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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뮤지얼

last modified: 2015-02-27 03:57:07 Contributors


리즈시절. 몸을 잔뜩 웅크린 크로스 스탠스 타격폼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홈구장인 부시 스타디움에 세워진 그의 동상.

이름 스탠 뮤지얼(Stanley Frank Musial)
출생~사망 1920년 11월 21일 ~ 2013년 1월 19일
국적 미국
출신지 펜실베이니아주 도노라
포지션 좌익수,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38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41~1963)
출신 폴란드

1943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트 쿠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스탠 뮤지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티 매리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46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카바레타
(시카고 컵스)
스탠 뮤지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엘리엇
(보스턴 브레이브스)
1948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엘리엇
(보스턴 브레이브스)
스탠 뮤지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재키 로빈슨
(브루클린 다저스)


1957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비 모로우 스탠 뮤지얼 이퍼 존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영구결번
No.6

Stan the Man[1][2]

Contents

1. 소개
2. 생애
3. 인격
4. 은퇴후

1. 소개

통산 24시즌 동안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만 뛰면서 3026경기 타율 0.331 출루율 0.417 장타율 0.559 3630안타[3] 475홈런 1951타점를 기록했으며 24번의 올스타와 3번의 내셔널리그 MVP, 그리고 3번의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달성한 전 메이저리그 팬과 미국인의 존경과 사랑을 한번에 받았던 위대한 선수 중 하나.

100년이 넘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구단 역사 중에서도 최고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뽑힌다. 테드 윌리엄스, 조 디마지오와 함께 1940~50년대를 대표하는 타자 중 하나. 다만 그가 활약했던 시기엔 앞서 언급한 테드 윌리엄스나 조 디마지오는 물론이고 미키 맨틀,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등 시대를 풍미한 명예의 전당급 강타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은근히 과소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 (유일하게 홈런왕을 못 따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타격왕은 7차례 수상하여 내셔널리그 2위 -1위는 역대 최고 유격수로 평가받는 호너스와그너- 에 해당한다.)

2. 생애

체코계 어머니와 폴란드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고 펜실베이니아주의 탄광촌인 도노라[4]에서 자란 뮤지얼은 17세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해서 프로생활을 시작했지만 베이브 루스처럼 처음엔 타자가 아니라 좌완투수였다. 하지만 마이너리그에서 투수로서 별 다른 재능을 보여주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다이빙 캐치를 하다 어깨를 다치면서 결국 타자로 전향하게 되었다.

타자로 전업하자마자 엄청난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풀타임 2년차인 1943년에 타율 .357, 13홈런, 81타점으로 내셔널리그 MVP를 차지했다. 그 후로 군복무를 했던 해인 1945년을 제외하곤 줄곧 카디널스의 중심타자로 맹활약하면서 팀을 3번이나 월드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으며 7번이나 타격왕을 차지했을 정도로 타격의 달인으로 활약했다. 그의 3630안타 기록은 행크 애런에 의해 경신되기 전까진 내셔널리그 1위의 해당하는 기록이었으며 현재로 따져도 메이저리그 전체 4위[5]에 해당하는 대기록이다. 그리고 통산 3할 3푼 1리 3630안타 475홈런 1951타점이라는 충공깽스러운 스탯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까지도 카디널스 프랜차이즈의 대부분의 공격기록은 그가 보유하고 있다.[6]

3. 인격

그리고 비단 실력뿐만 아니라 훌륭한 성품과 성실함을 갖춰 팬들의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던 선수였는데 선수생활 동안 단 한번도 심판의 스트라이크 판정과 벤치의 작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하며 그라운드 안에서 항상 웃음을 잃지 않은 그라운드의 신사였다고 한다.

그 일례로 1957년엔 신시내티 레즈팬들의 올스타 투표 몰표사건이 일어났는데, 8명의 포지션 플레이어 중에서 무려 7명이 레즈의 선수들로 도배되던 와중에도 유일하게 뮤지얼의 자리는 지켜졌다.[7] 1957 올스타전 영문위키 항목. 그의 24회 올스타전 출장기록은 행크 아론의 25회 출장에 이어 메이저리그 전체 2위의 기록이다.

또한 방한했을 때의 일화가 유명한데 당시 서울팀과의 경기에서 김양중이 던진 스트라이크로 들어온 공이 볼 판정을 받자 다음 공에 일부러 헛스윙해 삼진을 당했다고 한다. 그의 신사적인 쇼맨십을 엿볼 수 있는 미담. 한국에서 일부러 삼진 먹은 스탠 뮤지얼.

4. 은퇴후

은퇴 후엔 레스토랑 관련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가 1967년 카디널스의 단장으로 복귀해서 월드 시리즈 우승을 맛보기도 했으며 우승 후엔 단장직에서 물러나 1980년까지 카디널스의 구단 부사장 겸 단장 특별보좌역으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1969년엔 93.24%라는 높은 투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2013년 1월 19일, 노환으로 인해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그가 별세한 후 NHL세인트루이스 블루스가 전 선수들이 6번 MUSIAL 저지를 입고 나와 경기하는 추모 행사를 갖기도 했다. 2013년 4월 9일에 카디널스는 스탠 뮤지얼 추모 행사를 열었다. 가히 세인트루이스 전 시민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세인트 루이스는 중소 도시지만 유별나게 팬들이 야구를 사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중 스탠뮤지얼은 세인트루이스 첫번째 영구결번)

  • 2006년 월드 시리즈 5차전에서 시구를 하기도 했고 2009년 메이저리그 올스타 게임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시구용 공을 전달하기도 했다.



  • 2011년 2월 15일,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여받았다. 오오...

  • 폴란드계 이주민 출생으로 폴란드국가 체육훈장과 위에서 설명한 대통령 자유훈장을 받았고, 폴란드에 그리고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가있는 주)와 그가 태어난 펜실베니아주에 그의 이름을 딴 구장이 있다.

  • 그의 사후 2013년 7월 3일 카디널스와 에인절스의 경기가 스탠 뮤지얼 메모리얼 데이로 열렸다. 스탠 뮤지얼의 손자가 시구를 맡았으며 시구를 받은 것은 알버트 푸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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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52년 브루클린 다저스와의 원정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서는 뮤지얼을 보고 몇몇 다저스팬들이 "그 사람이 또 왔어!(Here comes the man!)"라고 외치던 게 그의 별명으로 굳어졌다.
  • [2] 실제로 the man이라는 수사는 굉장히 높은 평가이다. 구어로 the man이라고 하면 최고라는 의미가 되고, 그외에도 최고의 권력자, 존경을 받는 인물, 파워 엘리트 등으로 이해된다. 앞에서 언급된 일화도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그 남자'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훗날, LA 에인절스가 알버트 푸홀스를 영입하면서, The Man을 스페인어로 번역한 엘 옴브레(El Hombre)라는 별명을 붙여서 밀어주려 하자, 감히 그렇게 불릴 수 없다며 거절했을 정도.
  • [3] 공교롭게도 홈에서 1815개, 원정에서도 1815개를 기록했다.
  • [4] 켄 그리피 시니어 & 켄 그리피 주니어 부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뮤지얼의 또 다른 별명 중 하나가 도노라 그레이하운드(The Donora Greyhound).
  • [5] 피트 로즈,타이 콥,행크 아론,스탠 뮤지얼.
  • [6] 그리고 그의 기록들을 깰 것으로 예상되던 어떤 잉여가 세인트루이스를 떠나면서 앞으로도 수십년정도는 더 그의 기록으로 남게 될 듯하다.
  • [7] 물론 MLB 사무국은 조사에 착수해 투표의 절반 이상이 신시내티발 몰표임을 확인하고 포드 프릭 당시 MLB 커미셔너는 직권으로 행크 애런윌리 메이스를 다른 신시내티 선수 2명을 대신할 올스타로 선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