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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환

last modified: 2015-02-12 03:23:33 Contributors


SK 와이번스 No.75
손지환(孫智煥)
생년월일 1978년 11월 13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서울특별시
출신학교 인헌초-휘문중-휘문고
포지션 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고졸우선지명(LG)
소속팀 LG 트윈스(1997~2003)
기아 타이거즈(2004~2007)
삼성 라이온즈(2008)
SK 와이번스(2009)
코리아 해치[1](2010)
한화 이글스(2010)
응원가 (LG시절) 날려버려 손지환[2]

LG 트윈스 등번호 3번(1997~2003)
조현 손지환(1997~1999) 박기남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번(2008)
김종훈(1997~2007) 손지환(2008) 손주인(2008)
한화 이글스 등번호 75번(2010)
손지환(2010) 문동환(2011~2012)

Contents

1. 개요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3. 프로 선수 시절
4. 지도자 시절
5. 여담
6. 연도별 성적

1. 개요

SK 와이번스의 루키팀(3군) 수비코치.

한화 이글스내야수였으며 등번호는 3(LG)-33(기아)-5(2007)-3(삼성)-67(SK)-75(한화)

한국 프로야구 최초이자 유일한 무보살 삼중살(혼자서 3개의 아웃카운트를 모두 처리하는 삼중살)의 주인공. 항목에 영상으로 존재하니 보고싶은 위키니트들은 항목으로….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휘문고 3학년 때 대통령기와 청룡기를 우승시키며 2관왕을 차지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두고 연세대학교 진학이 확정된 상태에서 막판에 LG 트윈스와 입단계약을 체결하여 이중등록이 되었고, 이에 반발한 대학야구 관계자들이 '앞으로 휘문고 선수들을 절대 받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프로와 대학이 전면대립하는 엄청난 스카우트 파동으로 비화되었다.[3] 휘문고 측에서는 손지환에게 학교 명예를 실추시킨 책임을 물어 자퇴를 종용했다.[4]

3. 프로 선수 시절

(출처 : 포토로)
시작부터 좋지않았던 LG 트윈스 현역 선수시절

우여곡절 끝에 1997년 고졸우선지명으로 김민기, 박만채와 함께 LG에서 데뷔했다.

선수 활동기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경험은 없다. 준우승 3번의 콩라인. 고등학교 시절의 명성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헤매다가 2004년에 진필중의 보상선수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출처 : 포토로)
트레이드 이후 전화위복된 KIA 타이거즈 현역 선수시절

이적 후 이현곤의 공백을 메움과 동시에 2004, 2005년 2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치며 어째 FA로 간 진필중보다 더 쏠쏠하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혹자는 누가 FA고 누가 보상선수냐?라고 하기도…. 그리고 2007년 6월 12일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서 무보살 삼중살을 펼치는 메이저리그식 장면을 연출 했다.[5] 그 때문에 삼성은 앙심이 있었는지, 2008년 용목과 트레이드하여 영입했다. 삼성이 2007시즌 삼중살 때문에 낚여서 손지환을 데려가서 써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기아에서 삼중살로 유명해 진 뒤 2008시즌에서는 삼성에서 주로 백업멤버로 뛰었고 여기서도 하락세를 겪었다.

(출처 : 포토로)
운이 따라주지 못해 안습했던 삼성 라이온즈 현역 선수시절

신명철, 허승민과 함께 타율이 안습대에 머물다가 박석민의 홈런 이후 대인배 회장 송진우에게 역전 솔로 홈런을 쳤으며 삼성을 기적의 4강으로 올려야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6] 08시즌에는 패넌트레이스 전용이며 포스트시즌 전용은 유혹의 명철신에게 돌아갔다.

2008시즌 종료 뒤 삼성에서 방출, LG에서 한솥밥을 먹던 김성근 감독의 SK 와이번스로 이적. 2009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팀이 준우승을 하는 바람에 콩라인 탈퇴에는 실패했다.

09시즌 이후 방출. 괜찮은 내야수긴 하지만 경쟁자가 최정, 정근우, 나주환, 박정권, 김연훈(김연훈은 최소한 젊기라도 하다.)이어서야 괜찮다는 것만 가지고 SK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울듯 싶었고 현실이 되었다.

그 뒤 일본 실업리그(정확히는 독립리그)에서 뛰다가, 주전 3루수송광민이 시즌 중 군입대라는 초유의 해프닝으로 이탈하여 3루수가 필요해진 한화 이글스가 신고선수로 영입했다.

(출처 : 포토로)
제 기량을 발휘하다 뜻하지 않게 병약해져 끝이 나버린 한화 이글스의 현역 선수시절

오선진의 부상으로 2010년 7월 27일 1군에 콜업되어, 몇 경기 안되지만 제법 괜찮은 타격을 선보여주고 있다. 수비야 그다지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한화 내야가 원래 막장이니…. 3루수 대체제인 김회성한윤섭 또한 잉여스러운 플레이의 연속으로 당분간 손지환이 계속 3루를 맡아볼 요량…. 손지환 영입을 위해 따로 돈쓴건 없고, 연봉도 신고선수라 졸라 싸니, 야 신난다~!

2010년 8월 1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장원삼으로부터 투런 홈런을 치며, 근 2년만의 홈런맛을 봤다. 2:8로 진 한화 이글스의 유일한 득점…. 당연히 빛이 바랬다.

2010년 8월 28일 두산임태훈의 공에 번트를 대려다 오른손 엄지골절상으로 6주간 출전 불가. 시즌이 얼마 남지 않은 관계로 시즌 아웃됐다. 이래저래 기구한 야구인생. 그리고 시즌 종료후 젊은 선수들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방출되며 최익성의 저니맨 커리어를 따라 가게 되었다.

4. 지도자 시절

비록 선수로는 한 시즌밖에 뛰지 않았지만 SK 와이번스의 프런트 쪽으로 입사하여 2011년부터 SK 구단에서 실시하는 사회인 및 여성 야구 교실에서 코치 신분으로 지도해주었다.

이후 2013년 시즌을 앞두고 SK의 3군 선수단에 해당하는 루키팀 수비코치에 선임되어 정식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5. 여담

친정팀인 LG에 강한 선수다. 2008시즌에서는 시범경기때에 LG 투수로부터 홈런을 쳤다.

여러모로 흠좀무한 선수인데. 묘하게도 야구계의 유명인들과 LG와 타 팀에서 있을때 한솥밥을 먹었던 적이 있다.

양준혁박종호와는 LG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고 심재학홍현우와는 LG기아에서 한솥밥을 먹었으며, 김성근 감독과 김재현과는 LGSK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장성호와는 기아 시절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었었고 한화에 가서도 한대화 감독이랑 삼성 시절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어서 또 한솥밥을 먹었다. 흠좀무

등번호 3번의 전 주인인 김종훈과는 한솥밥을 먹은 적이 없다. 굳이 등번호와 관련이 있다면 김종훈 다음으로 후임이다. 원래는 손주인에게 돌아갈 번호였지만. 트레이드로 인해 손주인이 2번으로 옮겼다.

6.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97LG 트윈스 23 22 .318 7 2 0 0 3 2 0
1998 48 60 .233 14 1 1 0 4 13 0
1999 20 35 .114 4 0 0 0 1 2 0
2000 54 63 .238 15 4 0 0 5 12 2
2001 96 188 .250 47 8 1 5 22 25 2
2002 111 290 .214 62 9 0 5 24 25 5
2003 61 74 .189 14 1 0 0 4 11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4KIA 타이거즈 114 303 .271 82 15 1 13 42 40 3
2005 107 316 .278 88 13 0 11 44 37 1
2006 96 273 .264 72 12 0 4 21 24 1
2007 102 267 .217 58 9 1 6 33 26 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8 삼성 라이온즈 45 78 .179 14 4 0 2 11 7 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9 SK 와이번스 6 16 .188 3 1 0 0 0 1 1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10 한화 이글스 25 59 .220 13 3 0 1 3 6 0
통산 908 2044 .241 493 82 4 47 217 23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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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본 독립리그 구단. 2011년말 해체.
  • [2] 원곡은 새우깡 CM송, 가사는, 날려버려 손지환! 날려버려 손지환! 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 날려버려! 손지환! 날려버려 손지환! 날려버려 손지환~~~~ 안타손지환!
  • [3] 1990년대 까지는 프로의 신인드래프트와 대학의 신인선발이 매년 가을에 동시에 진행되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야구의 위상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우수한 고졸예정자들을 두고 대학과 프로구단 사이에 스카우트 전쟁이 벌어졌다. 대학감독이 입단예정인 고3 선수들을 지방호텔에 감금(?)해놓고, 이들를 프로스카우터들이 빼돌려서 무인도로 잠적하고...온갖 해프닝이 많았다.
  • [4] 이 사건 때문에 휘문고를 이끌던 이명섭 감독이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감독으로 취임했다. 여기에 휘문고 저학년 선수들 일부가 감독을 따라 춘천고로 전학을 가게 되면서 휘문고는 1997년에 처참하게 몰락했다. 이명섭 감독은 춘천고를 1999년 청룡기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나 2000년 초 아마야구 지도자들의 비리 문제에 연루되어 이미지에 흠집을 남겼고 이후 오랜 기간 야인으로 있다가 2011년 휘문고 감독으로 복귀했다.
  • [5] 그 덕분에 올스타전에 뽑힌 적도 있다.
  • [6] 무엇보다 이상목의 100승과 박한이의 분전, 양준혁전병호의 부활과 타선의 세대교체가 결정적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