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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텔리우스

last modified: 2015-01-07 14:37:46 Contributors

1.


아울리우스 비텔리우스 (69년 4월 16일~ 12월 20일)한밤중에 보다가 심장 떨어질 뻔

로마의 역대 황제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내전기 내전기 플라비우스 왕조

티베리우스 황제의 신임을 받았던 루키우스 비텔리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네로 시대에는 아프리카 속주 총독을 지냈다. 갈바에 의해서 저지 게르마니아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갈바에게 불만을 품은 라인강 군단들에 의해서 황제로 추대되는 대박이 터졌다.(물론 나중을 생각하면 오히려 저주였을지도)

부하들을 먼저 보내고 자신은 니나노 하며 느긋하게 뒤따르면서 열매만 따먹는 전형적인 윗분의 행태를 보이며 오토가 자살한 다음날 원로원의 추대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러나 내전의 상처를 수습하기는 커녕 오히려 상처를 더 벌리고 소금을 뿌리는 행태를 보인다. 오토를 따랐던 도나우 군단 병사들을 용서하기는 커녕 도나우 군단의 백인대장들을 처형하고 병사들을 크레모나시의 원형경기장 공사에 강제 투입시켰다. 덕분에 도나우 군단의 비텔리우스와 크레모나 시민들에 대한 분노만 깊어진다.

수도 로마에 돌아와서도 한 일들이라곤 근위대를 해고하고 자신의 라인강 군단 병사들로 근위대를 새로 꾸려서 해고된 근위대 병사들을 적으로 돌리고 만다. 경쟁자도 없던 탓에 마음을 푹 놓은 그는 자신의 유일한 취미인 폭식에 탐닉하며 국정을 돌보려고 하지도 않았다.(후세의 일각에선 비텔리우스의 폭식 취미때문에 그를 "로마의 돼지"라 불렀다고.)

그러나 비텔리우스에게 모욕을 당하고 증오심에 불탄 도나우 군단이 시리아 속주 총독 무키아누스를 황제로 옹립하려 하면서 비텔리우스 또한 단명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무키아누스는 유대반란 진압군의 총사령관인 베스파시아누스를 황제로 추대하고 비텔리우스 타도를 선언하면서 다시 내전이 시작된다. 무키아누스는 로마로 진격했고, 도나우 군단이 무키아누스에 앞서서 이탈리아로 쳐들어가 베드리아쿰에서 다시 전투가 벌어진다. 이번에는 도나우 군단이 승리했고 비텔리우스편의 총사령관이었던 카이키나마저 도나우 군단에 사로잡히면서 비텔리우스의 운명은 결정되고 만다.

비텔리우스는 의욕을 잃고 그저 먹는일만 하다가 12월 16일 포로 로마노에서 퇴위를 선언한다. 그러나 시민들의 항의를 받고 황궁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날 원로원이 비텔리우스의 퇴위 선언을 받아들여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궁지에 몰린 비텔리우스의 패잔병들이 베스파시아누스의 형을 살해하고 카피톨리노 언덕의 유피테르 신전을 불태우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비텔리우스는 이것을 막지도 않은채 무기력하게 있다가 12월 20일, 로마를 점령한 도나우 군단에게 사로잡혀 처형되고 티베레 강에 시체가 던져지게 된다.

69년에 단명한 세 황제 중 제일 무능한 인간으로, 그의 비극은 격에 맞지 않는 황제의 자리에 욕심을 부린 탓일지도 모른다.[1] 어쨌든 그의 죽음으로 로마의 내전은 일단락을 짓고 베스파시아누스에게 황제의 자리가 넘어간다.

2.

1과 같은 배경을 지니신 본이라 그런지 참마대성 데몬베인에 등장하는 티크로스중 한명인 베스파시아누스의 소환수중 하나로 등장하신다. 베스파시아누스의 몸통이 시커메지면서 거기에서 얼굴이 나타나는 형식. 갈바가 근접전 용도로, 오토가 원거리전 용도로 사용된 것이 작중에서 확인된 것과 달리 이 비텔리우스의 용도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다. 일단 이 얼굴에서 불을 뿜을 수 있다. 다만 베스파시아누스 자신의 부활이나, 사이크라노쉬의 결계 마술을 사용할때 필요한 것은 확실.

그야말로 안습...

재미있는것은 그 소환수의 나머지 둘은 갈바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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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을 죽이기 직전에 자신을 조롱하며 모욕하는 군단 병사들을 향해 "내가 그래도 한때는 너희의 황제였었다."라고 일갈했는데(...)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비텔리우스가 생전에 보여준 그나마 황제다웠던 유일한 모습이라고 조롱한다.(출처: 김경현 차전환 역 「타키투스의 역사」, 2011년, 한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