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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주 반공학생사건

last modified: 2015-03-10 17:28:59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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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관련 문서
3. 관련 항목

1. 개요

1945년 11월 23일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중학교 학생들이 공산당 타도를 외치며 벌인 반소-반공 시위.

1945년 11월 16일평안북도 용암포에서 열린 기독교 사회민주당의 지방대회에서 평북자치대 용암포 대표가 기념사를 통해 폐교 조치된 수산기술학교의 복구를 요구하고 공산당의 불법을 규탄하자, 이를 지지한 학생들이 만세를 부르며 학원의 자유를 부르짖은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이에 대해 소련군공산당은 경금속 공장직공을 동원하여 이들을 기습, 평안교회 장로를 현장에서 죽이고 학생과 시민들에게 중상을 입혔다. 격분한 신의주시의 6개 중학교 학생들과 부근의 5천여 명의 학생이 이날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반소 반공을 외치며 시가지를 행진하였으며, 공산당 본부, 인민위원회 본부, 보안서 등을 습격하였다. 이에 시위대를 향한 공산당의 보안대와 소련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23명의 학생이 피살됐고, 70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2천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투옥됐다.
일부 기록에는 48~50명 사망이라고 하는데 어느 숫자가 맞는지..

70년대 민주화의 대부이자 이커 신자인 함석헌 옹도 이 사건에 연루돼서 고향을 등지고 남한으로 넘어온다. 신의주 학생의거 관련 증언은 대부분 함석헌 옹의 자서전에 나온 이야기.

한 동안 이 사건은 남한의 반공교육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여 반공 군사정권인 제3공화국, 제5공화국 당시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1956년 헝가리 반소 시위와 함께 수록되기도 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 사건이 일어난 11월 23일을 반공 학생의 날로 기념하였다.

교과서 그림은 M 계열 미국전차를 연상시키는 소련 전차군단에 수백명의 학생시위대가 돌진해서 집단으로 죽는 화보가 나왔다(...)

반대로 미군이 통치한 남한에서는 대구 10.1사건이 일어났다.

3.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