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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우스

last modified: 2015-02-28 16:06:05 Contributors

Flavius Arcadius


로마의 역대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 아르카디우스 (동로마), 호노리우스(서로마) 테오도시우스 2세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
아르카디우스 테오도시우스 2세 마르키아누스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발렌티니아누스-테오도시우스 왕조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동서 분리
4. 통치
4.1. 루피누스의 섭정
4.2. 에우트로피우스의 섭정과 가이나스의 야심
4.3. 일리아 에우독시아 황후
5. 사망

1. 개요

아르카디우스(Flavius Arcadius, 377년/378년 ~ 408년 5월 1일)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395년부터 408년 죽을 때까지 콘스탄티노폴리스(비잔티움) 중심의 로마 제국 동부를 다스린 황제이다.

2. 생애

스페인에서 377년 또는 378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와 아일리아 플라킬리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동복형제로는 서로마 제국의 황제인 호노리우스가 있다. 아르카디우스는 동생 호노리우스 못지 않게 못난 인물이었다. 아르카디우스는 키가 작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말과 행동이 굼뜨고 눈꺼풀이 두꺼워 늘 졸린 듯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거기에다 성격도 유약하고 머리도 좋지 않았다.

사실 그에 대한 평가는 호노리우스보다 더 박해도 할 말이 없는 게 그나마 호노리우스는 가끔 가다 통치라는 걸 하는 척이라도 했고 나름 인선을 잘 한 사례도 있지만 아르카디우스는 후계자인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를 낳은 걸 제외하고는 아예 한 일이 없다시피 했다.

3. 동서 분리

그는 383년 아버지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어 공동황제가 되었고, 395년 아버지가 죽자 17살의 나이로 제국의 동방을 통치했다.[1] 이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호노리우스의 서로마와 아르카디우스의 동로마로 분리되었다.

4. 통치

4.1. 루피누스의 섭정

동생 호노리우스가 유능한 장군 스틸리코의 도움으로 반달족을 물리는 동안, 동생 못지 않게 무능한 아르카디우스 역시 친위대장 루피누스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하지만 루피누스는 스틸리코보다 다소 떨어지는 인물이라서, 아르카디우스 재위 초기인 395년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이 반란을 일으키고 제국의 영토를 유린할 당시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하지만 섭정으로 실권을 잡은 루피누스는 자신의 딸을 아르카디우스에게 시집보낸 뒤, 자신의 영향력을 더욱 키우려 하였으나, 이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4.2. 에우트로피우스의 섭정과 가이나스의 야심

같은 해인 395년, 고트족 가이나스(Gainas)가 이끄는 로마군대가 황제를 뒤에서 조종하는 친위대장 루피누스를 암살한 이후, 루피누스가 행사하던 지위는 대머리 노인 환관이자 의전관인 에우트로피우스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에우트로피우스는 무능한 황제를 조종하면서, 지위강화를 위해 자신이 교육한 프랑크족 출신의 미녀 일리아 에우독시아(Aelia Eudoxia, ? - 404년)와 아르카디우스를 결혼시켰다. 이 결과, 그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었다. 하지만 황후가 된 에우독시아 역시 야심있는 여인답게 남편 아르카디우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키려고 노력했고, 그녀는 에우트로피우스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400년 초에 가이나스는 막후 공작으로 에우트로피우스를 실각시키고 아르카디우스로부터 군 사령관 직을 빼앗다시피하여 얻게 되었다[2]. 자연히 동로마의 고관들과 콘스탄티노플의 시민들은 게르만 족 군대의 세력 강화에 불쾌하게 반응했고, 결국 400년 7월 12일,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대규모 폭동이 일어나 수많은 게르만 족 병사들이 학살당하고 말았다. 이때 가이나스 역시 실각하여 추방되었고 동로마 내에서의 게르만 족 군대의 세력은 급격히 위축되었다. 이후, 새로운 권력은 아르카디우스의 아내였던 아일리아 에우독시아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4.3. 일리아 에우독시아 황후


아일리아 에우독시아 황후의 도안이 담긴 화폐

새로이 권력을 쥐게 된 에우독시아는 근위대장 아우렐리아누스와 함께 궁정에서 반(反) 야만족 파를 이끌며 영향력을 확장해나갔다. 에우독시아는 인기가 높고 금욕적인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한네스 크리소스토무스[3]과 갈등을 벌였기에 평판이 좋지 않았다. 거기에다 방탕하고 음란한 성품이었기에 두 사람 간의 다툼은 더욱 잦았다.


에우독시아 황후와 크리소스토무스 주교의 대립을 다룬 장면이 그려진 역사화

크리소스토무스는 여러 차례 에우독시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그때마다 에우독시아는 그가 강단에서 자신을 겨냥한 발언인 사치와 부도덕에 대해 분노했다. 결국 에우독시아는 크리소스토무스를 파면시키기 위해 교회 안에 있던 그의 정적들과 험담가들과 손을 잡고, 403년 처음으로 파면을 시도했다. 이러한 시도는 404년부터 끊임없이 시도되어 결국 시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르카디우스는 아내의 뜻에 따라 크리소스토무스 주교를 실각시켜 추방했다. 더해서 이 일의 결과는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 간에 균열이 생기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호노리우스가 크리소스토무스를 지지하며 아르카디우스 부부에게 개입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형제는 408년 아르카디우스가 죽을 때까지 화해하지 않았다.

5. 사망

아르카디우스는 정치나 군사적인 관심은 거의 없었지만, 경건한 종교적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재위기간 내내 실권은 근위대장, 용병대장, 환관, 황후에게 넘긴 채 명목상으로 통치할 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간혹 일이라는 걸 했던 호노리우스와 달리 국가에 미친 악영향이 미미한 수준이라 평가가 나쁘지 않다.

408년에 30세 또는 31세의 나이에 일리아 에우독시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7살짜리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에게 제위를 넘기고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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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동생 호노리우스는 서로마를 통치했다.
  • [2] 가이나스는 서방의 스틸리코와 같은 권력을 동로마에서 누리려고 하였다.
  • [3] 그가 유배지에서 죽은 뒤, 사람들은 그리스 어로 '황금 입'이라는 뜻의 크리소스토무스라고 부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