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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하야토

last modified: 2015-03-10 23:54:58 Contributors


요미우리 자이언츠 No.6
사카모토 하야토(坂本勇人)
생년월일 1988년 12월 14일
국적 일본
출신지 효고현 이타미시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6년 드래프트1위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7~

Contents

1. 개요
2. 커리어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3.2. 수비, 주루
4. 에피소드


1. 개요

일본야구선수이자 요미우리 자이언츠 의 주전 유격수.

2. 커리어

초등학교 때 투수와 유격수를 병행하며 야구를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다나카 마사히로가 사카모토의 동급생이었다. 같은 팀에서 뛰며 사카모토가 투수, 다나카가 포수로서 배터리를 이루면서 활약하기도 했다. 고교 시절부터 공수 겸비 유격수로 평가받으며 2006년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1위 지명받으며 입단했다. 데뷔 초에는 주로 2군에서 플레이하며 기량을 쌓다가 7월에 전격적으로 콜업되었다. 9월 6일 주니치 드래곤즈전에서는 연장전까지 가는 경기에서 대타로 출장, 첫 안타를 결승 타점으로 연결시키며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2008년에는 스프링 캠프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개막전에서 8번 2루수로 출장, 마쓰이 히데키 이후 처음으로 10대 선수로서 개막전 라인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사카모토로써는 이 경기가 천운이었던지, 주전 유격수였던 니오카 토모히로가 개막전부터 부상을 당하게 되며 그 다음 경기부터 주전 유격수 자리에 무혈입성하게 되었다. 거기다 니오카가 아나운서와 불륜 사건까지 저지르게 되며[1] 사카모토는 시범경기부터 올스타전, 클라이막스 시리즈, 일본시리즈까지 전 경기에 출장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팀은 일본시리즈에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 3승 4패로 패배. 그러나 이 패배한 7차전에서 홈런을 때리며 10대 선수로는 기요하라 가즈히로 이후 22년만에 홈런을 친 선수로 기록되었다.

2009년에는 시즌 초반에 안타를 마구 때려내며 4경기 연속 수훈 선수로 선정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펼치다가, 7월에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잠시 슬럼프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2009시즌 팀의 리그 우승과 7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고, 센트럴리그 베스트 나인에 선정되었다. 데뷔 첫 끝내기 홈런과 선두타자 홈런을 친 것도 2009시즌.

2010년에는 1번 타자로 풀타임 출장하였고, 31홈런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기록하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격수 역사상 처음으로 30홈런, 그리고 고교 4년차 이내 타자 중 30홈런을 기록한 8번째 선수가 된다. 후반기에 부진한 것은 아쉬운 대목. 이 성적을 바탕으로 연봉 1억엔을 돌파하게 된다.

2011년에는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도쿄돔에서의 시합이 크게 줄고, 새로이 도입된 통일구의 영향으로 타율, 장타력 모두 10년 시즌에 비해 크게 저하되었고 여기에 그동안 지적된 불안한 수비가 나아지긴 커녕 더 심해져서 이례적으로 선발멤버에서 제외되기도 하였다.

2012년 시즌에는 11년 시즌의 부진한 모습에서 탈피, 20번의 맹타상 (한시합에서 3안타 이상을 쳤을 때 주는 개인상) 과 리그 최다안타 (173개), 개인 최다도루 (16도루, 도루성공률 .941) 등 자신의 각종 기록들을 갱신하며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리그우승, 일본시리즈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시즌 후 2013 WBC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13년 시즌에는 다소 부진하였다.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위에도 나와있지만 아무도 불만가지기 힘든 수준. 데뷰초부터 줄곧 고타율 고홈런으로 테이블세터와 클린업 가장 앞자리를 항상 고수해왔다. 팀 상황이 좋을때는 1번, 타선약화시에는 3번을 맡는 경우가 많다. 2011년에는 타격부진으로 잠시 6번까지 타순이 밀리기도 하였고, 2012년 시즌부터는 3번을 맡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제인지 어쩐지는 애매한데 극단적인 당겨치기 덕후이다. 시즌 통틀어도 밀어치는 타구가 별로 없고 컨디션 좋을때는 바깥쪽 변화구조차 당겨치는 기행을 보여준다.

물론 본인은 칠 수 있는 공. 없는 공을 확실히 나눠놓고 승부하는 편이라 딱히 바깥쪽에 약하다던가 하는 뚜렷한 약점은 없는 편. 오히려 몸쪽 잘못 붙였다가는 그대로 당겨서 좌측으로 넘겨버리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는 극단적인 스타일인데도 불구하고 상대하기 까다롭다고 하는 듯.

프로 3년차인 09년 시즌부터 12년 시즌까지 연속해서 두자리수 홈런을 기록할 정도로 장타력을 겸비하였다. 2010년에는 31홈런을 때리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격수 역사 상 최다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반발력이 감소한 2011년 이후의 통일구 시대에도 꾸준히 두 자릿수 홈런을 쳐주고 있다. 홈구장 쿄 돔이 홈런공장장인 걸 감안해야 하지만.

여담이지만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 상당히 강하다. 2010년에 기록한 31홈런의 거의 절반이 요코하마전에서 나왔다던가, 부진했던 2011년 시즌은 물론 펄펄 날았던 2012년 시즌에도 대 요코하마전 타율이 3할 후반대를 기록했다던가...

3.2. 수비, 주루

문제가 있다면 수비. 준족과 어깨로만 승부를 보는 경향이 있어 타구반응이 늦고 송구도 부정확한 편이며 결정적으로 글러브질이 매우 서툴어 포구가 불안정하다. 때문에 08년부터 유격수 레귤러로 활약하였으나, 4년 연속 최다 실책과 유격수로는 불안정한 .970대의 수비율로 가뜩이나 부실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내야의 폭탄중 하나.

10년 시즌도 별로 나아진바 없이 줄곧 에러 양산과 중요한데서 하나 둘씩 알까기+1루수 에러로 기록될만한 폭투성 송구 등으로 3년 연속 실책왕으로 군림하였다. 뿐만아니라 규정시합수를 채운 유격수 10명중 수비율 9위. 10위는 그나마도 줄곧 2루를 보다가 갑자기[2] 이 시즌부터 유격수로 컨버트 당한 주니치라키 마사히로라 논외로 쳐도, 11시즌엔 수비율, 실책 모두 12구단 탑으로 그란도시즌 달성!

해를 거듭할수록 그래도 경험치와 우월한 신체스펙이 더해져 유격수로서 가장 중요한 횡수비는 어느정도 눈뜨고 봐줄만큼 성장하였으나 종수비는 여전히 OME. 그리고 입단시부터 지적받던 런닝스로도 여전히 답이 안나오는 상황. 뭐 사카모토의 전임이였던 오카 토모히로(현 닛폰햄)도 수비는 내놓던 공격형 유격수셨으니 쿄진 유격수 수비문제야 별로 잃을게 없는 부분이긴 했다(...). 11년 시즌에 결국 수비 그동안 지적된 수비불안이 한방에 터졌고 이에 하라 감독이 사카모토를 스타팅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등의 강수를 두며 강하게 질책한 탓인지 12년 시즌에는 그동안 보여주었던 미숙한 모습에서 탈피,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준족과 강견을 살린 넓은 수비범위 덕분인지 클래식 기록상으로 보여지는 것에 비해 UZR 등 세이버메트릭스 지표 상으로는 괜찮은 성적을 보이고 있다. 주루 면에서도 2013년까지 통산 도루성공률 81.3%를 기록한 준수한 주자.

4. 에피소드

2008년 리그 우승 자축회에서 "맥주를 끼얹지 말아주세요"(원어 ビールをかけないでください)라는 문구를 걸고 나와 탄산 음료를 맥주 대신 끼얹었다.[3]

원래 왼손잡이였지만, 오른손잡이인 형의 글러브를 사용하여 야구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누군가가 떠오를텐데, 준족 강견이지만 다소 안정감이 떨어지는 수비, 화끈한 공격력 등 이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 닮은 점이 있다.

여담으로 강정호가 사카모토가 자신의 라이벌이라고 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황재균 이적과 관련하여 팀내 경쟁할 상대가 줄은 것에 대해 인터뷰어가 일본의 사카모토 하야토가 강정호와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하자, 그럼 라이벌이네요 식으로 얘기한 것.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만루홈런으로 기록했다. 오오오

2014년 시즌전에는 체조스타 타나카 리에와의 열애설이 보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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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선수의 사생활에 제약을 많이 가하는 편인 요미우리로써는 이런 사건을 저지른 니오카를 그냥 냅둘수 없었고, 시즌이 끝나자 니오카는 닛폰햄 파이터즈로 쫓겨나듯 트레이드되었다.
  • [2] 키스톤 콤비를 이루던 유격수 바타 히로카즈의 어깨부상 염려로 인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두 선수 모두 원래 포지션에서 더 잘하는 바람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 [3] 일본법에 따르면 만 20세부터 음주가 가능하다. 여기서 만 20세는 만 20세가 되는 해가 아니라 만 20세 생일이 지나야 하므로, 사카모토는 생일이 지나지 않아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 다음 시즌 리그 우승 자축회에선 그런거 없이 맥주를 잔뜩 끼얹으며 자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