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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고 사키

last modified: 2015-02-06 18:10:40 Contributors


이름 아리고 사키(Arrigo Sacchi)
생년월일 1946년 4월 1일
국적 이탈리아
출신지 라벤나 현 푸시냐노
포지션 DF
선수 경력 푸시냐노 CF (1964 - 1977)
AC 벨라리아 (1977 - 1979)
지도자 리미니 칼초 (1982 - 1983)
ACF 피오렌티나(유스) (1983 - 1984)
미니 칼초 (1984 - 1985)
파르마 FC (1985 - 1987)
AC 밀란 (1987 - 1991)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1991 - 1996)
AC 밀란 (1996 - 199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1998 - 1999)
파르마 FC (2001)
레알 마드리드 CF (2004 - 2005)[1]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첼리오 비치니
(1986~1991)
아리고 사키
(1991~1996)
사레 말디니
(1996~1998 )

사람들은 종종 결과만 중요하다고 하면서, 미래에 남는 건 커리어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축구의 위대함을 찾아 나설 때 얻어지는 느낌이다. 가령, 비록 파비오 카펠로의 AC 밀란이 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우리는 아리고 사키AC 밀란을 더 생생하게 기억한다. - 호르헤 발다노[2]

압박 축구의 창시자. 빗장수비의 아버지 레니오 에레라[3], 토탈 풋볼의 아버지 리누스 미헬스와 함께 현대 축구의 근간을 세운 인물이다.

Contents

1. 개요
2. 감독 시절
2.1. 세리에 C1, 세리에 B
2.2. AC 밀란 시절
2.3.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2.4. 이후의 커리어
3. 기타
4. 기록


1. 개요


누구도 반박할수 없는 밀란 제너레이션의 주역.
레오 로코, 아리고 사키, 파비오 카펠로, 카를로 안첼로티로 이어지는 밀란의 명장 라인.

토탈 풋볼의 창시자 리누스 미헬스와 더불어 현대 축구의 기반을 완성한 압박 축구의 창시자. 2014년도에 이르러서도 세계 유수의 명문팀부터 듣보잡팀까지 사용하는 대부분의 전술은 사키의 4-4-2 전술을 바탕으로 발전한 것들 뿐이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지역방어와 압박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너무나도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리고 사키는 이 생소한 개념들을 지금까지도 축구 전술에 있어서 필수적인 개념으로 정착시켰다. 이 영향력은 상기했다시피 2014년에도 절대적이며, 트레블을 기록한 알렉스 퍼거슨, 조세 무리뉴, 유프 하인케스 ,펩 과르디올라 모두 사키의 4-4-2 전술과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4][5] 그런데 2006년 잉글랜드의 정론지찌라시 더 타임즈에서는 역대 최고의 감독순위에서 1위를 미헬스, 2위에는 맨유의 전설적인 감독중 한명인 맷 버즈비, 4위에는 알렉스 퍼거슨, 5위에는 샹클리, 6위 밥 페이즐리, 7위 브라이언 클러프, 10위 아르센 벵거를 선정하고 아리고 사키를 고작 11위에 선정하면서 종사자, 전문가, 축구팬들에게 찌라시라는 온갖 경멸스러운 비판을 당했다.[6]종주국 자존심보소 퍼거슨, 페이즐리, 클러프 빼고는 이해도 안됨

사키이즘의 가장 큰 쾌거는 리누스 미헬스가 제창한 토탈 풋볼을 더욱 효율적으로 완성한 데에 있다. 리누스 미헬스가 제창한 토탈 사커가 말 그대로 '토탈' 그 자체였기 때문에 상상도 못하는 훈련량을 부담했다면 사키이즘은 각각의 포메이션을 3선 혹은 4선으로 나눠서 각각의 선수가 그 지역을 커버하는 것에 있다.

예를 들어 밀란제네레이션과 마라도나가 이끄는 SSC 나폴리가 붙었고, 마라도나가 나폴리 진영에서 공을 잡은 경우를 상정해보자.
1차적으로 전방의 반 바스텐-나도니-굴리트-콜롬보가 마라도나를 압박한다.
그런데 마라도나가 이 압박을 뚫어내고 밀란의 왼쪽 진영으로 파고든다면, 2차로 도나도니-안첼로티-굴리트-레이카르트가 마라도나를 압박한다.
그런데 또 마라도나가 그것을 뚫고 밀란의 왼쪽 진영으로 들어간다면, 3차로 안첼로티-레이카르트-말디니가 마라도나를 압박한다. 거기다 뼛속까지 토탈인인 굴리트까지 압박에 가담할 수 있다.
그런데 마라도나가 이것마저 뚫고 밀란의 후방 중앙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자. 그러면 레이카르트/안첼로티-말디니-바레시 그리고 이 시점에서는 코스타쿠르타까지 가담하여 마라도나를 압박한다. 물론 뼛속까지 토탈인 굴리트는 여기에 또 낄 수도 있다.
이렇게 3선 4선에 걸쳐서 상대방의 공격전개를 방치하지 않고 계속해서 압박하는 축구는 사키이즘의 절대 명제였다.
그리고 이러한 압박은 현대축구에서 다소간 수준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떤 팀이라도 빠짐없이 채택하고 있다.

위에서는 수비적인 압박만 언급했지만 밀란 제네레이션은 공격적 압박에도 역대인 팀이었다. 상황에 따라서 지금의 전성기의 바르샤도 첼시도 될 수 있는 전술적인 페러다임을 제시한 것이 지금의 사키이즘이다.

2. 감독 시절


2.1. 세리에 C1, 세리에 B

감독으로 성공했던 그도 원래는 축구선수를 꿈꾸었으나, 19살이 되던 해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축구선수로서는 성공할수 없음을 알았다. 세리에 D의 작은팀 수비수로 뛰면서 낮에는 구두 세일즈맨을 밤에는 전술공부를 하며 불과 26세에 고향의 아마추어팀 바라카 루고에서 첫 감독 생활을 하지만 베테랑 선수들과의 마찰로 오래 머물진 못한다.

이후 AC 벨라리아, AC 체세나를 거쳐 레가 프로 프리마 디비시오네[7]의 리미니 칼초에서 첫 프로 감독직을 맡게 되나 별활약을 보이지 못한다. 이후 피오렌티나의 유스 감독직으로 활동하다 1년만에 다시 리미니 칼초로 돌아와 팀을 상위권으로 이끌며 당시 3부 리그의 파르마 FC의 러브콜을 받는다. 파르마의 감독직을 수락하며 팀을 세리에 B승격으로 이끌고, 당시 명문가 부활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공격적인 선수영입을 하며 강팀으로 재도약하던 전통의 명문 AC 밀란을 코파 이탈리아 예선과 16강전에서 각각 1:0으로 개발살 내버리면서 주목을 받게 된다. 결국 간발의 차로 세리에 A 승격에 실패하지만 코파 이탈리아의 경기를 보고 그에게 반한 AC 밀란의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당시 아마추어 풋내기에 불과하던 그를 당시 밀란 감독인 스웨덴 삼총사이자 밀란의 전설이였던 스 리드홀름을 경질해가면서 감독에 임명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다.

2.2. AC 밀란 시절


하지만 언론들은 사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구두팔이에 불과한 아마추어 감독이 하루아침에 명문팀 감독이 된 신데렐라 스토리는 그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였고 언론은 매일같이 비선수 출신에 불과한 구두팔이에 그가 영입한 검증 안된 젊은 선수들을 까면서 그를 조롱[8]했지만 사키는 오히려 "기수(騎手)가 되기 위해서 말(馬)이 될 필요는 없다."라고 응수하며 자신이 영입한 안첼로티, 반 바스텐, 굴리트 등과 함께 부임 첫해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며 언론들을 전부 데꿀멍시킨다.

88-89시즌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합류하면서 훗날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되는 오렌지 삼총사를 완성하고, 기존의 필리포 갈리, 마우로 타소티, 로베르토 도나도니, 프랑코 바레시 등의 활약과 말디니, 레산드로 코스타쿠르타, 알베리고 에바니, 데메트리오 알베르티니, 파올로 말디니 등 유스출신 선수들이 포텐이 빵빵 터져주면서 모든 퍼즐이 맞춰졌고, 사키의 전술이 버무려져 세리에 A우승과 동시에 20년만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견인한다. 부임기간 4년동안 리그 우승 3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UEFA 슈퍼컵 2회 수페르코파 이탈리아 1회, 도요타컵(클럽월드컵 전신) 2회 등을 견인하며 축구계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고 유럽을 호령한다.

이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수락하고 밀란 감독직을 파비오 카펠로에게 넘겨주고 사임한다. 1996년 이탈리아 감독직을 사임한 뒤 후임 감독이었던 파비오 카펠로에 이어 다시 AC 밀란에 복귀하게 되지만 리그 11위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고 한 시즌만에 사임한다. 다음 시즌인 1997/98시즌에 카펠로가 다시 사키의 후임으로(...) 밀란에 복귀하지만 카펠로 역시 리그 10위를 기록하며 한시즌만에 사임하게 된다.

2.3.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다만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생각보다 저조한 편이다.

유로 1992 조별예선에서 세간의 평가와 달리 소련에게 밀려 조별예선에서 광탈한다.

이후 절차부심하여 참가한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 AC 밀란 수비진을 통째로 뽑아오는 등 만전을 가하지만 이번에는 공격진이 골을 넣지못해 골골대다가 가까스로 조별 예선을 통과하고 이후 로베르토 바지오가 끝없는 영웅 플레이로 팀을 결승전까지 인도한다.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는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지만 영웅이였던 바지오가 실축함으로써 역적으로 추락해 이탈리아 팬들의 욕을 얻어먹는다. 바지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황선홍은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 그야말로 영웅에서 역적으로 추락해서 은퇴할 때까지 오만가지 욕을 얻어먹었다. 본인은 발롱도르를 수상했지만 이후 신예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에게 밀려 유벤투스 FC를 떠나고 방랑생활을 거듭한다.

직후 야심차게 준비한 유로 1996에서 또다시 독일, 체코에게 밀려 조별예선 광탈을 함으로써 국가대표 감독 생활도 막을 내린다.

2.4. 이후의 커리어


상술한것 처럼 유로 96이후 AC 밀란의 감독에 다시 부임하지만, 리그를 11위로 마치며 사퇴한다. 이후 라리가무대로 발을 돌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지만 13위로 리그를 마치며 부진을 이어갔다. 코파 델 레이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납득하기 힘든 성적이었다. 2001년 잠시 파르마 FC의 감독직을 역임했고 현역에서 완전히 물러난 뒤, 2004년 레알 마드리드의 기술 고문으로 한 시즌간 재직했다.

3. 기타


사키가 남긴 발자취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라 상기했다시피 현대 축구 모든 팀의 전술, 특히 2000년대 후반 당대 최강의 팀이였던 FC 바르셀로나마저 기본 틀은 사키의 전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키의 제자로 꼽히는 감독으로는 지오반니 트라파토니, 알렉스 퍼거슨을 비롯한 80년대를 보낸 모든 감독들[10] 파비오 카펠로[11], 프랑크 레이카르트,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카를로 안첼로티, 베르토 도나도니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무패우승 당시 아르센 벵거아스날이 사용한 4-4-2는 사키이즘의 극대화로 평가받는다.

K리그 클래식에서 대표적인 패스 축구를 구사하는 포항 스틸러스를 두고 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에 빗대 스틸타카가 부르는 팬들이 많은데, 엄밀이 말하자면 완전히 틀린 말이다. 포항은 자체적으로 스틸러스 웨이라는 방침을 고수하는데, 이것중 하나가 백패스 금지로 대변되는 빠른 공격전개이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패스를 돌리기보다 볼 소유권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공격적으로 전방으로 배급하고, 뺏기면 압박을 해서 소유권을 되찾아온다. 이런 포항의 축구철학은 사키의 사키이즘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4.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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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기술고문.
  • [2] 레알 마드리드와 아르헨티나의 전설적인 공격수로, 조세 무리뉴가 레알 감독 시절 권력 다툼을 하다 페레즈에게 팽당한 그 레알의 단장 발다노가 맞다. 하단을 보면 알겠지만 사키시절 밀란의 우승기록은 카펠로 시절의 밀란보다 우승 기록이 더 적다.
  • [3] 엘레니오 에레라는 테나치오의 창시자로 테르에서 유러피언컵 2연패 세리에 A우승등을 이끌며 당대 최강의 팀으로 조련하였다.
  • [4] 펩을 사키나 미헬스급으로 치켜세우는 해축팬도 있지만이라고 쓰고 꾸레라고 읽는다 이들은 현대축구의 틀을 다지고 모든 팀이 사용하는 전술의 뿌리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펩을 이들과 동급으로 놓는건 어불성설이다. 데뷔 후 현재까지 행적은 그야말로 역대급이지만 그가 사용한 티키타카전술은 결국 바르샤만의 고유전술로 정착했을 뿐 그 어떤 팀(심지어 현 소속팀이자 유럽 최강팀이라는 바이에른 뮌헨도)도 입히지 못했다. 펩이 토탈사커를 극대화했다면 2010년대 위르겐 클롭이 이끄는 도르트문트의 주전술인 게겐 프레싱은 사키이즘을 극대화시킨 압박과 역습이 주를 이루고있다. 2012-2013 시즌 뮌헨의 감독이던 유프 하인케스는 이 게겐프레싱을 응용, 극대화해서 당대 최강팀이던 바르셀로나를 짓밟아버리고 최강팀으로 등극했다.하지만 펩문어 뮌키타카가 전부 망쳐버렸다 또한 사키의 밀란보다 큰 업적을 세운게 후임 파비오 카펠로의 AC 밀란이지만 현재 역사는 사키의 밀란 제너레이션을 더 강렬히 기억하고 있다.
  • [5] 일명 뮌키타카라 불리는 펩의 전술이 후반기가 되면서 약점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고, 무었보다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초~중반기의 모습을 보고도 뮌헨의 명예회장이던 프란츠 베켄바워가 펩의 전술은 뮌헨에 맞지않는다며 정면으로 디스한적이 있다.당시엔 노망난 노친네, 지금은 역시 카이저
  • [6] top 10에 들어간 미헬스, 78년 오렌지 군단을 이끌고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4국에서 우승컵을 휩쓴 에른스트 하펠, 매직 마자르를 조련하고 지휘한 벨라구트만, 최고 명문 레알 마드리드의 초석을 다진 미겔 무뇨즈를 제외하면 감독들은 잉글랜드 출신이거나 잉글랜드 디비전, EPL 역사에 족적을 남긴 감독이다.
  • [7] 흔히 세리에 C1이라 한다.
  • [8] 네덜란드 리그에서 날라다닌 반 바스텐이나 굴리트나 그때 당시엔 의문부호가 붙었다. 같이 영입된 안첼로티는 20대 후반.
  • [9]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와 감독이지만 둘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다
  • [10] 결코 허언이 아닌 것이 현재 감독들의 전술 베이스는 위에서 상기했다시피 사키의 4-4-2 전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 [11] 이탈리아 국가대표 출신에다 밀란의 스타출신이였던 카펠로는 어느순간 갑툭튀한 사키를 좋게 보지 않았다. 이후에도 서로 헐뜯는등 견원지간사이. 게다가 카펠로를 사키의 제자로 보고있는 세간의 평과 달리 카펠로는 사키의 제자가 아니다. 밀란 감독도 비록 감독 대행이었지만 카펠로가 먼저 맡았고, 외국에선 사제관계에 나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지만 나이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