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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건

last modified: 2014-06-19 10:19:07 Contributors

孫乾(? ~ 214년). 자는 공우(公祐)

Contents

1. 개요
2. 미디어 믹스

1. 개요

후한유비 휘하의 인물로 의 개국공신.

원래 서주의 관료로 유비가 서주를 얻은 이후 계속 그를 따라다녔고, 연의 등에는 사자 같은 외교적 업무에 주로 등장한다. "유비의 빵셔틀", "희대의 딱가리"는 웃자고 나오는 말이고 포지션상 유비의 외교막료. 유비세력이 어제는 조조와 연대해 여포를 잡고, 내일은 원술을 잡았으면서도 원소와 동맹하고 조조에 대항하는 외교행보를 보일 때, 다시 원소를 떠나 혈혈단신으로 유표에게 투항할 때, 대체로 그가 사신으로 파견되어 관계가 성립되었다는 점에서 손건이 가진 변설이나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은 무척 뛰어났을 것이라 추측된다. (이 덕인지 삼국지 11에서는 개사기특기인 논객을 갖고 있다!)

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얘기해 보자면, 유비가 조조에게 쫓겨 원소에게 구원을 청할 때 원소가 자기 동생을 죽게 했다며 단박에 거절했다. 그러나 손건은 당황하지 않고 일단 조조를 깐 뒤, 이후 갖고 온 정현[1]의 서한을 전달하여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 이후는 원소의 모사들(전풍, 저수, 심배, 곽도 등등)이 알아서 편을 들게 유도했다.

또한 유표에게 의탁할 때는 채모가 반대하자 "날 뭐라고 까대는 건 좋다. 그런데 우리 주군은 욕하지 마라. 김성모 명대사가 연상된다 조조가 좋은 놈이냐? 여포가 똑바른 놈이냐? 어떻게 그 둘하고 우리 주군을 같은 줄에 놓을 수 있냐!"라고 반박했고, 유표는 그 말이 옳다고 여겨 채모를 꾸짖어 물리친 뒤 곧바로 유비를 받아들였다.

유비의 결혼 이벤트에서도 조운과 함께 에 보내지기도 하며, 실제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던 듯 하다. 유비 세력이 인재 기반이 미비했다는 점에서 유비 세력의 외교 성사에 공헌한 점은 높이 평가해 줄 부분이다. 삼국지 무대의 초반부터 유비가 촉을 얻은 때까지는 '상대의 사자는 베지 않는 것이 예의' 라는 개념도 없었고, 길가다가 도적이나 적대 세력과 조우하는 일이 없을 리도 없었다. 때문에 그렇게 이리저리 사자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고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만 봐도 레알 능력자라는 증거이다.

정리하자면, 주군에 대한 충성심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수완가이자 외교 실무자. 전투에서 공을 세운것처럼 화려한 공을 세운건 아니지만, 손건이 없었다면 과연 초기에 미미한 세력을 지닌 유비가 생존하기는 힘들었다. 모두는 아니지만, 유비를 보호해줄 수 있는 세력에 위탁할 수 있었던 것은 손건의 공이 크다. 괜히 촉한 일등공신이 아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위의 외교 능력에 첩보원 기믹까지 추가되었다. 유비가 원소 휘하에 있을때 관우 만나러 조조군까지 몰래 넘어가고, 가는 길에 장비도 발견한다. 후덜덜.

그런데 이 사람, 말년이 슬프다. 정말 슬프다. 왜냐하면 유비가 입촉하여 겨우 익주를 손에 넣고 조조에 대항할 만한 큰 세력을 얻자마자 갑자기 죽어버린 것(214년이다). 연의에서는 유비가 몰락하는 이릉대전에서 사망하는 걸로 알려져있지만 연의 원본 및 모종강본에는 없는 내용이다. 삼국지연의를 읽다보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른 채 이미 죽어있다. 그야말로 고생고생하다가 팔자 쬐끔 필 듯하더니 세상을 떠나버렸다. 안습. 그래도 정사에 의하면 유비가 입촉했을 때 그의 대접은 "미축에 버금가고 간옹과 동등하였다"고 한다.[2] 역시 간손미는 서글프다.

그렇지만 손건, 간옹은 이릉대전 이전에 탈출한 셈이라 유비 최대의 황금기를 맛보고 떠난거니 인생 최대의 기쁨과 함께 죽은 셈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정말 행복한 결말일지도....

2.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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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일종의 메신저로서 서로 동맹맺는 게 이득이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썼다. 다만 이건 연의의 설정이다. 대학자님이 왜 세속의 정치에 관여하겠어
  • [2] 미축의 벼슬이 제갈량보다 높았음을 보았을 때 손건도 상당한 대우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