당한채 쫒겨나온 상태였다. 헌데 WWF에서는 이 제리코에게 그야말로 역대급 간지와 함께, 더 락을 상대로한 등장신을 선보이게 했고 이는 열광적인 반응을 가져왔다. [64]


한편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막대한 환호와 인기를 끌어모으며 점점 선역으로 변하고 있던 더 락은, 챔피언 트리플 H에게 재도전 하려고 했으나 "부정한 동맹"[65]을 맺은 빅 쇼 & 언더테이커의 태그팀 챔피언 조합에 쳐발려서 이에 실패하고 말았다.[66] 분노한 더 락은 타이틀을 걸고 그 두 명을 때려눕히겠다고 선언했는데, 마침 더 락과 비슷한 처지였던 맨카인드가 태그팀으로 힘을 합칠 것을 제안했다. 이 두 사람은 치열하게 싸운 사이였기에 락은 탐탁치 않아 했으나, 결국 손을 잡았고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어 태그팀 챔피언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전설적인 태그팀 락 '앤' 삭 커넥션(The Rock 'n' Sock Connection)이다. 안그래도 인기가 많은데 본격적인 선역 전환 후 락 앤 삭 커넥션에서의 예능감 폭발까지 터지며 남녀 모두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받은 락은 마침내 인민의 챔피언(People's Champion)이라는 기믹으로 오스틴에 못지 않은 최고의 스타로 거듭나게 된다.


"this is your life!"

9월 27일, Raw에서 애티튜드 시대의 전설로 남을 세그먼트가 탄생한다. 시크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락의 성격을 좀 완화시켜주고, 락의 선한 본성을 깨우치기 위해 맨카인드는 락의 생일을 기회로 삼아, 락의 어렸을때의 선생님, 풋볼 코치, 그리고 전 여자친구까지 불러와 락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이들 세 사람은 모두 락의 입담에 처참하게 털려 돌아가야 했는데, 맨카인드는 여기서 굴하지 않고 광대까지 동원하고 락 앤 삭 커넥션의 티셔츠를 선물했다. '이것이 너의 삶이다(this is your life)' 라 불리게 된 이 세그먼트는 무려 8.4%의 순간 시청률을 기록, 지금까지도 Raw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67]


한편 빈스 맥맨은 9월 16일 스맥다운에서 챔피언 트리플 H와 급조된 타이틀 전을 벌였는데, 트리플 H와 대립각을 보이던 오스틴이 갑자기 난입해 스터너를 먹이는 바람에 빈스 맥맨이 WWF 챔피언이 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 물론 빈스는 오래 타이틀을 유지하지 않고 곧 반납했고, 이후 새로운 챔피언을 정하기 위한 매치가 언포기븐에서 열려 트리플 H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트리플 H는 또다시 챔피언이 되었다.[68]


10월 5일, 애티튜드 시대 WWF의 각본에 큰 영향을 미쳤던 빈스 루소가 경쟁단체인 WCW로 이적한다. 이는 빈스 맥맨과의 불화 때문이었는데, WCW는 빈스 루소가 상황을 뒤집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를 바랬겠지만……

실제로는 빈스 루소가 WCW의 헤드 부커직을 맡은 지 3개월만에 WCW의 페이퍼뷰 수익은 반토막이 났다. 루소는 WCW에서도 WWF에서 하던 자신의 크래쉬 TV, 자극적이고 성적인 요소를 잔뜩 집어넣은 쇼를 기획했지만 이는 이미 패망해가고 있던 WCW의 모습을 더욱 막장스럽게 만들었을 뿐이며 별다른 진전을 주지 못했다. 루소는 아예 극단적으로 상황을 전개시켜서 선수들이 백스테이지에서 각본에 대해 논의하고, 각본진과 선수의 대립을 만들기도 했다. 루소의 사고방식은 '어차피 모든것은 엔터테이너니 상관없다.' 는 것인데, 사실 대부분의 관중들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돌아가는 상황이나 각본에 대해 논의하는 매니아들하고는 달리 이러한 요소를 전혀 모르거나, 거북스러워 했을 뿐이었다.

WCW의 래리 즈비스코(Larry Zbysko)가 회상한 바에 따르면 당시 에릭 비숍이 물러나고 회계사였던 빌 부쉬가 운영하게 된 시점이었는데, 이때 부쉬는 즈비스코에게 자신이 빈스 루소를 "훔쳐왔다"며 좋아했다고 한다[69]. 그러나 즈비스코는 부쉬에게 맥맨이 루소와 계약을 하지 않은건 루소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 소리 해줘야 했다[70].


애티튜드 시대 태그팀 디비전의 전성기를 알린 서막
10월 17일의 노머시에서 그동안 갈등이 누적된 하디 보이즈와 에지, 크리스찬은 상금 10만 달러와 테리 러널즈[71]를 매니저로 둘수있는 권한을 놓고 래더 매치를 치루게 되었다. 스티브 오스틴은 경기를 치루기 전에 (각본이 아니라 실제로)네 사람에게 "모두들 몸 조심해라." 라고 격려를 했고, 네 명은 엄청난 명경기를 치루고 라커룸에서 선수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 1999년의 올 해의 명경기 2위에 선정되었다. 한편 이 노머시에서 차이나제프 제럿을 상대로 승리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이면서도 인터컨티넨컨탈 타이틀 챔피언에 등극한다. 크리스 제리코는 이를 빌미로 타이틀 벨트의 위신이 떨어졌다며 차이나에게 시비를 걸어 대립을 벌였다.

이후 서바이버 시리즈에서는 타이틀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던 트리플 H와 더 락, 그리고 스티브 오스틴간의 3자간 경기가 펼쳐지게 되었으나 스티브 오스틴은 의문의 교통 사고를 당해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72] 대신 참가한 빅 쇼는 트리플 H와 더 락을 물리치고 생에 첫 WWF 챔피언이 되는데 성공한다.


한편 이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또 한명의 역사적인 선수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커트 앵글이 데뷔한다.


한편, 11월 29일의 Raw에서 테스트와 스테파니 맥맨의 결혼식이 열리는데 갑자기 트리플 H가 나타나 자신이 스테파니와 이미 결혼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증거영상을 보여주는데...


스테파니가 잠는 틈을 이용해 웨딩채플에서 스테파니 몰래[73]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74] 분노한 아버지 빈스는 12월 아마겟돈에서 트리플 H와 노 홀즈 바 매치를 하게 되고 경기막판 슬랫지 해머로 트리플 H를 끝장낼 기회를 잡는다. 아 장인어른 진짜 왜 이러세요 그리고 스테파니가 자신이 직접 해결하겠다며 해머를 건네받았는데 바로 그 순간 트리플 H가 해머를 빼앗아 휘둘러버린다. 다행히 아버지가 딸을 밀쳐내고 대신 맞긴 했는데 결국 경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경기 후 스테파니는 슬퍼하더니...


아버지를 배신하고 트리플 H에게 붙어버렸다.

스테파니를 등에 업은 트리플 H는 명실공히 WWE의 최정상급 악역으로서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고 엑스 팍과 뉴 에이지 아웃로스가 트리플 H의 편이 되면서 DX가 재건, 맥마흔-햄슬리 동맹을 맺으며 WWE를 지배하게 된다.

3.5. 2000년 : 비약적인 발전 - The Great One

평균 시청률 : 5.88% (2.7%)
최고 시청률 : 7.35% (3.6%)


스티브 오스틴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락은 라이벌이 아닌 독자적인 아이콘으로써 WWF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라섰다. 물론 오스틴은 부상으로 빠지긴 했지만 그의 위상 역시 견고했으므로, WWF는 한 시대에 두 명의 아이콘이 있는 상황이 되었다. 연기력과 엔터테이너로서 최고의 능력을 지닌 락의 위상이 이 정도로 상승한 상황에서 벌어진 로얄럼블 2000의 우승자는 The Great One, 더 락이었다.


한편, 권력을 잡은 트리플 H는 1999년 후반기부터 믹 폴리를 압박하여 더 락과 해고빵 경기를 하게 하였고, 여기서 패배한 폴리는 은퇴해야하는 위기에 처한다. 그러자 믹 폴리는 캑터스 잭 기믹으로 복귀, 트리플 H와 치열한 대립을 벌였고, 로얄럼블 2000에서는 이 둘의 경기도 펼쳐졌다. 격렬하게 펼쳐진 이 경기에서 트리플 H는 믹 폴리에게 수갑을 채워 거의 승기를 잡았으나, 갑자기 나타난 락이 트리플 H를 공격하고 돌아가면서 승부의 방향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트리플 H는 믹 폴리를 잡아 압정 위로 페디그리를 구사하여[75] 승리하였다.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에서 2000년에 펼쳐진 경기 중 2위로 평가받았다.


1월 31일 Raw에서는 에디 게레로, 크리스 벤와, 말렝코, 리 새턴 등의 레슬러들이 레디컬즈(Radicals)라는 이름의 스테이블로 WWF에서 데뷔했다.

그런데 이 당시 크리스 벤와는 WCW의 헤비급 챔피언이었다. WWF 이적이 결정된 벤와는 패배를 통해 타이틀을 내주고 WCW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보였지만, WCW 측에서는 벤와는 흥행력 따위 없는 바닐라 난쟁이(vanilla midget)일 뿐이니 그냥 떠나도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였다.[76] 이 '바닐라 난쟁이' 들이 나왔던 Raw의 순간 시청률은 8.1%까지 치솟았다.


또한 ECW에서 활약하던 들리 보이즈의 WWF 페이퍼뷰 데뷔도 로얄럼블 2000이었다. 엘리미네이션 테이블 매치를 치룬 양 팀의 경기는 하디 보이즈의 승리로 끝났는데, 이 경기에서 제프 하디발코니 위에서 디본 더들리에게 스완턴 밤을 먹였다.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로 이 경기를 치루기 전, 더들리 보이즈의 버레이 더들리는 하디 보이즈가 자신의 기술을 베껴 썼다고 여겨 "만나면 작살을 내놓겠다." 고 하고 다녔는데, 정작 WWF에 와서 경기를 치루게 되자 '하디 보이즈 뒤를 언더테이커가 봐준다.' 는 이상한 헛소문을 들어 하디 보이즈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했다고 한다(……)[77]



이어지는 노웨이아웃에서 더들리 보이즈가 뉴 에이지 아웃로스를 꺾고 기어코 태그팀 챔피언이 된 가운데, 트리플 H와 믹 폴리는 또다시 일전을 치루었다. 이번의 경기는 다름 아닌 헬 인 어 셀 매치. 이 경기 도중 믹 폴리는 셀 구조물 위에서 백 바디 드랍을 당해 그대로 링 아래쪽으로 쳐박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믹 폴리는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고, 트리플 H는 그런 믹 폴리에게 페디그리를 날려 결국 승리를 가져갔다.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에서 2000년에 펼쳐진 경기 중 6위로 평가받았다.


이 무렵, 당시 드코어 타이틀 챔피언이었던 크래쉬 할리는 심판만 있다면 24시간 내내 어디서든 방어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하여 일주일 내내, 하루 24시간 내내 심판만 있다면 하드코어 타이틀 전을 치룰 수 있는 24/7룰이 시작되었다. 그 이후로 하드코어 타이틀 전선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공항, 파티장, 호텔 방, 서커스 주차장 등 수많은 곳에서 방어전이 발생했고 낮잠을 자다 타이틀을 빼앗기는 일도 있었다. [78]


2000년에는 디바 디비전의 황금기를 이끈 전설적인 디바들인 리타트리쉬 스트래터스가 데뷔하기도 했다. 2000년 2월 선데이 나이트 히트를 통해 데뷔한 리타는 데뷔무대에서 문설트를 선보이며 여성 레슬러들은 눈요깃감에 지나지 않다는 인식을 전환시켰고, 하디 보이즈의 매니저로 활약하면서 웬만한 남성 스타들보다 훨씬 높은 인기를 구가하게 되어 동년 8월 21일 RAW의 메인 이벤트를 장식하기에 이른다.

리타가 데뷔하고 약 한달 뒤인 3월의 선데이 나이트 히트에서 수 많은 WWE 팬들에게 최고의 디바로 손꼽히는 트리쉬 스트래터스도 데뷔했다. 이후 그녀는 알버트[79]테스트를 거느리고 T&A라는 스테이블을 만들었고, 리타와의 질긴 라이벌 관계도 이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 펼쳐진 레슬매니아 2000은 824,000의 판매율을 보이며 흥행 기록을 계속해서 경신했다. 다만 레슬매니아 자체는 아이콘 중에 한 사람이었던 오스틴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약간 김이 빠지는 느낌이 있었고, 최초로 페이탈 포웨이 방식으로 펼쳐진 메인이벤트[80]에서는 빈스가 락을 배신하고 트리플 H의 타이틀 방어를 도움으로써 역사상 최초로 악역이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에서 승리하는 이변이 발생했다.[81]

이 레슬매니아에서 가장 회자되는 장면은 더들리 보이즈, 하디 보이즈, E&C의 사다리 경기였다.[82] 세 태그팀은 경기 내내 눈 돌아가는 스턴트 액션을 선보였는데,[83]승리팀은 사다리 위에 테이블을 장식해서 챔피언 벨트를 내린 에지와 크리스찬이었다.[84]



이 후 더 락은 백래쉬에서 트리플 H를 격파하고 통산 4번째 WWF 챔피언에 등극한다. 3주 뒤인 저지먼트 데이에서 두 사람은 60분 아이언맨 매치라는 격렬한 방식으로 타이틀전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경기의 특별심판으로는 숀 마이클스가 나왔다. 스코어가 5 대 5가 되고 60분이 거의 지난 상황, 락은 트리플 H 패거리들에게 그야말로 다굴을 맞고 있었는데 경기장은 갑자기 암전이 되었고, 갑자기 언더테이커가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했다. 이 당시 언더테이커는 부상 때문에 공백기간을 가지고 있었던 참이었는데, 새롭게 복귀하면서 American bad ass라는 파격적인 기믹으로 재변신 한 것이다. 이 경기에서 언더테이커는 트리플 H의 패거리를 모조리 정리하고 트리플 H 마저 날려버렸는데, 특별심판 숀 마이클스가 이를 반칙으로 선언하여 트리플 H에게 1승이 추가, 6 대 5로 트리플 H는 통산 4번째 WWF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트리플 H의 지배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킹 오브 더링 2000의 메인 이벤트는 태그 팀 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는 '챔피언이 커버를 당하지 않고도 타이틀을 잃을 수 있다.' 는 규정이 룰에 추가되었다. 이때 트리플 H는 빈스 맥맨, 셰인 맥맨과 팀을 이루었고, 더 락은 언더테이커, 케인과 팀을 이루어 대결했는데 트리플 H는 본인이 커버를 당하지 않고도 빈스 맥맨이 락에게 커버를 당하는 바람에 타이틀을 락에게 내주었고, 더 락은 통산 다섯 번째 WWF 챔피언에 등극한다. 한편, 이번 킹 오브 더 링에서는 커트 앵글이 우승자가 되었다. 이후 풀리로디드 2000에서 더 락은 크리스 벤와와 타이틀전을 벌이는데 셰인 맥맨과 벤와의 함정에 의해 경기에 패배하지만 당시 커미셔너인 믹폴리의 벤와의 타이틀 획득을 무효처리하고 재경기 선언을 하였다. 그 뒤 바로 더 락이 크리스 벤와를 쓰러뜨리면서 타이틀 방어에 성공한다.



여름의 섬머슬램에서 더 락은 커트 앵글과 트리플 H를 모두 격파하고 타이틀을 유지했는데, 이때 화제가 되었던것은 다름 아닌 TLC 매치였다. 이 당시 더들리 보이즈는 테이블로 유명했고, 제프 하디와 매트 하디는 사다리 경기로 유명했으며, 크리스찬과 에지는 의자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콘체어토(Conchairto)로 악명이 높았다. 이 세 태그팀의 특징을 하나씩 모아 만들어진 매치가 TLC 매치였다.

이 경기의 마지막 종반에서, 제프 하디와 디본은 서로 벨트에 매달리고 아웅다웅을 하다가 디본이 먼저 떨어지게 되었다. 하디 보이즈의 승리가 눈에 보이는 순간 에지와 크리스찬은 사다리를 던져 제프 하디를 떨어뜨리고 챔피언에 등극하게 되었다.[85][86]

이후 언포기븐 2000에서 펼쳐진 하디 보이즈와 E&C의 스틸 케이지 경기에서, 에지와 크리스찬은 경기 직전부터 제프 하디를 구타하여 승기를 잡았으나, 결국 최후에 철장 위에서 에지가 콘체어토를 맞아 떨어져 패배하고 태그팀 타이틀을 넘겨주고 말았다. 한편 더 락은 크리스 벤와, 언더테이커, 케인을 상대로 한 페이탈 포 웨이 경기에서 승리하여 챔피언 타이틀을 유지했다.


한편 부상으로 그동안 빠져있던 스티브 오스틴도 언포기븐에서 정식으로 복귀했다. 이날 오스틴은 스티브 블랙맨에게 쉐인 맥맨에게 스터너를 날렸는데 특히 쉐인은 혼자 3방이나 맞는 기염(...)을 맥주와 함께 토했다.


이 무렵 WCW는 망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당시 빈스 루소는 배쉬 앳 더 비치에서 헐크 호건과 제프 제럿의 챔피언쉽 매치에서 호건이 제럿에게 패배하는 각본을 작성했지만, 각본 거부권이 있었던 호건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빡친 빈스 루소는 제프 제럿에게 그냥 링에 가서 누워 있으라 고 말했고, 제프 제럿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호건은 당황하면서도 제프 제럿을 커버해서 승리했는데, 화가 나서 나가버렸다.

그 이후 빈스 루소는 호건의 승리를 무시하고 곧바로 부커 T와 제프 제럿의 경기를 챔피언 결정전으로 만들었다. 전혀 개연성 없는 스토리라인 전개였지만 당시의 WCW에서는 흔하디 흔한 상황이었다(……) 이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부커 T의 모습은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전의 장면이 워낙 병크의 극에 달하였기에 비교적 묻히고 만다.

이 외에도 WCW의 선수들이 많이 출연한 영화 "레디 투 럼블"의 주인공 역 데이브 아퀘트에게 챔피언 벨트가 간다거나, 아예 리부트를 시켜버리는등 그야말로 병크의 반복이 지속되었다.[87]


노머시 2000에서는 이변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데뷔한지 1년도 안된 커트 앵글이 WWF의 아이콘이었던 더 락을 격파하고 WWF 챔피언에 등극한 것이다. 한편 오스틴은 교통사고를 내어 자신을 부상시킨 사람이 키쉬와 경기를 가져 묵사발 내기도 했으나, 실상 이를 주도한 사람은 바로 트리플 H 였다.[88]


또한 언포기븐에서 에지와 크리스찬이 패배하면서, 이 두 사람은 다시는 하디 보이즈의 태그팀 타이틀에 도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에지와 크리스찬은 로스 콘퀴스타도스라는 복면 레슬러로 등장하여 노머시에서 승리를 거두어 타이틀을 얻어내었다. 이후 크리스찬이 부상을 당하자 에지는 단독으로 나와서 미리 자신이 짜놓은 로스콘퀴스타도스 대역들을 상대로 가짜 경기를 벌여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넘겨 받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복면을 쓴 레슬러가 스와턴밤을 사용하여 에지를 묵사발 내고 만다. 사실 이 콘퀴스타도스들은 에지가 미리 짜놓은 대역들이 아니라 하디 보이즈 였던것.

당시 커미셔너였던 믹 폴리는 에지와 크리스찬이 로스콘퀴스타도스로 분장해서 자신을 속였지만 이들의 창의성을 인정해서 노머시의 승리를 인정해주고, 대신 하디 보이즈의 창의성도 인정하여 이 승리도 인정한다고 하여 결국 타이틀은 하디 보이즈의 차지가 되었다.[89][90]



서바이버 시리즈 2000에서는 커트 앵글이 언더테이커를 상대로 타이틀을 방어한 가운데, 트리플 H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했던 스티브 오스틴은 경기를 포기하고 달아나려는 트리플 H를 추격했다. 트리플 H는 차를 타고 달아나려고 했으나, 오스틴은 중장비로 이 차를 잡고 공중에서 떨어뜨려버렸다.




WWF 챔피언 전선이 커트 앵글, 언더테이커, 더 락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트리플 H와 스티브 오스틴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그 해 마지막으로 열린 페이퍼뷰, 아마겟돈에서는 지금도 종종 회자되는 최초이자 최후의 6인 헬 인 어 셀 경기가 만들어졌다. 트리플 H, 커트 앵글, 언더테이커, 스티브 오스틴, 더 락, 리키쉬가 참가한 이 경기에서 언더테이커는 철장 위에서 리키쉬에게 쵸크슬램을 사용하는 인상적인 장면을 만들었고, 경기 막판 스티브 오스틴은 락에게 스터너를 먹여 거의 승기를 잡나 했으나 트리플 H가 방해하는 동안 커트 앵글이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ECW가 이 시점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데 이미 재정적 어려움이 지속된지 오래였고, 2000년초부터 태즈, 더들리 보이즈, 마이크 어썸등이 단체를 나가게 된것이 치명타가 되었다. 특히 마이크 어썸은 벨트를 들고 WCW로 가버려 팬들의 속을 뒤집어 버렸으며[91], RVD나 다른 선수들 역시 보수를 잘 받지 못해 출연을 하지 않는등 악순환의 반복이 되어있던 상황이었다.

3.6. 2001년 : 전쟁의 끝, 최후의 승자 - Invasion

평균 시청률 : 4.64% (2.3%)
최고 시청률 : 5.70% (3.0%)
* 3/26자로 WCW 나이트로가 폐지되고 WWF가 WCW를 인수하면서 시청률 전쟁이 막을 내렸다.



2001년 로얄럼블에서 스티브 오스틴은 커트 앵글과 타이틀 전을 치루는 트리플 H에게 스터너를 먹이며 그를 방해했는데, 이후 트리플 H는 로얄럼블에 참가하려고 하는 스티브 오스틴을 구타하여 큰 부상을 입힌다. 그러나 오스틴은 피를 흘리면서도 집념으로 버티면서 마침내 케인을 제거하고[92]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로 3회 로얄럼블 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또한 이 경기에서는 WWF 역사에 남을 만한 명경기가 하나 탄생했는데, 바로 크리스 벤와와 크리스 제리코가 벌인 인터컨티넨탈 사다리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제리코는 사다리 위에서 월스 오브 제리코를 사용하는 명장면을 만들었고, 현란한 공방전 끝에 결국 승리하는데 성공했다. 이 경기는 데이브 멜쳐로부터 ****3/4의 별점을 받았으며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에서 그 해 6위의 경기에 선정되었다.



2월 19일 무렵에는 리타와 테크니션 레슬러 딘 말렝코의 남녀 대결이 펼쳐졌는데, 이런 대결이 펼쳐진 이유는 딘 말렝코가 리타를 호텔까지 유혹해서 한번 해보려는 목적이었지만 그럴 생각이 없었던 리타 때문에 하디 보이즈에게 호텔에서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었다. 이 경기 승자는 각본상 리타였기 때문에, 딘 말렝코는 여자에게 져야한다는 사실 때문에 썩 내키지 않아 했지만[93] 막상 경기에 들어갔을때는 신들린 악역 연기를 보였다. 당연히 리타는 상대도 되지 않았지만 매트 하디의 도움으로 간신히 승리했고, 이후 매트 하디와 리타는 키스를 나누었는데 이 장면 역시 명장면으로 꼽힌다. 이때만 해도 좋았지[94]


로얄럼블 이후 펼쳐진 노 웨이 아웃에서 더 락은 챔피언 커트 앵글을 꺾고 통산 여섯 번째 WWF 챔피언에 등극했다. 한편, 로얄럼블을 우승한 스티브 오스틴의 입장에서는 노 웨이 아웃 당시 까지 챔피언이었던 커트 앵글을 노리거나, 아니면 도전자였던 락을 노리던가 해야 했지만 트리플 H와의 끈질긴 대립이 문제였다. 두 선수는 이 대립을 종결시키기 위해 노 웨이 아웃에서 3판 2선증제 경기를 펼쳐지기로 했는데, 빈스는 경기당일까지 서로 터치하지말라는 명령을 내리고 오스틴이 어길시 타이틀도전권 박탈, 트리플 H가 어길시 6개월 출장 정지라는 조건을 건다. 그런데 계약식이 끝나자마자 트리플 H가 오스틴을 기습공격한다. 놀란 빈스는 즉각 6개월 출장 정지를 부과하지만 놀랍게도 트리플 H는 오스틴이 보는 앞에선 싸인을 한 척하고 실제론 하지 않았던 것.

그러자 스티브 오스틴이 분풀이로 트리플 H의 아내였던 스테파니를 공격하는등 서로의 감정이 폭발하는 가운데, 노 웨이 아웃에서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고 오스틴이 1승을 따내는데 성공했으나 트리플 H가 2, 3경기를 연속으로 잡으며 역전승에 성공했다.[95] 이 경기는 데이브 멜쳐로부터 ****3/4의 별점을 받았으며,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올해의 경기에서 그 해 최고의 경기 5위에 선정되었다. 한편 빈스가 트리쉬와 바람을 피우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스테파니에 의해서 스테파니 VS 트리쉬의 경기가 펼쳐지기도 했는데 캣파이트의 진수를 보여주는 경기니 한번 쯤 볼만 하다. 경기 하이라이트



한편, WCW는 결국 WWF를 쫓지 못하고 패망하고 만다. WCW는 결국 WWF에 팔리고 말았으며, WCW의 마지막 이벤트는 엄밀히 말하자면 WWF의 이벤트였다. 이 마지막 이벤트에서 스팅과 릭 플레어는 경기가 끝나고 서로 얼싸앉았다.

한편 WWF의 선수들도 이런 갑작스런 사태에 실제로 당황하고 있는 가운데, 빈스 맥맨은 선수들을 불러 모아 "아무 걱정하지 말아라. 이 사태로 해고되는 선수도 없다. 앞으로 어느 시점이 되면 양 단체가 서로 맞붙는 이벤트도 기획하고 있다." 고 말했다. 3월 26일의 Raw에서 빈스 맥맨은 WCW의 먼데이 나이트로를 보면서 경쟁사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WWF의 라커룸에서 WCW 방송이 나오고 있었던 것.

Raw가 시작된지 40분 정도가 지난 후, 빈스는 링으로 들어와 자신이 언론 재벌 드 터너를 이겼다면서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쉐인 맥맨의 음악이 울려퍼졌고, 빈스는 쉐인과 싸울 준비를 했지만 쉐인은 그곳에 없었다. 쉐인은 1000마일 가까이 떨어진 WCW 먼데이 나이트로의 마지막 이벤트 무대에 등장하여 자신이 WCW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또한 WCW의 영광을 다시 이룩하여 WWF를 삼켜버리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펼쳐진 레슬매니아 X-Seven은 1,040,000이라는 판매율을 보이면서 백만이 넘는 판매율을 보였고, 그 내용도 알찼다고 평가받고 있다. 역대 레슬매니아 중에서도 최고의 레슬매니아의 하나로 손 꼽히는 퀄리티 였으며, 애티튜드 시대를 상징하는 거의 모든 아이콘들이 등장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러한 경기들 중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건 바로 전설의 TLC-2 경기. 수 많이 붙어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극에 달한 하디 보이즈, E&C, 더들리 보이즈라는 세 태그팀에 더해 리타, 라이노, 파이크 더들리 라는 태그팀의 도우미들이 각각 출연하여 몸을 사리지 않는 스턴트 액션을 보이면서 쉴틈 없는 장관을 이루었다.[96] 경기가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매트 하디와 버버레이가 사다리 위에서 옥신각신 하다가 라이노에게 모두 링 밖으로 떨어져버렸으며, 라이노는 크리스찬을 어깨에 태우고 사다리를 올라가서 타이틀을 따내게 했다. 이 경기는 애티튜드 시대에 벌어진 태그팀 대결의 정점으로 기억되고 있다.[97]



워낙 전설적인 레슬매니아인 만큼 눈여겨볼 경기도 많았는데, 게중에 빈스 맥맨과 쉐인 맥맨의 패륜 부자 대결의 경우에는 부자간의 대립에 여기에 트리쉬까지 끼어들게 되었다. 트리쉬는 그동안 빈스 때문에 경기장에서 옷을 벗는다던지, 무릎을 꿇는다던지, 개처럼 짖어본다던지 하는 굴욕이란 굴욕은 모두 당했는데 레슬매니아에서 빈스의 뺨을 때리면서 분풀이를 한것.[98]



그리고 펼쳐진 대망의 메인이벤트에서 만인의 영웅이었던 스티브 오스틴은 최악의 적수였던 빈스 맥맨의 도움을 받아 더 락을 꺾었다. 그리고 빈스 맥맨과 같이 맥주를 마셨는데, 당시 스티브 오스틴은 데뷔 이후 만인의 영웅이었기에 오스틴이 빈스의 개로 전락한 이 모습은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경기에서 스티브 오스틴은 WWF 챔피언이 되었고[99], 다음날 RAW에서 타이틀이 걸린 스틸케이지매치가 벌어진다. 그리고 오스틴의 갑작스런 변화에 갈피를 못잡는 팬들에게 치명타를 날린 사건이 발생하는데 얼마전까지 격렬한 대립을 주고받았던 트리플H가 오스틴을 도와준 것. 더 락은 이 경기의 패배 후에 스콜피온 킹 영화를 찍기 위해 헐리우드로 떠나게 되었다.[100] 순식간에 WWF의 양대 선역 아이콘이 모두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후 스티브 오스틴은 여기에 더해 트리플 H와 함께 다니면서 언더테이커와 케인이 가지고 있던 태그팀 타이틀 까지 획득했다. 당시 오스틴에 대한 팬들의 배신감은 엄청나서 관중들은 SOLD OUT 혹은 Sell Out, Don't Trust Austin이라 적힌 팬피켓을 들어보이며 그에게 엄청난 야유를 쏟아부었다. 그럼에도 오스틴은 악역 이미지를 더 강하게 살리기 위하여 팬들에게 인기 있던 하디 보이즈를 두들겨 패는가 하면, 여자인 리타에게 미친듯이 체어샷을 먹이기도 했다.

한편 오스틴의 베프였던 짐 로스는 왜 빈스에게 심장을 팔았냐며 해명을 요구했고 이에 오스틴은 "멍청한 놈, 난 스티브 오스틴이야.[101] 빈스는 나에게 승리를 보장했고, 곧 미래를 본거지"라고 답했다. 그동안 자신을 지지해준 전세계의 팬들을 등돌린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내가 왜 내 행동에 반성해야하지? 내가 언제 '난 영웅이 되고싶어', '난 WWF팬을 사랑해'라고 말한적 있는가? 넌 매주 '방울뱀! 방울뱀!'을 외치는데 이봐, 짐!! 난 오늘 이곳에 DTA - Don't Trust Anybody를 말하러 온거야."라며 팬들의 야유에 전혀 신경쓰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102]

그러나 사실 이 악역 전환은 오스틴 본인에게는 썩 좋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트리플 H와의 태그팀 타이틀은 곧 제리코와 벤와에게 뺏겼고, 같이 활동하던 트리플 H가 부상으로 장기 결장을 하게 되면서 혼자 붕 떠버리게 된것. 여기에 더해 악역 전환으로 스티브 오스틴의 상품 판매량도 급락했다.[103] 이후 오스틴은 한동안 반쯤 개그 캐릭터로 전락하게 된다.

이 당시 트리플 H가 입은 부상은 굉장히 심각한 부상이었다. 트리플 H는 경기중에 대퇴사두근이 찢어지며 근육이 뼈에서 떨어졌고, 왼쪽 다리로 무릎을 지탱하는것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트리플 H는 그런 상태에서 계속 경기를 소화했으며, 심지어 윌스 오브 제리코를 접수하기도 하면서 끝까지 경기를 소화했다.[104] 이후 트리플 H는 8개월 동안 재활기간을 거치게 된다.


한편, 쉐인과 빈스의 레슬매니아 경기 이후로 한달 정도 뒤에 WCW 출신 선수인 랜스 스톰이 5월 28일 Raw에 등장했다. 랜스 스톰은 스티브 블랙맨과 페리 새턴의 경기에 난입하여 훼방을 놓았다. 그 후에는 휴 모리스가 WWF에 등장했고, 킹 오브 더 링에서는 부커 T가 관중석에서 뛰쳐나와 스티브 오스틴을 공격했다.

킹 오브 더 링 다음날의 Raw에서는 마이크 어썸이 테스트와 라이노의 경기 이후에 난입해서 라이노를 공격하고 하드코어 타이틀을 빼앗아갔다. WCW 소속의 선수가 WWF 타이틀을 차지한 최초의 사례였다. 그 이후에는 더들리 보이즈와 하디 보이즈의 태그팀 챔피언 결정전에 WCW 태그팀 챔피언이었던 척 팔럼보, 션 오헤어가 난입해서 난장판을 만들다 WWF 소속 선수들에게 붙잡혀 두들겨 맞는 일도 있었다.[105]

본래 WWF의 계획에서는 WCW의 침공군을 선역처러 만들려는 계획도 안에 포함되었으나, '월요일 밤의 전쟁' 을 겪으며 WWF를 지지한 충성스런 팬들은 WCW에 전혀 호감을 보이지 않았고, WCW의 선수들에게 엄청나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부커 T와 버프 배그웰의 경기에서 이런 양상이 절정이 이르자,[106] WCW는 확고하게 악역단체로 굳어졌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응급처치로 ECW가 추가되었다.



한편 이 킹 오브 더 링에서는 팬들의 인상에 강하게 남은 경기가 있었는데, 바로 쉐인 맥맨과 커트 앵글의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 여기서 쉐인 맥맨은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어서 레슬링 팬들의 인상에 깊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 날, WCW 챔피언 부커 T는 메인 이벤트에서 등장하여 스티브 오스틴을 공격했다.



"이것 보세요, JR."
"죽을 때 까지 기억에 남을 순간입니다!"

7월 9일의 Raw에서는 랜스 스톰과 마이크 어썸이 케인과 크리스 제리코를 상대하고 있었다. 헌데 경기 도중 ECW의 스타인 랍 밴 댐미 드리머가 등장해 랜스 스톰과 마이크 어썸을 도왔다. 이에 WWF의 로스터들이 케인과 제리코를 구원하기 위해 나타났는데, 갑자기 WWF의 로스터였던 더들리 보이즈, 레이븐, 라이노, 저스틴 크래더블, 갑자기 WWF 선수들을 배신하여 두들겨 팼다. [107]폴 헤이먼이 지휘 아래 ECW가 WWF에 등장한것.

ECW의 갑작스런 습격이 있자 WCW를 지휘하는 쉐인 맥맨은 빈스에게 일단 ECW를 몰아내자고 제안하여 손을 잡았는데, 정작 WCW는 동맹을 맺은 WWF를 배신하고 ECW의 편을 들었다. 사실 ECW의 새로운 소유주는 스테파니 맥맨이었고, ECW와 WCW가 손을 잡고 WWF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남자 선수들이 WWF에 새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자연스레 몇몇 여자 선수들도 WWF에서 새로 모습을 보이게 되었는데, 선수라고 하긴 뭣하지만 스테이시 키블러토리 윌슨이 바로 그들이고, 2002년 로스터 분리 이후 두 사람은 각각 RAW와 스맥다운!을 상징하는 미녀들이 되었다. DDP, 부커 T, 스캇 스타이너 등 WCW 출신 선수들은 메인 이벤터들까지도 죄다 자버나 개그 캐릭터로 소모되고 버려졌기 때문에 진정한 승리자는 이미지 구기는 일 없이 잘나간 이 둘 뿐이라는 평가도....

이러한 WCW & ECW의 연합, 즉 얼라이언스(Alliance)와 WWF는 페이퍼뷰인 인베이전에서 승부를 결정지을 예정이었다. WWF의 선수들은 분전을 해서 APA는 션 오헤어와 척 팔럼보를 상대로 승리하고, 틈만 나면 머리채 잡고 싸운 앙숙이었던 리타와 트리쉬는 최초의 브라 & 팬티 태그팀 매치에서 스테이시와 토리를 꺾었다. WCW의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리 키드먼은 WWF의 라이트헤비웨이트 챔피언 X-Pac을 상대로 상대로 승리했다. 심지어 심판들의 경기 까지 부킹되어서 WWF의 심판 얼 헤브너는 믹 폴리의 도움으로 WCW의 심판 닉 패트릭을 상대로 한 경기에서 승리했다.

양 진영의 스코어가 똑같이 5 대 5가 된 가운데, 가장 중요한 5 대 5 경기에서 얼라이어스는 부커 T, 다이아몬드 댈러스 페이지, 더들리 보이즈, 라이노를 내세웠고 WWF는 언더테이커, 케인, 크리스 제리코, 커트 앵글, 그리고 WWF의 상징인 스티브 오스틴을 내세웠다.

경기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커트 앵글이 부커 T를 상대로 앵클락을 걸어 WWF가 거의 승기를 잡으려던 찰나,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으니……



WWF 챔피언이었던 스티브 오스틴은 같은 팀원이었던 커트 앵글의 얼굴을 발로 차고, 스톤 콜드 스터너를 먹여 부커 T가 커트 앵글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게 했다. 즉 배신을 때렸던것. 지난 몇년간 WWF를 이끌었던 아이콘이자, WWF 그 자체였던 스티브 오스틴의 배신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사실, 인베이전이 개최되기 전에 빈스가 레슬매니아17 이후 자신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던 오스틴에게 끊임없이 과거의 스톤콜드로 돌아오기를 종용했다. 이 시절의 오스틴은 상술한 바와 같이 한때 철천지 원수였던 빈스를 위해 우스꽝스럽게 노래를 불러주는 등 카리스마가 바닥으로 치닫는 개그캐릭터였다. 연합군 로스터와의 일전을 위해 스톤콜드가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랬던 빈스는 그를 위한 상징적인 행동으로 예전처럼 자신을 두들겨 패라고 종용하기까지 했었지만 오스틴은 이를 거부하고 백스테이지로 퇴장하기도 했다. 그와중에 인베이전 직전 RAW에서 WWF와 연합군의 모든 로스터가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막바지에 오스틴이 난입하여 대부분의 연합군 선수들에게 스터너를 날리고 맥주쇼를 펼치며 WWF의 사기를 드높였다. 그런 오스틴이 마지막에 배신했기때문에 그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 to the WWF!"

"Yes! Yes!"

아이콘이었던 스티브 오스틴이 얼라이언스의 앞잡이로 전락한 상황에서, WWF가 믿을 수 있는것은 이제 하나 밖에 없었다. 바로 또다른 아이콘의 가세. 그러나 쉐인은 한발 앞서 헐리우드에서 돌아오는 더 락을 연합군으로 초대했고, 7월 30일의 Raw에서 마침내 오랜 공백을 깨고 피플스 챔피언 더 락이 등장했다. 쉐인 맥맨과 빈스 맥맨은 각자 더 락을 자신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을 했는데, 긴 침묵을 하고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더 락은 갑자기 빈스 맥맨에게 락바텀을 선사했다. 쉐인은 기뻐서 춤을 추어댔고, 스티브 오스틴에 이어 더 락 마저 얼라이어스에 넘어가 WWF가 끝장나려는 찰나, 락은 쉐인에게도 락바텀을 선사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름 아닌 WWF에 돌아왔음을 선포 했다. 해설을 하던 짐 로스는 그 말을 듣고 "예스! 예스!" 를 연발했으며, 폴 헤이먼"셧업!" 만 연실 연발했을 뿐이었다.



또한 더 락 외에 WWF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선수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커트 앵글이었다. 이 무렵 커트 앵글은 엄청난 호응을 얻으면서 가히 WWF의 영웅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포스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부커 T를 상대로 WCW의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얻어오지만 이를 뺏긴 후, 섬머슬램에서 오스틴과 대결을 했지만 스티브 오스틴이 DQ로 타이틀을 지켜냄에 따라 이에 분노, 다음날 Raw에서 타이틀 방어를 자축하는 오스틴과 얼라이어스 일당에서 전설의 우유 세례를 퍼부었다. 이는 과거 스티브 오스틴이 코퍼레이션을 상대로 한 행동의 패러디.


이 당시 커트 앵글의 포스는 가히 후덜덜 했는데 심지어는 스티브 오스틴을 질질 짜면서 빌게 만들기도 했다. 이는 스티브 오스틴이 커트 앵글의 금메달을 훔치자 커트 앵글이 오스틴을 물에 빠뜨려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인데, 사실은 낚시였다……

한편 더 락이 부커 T를 상대로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얻어낸 후, 언포기븐에서 커트 앵글은 기어코 스티브 오스틴을 상대로 WWF 타이틀을 얻어내게 되었다.[108] 하지만 당시 커미셔너였던 윌리엄 리걸이 얼라이언스의 편을 들게 되면서 이 여파로 오스틴에게 타이틀을 내주고 만다.



양 측의 대립이 절정으로 치닿게 되면서 이제 그 모든 것을 종식시키려는 경기가 11월 18일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펼쳐지게 되었다. 그런데 서바이버 시리즈가 열리기 전, WWF의 영웅이었던 커트 앵글이 갑자기 동료들에게 체어샷을 날리며 배신하는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여기에 더 락과 크리스 제리코가 사사건건 대립을 벌이며 분열의 씨앗을 보인다는 점도 WWF 측에서는 불리한 점이었다.

하지만 얼라이언스 측도 문제가 있었는데 얼라이언스를 이끌게 된 스티브 오스틴이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선수들과 마찰을 겪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빈스가 "누군가가 얼라이언스를 배신할수도 있다. 그는 바로 스티브 오스틴!!!" 이라는 떡밥을 흘리면서 얼라이언스는 혼란에 빠졌다.

마침내 펼쳐진 서바이버 시리즈 제거 매치는 역대 서바이버 시리즈 제거 매치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경기로 남았는데, 치열한 격전 끝에 마지막을 남은것은 양대 아이콘, 더 락과 스티브 오스틴이었다. 그런데 WWF를 배신하고 얼라이언스에 가담한 듯 했던 커트 앵글은 이 마지막 순간에 스티브 오스틴에게 벨트 샷을 먹였다. 커트 앵글은 빈스가 숨겨 놓았던 이중 스파이였던 것이다. 락은 앵글의 도움을 받아 오스틴에게 락바텀을 먹인 후 승리를 거두어 마침내 전쟁을 종결시켰다.

승리한 빈스는 쉐인과 스테파니도 모조리 쫓아내버리고 해설자인 폴 헤이먼을 해고하고 제리 럴러를 그 자리에 대신 앉혔다.


그리고 빈스 맥마흔은 얼라이언스 선수들 중 챔피언 자리에 있던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로스터에게 짤리고 싶지 않으면 나의 엉덩이에 키스하라는 굴욕적인 요구를 하게된다. 그리고 11월 19일 RAW에서 Kiss my Ass 클럽의 1호 가입자가 탄생했다. 바로 윌리엄 리걸.


그리고 빈스는 배신 떡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얼라이언스의 편에 남았던 스티브 오스틴은 얼라이언스가 모조리 패퇴함으로써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WWF에서 쫒겨날 위기에 놓였던 스티브 오스틴이었지만, 갑자기 스테파니의 지분을 사들였다는 네이쳐보이 릭 플레어가 등장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스틴은 다시 한번 스톤 콜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26일 RAW에서 빈스는 오스틴에게 자신의 엉덩이에 키스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에 오스틴은 껌과 가글로 시간을 끌다가 로블로를 먹여버리고 허리띠로 빈스를 마구 채찍질한다. 두들겨 맞던 빈스는 더들리보이스와 커트 앵글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나게 되는데...


이 장면을 보던 중계석의 짐 로스는 통쾌한지 크게 웃다가 빈스에게 찍히게 된다. 결국 커트 앵글에게 끌려와 강제로 키스할 위기에 처했는데 이 때 또 다른 최강자, 언더테이커가 나타나 이를 가로막았다. 언더테이커는 짐 로스에게 키스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보고 당연히 짐은 "존나 싫어!!(HELL NO)"를 외친다. 그런데 갑자기 언더테이커는 짐에게 자신보다 낫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더니 그를 공격하고 강제로 키스하게끔 만든다. 언더테이커가 턴힐한 것이다.

기고만장해진 빈스는 급기야 연합군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WWF를 위해 열심히 싸웠던 트리쉬 스트래터스까지 자신의 엉덩이 키스 클럽에 가입시키려고 한다. 천만다행히 락이 나타나 트리쉬를 구해주었고, 트리쉬는 락에게 고마움을 담은 키스를 해주고, 락은 츤츤대더니...이하생략


그리고 12월 6일 스맥다운에서 빈스는 리키쉬의 엉덩이에 강제로 키스하며 최후를 맞았다.[109][110]


12월, 한 해 마지막 PPV인 벤전스에게 언더테이커는 랍 밴 댐을 물리치고 하드코어 타이틀을 획득한다. 이 때의 언더테이커는 그동안 길러왔던 장발을 깔끔히 밀어버리고 캐릭터 변신을 하게 된다.


한편, 릭 플레어의 배려 덕에 오스틴이 가지고 있는 타이틀은 박탈되지 않았고, WCW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WWF 타이틀이 모두 있는 상황에서 이를 통합하기 위한 경기가 그 해 마지막 페이퍼뷰였던 벤전스에서 열리게 되었다. 여기서 크리스 제리코는 빈스 맥맨의 도움을 받아 락을 물리쳤고, 이어서 커트 앵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스티브 오스틴에게도 승리하여 하룻 밤 사이에 양대 아이콘 더 락과 스티브 오스틴을 모두 꺾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크리스 제리코는 최초의 통합 챔피언이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게 바로 처음이자 마지막 WWE 챔피언쉽 획득이었다는거

3.7. 2002년 : 애티튜드 시대, 종언 - Brand Extension

평균 시청률 : 4.01%
최고 시청률 : 5.04%


로얄럼블에서는 통합 챔피언 크리스 제리코가 더 락을 상대로 타이틀을 방어한 가운데, 릭 플레어는 빈스 맥맨과 격렬한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를 치뤄서 승리를 거두었다. 한편 2002년의 로얄럼블 우승자는 오랜 시간 동안 부상에서 돌아온 트리플 H였다.[111] 트리플 H는 부상 이전에는 악역이었지만 복귀했을때는 팬들에게 큰 호응을 받는 선역이 되었다. 바로 이 시기가 트리플 H의 몸이 가장 멋있었을 간지폭풍 시기였다. 경기력 자체는 조금 떨어져 있던 시기다. 로얄럼블 우승 이후 트리플 H는 커트 앵글을 노 웨이 아웃에서 꺾었고, 레슬매니아까지 크리스 제리코와 대립을 가졌다.


한편 빈스는 릭 플레어를 상대로 한 경영권 다툼이 생각처럼 유리하게 되지 않자, 기왕 이렇게 된 거 대가 만든 단체에 내가 독을 풀어 넣겠다 라며 WCW의 상징이자 백스테이지 깡패였던 NWO를 WWF에 부활시킨다. 이에 따라 스캇 홀, 케빈 내쉬, 무엇보다 헐크 호건이 WWF에 돌아오게 되었다. nWo는 노웨이아웃 메인이벤트에서 스티브 오스틴을 공격하며 화려하게 컴백을 알린다. 이렇게 한 시기에 세 명의 아이콘이 WWF에 모여있는 가히 전무후무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는데……



2월 18일의 Raw에서 더 락은 호건의 감성팔이 및 추억팔이 세그먼트 중에 난입, 호건에게 도전을 하게 되면서 레슬매니아에서 역사적인 아이콘 vs 아이콘 대결이 펼쳐지게 되었다. 세그먼트 후 락은 악수를 풀지 않고 호건에게 락바텀을 날리지만 이내 내쉬와 홀의 습격을 받아 엠뷸런스에 실려간다. 그러나 호건은 대형트럭을 몰아 엠뷸런스와 충돌시키고 결국 락은 공백기를 가지다가 다시 복귀, 혼자서 nWo 3명을 박살내던 상대하던 오스틴과 함께 nWo에 맞섰다.


이후 펼쳐진 레슬매니아 X8은 이전의 레슬매니아 보다는 전체적으로 힘이 빠진 모양새였다. 판매량도 880,000를 기록함으로써 레슬매니아 14 이후로 최초로 판매량이 줄어든 레슬매니아였고, 아무래도 이전 레슬매니아가 라인업부터 워낙 대박이라서 비교가 되는 면도 있었다.

메인이벤트에서 트리플 H는 제리코를 상대로 승리하여 통합 챔피언이 되었는데, 실질적인 메인이벤트는 더 락과 호건의 대결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 경기는 그야말로 두 선수가 쌓아올린 위상과 아이콘이라는 가치의 대결이나 다를 바 없었다. 기실 경기력 자체로만 평가한다면 경기 내내 대단한 장면이 나온건 아니지만, 헐크 호건을 보고 자라고 더 락의 시대를 살고 있었던 관중들은 양 선수의 동작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엄청난 호응을 해주었다. 관중 호응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거의 레전설급. 이 경기에서 호건은 악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환호를 받았으며, 더 락은 되려 야유를 받았을 정도였다. 결국 경기에서는 락이 승리했고, 호건은 이후 자연스레 선역으로 전환하게 된다.


레슬매니아 이후, 역사적인 Raw와 스맥다운의 로스터 분리가 이루어지면서, 양측 선수를 분리하기 위한 드래프트가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Raw와 스맥다운은 하나의 쇼가 아닌 양대 브랜드로 나뉘었으며, 오직 통합 챔피언이 양대 브랜드를 오고 갈 수 있는 시스템이 되었다.[112] 이러한 로스터 분리가 가능했던것은 그만큼 당시의 WWF 로스터가 풍부했기 때문.

또 이 무렵에 WWF는 세계 자연보호 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과의 소송에서 지면서 명칭을 WWE로 바꾸게 되었다. 바로 이 시기를 기점으로 애티튜드 시대의 종결이 선언되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한편 레슬매니아 이후, 엄청난 거물급 신예 브록 레스너가 데뷔하게 되었다. 브록 레스너는 데뷔하자 마자 유례가 없는 엄청난 푸쉬를 받으며 초고속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이는 브록 레스너를 차세대 아이콘으로 만들려는 WWE의 움직임이었다. 레스너는 하디 보이즈, 리키쉬, 알 스노우, 헐크 호건 같은 잘 알려진 레슬러들을 파죽지세로 격파해가며 우승자에게는 WWE 타이틀 도전권을 준다는 규정하에 진행되던 킹 오브 더 링 토너먼트에 참가하는데 첫 상대는 바로 스티브 오스틴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스티브 오스틴과 WWE간의 마찰이 있었다는 것이다. WWE는 앞으로 회사를 지탱해나갈 것으로 보이는 이 차세대 괴물의 먹이로 오스틴마저 던져주려 하였다. 프로레슬링에 있어서 현재의 아이콘이 차세대의 기둥이 될 선수에게 져주는것은 미덕에 가까운 일이었기에 오스틴도 자신이 브록 레스너의 먹잇감이 되는것에는 흔쾌히 동의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었다. WWE 측은 당시 진행하던 킹 오브 더 링 토너먼트 첫 경기 상대로 오스틴을 지목하고 레스너에게 일방적으로 완패당한다는 오스틴 입장에서 보면 다소 섭섭한 역할을 요구하였다. 브록 레스너는 PPV도 아니고 스맥다운 무대에서 헐크 호건을 베어허그로 실신 패배시키는 희대의 괴물이었고 이에 대한 반발 여론 역시 많았다.[113] 스티브 오스틴은 이런 마구잡이 잡이 아니라 팬들이 주목할만한 대립을 진행하고 비중있는 무대에서 레스너에게 잡을 해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비중이 낮은 토너먼트 첫 경기의 일방적인 패배가 아닌 PPV 킹 오브 더 링 메인이벤트에서 레스너와 격전을 벌이다 패하는 각본을 요구하지만 WWE 측에서는 레스너의 이미지 상승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114]

이 무렵의 오스틴은 개인적으로도 목 부상이 점점 심해지면서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회사 내에서의 위치와 받는 대우도 점점 내려가고 있다는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감정이 폭발하게 되면서 스티브 오스틴은 6월 10일의 Raw 생방송을 앞두고 그냥 집에 가버리는 무단 탈단을 저질렀다. 이에 WWE는 계약 위반을 한 스티브 오스틴을 해고해버렸다. 오스틴에게 무리할 정도의 잡을 요구한 WWE도, 그렇다고 무책임한 행동을 한 스티브 오스틴도 모두 잘한것이 없는 상황.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스티브 오스틴 정도의 레슬러가 이렇게 의미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부분이었다.
[115]

당시 WWF 챔피언 자리는 트리플 H에서 헐크 호건으로, 헐크 호건에서 언더테이커로, 다시 언더테이커에서 더 락으로 바뀌는 복잡한 상황이었는데, 브록 레스너는 더 락을 털어버리고 데뷔 5개월만에 챔피언에 등극했다![116] 이후로도 브록 레스너는 언더테이커와 두 차례 PPV에서 대립하면서 언더테이커를 영혼까지 털어버리거나 빅 쇼, 커트 앵글 등 네임드 레슬러들과 대립을 펼치면서 흠좀무한 푸쉬를 받으며 로스터의 모든 선수를 작살내게 된다.


6월 3일의 Raw에서 또 다른 위대한 선수가 복귀하게 되었다. 그 선수의 이름은 바로 숀 마이클스. 숀 마이클스는 nWo의 일원으로 복귀했지만, 정작 그 nWo의 핵심 멤버들인 스캇 홀과 케빈 내쉬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WWE에 나올 수 없게 되면서 붕 뜨게 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악역으로 전환한 트리플 H와 대립을 벌이면서 정말 오랜 시간만에 선수로 복귀했고, 이후 전설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된다.


또한 이 시기 빈스 맥맨은 릭 플레어를 꺾고 RAW의 통제권을 다시 가져왔으며, 새롭게 RAW의 단장으로 임명한 인물은 과거 자신과 WWF를 벼랑끝까지 몰고갔던 WCW의 수장, 에릭 비숍이었다.[117] 이후 비숍은 수년간 RAW의 단장직을 맡았다가 TNA로 가서 활동헐크 호건이랑 사이좋게 TNA를 말아먹었다.하기도 하였다.


"I'm John cena!"

"Ruthless, Aggression!"

오스틴이 WWE를 떠나버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6월 27일의 Raw에서, 또 다른 역사적인 선수가 데뷔를 했다. 그 선수는 바로 존 시나. 당시 헐크 호건을 킹 오브 더 링에서 털어버린 커트 앵글은 자신을 상대할 선수는 아무도 없다며 어그로를 끌었는데, 그러자 튀어나온 선수는 WWE팬들에게는 듣보잡 그 자체였던 존 시나였다. 커트 앵글은 니 까짓게 뭔데 최고의 선수인 자신에게 덤비느냐 물었고, 이에 존 시나는 "존 시나"라 답했다. 앵글은 뒤이어 네가 뭐가 잘났느냐, 네 장점을 하나만 말해보라 도발했고, 시나는 "무자비한 공격성(Ruthless Aggression)." 이라는 말과 함께 커트 앵글을 공격하기 시작, 바로 경기를 펼쳤다.[118] 이 경기에서 존 시나는 꽤 선전했으나 경험 부족을 보이며 커트 앵글에게 패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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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이 어떻게 되냐, 꼬맹아."
"존 시나 입니다."
"존 시나…… 잘했다."

이 후 백스테이지에서 커트 앵글같은 대선수와 괜찮은 경기를 했다며 선수들에게 칭찬을 받다가, 당시 WWE 챔피언이자 WWE 역사의 거인인 언더테이커와 만나, 언더테이커가 존 시나를 격려하자 시나가 감격을 금치 못하는 백스테이지 세그먼트도 있었다. 이후 WWE의 아이콘으로까지 성장한 존 시나의 미래를 보자면 상당히 인상깊은 순간. 그러나 이 당시 존 시나는 아직 여러모로 풋내기에 지나지 않았고, WWE에서도 어느정도 밀어주고 있기는 했어도 아이콘급으로는 전혀 보고 있지 않았다.[119]


8월 25일의 섬머슬램에서 브록 레스너는 기어코 더 락을 상대로 승리하여 통합 챔피언에 등극했다. 이 경기 이후 락은 영화를 찍으러 떠났고, 스티브 오스틴은 무단 탈단을 한 상황. 애티튜드 시대의 아이콘이 모두 사라진 시점이니, 애티튜드 시대는 이제 종결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지만 아직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남아 있었으니……

3.8. 애티튜드의 마지막 황혼


레슬매니아 19, 더 락과 오스틴의 경기 프로모. 배경음악은 림프 비즈킷의 Crack Addict.

WWE에서 무단 탈단을 한 이후 스티브 오스틴은 아내인 데브라 마샬 폭행 사건 등으로 이혼을 겪으며 개인적으로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집에서만 지내던 스티브 오스틴에게, 2002년 10월 경 하나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를 쓴 사람은 절친했던 짐 로스였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내 도움을 원한다면, 나는 여기 기다리고 있겠네."

짐 로스의 편지를 받은 스티브 오스틴은 즉시 전화를 걸었고, 장시간 통화를 나누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 커리어를,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아."

이후 짐 로스는 오스틴에게 빈스를 만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고, 오스틴이 그럴 생각이 있다고 말하자 얼마 후 휴스턴의 호텔에서 빈스와 오스틴은 서로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 무렵 이미 오스틴은 이번에 치룰 경기를 '마지막 경기' 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빈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오스틴은 자신의 마지막 상대로 더 락을 선택했다. 오랜 라이벌인 더 락에게 완패하고 물러나는것만이 최고의 마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 더 락은 몇차례 영화 촬영을 하며 자리를 비우면서 팬들에게 야유가 나오고 있던 참이었는데, 되려 이것을 기믹으로 사용해서 '거만한 헐리우드 스타' 이미지를 내세운 악역 노릇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 당시 WWE의 계획으로는 락이 레슬매니아 이후 골드버그와 대립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골드버그와의 대립 이전에 최대한 락을 강한 이미지로 만들 필요가 있었고 오스틴을 꺾는다면 더할 나위 없었기에 이 계획을 승인했다.

이렇게 되어 락과 오스틴의 경기가 WWE 레슬매니아 XIX에서 잡히게 되었다. 벌써 레슬매니아에서만 세 번째 펼쳐지는 양대 아이콘의 격전이었다. 이때까지 락은 같은 시대의 라이벌인 오스틴에게 단 한번도 일 대 일로 이겨본적이 없었기 때문에,[120] 이것은 락에게도 꽤나 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레슬러로서의 수명이 끝난 상태인 오스틴의 몸 상태였다. 오스틴은 락과의 경기가 잡힌 이후 체육관에서 몸을 만들며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가장 큰 목 부상을 비롯해서 등, 무릎 등 사방에 부상을 달고 살았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몸 상태가 최악이었다. 더구나 지나친 카페인, 강정제 섭취 후에 훈련을 하면서 심장에도 큰 무리가 오고 있었다. 여기에 간헐성 경련 증세로 다리가 경련으로 뒤틀릴 지경이었다고 한다.

결국 오스틴은 경기 바로 전날 하마터면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었던 위급한 상황이 되어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야만 했다. 이날 밤을 병원에서 보낸 오스틴은 겨우 상태가 호전되어 경기를 치루러 올 수 있었다.

이후 치뤄진 경기에서 오스틴은 경기 운영의 상당 부분을 락에게 맡겼고, 서로의 피니쉬 무브를 연달아 먹이며 경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경기의 절정 부분에서 스티브 오스틴은 피플스 엘보우를 맞은 후 락바텀을 맞고도 킥아웃을 했다. 그러자 락은 또다시 락바텀을 작렬시켰지만, 오스틴은 또다시 킥아웃을 했다.


그러자 락은 마지막으로 오스틴에게 세번째의 락바텀을 날렸고, 이번만큼은 오스틴도 킥아웃을 하지 못했다. 애티튜드 시대를 이끈 영웅이자, WWF를 구원한 인물이며 한 시대의 지배자였던 오스틴의 마지막 경기는 이렇게 끝났다. 경기가 끝난 후, 락은 오스틴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난 자네를 사랑해."

"나도 마찬가지야."

오스틴이 그렇게 대꾸하자 락은 또 한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게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넌 모를거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레슬매니아 다음날인 3월 31일 RAW에서 더 락은 세그먼트를 통해 이 업계에서 이름 난 선수는 모조리 꺾어보았다면서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 거만을 떨었는데, 그 순간 WCW의 상징과도 같았던 골드버그가 등장했다. 이후 두 사람은 짦은 대립을 했지만 백래쉬에서 골드버그는 더 락을 꺾었고, 이후 더 락은 영화 배우로 성공을 하기위해 떠났다. 이전까지의 단발성 이탈이 아닌, 사실상의 은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로써, 이 시대를 지배했던 또다른 위대한 아이콘, 피플스 챔피언도 WWE를 떠났다. 한 시대를 이룩했던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두 레슬러가 모두 떠남으로써 그 시대도 마무리가 된 것이다.


시간이 흘러 2009년 1월 12일, WWE는 스티브 오스틴의 명예의 전당 헌액을 발표했다. 명예로운 일이긴 하지만 사실상의 공식 은퇴였기 때문에 어찌 보면 슬픈 광경이었다. 자신의 고향인 텍사스에서 펼쳐진 헌액식에서 WWE 회장 빈스 맥맨은 자신이 직접 나서 "WWE 역사상 가장 터프한 SOB(개자식)" 을 소개했고, 오스틴은 선수 시절에는 절대로 입지 않았을 양복을 입고 나와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다음 날, 레슬매니아 25 당일, 명예의 전당 입성자의 자격으로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데 그것 말고 아무런 역할도 맡지 못했기에 팬들이 굉장히 아쉬워한 상태였으나...


인사가 끝나자마자 수트가 아닌 Austin 3:16 티셔츠를 입고 ATV를 타고 링으로 폭풍질주, 7만 관중 앞에서 맥주쇼를 선보였다. 이 때 자신의 베프였던 짐 로스와도 함께 잔을 나누었다. 짐 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이야말로, 진정한 오스틴 시대(Austin Era)의 마지막 입니다."

이렇게, 프로레슬러로서 스티브 오스틴의 시대는 모두 마무리 되었다.


"Finally! The Rock has come back!"
"……Home."

그리고 2011년 2월 14일, 더 락이 무려 7년만에 WWE에 컴백했다. 이후 더 락은 미즈, CM 펑크, 무엇보다 존 시나와 대립을 가지며 레슬매니아의 메인이벤트를 장식했다. 이 기간 동안 락의 활약에 대하여 옛 스타의 귀환이라며 환영할수도, 알바 주제에 레슬매니아의 메인이벤트를 장식했다며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확실한 부분은 락의 출현이 WWE의 상업적인 부분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락이 출현한 레슬매니아 27~29가 전부 백만가구의 구매율을 돌파하며 역사상 최고흥행을 달성했다. 이는 WWE 네트워크 출범 준비 등 적자로 고생하고 있는 WWE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레슬매니아 30에서는 헐크 호건, 스티브 오스틴, 더 락이라는 아이콘이 모이며 역사상 최고의 오프닝 세그먼트를 장식했다. 모든 업적을 이룬 이 세 선수가 한데 모여 있는 광경만 보아도 전율이 돌았다는것이 레슬링 팬들의 반응.

4. 평가

애티튜드 시대는 1980년 대, 이른바 골든 에이지라고 불리우는 시대와 함께 프로레슬링 계의 황금기로 불리고 있다. 또한 애티튜드 시대는 비교적 최근이니 만큼 전자 이상으로 매니아 팬들에게는 가히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시대다. WCW와 WWF의 경쟁이 극에 달하면서 메이저 레슬링 업계의 시청자를 사로잡기 위한 부분이 최고조에 달했고, 이는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말도 안되는 수준이 시청률에서 드러나고 있다.

다만 생각해보아햘 점은, 레슬링 팬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애티튜드 시대가 기실 '레슬링의 본질' 이라는 부분에서 보자면 꽤나 차이가 있었다는 부분이다. '레슬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경기력의 정점' 을 보여준 단체라고 할 수 있으며 별 다섯개 경기가 정말 수두룩하게 나온 90년대의 전일본 프로레슬링이나, 세계에서 난다긴다하는 인디 계의 실력자들이 모여서 온갖 명경기를 만들어낸 ROH 같은 단체를 생각해보자. 이 단체들은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WWE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수준이다.

어떻게 보면 애티튜드는 프로레슬링의 본질적인 요소와는 가장 멀었던 시기의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애티튜드 시대에 큰 영향을 미친 빈스 루소만 하더라도 프로레슬러를 레슬러 라고 생각하지 않고 연기자 라고 부르며, '웃기고 재밌고 자극적인 쇼만 보여주면 그만이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WCW에서는 그러한 발상이 극단적으로 치달아 독이 되었지만 말이다.[121]

그만큼 애티튜드 시대에는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요소가 많이 있었다. 애티튜드 시대의 핵심적 선수였던 믹 폴리조차 "기억이란 미화되기 마련이다. 애티튜드 시대에는 지나친 부분이 있었다." 고 말했을 정도.

그러나 애티튜드 시대가 그저 싸구려 폭력과 포르노에 가까운 섹스어필적 요소로만 가득차거나[122], 오직 그것 때문에 성공했던 시기는 아니다. 단체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한 선수 수급으로 인해 로스터는 풍부해졌고, 이로 인해 수 많은 명경기가 탄생했으며 태그팀 디비전의 치열하고 참신한 시도는 해당 디비전의 급을 올려놓았으며, 과거의 북미 메이저 단체에서는 선호되지 않았을 크리스 벤와, 크리스 제리코, 에디 게레로 같은 선수들도 팬들의 지지를 받으며 자리를 잡았다. 한번의 방송에서도 온갖 도발적 요소로 가득찼을 정도로 디바들의 섹스어필이 극에 달했을 시기가 애티튜드 시기지만, 역으로 '눈요깃감' 의 수준을 벗어나 실제적인 디바들의 경기력에서도 눈부신 발전이 이루어지던 시기가 애티튜드 시기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와 레슬링적 요소가 모두 WWE 내에서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궁극적으로 가장 큰 원동력은 WCW라는 WWE 역사상 가장 큰 업계 라이벌의 등장으로 인한 무한 경쟁의 긍정적 효과지만, WWE의 대약진을 가능하게 해준 동력은 엄청난 카리스마로 시대를 제패했던 두 명의 슈퍼스타,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애티튜드 시대의 몰락은 WWE 입장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로, 이 시대의 핵심적인 인물이었던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이 모두 이탈했으며, 극에 달했던 레슬링 붐 자체도 아이러니하게도 라이벌 WCW를 먹어치운 뒤 완전승리라고 자부하던 그 시점부터 꺼져가고 있었다. 차세대 아이콘으로 키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던 브록 레스너는 이탈 했고, 랜디 오턴 역시 기대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만다. 과도기가 길어지다보니 트리플 H나 존 시나 같은 몇몇 레슬러들의 장기 독재가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게 되었다. 과도기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에디 게레로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의 사망과 약물 관련 문제, 크리스 벤와의 잔혹사건 등이 터지면서 WWE의 대외적인 이미지도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2008년 7월부터 PG 등급이 시행되며 소위 말하는 '애티튜드적' 인 요소와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져가고 있다.

WWE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트리플 H는 애티튜드 시기를 일시적인 방향으로 취급하는 듯. 1980년대도 황금기였고 애티튜드 시기도 황금기 였지만 두 시기의 지향점은 완벽하게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꼭 자극적이고 폭력적인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뜻으로 보인다.[123]

사실 애티튜드 시대는 WCW라는 라이벌을 이기기 위한 WWF의 발악이 기적을 이루어낸 시절이라고 볼수 있다. 고집이 강한 빈스 맥마흔이 몇번이나 자기 결정을 꺽었다. 대표적으로 빈스는 오스틴을 탑 가이로 밀고싶지 않았다. 오스틴이 빈스에게 직접 찾아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따지며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이란 캐릭터를 지켜냈고, 그것이 오스틴이란 아이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또한 더 락을 밀고싶어하긴 했으나 락키 마이비아 캐릭터로서 밀려고 했다. 애티튜드 시대의 아이콘이 된 두 인물이 하마터면 빈스의 고집으로 역사속으로 파묻힐 뻔 한것이다. 이때 WCW를 이기기 위해 고집을 꺽은 빈스 덕분에 애티튜드 시대에는 다양한 캐릭터와 자극적인 요소가 넘쳐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요소들은 빈스 맥맨의 취향과는 반대로, 그는 블러드잡을 혐오했으며 디바들에게 위험하다며 경기를 갖게 하는 것도 싫어했다. 그리고 고집을 꺽은 빈스는 승리를 얻게 된다.

기실 매니아 팬들에게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받는 PG 등급이 시행되기 이전의 WWE도 계속해서 시청률이 감소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124], 시청등급이 어떠한가 하는 부분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더 락이나 스티브 오스틴에 버금갈만한 스타를 발굴하는것 일 수도 있다. 락과 오스틴이 없다고 친다면, 애티튜드 시대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WWE는 존 시나라는 새로운 아이콘을 발굴하는데 성공했지만, 랜디 오턴이나 제프 하디, CM 펑크 등 가능성 있어 보이던 다른 선수들이 모두 여러가지 문제로 그러한 위치에 올라오지 못하면서 장장 10년이 넘게 존 시나 한 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말하자면 로스터의 전체적인 수준 자체가 얆아지고 있는 것으로, 어느 시점부터 WWE는 이 문제 때문에 브랜드 분리도 포기한 상태다.[125] 앞으로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메인급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주목되는 부분.[126] 정작 빈스는 인재들이 있음에도 특정 선수들에만 꽂혀서 전혀 키울 생각을 않고 있어서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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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곡은 1996년 발매된 WWF OST WWF 풀메탈의 오프닝 곡으로 사보타주의 보컬 존 올리바,앤스랙스의 기타리스트 스캇 이언등이 참여한 밴드 슬램 잼이 불렀다.
  • [2] 스톤콜드 스티브 오스틴의 최고의 명대사인 3:16이 나온 바로 그 PPV이다.
  • [3] 프로레슬링 팬들은 알겠지만 WWF의 성명권 사용 문제로 인해 WWE로 이름을 바꿨을 때이다.
  • [4] 에티튜드 시대의 종말은 WWE 레슬매니아 XIX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레매 19를 기점으로 시대의 아이콘이던 오스틴은 은퇴하였고, 더 락은 영화배우가 되어 드문드문 나왔다.
  • [5] 스테로이드 파동 이후 1980년대의 프로레슬링 붐이 죽은 상태에서, 브렛 하트, 숀 마이클스, 디젤, 요코즈나, 레이저 라몬, 그리고 언더테이커 등의 신진 선수들이 탄생하여 큰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 [6] 이후 복귀하긴 했으나 흑역사에 가까웠다.
  • [7] 당시 호건은 1년 동안 WWF를 떠나 TV쇼 촬영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WCW가 거액으로 유혹하자 WCW에서 일하게 되었다.
  • [8] 레슬링 옵저버 선정 1994년 최우수 경기이자 별 다섯개 경기이도 하다. TV로 방영된 최초의 래더 매치다.
  • [9] 사실 이전부터 린다 맥마흔이나 각본진들과 교류가 있었다고 한다.
  • [10] 대표적으로 발 비너스의 성기 절단 사건.
  • [11] 1995년 우승은 1번으로 나와 우승했다.
  • [12] 레슬링 옵저버 선정 1996년 올해의 경기 5위 뭐 5위밖에 안돼?
  • [13] 이 경기에서 그 유명한 와이엇 로프를 타고 나타난 등장 장면이 나왔다.
  • [14] 다만, 트리플 H는 훗날 이에 대해 빈스가 분노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커튼 콜 사건 항목 참고) 어쨌든, 트리플 H는 이 안습한 시절을 묵묵히 견디면서 자신의 입지를 키워나갔다.
  • [15] 이때 상황을 정리해보면 스캇 홀과 케빈 내쉬만이 등장하자 인터뷰를 맡은 '민 진' 오클런드가 "언급한 '제 3의 멤버'는 어디에 있는가?"라 질문하자 "때가 되면 알것이고 지금은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한 뒤 링으로 들어서고 후에 스팅마초맨이 링으로 등장했는데 이들과 한 조를 이뤄야 할 스 루거가 링으로 오던 중 누군가에 의해 습격당해 경기를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 [16] 이 시기를 기점으로 WWE는 당시 시청 등급(PG 등급)에 결코 어울리지 않는 유혈이 낭자하는 과격하고 잔혹한 액션과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거친 마이크웤 그리고 노골적인 섹스어필을 선보인다. 예를 들면 숀 마이클스와 트리플 H가 카메라 앞에서 대놓고 바지를 벗어 엉덩이를 까버린 일화가 대표적이다. 애초에 그들이 속한 스테이블인 D-Generation X 가 타락한 세대를 뜻했고 이는 WWE가 본격적인 성인취향의 애티튜드 노선을 밀고 나가기로 했던 의미이기도 했다. 그래서 중요한 분기점인 이 1997년을 애티튜드 시대의 진정한 시작으로 꼽는 사람들도 많은 편.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몬트리올 스크류잡 이후부터 시작으로 여기는 의견 또한 많다.
  • [17] 이후 브록 레스너, 바비 래쉴리, 쉐이머스라는 유례없는 푸쉬를 받는 선수들이 등장한다.
  • [18] 이 당시까지만 해도 락은 락키 죽어라 라는 팬들의 말까지 들어야 했다
  • [19] 원문 I am The best There is, The best There was, and The best There Ever Will Be!!!
  • [20] WWE 역사상 별점 다섯개 경기는 오직 다섯 개 뿐이다. 이 경기 외에는 앞서 서술한 사다리 경기,브렛 하트 VS 오웬 하트, 언더테이커 VS 숀 마이클스의 헬인어셀 경기, 존 시나CM 펑크의 2011 머니 인 더 뱅크에서의 경기
  • [21] 이는 또한 프로레슬링 사상 첫 더블 턴(Double Turn, 한 경기나 세그먼트에서 선역과 악역이 동시에 서로의 역할을 교대하는 것)이다.
  • [22]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서로 팀이 되어 태그팀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으며, 오스틴이 WWF에서 얻은 첫 타이틀이 바로 태그팀 타이틀이었다.
  • [23] 이 무렵 숀 마이클스는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WCW로 보내달라고 빈스에게 사정을 했지만, 빈스는 WCW는 마이클스 같은 선수를 활용할 줄 모른다며 마이클스를 잔류시켰고 결과적으로 이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 [24] 그러나 이때부터 WCW의 유명인사 집착증이 발생했다.
  • [25] 그리고 숀 마이클스와 언더테이커간의 대립의 시발점이 된다.
  • [26] 이로써 1997년은 WWE 역사상 94년도와 더불어 유이하게 별 다섯개 경기가 두 번 이상 나온 해가 되었다.
  • [27] 여기에는 복귀 이후 부상을 입어도 WWF는 일절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무리한 계약조건까지 걸려 있었다.
  • [28] 빈스가 이 같은 결정을 한 계기 중 하나가 WWF의 디바였던 메두사(프로레슬러)의 WCW의 이적이었다. WWF 위민스 타이틀을 보유한채 1995년 WCW로 이적한 메두사는 자신의 WCW 방송데뷔에서 WWF 위민스 타이틀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만행을 저질러버렸다. 빈스는 이같은 행위를 회사와 타이틀 가치하락이라고 여겼고 브렛의 경우도 이와 같은 경우라 생각하고 반대한 것이다. 훗날 메두사는 그 일은 에릭비숍이 시켜서 한짓이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계약해지가 될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 밝혓다. 현재도 WWF 위민스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29] 대립 상대가 숀이 아니라 오스틴이라면 얼마든지 져주고 타이틀을 줄수있다고 했으나 당시 오스틴의 상대는 브렛의 동생 오웬 하트였고 대립이 현재진행형으로 격렬히 진행되고 있어서 갑자기 상대 브렛으로 바꾸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졌다. 게다가 오스틴은 불과 4개월전 섬머 슬램에서 오웬에게 파일 드라이버로 입은 목부상이 완치되지 않아서 바로 메인 타이틀전으로 가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 [30] 당시 브렛에게는 수뇌부가 선수에게 제시하는 각본이 탐탁치 않으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의견을 조율해서 변경을 할 수 있는 각본 조정 권한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는 브렛의 정당한 항변이었다. 그러나 얄궂게도 빈스가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강행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브렛이 각본 조정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본인이 의도하는 대로 쉽사리 일이 풀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기인했다.
  • [31] 베이더는 경기전에 브렛 하트에게 "빈스는 이런 상황에서 사람을 엿 먹이는데 도가 텃으니 조심하라." 고 경고했다고 하며, 같은 스테이블로 활동하던 브리티쉬 불독 역시 주의하라고 충고를 했다고.
  • [32] 사실 브렛은 이러한 충고 역시 귀담아들었으나, 시합 자체의 완성도를 위해 사이가 좋지않은 숀 마이클스, 그리고 절친했던 심판 얼 헤브너등과 계속 의견을 맞추어가는 도중이었던지라 설마했다고.
  • [33] 선수들 노동조합 조합장님 되시는 백스테이지의 거물 언더테이커는 직접 빈스의 멱살을 잡고 브렛에게 끌고 오기까지 했다.
  • [34] 결성 당시에는 루드도 있었지만 몬트리올 스크류잡에 대한 불만으로 WCW로 가는 바람에 비교적 묻혔다.
  • [35] 아이디어를 준건 레이븐.
  • [36] 스티브 오스틴은 이 해 WWE 역사상 가장 많은 상품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존 시나 조차 이 기록을 넘지는 못했다.# 존 시나는 2008년의 기록으로 2위까지는 올랐다.
  • [37] 더불어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98년도 루 테즈/릭 플레어 어워드(올해의 선수)를 수상하였다.
  • [38] 믹 폴리는 맨카인드, 캑터스잭, 듀드러브 3가지 기믹으로 모두 출전했다. 다시 말해 혼자서 세 번이나 나왔다는 소리(...). 한편 마이크 타이슨도 VIP석에서 오스틴을 응원한다는 설정으로 출현했다.
  • [39] 레이븐은 전날 챔피언을 획득했기 때문에, 하루만에 타이틀을 잃게 되었다.
  • [40] 애티튜드 시대의 문을 연 숀 마이클스는 이 부상 때문에 2002년에 복귀할때까지 선수로서는 은퇴하여 애티튜드의 전열에서 이탈했다.
  • [41] 이 당시 숀 마이클스의 상태가 정말 좋기 않았기 때문에, 오스틴은 경기가 정말 열릴지 긴가민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끝내 경기가 열리는것을 보고, 비즈니스의 비정함에 대해서 놀랐다고.
  • [42] 한편, 90년대 숀 마이클스의 화려한 전적 때문에 혹시 이 경기에서도 숀 마이클스가 오스틴을 상대로 실제로 술수를 부릴지 모른다고 생각한 언더테이커는, 숀 마이클스를 찾아가서 "혹시 브렛 하트와의 경기 때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재미 없을 줄 아는게 좋다." 는 식의 경고를 했고, 경기는 특별힌 사건 없이 끝나게 되었다.
  • [43] 이 경기 전 신시내티 레즈의 전설적인 빅 레드 머신 타선을 이끌었던 피트 로즈가 출현해 개최지였던 보스턴을 깠다. 결말은...케인에게 툼스톤 맞고 실려가면서 OUT 이후로 3년 연속으로 케인과 얽혀서 툼스톤과 리키쉬의 스팅크 페이스를 맞는등 온갖 고생을 다하게 된다.
  • [44] 엑스팍은 이전에 94년에 1-2-3 키드란 이름으로 등장하여 태그팀 타이틀을 얻기도 했고, 클릭에도 가입하여 트리플 H등과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nWo의 초창기에도 식스(Syxx)란 이름으로 활동하였다가 에릭 비숍과의 관계 악화로 DX에 가입하게 된것.
  • [45] 사실 이 정도 매치업을 위클리쇼에 배치한 WCW의 병크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 [46] 이 경기에서 방송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언더테이커의 경악하는 얼굴이 카메라에 잡혔다. 2013년 발매된 For All Mankind - The Life and Career of Mick Foley에 수록된 장면인데 믹 폴리가 실려나가고 언더테이커는 셀에서 내려오던 중 자신을 뜯어말리는(관용구적인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을 뿌리치고 링으로 복귀하는 믹 폴리를 보고 지은 장면이다. 아메리칸 배드 애스 기믹을 제외하면 웃는 모습은 커녕, 표정 변화조차 거의 없던 언더테이커의 기믹이 무너져내리며 제 4의 벽이 파괴된 순간.
  • [47] 더불어 이 자서전은 본인이 이 경기를 기억을 못해 경기 영상을 보고 작성했다. 언더테이커는 믹 폴리를 철장 밑으로 던질때 '시간이 멈췄다'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 [48] 쵸크 슬램을 당하고 셀 구조물이 부러지는 바람에 믹 폴리는 링 바닥에 직격으로 쳐박히게 된다. 언더테이커에 따르면 원래 그 구조물은 부러지지 않았어야 됬다고. 즉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 이후 테이커는 믹 폴리에게 '제발 그냥 누워 있어라'라고 했다.
  • [49] 언더테이커가 믹 폴리에게 철장 위에서 구사한 쵸크 슬램은 사실 두 사람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그 순간을 보면 믹 폴리가 접수를 못 해 발이 거의 뜨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제대로 들어갔다면 정말로 믹 폴리는 죽었을 거라고.
  • [50] 믹 폴리는 언더테이커의 노련함이 없었다면, 철장 위에서 쵸크슬램을 당했을때 경기는 중단되어서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 [51] 빈스 맥맨은 말을 듣지 않는 언더테이커와 케인에게 뻐큐를 날리다 걸려 철제계단에 발목을 맞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 [52] 이 때 겁을 먹은 빈스는 바지에 실례(...)를 해버리고 오스틴은 "새로운 티셔츠를 발매해야겠어. 맥맨 3장16절에 쓰여있길, 난 바지에 실례했어라고 말이야."라는 멘트와 함께 스터너를 날려버렸다.
  • [53] 사실상 1년전 몬트리올 스크류잡의 셀프 패러디, 더 웃긴건 WCW에서도 스크류잡의 패러디를 했는데 이때는 브렛이 상대(드버그)를 엿먹이는 입장이었다. 한풀이 다만 이 경기가 바로 브렛의 은퇴의 계기가 된 그 슈퍼킥이 나온 경기이기도 했다.
  • [54] 다만 케빈 내쉬의 이 발언은 핑거 포크 오브 둠이라는 병크를 변호하기 위한 발언이라는 점을 생각하긴 해야 한다.
  • [55] 전기충격기로 골드버그를 지졌다.
  • [56] 이전부터 비슷한 짓을 몇번 했긴했다.
  • [57] 더불어 nWo 헐리우드와 nWo 울프팩의 대립의 종결. 장난하냐
  • [58] WCW에서 스포일러를 날렸던 아나운서 토니 쉬보니는, 나중에 울면서 믹 폴리에게, 이 일은 에릭 비숍이 시켰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59] 1999년 2월 8일은 Raw가 결방 되었기 때문에 예외. 나이트로는 결방 버프로 0.7포인트의 시청률이 올랐으나 다음주 Raw가 재개되자 3점대로 바루 추락했다.
  • [60] 고기 때리는 부분은 록키에서 나온 장면이다.
  • [61] 이때 관중석을 보면 거의 모든 관중들이 빈스에게 뻐큐를 날리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
  • [62] 원래라면 맨카인드에게 심판 권한이 없지만 당일 레슬매니아에서 맨카인드는 빅 쇼와 이 경기의 심판 자격을 놓고 경기를 해서 승리했기 때문에 심판 자격이 있었다. 단지 빅 쇼와 벌인 경기가 보일러 실 경기다보니 너무 과격한 나머지 부상이 심해서 처음부터 나오지 못하고 빈스 맥맨이 멋대로 나온 것이다.
  • [63] 사실 오웬 하트는 80년대 말 블루 블레이저라는 이름의 가면 레슬러로 WWE에 등장한 적이 있는데 이즈음(1999년 오버 더 에지 시점)에는 본명인 오웬 하트로 등장하면서 과거 사용했던 블루 블레이저 캐릭터를 가면 레슬러라는 점을 이용해서 바꿔치기를 하는 등 교활하게 사용하고 있었고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중이었다. 즉, 이 당시 오웬 하트는 어디까지나 본명으로 활동 중이었지만 과거 캐릭터인 블루 블레이저도 사용하고 있었던 것.
  • [64] 그리고 WCW에서 주목을 받지못한 선수들에게 WWF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게 된다.
  • [65] Unholy Alliance. 빅 쇼, 언더테이커 태그팀 시절 사용하던 테마곡 제목.
  • [66] 그럴 만도 한게 빅 쇼와 언더테이커라는 두 거구들이 태그팀을 맺었으니...
  • [67] 순간 시청률이 아닌 Raw 자체의 시청률은 1999년 5월 10일의 8.09%가 최고.
  • [68] 그리고 이시기 언더테이커가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1년뒤 대 반전을 몰고오게 되는데...
  • [69] 당시 루소는 WWF측과 계약도 안된 상태였다
  • [70] WWE 50의 월요일 밤의 전쟁: The End 챕터에서
  • [71] 골더스트의 전 아내
  • [72] 오스틴의 몸상태가 경기를 치룰 수 없는 상태라 이런 각본이 나오게 되었다.
  • [73] 트리플 H를 남편으로 맞이하겠냐는 질문에 트리플 H는 스테파니의 목소리를 흉내내서 Yes I do라고 말해버린다. 위기탈출 넘버원
  • [74] 이 당시 트리플 H의 실제 여자친구는 바로 차이나였다. 그런데 부부연기를 하는동안 스테파니가 트리플 H에게 반해 고백해버리고 마침내 트리플 H는 WWE의 역사를 바꾸게 될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2003년 10월 두 사람은 정말로 결혼하게 된다.
  • [75] 믹 폴리의 애드립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압정이 아닌 일반 매트에서 페디그리를 맞고 지는겄이었는데 갑자기 킥 아웃해서 트리플 H가 놀랬다고.
  • [76] 당시 WCW의 부커였던 케빈 설리반이 크리스 벤와와 사이가 나빴다는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벤와가 케빈 설리번의 마누라를 뺏다시피 해서 결혼을 해버렸다.
  • [77] 하디 보이즈는 실제로 WWF 활동 초창기에 더들리 보이즈의 태그팀 피니쉬 무브 3D와 비슷한 기술을 쓰긴 했다. 버버레이가 한성깔하는 성격이기도 했지만 다른 레슬러의 피니쉬 무브를 무단으로 베끼는 건 프로레슬링에서 결례다. 그런데 하디 보이즈가 무단으로 베낀 건 아니고, 당시 하디 보이즈의 매니저 역할을 맡았던 마이클 헤이즈의 권유로 몇 차례 쓴 것이었다. 맷 하디가 이거 더들리 보이즈 거 아니냐고 긴가민가하면서 묻자, 마이클 헤이즈는 '내가 새로 고안해낸 건데 뭔 소리야? 잔말 말고 쓰기나 해.'하고 맷 하디를 다그쳤다고.
  • [78] 24/7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타이틀의 변동이 너무 잦았고, 2001년부터 세그먼트 형식으로 하루에 타이틀이 3-4명을 왔다갔다 하는 등 타이틀 가치가 폭락, 2002년 8월 타미 드리머를 마지막으로 폐지 하게 되었다.
  • [79] 이후 A-트레인, 텐사이 등의 이름으로 활동한다.
  • [80] 트리플 H, 믹 폴리, 빅 쇼, 더 락의 대결이었다. 거기다 각각의 후원자가 스테파니, 린다, 쉐인, 빈스 맥맨인지라 그야말로 콩가루가문의 대결이 끝까지 간 상황.
  • [81] 관중들이 쓰레기를 던지는등 적극적으로 야유에 나섰다.
  • [82] 본래는 E&C와 하디 보이즈의 대결로 펼쳐질 예정이었지만, 이후 삼자간 대결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 [83] 특히 제프 하디는 제일 큰 사다리에서 테이블 위로 버버레이 더들리에게 스완턴 밤을 날렸다. 근데 조금 위치가 안맞아 본인의 엉덩이에 충격이 다 가버렸다.
  • [84] 사실 본래 승자는 하디 보이즈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빈스가 에지와 크리스챤의 악역 소화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 그 둘을 태그팀으로 좀 더 유지시키기 위해 승자로 바꾸었다.
  • [85] 본래는 디본이 떨어지고 하디 보이즈가 승리하는것으로 계획되었으나, 빈스의 결정으로 에지와 크리스찬이 승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 [86] 사실 디본은 고소공포증 환자라, 이 장면을 찍는것을 매우 두려워했으나 눈 딱 감고 했다.
  • [87] 이 상황에 뜬금포를 맞은게 무토 케이지. 에릭 비숍의 간곡한 부탁에 일본에서의 전성기를 뒤로 하고 다시 한번 그레이트 무타로서 WCW로 등장했는데 도착하자마자 에릭 비숍은 짤렸고, 주위 각본진들은 "어? 님 왜옴?"정도였다고 하며 각본도 영 좋지않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 [88] 사실 리키쉬를 띄워주기 위한 각본이었으나 별 신통치않은 반응이 나오자 결국 대립 대상이 트리플 H로 변경된 것.
  • [89] 이 각본은 E&C, 하디 보이즈가 서로 엄청 친했기 때문에 가능한 각본이었다. 하지만 5년뒤 이들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 [90] 태그 팀 전성기를 이끈 이 넷은 남성지향적인 애티튜드 시대에서 잘 생긴 외모와 날렵하고 준수한 경기력과 연기력으로 여성 팬, 어린이 팬들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경기력은 서로의 케미스트리가 훌륭하기에 더욱 좋아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티튜드 시대에는 위클리쇼에서 당장 하디 보이즈 테마곡이 나오면 못 듣던 여자 환호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로스 콘퀴스타도스 변장때도 하디 보이즈가 가면을 벗자마자 여성 환호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 [91] 그래도 ECW에서 WCW 소속의 마이크 어썸과 WWF에 가있던 태즈를 잠시 복귀 시켜 WCW vs WWF라는 기묘한 경기를 치렀고, 결국 ECW팬들의 지지를 받던 태즈가 타이틀을 다시 가져왔었다.
  • [92] 케인은 이 경기에서 한경기 최다인원 제거 기록을 세웠다. 2014년 로만 레인즈에게 깨지지만.
  • [93] 딘 말렝코는 선수들 사이에서는 역대 최고의 테크니션 레슬러를 꼽으면 이름이 언급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 [94] 사실 이 각본은 레슬매니아까지 이어질 예정이었으나 하디 보이즈와 딘 말렝코가 속해있던 레디컬즈의 사이가 껄끄러워 여기서 끝나게 되었다.
  • [95] 허나 그 직후 오스틴에게 스터너를 맞고 뻗었다.
  • [96] 제프 하디는 작년에 이어 이 해에도 사다리 위에서 테이블위로 스완턴 밤을 날렸고, 거기다 사다리를 연달아 설치하여 꼭대기를 걸어가며 타이틀을 잡으려 했으나 이 액션은 실패했다. 그 이외에 타이틀에 매달린 제프 하디에게 에지는 사다리 위에서 뛰어 스피어를 날렸으며, 리타 역시 탑 로프 허리케인 러너를 작렬하는등 모든 선수들이 그야말로 TLC에서 보여줄수 있는 모든것을 보여주었다.
  • [97] 훗날 2014년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리타는 TLC에 참여한 모든 선수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 [98] 트리쉬 본인은 자신이 개처럼 짖는 굴욕을 당한 후 빈스의 뺨을 때린 이 시기를, WWF 내에서 디바들의 위상이 스토리상으로 높아진 전환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 [99] 이 경기는 멜쳐로부터 별 4개 반을 받고, 레슬링 옵저버 선정 2001년 올해의 경기 7위에 선정된다.
  • [100] 명목상으로 빈스가 무기한출장정지처분을 내렸다.
  • [101] 바로 그 순간 팬들의 엄청난 야유가 쏟아지고 오스틴은 이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해야했다.
  • [102] 인터뷰 말미에 짐 로스는 부상당하던 오스틴을 위로한 사람은 자신이었으며 WWF에서 오스틴의 결혼식에 초대받은 이는 자신과 자신의 부인 뿐이었지만 지금 자신은 베프를 잃었다며 그에게 돌직구를 날린다. 마침내 오스틴은 짐 로스의 모자와 안경을 쳐내며 흥분해버리고 이에 짐 로스가 인터뷰한게 실수였고 이제 끝났다며 돌아서자 공격해버린다.
  • [103] 오스틴은 이때의 기억 때문에 존 시나의 악역 전환 문제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 [104] 이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선정 2001년 올해의 경기 2위에 선정된다.
  • [105] 이때 WWF 무리를 이끌던 브래드쇼는 진짜로 무시무시하게 척 팔럼보와 션 오헤어를 팼다고 한다. 인베이전 각본이 진행되면서 WWF 소속 선수들의 사기도 뒤숭숭 해졌었다고.
  • [106]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그리고 버프 배그웰은 이후 WWF 출연을 접었다. 2014년 무렵에는 포르노 제작 회사와 계약을 맺었다.
  • [107] 이들은 모두 ECW 출신이었다.
  • [108] 당시 미국에서는 9.11 테러가 벌어진 여파로 금메달 영웅이어던 커트 앵글의 이 타이틀 획득은 상당히 숙연한 광경이었다. 다음 페이퍼뷰인 노머시 2001의 포스터는 성조기와 커트 앵글의 조합이었는데 아무래도 테러로 인한 미국 내 분위기를 고려한 포스터였을 것이다.
  • [109] 사건의 발단은 12월 3일 RAW에서 시작되었는데 더 락은 이 날 트리쉬와 팀을 이루어 빈스 & 앵글 팀을 상대하게 예정되 있었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락이 이기면 빈스가 락의 엉덩이에, 락이 지면 락이 빈스의 엉덩이에 키스한다.라는 초대박 조항이 붙게 되는데 경기막판 제리코에게 라이언 설트를 맞은 락은 패배 위기에 직면하지만 간신히 킥아웃한다. 그리고 오스틴의 도움으로 앵글에게 락 바텀을 날리고 승리한다.
  • [110] 이 날 세그먼트를 좀 더 얘기한다면 빈스는 락에게 "나 같은 억만장자가 왜 키스함? 난 여기있는 거 다 살 수 있음ㅋ"이라며 거부한다. 그런데 갑자기 오스틴이 스크린에 나타나 "커트 앵글 믿고 깝치나본데 그 쓰레기는 지금 내 뒤에서 걷어차이고 있음"이라며 앵글을 두들겨패버린다. 멘붕 온 빈스는 꼼짝없이 무릎을 꿇고 락의 엉덩이에 키스를 하게 됐는데, 갑자기 락이 짐 로스의 엉덩이에 키스하라고 하는 듯 했으나...다시 트리쉬를 불러 뭐? 트리쉬의 엉덩이에 키스하라라고 한다. 발정난 이에 빈스는 싱글벙글 웃으며 무릎으로 기어가다가 락에게 제지당했다. 그리고 락은 마지막으로 리키쉬를 불러 그의 엉덩이에 빈스를 파묻어버렸다. 회장님의 잡질에 경의를
  • [111] 본래 로얄럼블에서 컴백할 계획이었으나 이것이 유출되자 1월 7일 RAW를 통해 복귀하는 것으로 각본이 수정되었다.
  • [112] 이는 브록 레스너가 스맥다운과 전속 계약을 함으로써 깨지게 된다.
  • [113] 지금에 와서는 WWE 내부에서도 이때 레스너에게 너무 급푸쉬를 줬다고 인정할만큼 파격적인 푸쉬였는데 어찌보면 WCW가 일반 방송인 Nitro에서 헐크 호건을 골드버그의 먹잇감으로 던져준거보다 더 큰 푸쉬를 받은것이다.
  • [114] 양측의 의견 다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오스틴은 한때 회사의 대표격이었던 자신이 빅푸쉬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일개 신인 레슬러에게 별다른 대립없이 스쳐지나가듯 일방적으로 완패당한다면 본인의 이미지 타격과 함께 보는 팬들 입장에서도 결코 납득하지 못할것이라 생각했고 이는 상식적으로 근거가 충분한 의견이다. 훗날 오스틴 자신이 밝힌 바로는 레스너에게 잡을 하는것은 얼마든지 좋으나 잡을 하는 과정자체에 큰 문제가 있었다고 술회했다. 반대로 WWE 입장에선 세대교체를 노리고 급푸쉬를 주며 미는 레스너의 강력함을 어떻게든 더 빠른 시일안에 팬들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스티브 오스틴이라는 거물이 신예 브락 레스너에게 토너먼트 첫 경기부터 완패당한다면 이미지 상승과 충격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 [115] 이후 비슷한 상황을 만든 CM 펑크에게도 오스틴이 미디어 매체를 통해 충고의 메세지를 전하기도 했다.
  • [116] 본래 이렇게 급하게 레스너를 챔피언에 올릴 계획은 아니었으나 더 락이 헐리우드에 진출하게 되면서 벨트를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 오자 이를 차세대 아이콘으로 점찍어 놓았던 레스너와의 대립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레스너가
  • [117] 나름 충격적인 복귀여서 그런지 WWE의 충격적인 복귀 순간들 리스트중 하나로 끊임없이 나온다.
  • [118] 이 Ruthless, Aggression는 이후 WWE의 시대구분에서 애티튜드 시대와 PG 등급 이후의 The Universe Era 사이를 구분짓는 시대 구분 용어로도 쓰인다.
  • [119] 크리스 제리코 등을 이기기는 했지만, 이는 제리코가 "시나는 가능성이 있다." 며 자신이 져주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빈스는 제리코가 시나에게 지는것을 탐탁치 않아 했다.
  • [120]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마지막 2인으로 남았을때 이겨본게 전부다.
  • [121] 그래서 그런지 특히 ECW 팬들이나 현대의 ROH를 위시한 골수 매니아들은 빈스 루소를 매우 싫어한다.
  • [122] 그런게 없었다고 말할수도 없지만.
  • [123] 트리플 H는 자극적인 레슬링, 특히 스턴트 액션 등에 대해서는 거의 질색하는 편이다. 오히려 고전적인 요소들을 중시하여 2014년 현재 다시 이런 요소들을 경기 내,외적으로 잘 배치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 [124] 당장 에지가 활동하던 때만 해도 방송에서 리타와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를 했었을 정도다.
  • [125] 메인급 로스터 부족 때문에 존 시나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도 조기 복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126] 물론 희망적인 부분도 많다. 특히 NXT의 성공으로 많은 재능있는 선수들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크다. 현재도 쉴드 출신의 로만 레인즈, 딘 앰브로스, 세스 롤린스와 브레이 와이어트 같은 재능있는 선수들이 후보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