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아리랑

last modified: 2015-03-26 10:58:13 Contributors

Contents

1. 민요
2. 나운규의 1926년 작 영화
3. 김산의 자서전
4. 조정래소설
5. 한국의 위성 방송 채널 아리랑TV
6. 고려대학교에서 SHA-3 공모전에 출품한 해쉬 알고리즘
7. 담배
8. 매스게임 아리랑
9. 북한에서 제조한 첫번째 스마트폰 아리랑
10. VOCALOID 시유의 오리지널 곡 아리랑
11. 대한민국의 인공위성


1. 민요

한국의 전통민요. 아리랑(민요)항목으로. 아래의 항목은 모두 여기에서 따왔다.

2. 나운규의 1926년 작 영화

일제강점기였던 1926년 처음 상연된 무성 영화.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조선 키네마 주식회사를 통해 영화계에 뛰어든 춘사 나운규가 주연 겸 감독 겸 제작 겸 각본으로 참여하였다. 복수혈전?

주인공은 3.1 운동 당시의 충격으로 미쳐버린 김영진이다. 친구 윤현구는 방학으로 고향에 돌아와 그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그는 여전히 미치광이일 뿐이다. 그러는 사이 현구와 영진의 동생 영희 간에 사랑이 싹트지만, 악덕지주 천가의 머슴이자 왜경의 앞잡이인 윤기호가 영희를 범하려 하자 현구와 기호는 싸움을 벌인다. 그러던 중 영진은 낫을 들어 기호를 찍어 버리고 그 순간 그는 정신을 되찾는다. 영진은 끌려 가면서도 '나는 이 삼천리에 태어나 미쳤다'고 외치고, 이 때 주제가인 아리랑이 흐르면서 영화가 끝나게 되어 있다.

나운규가 독립운동가로 활동해 수감된 경력이 있을 정도였던만큼 일제강점기 민족주의가 곳곳에 들어간다. 첫 장면에 '고양이'라는 자막과 함께 두 동물이 투닥거리는 장면을 도입하여 일제강점기를 은유하였으며, 친일파이자 악덕지주의 하수인이 악역으로 등장하고 이를 살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검열을 피하기 위해 영진을 '미치광이'로 설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마지막 주인공의 절규와 함께 이 설정을 생각해보면 일제강점기는 '미치광이'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시대임을 암시한다.

상영 당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927년에는 일본에서도 상영되었다. 여담이지만 나운규는 이후로 아리랑만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후에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며, 재정난 문제도 계속 따라다녔다고 한다.

한편 나운규가 본래 항일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으나, 본문의 중반 이후에 나와 있듯 검열을 피하기 위해 모호성을 삽입(+ 변사의 재량을 활용)했을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이는 나운규 영화의 문제라기보다는 1920년대 소위 문화 통치의 파급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 영화의 내용도 전해져 내려오는 각종 기록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한국 영화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는 영화라서 많은 사람들이 필름의 행방을 찾았지만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1].

3. 김산의 자서전

항일운동가인 김산의 생애를 회고한 자서전. 그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1937년 중국 공산당이 있던 연안을 방문한 님 웨일스가 우연히 그를 만나 그와 여러 차례 대담을 해서 정리해 출판한 것이다. 그래서 책의 저자는 김산과 님 웨일스의 공저다. 참고로 김산은 당연히 가명이고, 본명은 장지락. 김산이라는 가명은 그런데 정작 공산당 활동 중에는 쓰지 않았다고 한다. 님 웨일스가 그의 정체를 숨겨주기 위해 임의로 만든 것이라고. 님 웨일스도 사실 필명이다.

영어 원 제목은 <Song Of Ariran>. 우리 말로는 아리랑의 노래 정도 되겠다. 미국에서 처음 출판되었지만, 출판사가 영세하기도 했고, 님 웨일스가 남편인 에드가 스노우[2]와의 이혼 및 개인 사정으로 인해 책이 많이 묻혔다. 그럼에도 재미 교포 사이에서는 많이 읽혔다고. 그러다가 한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에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며, 세 차례 개정되어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발매되고 있다. 광둥 봉기라든가, 해륙풍 소비에트, 중국 공산당에서 활동한 조선인이라든가, 당시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의 모습, 공산당원 내부의 갈등과 같은 부분은 극히 드문 소재라서 오늘날에도 높은 사료 가치를 가지고 있다.

참고로 그가 자서전을 쓸 무렵의 나이는 겨우 33세. 그러나 그는 14세에 집을 떠나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했다. 그래서 스스로도 내게는 청춘이라는 것은 없었다고 회고할 정도. 이야기의 마지막은 곧 만주로 가서 다시 무장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싶어하는 희망과 자신의 삶이 모든 것에는 다 패했어도 나 자신에게만은 승리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강한 자존과 믿음을 표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상당히 감동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중국 공산당에게 처형당했으니…

한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래도 김산은 님 웨일스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남겼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평한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런 이야기도 남기지 못한 채 죽은 경우가 태반이었으므로. 실제로 책을 읽어보면, 3.1 운동부터 시작해서, 만주와 중국 관내의 독립운동까지 개인의 삶 안에 망라되어 있다. 김산이 만난 인물만 해도 이동휘, 안창호, 이광수, 김원봉 등등 한국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거물급 인물들이다. ㄷㄷㄷ 국 근현대사나 개정 한국사 선택자들이 일제 강점기 민족 독립 운동에 대해 학습한 뒤 책을 읽으면 학습한 지식이 개인의 삶 속에 그려지는 것을 보며 감회가 꽤나 새로울 것이다.

책의 내용은 김산 항목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4. 조정래소설

조정래 씨의 대하소설 3부작 중 두 번째. 구한말~해방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총 12권 4부로 구성되어있다. 한국 내부(전라도 중심)뿐만이 아닌, 미주,만주등의 광범위한 배경이 독특하다.

5. 한국의 위성 방송 채널 아리랑TV

Arirang TV 항목참조.

6. 고려대학교에서 SHA-3 공모전에 출품한 해쉬 알고리즘

큰 취약점은 없었으나 결국 광탈했다.

7. 담배


한국 최초의 필터담배. 1958년에 출시되어 1973년에 단종되었으나, 그 뒤 1974년, 1984년 두 차례에 걸쳐 재발매될 정도로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담배였다.
2006년에 부활하긴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판매가 부진해지자 2011년에 시중에서 퇴출되었고, 지금은 면세점에서 볼 수있다.


8. 매스게임 아리랑

아리랑(매스게임) 항목 참고.

9. 북한에서 제조한 첫번째 스마트폰 아리랑


10. VOCALOID 시유의 오리지널 곡 아리랑

아리랑(시유) 항목 참고.

11. 대한민국의 인공위성


1.jpg
[JPG image (Unknown)]

아리랑 1호
2.jpg
[JPG image (Unknown)]

아리랑 2호
3.png
[PNG image (Unknown)]

아리랑 3호
3A.jpg
[JPG image (Unknown)]

아리랑 3A호
5.jpg
[JPG image (Unknown)]

아리랑 5호

정식 명칭은 다목적실용위성. 카메라 및 레이더를 사용해 지상을 촬영하는 지구 관측 위성이다.

최초 사업 추진 당시 KARI에서는 로켓 개발으로 KSR-I을, 인공위성 개발으로 과학위성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이 중 과학위성 개발이 공위성연구센터로 넘어가면서 리별 위성 사업으로 되었다. 그러자 항우연은 로켓은 개발중인데 로켓으로 쏠 물건을 개발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 군사적인 용도로 의심받아 불필요한 오해와 견제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 때 마침 국가적으로 실용급 인공위성의 개발 필요성이 제기되어 항우연에서 시작한 새로운 위성 개발 사업이 바로 다목적실용위성 개발사업.

'아리랑'이라는 이름은 국민공모를 통해 정했는데, 처음에는 아리랑이라는 이름에서 노래 가사의 아리랑 고개가 연상된다 하여 논란이 있었지만 아리랑의 유래 자체는 여러 설이 있는데다 그 중에는 "큰 빛"이라는 뜻도 있다 하여 결국 아리랑으로 정해졌다.

2015년 3월 현재까지 아리랑 1호부터 시작해서 차례로 2호, 3호, 5호, 3A호가 발사되었다. 2014년에 발사될 예정이었던 3A호는 이듬해 3월에 26일에 발사되었다.[3] 거기에 더해 현재 6호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중이며 앞으로 7호 역시 개발할 예정이다. 1호의 위성 본체는 KARI와 미국의 TRW에서 공동 개발했으며 탑재체인 해상도 6.6 m의 전자광학 카메라는 해외에서 구매하여 장착하였다. 2호는 위성 본체는 국내 자체개발, 탑제체인 해상도 1 m급 카메라는 국제 공동개발하였다. 3호에서는 거의 기술 자립을 달성하여 위성 본체와 탑재체 둘 다 국내 독자 및 주도로 개발하였으며, 해상도 0.7 m 카메라를 탑재하여 현재 대한민국이 운용중인 위성 중 가장 정밀한 관측을 수행할 수 있다. 3A호는 0.55 m의 해상도를 가진 광학카메라와 함께 5.5m 해상도의 적외선 카메라를 탑재한다. 광학 카메라 및 위성 본체는 국내 개발이고 적외선 카메라는 해외 업체와 공동개발. 적외선 카메라는 해상도는 낮아도 주야간 촬영이 가능하여 유용하다.

5호는 지금까지의 아리랑 위성들이 광학 탑재체를 탑재하였던 것과는 다르게 합성개구레이더(SAR)를 탑재하여 기상 상황에 상관없이 레이더를 사용해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해상도는 1 m급으로, 해외 업체와 공동 개발하였다. 물론 위성 본체는 국내 개발하였다. 참고로 이 위성을 날려보낸 발사체는 다름아닌 러시아의 ICBM R-36.

3호와 3A호, 5호는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었는데, 이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름을 붙인 순서와 제작 완료 및 발사된 순서가 다르기 때문. 사업 순서상으로는 3호 개발 사업이 먼저 시작된 뒤 3A호와 5호 개발이 시작되었지만, 개발이 가장 먼저 끝난건 5호였다. 3호는 국내 자체 개발 부분이 많아 개발에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 그런데 완성된 5호를 발사해야 할 러시아 측에서 새로운 조건을 요구하면서 발사가 지연되었고, 그 새에 3호가 개발을 전부 끝내고 발사까지 이룬 것. 5호는 그 뒤에야 발사될 수 있었다.
----
  • [1] 1990년대 중반 한 일본인이 필름을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서 파문이 일어난적 있다. 당시 남한과 북한 정부 모두 대표를 파견해서 후한 경제적 보상을 제시하였지만, '통일이 되면 주겠다', '내가 죽고나서 주겠다' 등등 차일피일 시간만 끌다가 흐지부지 되었다. 결국 그가 사망하고 나서 일본경찰이 소장품을 조사해 보니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낚시꾼...
  • [2] 처음 마오쩌둥 및 중국 공산당 간부를 인터뷰해 낸 책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세를 탄 기자다.
  • [3] 4호라는 이름은 불길하다는 터부 때문에 붙여지지 않았다. 대신 붙여진 이름이 3A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