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아나키즘

last modified: 2016-10-03 21:35:16 Contributors

사상이 아닌 정치 체제로서의 무정부를 찾는다면 무정부 상태 참고.

영어:No gods, no masters[1]
프랑스어:Ni dieu ni maître![2]
신도, 주인도 없다.[3]

아나키스트들을 대표하는 슬로건

아나키즘의 대표적 상징인 Circle-A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 브이의 상징은 이를 뒤집은 것이라고 한다.

Contents

1. 정의
2. 내용
2.1. 딜레마와 사회 혁명
3. 탄생 배경과 영향
4. 허무주의와 다른 점
5. 또 다른 용어 리버테리언의 유래에 대해
6. 상징
6.1. 서클 A
6.2. 검은 깃발
6.3. 졸리 로저
6.4. Bisected Flag
7. 아나키즘의 분파들
7.1. 고전적인 아나키즘
7.1.1. 상호부조론
7.1.2.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7.1.2.1. 윌리엄 고드윈의 인도주의적 아나키즘
7.1.2.2. 막스 슈티르너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
7.2. 사회적 아나키즘
7.2.1. 아나코 콜렉티비즘
7.2.2. 아나코 코뮤니즘
7.2.3. 정강주의
7.2.4. 아나코 생디칼리즘
7.2.5. 크리스천 아나키즘
7.2.6. 아나코 패시피즘
7.3. 20세기 이후 개발된(또는 아직도 개발되고 있는) 아나키즘
7.3.1. 아나코 캐피탈리즘
7.3.2. 자유시장 아나키즘
7.3.3. 아나코 페미니즘
7.3.4. 녹색 아나키즘
7.3.5. 아나코 프리미티즘
7.3.6. 아나코 자연주의
7.3.7. 회생태학
7.3.8. 후기 좌파 아나키즘
7.3.9. 후기 아나키즘
7.3.10. 소요 아나키즘
7.4. 우파 아나키즘?
7.4.1. 민족 아나키즘(Völkisch Anarchism)
7.4.2. 내셔널 아나키즘
8.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9. 비판
10. 다른 사상과 관련된 사항
11. 관련 항목
12. 관련 문학 작품

1. 정의

아나키즘(Anarchism)은 an+arch+ism로 구성된 조어로 αν(없는)와 ἀρχός(지도자)[4]가 합성된 고대 그리스어 아나르코스(ἄναρχος)에서 비롯된 말이다.

'무정부상태'를 뜻하는 아나키(Anarchy)에서 연상해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나 어원은 같지만 둘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아나키는 지배자가 없는 상태, 아나키즘은 지배(권위)가 없는 상태로 무권위주의탈권위주의, 반강권주의란 표현이 더 맞다. 혹은 비권력주의라는 번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아나키즘은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권력을 부정하는 의미에서 정부의 권력을 부정하는 것이지, 정부의 권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 아나키즘이 부정하는 권력은 정부 뿐만 아니라 종교, 사회, 문화단체 등 강압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떠한 권력에도 해당될 수 있다.

사실 루동 때는 집권자들이 자신들에게 하는 '혼돈+주의자+놈들(아나키스트)'라는 욕에 대한 "그래 우리를 아나키스트라고 불러라. 그래서 어쩌라고???" 식의 반항과 도발의 의미로 처음 쓰였다고 한다.[5] 일종의 극좌 사상이다.[6]

2. 내용

samegaesekkidifferentcollar.jpg
[JPG image (Unknown)]

아나키스트들이 다른 권위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역사적, 사상적 인식과 비판을 한방에 깔끔하게 표현한 짤방. 해당 이미지는 전국 노동 연맹 소속의 한 스페인 네티즌이 편집한 것으로, 스페인어 자막으로 "형태만 변할 뿐이지, 우리를 핍박하는 건 변치 않는다(Las formas cambian, los sometidos somos siempre los mismos)"라고 적힌 후, 아래에 "목줄은 변해도 개X끼는 개X끼다 (Mismo perro, distinto collar)"라고 적혀있다. 즉,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적 억압의 문제는 권위주의적 체제 자체의 문제이지, 입으로 우리 당은 민주주의, 저쪽 당은 공산주의 따위 갑론을박은 지배 계급 내의 무의미한 부차적인 차이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한자 역어인 '무정부주의'라는 단어가 얼핏 보면 무질서를 숭배하며 정부를 없애 세상이 혼돈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상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는 완벽한 오해다.

진정한(주류) 아나키즘은 개인이 권력, 권위, 통제기관으로부터 억압되지 않고 상호부조와 상호이해로 무장하게 되면 대동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주의적 사상이다. 일견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이론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전체주의, 자본주의, 권위주의, 공산주의 등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꿈꾸던 인간들을 핍박할 때 그들의 위안이 되고 방패가 되었던 것이 바로 아나키즘이었음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이 아나키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아나키스트가 된 다수의 사람들은 제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치던 시절, 이를 종식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 후 공산주의를 가장한 전체주의와 그로 인한 반공 권위주의가 판을 치던 냉전 시절에도 여러 곳에서 반핵반전 운동을 지원했다. 굳이 무정부주의라고 표현한다면 그들이 말한 무정부는 그들의 정부가 나쁘기에 전체든 일부든 나쁜 점을 없애야된다고 주장한 것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아나키즘은 상당히 '열린' 개념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자신의 사상을 아나키즘이라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 그 어떤 기관, 조직도 용납 안된다(다 개인을 억압, 착취하게 되므로)
  • 개인이 자율적으로 결성한 자치기관, 조직은 괜찮다
  • 다 필요없고 자연으로 돌아가자

등의 견해가 갈린다.[7] 어쨌든 그 어떤 아나키즘이라도 국가, 관료제, 시장 등에 의해 억압받지 않는 자유지상적인 사회를 목표로 한다는 점은 공통된다. 또는 블란델-고스초크 모델의 정치 성향 관계도에서는 사민주의의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참고

또 아나키즘에서 중요하게 여기는게 자발적 가입과 탈퇴인데 국가를 포함해 모든 조직은 자발적 의사의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워야하며 모든 제도가 중앙집권보단 분산된 형태로 운용되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것을 지향한다.



2.1. 딜레마와 사회 혁명

아나키즘 태동기부터 현재까지 정부, 군대, 경찰과 같은 기관들의 역할과 존재 여부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나키스트들이 원하는 건 결코 혼란과 무질서가 아니다. 이것은 허무주의자들이 바라는 것.[8] 아나키즘도 조화로운 질서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참된 질서는 소공동체의 자치적 질서이지[9] 국가권력, 시장이 강요하는 질서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민중을 착취하는 질서이므로 이는 거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들도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고 민중을 착취하는 세력으로 국가만을 드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적 혼란과 외국, 외적 등 대외적 요인도 든다. 일반적인 정치학에서는 이런 점을 들어 경찰이나 군대의 필요성을 말하는데 아나키즘은 현실에서 경찰과 군대를 위에서 설명된 '집중된 권력이 강요하는 질서'와 착취세력의 권력유지수단으로 보니 아나키스트의 주장에 앞뒤 모순되는 점이 있다. 물론 아나키스트들에 따라 경찰은 되지만, 군대는 안된다는 경우도 있고(훨씬 폭력적이고 비인권적인 수단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으니깐) 의견은 다양하다. 군대 무용론 참고. 이런 류의 아나키스트들 다수의 의견은 주로 특정 사회 내에선 자체적인 치안 유지 수단(자경단, 민병대 등)을 통하여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민병대로 외국 정규군을 막을 순 없으니 전시 체제에서만 군대를 만들자는 의견도 있고, 실례로 코스타리카 같은 몇몇 국가들의 경우엔 평시 군대가 폐지된 상태이다. 그래도 어찌됐든 전시엔 역시 군대가 필요하고 또 현실의 군사 분쟁 지역 등에선 자경단이나 민병대 같은 중앙 통제가 없는 물리력이 폐해를 일으키고 있으므로 아나키스트의 주장은 비현실적이다는 비판도 있는 바, 궁극적 아나키스트들은 기존 억압들의 혁파를 세계규모급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아나키스트들이 아나키즘의 핵심적인 필수요소로 주장하는 '사회 혁명' 개념이 등장한다. 단순히 기존 정부를 없앤다고 사회 구성원이 평화롭고 조화로운 삶을 누리는 진정한 아나키즘이 실현되는 게 아니라 공동체가 위에서 강요되는 질서를 거부하고 상호부조 정신으로 무장하는 내부적 변화를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의 설명에 따르면 소말리아이라크는 사회 변화가 없이 정치 체제의 공백만 발생했으므로 혼란과 갈등, 폭력이 지배하는 악성 사회가 되었다고 본다.한마디로 인류급 사상개조하자는 것 따라서 중앙 권력이 없어도 사회가 구성원의 자율적 합의에 기반하여 유지되려면 기존의 사회 구조와 의식 자체가 변화해야 하며 이 핵심적인 변화를 단순히 윗사람들이 바뀌는 것일 뿐인 정치적 혁명(political revolution)보다 차원 높은 혁명인 사회 혁명(social revolution)이라 부른다.

하지만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이러한 의식개조를 집단적으로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렵다.전복주의자라고 욕이나 안먹으면 다행이지 전세계 인류급은 고사하고 아나키즘을 기치로 내건 소규모급의 국가조차도 찾기 어려운 상태니.. 아직까지 현실은 시궁창인 셈. 만약 이게 가능하다면 한낱 짐승에 불과했던 인류가 도구를 쓰고 말을 하고 윤리를 정립하면서 인간으로 거듭나고, 부족과 국가를 설립하기 시작한 석기-청동기 시대처럼 의식변화를 맞이함으로써 다시 한번 단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진보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물론 현재로선 조선시대 사람이 지금 세상을 상상하지 못하듯 허황되게 들리겠지만. 더 이상 19세기 말의 낙관주의가 통하지 않는 현실의 아나키스트들은 다수가 자신들의 사상적 지향점이 지금 당장의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 허황되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되, 장기적, 철학적 가치관으로서 이를 추구하고 점진적으로나마 위의 정신적, 사회적 혁명을 추구하기 위해 대중 교육, 의료 봉사, 빈곤 투쟁 같은 직접적인 대민 활동을 통해 인민과 같은 눈 높이에서 이들을 마주 보며 대중과 교류하고, 대중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대중의 의식을 또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 변혁시키는 과정을 강조한다. 이런 지향점으로 인해 20세기 초중반 유럽과 미국 교육계에서 큰 영향을 발휘 했던 프란체스크 페레르 이 가르디아의 에스꾸엘라 모데르나 운동 등 교육학 분야에서 유수의 아나키스트 사상가들이 많이 배출 되었던 편이고, 지금도 현대의 아나키스트 단체에 가 보면 선생님들이 굉장히 많은 편에 속한다[10].

3. 탄생 배경과 영향

그 탄생 배경상 사회주의, 공산주의, 여성주의, 경주의, 심지어 자본주의(머리 로스바드, 라이산더 스푸너 등을 필두로 한 북미 오스트리아 학파) 등의 사상 집단과 활동을 함께 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며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4. 허무주의와 다른 점

물론 정말로 무질서와 혼돈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활동을 벌인 아나키스트들도 있지만 그것은 정확히 아나키즘이 아닌 허무주의라고 불리며 허무주의는 단순한 파괴와 신체제 건설의 허무를 말하고 있지만 아나키즘은 조화로운 사회를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 아나키스트들을 마치 테러리스트와 동일시하는 오류는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5. 또 다른 용어 리버테리언의 유래에 대해

가끔씩 아나키스트들은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리버테리언 소셜리즘' 또는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을 아나키즘의 동의어로 사용 하기도 하며, 아나키즘을 대체하는 용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아나키즘의 목적이 자유와 권리를 위해 모든 권위적 체계, 사회적 기관, 사회 관계를 끝내는 것인 이상, 이러한 용법이 특이한건 아니다.

불행히도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지역)에서도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 이래로 우익들, 즉 자유시장을 지지하는 자본주의자들과 연관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계층의 수호자들은 사적 소유에 대한 추구를 그들의 권위적 체제를 위하여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와 연관 시켰다. 이것은 진정한 리버테리언들에게는 불행함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불행하게도, 돈의 힘 덕분에 그리고 미국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아나키스트 무브먼트만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용어의 전유는 그것이 기본 의미가 되게 할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다소 아이러니 하게도, 이 우익 리버테리언이라는 결과는, 우리 진정한 리버테리언들이 사회주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사용하기 위한 우리의 이름을 도난 당하게 된것에 대하여 항의를 해야 할 사태를 만들고 만 것이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머레이 북친은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는 현대 미국 우익 프로프라이테리언[11]이 아니라, 19세기 유럽 아나키스트들에 의하여 만들어졌었다."[12]

최초로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아나키스트 저널은 Le Libertaire, Journal du Mouvement Social[13]이다.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미국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이것은 미국 뉴욕에서 1858년 설립되어 1861년 까지 프랑스 아나코-코뮤니스트[14][15] '조셉 데쟉크'(Joseph Dejacque)에 의하여 출판되었다. 용어에 대한 다음 기록은 유럽에 나타났다. 프랑스 르 아브르 지역 아나키스트 의회에서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이라는 형태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1880년, 11월 16-22일). 다음해 1월 프랑스어 선언문 "Libertarian or Anarchist Communism" 이 발간 되었다. 마침내 1895년, 주요한 아나키스트인 세바스티앙 포르(Sebastien Faure)와 루이즈 미셸에 의하여 Le Libertaire가 프랑스에 출판 되었다.[16]

네틀라우(Nettlau)의 책이 1932년에 쓰여져 1934년에 수정된 것에 유의해야 한다. 조지 우드콕(George Woodcock)은 그의 저서에서 데쟉크와 포르에 관련하여 동일한 사실을 보고 했다. [17] 중요한 것은, 우드콕의 저술은 1962년이 쓰여졌지만 우익이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언급은 없다는 것이다. 더욱 최근에, 로버트 그레이엄(Robert Graham)은 데쟉크의 행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저술 했다. "그는 최초로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를 아나키스트와 동일한 용어로 사용한 인물이였다. 그동안 포르와 미셸은 아나키스트의 동의어로 리버테리언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대중화 했다." [18]

무슨 말이냐면, 루이즈 미셸은 아나키스트들이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를 우리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또다른 용어로 사용 하도록 연관 시켰다. 그리고 이것은 훗날 우리의 상징이 되는 검은 깃발도 마찬가지 였다.[19] 포르은 이후 1903년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썼다.

미국에서의 용례를 보자면 벤자민 터커[20](Benjamin Tucker, 주요한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가 1897년 2월에 논의한 토지 사용에 대한 "리버테리언적 해결책"(libertarian solutions) 이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찾을 수 있다.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 역시 자본주의자(즉 우익 리버테리언)를 공격한다.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은 "토지 독점권"이다. 좀 더 이후로 가면 "토지 보유에 대한 리버테리언적 원칙"(the libertarian principle to the tenure of land) 이 있다. 여기에도 아나키스트의 토지의 사적 소유에 대한 생각이 확실하게 적용되어 있다. [Liberty[21], no. 350, p. 5]

1920년대 아나코 코뮤니스트 바르톨로메오 반제티의 주장에서도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나타난다.

결국 우리는 사회주의자이다. 다른 사회주의자들 이를테면 사민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I.W.W(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가 사회주의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의 단 한 가지 주요한 차이는 그들이 권위주의자인 반면 우리는 리버테리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국가와 정부를 믿지만, 우리는 믿지 않는다. <Nicola Sacco and Bartolomeo Vanzetti, The Letters of Sacco and Vanzetti, p. 274>

흥미롭게도 루돌프 로커(Rudolf Rocker)가 1949년 LA에서 출간한 책에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스트 스테판 P. 앤드류스(Stephan P. Andrews)가 "가장 대재다능하고 중요한 리버테리언 소셜리즘의 주창자" 라고 저술되어 있다.[22] '이것'(아나키스트와 리버테리언을 동일시하는 것)은 1909년 영어로 변역된 크로포트킨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역사서에서도 등장한다. 그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아나키즘의 원칙... 그것은 기원했다... 위대한 프랑스 혁명의 행위에 안에서...." 다음과 같은 말도 덧붙여 있다. "오늘날의 리버테리언 역시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23]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의 가장 유명한 사용, 세계에서 가장 거대했던 아나키스트 운동은, 스페인의 아나코-생디칼리스트 CNT에 의한 것이였다. 1919년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에 대한 목적을 선언한 이후, CNT는 1936년 5월 사라고사에서 전국대회를 개최했고, 여기에는 982개의 노동조합과 55만명의 노조원을 대표하는 649명의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여기서 결의된 것중 한가지는 "리버테리언 코뮤니즘 연방에 대한 개념"(The Confederal Conception of Libertarian Communism)이었다. 이것은 Isaac Puente을 중심으로 4년 전에 출판 되어, 여러 언어로 널리 번역 되고 재간된 리버테리언 코뮤니즘에 대한 동명의 팜플릿과 관련된 결의안이었다. 그 팜플릿이 발간된 해, 즉 1932년 Federacion Iberica de Juventudes Libertarias(Iberian Federation of libertarian Youth, 이베리아 리버테리언 청년 연합)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설립되었는데, 여기서도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찾아 볼 수 있다.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는 단지 아나키스트를 자처 하는 사람들 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용된다. 그러나 그들이 묘사하는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은 아나키즘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안 모리스 브린톤(Maurice Brinton)와 그가 멤버로 소속되어 있던 Solidarity이라는 그룹은, 그들의 정치적 입장을 리버테리언으로 설명 했으며, 그들이 주장한 사회주의의 형태인 분산화와 자주관리는 아나키즘과 구별하기 어렵다.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가 아나키즘 보다 더욱 방대한 용례로 사용되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여전히 사회주의에 초점을 맞춘 좌파들에 의하여 사용되었었다.

당연하게도, 잘 알려져 있고 잘 문서화 되어 있는 '리버테리언' 이라는 단어의 사용례는 아나키스트들(그리고 좌파에 가까운 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묘사하기 위한 것이었고, 자본주의 지지자들에 의한 사용은 통탄할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저항 되어야 한다. 1980년대에 머레이 북친은 미국에서의 용례에 대하여 지적한다.

리버테리언 이라는 용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 해야겠다. 특히 '순수한 자본주의'와 '자유무역'을 위해 낙오 운동을 하면서 허울뿐인 반권위주의 이데올로기로서 포장을 하는 것에 대하여 말이다. 이들은 결코 그 용어를 만들지 않았다. 이것은 19세기 아나키스트 운동으로 부터 도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반권위주의자들에 의하여 되찾아 져야 한다. 즉 자유를 기업가 정신과 이윤으로 정체화 하는 이기주의자들이 아니라, 억압받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말을 하려는 사람들 말이다. 따라서 미국의 아나키스트들은 자유시장의 권리로서 변질되어 버린 이 용어에 대한 전통을 회복해야 한다. <The Modern Crisis, pp. 154-5>

위에 잠시 언급되어 있듯, 아나키스트들은 우익 리버테리언들을 프로프라이테리언이라는 대체어로 부르기도 한다. 흥미롭게도 어슐러 르 귄은 그 용어를 1974년 발간된 고전 아나키스트 과학소설 '빼앗긴 자들'에서 사용했다. 아나레스(아나코 코뮤니스트 행성)에서 발견되는 아나키스트 거주민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우라스의 프로프라이테리언과는 무엇도 하지 않겠다." 그러나 우라스[24]는 현실세계에선 보편적인 자본주의 세계이다.(A-Io는 미국을 대표하고, Thu는 소련을 대표하는 와중에)그리고 우익 리버테리언이라고 명시 하지도 않는다. 아나키스트 주인공인 쉐벡은 자신을 리베테리언으로 설명하는 몇몇의 인물을 만난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화는 아나코 코뮤니즘에 가깝다.(그들에게 아나키스트인가 하고 물으면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한다. "부분적으로. 생디칼리스트, 리버테리언....반 중앙 집권주의자) [25]

아나키스트와 프로퍼테리언이 '빼앗긴 자들'에서 우라스를 묘사하기 위해 꽤나 상호작용 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최초로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로 부른 프루동의 저서에서 나타난, '소유는 도둑질이며, 독재이다' 라는 주장과 분명하게 연관 된다. 프루동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배제와 이윤의 권리가 평등을 배반하며, 자유가 폭정에 의해 논해지는 것, 이것은 강도질의 정의와 완전히 동일하다.
[What is Property[26], p. 251]
프랑스의 생디칼리스트 에밀 푸제(Emile Pouget)가 프루동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조금 놀랍다.
소유와 권위에 대한 차이는 단지 한가지 원칙, 즉 사람을 노예 상태로 전락 시키려는 한가지 원칙이 다른 이름으로 출현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들의 유일한 차이는 사태를 유리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형태로 나타난다. 한 쪽에서는 재산범죄라는 이름으로서 노예제의 존재가 비추어지지만, 다른 쪽에서는 반역죄 라는 이름으로 매도되어 드러난다.
[No Gods, No Masters[27], vol. 2, p. 66]

요약하자면 우리의 정치적 관점에서 사회와 경제를 볼때 아나키스트들이 150여년이 넘도록 리버테리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용어의 역사적 용례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그들의 계층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의 현실에 무지한 자들에 여의치 않고, 우리는 이 용어를 계속 사용할 것이다.

※ 이 문단은 영국의 아나키스트 저널 Freedom press의 vol. 69, No. 23-4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6. 상징

6.1. 서클 A


아나키즘을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심볼인 서클 A는 언제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9세기 고전 아나키스트 그룹이 사용했던 적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20세기에 탄생한 심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확실한 이미지로서 남아있는 기록은 스페인 내전에서 활동한 종군기자 게르다 타로(gerda taro)[28]가 남긴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게르다 타로(1910~1937)기록된 것중 가장 오래된 서클A[29][30]
이후 1956년 11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결성된 아나키스트 그룹 AOA(Alliance Ouvriere Anarchiste)가 사용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1964년 프랑스의 단체 '리버테리언 청년'(Jeunesse Libertaire, Libertarian Youth)이 문서에 사용한 기록이 있고 1968년 이탈리아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탄생한 펑크문화는 서클A가 전세계로 퍼지는데 기여한다.
A와 O가 결합된 이 심볼은 일반적으로 프루동이 남긴 말에서 비롯됐다고 여겨진다. 그의 저서인 '어느 혁명가의 고백'(The Confessions of a Revolutionary)에 기록된, "Anarchy is Order Without Power"(아나키[31]는 권력없는 질서다.) 혹은 "anarchy is the mother of order"(아나키[32]는 질서의 어머니이다.)가 이 심볼의 의미라고 여겨진다.[33] 아나키의 A와 오더의 O가 결합된 모노그램인 이 심볼은 아나키스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그것은 아나키즘이 말하는 것은 결코 무질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촘스키는 아나키는 결코 무질서한 사회가 아닌 가능한 작은 통치와 제어로 작동되는 잘 조직된 사회에 대한 개념이라고 이야기한바 있다.

6.2. 검은 깃발


왜 우리의 깃발은 검은색인가? 이것은 '거부'라는 그림자의 색이다.[34] 검은 깃발은 모든 깃발에 대한 거부이다. 이것은 인류의 화합을 가로막고 대립시키는 국민성에 대한 거부이다. 검은색은 국가와 집단에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인류에 자행되는 끔찍한 범죄에 대한 분노이자 울분이다. 이것은 가식과 위선, 그리고 정부의 비열한 속임수에 은밀하게 모욕되는 인간 지성의 분노이자 울분이다. 검은색은 또한 비탄이다. 검은 깃발은 안정과 위대한 영광을 위해 기꺼이 피를 마신 조국에 대한 거부이며, 국가의 안과 밖에서, 그리고 전쟁에서 살해된 샐 수 없는 희생자들의 비탄이다. 이것은 노동의 결과가 강탈되어, 또 다른 인간을 도살하고 억압하는데 쓰이게 되는 현실에 대한 비탄이다. 이것은 폭압적인 계층 사회 안에서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마저 병들어 버린 현실에 대한 비탄이며, 세계를 밝힐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꺼져버린 수많은 이성의 눈물이다. 이것은 위로할 길 없는 슬픔의 색이다.
<"Why the Black Flag?", Howard Ehrlich (ed.), Reinventing Anarchy, Again, pp. 31-2>

아울러 아나키스트들은 검은색을 자신들의 고유색으로 사용하고 있다. 어둠에 다크 이는 오랫동안 검은색이 을 상징했고[35] 국가들의 국기가 화려한 색들로 채워진 반면 이를 부정한다는 의미에서 검은 깃발은 19세기 후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널리 쓰였다. 그리고 항복에 대한 반대, 깃발 자체에 대한 반대의 의미에서도 검은 깃발은 널리 쓰였다.

덧붙여 프랑스 혁명 이후 붉은 깃발이 혁명을 상징했고 붉은 깃발이 공산주의사회주의의 상징으로 쓰이게 되자 19세기 중엽부터 사회주의와 확연히 다른 노선을 걷게 된 아나키스트들은 붉은 깃발을 사용하기 좀 뭐한 감이 있었다.[36] 그래서 사회주의 계열과는 다른 상징을 필요로 하게 되자 아나키스트들이 검은 깃발을 사용하는 빈도 또한 늘어났다고 한다. 이때 굳이 혁명의 상징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끝까지 붉은 깃발을 사용한 트르 크로포트킨 같은 사람도 있었다.



  • Le Monde illustré지의 사건에 대한 삽화[37]

검은 깃발이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최초로 등장했는지는 불명확하나, 아나키스트들이 어째서 그것을 널리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남아있다. 1871년 파리 코뮌의 유명한 참가자였던 루이즈 미셸[38]이 아나키스트들에게 검은 깃발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다. 1882년 3월 18일 파리 코뮌을 기념하기 위한 공개 회의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붉은 깃발은 더이상 적절하지 않다. 고통의 검은 깃발을 들어 올리자."[39] 다음 해 그녀는 그 말을 행동으로 옮겼다 아나키스트 역사가 조지 우드콕(George Woodcock)에 따르면 1883년 3월 9일 프랑스 파리 실업자들의 시위에서 그녀는 검은 깃발을 들고 등장했다. 실업자들의 야외 시위는 500여명의 규모였고, 미셸은 검은 깃발을 들고 "빵과 일이 아니면 총알을!"(Bread, work, or lead) 이라고 외치며 생제르망 도로를 시위대의 가장 앞에 서서 행진했다. 그리고 군중은 경찰에게 공격 당하기 전에 3개의 빵집을 공격했다. 그녀는 구속되어 6년의 독방 감금형을 선고 받았으나, 공공의 압력에 의해 곧 사면 되었다.[40] 같은 해 8월 출판된 리옹 지역 아나키스트 신문 Le Drapeau Noir(The Black Flag)은 검은 깃발은 아나키스트 그룹 사이에서 유명한 심볼이 되었다고 보고 했다.[41]

한편 러시아에서는 1905년 'Chernoe Znamia'(black banner) 무브먼트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검은 깃발이 쓰이지 않은 걸로 보인다. 그 해의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혁명이 좌절된 이후 아나키즘은 또 다시 지하로 숨어들어가야 했다. 1917년의 혁명 동안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은 재등장하게 되었다. 그 해 2월, 페트로그라드의 차리즘 타도 시위에서 아나키스트들은 검은 깃발에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새기고서 참여했다. "권위와 자본주의를 타도하자!" 활동의 일환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임시정부의 반혁명 시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대부분의 도시와 마을에 무장 분견대를 결성했고 이들은 '검은 수비대'(Black Guards)로 불렸다. 그리고 조금 암울한 기록이 있는데, 1921년 2월에 아나키즘의 검은 깃발이 소련에 나타났다. 그 달엔 크로포트킨의 장례식이 모스크바에서 열렸었다. 2만여명의 참석자들이 그의 명예를 위해 검은 깃발을 들고서 행진 했는데, 거기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소련 아나키즘 최후의 기록들
"권위가 있는 곳에 자유는 없다."[42]
크로포트킨의 장례식으로 부터 '고작' 2주만이 지나서 크론시타트 반란실패로 돌아갔고, 아나키즘은 소련에서 삭제 되었다.[43]

6.3. 졸리 로저

우크라이나 혁명적 반란군의 깃발[44][45]네스토르 마흐노,[46] 1888년 10월 26일~ 1934년 7월 6일
아나키스트들은 해적을 상징하는 졸리 로저를 자신들의 심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해적기의 바탕이 검은색 이기도 하고, 해적 이라는 용어가 현대 정보화 시대에 벌어지는 특정한 사이버 운동과도 연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47]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커다란 이유는 적백내전 당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활동한 아나키스트 혁명가 네스토르 마흐노의 영향이 크다.
"승리 혹은 죽음. 이것이 역사의 순간에서 우크라이나 농민이 직면한 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수는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류애라는 신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입니다. 그것은 과거의 수많은 승리가 결국에는 새로운 주인에게 자신의 운명을 맞김으로써 끝나게 된 위선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신의 손으로 운명을 부여잡고, 우리 자신의 의지와 우리 자신의 진리에 따라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Manifesto of the Makhnovists, written in 1918 by Nestor Makhno>[48]

1918년 초 새로운 볼셰비키 정부는 동맹국[49]과의 정전을 위해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서명한다. 그러나 거기엔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광활한 영토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에 대항하여 각지에서 파르티잔이 결성되었고, 독일제국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였다. 네스토르 마흐노가 결성한 '우크라이나 혁명적 반란군', 즉 '검은 군대'는 가장 주요한 파르티잔 이였다. '검은 군대'는 남부 우크라이나에 권위를 부과 하려는 모든 세력과 맞섰다. 즉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Ukrainian People's Republic)의 내셔널리스트(민족주의 & 국수주의)들, 조약으로 들어온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점령자들, 친독 보수파의 '헤트만 국가'(Hetmanate Republic, Ukrainian State), 포그롬[50] 그리고 러시아 제국 잔존세력의 '하얀 군대'와 볼셰비키의 '붉은 군대', 아타만[51]이 이끄는 작은 군벌 세력들까지 모두에 맞섰다. 검은 군대가 다른 모든 세력들과 대립했던 우크라이나 남동부 지역은 1918-1921년 동안 '자유구역'(Free Territory)이 만들어졌다.[52] 이 곳에선 'Nabat' 이라는 이름 아래에 최초로 열린 아나키스트 그룹의 회의에서 회자된 5가지 요소가 적용되었다.
1. 모든 정당 중지
2. 모든 독재 거부
3. 모든 국가적 개념 부정
4. 모든 '일시적 기간[53]프롤레타리아 독재 부정
5. '자유 소비에트'에 의한 노동자 자주관리[54]
자유구역의 거주민들[55]은 숙고집회(Deliberative assembly)를 열어 국가와 자본주의를 폐지하고, 자유 소비에트(free soviets)와, 리버테리언 코뮌(libertarian communes)을 만들었다. 토지와 공장은 몰수되어 노동자 자주관리가[56] 구현되었고, 크로포트킨의 이론에 따라 농촌과 도시간의 자유 교역(free exchange)에 기반을 둔 경제가 형성 되었다.[57]

자유구역은 1920년 까지 제국의 '남부 러시아 정부'(South Russian Government)와 안톤 데니킨(Anton Denikin)이 이끄는 하얀 군대와 대치했으나, 1920년 11월 검은 군대와 붉은 군대가 동맹하여 최종적으로 하얀 군대를 격퇴했다. 페트로그라드의 볼셰비키 정부는 처음에는 자유구역의 독립을 약속으로 동맹을 맺었다.[58] 그러나 볼셰비키는 성장하는 검은 군대와 아나키즘의 영향력이 확대 되는 것을 우려했다.[59] 볼셰비키는 자유구역은 마흐노가 군벌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수작이라고 거짓 선전를 하기 시작 했다.[60] 볼셰비키 신문은 자유지구의 지도자들은 민주적이 아니라 마흐노의 군벌에 의해 선출 되었다고 선전했다. 그리고 소비에트의 철도원과 전신 기사에게 음식 제공을 거부했고, 마흐노 헌법엔 체제를 위한 특별한 부분이 있어 고문과 비밀 처형이 자행 된다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주장했다. 마흐노의 군은 보급을 위해 붉은 군대의 호송대를 약탈했고, 브랸스크에서 장갑차를 강탈했다고 선전했다. 또한 Nabat은 잔혹한 테러리스트라고 주장했다.[61] 결과적으로 볼셰비키는 협정을 파기하고 1920년 11월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대규모 군사 점령이 감행 되었다. 마흐노비스트와 비볼셰비키 그룹의 활동은 억제되었고 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설 되었다. 마흐노는 1921년 8월 루마니아의 국경을 넘어 파리로 망명했고, 그곳에서 목수로 일하다가 1934년 결핵으로 사망했다.

6.4. Bisected Flag


아나키즘은 어느 사상보다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기로 유명한데 이 다양한 분파들이 서로 자신들의 사상을 잘 나타내기 위해 아나키즘에는 Bisected Flag라고 불리는 2등분 깃발이 존재한다.


워낙 다양해서 설명하기 복잡한데 간단히 설명해 보자면

  • 흑적기는 아나코 공산주의(무권위 공산주의)이나 아나코 디칼리즘(혁명적 조합주의)[62][63]을 상징한다.

  • 흑황기는 아나코 자본주의를 상징한다. 아나키즘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크고 아름답고 넓어서 소위 말하는 무정부 자본주의까지 존재한다! 물론 이들이 여타 혁명적 아나키스트들과 사이가 좋을 리 만무하다(...)

  • 흑녹기는 녹색 아나키즘 [흔히들 환경운동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진 녹색당의 그 녹색 맞다.]이나 아나코 프리미티비즘을 상징한다.
  • 흑자기는 아나코 페미니즘을 상징한다.

  • 흑분홍기는 아나코 퀴어라 불리는 동성애자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사용된다.[64]

  • 흑백기는 아나코 평화주의을 상징한다.

  • 흑주황기는 상호부조 아나키즘을 상징한다.

  • 흑회기는 아고리즘[65]을 상징한다.

  • 흑청기는 아나코 트랜스휴머니즘[66][67][68][69][70] 상징한다.

그 외에 다양한 2등분 깃발에 대해 추가바람.

7. 아나키즘의 분파들

루동: 이봐, 아나키즘의 스펙트럼을 보라구. 어떻게 생각해?
마르크스 : 넓고... 아름다워요...

위의 대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나키즘의 분파는 극좌부터 극우까지 엄청나게 다양하다. 흔히들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 때문에 좌파 아나키스트들은 좌익들로부터 '기회주의자'라거나 '모험주의자'라는 평가를 듣곤 하며[71] 심지어는 '우익분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물론 우파 아나키스트들은 우익들로부터 '빨갱이'라고 까이곤 한다.(...)회색분자

7.1. 고전적인 아나키즘

7.1.1. 상호부조론

상호부조론은 아나키즘의 가장 기본적인 사상이자 가장 기초적인 단계로 알려져있다. 인간의 자발성에 기초한 상호부조의 연대로 공동체를 구축해 나간다는 이론을 의미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집단주의(집산주의)적 사회 사상에 대한 대안으로 많이 언급되었고 한국의 아나키스트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까지도 아나키스트들의 핵심 원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마음 맞는 사람끼리 뭉쳐서 서로 하하호호하며 마을을 하나 맹글고 살아간다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7.1.2.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아나코 인디비주얼리즘(Anarcho-individualism)으로도 불리는 이 사상은 사회 사상으로 보긴 좀 뭣하다. 그저 개인의 자기결정권과 개인적 성향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사상으로 보는 편이 옳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개인주의적 전통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자주권과 자주성, 자발성의 밑바탕이 되었고 이는 아나키즘의 토양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아나키스트들은 자발성을 제 1의 원동력으로 이야기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자유의지주의와는 좀 다르다. 항목 참조.

7.1.2.1. 윌리엄 고드윈의 인도주의적 아나키즘

"정부는 변화의 영원한 적이다. 정부의 특정한 제도를 자세하게 들여다본다면 그것이 바로 사회에 존재하는 원동력을 그 활동을 마비시키는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악습을 영원토록 조장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순수한 성향을 전도시키며, 우리를 완전한 상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집착하게 만든다. 그것은 언제나 퇴보하여 결코 전진하지 않는 것이 인간정신의 본질인 양 우리들에게 공공복지를 혁신과 진보가 아니라, 선조들의 결정을 신중하게 따를 것을 촉구한다."

최초의 아나키스트라 일컬어 지는 '윌리엄 고드윈'은 공리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정의의 목적은 최대의 '일반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하였다. 최대의 '일반선'이란 무엇인가? 고드윈은 당대의 영국 철학자들 처럼 인간의 의식에는 선험적인 어떠한 것도 각인되어 있지 않다는 '타불라 라사'가설을 지지했다. 그에 따라 다른 공리주의자들 처럼 도덕에 대한 어떠한 후차적 해석을 배격하고 인간의 감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단순하고도 직접적인 요소인, 쾌락과 고통의 관계에 집중했다. 그는 쾌락을 높이고 고통과 불행을 낮춤으로서 공리를 극대화 하는것이 정의로운 것이라고 했는데, 그는 여타 공리주의에 따른 비판인 소수의 배격이라는 문제를 해결 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의 이론에서는 '일반선'과 '개인선'이 상충하지 않는다.
그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며, 모두 동일한 감각을 가지고 있고, 내가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어려 하듯, 그러한 행위는 누구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의심할바 없이 우리가 모두 인간이라는 보편적 공통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도덕의 목적과, 공리가 그 인간적 보편성을 목적으로 하고 그것을 기초로 하여 공리 극대화라는 목적성을 띤다면, 개인의 권리가 침해 당하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그것은 당연히 인간의 보편성에 기반을 둔 공리는 나의 권리에 기반을 둔 것이나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틀안에 내가 포함되므로, 인간에 대한 공리 극대화는 곧 나의 공리를 올리는 것이며, 인간에 대한 공리의 향상의 결과로 개인은 이성이 우리에게 부여한 추론과 진리를 바탕으로 더욱 개선된 판단으로 공리를 끌어올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가치는 평등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동등함은 정의의 요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정의의 목적이란 최대의 '일반선'의 창출이며 그렇기 위해서는 도덕적 단계는 계속해서 진보해 나아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진보를 주장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저열한 것들이 존재한고 있다는 것을 묵시적으로 주장한다. 분명 인간은 보편적인 인간으로서의 동일성과 이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평등하다. 그러나 모든 개개인은 고급 쾌락을 즐기는 자가 있는 반면, 저급한 쾌락을 즐기는 자가 있고, 지적이며 애타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자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다. 우리는 그의 공리주의적인 입장에 따라 어떠한 행위를 하는 자가 더 가치있는가 판단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당연히 그러한 행위가 더욱큰 '일반선'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드윈은 인간의 가치를 4단계로 나눈다.
- 최하층에 속한 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노동에 시달려야 하므로, 삶에 행복을 느끼거나 여러가지 지적 활동을 하게할 물질적 시간적 여유란 없다.이들에게 행복(쾌락)이란 기껏해야 더 적은 고통을 기도하는것 뿐이다.
-그 다음 서열은 부자들이다.
이들은 최하층 노동자들과는 다르게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으나 단지 그것 뿐이다. 이들에게 쾌락이란 육체적 향략같은 저급쾌락일 뿐이며, 잉여자원을 저급 쾌락에만 사용하며 어떠한 '일반선'도 창출해 내지 못한다.
- 그 다음 서열은 '취미의 인간', 예술가나 학자와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노동자나 부자로 분류되는 유형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학문을 존중하며 진리를 탐구한다. 즉 이들은 지적쾌락, 고급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지식을 나누며, 사회에 이바지 하기 보단 자기만족을 위해 지식을 탐구하는 자들이다.
- 마지막으로 최상의 유형은 '박애의 인간'이다.
이들은 '취미의 인간'들 처럼 지적 고급쾌락을 추구하는 자들이나, 개인의 지적 만족을 얻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누며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인류의 보편적 행복에 이바지 함으로서 쾌락을 느끼는 자들이다. 이 박애의 인간이야 말로 정의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다.

고드윈은 인류자체의 진보를 위하여 개개인은 스스로를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이란 개인적인 힘으로 이루어 질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의 집단에서, 사소한 이득을 위해 서로를 배신하고 증오하는 사람이 아닌, 지적 고급 쾌락을 향유하며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위해 협력과 박애를 주장하는 사람이 탄생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마찬가지로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며,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표현하기 전에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는 사회라면, 지적 탐구자가 탄생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생각을 하게 하는 우리 자신은 세계에 던져진 채로 무력하게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현실을 부정한채 모든 책임을 단지 개인에게 떠넘기며 의식의 진보를 요구 하는 것은 광인의 망상이나 다를바 없다.

"사회는 만일 그 구성원들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비참한 노예상태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자유는 진리를 전달한 피고측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그가 생각한 바를 말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어린아이를 통제하고 억압하면서 어린 시절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큰 모욕이며 얼마나 무지몽매한 소치인가."


따라서 고드윈은 모든 억압의 분쇄를 주장했다. 그것은 국가적인 것이건, 정치적인 것이건, 사회적이건, 종교적이건, 경제적이건, 가부장적이건 개인을 억압한다면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인간의 도덕적 진보, 일반선의 극대화를 위한 전제 조건 이라고 고드윈은 말했다.

"진리는 오직 그것을 가장 성실히 숭배하는 자에 의해서만 완만하고 지속적인 수준에 따라 완전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개혁을 하게 될 것이지만 혁명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급진적인 사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고드윈은 혁명을 부정했다. 그는 단순히 혁명을 주장하는 그러한 행태는 너무나 무책임하고 이상주의적 이라고 했다. 반면 그는 여론의 개선과 의식의 계몽을 주장했다. 우리를 지배하는 국가, 권력, 체제, 종교, 가치는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요소이며 유일한 실체인 인간 의식의 인정으로 인하여 어떠한 방식으로건 존재하게 된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존재하지 않는 그 허상들은 우선 인간 의식의 계몽으로 그힘을 잃어야 하며, 그 뒤에야 체제의 변환이 이루어 질 수 있는 법이다. 이러한 대중 의식의 상태를 무시한다면, 개혁이나 혁명이 아무리 고결하고 완벽한 이상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하다라도, 좋은 결말을 맺을 순 없다. 그러한 혁명이란 폭력과 야만, 또다른 독재자와 폭정, 더 수구적인 체제로의 반동으로서 귀결될 것이라고 고드윈은 주장했다.
7.1.2.2. 막스 슈티르너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
"국가는 누구든지 자기의지를 가지지 말것을 강요한다. 만약 한 인간이 그것을 가졌다면 국가는 그를 배제하고 폐쇄하고 추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만일 모든 인간이 그것을 가진다면 그때는 그들이 국가를 배제할 것이다. 자기의지와 국가는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적대관계에 있는 힘이다. 양자간에 영원한 평화는 있을 수 없다."

정신의 발전
인간은 '자기의지'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나, 탄생하는 순간 '자기의지'로 자신의 존재에 책임을 져야하는 피투적 숙명에 놓이게 된다. 모든것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는 자기자신의 고유성과 타자와의 충돌을 경험하며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유지해야 하는 인정투쟁이 불가피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은 물질과 자연의 힘 앞에 강요를 당한다. 그러나 그는 곧 자기 자신의 결정과 용기로 이내 강요를 극복하며, 자신을 강요해 왔던 대상들이 자신의 용기와 의지보다 약하다는 실체를 깨닫고서는 그것들을 더이상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내 인간은 정신을 발견하며 관념의 동물이 된다. 인간은 새로이 발견한 정신의 힘으로 세상을 극복하려 한다. 그는 사상이란 이름의 유령을 만든다. 그 사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신, 조국, 민족, 그리고 '인간일반' 같은 것들이다. 동시에 그것들은 어디에서나 존재하며, 또한 어디에서나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 같은 것들이다. 어째서인가? '국가와 신' 같은 것들은 그자체로서 존재하지 않는 '관념'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존재하기 위해선 관념의 '동물'인 인간의 '의지'가 필요하다. 사상은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정당성을 보유하기 위해 관념을 '천상의 것'으로 드높였고, 반대로 '대지의 것'은 경멸할만한 것으로 매도 되었다. 인간 자신의 의지 마져도. 그리고 이내 인간은 그 신성한 사상들을 의심하게 되며, 사상에 지배당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을 문제삼는다. 그는 사상들의 배후에서 개인의 의지를 본다. 따라서 그는 사상을 숭배의 대상이 아닌, 관념의 동물인 인간의 창조물로서 여기게 되며 자신의 본래 힘을 깨닫게 된다. 그는 사상들을 휘어잡아 모든 것을 자기존재와 연결시키는 '에고이스트'로서의 개인이 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사상들은 육체화 되어 더이상 인간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며, 되려 인간에게 명령을 내리는 신성한 것이 되었다.

이러한 유령들은 본디 나의 힘이다. 나는 나의 힘의 소유자이며, 나는 그러한 힘을 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나 자신을 위하여 철저히 '에고이스트'적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유령은 스스로 힘을 얻어 반대로 창조자를 지배하게 되었다. 개인이 유령에게 휘둘리는 것은 '자기소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러한 자기소외로 부터의 탈피를 위해선, 우선 모든 사상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창조한 에고이스트로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자각해야한다. 슈티르너는 그의 저서 '유일자와 그의 소유'의 첫번째 장에서, 개개인 본래의 모습인 '에고이스트적 인간' 대한 자각을 다음과 같이 요구 한다.

나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무이다.
"대체 나의 관심사가 아닌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선이란 이유, 그리곤 신, 인류, 진리, 자유, 인간성, 정의, 그 다음으로 나의 국민, 나의 군주, 나의 조국이라는 것, 끝으로 정신과 그 밖의 다른 무수한 것들이 모두 나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오직 '나'의 것만이 결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러니 부끄러워하라, 자신만을 생각하는 에고이스트여!"[72]

유일자와 에고이스트
슈티르너의 사상을 일반적으로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이라고 부른다. 에고이즘은 이기주의 혹은 자아주의로 번역된다. 여기에는 주의 해야할 점이 있는데, 슈티르너가 말하는 에고이즘이란 독자를 향한 요구가 아니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에고이스트로 보았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자신이 에고이스트임을 자각하는 자발적 에고이스트와 그렇지 못하는 비자발적 에고이스트로 나뉜다.

"그대가 신의 계명과 그 밖의 명령에 그토록 귀 기울이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대는 아마도 오직 신만을 위한 친절에서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대는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대가 주체이고, 각자는 자신에게 '나'만이 모든 것이고, '나'는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행동한다고 솔직히 털어 놓아야 한다. 만일 신과 명령들은 오직 그대에게 해를 끼치며, 그대를 파국으로 이끄는 것이 사실로 판명된다면 당신은 마치 기독교인이 아폴로나 미네르바 또는 이교도의 도덕을 비난하여 예수나 성모, 기독교의 도덕으로 대치시킨 것처럼 그것들을 폐지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의 안식을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이다."

만일 당신이 종교를 가지고 신을 숭배하여 내면의 안식을 얻는다면, 그대 자신의 위해 그렇게 행동 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당신이 재물을 탐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만일 당신이 재물보다 금욕을 택한다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내면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혹은 그대가 독재자의 탄압이 두려워 침묵하기를 선택 했다면, 그것은 그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혹은 그대가 독재자의 아래에서 안락함을 택했다면, 그 또한 그대 자신의 안위 때문이 아닌가? 혹은 그대가 국가나, 민족을 위해 행동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것이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힘과 풍요 때문이 아닌가? 그대가 신과 국가, 민족, 그리고 '돈'과 같은 것을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대는 그대 자신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대는 에고이스트이고, 그대가 그러한 사실을 자각한다면, '자발적 에고이스트'로서 사상에 매몰되지 않는 자기 자신의 소유자가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는 '비자발적 에고이스트'는 그러한 사상들이 본래 자신이 만들어낸 창조물인지 모른채 그것에 지배 당하여, 자기자신으로부터 소외 된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상이 자신의 창조물임을 자각한 자발적 에고이스트에게는 신성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허나 비자발적 에고이스트는 사상을 신성한 것으로 여겨 숭배한다. 그러한 행위는 사상을 방대하게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어째서일까? 사상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이고, 인간만이 생각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허상이 힘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 자신의 의지가 박탈당하여 허상에 의하여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상이 숭배될수록 인간은 약화된다. 결국 이러한 숭배는 현실과는 반대로 사상을 실체화하고 인간을 허상화 함으로서 인간을 극단적인 자기소외의 길로 이끄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비판은 여기서 멈춘것이 아니다. 그는 사상과 인간의 주객이 전도 되는 것만을 문제삼은 것이 아니였다. 대부분의 학자들은[73] 인간과 사상이 전도된 것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거기서 생각하기를 그만두고,사상이 인간을 술어화 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에 대하여 탐구하였다. 허나 그는 인간이 사상화 되어 개인을 술어화 하는 문제에 대한 비판까지 나아간다.

"근대의 입구에 '신인'이 서 있다. 그 출구에는 '신인' 중에 신만이 사라져 버렸을까? 그리고 만일 '신인' 중에서 신만이 죽었다[74]면 신인도 실제로 죽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이러한 물음을 고려하지 않고 오늘날 승리감에 도취되어 계몽의 사업인 신의 극복을 완성하여 과업이 완성된줄로 착각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75]이 스스로 유일신이[76] 되어 높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신을 죽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 비록 신이 자리를 내주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위해서였다. '신인' 가운데 신만이 아닌 인간까지도 죽지 않는 한 과연 '신인' 이 죽었다고 믿을 수 있는가?"

그가 신이라는 말과, 인간이라는 말을 합친 '신인' 이라는 표현을 한점에 주목하라. 어째서였을까? 철학의 입장에서 볼때 신은 오랜시간 정신의 세계에서 권력을 휘두른 독재자이다. 그렇다면 신이 죽어버렸다면, 인간은 찬사를 불러야 하는 것을 그는 굉장히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은 신이라는 사상을 만든 창조자이다.그렇기에 허상인 신이라는 말을 독단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실체인 인간을 붙여서 '신인' 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나. 그러나 문제가 있는데, 나는 인간일까? 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냐? 그들이 말하는 인간이란, 우선 많은 수의 개인들에게서 포착 되는 '일반적인' 특징과 그들이 '인간적인' 이라고 부르는 미덕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되지 못한 개인의 고유성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결국 신성화된 인간이라는 유령 아래서 억압받을 노예가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인간은 새로운 독재가 되려 하고 있으나,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나요, 유일자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문제를 생각치도 않은 채 '인간적인' 이라는 미덕에 대하여 탐구하고, 과거의 사제들이 그러해왔던 것과 같이 동일할 정도로 개인을 지배하려는 새로운 율법을 만들고 있다. 슈티르너는 이러한 새로운 신을 향한 숭배 사상이, 이전의 종교 보다도 방대하고 억압적인 것이라고 했는데, 그이유는 '인간' 이라는 사상이 다른 시대의 유령과는 다르게, 나의 무언가에 대하여 말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더욱이 개인이 가진 인간이라는 보편적 무엇에 대하여 말을 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서, 개인에 대한 지배를 더욱 심원적이고 더욱 은밀하고, 더욱 일상적인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였다. 슈티르너가 볼때 이러한 학자들의 논의는 사제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정신의 지배를 더욱 일상적인 영역까지 확장하려는 무시무시한 시도를 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사제들보다 위험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때 당대의 학자들, 특히 청년 헤겔학파 철학자들은, 기독교의 억압을 극복하는 것이아니라, 그것의 모양을 변형한 채로 억압을 계승시킨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간교는 단지 기독교의 마지막 변형일 뿐이다. ...... 인간교는 나의 본질을 나에게서 분리해 그것을 나 위에 놓는다. ...... 인간교는 다른 종교가 그들의 신이나 우상을 찬양하는 것과 동일한 정도로 '인간'을 찬양한다. ...... 인간교는 내것을 다른 세계의 어떤 것으로 만든다. ...... 요컨데 ...... 인간교는 나를 인간 아래에 놓고, 그럼으로써 나에 대해 소명을 창조한다."

슈티르너는 인간[77] 이라는 표현 자체조차도 부정적으로 생각했는데, 인간이라는 표현이 개인의 고유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사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슈티르너에 의하면 개개인은 인간이라는 말로서 표현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만인은 대체 불가능한 고유성을 지낸 유일한 존재, 즉 유일자이다. 유일자는 유일하기 때문에 수로서 표현될 수 없으며, 타인으로 대체될 수 없다.때문에 어떠한 희생도 정당화 될 수 없다.다수의 이득을 위하여 소수를 희생시킨다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그것은 소수의 희생으로 공공의 이득을 만들어 낸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이라는 이름의 유령과, 사소한 숫자놀음을 위하여 유일한 세계를 종말 시킨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꿈, 관념, 사상을 탐구하면서 시작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신성한 이론' 이기 때문이다. ...... 따라서 그대는 그대의 신들이나 우상보다도 오히려 그대 자신으로 돌아가라. 그대가 간직하고 있는 것을 당신 자신으로부터 끄집어내고, 드러내 놓고, 그리고 그대 자신을 공개하라."

소유와 에고이스트 연합
"정치적 자유는 폴리스 또는 국가가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심의 자유가 양심이 자유롭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처럼 종교적 자유는 종교가 자유롭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국가, 종교,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나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배하고 정복하는 권력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국가, 종교, 양심 같은 나를 지배하는 전제자들이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같은 국가, 종교, 양심의 전제자들은 나를 노예로 만들고 그들의 자유는 나를 속박하는 족쇄인것이다."

슈티르너는 자유라는 개념 또한 비판했는데, 주로 '소극적 자유'에 초점을 맞추어 비판했다. 반면 그가 내세운 소유란 단지 외적인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모든 내적인 압력으로 부터 벗어나 자신의 힘을 자신이 소유하여 완전한 자기해방의 길로 향하는것이 소유라고 표현했다. 심지어 그는 자유자체를 허상이라고 치부하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는데, "자유가 외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면, 정말 모든 것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라는 문제 때문이었다.

직업을 가져, 일해, 결혼해, 애도 낳아야지, 유행도 쫓아가, 평범하게 행동하고, 정도로만 다녀, TV나 보고, 법을 준수해, 노후도 대비 해야지. 그리고 나를 따라 이렇게 말하면 돼, "난 자유롭다."[78]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의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만들거나 창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그것을 원하고 동경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의 이상이요, 유령에 불과하기 때문이다.현실의 족쇄는 매순간 나의 육체에 가장 깊숙한 상처를 새겨 넣는다. 그러나 나는 나의 소유로 남는다. 내가 주인에게 노예이기를 거부할 때 나는 오직 내 자신과 이익만을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채찍질을 할 때 나는 그 매질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이익을 위해서 그것을 참아낸다...... 내가 나 자신과 나의 이익만을 응시할 때 나는 주인을 구덩이에 처넣을 수 있는 최초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에고이즘이 전제 되었을 때만이 나는 주인과 그의 채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슈티르너는 자유로운 아나키스트의 공동체인 에고이스트 연합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그는 그것에 대하여 상세하게 말하진 않았다. 다만 다른 아나키즘 사상에서 말하는 것처럼 참여와 탈퇴가 자유로워야 하고 쓸모없는 권력이 존재해선 안된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집단은 자기자신을 소유하려 하는 '자발적 에고이스트'로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만인이 자기소유 외에는 어떠한 관심사, 숭배의 대상을 갖지 않는 에고이스트의 집단은 어떠한 신성한 권력도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사물들의 배후에서 발견하고,그리고 더욱이 나를 정신으로서 발견한 것 처럼,또한 그렇게 나중에 나는 나를 사상들의 배후에서,다시 말해 나를 사물들의 창조자이고 소유자로서 발견해야만 한다.그럼에도 정신의 시대에 사상들은 사상들을 탄생시킨 나에게 더는 복종하지 않았다.다시 말하면 사상들은 고열에 인한 환각과 같이 주위를 맴돌고 나를 진동시키는 하나의 전율케 하는 힘인 것이다.사상은 그 자체로 자신을 위해 육체를 갖추게 되어,신,황제,법왕,조국 등과 같은 유령이 되었다.나는 사상들이 육체화된 것을 깨부순다.그래서나는 사상들을 나에게로 되찾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나만이 육체를 갖춘 존재이다.그리고 이제 나는 사상이 나에게 존재하는 것으로서,나의 것으로서,나의 소유로서 세계를 받아들인다.즉 나는 모든 것을 나와 연관시킨다"

7.2. 사회적 아나키즘

7.2.1. 아나코 콜렉티비즘

미하일 바쿠닌이 창안한 방식으로 단순히 이전까지의 아나키즘이 생산수단의 관리와 분배에 있어 별 방법이 없었다면 바쿠닌은 당대의 좌파 사상가들 및 사회주의자들과 교류하면서 산주의(콜렉티비즘)적 방식을 결합한 것으로서 개인주의와 콜렉티비즘의 방식의 혼합으로 평가되곤 한다. 공산주의적 집산주의가 증산에 의한 개개인의 풍요를 가져온다면 아나코 콜렉티비즘은 보다 소규모의 자급자족적 공동체를 주창했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렇다고 증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사적 생산수단을 공유하다 보면 각자 충분히 쓸 만큼 잉여자원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사상의 가장 흠좀무한 속성은 사적 생산수단의 공유다. ㅎㄷㄷ. 이는 프루동 시절부터 소유는 도둑이다 라는 사상에 기인한다고 보면 된다. 더 나아가 사적 생산수단 같은 거 없이도 자유롭게 개인간의 교역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상당부분 사회주의와 비슷한 점이 많으며 어떠한 권위나 국가스러운 기구의 간섭도 배제하며 구성원들간의 자발적인 결정에 따라 집단의 방향을 결정할 것을 주장한다.

상당부분 아나코 코뮤니즘이랑 비슷해 보이긴 하지만 기분 탓이겠지

7.2.2. 아나코 코뮤니즘

무정부공산주의. 이 사상의 대표적인 사상가는 표트르 크로포트킨이다. 이 사상은 생산수단의 공유조차 거부하며 아예 생산수단의 소유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래서 이 계열에선 화폐의 폐지도 주장했다. 크로포트킨은 유제가 개인 억압의 원인이라고 보고 이를 타파해야된다고 본 것.

다만 그는 소유권(목적물을 전면적, 배타적으로 지배하는 물권) 자체는 부정했지만 점유(possession. 물건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 사회통념상 물건이 어떤 사람의 지배하에 있다고 하는 객관적인 관계)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개인간의 필요에 따른 생산과 소유를 상당히 이상적으로 바라봤다는 평가가 있다.

접 민주주의로 운영되는 공동체인 자주관리을 사회 혁명의 이상향으로 제시하고, 이러한 들이 연합하여 집합체를 형성하여 자유연합 같은 형태를 구성할 것을 주창한다.

마 골드만도 아나코 코뮤니스트로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에 신문에 소개된 적이 있다. 1932년 2월 1일자 동아일보.

7.2.3. 정강주의

Platformism

정강주의는 스토르 마흐노(Nestor Makhno)의 이론을 근거로 하는 하나의 경향으로서[79] 국제 무정부주의 내부에 있는 무정부주의자들이 혁명적 강령 주변에 조직을 건설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구체화된 사례는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마크노의 지도력 아레 집결하여 동맹군과 백군 상대로 싸웠던 크라이나 혁명적 봉기군과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공화국과 동맹을 맺어 프랑코 상대로 싸운 전국 노동 연맹이다.

러시아 혁명 이전만 하더라도 제정 러시아에는 모스크바 중심으로 적지 않은 수의 아나키스트들이 있었고 그 세력 또한 컸으나 막상 10월 혁명이 터지자 기존의 연대 조직이 없었던 아나키스트들은 자폭 테러를 포함한 적극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하나둘씩 셰비키들에게 털리거나 흡수당했다. 이러한 상황을 본 우크라이나 일대의 아나키스트들은 혁명가 네스토르 마흐노의 이끎 아래 우크라이나 혁명적 봉기군이라는 크로폿킨의 노선을 따르면서 동시에 내부적으로 토지 재분배, 농민들과의 협력을 기반한 무장 조직을 만들어 당시 우크라이나 일대를 점령하고 있었던 독일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 그리고 안톤 데니킨 장군의 백군 상대로 혁명 전쟁을 싸우며 우크라이나 동남부 일대를 3년간 장악하였다.

이러한 우크라이나 아나키스트들의 시도는 결국 동맹을 맺었던 볼셰비키 적군의 배신과 공격으로 인하여 와해되었으나 추구하는 노선이 다른 아나키스트들이 공통적으로 관심 같는 한 사회의 특정한 문제를 기반으로 연대하여 통합 세력을 만든다는 이 노선은 20년 뒤 스페인 최대 노조였으며 스페인 내전 발발 초기 바르셀로나쿠데타군에 맞서 혁명을 일으켜 스페인 공화국의 생존에 지대한 기여를 한 전국 노동 연맹-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합(CNT-FAI)이 계승하였다.[80]

정리하자면 아나키즘 특유의 분산성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통된 혁명적 정강하에 이론적, 전술적, 그리고 조직적인 구체적인 입장들에 기초한 "무정부주의 총연합" 으로 조직할 것을 주장하는 하나의 정치적 전술이라 볼 수 있다.

근데 아나키즘이 총 연합으로 활동한 적이 없잖아. 우린 안될거야 아마

7.2.4. 아나코 생디칼리즘

흔히 혁명적 조합주의로 일컬어지는 이 무정부조합주의는 아나키스트들의 노동자 조합 사상으로 기업은 노동자들이 구성한 노동조합 혹은 노동자평의회가 운영해야 하며 자본가가 그에 대한 권위를 갖는 것을 철폐하자는 주장하는 사상이다.

현대에는 동자 자주관리 이론으로 남아있으며 앞서 말한 스페인 노동조합 전국 노동 연맹의 경우 아나코 생디칼리즘의 직접적인 계승자들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친아트가 노동자 자주관리 이론을 적극 활용하여 회사를 기사회생시킨 경우가 있다. 사례.

7.2.5. 크리스천 아나키즘

문자 그대로 크리스트교 신앙을 기반으로 세속 권력의 억압을 거부하며 참된 신앙을 가진 교인들의 상호부조를 통하여 하느님의 권력만 권력으로 인정하는 자유로운 공동체를 성립하자는 주장이다. 크리스트교 아나키스트로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톨스토이의 <나님의 왕국은 당신 안에 있다>는 이 사상의 메시지를 가장 핵심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과는 다르다 여호와의 증인과는!

다른 책으로는 끄 엘륄의 <정부주의와 기독교>를 추천한다.

7.2.6. 아나코 패시피즘

아나코 패시피즘은 정부평화주의로 번역되며 일군의 아나키스트 평화주의자들의 사상이다. 시민운동의 한 전술인 폭력 저항(흔히 말하는 저항운동)이나 민불복종은 아나코 패시피스트들의 전술로 유명하다.

7.3. 20세기 이후 개발된(또는 아직도 개발되고 있는) 아나키즘

7.3.1. 아나코 캐피탈리즘

대표적인 우파 아나키즘으로 유명하다. 오스트리아 학파의 종착역.

처음으로 이 말을은 쓴건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 머레이 로즈버드.

쉽게 말하면 자유시장경제를 극단적으로 지지하는 쪽. 그러나 일반적인 자유시장주의자들과 대비되는 점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평화적인 자발적 교역이다.

이는 제국주의가 자본주의와 달리 "사고 파는 데에 강제력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이다. 이는 훗날 유시장 아나키즘으로 변화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숫자의 고전적인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이 존재하고 있고 심지어 스웨덴에는 제법 큰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를 자유방임주의의 진화형으로 평가하곤 한다.

오스트리아 학파 출신들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신자유주의자본주의 진영에서 이쪽 이론을 많이 갖다 쓰는 바람에 아나코 캐피탈리즘은 한동안 조용할 날이 없을 전망이다.

기타 좌파 아나키스트들과 관계가 매우 안 좋다.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은 자유시장과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부의 재분배를을 주장하는 좌파 아나키즘들은 공산주의의 그것과 다를게 없으며 필연적으로 권위적인 정부에 다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좌파 아나키즘은 아나키즘이라고 부를수도 없다고 까고, 좌파 아나키스들은 우파놈들이 전통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항해온 아나키즘의 얼굴에 먹칠을 한다고 깐다.(...)

특허(Intellectual property)도 정부가 허락한 일종의 특권이자 독과점으로 보기 때문에 상당히 비판적이다.[81]

7.3.2. 자유시장 아나키즘

아나코 캐피탈리즘에서 자유의 개념과 자발적 교역의 개념을 따오고 아나키즘의 기본적인 부분인 상호부조의 개념을 섞어서 만든 아나키즘이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자본주의의 약점을 넘어서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의 역사에서 상업과 교역이 빠질 수가 없고 최초의 인간의 상업 활동은 물건끼리 교환하는 물물교환이었다. 이는 현재와 같은 독점이 아닌 상인들의 상호부조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유시장 아나키즘은 자본주의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상당부분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어려운 상인이 있으면 도와주고 그 이윤으로 서로 나누게 되는 것인데 이는 상업 협동조합이나 생활협동조합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아니라 자유시장 아나키즘이라 불려진다. 공정무역도 또한 자유시장 아나키즘에서 기인한 아이디어라 할 수 있다. 이는 대기업 중심의 상거래와 상행위를 거부하고 당사자들과 마을 간에 교환의 형태를 지지한다.

덧붙여 자유시장 아나키즘은 카피레프트 운동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자유시장 아나키즘에 따르면 특허라는 것은 국가가 부여한 특권이라는 시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7.3.3. 아나코 페미니즘

아나코 페미니즘은 세계가 사실상 남성 중심주의적인 세계 질서를 뒤엎기 위해 페미니즘적 입장으로 변혁을 주도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종종 진주의 페미니즘으로 불리기도 한다.

7.3.4. 녹색 아나키즘

인본주의적인 녹색사상을 주 테마로 하는 환경운동 아나키즘이라고 보면 된다.

7.3.5. 아나코 프리미티즘

무정부 원시주의. 우가우가

7.3.6. 아나코 자연주의

아나키즘적 자연주의를 뜻한다. 채식주의, 유연애, 체주의로 유명하다.

나체주의에서 솔깃한 사상

7.3.7. 회생태학

리 북친이 주장한 사상.

7.3.8. 후기 좌파 아나키즘

기존의 좌파들의 아나키즘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고 스 슈티르너황주의에 영향을 받은 좌파주의적 아나키즘 일파를 말한다.

7.3.9. 후기 아나키즘

후기 조주의와 혼합된 아나키즘으로 스트 모더니즘, 자파티스모(사파티스타 민족 해방전선의 사상)까지 포괄하는 사상이다.

7.3.10. 소요 아나키즘

insurrectionary anarchism

과거 리걸리즘(illegalism. 불법주의?[82])이라는 19세기~20세기 아나키스트의 폭력 전술을 이어받은 조류. 사상이라기 보다는 전술이라는 개념이 강하다. 민중봉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좌파적 사상의 연원을 따르며 접행동의 가장 강력한 전술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아나키스트라 하면 대부분 폭탄 테러나 파괴공작을 일삼는 이미지가 많은데 이것은 소요 아나키즘의 선배격이라 할 수 있는 리걸리즘 시절에 빈번하게 일어났던 폭탄 테러나 조직범죄가 이러한 이미지를 갖게 하는 데 일조했다. 1911년부터 1912년까지 활동했던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집단 노트 갱이나 이지 갈레아니(Luigi Galleani)를 추종하여 월 스트리트 한복판에서 벌어진 스트리트 폭파사건 등 당시에는 이러한 전술이 매우 유효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일리걸리즘의 기본 모토는 접행동이며 이는 기층민중이 어떠한 기관이나 단체의 영도가 아닌 자결과 자주에 의한 행동을 통해 봉기하면 사회혁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83] 이는 거대한 사회 변화나 혁명을 이야기할 때 필수불가결한 현상을 이야기 함에 있어 민중의 움직임을 시작이자 끝으로 보는 혁명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일리걸리즘은 이러한 소요와 폭동을 계속해서 일으키면 연쇄작용으로 뒤따라올 혁명을 견인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일리걸리즘은 보다 조직적이고 치밀한 폭동과 파괴를 이끄는 소요 아나키즘으로 진화하게 된다.[84] 소요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는 20세기 초반이 다 지나고 나서 생겼다고 전해진다. 사실 일리걸리즘하고 별 차이는 없거든

이들은 거대 자본으로 상징되는 맥도날드를 비롯한 패스트푸드, 의류, 은행 등의 점포를 습격하며 심지어 때로는 은행강도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85] 이들 행동의 근거는 그런 거 때려 부셔도 어차피 직원들 돈이 아니라 자본가 돈으로 땜빵한다 라든가 눈에 보이는 적부터 공격해야 한다 라든가 하는 것이다. ㅎㄷㄷ.

이들은 이렇듯 무분별한 파괴행위로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려는 보수언론떡밥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아서 욕을 엄청 먹고 있다. 영화 《틀 오브 시애틀》에 잘 나와있다.

이들은 2000년도 시애틀의 반 WTO 시위 때 활약했으며 2008년 그리스 폭동 때 막강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그리스 폭동 당시에는 경찰이 일찌감치 폭력과 총격으로 시위대를 탄압했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정당성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ㅎㄷㄷ.

7.4. 우파 아나키즘?

놀라운 것은 아나키즘에는 앞서 말한 아나코 캐피탈리즘 말고도 우파로 분류되는 사상들이 존재한다.

7.4.1. 민족 아나키즘(Völkisch Anarchism)

연원은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존재한 족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민족정서를 기반으로 한 민족공동체 확립을 목표로 하는 것은 일반적인 우파와 비슷한데 여기에 국가나 여타 다른 강제적인 단체의 개입을 반대한다. 각 민족은 알아서 각자의 공동체를 건설하면 되기 때문에 여기에는 성차별이나 인종차별이 개입할 이유가 없다. 이는 인종주의적 색채를 띄었던 우파 급진사상들과 확연히 대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종종 대안 사회주의라고 불린다. 신국가사회주의?

가장 유명한 단체로 영국의 랙 램(Black Ram)이 있는데 이들은 아나키즘과 신이교도주의(neo-paganism), 독일의 민족 국가주의 사상을 혼합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외국에 의한 지배와 국가에 의한 지배 모두를 넘어서길 원한다고 주장한다.

7.4.2. 내셔널 아나키즘

비교적 최근에 생겨난 아나키즘으로 반자본주의적, 반스탈린주의적, 급진 우파 사상이다. 이들은 상호부조의 민족공동체를 지향한다. 위에 기술한 민족 아나키즘과 별 차이는 없지만(심지어 내셔널 아나키즘도 번역하고 보면 민족무정부주의이기도 하고...)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났던 보수주의적 혁명운동(Conservative Revolutionary Movement)[86]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좀 더 반공주의적 색채가 진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점 때문에 좌파들에게는 크립토 파시즘(crypto-fascism. 비밀 파시즘)[87]이라고 불리고 엄청나게 까이고 있다.

일본의 괴짜 정치인 토야마 코이치가 여기에 속한다고 알려져 있다.

8.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시기상으로 일제시대와 맞물려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아나키즘 노선을 취한다.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인물로 우당 이회영이 있다. 김좌진 역시 공동체적 아나키스트로 불리는데 공산주의자에게 암살을 당한다.[88]

또한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은 의열단은 한국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집단으로 꼽힌다. 의열단 지도자 약산 김원봉 역시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였고, 한국사에 여러가지 의미로 큰 영향을 끼친 신채호 역시 민족주의자였다가 말년에 아나키스트로 전향했다.

황 폭사 기도사건의 주인공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도 아나키스트였다.[89] 해당항목 참조.

광복 직전까지는 그래도 아나키즘이 비교적 접하기 쉬운 사상이었는지라 단주 선생도 임시정부 요원이었고 임시정부 요원들이 환국할 때 함께 환국했었다. 이 계통은 국 자주인 연맹으로 계승된다.

그 외 더 자세한 사례는 아나키스트 항목 참조.

9. 비판

아나키즘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아나키스트라고 스스로를 밝히는 개인들 또한 다양한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아나키즘을 하나로 정의하고 비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몇 가지 공통된 비판을 받아왔으며 지금도 받고 있다. 특히 '아나키즘이 사회의 변화를 위한 사상일 수 있느냐' 는 점에서 많은 비판이 개진되어왔다. 아나키즘의 영향력이 크게 확장되지 못했던 이유를 단지 '권위주의자' 들의 억압으로 칭하기에 아나키즘 자체에 몇 가지 한계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첫째로 아나키즘은 사유체계 자체가 '비과학적' 이라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이는 아나키스트들이 상대주의적 사유를 많이 받아들였다는 점에 기인한다. 아나키즘의 역사는 매우 길기에 상대주의로부터 아나키즘이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인과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죽은 이성보다도 살아있는 생명을 강조하는 식의 낭만주의적 사고[90]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현대사회에 들어서며 지적 권위에 대한 부정 역시 권위주의에 대한 부정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왔다. 특히 60년대 이후 '부활' 했다고 볼 수 있는 아나키즘 조류들이 아나키즘이라는 이름하에 묶이는 것도 보통 상대주의 가치관에 근거한 사회운동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낭만주의, 상대주의 자체가 과학적 사유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며 수많은 사회주의자·과학자 ·철학자·역사학자 등이 상대주의적 사유체계의 한계를 지적해왔다.[91] 단순히 비판을 넘어 학문적으로도 이 낭만주의적, '반이성적' 사상적 태도가 아나키즘과 마르크스 등을 비롯한 다른 좌파 이론과 근본적으로 계보를 달리 하는 점이다. 마르크스에서 비롯된 주류 좌파 이론은 현실 세상에서는 아무리 척을 지었어도 지적 계보의 측면에서는 여전히 인간의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통한 궁극을 향한 인간 본성의 개선이란 측면에서 애덤 스미스의 자본주의 경제학과 같은 18세기 계몽주의의 후손이다. 반면에 아나키즘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 능력 자체를 회의하고 순간순간의 역사적, 지역적 상황에 따라 행동 개체의 내면적이고 본능적인 선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계몽주의가 아니라 비코와 헤르더, 쇼펜하우어 등의 사상과 통하고 있다.[92] 그리고 역사적으로 이 반계몽주의 철학에서 비롯 된 다른 아주 악질의 이데올로기가 있는데, 바로 파시즘이다. 아나키스트들은 파시즘과 달리 철학적 기반은 반계몽주의에 두고 있지만 정치적 이상은 보편인권, (직접) 민주주의, 사회 정의 등 계몽주의의 목표를 지향하기 때문에 파시스트들과 달리 존재 자체가 그 해당 사회의 독약이 되는 암적인 성격은 없고, 오히려 저런 가치관들의 존립과 존엄함이 걸린 역사적 순간에서 이를 위해 투신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래도 이성에 대한 신봉에 기반하여 철저한 통제, 소위 군기를 중시하는 이념과 집단들 보다 충동적이고, 작위적인 성격이 두드러질 때가 종종 있다[93].

둘째로 아나키즘은 종종 생각보다 더 영웅주의·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대표적인 아나키스트 옘마 골드만은 "대중은 어리석다", "개인은 대중에서 벗어나야 한다" 는 식의 표현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는 대중이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있다고 봤기 때문이다.[94]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골드만의 주장은 '깨어난 개인' 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사회 변화의 주체를 개인으로 설정한 것이며 이처럼 개인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결과적으로 영웅주의적·엘리트주의적 사관에 빠지기 쉽다. 골드만 이전·후의 많은 아나키스트들 또한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과정에서 대중을 아직 깨어나지 못한 계몽의 대상이나 소시민으로서 파악하는데 이는 사회 분석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진보적 변화 과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관점이라 지적할 수 있다.[95] 이러한 측면은 아나키즘이-적어도 주류인 좌파 아나키즘에 한하여-생산 수단의 공유라는 경제적 측면 못지 않게, 인습, 체제, 법률, 등의 억압적 기구에서 해방 된 개인주의적 성향 또한 그만큼 강조하기 때문에 생각난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대중 속으로 들어간다고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개개인 아나키스트들은 사상적으로 각성 된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충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여기에 위에 언급 된 낭만주의적 태도 까지 겹쳐 이론적으로 아나키즘은 극단적인 대중 기반의 공동체 형성을 추구하면서도 역설적으로는 미하일 바쿠닌, 네스토르 마흐노, 코와 반제티, 에나벤투라 두루티 등의 몇몇 서사시적인 영웅적 인물들을 지나치게 우러러 보며 숭상하는 경향이 있다. 대체로 다른 좌파들이 현수막에 내거는 인물들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마오쩌둥 등 아예 전업 이론가였던가, 아니면 적어도 이론에도 큰 기여를 했던 인물들인 반면 아나키스트들이 내세우는 영웅들은 반대로 바쿠닌처럼 이론적 활동은 걍 부업이었던가, 아예 관심 자체도 없이 전업 혁명가로 활동했거나,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혁명가보다 순교자로서 더 유명한 점도 눈여길 만한 부분.

셋째로 '개인' 을 사회 변화의 주체로 삼는 이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공동체를 이상으로 삼는 경우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인류학의 연구성과들이 냉담하게 보여주듯이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96]이 지적하듯이 공동체는 구성원의 정체성 유지를 위해 타자와 끊임없이 경계 지으려 시도한다. 친족 공동체가 여성을 주고 받으며 남성간의 공동체적 연대를 강고히 해왔다는 연구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타자에 대한 배타성으로 유지되는 공동체들은 타자들에 대한 공포와 질투가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고통의 전시장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또한 한국의 공동체 운동들의 험난한 역사가 말해주듯 공동체는 보통 아나키스트들이 그렇게 꺼려하는 시장·국가 등과 어떻게 관계 맺느냐에 따라 그 존립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작은 배가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버리듯 공동체가 사회 구조의 흐름에 좌초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공동체적 이상이 전사회적 구성요소로 등장하기 이전에 공동체를 강조하는 아나키즘적 사상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지적할 수 있다. 말하자면 아나키스트들이 원하는 자생적이고 자치적인 사회의 모습은 결코 폐쇄적인 공동체가 무슨 짓이든 그 공동체 안에서는 자기들 마음대로 하는 작은 사회가 아닌데, 아직까지 주요 아나키트스트 사상들은 위의 사회학적 연구의 성과들과 묶어서 본다면 아나키스트들의 결론은 작은 사회 아니면 아나키즘이 극도로 혐오하는, 저 멀리 있는 국가든, 교회든 누군가가 나서서 간섭을 하는 회 공학 둘 중 하나로 밖에 나지 않는다. 이 또한 사상적 기원은 반계몽주의에 두고 있는데, 그 지향점은 계몽주의에 기반한 보편 인권, (직접) 민주주의 등을 추구하다 보니 생겨나는 모순이다.

넷째로 아나키즘과 아나키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채택하고 있는 사회운동의 구체적 방식이나 그 효과에 대해서도 많은 논란이 있다. 아나키스트들은 특히 문화적인 도구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것을 선호하며 '조직적 운동' 보다는 '네트워크적 운동' 을 펼쳐나가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이들이 다들 사회운동에 어느 정도 단련된 이들로서 충분한 책임감과 지식,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경우 네트워크 운동은 쉽게 무너진다. 더 나아가 문화적 운동의 경우 그 파급력은 클 수 있으나 영향력은 단기간에 일부분에 걸쳐서만 미치는 경우가 많다. 아나키즘적 문화운동이 국가나 시장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라도 소위 일부 '프레카리아트' 를 넘어선 노동자대중 전체와 소통할 수 있는 도구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68혁명과 러시아 혁명을 되돌아보며 러시아 혁명 당시에도 문화적 전위들은 존재했고 아나키스트들은 많았지만 혁명(대중)의 권위는 이들을 최소한으로 억제했다고 기술한 바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다섯째로 아나키스트들의 체계 없음과 권위주의에 대한 반발이 오히려 몇몇 아나키스트들이 '책임감 없는' 행동을 하도록 부추기기도 한다. 권위를 넘어섰다고 주장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폭력을 은연중에 휘두르는 이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러한 비판들은 매우 추상적인 것이며 상당한 일반화를 거친 것이다. 아나키즘은 아나키즘들이라 불러도 좋을만큼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기에 구체적인 비판은 개개인의 사유체계나 사상적 조류 각각을 통해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아나키즘을 접하는 이라면 비록 일반적인 비판일지언정 이와 같은 지적들을 고심해본다면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0. 다른 사상과 관련된 사항

역사적으로 보면 사상적, 이념적 폭과 깊이는 넓은데 막상 현실에서는 기원상 사촌이나 배다른 형제격인 공산주의에게 안습하게 밀린다.[97][98] 권위주의의 정점인 국가나 정부, 기타 단체를 부정하기만 하면 다 아나키즘으로 포섭되지만 그 개념의 광범위함 때문에 다양한 세력이 다시 아나키즘의 이름하에서 백가쟁명하다 보니 서로간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기 힘들기 때문이다.[99]

역사적으로 아나키스트가 착근에 성공한 경우는 러시아 혁명 당시 혁명가 스토르 마흐노가 이끌던 우크라이나 자유령과 스페인의 아나키스트 노조 전국 노동 연맹[100]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의 쿠데타를 막으며 역혁명을 일으켜 카탈로니아 지역에 세운 해방지 정도 뿐이다. 둘 다 한때 성공하는 듯 했지만 공산주의자들에게 뒤통수를 맞아 망했다. 하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해서 중국 혁명 때도 공산당보다 먼저 들어와 많은 혁명가들을 배출하며 손문의 이념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2008년 그리스 반정부 시위가 보여주듯 서구의 사회 운동가들에게도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다.

현대의 아나키즘은 사회생태주의(생태계 보존을 위해선 궁극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사회체제, 즉 국가의 지배, 시장의 지배를 타파하고 소공동체의 자연친화적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 반전사상, 징집거부 운동, 대안학교 운동, 소비조합 생산조합 운동, 농촌공동체 운동 등으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공산주의도 궁극적으론 아나키즘을 지향하는데 마르크스 본인도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가 궁극적으로 완성되면 정부도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공산주의는 아나키 단계에 이르기 전엔 반혁명세력을 격퇴하고 인민을 이념적으로 단련시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거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여 아나키스트들과 대립하게 된다. 아나키스트들은 공산주의를 비판하며 한시적이라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결국 권력의 생명연장본능 때문에 영구독재화되고 그로 인해 반대세력을 탄압하며 민중을 말살하는 괴물로 변해버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결국 역사는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 옳음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가 현재와 같은 모습(평준화된 대학 등)을 갖게 된 것도 아나키즘의 영향이다. 자세한 내용은 인터넷에서 68혁명 혹은 5월 혁명(정식 명칭: Revolution de Mai)을 찾아보기 바란다. , 국내 자료를 찾기보다 영어로 구글링하기를 바란다. 혹은 지식채널e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으니 그쪽을 찾아보길 바란다.

국가주의민족주의가 밀접한 관련을 가진 한국 등지에서는 탈민족주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겠다.

12. 관련 문학 작품

----
  • [1] 국가를 넣는 바리에이션도 많이 쓰인다. 이경우 국가는 실체화된 권력을 의미한다. No Gods, No County No Masters.(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다.)
  • [2] 1880년 프랑스 사회주의자 블랑키( Louis Auguste Blanqui)의 동명의 저널를 통해 첫 등장.
  • [3] 각각 '정신적 해방'과 '물질적 해방'을 의미한다.
  • [4] 그리스어 동사 ἄρχω는 '통치하다' 라는 뜻을 갖는다. 때문에 '군주제' 는 혼자(μόνος) 통치하는 형태로 'μοναρχία(monarchia)' 라고 부른다.
  • [5] 프랑스 혁명 때도 아나키스트라는 말이 '사회 혼란을 유발하는 반혁명주의자들'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 [6] 사실 완벽한 극좌사상이라고만 볼 수도 없는게,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아나키즘에는 분명 우파적 아니키즘이 있다. 즉 아니키즘은 좌우 구분 가리지 않고 나타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체주의가 극우사상이라고 하지만 사실 좌우 가리지 않고 전체주의를 혐오하듯이 말이다.
  • [7] 이에 따라 아나키즘은 사회적 아나키즘과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대별되며 전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바쿠닌, 프루동, 크로폿킨, 후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고드윈, 슈티르너, 터커 등이다. 대개 전자는 유럽에서, 후자는 미국에서 많이 나타났다.
  • [8] 주의할 점은 허무주의자들이 결코 혼란을 원하는 것을 아니라는 것이다. 본질 혹은 진리가 없다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허무주의이지만, 지향성에 따라 수용적이냐 능동적이냐로 나뉘는데, 수동적 허무주의의 경우 모든 것은 헛된 일임으로 어떤 가치를 세우거나 욕구에 지배를 받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 이야기 하지만, 능동적 허무주의의 경우 어떠한 본질 선악도 없으므로 창조자로서의 삶을 살라고 말한다. 후자의 경우 매우 급진적인 사상을 가진 경우가 많다.
  • [9] 이 점은 소국과민을 주장한 노자의 사상과도 매우 유사하다. 사실 도가사상 중에서도 장자의 사상은 아나키즘과 거의 흡사하다고 봐도 좋고. 다만 노자의 사상은 완벽한 아나키즘 사상과는 좀 다르다. 이런 점에서 장자와 노자를 같은 도가로 묶는데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다. 여튼 돌아와서 보자면 이런 국가와 개인간의 관계를 설정하는 사상은 동서양, 고중근현대를 막론하고 있어온 보편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10] 게임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딱 폴아웃: 뉴 베가스묵시록의 추종자들이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이게 픽션에서 그나마 진짜 요즘 세상에서 먹고 사는 아나키스트들의 가치관과 행동을 사실적으로, 생동감있게 표현한 사례이다
  • [11] proprietarian, proprietary + -an
  • [12] The Ecology of Freedom, p. 57
  • [13] 살펴볼 수 있는 곳, 위키피디아 참고.
  • [14] 다른 말로는 코뮤니스트-아나키스트, 아나키스트-코뮤니스트, 리버테리언 코뮤니스트.
  • [15] 아나키스트들은 이 기다란 용어들어 짧게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Libertarian communism은 줄여서 Libcom으로, 마찬가지로 Anarcho-communism은 Ancom으로, Anarcho-capitalism은 Ancap으로 축약된다.
  • [16] Max Nettlau, A Short History of Anarchism, pp. 75-6, p. 145 and p. 162
  • [17] Anarchism: A History of libertarian ideas and movements, p. 233
  • [18] Robert Graham (Ed.), Anarchism: A Documentary History of Libertarian Ideas, p. 60 and p. 231
  • [19] 검은 깃발은 루이즈 미셸에 의하여 대중화 됐다.
  • [20] 저 아래에 언급된, 자유시장 아나키즘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다.
  • [21] 벤자민 터커가 간행한 아나키스트 주간지.
  • [22] Pioneers of American Freedom, p. 85
  • [23] The Great French Revolution, vol. 1, p. 204 and p. 206
  • [24] 미국을 표현한 듯한 행성이다.
  • [25] The Dispossessed, p. 70, p. 245 and p. 118
  • [26] 국내에 '소유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 [27] 이 문서의 제일 위에 적혀진 "신도 주인도 없다."라는 슬로건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물론 원본은 프랑스어 "Ni dieu ni maitre".
  • [28] 최초의 종군 여기자라 여겨지며 역시 종군기자였던 로버트 카파의 연인이었다. 스페인 내전에서 사망했다.
  • [29] 공화파 측의 병사다. 해당 영상의 53분 25초 쯤에서도 나온다.
  • [30] 영상에서 해당 병사의 투구를 자세히 보면 어두운 색으로 'FAI'라고 쓰여져 있는데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맹(Federación Anarquista Ibérica, Iberian Anarchist Federation)의 약자이다. 그 오른쪽에 있는 병사의 모자에는 CNT라고 쓰여진게 보인다.
  • [31] 아나키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무질서 내지는 무정부지만, 아나키즘을 줄인 표현이기도 하다.
  • [32] 아나키즘적 의미에서 저항 내지는 불복종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저항이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는 것.
  • [33] 대부분의 유럽언어에서 Anarchy는 A로 시작하는 단어로, Order는 O로 시작되는 단어로 번역된다.
  • [34] 왜냐하면 누군가 자랑스럽게 어떤 국가나, 조직의 깃발을 치켜든다면, 찬란한 태양빛을 받아 펄럭이는 깃발 뒤엔, '검은 깃발의 그림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깃발일지라도 마찬가지다.
  • [35] 과거 산업사회 이전부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고 조직화된 노동자로서 존재해 왔던 집단은 다름아닌 광부들인데, 이들이 종종 검은 깃발을 광산 표식으로 쓰곤 했다.
  • [36] 그 전까지는 붉은 깃발도 자주 쓰였다고 한다.
  • [37] 흑백 원본에 채색한 버전이다.
  • [38] Louise Michel, 가명 클레망스(Clémence). '몽마르뜨의 붉은 처녀'(the red virgin of Montmartre)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 [39] Edith Thomas, Louise Michel, p. 191
  • [40] Anarchism, pp. 251-2
  • [41] "Sur la Symbolique anarchiste", Bulletin du CIRA, no. 62, p. 2
  • [42] 원문은 "Where there is authority there is no freedom".
  • [43] Paul Avrich, The Russian Anarchists, p. 44, p. 124, p. 183 and p. 227
  • [44] Revolutionary Insurrectionary Army of Ukraine, 마흐노비스트 Makhnovists , 마흐노프시나 Makhnovshchina , '검은 군대'로 불리기도 한다.
  • [45] 우크라이나어:Смерть всім, хто стоїть на перешкоді здобуття вільності трудовому люду!,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노동자의 자유를 방해하는 모두에게 죽음을!" - 큰 글씨가 '죽음' 부분이다.
  • [46] 영어:Nestor Ivanovych Makhno, 우크라이나어: Нестор Іванович Махно, 러시아어:Не́стор Ива́нович Махно́
  • [47] 특히 어나니머스나 핵티비즘과(hacktivism) 관련된 아나키스트들이 쓰는 경우가 많다.
  • [48] https://libcom.org/library/manifesto-makhnovists-makhno
  • [49] 1차 대전 당시 독일, 오스만, 오스트리아의 연합을 말한다.
  • [50] pogrom, 선동에 의한 제노사이드, 동유럽에서는 주로 유대인 학살를 의미했다.
  • [51] Ataman, 카자크의 지도자를 말한다.
  • [52] Peter Marshall, Demanding the Impossible, PM Press (2010), p. 473
  • [53] "오늘의 사슬은 내일의 자유를 위해..." 같은 걸 말한다.
  • [54] http://www.nestormakhno.info/english/cohnbendit.htm 참고.
  • [55] 자유구역의 인구는 700만 가량이었다.
  • [56] workers' self-management, 참고.
  • [57] http://www.nestormakhno.info/english/cohnbendit.htm 참고.
  • [58] https://books.google.co.kr/books?id=hOd0-HITuhEC&pg=PA111&dq=%22anarchist+portraits%22+makhno&sig=ArbmChwhT2xLIP0dWWO3CgpW-jc&hl=ko#v=onepage&q=%22anarchist%20portraits%22%20makhno&f=false
  • [59] Skirda, Alexandre, Nestor Makhno: Anarchy's Cossack. AK Press, 2004, p. 236
  • [60] Skirda, Alexandre, Nestor Makhno: Anarchy's Cossack. AK Press, 2004, p. 238
  • [61] http://www.isreview.org/issues/53/makhno.shtml
  • [62] 이는 19세기 후반 사회주의 정당이 의회주의와 타협노선을 걷게 되자 노동조합을 혁명의 주체로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는 사상인데 출발부터 아나키즘적 색채가 강했다. 쉽게 말하면 다른 노동운동과 달리 정당의 지도를 거부하고 노동조합이 주체가 되어 정치투쟁을 배제한 총파업으로 혁명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어떻게 보면 다른 어느 사상들보다 더 급진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모험주의나 기회주의로 평가된 바도 없지 않아 있고 훗날 파시즘에 의해 중요한 부분은 빼버리고 산업조합/자본가조합/친자본노동조합에 의한 전체주의 국가 건설에 협력하는 합주의(앞서 말한 생디칼리즘을 조합주의라고 번역하는 사람들은 혼동을 막기 위해 협동주의(corporatism)라고도 부른다)의 모태가 되기도 하는 좀 안습한 결과를 낳기도 하다. 내가 호랭이 새끼를 키웠어
  • [63] 이런 이유에 의해 스페인의 CNT는 흑적기를 사용한다. 흑적기를 사용하는 가장 유명한 단체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 [64] 아나키스트인데 동성애자인 경우가 집회나 시위에 참여할 때 지참하는 것으로 보인다.
  • [65] agorism. 어원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이다.
  • [66] https://www.reddit.com/r/DebateAnarchism/comments/3o95oo/anarchotranshumanist_ama/
  • [67] https://humaniterations.net/2012/01/06/what-is-anarcho-transhumanism/
  • [68] http://anarcho-transhumanism.net/atm/atm.html
  • [69] http://anarchotranshuman.org/
  • [70] http://blueshifted.net/faq/
  • [71] 특히 레닌이 그의 저서에서 좌익 소아병이라며 줄창 깠다.(...)
  • [72] 해당 장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나에게 나 이상의 것은 없다."
  • [73] 그의 저서인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주로 청년헤겔학파를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
  • [74] 니체는 슈티르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 [75] 그는 인간이라는 개념, 무언가 인간적인 것이 단지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건 결국 또다른 유령이다.
  • [76] '인간적인' 이라는 유령이 정신의 독재자가 되려 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 [77] 슈티르너는 당대에 새로이 등장한 인간주의적 사상, '유적존재'라는 개념이, 또다른 숭배현상이라고 주장했으며, 그러한 숭배는 또한 결국 개인을 지배 할 것이고 자기소외의 길로 이끌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는 이것을 종교에 빗대어 표현하기도 했는데, '인간'이라는 형상이, 종교, 국가, 자본, 같은 것들이 하는 것과 동일하게 개인을 억압하며 숭배를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당대 청년헤겔학파의 주류 입장에 대한 중대한 비판이 된다.
  • [78] 아마 이 그림이 슈티르너가 자유를 비판하고 소유로 대체한 이유를 간편하게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 [79] 물론 이것도 재외 러시아 아나키스트 그룹에서 발행한 한 저널의 아나키스트 일반 연합 조직의 정강에서 많은 부분을 따왔다.
  • [80] 그리고 손 잡은 공산주의 정부에게 뒷통수 맞아 털리는 말로 또한 그대로 계승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단순히 적군의 압도적인 무력 앞에 무너진 우크라이나 혁명군과 달리 CNT는 적어도 거점이었던 바르셀로나와 아라곤 일대에서는 정부군을 압도하는 세력을 자랑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도부가 내전 중의 내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진 투항했다는 것이지만.
  • [81] 당연히 신자유주의자, 시장경제 신봉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선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 [82] 물음표를 붙인 이유는 한국어로는 마땅한 대체 단어가 없어서이다.
  • [83] 일리걸리스트들은 아나코-생디칼리즘의 조합주의조차 거부했다!
  • [84] 반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자들 사이에서 일리걸리즘은 소영웅주의나 모험주의로 불리면서 철저히 폐기되었다.
  • [85] 영화 아나키스트에도 조직원들이 은행을 터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사상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강도 행각을 두고 구성원들이 갈등하는 것은 생 구라.
  • [86] 생각보다 오래된 사상으로서 일제시대 항일 무장투쟁노선을 따르는 민족주의자들에게도 적지않게 영향을 미쳤다. 현재도 여러 국가에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반대하는 '3의 위치(third position)' 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 [87] 파시즘인데 파시즘 아닌 체 하는 사상.
  • [88] 일제강점기 국외 독립운동세력 내부에서 아나키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의 충돌이 심했다. 흔히 아나키스트나 공산주의자나 똑같은 좌파니까 한솥밥 먹은 것으로 아는 사람도 있으나 틀린 생각이다.
  • [89] 후미코는 옥사했고 박열은 감옥에서 우익으로 전향하여 22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해방 후 풀려난다. 해방 후엔 민단 단장을 맡다가 한국에 돌아온 뒤 한국전쟁 중 월북한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지지하는 우파/민족주의/기타정파 정치인 모임인 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1974년 사망한다. 참고로 조소앙, 약수(역시 아나키스트였다가 훗날 사회주의로 전향) 등도 같은 단체에서 활동을 했지만 이들은 대부분 숙청되거나 산간 오지로 추방된데 비해 박열은 죽을 때까지 회장을 맡은 것으로 봐서 북한 당국의 눈에 날 짓은 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일부 보도에 의하면 북한에서 "저 사람은 원래 무정부주의자라 말이 안 통한다" 라며 왕따를 당했다는 안습한 이야기도 있다.(...)
  • [90] 당시에 이미 낭만주의적 사고를 포스트 모더니즘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었음을 상기해볼 때 낭만주의가 합리주의를 배격하는 사상임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 [91] 고전적 아나키스트라 할 수 있는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에 대해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으로 반박한 일은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 [92] 영국의 지식사학자 이사야 벌린이 '반계몽주의' 라 칭한 그 사상 체계 맞다.
  • [93] 물론 위의 철학적인 기원은 사상적 계보의 차원에서만 파시즘과 모태를 공유한다는 거지, 실제로 저렇다고 해서 현실의 아나키스트들 면전에서 아나키즘이 파시즘과 연관 있다 따위 드립 치면 영혼이 분자 단위로 분해 될 때 까지 까일 것이다. 애초에 각각 아나키즘과 파시즘의 모태가 되는 좌파 반계몽주의와 우파 반계몽주의의 분화는 19세기 초중반에 조속하게 이루어졌고, 이후 역사적 아나키스트들은 오히려 전체주의가 고개를 처드는 곳 어떤 곳에서든 이에 대항하여 초개같이 목숨을 내던진 투사들을 대거 배출했다. 심지어 입만 열면 반파시즘, 대조국전쟁 선전하기 바쁜 소련의 정통 볼셰비키 공산주의자들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늑약으로 나치스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을 때도 아나키스트들은 코민테른의 지령 따위 들은 척도 안하고 대파시즘 투쟁에 몰두했다.
  • [94] 이 구절만으로는 해석하기에 따라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람은 개인으로서 움직일 때와 군중으로서 행동할 때 확연히 다른 행동패턴을 보인다. 이는 여러 사회 실험에서도 나타나며 화이트의 '집단의 도덕성은 집단의 구성원의 도덕성보다 떨어진다' 라는 말로도 표현된다. 이 경우 깨어있는 개인을 타겟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주체로서 주변의 의사에 휘둘리지 말고 행동하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앞뒤 문맥 추가바람.
  • [95] 더욱 자세한 논지는 세진의 『내가 춤 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중 사이버 공간의 아나키즘 부분 참고. 아나키즘이 지닌 소영웅주의·엘리트주의는 세계적으로 많은 곳에서 비판받고 있다.
  • [96] 『액체근대』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현대의 사회학 고전으로 꼽힌다.
  • [97] 혁명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자유령과 스페인 내전 당시의 카탈로니아 아나키스트들은 미하일 바쿠닌(1차 인터내셔널에서 마르크스와 크게 싸운 뒤 독립해서 아나키스트 사상을 정립하였음)의 사상에 기반하고 있으나 결국 이들은 실패했고 공산주의는 어쨌든 소련과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그들의 위성국가를 만들어내면서 그들 이념을 실현시킨 셈이니까... 뭐 공산주의도 현재 시점에서 결국은 다 망했지만
  • [98] 소련 초기에는 아나키스트들이 많이 활동했으나, 아무런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아나키스트답게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반대하여 축출당했다.
  • [99] 대신 이념적으로 경직된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루동, 쿠닌 같은 핵심적인 아나키스트 이론가가 어떤 주장을 했던간에 교조적으로 이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유연성은 장점. 현대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자라 보아도 무방하지만 아나키스트라고 해서 바쿠닌주의자, 크로폿킨주의자는 아니다.
  • [100]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공산당 소속 CCOO, 사회주의 노동자당 소속 UGT에 다음가는 3번째로 큰 노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