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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last modified: 2015-04-07 22:09:5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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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
Sammi Superstars
창단 1982년 2월 5일
매각 1985년 5월 1일
모기업 삼미그룹
연고지 인천광역시 (1982~1984)
홈 구장 도원야구장 (1982~1984)
마지막 경기 1985년 6월 21일
vs. 롯데 자이언츠
구단명 변천사 삼미 슈퍼스타즈 (1982~1985)
청보 핀토스(1985~1987)
태평양 돌핀스(1988~1995)
현대 유니콘스(1996~2007)
해체

Contents

1. 소개
2. 구단 창단과 매각
2.1. 안습의 기록들
3. 팬덤
4. 마스코트
5. 기타
6. 역대 성적

1. 소개

지금은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이 된 팀. 물론 해태 타이거즈와는 반대의 의미

1982년에 창단해서 1985년 여름 청보그룹에 매각돼서 사라졌다. 연고지는 인천-경기-강원. 참고로 인천 도원야구장 보수 공사관계로 1982년 홈경기 개막전도 춘천이었다. 이후도 제2연고로 춘천 경기가 계속 있었다. 지금 군산, 청주구장 정도로 이해하면 될듯.

한국 뿐 아니라 세계 야구에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1할의 승률을 냈던 전설의 꼴찌팀으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같은 이유로 한국야구의 전설로 기록되는 선수인 감사용도 삼미 슈퍼스타즈 소속이었다. 뭘 좀 해보려고 했던 박현식 감독도..

모기업 삼미그룹은 무역, 해운, 광업, 철광 등이 주종목으로 프로야구의 홍보효과를 누릴 만한 소비재 분야 계열사가 전혀 없었다. 시너지를 낼 만한 요소가 없었지만, 당시 30대였던 김현철 회장이 스포츠를 좋아했고 프로야구의 발전 가능성과 당시 KBO 사무총장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고 야구팀을 창단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야구계에선 인천-경기-강원 지역연고팀으로 강원도가 고향인 정주영 회장의 현대그룹에 접근했으나 거부당하였다.[1] 이후 급하게 대타를 찾는 와중에 삼미가 아무런 준비없이 뛰어든 것이다.

2. 구단 창단과 매각

프로야구 출범 전, 많은 인천 야구팬들의 기대와 함께 기적을 기대하며 프로야구 경기를 지켜 봤는데,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삼미는 이기는 일이 없었다. 프로야구 출범당시 유일하게 국가대표 출신이 단 한 명도 없는 최약체팀으로 사실상 직장인야구단이 바로 프로팀이 되니 이길 리가 없었다.[2] 매년 꾸준한(?) 성적부진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6개의 팀중 6위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장명부의 활약으로 1983년도에는 전후기 2위씩 차지하는 등의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천성적인 약체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김진영 감독의 구속 크리로 다시 추락. 결국 1985년 전기리그를 끝으로 성적부진과 모기업의 재정난을 이유로 청보식품에 매각, 1985년 6월 29일, 청보 핀토스가 되어 사라졌다.[3]

여담으로 삼미 구단주였던 김현철 회장은 매각 협상이 끝나고 사인한뒤 그날 밤 눈물을 흘리며 밤을 지샜다는 얘기가 있다. 얼마나 아쉬웠으면...

2.1. 안습의 기록들

1982년에는 전기리그 10승30패, 후기리그 5승35패를 기록, 통합성적 15승65패를 기록하며 세계 프로야구 어디에도 없는 전무후무1할승률(0.188)과 유일무이특정 구단 상대 전패(OB 베어스(現 두산 베어스)전 16전 전패) 기록하기도 했다. 1985년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 무려 18연패(敗)를 기록, 연패 기록의 전설로 군림하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1999년 시즌에는 쌍방울 레이더스이 그 기록을 깰 뻔했으나 LG 트윈스가 패배하는 바람에 명예 불명예를 안지 못하였고, 2002년 시즌에는 롯데 자이언츠가, 2010년 시즌에는 기아 타이거즈가 16연패로 그 기록에 도전했지만 각각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가 그 기록을 막았기 때문에 아직 최다 연패 기록은 삼미 슈퍼스타즈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매각된 후 청보 핀토스(1985)-태평양 돌핀스(1988)-현대 유니콘스(1996)로 이름이 바뀐다. 문제는 삼미의 후속팀인 청보 핀토스와 태평양 돌핀스의 성적도 시원찮았다는 점이다. 현대 유니콘스는 성적은 앞의 인천팀과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좋았지만 팀 말년에 인천을 버리고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려 시도한 점이 있고, 때마침 일어난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으로 인해 지원이 끊겨 팀이 해체되어 결국 삼청태현의 명맥은 끊기게 되었다. 우리 히어로즈는 KBO 제8구단으로, 현대가 해체된 후 재창단된 팀이며 따라서 현대와 우리는 별개의 구단이다.그러나 08년 우리 히어로즈의 KBO 가입비 미납으로 인하여 08년 8월 히어로즈라는 팀명을 달고 나온다. 그 다음시즌인 09년도에는 공식적으로 서울 히어로즈라는 이름으로 팀을 개편하려 했으나, 넥센 타이어와의 2년 전격 스폰쉽을 맺으며 넥센 히어로즈로 바뀌게 된다. 한편 히어로즈 팬들은 두 구단을 사실상 하나의 구단으로 취급하고 있으나[4] 대다수의 타팀팬들은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5]

1982년의 방어율은 6.23으로 당연히 최하위였으며, 이 팀 평균자책점 기록은 한화 이글스2014년6.35를 기록하며 갱신할 때까지 32년간 최악의 기록이었다.

3. 팬덤

2000년대에는 박민규의 소설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삼미 슈퍼스타즈의 전처리 투수[6] 감사용의 일화를 각색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 자체는 일본 소설인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와 모티브가 비슷하다고 까이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도 삼미 시절부터의 팬으로 시작한 이들중에서 문학성이 끝내주는 경우가 많다. 구의 추억을 연재한 김은식이나 인천 출신 기자로 인천 야구에 대한 책을 여러편 적은 고 이종남 기자 같은 널리 알려진 인물들 말고도, 인터넷상으로도 삼미에 대해서 글을 써놓은 문서들을 보면 유달리 필력들이 좋다.

4. 마스코트

팀의 심볼로 다른 팀이 동물이나 상징 로고를 그려넣는 것과 달리 삼미는 "배트를 든 슈퍼맨"을 선택했다. 마침 영화 슈퍼맨이 전세계적으로 대흥행할때라 창단 당시 최고의 인기 팀으로 군림했었다.[7] DC 코믹스: 너 고소 넥센 히어로즈마블과 손을 잡았다는 게 함정 스파이더맨은 여기서도 어벤져스에 못 꼈다

5. 기타

  • 오래된 팀이라 최근 유입된 사람들은 이 팀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하지만 요즘 신세대들에게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개그우먼 3명 트리오 이름으로 알려져 있을지도...

  •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2군 팀을 창단, 운영한 팀이다. 한국프로야구 퓨처스리그 참조.

6. 역대 성적

년도순위/팀숫자팀이름경기수승률
19826/6삼미80156500.188
19833/6100524710.525
19846/6100385930.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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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올드 인천팬들에게는 애석한 일. 당시 정회장은 야구를 하기 싫었던게 아니라 88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어 야구까지 신경쓸 겨를 자체가 없었다.
  • [2] 창단식 당시 박현식감독이 "우리팀은 모두가 슈퍼스타입니다."라는 변명을 한적이 있다(...) 정작 박현식감독은 감독제의가 들어왔을때 스타는 커녕 국대출신 한명도 없다고 디스한적이 있는게 함정.
  • [3] 당시 무리한 확장으로 재정위기에 몰린 삼미그룹은 그룹사옥과 야구단, 해운 계열사 등를 팔아서 기사회생했다. 그러고도 1990년대들어 또다시 몸집불리기를 하다가, 1997년 1월 부도로 이리저리 쪼개서 팔리고 공중분해...당시 재벌순위 20위 삼미그룹의 부도로 자금시장이 급격하게 경색되면서 한보, 진로, 해태, 기아 등 재벌의 연속 부도 크리 그리고 1997년 외환위기...IMF 구제금융사태... 삼미가 아직 식품계에 남아있긴 하다. 여담으로 삼미에서 발매하는 아몬드주스가 지금도 나오고 있는데 뭔가 좀 오묘한 맛이다. 아몬드 맛과 우유에 물탄 맛이 섞인 맛이 난다고나 할까...
  • [4] 히어로즈 팬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 SK 와이번스의 사례와 다르게 가수 김광진의 사례처럼 팬들이 그대로 이어졌고 응원하던 선수와 스태프, 심지어 프런트까지 그대로 이어졌으니 단지 팀의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다. 실제로 구단 해체의 아픔을 겪은 것이 이 팀의 팬들이기도 하고.
  • [5] 삼청태현 참고.
  • [6] 물론 삼미 슈퍼스타즈가 있었던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패전처리 투수는 엄밀히 말해 존재하지 않았다. 인원이 적었던데다가 선발, 중간, 마무리라는 개념 자체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 [7] 참고로 삼미의 여성 마스코트는 원더우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