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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last modified: 2015-04-09 19:56:1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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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야구 주말리그 서울 A
경기고등학교 배재고등학교 서울디자인고등학교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성남고등학교
신일고등학교 휘문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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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인터넷고등학교 야구부
창단 1911년/1952년
소속 리그 서울권
감독 안병원
연고구단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
넥센 히어로즈
우승 기록[1] 8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2회(1969, 79) 1회(1967) 3회(1971, 77, 99)
청룡기2회(1969, 80) 6회(1953, 54, 75, 79, 81, 92) 5회(1976, 85, 89, 98, 99)
황금사자기4회(1963, 66, 69, 80) 2회(1976, 89) 1회(1971)
봉황대기 - 5회(1976, 78, 81, 91, 95) 4회(1984, 2003, 06, 10)
협회장기 - - -


1963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기공업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성남고등학교
1966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중앙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경남고등학교
1969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1969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1969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성남고등학교
1979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
1980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부산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1980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경북고등학교 선린상업고등학교 경북고등학교

Contents

1. 개요
2. 연혁
2.1. 1960년대의 영광
2.2. 도전자의 시대
2.3. 고교야구의 아이돌
2.4. 1981년 이후
3. 출신 선수


1. 개요

한국 고교야구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팀으로 고고야구의 절정기인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를 화려하게 장식한 팀이다. 하지만 동시에 무려 14차례의 서울 메이저 4대 대회 준우승이라는 안습한 역사도 같이하는 팀이다. 선린상고 야구부로도 들어올수 있다.

2. 연혁

2.1. 1960년대의 영광

1911년부터 팀이 있었다고 하지만[2] 실질적인 야구부의 출발점은 보통 1950년대로 생각한다. 1950년대 막강했던 인천고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패퇴하면서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고, 그들이 비로소 정상에 올라 고교야구 무대에 이름을 알린 것은 1960년대였다. 그 출발은 현역 시절 명 포수였던 배성서와 역시 명 2루수였던 한동화의 가세로부터 출발한다. 이들이 활약하여 1963년 황금사자기를 석권하면서 선린상고의 야구 역사는 시작되었고, 이들의 활약을 보고 많은 인재들이 몰리면서 선린상고는 더욱 강해졌다.

그 결실은 1966년 황금사자기 우승, 1967년 대통령배 우승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1969년 가장 영광스러운 한 해를 맞이했다. 선린인터넷고 야구 역사를 쓸 때, 가장 화려한 것이 1980년이었다면 가장 영광스러웠던, 그래서 1980년의 선린상고보다 더 강했다는 1969년의 선린상고는 투수 유남호를 주축으로 하여 탄탄한 내야외의 야수진을 바탕으로 대통령배, 청룡기, 화랑대기, 황금사자기를 모두 석권하면서 고교무대를 천하통일하기에 이른다.

2.2. 도전자의 시대

1969년 천하통일에 성공한 선린상고는 1970년대는 도전자의 입장에서 시즌을 맞이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1970년대 들어오면서 고교야구 무대는 경북고-대구상고가 가장 강력한 가운데 그 아성에 도전하는 도전자들이 뛰어들어 격전을 벌이는 구도였는데, 한 시대 앞의 강자였던 선린상고는 도전자의 입장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전력 자체는 나쁜 편은 아니라 4강에는 곧잘 들고 했고, 1975년과 1976년에는 2년 연속으로 전국대회 결승에 진출하였지만 아쉽게도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당시 주축은 훗날 MBC 청룡의 에이스가 되는 이길환이었고, 야수진에는 OB 베어스의 주력이 되는 김광수가 있었다.

1978년 봉황대기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며 도전자로 1970년대를 만족해야 했던 것처럼 보이던 선린상고는 1979년부터 일약 다시금 강호로 부상하게 된다.

2.3. 고교야구의 아이돌

1979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부산상고와 만난 선린상고는 상대 에이스 윤학길을 일찍부터 초토화시키면서 15:1의 기록적인 승리를 가져가며 우승에 성공했다. 당시 에이스가 윤석환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더 주목을 받은 선수는 당시 1학년이던 박노준. 투수와 타자 모두 재능이 빼어났고, 단정하고 샤프한 외모로 여학생들의 인기를 끌었던 박노준의 출현과 당시 절정이던 고교야구의 인기와 맞물려 선린상고, 정확히는 선린상고의 박노준은 고교야구의 아이돌이 되었다. 그리고 박노준 옆에는 그에 버금가는 실력자인 김건우가 함께 했다.

박노준김건우

이 무서운 아이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된 1980년. 비록 대통령배에서는 선동렬이 이끄는 광주일고에게 패해 1회전 탈락했지만, 청룡기에서 가볍게 우승에 성공하면서 자신들의 위상을 과시했고, 그 해 최강자들이 집결한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박노준은 투수로는 무실점 호투를 펼치고, 타자로는 3안타에 선동렬을 격침하는 역전 2점 홈런을 작렬하면서 선린상고에게 우승을 선사했다. 물론 1980년의 성공에는 박노준과 김건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유지홍 등 화려하지 않아도 탄탄하게 받혀주는 수비력도 존재했기 때문에 우승이 가능했다. 그렇지만 분명 박노준과 김건우는 너무나 화려했고, 그들이 고3이 된 1981년은 곧 선린상고의 한 해가 될 것처럼 보였다.

1981년 대통령배는 그러나 대회 초반 김정수가 이끄는 진흥고에게 덜미를 잡히며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청룡기에서 다시 결승에 오른 선린상고는 성준의 역투에 휘말려 경북고와 연장 11회 혈전을 벌인 끝에 패배하면서 준우승을 차지해야 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도 선린상고의 강세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고교야구 무대의 흔한 이변 정도였지, 제대로 만난다면 선린상고가 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1981년 봉황대기에서 선린상고는 예상대로 결승에 올랐고, 결승 상대는 청룡기에서 만난 경북고였다. 4강전에서 김건우의 완투로 승부를 결정낸 선린상고는 경북고 상대로 당연히 박노준을 출격시켰고, 1회말 공격에서 3점을 내면서 먼저 앞서 나갔다. 그러나 그 3점에는 박노준이 홈을 파고 들다가 전날 비로 인해 젖어있는 그라운드에 발목이 박혀 슬라이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발목 골절을 당하며 얻은 점수가 있었다.

박노준의 발목골절 사건

고교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부상으로 인해 선린상고는 졸지에 팀의 투타 기둥을 모조리 잃어버렸고, 전날 던진 김건우가 출격했지만, 김건우 역시 어깨 부상으로 조기 강판되면서 완전히 경기가 꼬여버리게 된다. 결국 경기는 경북고의 6:4 역전승으로 끝나며 선린상고는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이어 열린 황금사자기에서는 신일고에게 콜드패배를 당하며 탈락, 1981년을 무관으로 끝내야 했다.

박노준의 그 부상으로 인해 11월까지 병원에 입원했는데, 경북고의 우승 소식보다 박노준의 상태를 묻는 보도가 더 먼저 나가고, 그를 걱정한 소녀팬들의 팬레터가 쏟아지는 등, 그야말로 고교야구의 아이돌다운 인기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어쩌면 한국 고교야구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이자, 동시에 고교야구 인기가 여기가 정점임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고교야구는 이 선린상고 시대를 끝으로 인기가 하향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2.4. 1981년 이후

1981년 이후, 선린상고-선린인터넷고가 고교무대 메이저 대회에서 정상에 등극한 적은 없다. 1989년 장재중-서용빈-인현배가 이끄는 전력은 강해보였지만,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우승에 한이 맺힌 인천고에게 졌다. 1991년 봉황대기 결승에서 당대 최강의 전력을 자랑한 신일고에게 패하면서 준우승, 1992년 청룡기 결승에서 공주고노장진에게 역사상 최초의 결승전 노히트 노런의 굴욕을 당하며 준우승, 1995년 경헌호를 앞세워 봉황기 결승에 올랐지만, 충암고의 에이스 박명환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하면서 준우승. 그리고 이 1995년 봉황기 결승이 2014년 시점까지 선린인터넷고가 진출한 마지막 결승 무대다.

물론 전력은 나쁘지 않았다. 1998년과 1999년에는 에이스 권오준, 포수 정종수, 내야수 손시헌, 외야수 이종욱을 바탕으로 한 전력으로 4강에 거푸 진출했고, 그 뒤로도 윤희상, 고창성 같은 좋은 선수들이 출현해 간간히 4강에 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끝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비록 과거의 화려함까지는 아니지만, 다행히도 급작스러운 몰락이 아니라 다소 부침을 겪는, 그리고 일종의 불운이 겹친 상태라는 점이 선린인터넷고 야구부에게는 위안거리다. 꾸준히 인재들이 프로 무대를 누비는 것이 그 증거다.

2014년에 감독이 공금횡령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 결국 안병원넥센 히어로즈 코치가 새로 감독으로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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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4대 메이저 + 협회장기
  • [2] 1911년에 필립 질레트가 한성고와 선린상고 연합팀을 꾸려 실업연합팀과 맞붙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3] 리그베다위키 등록 선수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