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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런 헤인즈

last modified: 2015-01-03 01:20:08 Contributors


사실 군대를 안갔다왔다[1]

서울 SK 나이츠 No.32
애런 헤인즈
생년월일 1984년 10월 10일
국적 미국
출신학교 보이시주립대학교
포지션 파워포워드
신체 사이즈 201Cm, 90Kg
경력 서울 삼성 썬더스(2008~2009)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9~2010)
서울 삼성 썬더스(2010~2011)
창원 LG 세이커스 (2011~2012)
서울 SK 나이츠 (2012~)

Contents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한국에서의 경력
3.1. 2008-2009 시즌 서울 삼성 썬더스시절
3.2. 2009-2010 시즌 울산 모비스 피버스시절
3.3. 2010-2011 시즌 다시 돌아온 서울 삼성 썬더스시절
3.4. 2011-2012 시즌 2년 연속 득점왕 창원 LG 세이커스시절
3.5. 2012-현재 한국형 용병이 된 서울 SK 나이츠시절
3.6. 귀화 추진과 병크


1. 개요

한국 프로농구에서 활동중인 서울 SK 나이츠소속의 용병이며, KBL에서 2008년부터 6시즌동안 활동중인 실력파 장수 용병이다.
2008-2009시즌 서울 삼성 썬더스의 에반브락의 대체용병으로 한국에 들어왔으며, 그 이전에는 필리핀 리그와 레바논 리그를 뛰었다. 레바논 리그에서는 디비전 1에서 맹활약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로 알려져있었다.

2. 플레이 스타일

201cm의 키와 90KG의 몸무게에서 볼수 있듯이, 체구가 크지 않고 포스트업 스킬이 강력하지는 못하지만 골 결정력이 뛰어나고 빠른 발과 신체능력이 좋은 올라운드 플레이어. 3점슛 능력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대신 미들슛 능력이 뛰어나다.

그렇지만 당시 대체용병으로 올때만 해도 신체 능력이 특별하지 않았던 헤인즈는 평범한 용병 취급을 받았는데, 이렇게 한국리그에서 적응 할수 있는 이유는 한국 프로농구에서 요구하는 이타적인 플레이와 시야가 좋은 선수인점과 무엇보다도 BQ가 좋기 때문에 영리한 플레이가 가능하다.[2] 상대의 수비를 속이고 돌파하는 능력이 좋고, 자유투를 얻어내는 능력은 KBL의 용병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 특히, 펌프 페이크로 수비수를 공중에 붕 띄운 후 일부러 수비수에 부딪혀 자유투를 얻어내는 기술은 상대 입장에서 알고도 매번 당하는 전가의 보도라 할 수 있다.

다만 약점은 역시 패스워크가 떨어지고 1:1 능력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과 함정수비에 약점을 드러내고, BQ를 이용한 플레이가 먹히지 않는 상대에게는 고전한다. 그리고 상기했듯이 포스트업 능력도 매우 취약하다.

3. 한국에서의 경력

3.1. 2008-2009 시즌 서울 삼성 썬더스시절

당시 서울 삼성 썬더스에서 에반 브락을 퇴출하고 헤인즈를 영입했다. 당시 키에 비해서 작은 체구와 운동능력이 그렇게 좋지않았기 때문에 크게 좋은 평가는 못받았고, 실제로 첫 몇경기에서는 고전했지만 특유의 성실함과 영리함으로 이를 극복하면서 이후로 점점 살아나면서 레더와 함께 삼성 썬더스가 좋은 활약을 하는데 대체용병으로서 준수한 공헌을 했다. 이후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고전했지만, 4강 플레이오프에서 레더가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 출장하는동안 그야말로 미친듯한 득점력을 선보이며 4위였던 삼성이 1위 울산 모비스 피버스를 제치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는데 공헌했고, 이때의 활약으로 4강 플레이오프 수훈선수상을 받았다. 이후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5차전 극적인 버저비터를 성공시키는등 나름대로 좋은 활약을 했으나 삼성을 챔피언 결정전에서 7차전 혈투끝에 패배했고 이후 헤인즈는 재계약하는데 실패했다.

3.2. 2009-2010 시즌 울산 모비스 피버스시절

서울 삼성 썬더스와 재계약에 실패한 헤인즈는 결국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서 압둘라히 쿠소의 대체용병으로 한국 무대에 다시 들어오게 된다. 일단 모비스에서도 센터인 던스톤에 밀려서 주로 팀의 득점이 풀리지 않을때 뛰어난 득점력을 이용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던스톤이 득점력을 메워주고 모비스의 조직력을 강화시켰다. 덕분에 15분 남짓 출장하면서도 평균 12.6점이라는 출장시간에 비하면 나쁘지 않은 득점을 해줬고,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좋은 득점을 선보이며 모비스의 우승에 공헌했다. 이런 뛰어난 득점력과 이타적인 플레이가 가능한 헤인즈를 다시 타 구단에서 주시하기 시작했다.

3.3. 2010-2011 시즌 다시 돌아온 서울 삼성 썬더스시절

결국 헤인즈는 서울 삼성 썬더스로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이때부터 팀의 주 득점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한층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 팀내에 있던 이승준과 함께 주 득점루트로 맹활약 하며 드디어 주요 용병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결국 2010-2011시즌 득점왕을 차지하면서 2인자의 이미지를 벗어났다. 다만 이 시즌의 삼성은 지난 0809시즌의 삼성에 비해 조직력이 떨어지고 선수들도 예전만한 기량을 뽐내지 못하며 헤인즈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되어 있었으며, 결국 6강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다. 다만 헤인즈는 역시 플레이오프에서도 평균 24득점의 활약을 펼치며 삼성의 주 득점원으로 맹활약했다.

3.4. 2011-2012 시즌 2년 연속 득점왕 창원 LG 세이커스시절

일단 한국프로농구에서 자유계약용병 1인제로 바뀐 시점에서 타팀과 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창원 LG 세이커스에서 올루미데 오예데지의 대체용병으로 영입되었다. 오예데지는 골밑장악력이 좋았지만 서장훈과의 백코트의 속도에서 치명적임을 드러냈기 때문에 헤인즈의 빠른 스피드와 득점력을 보고 영입했다. 영입 이후 폭발적인 득점력과 문태영과의 시너지 효과도 어느정도 내며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팀은 다시 서장훈이 부상을 당하고 문태영과 헤인즈 모두 볼 소유욕이 강하기 때문에 역할 분담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시너지 효과가 사라지고 결국 LG는 시즌을 7위로 마감했다. 헤인즈 자신도 득점력에서는 40득점이상을 폭발시킬정도로 뛰어났으나 빅맨 수비에서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LG의 약한 골밑문제를 드러내게 했다. 2년 연속 득점왕 시즌이었으나, 정작 자신이 득점왕등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는것은 아이러니한 점이었다.

3.5. 2012-현재 한국형 용병이 된 서울 SK 나이츠시절

2012-2013시즌에는 드디어 대체용병이 아닌 다시 트라이아웃으로 5순위로 서울 SK 나이츠에 뽑혔다. 한국 농구에 적응되어 파울유도를 할줄 알며 영리한 농구를 할줄 아는 헤인즈의 가세는 SK가 상위권으로 도약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SK의 포워드 농구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정규시즌 우승과 홈 경기 23연승에 공헌했다. 완전한 한국형 용병으로 거듭났고, 팀에 융화된 모습으로 SK의 철벽 수비에도 도움을 줬다. 다만 SK가 헤인즈에 대한 득점의존도가 낮지 않았기 때문에, 챔피언 결정전에서 내내 집중적으로 견제를 받으며 부진했던것은 결국 SK의 챔피언결정전 4연패에 어느정도 영향을 주었다.

2013-2014시즌 역시 SK의 주 득점원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그런데 2013년 12월 14일 전주 KCC 이지스와의 경기에서 김민구와 고의적으로 충돌하여 호흡곤란에 빠지게 하는 부상을 입혔다. 또한 지난 시즌인 2월달에 부산 KT 소닉붐의 김승기 코치에게 욕설을 했다는 논란과 더불어 여론 및 팬심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본인은 이틀 뒤 재정위원회에 참석해 공식적인 사과 의사를 전달했고 2경기 출장 정지와 5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되었지만 가벼운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의견이 일었다.

12월 말 현재, 헤인즈와 SK 나이츠는 넷상에서의 이미지가 땅끝까지 추락한 상태다. 헤인즈 부인이 페이스북에서 팬들의 비방과 관련하여 실망했단 식의 인터뷰를 했을때도 쉴드는 없고 자업자득이란 식으로 글이 가득했으며 사죄한다는 문경은 감독 인터뷰에는 베뎃이 전부 언플 하지말란 소리로 가득했다. 몇년간 한국에 있으면서 쌓았던 좋은 이미지가 팀과 함께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문경은 감독이 복귀하더라도 되도록 쓰지않겠다던데.. 플옵에서도 그소리가 나올까

결국 1월 9일자로 복귀했다. 역시나 예상대로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으며 댓글로도 엄청 까였다. 아무래도 단기간 이미지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월 19일 KCC전에서 김민구에게 사과하게 되었다.

1월 26일 창원 LG 세이커스와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 위닝 자유투로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 이후에도 SK 나이츠의 주력 포워드 용병으로 활약 중.

이후에도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를 하는 적절한 활약을 펼쳤다. 다만 위의 사건 이후 원정에서의 지속적인 야유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될듯하다. 실제로 본인은 신경 안쓴다고 말하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경이 쓰이는지 급하고 무리하는 플레이가 종종 나오고 있다.

그렇게 포스트시즌에 임하게 되었는데 3월 17일 고양 체육관에서 펼쳐진 고양 오리온스와의 6강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오리온스 가드 김강선과의 약간의 충돌이후 예민해졌는지 김강선이 파울을 받은직후 김강선을 밀쳐서 넘어뜨렸다. 김강선이 수비하다 충돌한거라면 헤인즈는 고의적인 행동이 다분하다고 보고있다. 해설하던 우지원도 저건 비신사적인 행동이라고 대놓고 말했을정도. 이후 헤인즈는 강도 높은 야유 때문인지 2점슛 14개를 시도해 4개를 성공해 저조한 득점률을 보였다. 이후 인터넷에선 살짝 잠잠했던 헤인즈에 대한 반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는중. 사실상 이미지 회복은 날아갔다고 봐도 될 듯했는데...

14-15시즌에는 시즌을 앞두고 규정이 파울을 잘 안불게 되는 규정으로 바뀌면서 상기에 언급되다시피 장점이던 자유투를 얻어내는 능력이 반감되었지만 왜 장수 용병인가를 보여주는 플레이를 보여주면서 현재 득점 상위권에 랭크되어있다.

3.6. 귀화 추진과 병크

2014년 5월 초에 귀화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본인도 한국 국가대표로 뛰고 싶다는 의욕이 강했고 이에 따라 이중국적 신분으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겠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신장 문제로 센터 포지션 귀화를 추진했던 국가대표위원회였지만 어렵게 되자 KBL에서 검증된 최고의 포워드를 기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고 농구팬들 사이에도 대체로 환영의 분위기가 일었다. 금메달 따서 김민구 병역 면제하는 것도 좋다 등등

그런데 귀화 시도도 시작하기 전에 전면 백지화되는 어이없는 추태가 벌어졌으니... 애초에 아시안게임 규정에 헤인즈의 조건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헤인즈는 타 용병들처럼 KBL 비시즌에 단기 알바성으로 뛸 수 있는 외국 리그를 마다하며 귀화를 준비중이었지만 제대로 조건도 알아 보지도 않는 농구협회 때문에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되어 버렸다.

귀화에 대해 계속해서 상당한 열의를 보였음에도 농구협회의 개막장 행정으로 인해 큰 피해를 보게 된 헤인즈는 농구팬들로부터 동정표를 사게 되었고, 이어 2014년 6월 김민구가 음주운전사고라는 대형 병크를 터뜨리자 김민구 가격 사건으로 욕을 먹어오던 헤인즈를 향한 비난 여론이 꽤나 희석되었다. 재평가 인생은 새옹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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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0-11 시즌 서울 삼성 썬더스서 뛰고있을때 KBL 가이드북 프로필에 버젓이 군 복무 미필이라고 인쇄되었다. 2010년 10월 17일 KCC와 삼성의 경기를 중계하던 SBS스포츠의 임용수 캐스터가 중계중 이 부분을 보여주며 폭소를 자아냈다.
  • [2] 소속팀 코칭스태프마다 헤인즈의 훌륭한 전술이해도를 입이 마르게 칭찬한다. 게다가 대다수 외국인선수들과는 달리 매우 성실하기까지해서 그 깐깐한 유재학 감독이 "정말 괜찮은 선수다.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잘 이해하고 알아들을 뿐 만 아니라 말도 잘 듣는다. 성실하기까지 하니 감독 입장에서 어찌 안 좋아할 수 있겠는가"라고 할 정도다.정지욱 기자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