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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 로마 제국/역대 황제

last modified: 2015-04-04 21:32:16 Contributors

신성 로마 제국의 역대 황제들을 정리한 문서.


Contents

1. 작센 왕조 이전
1.1. 카롤링거 왕조
1.2. 귀도 왕조
1.3. 카롤링거 왕조
2. 작센 왕조
2.1. 잘리어(프랑코니아) 왕조
2.2. 주블린 부르크 왕조
2.3. 호엔슈타우펜 왕조
3. 벨프 왕조
4. 호엔슈타우펜 왕조
5. 대공위시대 이후
6. 합스부르크 왕조
7. 비텔스바흐 왕조
8. 합스부르크-로트링엔 왕조
9. 기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12세기 이후 일반적으로 투표로 선출되었으며 후보가 되는 인물들은 대공위시대 이전에는 전임 황제 가문들과 생판 다른 남이 되는게 아니고 가급적이면 조금이라도 혈연관계 (부계, 모계, 방계, 먼 친척, 사위 등등)가 있는 사람이 후보로 추대되었다. 물론 그에 걸맞는 세력과 지지는 필수였다.대공위시대 이후 카를 4세의 금인칙서(golden bull)로 선제후 제도가 정착되었다.

1. 작센 왕조 이전

신성 로마 제국의 수립에 관해서는 오토 1세의 대관식을 그 출발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는 이전에 서로마 황제의 대관을 받은 카롤루스 대제의 존재를 무시하는 처사라 할 수 있다. 애초에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이름도 오토 1세 당시에 수립된 것이 아니며, 오토 1세 본인은 고대 로마 제국의 계승자를 자처할 뿐이었다. 이것이 11세기 무렵 "로마 제국(Römisches Reich[1])"으로 발전한 것이며, 12세기 무렵 "신성[2] 제국(Heiliges Reich)", 13세기 이후 "신성 로마 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이라는 명칭이 완성된다. 이 이름 또한 수세기 후 바뀌게 되는데, 16세기에 "도이치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Heiliges Römisches Reich Deutscher Nation)"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된다.

본래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대 로마 제국이나 카롤루스의 프랑크 왕국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의미이므로, 이 정치체제의 군주는 정식으로 말하자면 초기에는 프랑크 국왕, 후에는 로마 국왕이며, 이 직함을 얻은 사람이 로마에서 대관식을 거행하여, 로마 황제로 취임했던 것이다.

이 관점을 견지하는 학자들은 800년 12월 25일 프랑크의 왕 카롤루스 대제가 로마에서 로마 교황 레오 3세로부터 로마 황제의 관을 수여받고 축성된 뒤 '카롤루스 아우구스투스'로 선포된 이후를 제국의 시발점으로 삼는다. 이후 924년 베렝가리오 1세의 암살 이후 제관 수여가 일시 중단다가 962년 독일 왕국의 국왕 오토 1세가 로마 교황 아가페투스 2세로부터 제관을 수여받으며 황제의 지위가 복원된다. 이 시각을 따를 경우 오토 1세는 신성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아니라 단지 황제 지위를 작센 왕조로 복원시킨 군주라 볼 수 있다.

1.1. 카롤링거 왕조

  •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 카를 1세) (800 ~ 814)
  • 루트비히 1세 (814 ~ 840)
  • 로타르 1세 (843 ~ 855)
  • 루트비히 2세 (855 ~ 875)
  • 샤를 2세 (카를 2세)
    : 유일한 프랑스 출신의 신성 로마 황제, 대머리왕 (875~877)
  • 트비히 3세 (877 ~ 879)
    : 교황으로부터 제관을 받았으나 취임을 거부했다.
  • 를 3세 (881 ~ 887)
    : 상속으로 일시적으로 부르군디를 제외한 프랑크 왕국을 재통일했으나 내우외환에 시달리다가 조카 아르눌프에게 축출당했다. 나머지 작위는 모두 분할상속되어 완전히 프랑크 왕국은 갈라졌다.
  • 프리울리의 베렝가르(베렝가리오 1세) (887 ~ 891)
    : 명목상의 황제. 카를 3세 사후 이탈리아 왕위를 획득

1.2. 귀도 왕조

  • 스폴레토의 귀도 (891 ~ 894)
    : 카롤루스 대제의 먼 모계후손으로 카를 3세가 축출당하자 교황에 압력을 가해 이탈리아 왕위와 황제를 강탈했다.
  • 람베르트 (894 ~ 898)
    : 귀도의 아들. 불법으로 강탈된 제위라 하여 교황에게 박탈당한다. 아르눌프에게 패하고 정적에게 암살당함.

1.3. 카롤링거 왕조

  • 아르눌프 (896 ~ 899)
    : 루트비히 1세의 자손인 바이에른의 카를만의 서자이다. 887년 숙부 카를 3세를 축출하고 동프랑크 국왕 즉위, 896년 이탈리아를 원정해 귀도를 격파하고 황제에 즉위함.
  • 루트비히 3세 (900 ~ 905)
    : 복위
  • 프리울리의 베렝가르 (905 ~ 924)
    : 루트비히 3세를 격파하고 복위. 반란진압을 하다 암살당함.

베렝가리오 1세 이후 신성 로마 제국 황위는 약 40년간 궐위였다. 학자에 따라서는 이탈리아의 군주들을 명목상의 황제로 간주하기도 한다. 한편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의 마지막 후계자 루트비히 유아왕(아르눌프의 아들)이 후사 없이 죽고 콘라트 1세를 거처 새롭게 국왕으로 지명된 작센의 하인리히 1세의 아들 오토가 962년 베렝가리오 1세의 외손자로서 이탈리아왕이었던 이브레아의 베렝가리오를 격파하고 이탈리아 왕위를 겸한 뒤 교황에게 제위를 받으면서 작센 왕조가 시작된다. 독일 중심의 신성 로마 제국으로 따질때는 작센 왕조를 신성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로 보기도 한다.

2. 작센 왕조

2.1. 잘리어(프랑코니아) 왕조

2.2. 주블린 부르크 왕조

  • 로타르 3세 (1133 ~ 1137) - 순전히 실력으로 제위에 오른 경우이나 단명했다.

2.3. 호엔슈타우펜 왕조

  • 콘라트 3세 (1138 ~ 1152) - 잘리어 왕조의 모계 후손으로 독일왕이 되었다. 정식으로 제관을 받지는 못했다.
  • 프리드리히 1세 = 바르바로사 (1152 ~ 1190) - 콘라트 3세의 조카.
  • 하인리히 6세 (1190 ~ 1197)
  • 필립 (1198~1208) - 하인리히 6세의 동생, 독일왕, 바이에른 백작 오토 8세에게 암살당함.

3. 벨프 왕조

  • 오토 4세 (1198 ~ 1215) - 로타르 3세의 외증손자, 호엔슈타우펜의 모계 친척, 필립의 사위, 독일왕, 1209년부터 단독 황제, 1215년 폐위당함

4. 호엔슈타우펜 왕조

  • 프리드리히 2세 (1220 ~ 1250) - 하인리히 6세의 아들
  • 콘라트 4세 (1250 ~ 1254)

    대공위시대(1254 ~ 1273)
    : 위키백과(확인된 것은 영문판과 한국어판)에서는 하인리히 7세가 정식 황제로 대관한 1312년을 대공위시대의 끝으로 친다. 이 기간 동안 호엔슈타우펜 황제와 교황사이의 대립이 극심했기 때문에 교황이 황제를 파문너 파문폐위를 선포하고 대립왕을 멋대로 올렸다. 콘라트 4세가 죽은 뒤 정식으로 황제가 뽑히지 않고 독일왕 작위만 가지고 있었다. 정식 황제가 아니기 때문에 괄호안의 연도는 재위년도가 아니라 생몰년이다.

  • 빌렘 2세 (1227~1256) - 홀란드 백작, 독일왕 , 교황 인노첸시오 4세에게 콘라트 4세의 대립왕으로 선출됨
  • 리처드 (1209~ 1272) - 콘월 백작, 영국왕 헨리 3세의 동생. 플랜태저넷 가문으로 호엔슈타우펜의 모계친척. 스티야폰소 10세의 대립왕,
  • 알폰소 10세 (1221~1284) - 카스티야 국왕. 호엔슈타우펜의 모계 친척.

5. 대공위시대 이후

6. 합스부르크 왕조

7. 비텔스바흐 왕조

8. 합스부르크-로트링엔 왕조

이 왕조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여군주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랑수아 에티엥(프란츠 슈테판) 로렌(독일어로 로트링겐. 마지막 수업의 알자스-로렌) 공작의 결혼으로 시작된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여성 군주를 인정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은 여황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마리아 테레지아를 끝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조는 단절되었다. 그러나 프랑스-독일 접경지대의 공작 가문인 로트링겐 가에 비해 합스부르크 가문의 후광이 워낙 강대했고, 이후 신성 로마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자들도 자신들을 합스부르크로 칭했기 때문에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왕조로 부른다.

9. 기타

  • 윈스턴 처칠 : 닥터후 뉴시즌 6에서 시간이 꼬이는 바람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하고 있었다.
  • 오로지 1세 : 로마나라 사건 항목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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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독일어 'Reich'는 라틴어 'Imperium'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제국"을 의미한다.
  • [2] '신성'이라는 형용사는 1157년에 프리드리히 1세가 제후들에게 발포한 소환장에서 처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