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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2세

last modified: 2017-06-21 22:11:49 Contributors

프랑스의 역대 국왕
로타르 1세 샤를 2세 이 2세

이름 샤를 대머리왕(Charles le Chauve), 카를 대머리왕(Karl der Kahle)[1]
생몰년도 823년 6월 13일 ~ 877년 10월 6일 (54세)
재위기간 840년 ~ 877년 10월 6일
출생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사망지 브리데레벵

Contents

1. 개요
2. 재위이전
3. 서프랑크 성립
4. 서로마 황제 즉위와 죽음


1. 개요


샤를 2세 대머리는 루트비히(루이) 1세 경건왕의 막내아들로, 그가 후처 유디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2. 재위이전

프랑크 왕국 루트비히 1세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샤를 2세는 아버지의 상당한 사랑을 받아서 이미 이복형들에게 나뉘어져 있던 토지의 일부를 받게 된다. 그로 인해 세 이복형이 아버지에 반기를 드는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그 반란은 830년부터 시작되었고 833년 성공하여 루트비히 1세가 퇴위당했으나, 834년 교황이 다시 복위시켰다.
이후 루트비히 1세의 권한이 강해졌고 샤를 2세 역시 마찬가지로 강력한 입지를 지니게 되어 이복형 페펭이 죽자 페펭이 가지고 있던 토지를 받게 되었다. 이에 반대하여 이복형인 독일인 루트비히 2세가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3. 서프랑크 성립

840년 루트비히 1세가 죽자 이복형인 로타르 1세가 프랑크 왕국 왕과 서로마 제국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았는데 자신으로의 권력집중화를 꾀하였다. 이에 반발하여 이복형인 독일인 루트비히 2세와 손을 잡고 로타르 1세를 공격했고, 843년 르됭 조약을 통해 자신의 영지였던 프랑크 왕국의 서쪽 영토의 지배권을 확립받았다.
852년부터는 이복조카였던 아키텐의 피핀 2세와 대립했으며, 이로 인해 853년에는 귀족들의 반란이 일어나 폐위 직전에 몰리게 된다. 이때에는 이복형인 독일인 루트비히 2세와 로타르 1세의 아들이었던 조카 프로방스의 샤를과 이미 자신과 대립했던 조카 아키텐의 피핀 2세까지 가담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855년 형 로타르 1세가 죽고 로타르 1세가 가지고 있던 중부 프랑크 지역[2]을 물려받은 로타르 2세가 각각 869년 죽자 그 영토를 870년 독일인 루트비히 2세와 함께 나눠가졌고 이가 바로 르센 조약이다. 이 때부터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영토경계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는 오늘날의 프랑스 일대를 다스리게 되었다.

4. 서로마 황제 즉위와 죽음

로타르 1세 사후 서로마 황제의 자리는 로타르 1세의 장남이자 이탈리아 왕이었던 루트비히 2세에게 있었다. 그는 875년 후사 없이 죽게 되었을 때 서로마 황제의 자리를 독일인 루트비히 2세의 아들 카를만에게 주려고 했으나 그의 죽음과 동시에 샤를 2세가 이탈리아로 쳐들어가서 제관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동서프랑크 왕국간의 내전이 벌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한 혼란의 와중에 877년 급사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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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실, 이후 샤를을 묘사한 그림등을 보면 대머리와는 멀다(...) 이러한 이유는 본래 샤를은 제위계승에서 세형들인 로타르, 루트비히, 페펭에 밀려 상속받을 영지가 없어서 '물려받을 것이 없는'이라고 불렸는데, 이게 후대에 와전되어 '머리가 없는(대머리)'가 된 것.
  • [2] 로타르 1세 사후 중부 프랑크왕국은 나눠서 상속되었는데 오늘날의 이탈리아는 황제자리까지 물려받은 장남 루트비히 2세가 차지했고, 그 밖의 지역을 북쪽일대는 로타르 2세와 프로방스의 샤를이 나눠 가지게 되었는데 프로방스의 샤를은 864년 죽었고 그의 영토는 이탈리아의 루트비히 2세에게 넘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