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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태

last modified: 2015-04-02 12:34:21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후신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
3. 종말을 고한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그 이후
3.1. SK의 태평양 데이 행사와 그에 따른 후폭풍
3.2. 넥센 히어로즈 때문에 산다 사건
4. 같이보기
4.1. 넥센 히어로즈
4.2. SK 와이번스
4.3.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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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부터 1995년까지 인천+경기도+강원도+이북5도를 광역 연고지로 했던 프로야구 팀인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를 합쳐 이르는 말.

팀 모두 야구사에서 큰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고 하위권을 전전했지만[4] 삼미 데이-태평양 데이 혹은 넥센 히어로즈의 역사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단어이다. 그리고 대다수의 야구팬들은 삼청태의 후신인 현대 유니콘스까지 함께 부르기 때문에 이 문서는 삼청태현으로도 리다이렉트된다.

비슷한 예로 프로농구나산 플라망스-골드뱅크 클리커스-코리아텐더 푸르미를 언급하는 단어인 나골코가 있다. 나골코 역시 전신이 줄곧 하위권을 전전했다는 점마저도 삼청태와 매우 유사하다.

2. 후신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

1996년 현대그룹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해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한 후, 현대는 1998년 인천 연고팀 사상 최초의 우승을 기록했으나, 모그룹의 기대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5] 이후 2000년 1월에 현대그룹에서 주도해 야구단 현대 유니콘스를 연고지 서울로 옮기겠다고 공언[6]하면서 인천을 뛰쳐 나갔다가 2000년 시즌 중반에 터진 모기업의 부도 +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후 소위 그룹내부에서 터진 '왕자의 난'으로 현대그룹이 찢어지는 위기로 인해 생긴 재정 문제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기존의 제2홈구장이 위치한 임시로라 쓰고 현대가 해체될 때까지 경기도 수원시를 임시연고로 삼게 된다. 이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인기구단이라고 보기 힘들었던 현대 유니콘스의 인기는 수원으로의 임시 연고 이전 이후 이런저런 사정이 겹치면서 바닥까지 떨어졌다.[7]

위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유니콘스가 연고지를 이전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런 변명거리에도 불구하고 유니콘스가 뜬금없이 연고를 이전하여 인천을 떠난 것은 분명히 잘못한 것이다,

한편, 2000년 SK 와이번스가 퇴출된 쌍방울 레이더스를 대신하여 신생팀으로 창단[8]되었고, 새로운 인천 연고팀으로 출범[9]하게 된다.[10]

이렇게 현대의 연고지 이전과 SK의 인천 연고팀 창단으로 2000년 겨울 큰 소용돌가 일단락 됐다. 그리고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으로 인천 지역의 야구팬들은 엄청난 정신적 공황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새로 인천으로 정착한 SK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팬, 비록 연고지를 이전했지만 선수만큼은 온전히 있는 현대 유니콘스를 응원하는 팬, 그리고 새로 온 SK의 이질감과 현대의 연고지 이전에 배신감을 느껴 야구 자체에 관심을 끊은 팬 이렇게 3등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특히 이런 팬덤이 분열된 양상은 자신과의 싸움 2003년 한국시리즈에서 여실히 나타났다. 팬이 많지 않아 빈자리가 많았던 수원구장에서의 경기, SK팬+SK 직원과 소수의 현대팬으로 어색하게 나눠져 응원전을 펼쳤던 문학구장에서의 경기, 그리고 현대 직원과 SK 직원이 동원된 잠실구장 중립경기의 결과는 한국시리즈 역대 최악의 흥행참패로 이어졌다. 그리고 2003년에 남은 건 이승엽, 심정수의 홈런 경쟁뿐이었다.

그렇게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을 떠나 서울로 연고 이전을 시도하나 목동야구장 리모델링 문제와 서울 연고 두 팀에게 줄 보상금 문제 때문에 바로 서울에 입성하지 못하고 임시 연고지로 수원시에 머물게 됐다. 그러나 수원시는 자타 공인의 축구도시로, 바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연고지인지라 마케팅부터가 게임이 안 됐다. 게다가 수원시민으로서도 언젠가는 서울로 떠날 현대 유니콘스에 큰 정을 붙일 이유도 없었다. 이렇듯 아무런 대책없이 불도저식의 무리한 연고이전을 강행한 현대 유니콘스는 크보에서 흥행 최악의 구단의 오명을 썼다.그래도 맨날 꼴찌나 해대는 팀보다야 사정이 나았…으려나? 거기에 현대 유니콘스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계속되는 적자와 범 현대그룹 후계구도 싸움인 왕자의 난을 거치며 모기업마저 암운이 드리워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3. 종말을 고한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그 이후

결국 왕자의 난 이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자살과 현대전자(現 SK하이닉스)의 지원 중단으로 파산 위기에 처했던 현대는 KBO와 촉새 박동희[11], 그리고 야구단 대주주였던 하이닉스 스스로의 뻘짓[12]에 힘입어 종말을 고했고, KT의 현대 유니콘스 인수 시도 당시 KBO가 보험 성격으로 접근해 놓았던 이장석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스가 현대를 해체 후 재창단하는 형식으로 우리 히어로즈가 신생구단으로서 창단된다.

해체 후 재창단이라면서 계보가 단절된 신생구단이라는 모순이 발생했던 이유는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막장 상황에 기인하는데, 우선 하이닉스가 진작에 GG를 친 상황에서 근근히 이어지던 범현대가의 지원도 끊긴 2007년의 유니콘스는 순전히 KBO의 기금만으로 운영되었다. 2001년과는 달리 하이닉스는 인수금을 내놓으라고 큰소리 칠 상황이 아니었던 것. 또한 자금력이 빈약했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는 재창단의 적절한 예와는 달리 KBO 가입비 120억 원의 분납을 조건으로 유니콘스의 인적 자산, 즉 선수단은 대부분 고용승계하는 대신, 물적 자산이라고 쓰고 빚이라고 읽는다은 포기하고 외형상 별개의 법인으로 신생구단을 탄생시키겠다는 제안을 걸었다. 밑에서도 언급되겠지만 당시 이장석은 현대의 승계보다는 신생구단의 창단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결국 야구팬들이 바라던 대기업의 인수도 아니었고 재창단이라 부르기도 뭔가 미묘한 모습이 되긴 했지만 사실상 유니콘스의 명줄을 쥐고 있던, 그리고 아무도 야구단을 인수하지 않으려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8구단 운영의 파행은 막아야 했던 KBO가 센테니얼의 제안에 콜을 부르면서 유니콘스의 해체와 함께 히어로즈가 창단된 것. 어찌 되었든 이로 인해 히어로즈와 삼청태현의 연계성은 법적으로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KBO는 현대가 다 까먹은 기금을 채울 길이 요원해졌고(…) 훗날 9구단 10구단에게 가입비 명목으로 삥을 뜯게 되는데

근데 사실은 이것이 단순히 자금력 부족 때문에 센테니얼에서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니다. 애초에 KBO 입장에서는 누가 사가건 이렇게 팔 수밖에 없었다. 만약 MBC-LG 때처럼 넘긴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현대 유니콘스의 주주인 하이닉스가 운영권을 양도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법정관리에 들어갈 정도로 회사가 어려웠던 하이닉스측에서 뻔뻔하게도 초기투자비용 운운하며 양도 비용을 요구하게 될 경우 법적으로는 권리가 있으므로 그 돈을 줘야 된다.[13]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안 팔리는데 인수 비용이 올라가게 되는 건 둘째치고, 현대가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쳐다보지도 않아서 KBO 기금으로 운영했건만, 구단 팔린 뒤에는 하이닉스가 인수 비용을 챙겨가는 꼴이 되는데, 이건 상식적으로 봐도 기존 구단들이나 KBO가 도저히 찬성할 수 없었다. 그러니 꼭 센테니얼이 아니었어도 어찌 되었든 삼청태현 계보의 단절은 피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14]

그리고 SK 와이번스는 2000년에 현대에서 기량이 쇠해서 쩌리가 되었다지만 '인천 야구의 적자'로서의 상징성을 갖고 있던 김경기를 데려오고,[15][16] 2002년 8월에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이벤트성 유니폼 데이를 펼치면서 삼미 유니폼을 모티브로 한 이벤트 유니폼을 선보이는 등[17]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으로 야구 자체에 발길을 끊은 인천시민의 발길을 야구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고생한 결과 SK표 스포테인먼트가 정착하고, 김성근 감독 체제 첫 해에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등에 업고 점점 인기를 높여가고 있었다.

그런데, 2008년 야구 팬덤을 뒤흔드는 한 사건이 일어난다.

3.1. SK의 태평양 데이 행사와 그에 따른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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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가 2008년 어린이날 문학 야구장에서 태평양 데이를 실시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우리 히어로즈를 상대로. 이 행사는 SK가 KBO에만 행사의 사전 협의를 하고 히어로즈 측에는 통보하지 않았던 일방적인 행사였으며, 이날 마침 히어로즈-SK 전의 이스픈 중계방송 해설로 나왔던 박동희는 여기서 SK의 행동을 동북공정이라고 하며 크게 깠다. 안 그래도 미묘한 관계이던 히어로즈 팬들은 '태평양의 후신은 현대인데 이게 무슨 소리냐?'며 크게 반발, SK의 올드 데이 이벤트에 항의하는 성격의 걸개를 들고 온 히어로즈 팬들도 있었다. 반대로 SK 팬들은 '태평양 돌핀스는 인천야구 역사인데, 없어진 팀 추억하자는 뜻에서 한 이벤트에 신생팀에서 뭔소리를 하냐?'고 맞대응했다. 제2홈구장 수원의 역사는 아닌 모양이다. 아니 그럼 연고지 버리고 간 현대 유니폼 입고 올드 데이 행사할까 1994년 태평양 돌핀스를 무너트린 김재현[18]이 태평양 유니폼을 입고 있고, 그러한 모습을 이숭용, 전준호(투수)[19] 등 태평양 시절부터 선수 생활을 해왔던 히어로즈의 선수들이 지켜보는 상황은 참으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SK엔 조웅천김경기가 있었지[20]

어찌됐든 이 행사는 인천야구로서 SK를 응원했던 팬들에게는 좋은 평을 들었던 반면 히어로즈 팬들에게는 악담을 들을 수밖에 없었고, 양 팀 팬들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한편 이 사건 이후 히어로즈의 행보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창단 초기 히어로즈의 구단주 이장석은 히어로즈가 신생 서울팀으로 비춰지길 바라고 있었다.[21] 물론 히어로즈야 과거 유니콘스가 사용했던 KBO의 기금 채무를 탕감한다는 조건 하에 법적으로는 삼청태현의 기록을 이어받지 못하는 별개의 팀으로 창단되었다는 점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낯선 지역에 창단한 신생구단이 안고 가기에는 한때 왕조라고까지 불렸던 유니콘스, 그리고 현대란 상징은 현실적으로 부담스러운 멍에인게 사실이었다. 이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전준호와 같이 연봉의 고하를 막론하고 현대색이 짙으면서 은퇴가 가까운 선수들을 푸대접하거나, 아예 그냥 방출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오히려 이러한 '현대색 지우기'는 히어로즈 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던 구 현대 팬들의 반발과 팬이탈을 불러왔었고, 그런 구단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된것이 위의 태평양데이 이벤트였다.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삼청태현 계보에 대한 논란 역시 재점화되었고, 이에 대한 히어로즈 구단의 태도 역시 이 시점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9년 조태룡 단장이 부임하면서 팬들의 입장을 수용하여 삼청태현 역사의 필요성을 주장, 구단주 이장석을 설득해 현대의 마지막 감독이었던 김시진을 다시 감독으로 선임하였고, 이후 목동구장 전광판을 통해 히어로즈가 삼청태현의 역사를 이어받았음을 알리는 한편, 2009년 9월 삼미-청보-태평양의 유니폼 모양의 LED 배지를 만들어 판매하고 구단 홈페이지에 삼청태현 히스토리를 실어놓았지만, 한편으로는 트레이드 절대 불가라던 황재균을 팔면서 뜬금없이 황재균은 히어로즈 고유 프랜차이즈가 아니라는 드립을 쳐서 팬들의 속을 태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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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당시 목동구장 전광판의 모습. 별도의 설명이 없기에 흔히들 조작된 사진이라는 말과 히어로즈가 문구만 적당히 바꿨다는 밑장빼기주장이 상반되어 나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 두 모습은 모두 실존했다. 정확히는 전광판에 번갈아서 나왔다.[22] 어떻게 보면, 구단측이 삼청태현의 계보 승계에 대해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짤방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신생구단이긴 하지만 전통은 이어받았다구요 그 와중에 영원히 고통받는 심수창

이후에는 완전히 갈피를 잡은 듯, 태평양의 최후의 선수이자 현대의 상징이였던 이숭용을 한 팀에서만 2,000경기를 뛴 선수라고 소개하며 성대하게 은퇴식을 치러주었으며, 당시 스포츠 언론 역시 '최초로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 하면서 2천 경기 출장'이란 타이틀을 붙여 이후 넥센 팬덤이 스포츠 언론계도 태평양-현대-넥센을 하나의 계보로 간주하고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였다. KBO 역시 공식보도 자료로 저 내용을 돌렸는데, SK에서조차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으니. 정작 문제는 이후 인천야구의 계보에 관한 방송에서 당시 역사의 산 증인이라 할 선수 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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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태현과 히어로즈의 연계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버린 것(...) 그런데 태평양-현대 연고 이전 혼란기 때의 선수들한테 물어보면 비슷한 대답 나올거 같다 이 난리에 극심한 피해를 본 것은 바로 해당 시기의 선수들. 연고 인맥이 상당한 힘을 차지하는 야구판에서 인천 출신 선수들은 비빌 언덕이라도 있지만, 이숭용 선수처럼 공중에 붕 떠버린 선수들은 어쩌란 말인가? 이숭용 선수는 인천 출신은 아니지만, 태평양, 현대에서 꾸준히 활약한 선수이기에 이런 심정을 토로하는 것을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다.

2013년 시즌 이후에는 염경엽 감독을 선임하게 된 배경으로 염감독이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출신이기에 선임했다고 이장석 사장이 직접 언급했다.# 게다가 과거 현대 유니콘스의 고문이었던 현대해상의 정몽윤 회장은 후임 감독으로 박흥식 당시 타격코치를 원했다고.그분 귀신같이 도망가셨답니다 참고로 현대해상의 정몽윤 회장은 현대 유니콘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현대해상은 2010년부터 계속 넥센 히어로즈의 스폰서를 해왔다.

시작이야 어쨌든, 창단 초기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게 히어로즈는 전면적으로 자신들이 삼청태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장석 본인이 저지른 참사에 왜 휘발유를 다시 뿌리는지 알 수 없다. 둘 다 해체되었으니 제발 삼청태는 역사에 묻고 제 갈 길 가라

결과적으로, 삼청태현의 계보는 팬들뿐만 아니라 양 팀에서도 서로 계승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래서 이 부분은 너무 안타까운 비극이라고 볼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이렇게 갈라진 팬들은 한때 같은 한지붕에 있던 사람들 사이였는데 말이다.[23] 최소한 넥센이 삼청태현의 계보를 이었다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연고지 이전 직후 현대를 응원했고, 지금 넥센을 응원하고 있는 인천 야구팬들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넥센이나 SK나 어느 쪽이라도 삼청태현과 공식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현대라는 구단이 해체된 이상 어느 팀도 삼청태현의 후손일 수 없으며, 굳이 따지자면 약 20년간 그들과 함께 했던 인천 야구 역사의 일부로 봐야 할 것이다.[24] 핵심은 SK - 넥센 모두 이전 팀이 해체된 이후 창단되었다는 점이다. 연고를 옮긴 뒤 공식적으로 해체된 구단이 어떻게 이전 연고지에 있던 팀의 역사를 계승할 수 있는가? 반대로, 이전 연고팀과 아무런 상관 없는 구단이 이전 주인이 떠난 연고에 들어왔다고 이전 연고지 구단의 역사를 어떻게 주장할 수 있는가? 사람을 이었다고 해서 인천 야구의 역사를 통째로 다른 연고지로 가져갈 수 없는 일이며, 태평양 선수였던 염경엽 감독이 넥센에 있다고 삼청태 역사가 넥센 거라면, 김무관 코치 영입한 SK는 삼청태 적자가 되냐 마찬가지로 지금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SK도 쌍방울 선수들을 주축으로 신생 구단을 창단한 것인만큼 삼청태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삼청태 유니폼 맘대로 입어도 되는 사람은 도원 구장에서 그물 탔던 도원전사들

3.2. 넥센 히어로즈 때문에 산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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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양측의 갈등은 2014년까지도 이어지고 있는데 2014년 9월 '넥센 히어로즈 때문에 산다'라는 책이 출판되었고 넥센구단의 입장대로 '넥센의 역사는 삼청태현을 계승한다'라고 나오는 바람에 양측에서 각각 '서울 신생구단인 넥센이 인천야구의 역사인 삼청태를 지들거라고 겆북공정을 시도한다','니들은 삼청태 자격없는데 웬 참견이냐?' 등으로 논쟁이 일어나는 중이다.사실 둘 다 자격없다 바로 옆에 붙어 있던 동네에서 팬질하던 사람들이 뻔히 살아 있는데 해당 팀도 해체된 마당에 그 시절 역사까지 슬쩍 끼워 가져가면 어느 동네가 참을 수 있겠나

4. 같이보기

4.1. 넥센 히어로즈

4.2. SK 와이번스

  • 짠물야구 인천야구의 역사. 인천야구를 대표하는 김훈희씨가 운영하는 팬페이지. 인천야구의 역사박물관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인천 야구팬의 심정을 엳볼 수 있다. 다만 운영자가 2009년 이후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니 참고할 것.

4.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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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현대가 망한 후 현대의 기존 선수를 흡수 하였으므로 적통자라는 주장. 고용승계
  • [2] 인천야구의 적통자라는 주장. 고토회복
  • [3] 삼청태현, SK, 넥센과는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없으나, KT는 파토가 나버렸긴 했지만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인수 우선 협상자였고, 이 일이 있은 지 6년 후에 유니콘스의 임시 연고였던 수원시를 연고로한 제10구단을 새로 창단한다. 한편, KT 위즈의 공식 팬클럽인 '카이저스'에서는 8년 만에 프로야구가 다시 열린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제작한 바가 있는데, 여기서 현대 유니콘스의 원정 유니폼을 입은 턱돌이가 타버린 야구방망이를 들고있는 그림을 넣어 간접적으로 현대 유니콘스와 넥센 히어로스를 디스했다.
  • [4] 삼미와 태평양이 시즌 2위 한 번씩, 한국시리즈 진출은 1994년의 태평양이 유일하다. 삼미와 청보가 하위권에 머문 이유는 이 두 구단이 넥센처럼 재정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결국 삼미와 청보 시절에는 경영난으로 인해 타 기업에게 구단이 팔렸다.
  • [5] 금광옥 현 동산고 감독은 1998년 우승 후 1999시즌 개막전의 관객이 기대했던 것보다 적었던 것이 현대의 연고지 이전 시도에 결정타였다고 밝히고 있다. 인천 토박이들에게야 당연히 인기가 높았었지만, 사실 인천은 전라도+충청도 출신 이주민이 많은 도시다.
  • [6] 김용휘 전 사장은 연고지 이전은 야구단에서 추진한 것이 아닌 그룹에서 강행해서 밀어붙인 것이라고 2008년에 스포츠 2.0에서 밝혔다. 프런트는 물론 선수단의 의견수련 없이 일방적으로 모기업에서 '불도저'식으로 강행했던 것. 당시의 연고이전 강행에 대해 선수단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박재홍을 비롯한 몇몇 선수들이 눈물로 호소하면서까지 구단의 연고이전을 반대했었던 반면, 몇몇 선수들은 연고이전 소식에 반색하며 환영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와 팬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 [7] 수원은 전통적으로 축구가 인기가 많으며 그 당시 시장도 축구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단에 링크된 최훈의 만화 '영웅의 꿈'을 보면 유니콘이 잠시 동거하던 '수원'이란 여자의 옷이 바로 블루윙즈의 파란색 유니폼이다. 더구나 수원이 현대에게 있어 임시 연고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수원시민들이 현대에 정을 줄 리가 없었다. 거기다 2000년대 초반은 야구의 암흑기라 불리던 시절이었다.
  • [8] 당시 기업이 어려웠던 쌍방울로서는 SK가 구단을 인수해주길 바랐지만, 기한을 넘기면 자연히 퇴출될 상황이었기 때문에 SK는 그럴 생각조차 갖지 않았다. 이윽고 쌍방울이 자동 퇴출됨과 동시에 SK는 신규 구단을 출범시켰고, 웨이버 공시된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수단과는 개별 계약을 맺음으로서 레이더스와의 연계성을 차단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SK는 쌍방울이 마지막으로 신인 드래프트에 참여해서 행사한 신인 지명권을 대가 없이 그대로 가져가 모두 써먹었고, 그것만으로는 선수가 부족했기 때문에 용병 세 명 계약 허용 및 나머지 7개 구단에서 드래프트 방식으로 선수들을 두 명씩 수급받는 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웠다. 이호준이 그 예. 그는 해태에서 뛰다가 위의 과정을 거쳐 SK로 이적했다.
  • [9] 이 과정에는 사연이 좀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창단 초 SK도 역시 서울로 연고 이전을 강력히 희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무렵 현대그룹에서도 야구단 연고 이전을 서울로 가겠다고 하면서 서로 충돌하게 되었고, KBO가 중재한 끝에 현대그룹 손을 들어주어 야구단 현대유니콘스를 서울(목동)으로 이전시키고, SK를 인천으로 연고지하도록 하게 된 것이다. 사실 더 복잡한 것은 이러한 결정이 있기 전 SK는 기존 두 구단의 반발에도 서울 아니면 안하겠다는 주장에서 갑자기 한발 물러나서 서울 아니면 수도권 광역시 아니면 창단 안하겠다고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즉, 현대가 먼저 서울로 가고 비어있는 인천을 SK가 어쩔수 없이 들어간 게 아니다. 물론 두 그룹 중 어디가 더 먼저 그 말을 깨냈는지는 현재로선 알 겨를이 없다.
  • [10] 이 때문에 야구팬덤에서는 SK 와이번스를 쌍방울 레이더스의 후신으로 치는 경향이 강하며, SK 프런트에서도 연고지 인천에 대한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해왔다. 이 때문에 제2 연고인 경기도 지역을 홀대하게 되었고, KT가 제10구단 KT 위즈로 수원에 입성함에 따라 SK의 경기도권 연고는 상실했다.
  • [11] KT가 현대 유니콘스 인수 협상 우선 결정자 선정이 비공개로 엠바고 상태였으나 이를 깨고 단독으로 기사를 냈다. 그리고 박동희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 [12] 현대자동차그룹에서 2001년 인수를 제안했으나 대주주였던 하이닉스가 인수금액 900억드립을 쳤고, 결국 현대차그룹은 현대 유니콘스 인수 제안을 철회하고 당시 매물로 올라왔던 해태 타이거즈의 인수로 방향을 돌렸고, 결국 KIA 타이거즈로 프랜차이즈를 잇게 된다.
  • [13] 사실 잘하면 돈을 주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러려면 하이닉스와 인수자, KBO 사이에 꽤 복잡한 법정 다툼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법정 간다고 100% 승소한다는 보장도 없고. 더구나 팬들의 인기를 먹고 사는 프로야구단과 KBO가 법정에서 운영권 문제로 소송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지에 좋을 리가 없다.
  • [14] 실제로 박동희의 기사에 따르면 KT도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 후 재창단형식을 통한 인수를 제안했다고 한다.
  • [15] 사실 김경기도 SK로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김경기 자신이 인천에 대한 애착심이 컸던 선수였던 데다, 선수협을 지지했던 전준호를 폭행해 갈비뼈를 부러트리는 등의 행위를 해 현대 선수단 내에서의 입지도 상당히 줄었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2000년 이후로 현대-넥센의 팬이 된 사람들은 김경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 [16] 사실 김경기는 1999시즌부터 용병타자의 도입과 부상으로 팀 내에서 자리가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준호 폭행사건이 터지자 아예 자리를 잃고 말았다.
  • [17] 뒤에서 언급될 태평양 데이와 엮어 이 행사를 삼미 데이로 아는 사람이 많으나, 실제 이름은 "꿈★의 이벤트" 였다. 당시 2002 월드컵에서 등장했던 "꿈★은이루어진다!" 키워드에 맞춰 SK의 포스트시즌 진출 염원을 담았다. 하지만 이는 구단측의 설명일 뿐이고, 실제로는 당시 현대측의 반발로 삼미란 이름을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 [18] 김재현LG 트윈스 당시 태평양-현대 상대로 유독 강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다. 1990년대 LG 트윈스는 태평양 돌핀스-현대 유니콘스 상대로 강했고, 그 가운데 김재현하고 유지현, 김동수는 태평양-현대 팬들 입장에서 매우 얄미운 존재였다.
  • [19] 전준호는 이 상황을 보고 "우리의 과거가 부정당하는 것 같다."라며 씁쓸해했다.
  • [20] 이 둘은 '이적'이라는 행위를 통해 팀을 옮긴 선수들이라, 무이적 선수들인 이숭용, 전준호와의 동일선상 비교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이후 전준호는 SK로 이적했다 심지어 그 당시 김경기는 선수가 아닌 코치 신분이었으며, 굳이 여기서 김경기를 운운해야 한다면 히어로즈에는 정명원이 있었음 역시 언급해 줘야 한다. 애당초 선수와는 달리 직장 옮기는 일이 다반사인 코치 세계에서 지금의 소속팀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 [21] 이후의 인터뷰를 보면, 이장석은 당시의 판단에 대해 본인이 무지했었다며 크게 후회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서 족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자의 비극
  • [22] 윗 사진은 7월 21일, 아래 사진은 7월 31일 경기다.
  • [23] 그런데 인천 외 타지역이나 2000년 이후 현대 팬이된 사람들에게는 얘기가 좀 다를 수 있다. 타지역 팬들에게는 연고지 이전은 별 충격이 아니였으며 되려 연고지 이전을 반기는 팬들도 있었다. 그 팬들이 먼저냐 인천에서 그물 탔던 사람들이 먼저냐 숫자로 비교해보자 또한 2000년 이후 현대팬이 된 현 히어로즈팬들에게도 위의 말은 해당되지 않는다. 김경기에 대한 2000년대 전후 현대팬들의 시전 차이가 그 대표적인 예다.
  • [24] 미국의 경우 시애틀 매리너스가 예전에 메이저리그 팀으로 1969년에 신생구단으로 시애틀에 딱 1년 있었던 시애틀 파일러츠의 유니폼을 입고 이벤트 데이를 연 적이 있다. 이 시애틀 파일러츠는 훗날 밀워키로 연고이전을 하여 밀워키 브루어스가 된다. 그밖에 뉴욕 메츠가 과거에 NYC에 있던 뉴욕 자이언츠브루클린 다저스의 연고 이전을 하기 전의 역사를 계승하는 사례도 있다. 다저스는 팀을 해체하지는 않았다 즉, 미국은 한 팀의 프랜차이즈 역사도 존중하면서 연고지 야구팀들의 역사도 같이 존중하는 분위기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한 팀의 프랜차이즈 역사를 강하게 내세우는 편이다. 한 예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가 각각 예전 난카이 시절과 니시테츠 시절의 올드 유니폼을 입고 뛴 이벤트가 있었다. 난카이가 오사카, 니시테츠가 후쿠오카를 연고로 했던 팀이나 이 팀들이 훗날 연고지 이전을 하여, 옛날엔 후쿠오카 팀었던 팀이 사이타마에서 후쿠오카 시절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거시기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 [25] SK팬들이 인천야구의 역사를 이야기 하면서 현대를 족보로 언급할때 반박하기 위해 자주 쓰는 예시이며 그 어떤 SK팬도 반박할 수 없는 마법의 말. SK가 현대를 이어받은거면 SK와 현대의 한국시리즈는 자기자신과의 싸움, 혹은 청백전이냐는 이야기. 진짜 청백전 한국시리즈가 나올 뻔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