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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카

last modified: 2015-12-21 23:35:53 Contributors

본 항목은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아소카 왕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Contents

1. 소개
2. 생애
3. 평가
4. 대중문화


1. 소개

아쇼카 바르다나(Ashoka)왕, 한자론 아육왕(阿育王)으로 불리우는 고대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제왕.

프라끄리뜨어의 발음으로는 아소까, 산스크리트어로는 아쇼카라고 한다. BC 265년경~238 재위, 또는 BC 273경~232 재위설도 있다.

대왕이라 칭송되는 명군이기는 하지만 젋은 시절에 호기로 무수한 전쟁을 벌여 엄청난 피를 흐르게 한 무서운 군주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자국에서 위대한 대왕으로 칭송받고 있었다. 전륜성왕의 모델이며 황제 중의 황제(Samrāṭ Chakravartin)란 별명도 있다.

2. 생애

젊은 시절에는 방탕하고 잔인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탁사실라와 웃자인의 총독이었다. 아소카 왕은 부왕이 위독하다는 말을 듣자, 수도 파탈리푸드라로 군대를 이끌고 와서 이복형 수사마를 비롯한 99명의 형제를 모두 죽이고 왕위에 올랐을 정도였다고.

칼링가(오늘날 리사 주 해안지대)라는 이웃 나라를 정복하고자 쳐들어가 10만이 넘는 인명을 해치게 했는데, 직접 폐허가 된 칼링가의 수도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야심으로 무수한 인명이 죽고 고아가 된 아이들 모습과 미쳐버린 사람들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1]

그리고 그 뒤로 전쟁으로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는 걸 그만두고 공공사업을 후원하여 병원과 고아원, 양로원을 세워 전쟁으로 떠돌던 이들을 치료하고 돌보게 했다고 한다. 더불어 역사상 처음으로 동물 보호 및 학대 금지 법령을 제정한 군주이며, 동물병원을 세우고 인류 최초로 수의사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점으로 계몽주의 유럽 역사학자들에게부터도 대단한 관심을 받았으며 유럽 학자들은 천년도 더 된 옛날에 이리도 훌륭한 업적을 쌓은 군주가 저 멀리 아시아에 있는지 놀랍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불교를 열성적으로 신봉하여 을 세우고 승려들을 스리랑카 등 이웃 나라(헬레니즘 제국의 잔당도 포함.)로 보내 불교 선교화에도 힘을 썼다. 그의 치세는 대다수의 주변국들이 불교를 믿기 시작하는 시기와 겹치니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불교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불교만을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종교를 관대하게 인정했다.

백성들의 생활 개선에도 큰 힘을 쏟아 우물을 파서 물이 부족한 지역을 돕게 했으며 에 대비한 곡식 저장과 싼 이자로 빈민들의 경제적 뒷받침을 하도록 하여 인도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왕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폭력, 비전쟁 정책에 대하여 그의 아들들이나 국내에서도 불만도 많았고 결국 아소카가 죽은 뒤로 이런 비폭력, 비전쟁 법률은 흐지부지되어 사라졌다.

3. 평가


인도에서 아소카왕은 거의 광개토대왕 + 세종대왕급, 아니 그 이상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인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최초의 제국이자 거의 최대 판도의 제국[2]이 바로 이 마우리아 왕조인데 그 왕조의 최고 성군이 아소카 왕이기 때문. 특히 아소카왕이 전국에 자신의 법을 새겨 새운 석주의 비문은 인도 최초, 최고(最古)의 비문이다. 석주 꼭대기에 장식된 사자 조각은 오늘날 인도 공화국국장이며, 함께 새겨져 있는 수레바퀴 문양은 국기의 한가운데에도 자리잡고 있다.


불교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에 불교 문화권에서는 불교의 수호신 같은 이미지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한국에도 관련된 이야기가 있는데, AD 574년 아소카왕이 철 57,000근과 금 3만분으로 가삼존 불상을 만들다가 실패하자 혼자 힘으로는 안될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금과 철, 그리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 땅에 닿게 되었으며, 신라 진흥왕은 이 금과 철을 가지고 황룡사의 불상들을 주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신라삼보의 하나인 장육존상이다. 꽤 세세한 기록이 있기에 큰 불상들을 만든 것은 사실인 것 같지만 그걸 인도에서 보내왔다는 것은 믿기 힘들며, 결정적으로 시간상 아소카왕이 살았던 시대와 거의 800년 차이가 나기 때문에[3]

이는 물론 불교적인 정통성을 옹호를 위하여 윤색한 이야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즉, 신라를 '아소카 왕의 업적'을 이어받은 새로운 '불국토' 포장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엄연히 역사적인 기록이긴 하다.

연도로 보면 아무래도 안 맞지만 아소카왕의 후예거나 그 영향을 받은 군주로서 사상을 이어받은 이가 보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는데, 이게 만약 사실이라면 아소카왕이나 그 후손은 정말 흠좀무한 대인배다.(...)

또한 아소카왕에 대한 전승으로는 비마나라는 물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앞서 언급되었던 전쟁에서 매우 요긴하게 써먹었는데 그 수준은 말 그대로 대학살(...) 평소에는 쓰지 않다가 중요한 시점에서 뻥뻥 터뜨려줬다는데, 대체 어떤 무기가 장착되어 있었는지 거의 핵폭발급의 파괴력으로 적국 영토를 초토화시켰다.[4] 이 비마나에 대한 전승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진출에 관한 일화까지 이어져내려[5] 현재까지도 무수한 소설가, 과학자들에게 떡밥을 던지고 있다.

양무제 소연의 경우 "동방의 아육왕"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의 치세가 6세기 전반(549년 졸)이다. 혹시?

4. 대중문화

좀 의외겠지만 1997년에 나온 라젠카에서 이름이 언급된 적이 있다. 역사대로 젋은 시절에는 전쟁광이나 다름없는 모습을 보이나 어느 순간 반전론을 내세웠고, 세계 평화의 유지를 위해 비밀조직을 만들었다는데, 그 조직의 문양이 주인공의 부메랑형 무기에 새겨진 문양과 비슷하다는 추측이 극중 인물을 통해 나온 것. 그 이후 이 떡밥은 묻힌다(...). 이 무기는 주인공 아버지의 유품이기도 해서 주인공의 출신을 암시하는 떡밥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래도 상관없어진다.(.....)

2001년 인도에서 최고 인기스타인 샤룩 칸 주연으로 3시간에 달하는 동명의 영화로 그에 대하여 만들어서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지루함도 씹어먹는 대왕의 위엄

또 신작 에로게 영웅전희에서 모에화 되었다!! 어째서인지 가슴을 그냥 노출시키고 있다.

블레이크와 모티머 시리즈 중 '6번째 대륙의 석관'편에서는 현신하여 인도의 민족주의자들을 추종세력으로 거느리는 것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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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적국 사람들의 피가 발목까지(!) 차오를 정도였다고.흠좀무
  • [2] 서로는 지금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이란의 일부, 동으로는 아삼소레,남으로는 데칸 고원 지방을 장악하고 스리랑카에서도 조공을 받았다.
  • [3] 기록 자체도 그 배가 1300년 이상을 떠돌아 다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면 또 500년이 안맞는데#
  • [4] 이 몹쓸 것이 한창 쓰이고 나서야 아소카 왕은 직접 적국을 들러 그 진상을 파악했는데, 당연히 그 잔혹함에 너무 놀라 이 병기를 전투병기에서 정찰기로 그 활동 범위를 축소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인본주의의 불교육성 정책이라고... 흠좀무
  • [5] 이 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위에서 잠시 머물다가 날아갔다고 하며, 대왕은 특유의 언변으로 스스로를 '하늘도 인정한 남자'라고 칭하며 도리어 사기를 고무시켰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