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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last modified: 2017-08-12 15:57:47 Contributors

塩野七生[1]

Contents

1. 개요
2. 비판
2.1. 편향된 관점
2.2. 성급한 추측
2.3. 사료 활용에 대한 비판
3. 정치적 성향과 역사관
4. 과거사 논란과 망언
5. 취향(?)
6. 그 외
7. 작품


1. 개요


일본작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며, 고등학생 시절 고대 그리스를 다루었던 일리아스를 보게 된 것을 계기로 서구 문화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1963년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 유학 생활을 하였다. 이후 5년 만에 귀국했으나 1970년에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이탈리아인 의사와 결혼[2], 피렌체에 체류하면서 이탈리아사(史)를 독학하면서 본격적인 서양사(西洋史) 집필 및 연구를 시작하였다.

리그베다 위키로마 제국 항목을 작성하는 사람들의 주적이자 조력자, 비잔티움을 사랑하는 이들의 적. 다행히 기번 덕분에 그쪽에서 욕은 덜하지만 그만큼 한일 양국의 로마 제국 역사관에 끼친 악영향이 크다. 요약정리하자면 역덕의 적 문제는 적이라고는 해도 그녀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수준이어서, 심지어는 그 영향력이 리그베다 위키에서도 발견된다. 일단 베스파시아누스가 '견유학파'라는 학파의 어원이 되었다는 설도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한국에 소개된 게 분명하니까.[3] 다만 이 때문인지 그녀가 하지 않은 말이나 나름대로 옳게 쓴 말도 그녀가 했다면서 까이는 면도 없잖아 있기도 하다. 그녀의 관점이라고 해도 역사적으로 합당한 말의 경우까지 너무 깔 필요는 없을 듯.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 외에도 주로 역사 교양서와 역사 소설을 많이 썼으며, 로마 역사와 이탈리아 역사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2. 비판

책 자체의 흡인력은 높지만, 역사 저술로서의 평가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동인지 작가라는 평이 있을 정도로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사람의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이게 소설인가, 아니면 역사를 다룬 책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가끔 보면 대체역사소설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자신이 허구적으로 넣은 요소가 있음에도 그것을 먼저 말해두지 않는 경우도 있고, 역사적으로 정말로 중요한 부분을 비중있게 다루기 보다는 그냥 자기가 좋아하는 이야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가미하면서 써내려간다. 말 그대로 소설가. 절대 역사가가 될 수 없는 사람이고, 그 썩어빠진 역사인식은 도저히 역사가로 부를 수 없는 수준이다.

2.1. 편향된 관점

역사 자체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 인물과 국가에 대해서는 객관성을 잃은 채 숭배한다. 특히 율리우스 카이사르체사레 보르자에 애정이 대단하다. 체사레라는 이름이 카이사르에서 왔다는 건 순전히 우연일 것이다. 아니면 운명이거나 그 중에서도 카이사르에게는 단순한 찬탄을 넘어서, 거의 사랑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수준으로 숭배한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카이사르 빠가 저 바닥에는 꽤나 많다고 하지만(#) 시오노의 경우는 병에 가까울 정도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카이사르를 찬양하며 키케로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로마인 이야기 15권 중 카이사르 편만 상하권으로 되어 있다. 두께도 두껍다. 그 앞뒷권인 3권과 6권의 두께가 얇기 때문에 꽂아두고 보면 더 두꺼워 보인다.(...)

극렬 일신교까[4][5] + 좋아하는 남자 하악하악(…). 게다가 일부 저작에서 드러나는 경향으로 보면 동성애(남성)나 플레이보이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는 것 같지만, 그냥 카이사르에 푹 빠져서 뭐든 좋아 보이는 걸로 생각해도 무방할지도. 율리우스 카이사르 외에도 빠심이 있다고 밝힌 남자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있는데, 다빈치의 경우 그가 자연과학 쪽에서 남긴 업적을 쓰기 어려워서(…) 문과의 한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경우 이라크중동의 정세가 좋지 않아 방문할 수 없어서 쓰지 못했다고 밝혔다.

꼭 마음에 드는 남정네에게만 하악하악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국가도시에도 모에선 쏘고 하악하악한다. 이 아줌마의 이탈리아 사랑, 특히 베네치아&로마 사랑은 정말 엄청난 수준이라 '역사소설'의 한계까지 넘어 거의 대체역사소설에 이를 정도다. 전쟁 3부작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편에 보면,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트 2세의 남색 상대인 노예 소년과 술탄의 성애에 대한 묘사가 비잔티움 제국 재상 루카스 노타라스보다 비중이 높다! 술탄의 남색용 노예한테, 망국이긴 해도 일국의 재상이었던 이가 밀리다니 믿을 수 없어 이쯤 되면 역사소설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 다만 그 '남색용 노예'가, 메메드 2세의 치세에 대해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역사서인 '정복자의 역사(Tarih-i Ebülfeth)'를 쓴 투르순 베이(Tursun Bey)라는 점은 감안해줄 필요가 있다. 다만 그에 대해서는 그 자신의 기록으로밖에 알 수가 없는 탓에 궁정 시종이었던 것은 맞는 것 같지만 '남색용 노예'였다는 건 순전히 그녀의 망상상상.[6]

거의 유일하게 여성들에 대한 평가가 좋고 여성 인물들에게 주목한 저서로는, <르네상스의 여인들>이 있다. <남자들에게> 1, 2라는 에세이집을 냈는데, 여자가 바라보는 남자의 시각을 썼고 나름대로 긍정적인 평가도 받지만, 여성 상품화에 대한 안티테제적인 관점을 페미니즘으로 포장하고 있다는 비판과 '병맛넘치는 중2병 여성을 위한 침서'라는 혹평까지 받는다.

시오노의 책을 읽다 보면, 인류 역사상 비잔티움 제국이 무려 1123년이나 존속했던 것은 5000년 인류사의 불행인 것처럼 인식하게 되는 악영향이 생긴다. 사실 이건 기번이 시작한 일이지만[7]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과 어쩌면 일본 대중에 널리 퍼뜨린데 일조한 것은 분명 시오노.[8]

《로마인 이야기》 완결 뒤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가 상하권으로 나눠 동시출간되었는데, 이 책에서도 상당한 문제점이 보인다. 로마 제국 멸망 이후를 다루었는데 굳이 로마 가도를 꼬박꼬박 지도에 넣어주는 점도[9] 이상하거니와, 상권의 역사에서 비잔티움 제국이 717~718년 사이 이슬람 군대와 맞서 치열하게 항전을 벌인 것도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이야기인데도 1줄도 다루지 않았다(…). 어쩌면 비잔티움 제국은 (동)로마 제국이기 때문이 '로마 멸망'이라는 타이틀과 맞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비잔티움 제국을 '깔' 필요가 있는 부분에는 전후사정을 확실히 얘기해 주지 않고, 안 좋은 부분만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그리스와 사이가 나쁜 터키에서 비밀리에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적대자였던 오스만 제국도 비슷한 취급인데 전쟁 3부작 같은 경우는 정말 미친 듯이 오스만 제국이 까인다. 살다 살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의 수도가 된 이후에 '황량해졌다'고 하는 수준에 이르면 도저히 할 말이 없다.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다만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에서는 보다 좋게 나와 있다. 대표적으로 술탄 아래가 모두 평등하다는 표현을 하며[10], 인재 등용에 있어서 능력을 우선시했다고 말하고 있다. 근데 그러다가도 일관성 없는 정책을 펼치고 물량빨로 밀어붙이며 변덕이 심하다고 또 깐다. 애초에 오스만 제국을 호의적으로 평가하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유럽측 시각에서만 바라볼 뿐 오스만 제국의 내부사정이나 정치적 움직임의 동기에 대해서는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11]. [12]

최신작 《십자군 이야기》도 여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해서 비잔티움 제국 황제 알렉시오스 1세이슬람을 까고, 십자군 침략자들을 띄워준다. 답이 없다. 이건 최훈보다 더 심한 까기잖아 십자군 이야기 1번과 2번 항목이 정반대 덤으로 필리프 2세도 얄팍한 소인배 주제에 뒷통수나 치면서 성공한 찌질이로 묘사한다. 특히 거듭 필리프 2세가 군사적 재능이 없다고 폭풍처럼 깐다. 부빈 전투는 뭔가염 감히 나의 리처드 짱을 괴롭혔잖아.

《십자군 이야기》 초두에서는 중세 국가들을 현대 국가들의 단위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자신은 취향대로임의로 프랑스인, 독일인 하는 식으로 구분하는 행동을 자주 보인다. 예를 들어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현대 국가 개념으로 생각하면 확연히 벨기에[13] 출신에 가까운데 신성로마제국령 사람이니 독일인이라고 한다던가... 신성로마제국령이니 독일인이라고 한다면 당시 프랑스 동부(프로방스 포함)지역이나 이탈리아 사람은 전부 독일인이어야 한다(...).

리처드 1세 또한 영국인에 가깝다는 식의 서술을 많이 하고 《십자군 이야기》 말미에서는 리처드가 자란 곳이 프랑스였기에 프랑스인들이 은근히 프랑스인으로 분류하려는 시도를 한다고 까는데 사실 리처드가 영국에 애착이 없었고 본질적으로 남프랑스인이라는 주장은 영국 역사학자들이 하고 있다.

서유럽 국가 중에서는 프랑스스페인을 주로 깐다. 프랑스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단순하다는 점에서, 스페인은 모든 면에서 극단적이라는 점에서. 그리스도 반 비잔티움 제국 역사관에 기초해서, 행동보다 말이나 앞서는 인간들이라고 깐다. 사실 그리스 인에 대한 비판은 너무 많이 하다보니 거의 인종차별 직전에 도달했다[14]. 본인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도 자주 까이며, 영국일본과 같은 섬나라라는 점에서 대체로 찬양조다. 관리가 부실한 이탈리아의 로마 제국 유물을, 관리를 잘하는 영국인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결국은 일본과 비슷한 나라는 좋은 나라다.

2.2. 성급한 추측

사료로 밝혀져 있지 않은 부분의 마무리를 'XXXX 아니었을까?'라고 사료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예를 들어 칼리굴라를 암살한 근위병사가 "잘못된 자식을 책망하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찌르지 않았을까"라며 말하거나[15] 도미티아누스를 죽인 것이 도미티아누스의 아내인 롱기니아[16]에 의해 저질러졌으며, 이것이 도미티아누스가 그의 조카딸의 관계를 질투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라고 말하였는데, 사실 위는 학계의 의견도 아니고 근거없는 상상에 불과하다.[17]

가령 롱기니아는 도미티아누스가 기록말살형에 처해진 이후에도 죽을 때까지 과부로 수절하였고, 자신을 항상 도미티아누스의 아내로 소개하였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도미티아누스의 암살한 조종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다른 예를 들면 가령 시오노가 이순신의 사망에 대해 쓴다 가정하면, 그녀의 문장으로 이순신의 죽음은 이렇게 마무리될 것이다. '여러가지 행적에서 추측해 보자면 그는 공화파였지 않았을까?(뒷받침 증거는 없다! 오로지 그녀의 상상력뿐이다.)'(…) 대다수의 메이저 역사학자들이 사료의 가공을 최소화하여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는 것을 봐도, 그녀의 글은 역사서라는 카테고리에 묶을 수는 없다는 소리. 그러나 《로마인 이야기》가 워낙 대히트한 바람에 대학생들이 로마 제국 관련 과목 레포트로 《로마인 이야기》를 당당하게 참고자료로 제시하고 써가는 사태가 종종 벌어져서, 사학과 교수들이 뒷목을 잡는 일도 종종 있다(…).

또한 흔히 말하는 독자연구에 해당되는 서술을 저서에 간간히 삽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제정은 넓은 로마 제국을 통치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거나[18] 카이사르아우구스투스 덕에 로마 제국의 멸망이 뒤로 미루어졌다는 견해를 집어넣는다. 하지만 위의 두 인물이 등장했을 때인 공화정 말기, 로마 제국의 군사력은 정점을 찍었다. 이때 로마 제국은 동방의 국가들을 몽땅 소멸시키고 영토를 2배로 확장하였으며[19], 개기는 미트라다테스를 자살로 몰고 갔으며, 야만족인 갈리아족, 게르만족을 상대로도 승승장구하였다. 따라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등장이 아니었으면 로마 제국이 멸망했을 것이라는 의견은 군사적으로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또한 세습에 우호적인 견해를 삽입하였는데, 일본의 정치가들이 지역구를 물려주는 것을 예로 들며 "안정을 위해 적절한 선택이 될 때가 많다"는 식의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20]

하지만 로마 제국이 혈연에 의한 세습을 하여 안정적으로 굴러간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하였으므로[21] 이런 발언은 신빙성이 그렇게 높지 않다. 또한 노예 제도에 대해서도, "로마인들은 노예를 가족처럼 대우하였고 죽을 때 해방해 주었다"는 등 인간미가 넘치는 식으로 묘사하기도 하였는데, 사실 로마 제국의 노예 제도는 충분히 가혹하였다. 공화정 말기에 몇 번 노예 반란(유명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도 노예 반란)이 일어났다는 점을 감안하자.[22]

가령 다음 《로마인 이야기》 6권 말미에서 클레오파트라로마군에게 사로잡혔을 때의 부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39세의 여왕과 33세의 승자는 왕궁 안에서 딱 1번 만났다고 한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대 역사가들 중에는, 그때 클레오파트라카이사르안토니우스를 상대로 수작을 부려 성공한 것과 똑같은 '수법'을 옥타비아누스한테도 시도했다고 말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고 한다. 40세를 앞둔 나이에는 저 유명한 클레오파트라의 매력도 이미 효력을 잃고 있었다는 뜻이리라.

그러나 나는 그녀가 애당초 시도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는 자기를 귀여워 해줄 사람을 한눈에 알아본다고 한다. 여자도 고양이와 같다. 자기한테 마음이 쏠릴 만한 남자는 눈빛만 보아도 안다.

클레오파트라도 단정한 용모를 지닌 33세의 젊은이의 차가운 눈길을 받은 순간, 그런 수법을 써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게 아닐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도하는 것은, 일류라고 자부하는 승부사가 할 짓이 아니다.

옥타비아누스를 만나고 나서 클레오파트라는 모든 희망이 산산조각 난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운명도 분명히 알았을 것이다. 현실인식에서는 계속 잘못을 저지른 클레오파트라였지만, 막판에 이르러서야 비로서 현실을 분명히 본 게 아닐까. 그녀가 삶에 집착한다면, 로마 제국으로 압송되어 수도에서 거행되는 옥타비아누스의 개선식에서 최고의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개선식이 끝난 뒤에는 여동생 아르시노에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의 지방 도시 어딘가에서 연금생활을 하는 것이 40세 이후의 인생이었다. 로마 제국에서는 패전국의 왕이라도 개선식이 끝난 뒤에 죽이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클레오파트라자살을 결심한다. 한 여자로서 살아남기보다는 여왕으로서 죽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옥타비아누스도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왕으로서 죽든 간에, 어쨌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주는 것이 그에게는 편리했기 때문이다.

위는 클레오파트라와 옥타비아누스가 만났다는 한 문장의 역사적 기록으로, 장문의 상상의 나래와 추측을 한 예이다.[23]

독자의 입맛에 맞게 딱딱한 역사 서술을 버리고 작가의 생각을 담아냄으로서 책을 쓰는 것은 비판받을 행위는 아니지만, 저렇게 비논리적인 작가의 개입과 무리한 추정의 연속은 위에 언급된 비밀 회동이 마치 클레오파트라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양 독자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게다가 그 근거가 "여자는 고양이와 같다"라거나 "승부사는 지는 경기에 걸지 않는다"는 등의 것이라면 더욱 그것은 문제가 된다.

문제는 십자군 이야기에서도 끊이지 않는데, 타란토 공작 보에몽이 야망쩔고 애초에 십자군 원정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툴루즈 백작 레몽 드 생 질을 악질적으로 까내리는가 하면 고드프루아 드 부용에 관해서는 스스로가 설정하다시피 한 성격을 가지고 끝까지 그 관점에서 서술한다.

물론 레몽 드 생 질이 다소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이 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시오노 본인이 언급하듯 레콩키스타에도 참전했던 베테랑이며 당시 최대 세력으로 얼마든지 최고사령관의 자리를 요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실제로 중간에 스스로의 뻘짓으로 실각하기 전까지는 보에몽을 제외한 다수의 제후들이 그의 병력과 함께 행동하며 그와 군사행동을 함께 했음을 생각하면 레몽이 보에몽에게 열등감 같은 것을 느꼈다는 식의 추측은 분명 문제가 있다.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경우도 하인리히 4세를 지지하던 인물이었으면서 왜 교황이 주장하는 십자군 원정에 참전했을까 하는 문제에 관해서 "지금까지 황제의 뜻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자신을 위해서는 뭔가 한 것이 없으니" 참전한 것이라고 추측하는 한 편 그것을 그의 아이덴티티로 삼고 그를 바탕으로 그의 행동을 해석한다. 고드프루아가 왜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으나 대체로 그의 신앙심을 꼽는 편이다. 후에 예루살렘 국왕이 아니라 성묘의 수호자가 되는 것이나 레몽의 이기심에 질린 제후들이 곧은 성품과 예루살렘을 향해 직진하는 그에게 모인 것으로 볼 때.

또한 이 두개의 탑이 안티오키아 공격에 필요하다기보다 공략 후 방어에 도움이 되는 곳에...(생략)...다시 말해 보에몬드(보에몽)는 영국인들이 운반해온 다량의 목재도 자신의 생각에 따라 활용한 것이다. 제후들은 이것을 알아챘을까? 고드프루아는 설령 간파했을지라도 잠자코 있었을 것이다.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는 타인의 야망에는 관심이 없는 남자였다. 툴루즈 백작 레몽은 어떨까. 그것을 알아챌 만큼, 이 프랑스인은 영리하지 못했다.

이쯤 되면 말 다했다. 뿐만 아니라 저 목재로 지은 탑이 라 마호메리에인데 이는 엄밀히 말해 시오노가 마음대로 해석한 점령 후 방어로 더 적합한 요새가 아니라 다리 건너 문(Bridge Gate)을 봉쇄하고 항만으로부터 오는 보급행렬을 엄호하기 위해 지어진 공격용 요새다. 만약 점령 후 수비용이라면 점령 후 케르부가의 접근 소식을 들은 십자군이 왜 도로 그것을 부쉈겠는가? 더군다나 보에몽이 안티오크 내부에 배신자를 만들어 두고는 있었으나 라 마호메리에는 툴루즈 백작 레몽이 꿰차고 앉았다. 레몽의 목적은 도시의 선점이었고. 두 번째 탑 탕크레드의 탑 역시 문의 봉쇄가 목적이었으며 탕크레드가 그 탑의 수비를 맡은 것도 보에몽이 신뢰하고 마음대로 탑을 지어서가 아니라 제후회의 끝에 돈을 받기로 하고 지킨 것이다. 세상에 성을 공격하는 와중에 성 수비에 더 적합한 요새를 지을 만큼 멍청한 지휘관은 없다. 무엇보다 십자군은 당시에 그 정도로 여유롭지도 못했고. 더군다나 공성전에 관해서는 영주간 분쟁으로 이골이 난 유럽 군대다. 다른 제후들은 멍청해서 보에몽이 멋대로 구는 것을 보고만 있었겠나. 레콩키스타에 참전했던 그 레몽조차?

고드프루아에 관해서도 그는 전형적인 기사이자 뛰어난 전사이긴 했으되 본인이 전반적인 전략과 전술을 조율하며 싸운 경험이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 그에 관한 기록들은 전반적으로 열여섯에 어엿한 전사로 싸웠다든가 어느 전투에서 용맹스럽게 싸웠다든가 공성탑 위에서 직접 쇠뇌를 들고 싸웠다든가 하는 언급 뿐이다. 따라서 보에몽이 마음대로 탑을 지었다면 오히려 그것을 간파했을 것은 툴루즈 백작 레몽이며 고드프루아가 눈지채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일 가능성 높은 것은 아버지 정복왕 윌리엄 따라 여기저기 전쟁터를 전전한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커토즈고.

심지어는 인물 혼동도 눈에 띄는데 도릴레움 전투 당시 보에몽과 스크럼을 짜고 버텼던 인물은 플랑드르의 로베르가 아니라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다.

뿐만 아니라 1차 십자군 전쟁에서 흉갑이네 뭐네 하며 플레이트를 언급하는데 체인 위에 플레이트를 걸치는 트랜지셔널 아머는 아무리 빨라도 이보다 두 세기쯤은 뒤에 등장한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설마 후대의 기록화를 그대로 믿는다든지...아닐거야. 설마.

2.3. 사료 활용에 대한 비판

시오노는 "내가 쓰는 책은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소설"이라고 스스로 주장한다. 그녀는 자신을 역사가라고 부르고 자신의 책을 역사서라고 부른 적은 한 번도 없다. 스스로 자신을 역사소설가, 자신의 책은 역사소설이라고 언제나 밝히고 있다. 이 점에 대한 책임은 1차적으로 생각도 하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에게 돌아가야 하고, 그 다음으로 책 팔겠다고 이걸 역사책처럼 광고하는 출판사에 돌아가야 할 일이다. 시오노 자신은 간간히(완전히 잊어버리지는 않도록) 자기 책은 사료를 기반으로 나머지는 창작한 거라고 밝히니까. 그런데 그렇다면 완전히 소설의 형식을 취해야지, 그것도 아니고 논픽션 수준의 라이트한 역사서인 척하면서 18~19세기 수준의 사관을 주장하는 책을 줄기차게 펴내고 있는 그녀 또한 분명히 책임이 있고 비판을 들어 마땅하다.

예를 들어 어떤 작가가 환빠 논리가 가득 들어간 역사소설을 지속적으로 출간한다면, 그리고 그를 통해서 정치적인 주장을 하고 자기 목소리를 낸다면, 설령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라고 변명을 해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김진명 비록 실제 사료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그 사료를 가공하여 소설처럼 재구성을 해낸다는 것.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고 시오노 본인도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와 같은 내러티브 히스토리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24] 그 정도가 지나치고 개인 감정이 섞여들어간 것이 많기에 절대 좋은 평을 해줄 수는 없다.

신동아 2007년 5월호 인터뷰에 따르면, "이탈리아 주재 일본 대사관에서 '내일 도쿄에서 유명 대학교수들이 온다'며 만찬에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가 곧 그 교수들이 저와 동석하기 싫다고 했다는 연락을 받거나, 마키아벨리 전집에 발문을 써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좀 지나니 번역자가 시오노의 발문은 싫다고 했다[25]는 얘길 들을 때 어땠겠습니까. 그런 일은 수시로 일어났습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일본 학계에서도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시오노의 저술을 보면, 혹은 어느 특정 역사학자의 견해를 전체적인 학계의 의견인 것처럼 정의를 하면서 서술하는 아마추어적인 패턴을 보여줄 때가 많다. 가령 독일의 몸젠이라는 학자가 "카이사르로마 제국을 재창조했다"고 말한 것을 인용하며 카이사르가 로마 제국을 재창조했다는 근거로 삼는데, 이는 몸젠이 개인적인 찬사를 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므로 이것만으로 카이사르가 재창조를 하였다고 확인 서술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어떻게 재창조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들면서 독자들을 납득시키지도 않는다.[26] 또한 등자의 발달이 기사계급의 출현을 초래했다고 정의를 내리기도 하나, 사실 이에 대한 논의는 학계에서 아직도 진행 중에 있으며, 요즘은 등자 때문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사료를 잘못 인용하는 경우도 눈에 뜨인다.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있었던 칸나이 전투의 전술을 자마 전투의 전술과 혼동하였으며[27] 고대 로마의 선거제도를 서술할 때 민회라고 일컫으며 193개 그룹으로 나눠 과반수를 가져가는 쪽이 승리라고 말하는데, 고대 로마에는 백인대 집회와 평민 집회라는 2개의 집회가 따로 있었으며 위는 백인대 집회에만 해당될 뿐 평민 집회는 전혀 다른 방식을 쓰고 있었다.[28] 그리고 콤모두스를 암살한 사람들의 동기를 알 수 없다고 서술하나, 실은 이들이 왜 그랬는지 서술해 주는 사료는 명백히 존재하고 있다.[29]

또 개인의 취향에 맞는 사료를 고르고 다른 사료는 누락시키는 경우도 많다. 가령 포에니 전쟁 때 벌어진 전투에서의 전사자 수는 사료마다 다른데, 시오노는 대체로 부풀린 쪽의 사료를 골라 썼다. 때문에 한니발 바르카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스페인을 떠나 2만 5천명의 생존자와 함께 이탈리아에 상륙했다는 식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30]

또한 카이사르의 일생을 서술할 때, 그가 로마 제국 내에서 집정관으로써 원로원과 권력투쟁을 했을 때의 묘사도 주로 로마 과목의 교과서로 쓰이는 수에토니우스나 아피안의 사료와 불일치 한다. 폼페이우스의 동료들에게 배분하기 위한 농지법을 통과시킬 때, 원로원 의원들의 참석 하에 폼페이우스크라수스가 차례로 연설하고 동료 집정관인 비불루스가 새점 타령이나 하는 겁쟁이로 묘사하는데, 이런 서술은 위의 사료들과 정확히 불일치한다.[31] 지나가는 이야기로 언급하지만, 브루투스의 처가 불붙은 을 물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도 그대로 서술한다.[32]

또한 글을 쓰다보며 심취하는 탓인지, 그리스어에 무지한 탓인지, 안티오코스 3세가 등장할 때 대왕이란 존칭(메가스)라고 적어놓고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후 대왕의 칭호를 얻은자는 폼페이우스 뿐이라고 적어놓고 있다. 알렉산드로스 메가스와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를 구별하지 못한 건지 아님 자기 글에 심취해 잊은 건지… 이렇게 헬레니즘 세계&오리엔트에 너무 무지하고 서술을 거의 하지 않는다[33].

십자군 이야기 2권 에서는 예루살렘에서의 프랑크인의 풍습을 설명하는데 우사마 이븐 문키드의 회상록을 주로 가져오는데 사실 이븐 문키드의 기록은 일종의 농담 문학으로 쓰여진 것으로 진지한 사료로 쓰일 수 없는 것이다. 적어도 완전히 뻥이 아니라면 엄청나게 과장했을 거라는 게 학계의 입장이다. 예를 들어 '프랑크 남자들은 질투심이 전혀 없는 듯 자신들의 여인들을 완전히 풀어놓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몇개의 에피소드들이 등장하는데(아내의 침대에서 외간남자가 같이 잔다던가) 실상 중세 유럽에서는 남편이 여자나 외간남자의 모가지를 몸통에서 떼놓았을 법한 행동들이다.

이렇게 아마추어적인 의견 삽입과 자잘한 오류들은, 아마도 가쿠슈인 대학을 졸업한 이후 어떠한 공식교육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고 공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 때문인지 학계와 마찰이 심하다. 그래도 꼭 학계와 연이 없어서 마찰이 그렇헤까지 심한 편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사료위조사건이 있다. 자신이 창작해 낸 사료를 학회지에 실었다!! 물론 이게 문제가 되기 전에 그게 가짜라는 걸 다시 알린 것으로 보아, 정말 위조사료로 뭔가를 얻어내려고 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단순한 장난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장난으로 얼굴에 먹칠을 당한 출판사 측은? 학계가 치를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심지어 사료 조작이 은밀한 즐거움이라고 말하고 다니기까지 하였다. 서울대학교 주경철 교수의 저서인 <테이레시아스의 역사>는 이걸 지적한다.

다만, '허구의 이야기'로써 기승전결 구조를 갖추고 있다면, 그 글은 외형상의 형식과는 무관하게 소설에 해당한다. 즉, 소설은 기행문, 서간문, 일기의 형태로 쓰여질 수도 있고, 논문이나 보고서 형태로 쓰여질수도 있다. 즉, 시오노가 역사서와 유사한 형식으로 소설을 쓰는 것 자체는 비난받을 만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일단은 동인지소설인 시오노의 책을 역사서를 보는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 작가의 상상을 덧붙이는 건 소설이니 그럴 수 있다 쳐도, 자기 최애캐는 신격화하고 마음에 안 드는 건 별다른 근거도 없이 악의적으로 까내리는 행위나 제국주의 옹호 등을 소설이기 때문에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저런 짓은 진짜 동인지에서 해도 까인다.

3. 정치적 성향과 역사관

시오노의 글을 읽다보면 잘난 독재자가 나와서 그에게 행복하게 사육당하는 것 금발의 애송이 이 그녀가 진심으로 바라는 세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 잘 생각해서 무슨 말을 하는 지 꼼꼼이 읽으면 그게 아니라 체제보단 운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겠지만, 애초에 국가 시스템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것 자체가 이미 파시스트의 사고방식과 비슷하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나 로마인 이야기의 경우, 일단 오래 번영하는 국가는 개인에게 의존하기보다는 시스템에 의존하는 반 영웅주의의 국가라고 말하기는 하는데… 서술태도는 굉장히 영웅주의적이고 인물 중심적이다. 더욱이, 이런 영웅주의적 태도가 단순히 서술의 중심축을 어디에 두느냐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의 해석 자체를 위인을 통해 하려는 식이라서…

파시스트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시오노는 일본 우익도 대차게 비난한다. 할복에 대해서 어설픈 레나데라고 비꼬고[34] 외국의 자유당 총수에게 "일본자민당은 전혀 자유와 민주를 생각하고 있지 않기에 오랫동안 집권할 수 있었다"고 말할 정도니[35]. 덕분에 일본으로 귀국 못한다는 말이 들려오긴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시오노는 사실 유럽에 살고 있는 것이 자료수집등의 집필에 유리하고, 독자들에게도 시장성[36]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마인과 일본인의 비슷한 점'이라는 내용의 글을 읽으면, 더더욱 충격과 공포가 배가 된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로마 제국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이지만.[37]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해서 아사히신문과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돈이 없으면 원전 폐쇄도, 대체에너지 개발 등의 대비책도 마련할 수 없고 사고 이후 원전 가동 중지에 들어간 이탈리아는 프랑스로부터 전력을 사와야 해 전기료가 상승했고 경쟁력이 떨어졌다며 원전 재가동을 주장했다.

4. 과거사 논란과 망언

시오노 나나미 역사관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조상과 후손은 별개라는 주장을 하며 본인이 원하는 식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인은 고대 로마인과 전혀 관계가 없고 비잔티움과 로마는 역사적으로 아무 상관없다는 논리로 비약한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이탈리아의 로마유적을 영국인이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일본이 저지른 과거사의 문제들도 "그거 우리 조상이 한 것이긴 한데, 내가 한거가 아니니까 나랑 관계 없음. 그러니 내가 미안하게 느낄 필요도 없고, 사과할 필요도 없음"이라고 생각을 하며[38] [39] "일제에 점령당한 36년이란 상처가 한국인에겐 매우 큽니다."라는 질문에도 "한국이 역사 문제를 말할 때, 지금의 일본인은 전쟁을 이끌었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일본이 전쟁에 진 것은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입니다. 누군가 제게 전쟁 책임을 묻는다면 저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살아 있는 일본인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 아닐까요"라고 답했다.# 국가범죄를 당사자가 아니면 끝이라는 식으로 주장한 것이다.

2014년 9월 우익성향 월간지 문예춘추에서 구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연행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을 기고[40]했는데 위안부 피해자가 강제로 연행된 것에 대해 "인간은 부끄럽거나 나쁜 일을 했다고 느끼는 경우에 강제적으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스스로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스스로 믿게 된다"고 주장했는데 일단은 심리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다만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라 일본인들이 그러고 있다.

네덜란드 여성들을 강제로 성노예를 시킨 스마랑 강간 사건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조속히 손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어떤 독자의 후기를 보면 문제의 기고문이 탈아입구에 근거한 서양인들 눈치보기에 가까운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누가 위안부(慰安婦)라는 명칭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참 상냥한 이름을 붙였다”면서 “위안이라는 단어는 고통을 위로한다는 의미이며 종군 위안부라는 단어를 다른 언어에서 찾아봤지만 없었고 그래서 영어로 번역하면 섹스 슬레이브(성 노예)가 된다... 전쟁터는 인간에게 극도의 긴장을 강요한다. 하루가 끝난 후에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위안부에게 가서,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어버리기만 한 젊은 병사들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한다"고 역겨운 주장을 했다.

여담으로 이 발언에서 '위안[41]'이라는 단어를 번역 문제로 돌리고 있지만, 굳이 '위안'이라는 단어에 맞춰서 번역하자고 하면 'solace', 'relaxation' 등으로 쉽게 번역할 수 있다. 종군위안부를 '섹스 슬레이브'로 번역하는 것은 바로 저렇게 시오노 나나미가 하는 짓처럼 미화된 단어로 실태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 실태에 맞춰 정확한 명칭을 붙이려는 뜻에서 일부러 단어를 적나라하게 하는 것이다. 그 실태는 죄악으로 가득찬 계획에 적당히 미화된 이름을 붙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나치 독일에서 홀로코스트를 공식 문서에서는 "최종 조치" 등으로 돌려 불렀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과거사 문제를 재판에 빗대서 중국과 한국은 원고로 일본은 피고로 비유하며 원고측(한국과 중국)은 탁자를 치며 목소리를 높이는 전법을 잘쓰는데다 피고측은 유능한 변호인을 기대하기 어려워서 피고측인 일본은 침묵해버리기 쉽고 침묵하고 있으려면 증거를 통해 자신들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20세기 전반부터 50년간 일본의 모든 공문서를 모아 공개하고 영어 번역문도 만든뒤 이에 대한 판단은 제3자에 맡기자고 했다. 그 뒤 '아시아역사자료센터'라는 곳이 공문서를 수집하고 있다면서 "이런 센터를 통해 '일본은 역사를 마주 보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센터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10배 늘리자면서 "공문서를 데이터화하는 데 20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 자기비판이나 사죄를 유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산을 10배 더 지원하는 건 싸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존 저작들의 탐미주의적, 제국주의 옹호적, 영웅주의적 성향 때문에 상당수의 독자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평생까임권 확정. 시오노의 책을 안 사서 다행이었다는 비아냥분서인증하고 싶다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5. 취향(?)

로마 제국과 관련되지 않은 그녀의 다른 책, 에세이 등을 읽다보면 그녀가 얼마나 외면의 아름다움, 즉 육체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지 알 수 있다. 1900~1950년대를 주름잡은 할리우드의 미남미녀 배우들에 대해서는 온갖 찬사를 던지다가도, 잭 니콜슨, 더스틴 호프먼, 로버트 드니로는 극딜한다. 온갖 이유를 다 대는데 잘 들어보면 그냥 '아 못생긴 것들 나오니 짜증. 내가 저걸 왜 봐야 함?', 이 한 마디뿐이다. 메릴 스트립도 비슷한 이유로 까인다. 좀 더 자세히 적으면 1950년대 이전의 영화를 보면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는데, 리얼리즘의 시대로 접어들며, 그리고 니콜슨과 호프먼, 드니로의 전성기가 시작되며 영화 속에서 현실과 똑같은 피로함을 느끼게 된다며 저 셋을 싫어한다. 물론 저 세 명이 연기 잘하는 건 인정하지만 '현실과 똑같은 연기를 한다고 그게 연기를 잘하는 걸까?'라며 딴지를 걸고 넘어진다. 이 에세이는 메릴 스트립을 향해 '그렇게 슬픈 표정 짓지 마세요. 당신이 세상의 모든 슬픔을 다 알고 있나요?'중2병 라는 어이상실의 말을 날리며 끝맺는다.[42]

그녀가 외모가 아닌 육체의 아름다움에 끌린다고 한 이유는, 운동선수도 또 엄청나게 좋아하기 때문이다. 레니 리펜슈탈이랑 갈수록 똑같다?특히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마이클 조던을 비교한 글을 보면 앞선 세 배우를 극딜한 것과 반대로 세 선수 모두를 엄청나게 찬양한다(…). 이때 버드에 대해서는 그냥 저냥 훌륭한 선수다 정도로 묘사하고 넘어가는데, 존슨부터 슬슬 물고 빨기가 발동이 걸린다. 패배한 날에는 '내가 내일 자네들에게 승리를 보여주겠어' 라고 말한 뒤 반드시 이겼다는 일화를 이야기하며 '리더는 이래야 한다' 라고 말하기도. 절정은 마이클 조던이다. 조던에 대해서는 특유의 운동 능력을 찬양하며 '적진을 향해 돌격하는 젊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떠오른다' '인간 육체 본연의 아름다움' 등 시오노가 쓸 수 있는 가장 큰 찬사를 바친다. 여기에는 육상선수인 칼 루이스도 포함된다.

이탈리아에 오래 거주하다보니 엄청난 축빠이기도 한데, 자기 스스로 축구를 보는데 나름 식견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인녀얼빠수준에 불과하다.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즈보니미르 보반, 로베르토 만치니,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데니스 베르캄프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왠지 좋아하는 "선수" 취향이 아니라, "남자" 취향인것 같지만 무시하자 좋아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대단하다. 다음은 선수에 대한 평이다.[43]

바티스투타: "한번이라도 좋으니 카메라멘으로라도 분장해, 골 바로 뒤에서 바티스투타의 슈팅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이 천성의 스트라이커의 발에서 튀어나가는 슈팅의 위력을, 골키퍼와 거의 같은 위치에서 맛보고 싶은 거예요. 막무가내로 강력히 밀고 들어오는 느낌이 들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뭔가 굉장히 성희롱섹드립스럽다

지단: "프랑스의 10번이 델 피에로였다면, 프랑스는 이기지 못했어요. 한편, 이탈리아의 10번이 지단이었다면, 이탈리아는 챔피언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대답이 되지 않나요? 지단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이런 남자와 결혼하면 여자는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다하게 돼요. 부드러운 유머, 축구를 직업으로 삼는 데 대한 마음가짐의 확실함, 무대가 크면 클수록 더욱 발휘되는 승부 배짱. 미남이 아니건 머리가 벗어졌건 알 바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거든요. 고대 로마의 장군이라면, 서슴없이 그를 백인대장에 임명했을 겁니다." 항가항가

루이스 피구: "포르투갈 팀의 약진상은 나를 매우 행복하게 만들었어요. 첫째, 피오렌티나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루이 코스타의 차분한 멋이 못 견디게 좋아요. 게다가 피구 선수는 그 생김새부터가 '사나이'거든요. 그래서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요."

반면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서슴없이 디스하는데, "나의 위대한 이탈리아가 이럴리가 없어!" 수준이다.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는 소심하고 모국어조차 제대로 못하는 저능아라고 깠다. 프란체스코 토티역시 지능 수준이 의심가며, 유로2000에서 고작 한 골 넣은걸로 거만해하는 어린애라고 깠다. 이러한 어린애들이 이끄는 이탈리아 축구팀은 절대 승리할 수 없다고 깠는데. 결과론적으로 그들의 대활약으로 이탈리아는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오노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또 흑인 명배우 드니 포이티어인데, 이 사람에 대해 '백인 남성들은 그와 함께 앉아 있다면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본능적인 남자로서의 열등감과 위압감을 느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글을 써 놨다. 이게 말도 안 되는 이유는 백인을 황인, 포이티어를 백인 배우로 바꿔 보자. '아시아 남자들은 백인 남자들에게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본능적인 남자로서의 열등감과 위압감을 느낀다' 라고 하면 아시아 남자 중 화가 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물론 백인이 역사 속에서 상대적으로 타 유색 인종을 차별해 왔고 차별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걸 그대로 되돌려 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포이티어에 대해 '지나치게 완벽한 남자'라고 하더니 그와의 데이트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너무 부담스러울 것 같다면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했는데 김치국부터 마신다.(...) 이거 카이사르 때에도 그러지 않았나 그러더니 흑인의 캐릭터가 시드니 포이티어에서 에디 머피로 바뀌어 가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하며 재치있고 똑똑한 에디 머피와의 데이트는 오페라를 봐도 옆에서 계속 농담을 소곤거리는 그 때문에 웃음을 참지 못하는 실례를 범할 거라며 뇌내 망상을 펼친다. 뭐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의 글이긴 하지만 이후 흑인의 캐릭터가 에디 머피와 같은 떠벌이로 지나치게 고착화 된 것을 보면 그다지 안목이 있었다고 보기에는 힘든 글이다. 어쨌든 조던, 포이티어, 머피 등을 극찬하는 것과 백인과 흑인을 비교해서 흑인의 우위를 역설하는 글 등을 보면 시오노 나나미는 흑인 남성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모양.(...)

6. 그 외

시오노의 책이 인기를 얻은 것에는 번역자 김석희의 공로가 크다. 실제로 김석희 번역이 아닌 작품들은 번역이 되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장에서 참패했다. 이는 시오노 팬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경우, 김석희 씨가 시오노의 동의를 얻어 문장 구조를 완전히 뜯어 고쳤다고 한다.

특히 전쟁 3부작의 경우, 소설이기 때문에 역사는 잠깐 제쳐두고 읽을 수 있다. 다만 시오노의 책을 읽을 때에는 그 기반에 깔린 생각을 염두에 두면서 읽을 것. 다시 강조하지만 그녀는 (아주 잘못된 의미에서)마키아벨리스트[44] + 극렬 일신교까(그리스도교가 주로 나와 까이니 그리스도교까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슬람교는 더 까인다. 유대교도 좀 까인다.)+맘에 드는 남정네 하악하악이다(…).

해당 분야에 평생을 바쳐 살아온 전문가(연구자)도 아니면서 그 분야에 대해서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을 보면, 역시 오타쿠 문화[45]를 탄생시킨 일본인답다고 할까. 본격 고대 로마 + 르네상스 + 카이사르 덕후 물론 본인은 '딜레탕트'라는 말을 써서 오타쿠와의 차별화를 하고 있지만 애당초 Dilettante라는 단어의 뜻 자체가 '예술학문 분야에 대해 수박 겉핥기식으로 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46].

굽시니스트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에서 시오노를 로마 제국 동인녀라고 평가했다(작게 써 둬서 잘 살펴보지 않으면 못 찾아봄. 출판본에는 그나마 크게 나와 있다. 힌트를 주면 피자와 관련 있음. 은근히 이원복 교수도 까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시오노는 정규 훈련을 받은 역사가가 아니고, 그녀의 책을 역사로 읽는다는 것은 바보 같고 위험한 일이다. 시오노는 자신의 글에서, 그것이 역사서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고민도 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는 소설가인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해 놓고서도 소설이 아니라 역사서인 척하는 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국내 한정으로 역사학/인문학에 몹시 나쁜 영향을 계속해서 끼치고 있다. 아무리 제대로 된 역사서가 아니라고 밝히고 있더라도, 어느 정도 학계의 연구에 의해 명확히 밝혀진 사실조차 무시&왜곡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스탠스[47]를 표현하는 책이 시오노의 저작들이다. 게다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때는 당당하게 사실인 양 이런저런 사례를 끌어 모으다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지적을 받으면 '픽션이니까'라면서 물러나는 자세를 취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흥미진진하게 서술하는 능력은 뛰어나므로, 그녀의 저서는 어느 정도 역사에 관심이 있으나 잘 모르는 초보에게 있어 훌륭한 입문서가 되기도 한다. 삼국지연의가 많은 역덕들을 중국사로 이끌었듯이. 시오노의 불쏘시개를 삼국지연의에 비유하다니...연의는 차라리 소설이기라도하지 나관중이 모욕감을 느낄듯 하지만 제대로 된 서양사에 대한 지식을 쌓고 싶다면 그녀의 책으로 공부하는 것은 위험하며, 대학교수와 같은 역사학자들이 서술한 저서를 읽는 것이 좋다. 둘 다 읽으면서 시오노가 어떤 부분에서 이상하게 서술했는지 발견하는 것도 가능하다.

7. 작품

국내에 출판된 작품은 국내명 중심으로 적었다.

  •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 원제는 '사람들의 모습'
  •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 남자들에게
  • 남자의 초상 - 국내 미출간
  • 다시 남자들에게 - 국내 미출간
  •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 한니발 전쟁
    • 승자의 혼미
    • 율리우스 카이사르 상(루비콘 이전)
    •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루비콘 이후)
    • 팍스 로마나
    • 악명높은 황제들
    • 위기와 극복
    • 현제의 세기
    •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 종말의 시작
    • 위기로 치닫는 제국
    • 최후의 노력
    • 그리스도의 승리
    • 로마 세계의 종언
    • 로마인에게 묻는 20가지 질문
    •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 로마에서 말하다 - 아들 안토니오 시모네와 나눈 영화 이야기
  •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 원제는 '르네상스는 무엇이었는가'
  • 르네상스의 여인들
  • 마키아벨리 어록
  • 바다의 도시 이야기
  • 사랑의 풍경 - 원제는 '사랑의 연대기'
  • 살로메 유모 이야기
  • 세 도시 이야기 - 원제는 '색채로망 3부작'
  • 생각의 궤적
  • 신의 대리인
  • 십자군 이야기
  • 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 어른 2명의 오후 - 국내 미출간
  • 어부 마르코의 꿈
  • 이탈리아 공산당 찬가 - 국내 미출간
  • 이탈리아로부터 - 국내 미출간
  • 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
  • 전쟁 3부작
  • 침묵하는 소수 - 원제는 '사일런트 마이노리티'
  • 콘스탄티노플의 뱃사공
  •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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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동음이의어로 鹽の七味, 소금의 일곱 맛이라고 장난치기도….
  • [2] 아들 하나를 낳았으나 훗날 이혼했다.
  • [3] 당연히 아니다. 견유학파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때부터 이미 ' 같은 것들'이라고 불려왔다.
  • [4] "일신교는 만악의 근원"이라는 인터뷰도 있다. 로마 제국이 망한 큰 이유 중 하나로 그리스도교의 도입을 꼽았을 정도.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이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 [5] 사실 시오노뿐 아니라 대부분 일본인들의 관이 이런 편이다. 이 여자는 NHK에서 아예 유명 비구니세토우치 자쿠초(瀬戸内寂聴)와 대놓고 대담을 했을 정도로 일본의 불교적, 다신교적 사상을 크게 옹호하는 듯 하다.
  • [6] 더불어 <콘스탄티노플 함락> 에는 메메드 시대에 역사서를 쓴 투르크인은 그 혼자인 것처럼 되어 있지만, 아시크파샤자데(Aşıkpaşazade, 1400~1484)나 케말파샤자데(Kemalpashazade, 1468~1536)는 어디다 팔아먹었을까. 다만 그리스 혐오에 가까운 그녀의 '관점' 을 생각하면 투르순 베이의 기록을 따라 콘스탄티노스 11세가 최후의 순간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다가 끔살당했다고 기록했을 법도 한데, 왜 장렬히 전사했다고 해주셨는지 의문. 물론 '비잔틴 제국 ≒ 로마 제국'이지만, 그녀는 애초에 "비잔틴은 위대한 로마 제국이 아니야!"라고 하는 분이다.
  • [7] 19~20세기 초에 중세 까는 건 유럽 역사학의 대세였고, 이러한 경향은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 [8] 사실 한국 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로마 제국 역사라는 건, 중ㆍ고등학교의 세계사 수업에서나 아주 잠깐 배우고 넘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로마인 이야기》가 히트를 치기 이전에 한국어로 발간된 서양 고대사 관련 서적들의 양은 말 그대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 [9] 심지어 서로마 멸망(476년) 후 1000년도 넘게 지난 레판토 해전(1571년) 때의 지도에도 로마 가도가 그려져 있다. 출판사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넣은 건지, 작가의 의도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 [10] 사실 이것도 군주론 4장에 나오는 마키아벨리의 표현을 빌린 것이다.
  • [11] 이는 오스만 제국에 대한 무지. 내지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녀는 오스만 제국에 대해 상당히 무지한 편으로, 시파히는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예니체리만이 오스만의 상비군이었다고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
  • [12] 여담이지만 시오노의 책에서는 툭하면 '이에 관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내가 전에 쓴 책을 읽으세요'라고 나온다. 과거에 쓴 내용을 장황하게 쓰고 싶지 않은 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마치 광고하는 것 같아 이야기의 맥이 끊기고 짜증난다. 다행히 《로마인 이야기》는 그러하지 않았지만.
  • [13] 왈론계 벨기에인
  • [14] 이 가운데에서도 그리스 역사가들이 '적군(거의 대부분 오스만 제국군이다)' 의 수를 너무 높게 잡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여러번 써먹는 것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데, 시오노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건 중세, 르네상스 시대 연대기 작가라면 민족 불문하고 어느 정도 공통되는 점이다. 당연히 아군의 승리를 과대평가하고, 적군의 승리는 과소평가하기 위함. 가령 베네치아공화국의 역사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 에 나오는 '스쿠타리(알바니아어로는 슈코더르) 공방전'의 경우, 시오노가 체계적이고 정확하다고 찬양하는 베네치아의 역사가 마린 바를레티가 오스만 제국군의 수를 무려 35만으로 잡은 예가 있다. 물론 오늘날 역사가들은 "1"자가 "3"자로 바뀐 것 아니냐고 하는 중.
  • [15] 이때 이 군단병은 단숨에 목을 친 뒤, 곁에 있던 그의 아내도 살해하고 심지어 갓난아기인 자식까지 벽에 던져 죽인다. 세상에 어느 아버지가 자식에게 이렇게 한단 말인가.
  • [16] 네로 시대의 유명한 장군 코르불로의 딸
  • [17] 물론 롱기니아가 배후에 있다는 것은 고대 역사가들이 서술에 나오므로,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롱기니아가 이렇게 한 동기가 조카딸과의 관계를 질투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완전한 시오노의 상상이다.
  • [18] 하지만 미국의 경우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민주주의를 잘 굴렸다. 사실 넓은 영토를 통치하는 수단이 꼭 제정이어야 되는 이유는 없다. 다만, 미국의 경우 철도를 통한 고속 교통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은 참고해 두자.
  • [19] 당시 로마 제국의 영토는 이미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이를 2배로 확장한 것이니…
  • [20] 그러나 일본 외에서는 지역구 세습을 일본 정치의 후진성으로 이해한다.
  • [21] 아이러니하게도 로마 제국 시절, 혈연에 의한 세습으로 물려받은 젊은 황제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칼리굴라네로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대로 그렇게 죽었고, 뒤를 이은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인 도미티아누스도 암살당하였다. 또한 5현제 이후 콤모두스도 암살당했고 뒤를 이은 세베루스 왕조 때의 카라칼라, 엘라가발루스,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도 모두 암살된다. 그 뒤 군인황제 시대에 혈연으로 세습한 발레리아누스의 아들인 갈리에누스도 암살로 살해당한다. 따라서 콘스탄티누스 때까지 양자가 아닌 혈연 계승을 한 황제는 재위한 지 2년만에 죽어버린 도미티아누스의 형 티투스 정도를 제외하곤 전부 암살로 생애를 마치는데, 혈연 계승이 안정적이라는 근거가 무엇인지 의문시된다.
  • [22] 이 가족같은 노예제는 로마가 이탈리아도 통일하기 전의 노예제 혹은 중산층이 부리는 가족 단위 노예를 설명할 때 쓰이는 말이니, 시오노가 착각한 셈. 주경철 교수는 "햇빛을 보지도 못했던 광산 노예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는 식으로 비판했다.
  • [23] 근거 있어 보이는 추측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옥타비아누스는 클레오파트라가 에 물려 죽은 것을 알고 서둘러 시종을 시켜 몇 L의 액을 빨아내게 하였고, 마침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낙담했다는 것이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에 등장한다. 다만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은 여기저기서 루머로 돌아다니던 이야기를 듣고 쓴 게 많기 때문에 객관성이 높은 편은 아니다. 당장 티베리우스 전설이라는 기록만 봐도, 다른 역사가들은 아예 관심도 갖지 않거나 대충 이런 소문이 있다는 식으로 써놓은 것들을 수에토니우스가 그럴 듯하게 정리한 뒤 출판한 것. 상식적으로 봐도 클레오파트라가 옥타비아누스를 유혹하여 탈선시킬 위험성이 없다면야, 죽는 것보다 살려서 개선식에 공개하는 쪽이 훨씬 이득이다.
  • [24] 정확히는 로마인 이야기 2권 서문에서 자신이 쓰는 것은 역사서인 '히스토리아'가 아니라 로마인의 소행을 살펴보는 '게스타이'라고 밝혔다.
  • [25] 마키아벨리 전집 preface를 시오노가 쓰는 것은 당연히 잘못된 일이다. 그녀는 아마추어 마키아벨리 연구가라고 할 수는 있어도, 마키아벨리 전공자라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완역 정사 삼국지의 서문을 김운회가 쓰는 격이랄까(…).
  • [26] 참고로 몸젠은 유명한 역사가이고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긴 하지만, E.H 카가 비판하듯 영웅주의적 사관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는 비판적으로 접근되고 있다.
  • [27]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이 제 일선에 있는 잡병을 돌파하자 배후에 포진하던 정예병이 맞섰고 잡병은 측면에서 협공했다고 하는데, 이는 자마 전투때 벌어진 일이었다. 이렇게 이중으로 전열을 짠 뒤 일선이 분쇄되도 포위가 가능할 정도면 숫적으로 우세해야 하는 상황인데, 칸나이 전투 때는 로마군의 보병전력이 한니발 바르카 군의 2배가 넘었다. 사실 칸나이 전투는 너무도 유명한 전투이다. 포에니 전쟁의 수많은 전투 중 가장 유명한 전투이고, 고대 로마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이것만큼 대중적인 전투는 없는데, 여기서 전술을 잘못 설명한 것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 [28] 고대 로마 항목 참고.
  • [29] 이때 암살자들은 콤모두스를 죽이지 않으면 다음날 처형되는 신세였다. 로마인 이야기 참고.
  • [30] 갈리아를 지나 알프스를 넘는 것이 힘든 여정이긴 하였으나, 75%가 행군 도중 사라질 정도는 아니었다. 가령 그의 동생 하스드루발은 역시 대군을 이끌고 한니발 바르카와 똑같은 루트를 지났지만, 매우 적은 이탈자를 냈을 뿐이었다. 비록 처음 시도가 힘들다고는 하지만, 같은 루트에서 그 정도로 처음 시도한 쪽과 2번째 시도한 쪽의 차이가 어마어마한 이유를 설명하긴 어렵다.
  • [31] 로마인 이야기 참고.
  • [32] 이건 당시 로마 제국에서 떠돌던 이야기이고, 이후 2차 창작물에서도 자주 나오는 이야기지만 플루타르코스는 당대 여러 기록과 브루투스 개인 서간집을 인용하여 이설을 일부러 반박하고 있다. 즉 브루투스가 필리피 전투에 참가할 즈음에 이미 중병으로 죽기 직전이었다는것, 플루타르코스를 상당히 자주 인용하는 시오노가 이 서술을 고의로 누락시킨 것이다.
  • [33] '무지'를 넘어, '비하'에 가까운 발언도 서슴치 않는다. 로마와 파르티아나 사산조 페르시아가 전쟁을 벌이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써넣는 소리가, '서방' 사람들은 이성을 갖춘 반면 '동방' 사람들은 강력한 전제군주에게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며 위대한 '서방' 사람들과는 달리 '동방' 사람들에게는 힘이 곧 이치이며 무조건 강자에게 굴복한다는 것.
  • [34] 미시마 유키오할복 사건에 대한 표현이었다. 당시 시오노가 무명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것.
  • [35] 그런데 또 이게, 미묘하게 자민당을 까는 것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변신에 능한 일본 자민당나름대로 잘났다고 띄우는 듯한 느낌도 든다. 혹은 이런 정당을 줄창 찍어주는 일본인들을 은근히 비꼬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대 로마인들과 일본인들의 성향은 너무도 대조적이고, 로마인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시오노에게 이런 일본인들이 그다지 탐탁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 [36] 재유럽 작가가 쓰는 유럽이야기가 일본 토종 유럽작가보다는 독자들에게 더 호소력이 있지 않겠는가?
  • [37] 사실 이 글은 일본 잡지가 굳이 시오노에게 "일본인과 로마인의 비슷한 점을 설명해 주세요!!"라는 병맛 넘치는 질문을 해서 억지로 대답한 것에 가까워서, 딱히 시오노가 욕먹을 것도 아니다.
  • [38] 로마인 이야기의 출판과 더불어 그녀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시오노 나나미는 한국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일관되게 저런 견해를 보였다. 한번은 침략을 미화한 교과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과 일본은 각자 다른 버전의 역사교과서를 가지면 된다"는 식의 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김대중 대통령 재임시절)에는 한일 관계가 비교적 양호해서 그랬는지 한국에서 별 문제제기 없이 넘어갔고, 이렇게 저자의 역사관이 의심스러웠는데도 로마인 이야기가 청소년-중고등학교-대학생 권장도서가 되기도 했다. 그 결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팔렸고, 더 유명해졌다.
  • [39] <로마인 이야기> 자체도 제국주의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계속 받아 왔으며, 특히 로마인이 "진출"하면서 저지른 여러 잔혹행위들은 거의 묘사되지 않는다. 이런 "진출"(실제로는 침략)에서 "문명화"된 로마인이 저지른 주민학살이나 인질포획, 노예화와 같은 잔인함은 야만족이랑 별반 다를바 없었으며, 켈트족이나 게르만족, 그밖의 여러 "야만족"들이 괜히 로마인의 지배를 거부하고 저항한게 아니다. 그런데 시오노의 견해에는 이런 진출은 야만족들을 개명시키기 위한 것쯤으로 묘사되고 있다.
  • [40] 기고문 제목은 "慰安婦大誤報 日本の危機を回避するための提言-朝日新聞の“告白”を越えて"(위안부대오보 일본의 위기를 회피하기 위한 제언-아사히신문의 "고백"을 넘어서)이며, 문예춘추 홈페이지에서도 본문 확인은 할 수 없다.
  • [41] 일본에서는 종업원의 사기 진작을 위한 사원 여행을 '위안여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42] 메릴 스트립항목을 읽으면 알겠지만 데뷔 이전에 이미 자력으로 명문대학에 진학하고 젊은 시절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고생 끝에 최고의 배우로 성장한 사람이다. 명문 가큐슈인에 진학해 이탈리아 남성과 결혼해 탈아입구의 욕망을 성취하고 역사 동인질을 하는 시오노 나나미가 과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클레오파트라처럼 시오노 할매는 자신보다 뛰어나다 싶은 여성에 대한 열폭 성향을 보이는데 이도 마찬기지 인 듯.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전근대적 여성관을 엿볼 수 있다.
  • [43]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둔 2001년에 이루어진 이 인터뷰는 축구 동인녀스러운 내용이 웃음을 유발한다. 관심있는 위키러는 읽어보기를.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2002/2002/01/006002002200201031427001.html
  • [44] 마키아벨리가 냉혹한 통치술이나 과단성, 무도덕성을 주장하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의 자율성'와 '공화주의'를 실현한다는 좋은 목적을 위해서만 정당화되는 것이다. 목적을 무시하고 단지 독재나 권력을 위한 권모술수를 부리는 것은 마키아벨리의 뜻에서 백만광년 멀어진 것이다. 그런데 시오노는 유능한 독재자에게 사육당하고 싶어하잖아? 안될거야 아마
  • [45] 원래 오타쿠란 단어는 애니메이션, 만화같은 서브컬처 오타쿠만을 지칭하는 뜻이 아니었다.
  • [46] 단 미국에서는 벤자민 프랭클린 시절까지만 해도 그렇게 나쁜 뜻으로 취급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적 인간이었던 벤자민 프랭클린이나 토마스 제퍼슨을 딜레탕트라고 묘사한 당시 문헌이 존재한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 [47] 기본적으로는 우파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하다.
  • [48] 국내판은 '~살인사건'이라는 부제가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