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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last modified: 2015-02-14 18:09:19 Contributors

Contents

1. 대한민국의 농구선수
1.1. 소개
1.2. 아마추어 선수
1.3. 프로 선수
2. 한국의 정치인
3. 前 프로게이머

1. 대한민국의 농구선수


부산 KT 소닉붐 No.2
송영진
생년월일 1978년 10월 2일
국적 한국
출신지 마산시
출신학교 마산고 -중앙대학교
포지션 포워드
신체 사이즈 198Cm, 95Kg
프로입단 2001년 드래프트 1번(창원 LG 세이커스)
소속팀 창원 LG 세이커스(2001~2005)
부산 KTF 매직윙스/KT 소닉붐(2005~ )

2005~2006 한국프로농구 기량발전상
이병석(울산 모비스 피버스) 송영진(부산 KTF 매직윙스) 강대협(원주 동부 프로미)

1.1. 소개

대한민국농구 선수. 부산 KT 소닉붐의 프랜차이즈 스타.

1.2. 아마추어 선수

중앙대학교 시절 황진원, 후배인 김주성과 함께 무적 중앙대의 시대를 열며 맹활약했다. 파워포워드 자리에서 속공에도 능하고,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이면서 일찍부터 프로에서도 통할 유망주로 지목받은 것. 중앙대에서 무수한 대회를 휩쓸고, 2001년 프로 드래프트에서 당당히 전체 1번의 지명의 영광을 안았다. 당연히, 창원 LG 세이커스에서는 기대가 컸고, 기대대로 활약할 줄 알았는데...

1.3. 프로 선수

창원 LG에서는 망했다. 원래 빠른 움직임과 스피드가 주 무기였던 선수가 프로에서 외국인 선수와 대결하기 위해 억지로 몸을 불렸다가 스피드는 죽고, 몸빵도 되지 않으면서 이도저도 아니게 변해버린 것. 사실 프로 첫 해 평균 8.9점으로 다른 신인이라면 칭송받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 해 김승현이 등장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통에 송영진은 제대로 묻혔다. 결국 LG에서는 두 자리수 평균 득점은 커녕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계속 보여주면서 성장이 정체되었고, 결국 LG는 현주엽을 데려오면서 그를 FA 보상 선수로 보내버렸다.

송영진은 LG에서의 시간이 굉장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김승현에게 빼앗겼고 개인적인 성적도 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이후 인터뷰를 찾아보면 LG 시절이 트라우마로 남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태환 감독과의 갈등도 있었으며 선수단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고 극도의 스트레스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573&redirect=true

그런데 새로 옮겨간 KTF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추일승 감독의 조련 아래 한 단계 더 성장한 것. 과거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인 스피드와 움직임을 다시 되찾은 것이었다. 2005-06 시즌 향상된 기량을 보이며 기량발전상을 수상했고, 2006-07 시즌에는 평균 13.7점을 넣으며 KTF의 사상 첫 챔프전 진출의 주역이 되었다. 역대 보상 선수 가운데 가장 성공한 케이스.(우지원이나 이상민이 이름값으로는 가장 높지만 이들은 특수한 경우인지라...) 그 뒤로는 FA 자격을 얻고도 팀에 남으며 자신을 알아준 팀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포워드가 많은 KT지만, 큰 키를 바탕으로 골밑에서 활약해주는 선수는 송영진이 역시 1옵션. 움직임도 괜찮고, 미들 라인이나 골밑에서든 어느 위치에서든지 다양하게 쓸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신인 시절의 기대처럼 4번 자리에서 대활약하는 정도는 아니어도 상당히 유용한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다. 수비력도 적당히 괜찮은 편이라서 KT 이적 후에는 국가대표에도 종종 발탁될 정도로 성장했다. 기대만큼은 아니라도 준수한 포워드로 자리매김한 상황.

2013-2014시즌에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팀내 빅맨 자원인 성주, 장재석, 김승원의 성장세가 더딘 관계로 결국 주전으로 계속 출전하며 팀의 6강 진출에 힘을 보탰고, 준PO에서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를 상대로 평균 12.8득점을 넣으며 안 파틸로, 조성민과 함께 4강 진출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시즌이 끝난 후 다시 FA 자격을 얻은 송영진은 2년간 보수 총액 2억원(연봉 1억 5천만원, 인센티브 5천만원)에 재계약했다. 아울러 김승현, 황진원, 전형수, 이현준이 은퇴하면서 97학번 중 유일한 현역 선수로 남게 되었다.

2. 한국의 정치인

정치인은 원칙적으로 작성제한 대상이나 동명이인이므로 기본적인 사항은 서술합니다.


宋榮珍

1947년 8월 16일 충청남도 당진군(현 당진시)에서 태어났다.

제 14대(통일국민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16대(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현욱과는 13대, 14대, 15대,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결하여 2승 2패를 기록하였다.

3. 前 프로게이머

저그 프로게이머. ID는 Songduri이다.

2011년부터 프로 생활을 시작해, 당해 6월 29일 노준규와 데뷔전을 치루었다.

SK플래닛 프로리그 12-13부터는 초반에 여러번 출전하고 있다. 아무래도 감독의 기대가 좀 있는듯. 하지만 성적은 영 신통치 않고, 군단의 심장에서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3년 6월 26일, 챌린저리그 예선을 뚫어냈다. 본인은 이게 마지막 프로경기라는 심정으로 임했다고.

7월 12일, 챌린저리그 1라운드에서 김승철을 꺾고 2라운드에 진출했다.

7월 17일, 2라운드에서 이동녕에게 패해 승격강등전으로 떨어졌다.

이후, 신재욱, 최병현, 서성민, 이병렬과 한 조인 조가 공개되었다.[1]

헌데, 8월 6일 승격강등전에서 3전 전승으로 1위를 기록하고 프리미어리그에 합류한다. 최병현, 이병렬, 신재욱을 연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경기 며칠 전 CJ의 신임감독으로 부임된 박용운 버프라며 오락감독을 까고있다.근데 송영진도 오락감독을 깠다.[2]

2014년 2월 5일 은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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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선수들을 보면은 적어도 커리어는 송영진 이상이다. 이병렬조차 동일 시즌 프리미어 32강에서 조3위로 떨어지고 왔으니...
  • [2] 인터뷰에서 실제로 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