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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last modified: 2019-02-12 00:59:27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상세
3. 사원 처우 및 복지
4. 지브리의 고민
4.1. 개요
4.2. 상세
4.3. 작품제작 중단 발표
5. 작품 특징
6. BD/DVD
7. 작품 일람
8. 게임 참여작
9.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展
10. 지브리 미술관


1. 개요

スタジオジブリ.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

1985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하기 위해 결성된 "톱 크래프트"를 모체로 하여 미야자키 하야오타카하타 이사오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위한 스튜디오로 설립되었으며 설립 당시 도쿠마 쇼텐의 출자로 주식회사로 출범했다.

2. 상세

지브리(ghibli)라는 이름은 모래 폭풍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어에서 온 것이며[1],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 공군의 비행기 이름이기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시절 집안 환경으로 비행기에 무척 관심이 많은 비행기 매니아라 이를 스튜디오의 이름으로 채용한 것은 미야자키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의 비행기 매니아 기질은 훗날 붉은 돼지바람이 분다를 통해 발산된다.

지브리의 이름으로 나온 첫 장편 애니메이션은 "천공의 성 라퓨타". 이후 여러 장편 애니메이션들을 내놓으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던 도쿠마 쇼텐이 지브리를 흡수하여 일개 사업부문으로 격하시키기도 하는 등 영욕과 부침도 겪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원령 공주 이후 지브리를 퇴사하였으나 지브리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던 콘도 요시후미가 사망하는 바람에 1999년 다시 지브리의 소장으로 복귀한다. 이후 2004년, 도쿠마 쇼텐 소속의 사업부에서 주식회사로 복귀했고, 이듬해는 도쿠마 쇼텐 산하에서 완전히 벗어나 스즈키 토시오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티븐 앨버트가 이사로 취임했다. 2008년 2월, 스즈키 도시오가 대표이사 사장직에서 물러나 이사 겸 프로듀서에 전념하게 되며, 후임으로 호시노 코지(星野康二)[2]가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자체 제작품, 특히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제작사로만 알려져 있지만 하청도 간간히 수주한다. 요미우리 신문의 CM이나 리소나 은행의 CM이 대표적.

3. 사원 처우 및 복지

원래 한 작품을 만들 때마다 스탭들을 모으고 개봉 이후에 해산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다가 안정적인 작품 제작과 인재육성을 위해서 고정 스태프제로 전환했고, 스태프들에게 수당제로 지급되던 보수지급도 고정 급료제로 전환하여 업계 내에서 손꼽히는 처우를 자랑한다. 이는 지브리의 작품들이 나올 때마다 흥행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여유가 있어서이기도 하다.

사원 복지 역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상당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 업계 최초로 사원들의 육아를 위해서 지자체와 협력하여 시설을 건설했으며 '지역 주민들과 사원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외주, 아웃소싱[3]이 만연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미술, 촬영 등을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애니메이터는 토요타의 후원으로 일정 기간 연수를 한 다음에 채용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급료 사정이 좋은 대신, 한 명의 애니메이터로서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는 거의 없는 곳이다. 평생 인물만 그리거나 평생 배경만 그리다가 다른 업무가 불가능해지거나, 비(非)지브리식 연출에 익숙하지 않아 다른 애니메이션 업체에 채용되지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지브리에 입사하는 것은 곧 미야자키 햐야오의 그림 도구가 된다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으며, 오시이 마모루도 이러한 지브리의 내부 상황에 대해 지적했다.[4]

참고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데즈카 오사무의 장례식 추도문으로 데즈카가 애니메이터를 3D 직종으로 정착시킨 것을 디스한 바 있다.

4. 지브리의 고민

4.1. 개요

미야자키 하야오와 타카하타 이사오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 21세기 이후 지브리의 최대 고민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안노 히데아키오시이 마모루는 한 때 지브리와 연을 맺기도 했다. 오시이 마모루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SF 구상들을 애니화하는 기획이나 묵공의 애니화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실제 제작까지 이르지 못했다. 일각에선 오시이가 미야자키를 비판하는 이유는 이런 기획무산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 본다.

안노 히데아키나 오시이 마모루가 미야자키와는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되고[5] 이후 미야자키는 젊은 스탭들을 육성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한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원래 젊은 감독에게 맡기기로 했다가 중간에 일이 꼬여서 결국 미야자키가 맡아야 했고, 귀를 기울이면에서는 콘도 요시후미가 두각을 드러냈지만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6] 미야자키는 결국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지브리로 돌아와야 했다.

4.2. 상세

모리타 히로유키가 감독을 맡은 고양이의 보은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도쿠마 쇼텐 회장[7]은 만족할만한 흥행을 거두지 못했다는 이유 (극장 흥행 수입 금액은 50억엔.) 로 크게 격노하여 결국 호소다 마모루가 감독을 맡아 제작할 예정이었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미야자키가 맡게 되었다.[8] 그러나 시간적으로 보면 호소다 마모루의 하울의 제작이 중단된 것은 고양이의 보은이 개봉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건 낭설이다. 호소다 마모루 항목 참고.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게드전기의 감독을 맡으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에서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로 계승, 지브리의 대안을 찾은 듯 보였으나, 게드전기가 온갖 악평을 받고 원작자 어슐러 K. 르 귄마저 "Yes, it`s a good movie. Not my book. It is your movie. (좋은 영화다. 하지만 이건 당신들 영화지 내 소설이 아니다.)' 라고 부정한 실패작으로 낙인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시사회 도중에 나가버렸고, 뒤를 따라 나간 취재진에게 발견된 그는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그 놈은 어른이 못 됐어" 라고 발언했다.

하필이면 같은 시기에 호소다 마모루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개봉했다. 매출 자체는 지브리 네임벨류로 초반에 성공한 게드 전기 쪽이 더 높았지만, 게드전기가 평론가와 관객들의 흑역사 낙인에 시달리는 동안 시달소는 극찬과 함께 각종 영화제 상을 싹쓸이 했다. 그나마도 게드전기는 일본에서 흥행 성공을 거뒀지만 해외 흥행은 참혹했다. 전세계에서 프랑스와 한국에서만 100만 달러를 넘기는 흥행을 거뒀고 미국 흥행 수익은 겨우 5만 달러도 되지 않았다. 종전 지브리 애니들이 미국에서 극장수익으로만 200~1000만 달러를 넘었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는 다시 힘든 몸을 이끌고 최전선에 복귀, 메가폰을 잡고 벼랑 위의 포뇨를 완성했다. CG를 쓰지 않고 손 애니메이션으로 절정의 영상미에 공들인 영화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내 반응과 수익도 성공적이라 다시 지브리의 재림을 알렸지만, 문제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체력의 한계로 앞으로 한 작품 정도 밖에 못 만드는 상황이다. 당장은 아니어도 나중에 정말로 은퇴할 가능성이 크고 타카하타 이사오도 별세해서 지브리가 노장들의 은퇴 후 어떤 대안을 찾을지 의문. 지브리에는 그의 후계가 부재중이다.

이걸 미야자키 본인도 아는지, 안노가 가이낙스에서 독립해서 스튜디오 카라를 세웠을 때 "지브리"라는 깃발을 단 배가 가라앉고 있고 수평선에서 "카라"라는 배가 지나가는 그림을 그려서 축전을 보내줬다.

한국에서 강연회를 했던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의 발언에 따르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연출자를 키우는 재능이 아닌 교묘하게 망가뜨리는 재능이 있다고 한다. 본인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슬럼프에 빠져있던 순간을 파고들어 감독 데뷔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도 잡지의 비공개 인터뷰에서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외부에서 신진 감독을 영입하려고 하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매번 "그 녀석이 이걸 제대로 할 턱이 없어" 라며 반대하고, 지브리의 내부 스탭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주눅이 들어서 재능을 키울 수 없다고 한다.

안노 히데아키도 스즈키 프로듀서와의 대담에서도 이 점을 지적했다. 미야상은 자신이 마음에 들거나, 써 먹을 수 있는[9] 사람이 아니면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10]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도 젊은 인재의 재능을 키우기 보다는 짓누른다는 점을 자각, 고민하고 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인턴사원에 지원한 호소다 마모루를 불합격 처리하면서, "(내가) 자네의 재능을 꺾어버릴 염려가 있어서 불합격 시켰다" 는 편지를 보낸 일화도 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때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 재능을 높이 사서 호소다를 직접 지명해 감독으로 불러들이지만...

2009년부터 지브리 5개년 계획이 미야자키 감독의 주도하에 진행중이다. 이 구상은 3년동안 젊은 감독의 작품 세 편을 매년 내고 남은 2년은 대작을 내놓겠다라는 구상. 이 구상에 따라 2010년에 마루 밑 아리에티, 2011년에 코쿠리코 언덕에서가 나왔다. 구상대로라면 2012년에 젊은 감독의 신작 3탄이 나와야 했으나 신작은 다음해인 2013년으로 넘어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인 '바람이 분다'가 2013년에 나왔다.

2013년 9월 1일, 미야자키 하야오가 은퇴를 선언했다. 지브리 작품에 더 관여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후계자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일각에선 미야자키 고로나 다른 젊은 감독들을 돌려본 뒤에 그 중에서 먹히는 사람을 지브리의 주력 감독으로 삼을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으나 어찌 될지는 두고 봐야할 듯. 그러나 2014년 연초부터 은퇴 번복 분위기가 일어나는 상황이라 결국 다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4.3. 작품제작 중단 발표

익명의 지브리 관계자에 따르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은퇴했을 때부터 스튜디오 해체설이 나왔으며 2014년 봄, 스튜디오 창립 멤버이자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도 그런 식의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다만 이렇게 커다란 스튜디오가 단번에 없어진다는 충격이 큰 만큼, 그걸 발표할 타이밍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며 앞으로는 신작을 만들지 않고 회사 차원에서 판권 관리만 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11]

여기에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가 흥행수익 51억 엔에 머무르고 있어 스튜디오로서는 실패작이며, 매년 작품을 발표할 수 없는 이상 이 높은 장벽을 넘지 못할 경우 해산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결국 2014년 8월 지브리 주주총회에서 제작팀 해산을 발표했다.

또한 8월 5일 산케이 신문이 도완고 미디어 스쿨, 도완고 뮤직 엔터테인먼트, 니코니코 동화를 운영하는 니완고 등의 자회사이자, 카도카와와 경영통합을 발표한 주식회사 완고 산하에 인수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직원 300명이 근무 중인 지브리를 흡수 합병하는 계획을 진행 중이며, 지브리의 제작 인력, 기술 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저작권 관리도 도완고가 맡을 전망이라고 한다. 지브리의 대표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가 지브리의 해체를 발표하면서 "재구축"이라는 단어를 꺼낸 것은 도완고의 인수 합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카도카와가 도완고를 통해 지브리를 인수하려는 배경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콘텐츠 저작권 및 방영권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기사 하지만 8월 6일 도완고가 지브리를 인수한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도완고의 카와카미 노부오 회장은 ITmedia의 취재에 "완전히 엉터리"라고 부인했다.기사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도 지브리 해체설을 부인하고 나서서 일각에서는 추억의 마니의 흥행을 위한 전략이라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또한 제작팀해체가 애니메이션 제작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기존의 제작 스텝 정규직 채용이란 고용방식으로는 연 20억원의 인건비가 지출된다. 스튜디오 지브리 입장에서는 이 인건비가 매우 부담되었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은퇴후 이런 고민은 더 깊어졌다. 결국 재정 건정성을 위해 과감히 칼을 빼들고 제작팀을 해체했다는 것. 작품을 제작하면 스텝을 모으고 개봉하면 해체하는 식으로 고용방식을 바꾸는 것이지[12] 제작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다.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제작 방식을 바꾸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브리의 쇠퇴 원인이 '시대의 흐름이 빠르게 바뀌는데 현재 애니메이션의 주소비층인 오타쿠 시장을 이해하지 못해서' 라고 개소리 하는 씹덕들도 있다. 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개소리. 디즈니의 장편 애니들은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대중적인 인기와 친숙함을 가졌다. 디즈니가 오타쿠 시장을 노려서 그런 게 절대 아닌 건 오타쿠가 아닌 사람이 봐도 다 아는 것이고, 진짜 이유는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미에 주요 시청 대상인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이야기까지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는 지브리도 마찬가지다. 지브리가 언제 오타쿠들을 위한 영화를 만든 적이 있었던가? 지브리의 주 소비층은 어디까지나 일반 대중, 그 중 가족 단위의 고객들이다. 일반 대중과 오타쿠 사이의 경계선에 서 있다는 에반게리온은 500만 관객도 못 넘기는 실정이다. 에반게리온이 이 정도라면 오타쿠들의 취향 변화에 충실히 따라가는 다른 애니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시대가 흐를수록 소비자의 취향이 바뀌는 건 당연하고 변하는 흐름에 맞추는 것도 애니 제작사의 실력이다. 다시 디즈니와 비교하면, 디즈니는 오랫동안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를 주로 그렸지만 1989년 디즈니 르네상스 이후로 단순 왕자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인 여성들을 그렸고, 디즈니 몰락기였던 2000년대에는 연이은 흥행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전까지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소재들을 사용한 애니메이션들을 만들었으며, 빅 히어로는 왕자와 공주 이야기가 아닌 슈퍼 히어로 장르다.

또한 지브리의 관객 동원력은 지금도 훌륭한 편이다. 포뇨가 일본 자국 영화로써는 오랜만에 흥행 수익 100억엔을 돌파했으며 이후 이를 재돌파 한것은 지브리 영화인 바람이 분다 뿐이다. 한국에서는 해당 영화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전투기 (제로센)를 만든 사람의 삶을 그린 영화라고 판정되어 흥행에 실패했지만 일본에서 지브리 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은 아직도 크다.

지브리의 쇠퇴 원인은 나이가 들며 미야자키 감독의 실력이 떨어졌다는 의견도 종종 있고 그를 대신할 후임도 마땅치 않은 인재 부족, 그리고 다른 애니 제작사들 입장에서는 충분한 수익을 거두고도 적자가 나는 비효율적인 제작 방식 등[13] 여러가지 요인이 있으므로 소비자의 오타쿠 취향을 가장 큰 원인으로 볼 수 없다.

5. 작품 특징

나우시카와 라퓨타를 제외한 모든 작품들에 비성우들을 캐스팅한다. 특히 애니메이션 전문 성우는 거의 캐스팅하지 않는 편. 미야자키 왈, '성우는 목소리가 아니라 그 인물 자체의 존재감이 필요하다. 특히 여자 성우들의 귀여운 척하는 목소리는 지긋지긋해서 어떻게든 하고 싶다' 고.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 역시 전문 성우의 목소리를 들으면 '실생활에서 저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라고 생각해 미야자키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한다.

전문 성우는 엑스트라로 몇 명 나오는 정도. 예를 들면 고양이의 보은에서는 타나카 아츠코, 시라토리 유리가 엑스트라로, 게드전기에서는 나카무라 유이치, 카토 에미리가 엑스트라로 나온다. 붉은 돼지에서는 오오츠카 아키오가 포르코의 라이벌 커티스 역을 맡았고,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에서는 카미야 아키라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주요 너구리 5인방 중에서 역할을 맡았다.

비성우를 캐스팅하게 된 계기는 이웃집 토토로 캐스팅 당시, 자매의 아버지 역할 캐스팅을 위해 성우들을 모아놓고 오디션을 봤는데, 전부 딸들에게 자상한 교과서 같은 아버지 연기였던지라 미야자키 감독이 모두 퇴짜를 놓았다. 생활감각이 결여돼있고 딸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아버지 상을 원했기 때문. 이후 미야자키 감독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이토이 시게사토[14]를 직접 캐스팅한다.

지브리 작품에서 주역으로 데뷔한 후 성우가 되는 경우도 있다. 오카무라 아케미 (붉은 돼지의 피오 역), 이리노 미유 (센과 치히로의 하쿠 역), 혼나 요코 (추억은 방울방울의 어린 타에코 역과 귀를 기울이면의 시즈쿠 역)가 그 예.

지브리 작품의 국내 더빙판은 최덕희, 김영선, 정미숙, 김서영 등 베테랑 성우진을 많이 기용하여 퀄리티가 높다. 성우진이 많이 고정되어 있는 편인데, 이는 지브리 본사에서 특정 성우들을 원한다는 풍문.

한국에선 디즈니의 해외 배급으로 극장수도 많이 잡고 안정적인 상영을 할 수 있는 장점 덕분에 흥행상 잇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일본에 개봉한지 20년이 넘은 나우시카나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애니들은 별로 기대하지 않아서 극장을 많이 잡진 않았다. 최신작들에 한해서 상영관이 안정적이다.

신작의 경우 이러한 잇점을 업고 전국 200만 관객을 넘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전국 300만)이 대박을 거두면서 일본 언론이 한국에서 하울류가 흐른다는 설레발까지 나왔으나, 게드전기가 부진한 뒤로 가까스로 포뇨나 아리에티가 전국 100만 관객을 넘기는 수준에 그쳤고 코쿠리코 언덕은 개봉 한 달이 다 되어서도 전국 20만 수준 관객에 그치면서 흥행보증 수표란 인식은 타격을 받은 지 오래다.

지브리의 영화를 2~3번 본 사람이면 스쳐가면서 보더라도 '지브리 작품이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림체가 주류 애니메이션 그림체와 차이가 많이 난다. 선이 깔끔하다기 보다는 수채화 풍이고 서정적인 느낌이 조금씩 난다. 이는 붉은 돼지의 하늘이나 모노노케 히메의 자연 풍광에서 잘 나타난다. 일본에서는 이런 그림체를 '서정화'라 부르는 듯 한데, 세월의 흐름을 덜 타는 편이기 때문에 라퓨타나 토토로와 같이 나온지 20년이 넘은 작품들이 여전히 롱런하고 있는 이유다. 반대로 생각하면 코쿠리코 언덕에서와 같은 최근 작품이더라도 나온지 꽤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매니아층이 소비 대상인 다른 애니메이션들과는 다르게 일반 대중이 주요 타겟이기 때문에, 그들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서비스 신이나 모에 요소, 과격한 묘사가 노골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모노노케 히메에서는 예외적으로 화살에 사람 머리가 꿰뚫려 뜯겨 나가는 등의 잔혹한 묘사가 있었다.

또다른 특징으로는 특유의 꾸준함을 들 수 있는데, 지브리의 작품 중 게드전기를 제외하고는 평가나 흥행이 크게 나쁜 작품이 없다. 사실 게드전기도 흥행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이는 평론가들도 자주 언급하는 지브리의 특징 중 하나.

6. BD/DVD

블루레이 시대에 접어들고도 꿋꿋이 DVD로만 작품을 내다가 2009년 벼랑 위의 포뇨를 시작, 2010년을 기점으로 기존작들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야마다군 등을 발매하면서 블루레이 시장에 데뷔했다. 이후 2011년에는 마루 밑 아리에티, 귀를 기울이면을 출시하는 등 속속 자사 제작 애니메이션을 BD화 했으며 2014년 6월 18일에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집(BD 박스)'이라는 이름으로 기발매된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11작[15]의 BD를 모아 발매한다. 정가는 6만엔(소비세 별도).

상기 박스를 제외한 지브리 블루레이들도 대개 정가 7000엔에 육박해서 한국 팬들에게는 눈물나는 가격이지만 아마존 저팬 등에선 할인가로 대략 4천~5천엔 대. 홍콩에도 지브리 블루레이가 출시되어있긴 한데, 이쪽은 한글자막/더빙이 전혀 없다. 참고로 블루레이는 일본과 한국이 같은 코드A 권역이라 일본 직수입 디스크도 정식 발매된 PS3를 포함한 한국내 블루레이 플레이어에서 재생이 가능하며 지브리 블루레이는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한글 자막과 더빙이 들어가 있다. 단, 반딧불의 묘마녀 배달부 키키,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추억의 마니에는 한국어 더빙 및 자막이 들어있지 않으며 가구야 공주 이야기에는 한글자막만 수록되어있다. 이외에 탐나는 작품이 있다면 지브리 DVD/BD 발매 리스트를 참고해 보자.

7. 작품 일람

일부를 제외하면 전부 7월 (일본 기준)에 개봉한다.

모든 작품들의 속편이 없는 것도 특이사항. ★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8. 게임 참여작

9.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展


일본판 포스터


한국판 포스터

TV CM

2011년 2월 후쿠시마 현립미술관, 2013년 5월 오키나와 미술관등 일본 각지에서 열렸던 동명의 전시회가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2013년 6월 22일부터 9월 22일까지 현대카드 주최로 열렸다. 1300여점의 레이아웃이 전시되었고 극장판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미래소년 코난, 알프스소녀 하이디, 빨간머리 앤같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다 이사오가 참여한 TV시리즈의 레이아웃역시 작게나마 소개되어있다. 전시회 마지막에는 토토로 포토존과 신작 포스터 바람이 분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 두점이 크게 놓여져있다.

한국 전시회 개장 첫날 인파가 몰리는 바람에 입장권과 별도로 번호표를 배부하여 번호표 순서대로 끊어서 입장시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고, 방학을 끼고 있는 기간의 특성상 주말에는 이러한 현상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특성상 여성 관객들이 매우 많은 것도 특징. 전시 도록도 괜찮게 나온 편이고 한국어판, 일본어판 두가지 도록을 판매하는데 한국어판이 도판 사이즈가 미묘하게 작은 관계로 책이 좀 얇다. 도록의 판형은 같으나, 일본어판은 전시품 전작이 수록되어 있고 한국어판은 전시품의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즉 수록된 레이아웃의 차이이며 이를 통해 페이지수와 가격이 달라졌다. 뮤지엄샵에서 인형과 국내 정발판 OST등 각종 굿즈를 판매하므로 관심 있는 사람은 필히 들러보자.

다만 한가지 오해(?)가 많은 경우를 꼽자면 이번 전시회에서는 애니메이션의 화려한 한 컷 같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레이아웃, 애니메이션 완성 과정의 초입이자 일부인 스케치만을 모아둔 것이다.[25] 전시작도 딱 위의 포스터에 나온 정도 내외이다. 전시 시작부터 각종 애니메이션 용어를 나열하고 작품에는 별반 특이할만한 것이 없는 약간의 색감이 입혀진 스케치와 그 위에 일본어로 써져 있어서 이 쪽 분야에서 공부하려는 학생 내지 현직 종사자들이 아닌 이상 확실히 이해하기 어렵다.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일부 과정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전시회이며 해당 분야의 학생 혹은 현직 종사자에게는 익숙한 용어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그래도 지브리만의 일반적인 애니메이션 제작과정과는 다른 특징적인 작업방식을 이해하는데는 이것만큼 좋은 것이 없다. 일반인도 음성안내기를 빌리거나 지정시간마다 돌아다니는 안내원의 안내를 들으면서 보면 훨씬 재미있게 전시회를 관람할 수 있다.

10. 지브리 미술관

지브리 박물관(Ghibli Museum)이라고도 한다. 정식 명칭은 '미타카의 숲(미타카노모리) 지브리 미술관(三鷹の森ジブリ美術館)' 도쿄도 미타카 시의 이노카시라 공원 안에 위치해 있다. 화요일과 연말연시 등에는 쉰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디자인해서 만든 곳이다. 2001년 10월 1일에 문을 열었다.

아이들 취향에 맞춘 전시들이 많아 일본에서도 부모들이 아이들을 에리고 온 경우가 많다. 상설 전시와 일부 특별전시[26]가 있으며, 안에 기념품점과 간단히 먹을 것(심지어 맥주도 있다.)이 있다.

일본 내에서는 로손 편의점에서 예약 구입이 가능하며, 드물에 당일 표를 일본 내 JTB여행사나 현장에서 팔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KTB 대한여행사에서 판매를 한다. 공식 사이트의 한국에서의 판매 안내
가격은 성인 1000엔. 웬만하면 미리 예약을 하고 가는 것이 좋다.

미타카역에서 버스(200엔)나 도보로 갈 수 있으며, 시간에 여유가 있다면 키치죠지역에서 이노카시라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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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본 발음은 기블리(일어로는 '기브리')로 '지브리'는 미야자키가 발음을 잘못 안 것이다. 후에 미야자키 하야오도 그 사실을 알고 '기브리'가 맞다고 인정했으나 사명은 결국 바뀌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어 트레일러에서도 지브리로 발음하는 추세이다.
  • [2] 전 월트 디즈니 재팬 초대사장, 월트 디즈니 인터내셔널 부사장, 주식회사 도왕고 사외이사. 디 캔디의 만화가 이가라시 유미코(いがらしゆみこ), 라이트노벨 작가 아이소라 만타와 같은 학교 출신.
  • [3] 일반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의 작화 하청만 봐도 한국인, 중국인, 베트남인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하청 업체는 디알무비.
  • [4] 미야자키는 홀로 사나운 백수의 왕이고, 지브리는 그 백수의 왕을 기르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사바나라고 비유했다. (출처)
  • [5] 일설에 의하면 오시이 마모루는 본인이 지브리에서 감독직을 맡는 것을 거절했고, 안노 히데아키는 지브리 스탭들이 곤란해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6] 이 때 미야자키 하야오는 콘도 요시후미의 연출에 사사건건 참견했다. 그가 타계한 후, 자신이 너무 몰아붙여서 그런 건 아니었는지 자책, 이후 다른 감독들의 작업에는 될 수 있는 한 묵묵히 지켜보는 태도를 취한다.내용 중 제작 당시의 이야기.
  • [7] 도쿠마 야스요시 회장 사후 새로 직임한 마츠시타 타케요시 회장이다.
  • [8] 이 때문에 호소다 감독은 당시 제작사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자원을 올인한 데다 본인은 외부인이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해 자신이 직접 모은 스태프 월급도 못 주는 상황까지 처했다. 얼마나 사정이 처절했는지 호소다 본인도 "이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는 것은 끝장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 [9] 안노의 표현에 의하면 게다짝 취급으로 일을 맡겨놓고, 본인은 그림을 고치는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 [10] 미야자키 본인에 의하면 애니메이터가 그려온 그림 (원화)를 다시 고치는 일이 작업량이 너무 많기 때문에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손대지 않아도 되는, 또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좋은 완성도의 그림을 그려오면 "아~! 이것은 좋다! 잘도 이해해 줬구나!" 라고 기쁘다고. 여담으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정한 (=원화에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사람은 카나다 요시노리, 안노 히데아키 등이 있다.
  • [11] 이렇게 되면 현 데즈카 프로덕션처럼 회사 구조가 바뀌는 셈이다.
  • [12] 대표적으로 선라이즈가 취하는 방식. 천하의 토미노 요시유키도 선라이즈의 정직원이 아닐 정도.
  • [13] 예를 들어 안노의 에반게리온 서는 약 20억엔 정도의 수익을 거두어 성공했다. 반면 지브리의 바람이 분다 120억엔에 달하는 수익을 거두고도 흑자가 힘들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은 이 두 작품 사이에서 유의미한 퀼리티 차이를 찾기 어렵다.
  • [14] 카피라이터, 기자, 작사가, MOTHER 시리즈 디렉터. 이것을 계기로 이토이는 토토로부터 게드전기까지 지브리 작품의 캐치 카피를 제공했다.
  • [15]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바람이 분다. 단, 센과 치히로의 단품은 7월 16일/ 칼리오스트로의 단품은 8월 6일에 발매.
  • [16] 지브리 설립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 최초의 작품은 아니지만, 지브리 작품으로 공인 받는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린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본인이 직접 애니메이션을 감독했다.
  • [17] 제목의 유래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따왔지만 스토리는 원작을 두지 않은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 [18] 유일하게 극장용 영화가 아닌 TV 스페셜 애니메이션으로, 지브리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라이트노벨 애니화다.
  • [19] 한국에서는 '원령 공주'로 유명하다. 일본에서는 1997년 7월 12일에 개봉해서 1998년 7월 10일까지 상영되었다. 거의 1년 동안 상영된 것인데, 이 때 당시 일본 인구의 10% 정도가 극장에서 관람했다고 한다.
  • [20] 원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21] 귀를 기울이면에 나온 고양이 신사 바론만 따서 만든 스핀오프다. 귀를 기울이면의 주인공 시즈쿠가 집필한 소설이라는 설정.
  • [22] 동명의 원작 소설이 있지만 제목과 캐릭터만 빌려오고 스토리는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 [23] 원제는 바람, 불다.
  • [24] 애니메이션 오프닝 및 음악에 한해서 참가.
  • [25] 일부 레이아웃과 그 완성된 영상들이 있지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은 편. 몇몇 특이한 레이아웃은 사람 키만큼이나 길게 종이를 쓴다.
  • [26]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만든 작품 뿐만 아니라, 픽사 등의 다른 회사 혹은 감독의 작품을 초대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