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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

last modified: 2015-04-06 13:45:23 Contributors


2집 하여가 활동 때의 모습. YG 수장의 귀여운 표정을 보라 당시 20대라는 것에 주목하자

양현석의 시계는 거꾸로간다

한국 대중가요사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레전드 그룹이자 1990년대끝판왕.

지금 보면 촌스러울 수도 있으나, 1992년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든 것은 그야말로 혁명, 그 자체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대중에게 알렸던 특종 TV연예. 그 유명한 난 알아요의 전설. 동영상 제목에 데뷔라고 되어 있고, 자막에 코너 첫 회라고 되어 있지만, 데뷔도 아니었고 코너 첫 회도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를 특종 TV 연예로 착각하지만, 그 이전에도 여러 매체에 데뷔하고 노래도 했었다고 당시 매니저였던 최진열씨가 증언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실제 데뷔는, 1992년 3월 14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무대였다.[2] 가수 지석진을 주목하자.[3]

Contents

1. 개요
2. 결성
3. 영향력
4. 정규 앨범 목록
5. 근황
6. 20주년 기념

1. 개요

보컬, 작곡을 맡은 서태지가 안무를 맡은 이주노, 양현석와 함께 1991년에 결성한 3인조 댄스 그룹. 1992년, 1집 난 알아요로 데뷔하였으며 1996년에 공식적으로는 해체되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서태지 항목도 참조해보도록 하자.

2. 결성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던 서태지시나위가 해체된 이후, 락뮤지션으로서는 드물게 80년대부터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었지만, 그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하던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랩 장르를 바탕으로 한 획기적인 댄스그룹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마이하우스라는 나이트클럽 업소에서 활동하는 무궁화 밴드의 멤버로 있을 때 같은 업소에서 일하면서 댄스그룹 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춤을 배우기 위해서 소개받은 양현석에게 자신이 작곡하고 있던 음악들을 들려주게 된다. 1년간의 군생활 뒤 의병 제대한 양현석은 서태지가 들려주었던 음악들을 잊지 못해 제대 후 다시 서태지를 찾아와서 그룹활동을 제안하게 된다. 원래는 서태지와 양현석 둘이서만 듀엣을 결성하기로 하고 녹음까지 완료했으나, 추가멤버를 들이기로 하고 수많은 이태원 댄서들을 둘러봤으나 결국 양현석과 함께 박남정과 프렌즈로 활동했었던 이주노를 최종 멤버로 영입하면서 3인조 댄스그룹이 되었다.

여담으로 뒤늦게 이주노가 합류하는 바람에, 서태지와 아이들 1집에는 이주노의 목소리가 없다.안습 이 사실을 양현석이 20년 만에 자기 입으로 직접 말했다. 사실 양현석은 이주노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형이었기 때문에, 팀내 불화가 생길까 염려되어 받아들일까말까 망설였으나 그래도 같은 댄서 출신인데 통하는데가 있으리라 판단하고 이주노를 팀에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난 알아요"는 원래 발라드였으나, 서태지가 이 노래를 양현석에게 들려주고 "발라드로 하는 것보다는 댄스로 하는 게 더 나은 노래다."라는 평가를 받은 뒤, 대대적인 개사를 통해 '난 알아요'의 장르를 발라드에서 댄스로 뜯어고쳤다고 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명은 리더인 서태지가 지었다고 하며 활동에 있어서는 서태지가 중심에 놓인 그룹 이름에서 드러나듯이, 서태지가 리더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정작 둘다 서태지보다 형인데 리그베다 위키에서 활동 기록도 전부 서태지 문서에 써있을 정도니까 말 다 했다. 아무튼 그만큼 서태지 개인의 비중이 컸던 그룹으로, 안무 구성을 제외한 활동의 대부분을 서태지 본인이 결성하고 있었다.[4]

다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댄스뮤직'을 했던 그룹이니만큼 '아이들'의 역할을 일방적으로 평가절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음악성 못지 않게 파격적인 '안무'로도 주목을 받았던 그룹이었음을 상기해보면...당장 데뷔곡인 '난 알아요'만 해도 당시 돌풍을 일으킨 '회오리춤'이 없었다면 그 재미가 반감됐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무튼 장르나 스타일은 다르지만 너바나커트 코베인과 비슷할 정도로 리더로써 서태지의 영향력이나 결정권이 크긴 컸다. 팀의 막내가 리더인 독특한 구조를 가진 댄스그룹이었던지라, 팬들 중에선 그들을 우스갯소리로 '서태지와 어른들(...)'이라고 부른 팬들도 간혹 있었다.[5]

3. 영향력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한국의 대중가요계는 성인가요와 발라드 위주에서 10대 취향의 댄스음악 위주로 재편되었다. 또 "한국어는 한글 구조상 랩이 불가능하다."라는 당시 전문가들의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랩을 대중화시켰다. 2집 하여가에서 최초로 국악과 흑인음악(힙합), 헤비메탈을 접목하고, 3집에서는 랩 메탈, 4집에서는 갱스터 랩 등 앨범을 들고 나올 때마다 새로운 장르를 도입해 대중가요계에 신선한 변화를 가져다준다.

음악적인 영향 뿐만 아니라, 대중가수로써 '남북분단(발해를 꿈꾸며)'이나 '교육제도의 모순(교실 이데아)', '청소년 가출(Come Back Home)' 같은 사회문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사회적 파장도 일으켰다. 요즘 사회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루는 가수가 있기는 한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흠좀무.[6] 4집의 타이틀곡이었던 'Come Back Home' 같은 경우, 그 곡을 듣고 가출을 했던 청소년들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뉴스까지 나왔을 정도.#

"활동 후 잠적, 공백기를 가진 이후 다시 컴백"[7]이라는 현재의 대다수 아티스트, 아이돌의 활동 패턴의 시초이며, 레게머리나 염색, 스쿨 룩 패션(1집), 힙합패션(2집), 치마 패션(3집), 스노우보드 패션(4집) 등을 최초로 도입해 유행시켰으며, 이후 연예계에 일반화 된 전속 코디네이터 제도의 도입이라든가, 뮤직비디오의 질적인 향상[8], 등등...90년대 이후의 가요계 뿐만 아니라, 사회 다방면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또 격렬한 안무, 각 멤버의 캐릭터 기믹 부여, 립싱크 등 현재 한국 아이돌의 기원이 되는 많은 시스템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한 후세대의 댄스 가수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은 이후 YG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해 아이돌 시장에서 지금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발표하던 날 전국의 초, 중, 고, 대학생들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심지어 3대 방송사 9시 뉴스의 메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4. 정규 앨범 목록

발매연도제목주요곡
1992서태지와 아이들 1집난 알아요/환상 속의 그대
1993서태지와 아이들 2집하여가/너에게
1994서태지와 아이들 3집발해를 꿈꾸며/교실 이데아
1995서태지와 아이들 4집Come Back Home/필승

  • 비정규앨범 - 내일은 늦으리[9] - 나를 용서해 주오[10], 김종서 - 상실(랩피쳐링) 수록

서태지와 아이들 정규앨범 전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순위에 들어가있다.

5. 근황

3명 모두 해체 이후,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서태지서태지컴퍼니를 설립하여 Nell, Pia를 발굴해 냈다. 하지만 서태지컴퍼니 소속 밴드들이 모두 독립하면서 2012년 현재에는 서태지 개인으로서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양현석은 연예기획사업가로 대성하였는데 YG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지누션, 거미, 빅뱅, 2NE1 등 수많은 뮤지션을 육성했다. 그의 라이벌이라는 사람들이 이수만, 박진영 같은 본좌급 연예기획사업가들이다.

이주노는 96년부터 제작자로 활동하면서 아이돌 댄스 그룹 영턱스클럽을 인기 가도에 올려놓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후 기획한 임성은, 익스트림 스파이 등은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이후에는 안무가, 무용가로서의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23살 연하의 여자와 결혼을 함으로써 도둑으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6. 20주년 기념

2012년으로 결성 20주년이 되어 서태지와 아이들 최고의 곡을 뽑는 투표를 실시했는데 압도적인 표차로 2집의 타이틀곡하여가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후계를 이을만한 그룹이 20년내에 나오겠는가?"라는 투표에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전설의 그룹이라고 할 수 있겠다.


리더인 서태지도 20주년을 기념하여 팬들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안녕하세요. 서태지 입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데뷔 20주년을 축하해주셔서 너무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데뷔시절엔 이렇게 오랫동안 음악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는데
지금까지도 음악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새삼 신기하네요 ^^

긴 시간 동안 제 음악에 귀 기울여 주시고 또 계속 음악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신 모든 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리고 가슴 벅찬 나의 팬들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오늘은 어쩐지 1집으로 데뷔하던 스무 살의 두근거림으로 마음이 설레이네요 ^^
이런 마음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딱딱해진 세상에서 음악을 통해 서로에게 위로가, 또 행복이 되기를 꿈꿔봅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3월 23일 태지..

하지만 아쉽게도 20주년 기념 앨범은 나오지 않았다.[11] 아마도 15주년 때 나왔던 서태지 마스터 콜렉션 때문에 무산된 듯 보인다. 그리고 팬들은 서태지 온라인 기념관#과 브라질 인근에 서태지숲을 조성한다고 한다.# 20주년을 기념하여 이런저런 기획기사와 영상물들이 산재해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꼭 챙겨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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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3명 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배우자를 맞았다. 특히 이주노는 23살(...) 차이로 넘사벽. 장모와 2살 차이라고 한다.(...) 세 쌍 부부의 나이차를 총합하면 무려 51살.(...) 평균이 17살.
  • [2] 이상벽은 나훈아, 김지미의 결혼 특종도 냈던 연예부 기자였고 연예 평론가로 책도 냈었다. 그의 이미지를 바꾼 아침마당은 이 방송과 거의 비슷한 시기 (1주일도 차이 안난다) 시작했다. 딴지일보에서는 暖謁兒要라는 한시로 패러디한 적이 있었다. 내용인 즉 어린 아이에게는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3] 런닝맨에 나오는 그 지석진 맞다.
  • [4] 그래서 해피투게더에서 서태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수입 역시 3:3:4로 본인이 4를 가졌고, 예외적으로 음반은 본인이 제일 많이 관여를 했기에 2:2:6으로 6을 가져갔다고 밝혔다. 예외적으로 1집의 '이 밤이 깊어가지만'과 3집의 '널 지우려 해'는 양현석이 작사를 했으며, 락밴드로 변신한 이후에 4집에 컴백홈과 같은 힙합곡이 수록된 것도 양현석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이주노는?
  • [5] 여담으로 이원복은 자신의 만화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을 패러디한 그룹인 동태지와 어른들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부르는 노래는 난 몰라요!
  • [6]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메이저 가수 중에서 드문거지 지금도 찾아보면 있긴 하다. 화제가 안될 뿐.(...) 서태지는 메이저 가수 중에서도 특히 최정상일 때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이 특이한 케이스. 오히려 서태지 밴드 이후가 더 점잖아진 느낌이랄까?
  • [7] 이전에는 컴백, 휴식기 같은 개념이 없었다. 트로트 같은 경우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 번 신곡을 내면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활동한다.
  • [8]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에는 뮤직비디오를 소속사에서 별도로 촬영하지 않고, 방송국에서 노래에 맞춰서 거리나 세트장에서 임시로 촬영한 여러 영상을 뮤직비디오랍시고 갖다 썼다.
  • [9] 92 환경콘서트의 타이틀.
  • [10] 1집 활동 시절 발매되었는데, 곡의 스타일은 3집 스타일의 랩코어에 더 가깝다.
  • [11] 20주년 기념 앨범이 iTunes Store에 있다! # 구성은 8집까지 있었던 음악 중 몇 가지를 추려서 넣어논것이다. 당연하게도(...) 대한민국에서는 못 듣고 외국 아이튠즈 스토어를 통해야 한다. 링크는 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