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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든 나이트

last modified: 2015-03-05 23:05:46 Contributors

Contents

1. 미국의 야구 선수
1.1. 개요
1.2. 2009 ~ 2010시즌: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활약
1.3. 2011 시즌: 본격 외국인 가장모드
1.4. 2012 시즌: 넥센의 명실상부한 에이스
1.5. 2013 시즌
1.6. 2014 시즌
1.7. 기타
1.8. 연도별 성적
2. NBA의 농구선수

1. 미국의 야구 선수

KBO 시절 넥센 히어로즈의 유니폼을 입은 모습.

브랜던 마이클 나이트(Brandon Michael Knight)
생년월일 1975년 10월 1일
국적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 주 옥스나드
학력 부에나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5년 드래프트 14라운드(전체 374번, TEX)
소속팀 뉴욕 양키스(2001~2002)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2003~2004)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2005)
삼성 라이온즈(2009~2010)
넥센 히어로즈(2011~2014.5.13)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0번(2009~2010)
톰 션(2008) 브랜든 나이트(2009~2010) 팀 레딩(2010)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54번(2011~2013)
이동학(2009~2010) 브랜든 나이트(2011~2013) 신재영 (2013~)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24번(2013~2014)
박정준(2011~2013) 브랜든 나이트(2013~2014.5.13) 정재복(2014~)

보유 기록
외국인 투수 역대 다승 4위 [1] | 2014 시즌까지 48승

미국 출신의 야구 선수. 포지션은 투수. 목동의 백기사, 목동예수. 삼성팬들은 그저 눈물만[2]
2012년 크보를 지배한 최강의 외국인 에이스.

1.1. 개요

2009년~2010년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였으며 2011년부터 2014년 5월 13일까지 넥센 히어로즈에서 활약했다.

한국에 처음 알려진 계기는 독립리그인 서머셋 패트리어츠[3]에서 뛰던 때인 2008 베이징 올림픽의 미국 대표팀 자격으로 출전해 한국전에 선발로 출장한 것이다. 당시 이대호에게 투런 홈런을 맞는 등 4.1이닝 8안타 6실점으로 부진했으나 그때 괜찮게 본 기억이 있어서인지 2009년 7월 삼성 라이온즈가 루넬비스 에르난데스의 대체 외국인선수로 계약했다.

기존에는 140km대 후반의 직구와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투피치 피처였지만, 2011년경 손승락에게 싱커를 전수받고 2012년부터 싱커볼러로 진화(?).

피칭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140대 중반에서 최대 150까지 끌어올리는 속구와 브레이킹볼을 주력 변화구로 삼는 파워 피쳐다. 딜리버리 역시 오버핸드로 고질적인 무릎부상이 아니더라도 제구가 그리 안정적인 편은 아니다. 2012시즌부터 장착한 싱커는 나이트를 리그를 압도하는 투수로 만들었다. 포심과 같은 구속에서 형성되지만, 우타자의 몸쪽으로 날카롭게 꺽이거나 가라앉는 싱커는 때려봐야 내야땅볼, 냅두면 스트라이크로 마구나 다름 없었다. 삼진을 잡는 결정구로 사용하는 커브도 쏠쏠한 편이다. 다만 슬라이더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이외에도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는 성실한 이닝이터로 시즌운영에 큰도움이 되는데, 재능은 뛰어나지만 들쑥날쑥한 모습을 보여주는 영건 선발투수들이 많은 히어로즈의 팀사정을 생각하면 나이트는 시즌운영의 기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팀에 잘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팬들에게도 친절하다보니 평가가 좋다. 한마디로 잘할 때는 토론토 시절의 로이 할러데이

문제는 고질적인 무릎부상과 노쇠화다. 구속으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무브먼트 자체가 밋밋해지면서 맞아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커맨드의 안정성보다 구위로 압도하는 스타일이다보니 타격이 큰편, 또한 체력적으로 점점 떨어져서 기복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나이트 본인 역시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문제점을 수정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노쇠화로 인해 발목잡히며 2014년 5월 14일 넥센에서 웨이버 공시되며 사실상 방출되었다.

1.2. 2009 ~ 2010시즌: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활약

2009년에는 윤성환과 함께 삼성의 실질적 1, 2선발 자리를 꿰차며 에이스로 취급받았다. 별명은 백기사부터 시작해서 밤느님, 밤신. 못할 때는 밤.

구단 관계자 말에 따르면 친화력도 좋고 한국 음식에도 빠르게 적응했다고 한다. 일본에서 활동할 때는 차가운 동료들과 구단의 압력 등에 괴로웠는데 대한민국에서는 동료 선수들도 친근하게 대하고 잘할 땐 같이 좋아해주고 못할 때는 위로해주고 격려해줘서 좋다고 하며, 대한민국에서 오래 활동하는 게 목표고 심지어는 대한민국에서 성공해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열심히 훈련도 하고 일부 용병들이 요구하는 특별대접 요구도 안 한다고 한다. 제일 친한 선수는 진갑용(Jin). 클럽하우스에서 같이 논다고 한다.

2009 시즌 이대호에게 가장 약했다.(3타석 이상 기준)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 이대호가 나이트로부터 시원한 홈런을 때린 바 있으며 시즌 도중에도 홈런을 자주 맞았다. 나이트 상대로 6타수 4안타 1홈런을 기록. 그렇지만 롯데 자이언츠한테 약한 건 아니라서 롯데를 상대로 져 본 적이 없다.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타자는 이도형이라고 한다. 이도형 또한 이대호와 마찬가지로 나이트 상대로 2009 시즌 6타수 4안타. 헌데 이도형은 2011년부터 백수

2009년 9월 21일자 최훈 프로야구 카툰에 기사(knight) 투구를 쓰고 나왔다. 대신 불암콩콩코믹스에선 유니폼 네임이 '밤무대'(...)

반면 2010년에는 초반에 부진하였고, 5월에 4연승을 찍으며 에이스 모드로 돌아가나...했으나 8월 4일 무릎 부상을 이유로 임의탈퇴되었다. 그리고 삼성 시절 상대한 마지막 팀에서 2010 시즌 후 무릎 치료를 받던 중인 그에게 러브 콜을 보낸다.

1.3. 2011 시즌: 본격 외국인 가장모드

주키치와 함께 2011년 윤석민상 외국인 후보[4]

미국으로 돌아가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한 후 넥센 히어로즈가 그에게 영입 제의를 했고, 넥센 히어로즈삼성 라이온즈로부터 동의를 받아 임의탈퇴가 해제되어 2011년부터 넥센 히어로즈에서 뛰게 되었다. 2011년 4월 8일 경기까지 2경기에 등판, 14⅔이닝 1실점으로 엄청나게 호투 중. 근데 1승 1패 넥센 팬들은 환호하였다.

4월 26일에 등판, 썩 좋지 않은 컨디션이었으나 정말 어찌어찌 막아냈다. 하지만 승리는 기록하지 못했다. 이 때까지의 기록은 1승 3패 ERA 2.27로 넥센의 1선발급 활약을 보여줬지만 승운이 따르질 못하는 상황.

5월엔 8일 한화전, 15일 LG전에서 시원하게 털렸지만 그 후 꾸준하게 잘 던져서 넥센의 제 1선발 노릇을 톡톡히 하였다. 근데 승을 거의 못 먹었다. 6월 12일 현재 3점대 방어율임에도 불구하고 넥센의 타선이 2011시즌 너무나도 빈약해 고작 2승 6패에 그쳤다.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한 선발 투수들 중에서 3승 투수도 한 명도 없다는 걸 봤을땐 승운이 지독하게 없었다.[5] 못 던지는 날은 얄짤없이 패전이고, 잘 던지는 날은 노 디시전(…).

후반으로 가면서 무릎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탓인지[6] 많은 이닝을 소화하지 못한 채 골골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1년 넥센의 선발진이 초토화된 상황이라, 어찌됐든 꾸준히 선발로 나와주는 나이트가 팀 내 공헌도가 제일 높은 선발이라는 안습 상황이 만들어졌다.

2011시즌 결국 7승 15패시즌 최다패 투수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러나 시즌 내내 특유의 성실함과 건강함을 앞세워 로테이션을 한 번도 거르지 않으며 리그 5위에 해당하는 172.1이닝을 기록해 이닝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넥센 투수들 중 유일하게 규정 이닝을 채운 투수로 자리매김했고[7], 그 실력을 인정받아 2012년에도 넥센과 재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 외에 좀 유별난 경기를 꼽자면, 9월 15일 정전으로 인해 선발로 나오던 나이트의 컨디션 조절이 우려되던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7이닝 동안 109개를 던져 5피안타 1볼넷 6삼진 1실점(1자책)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챙긴 것. 이 현상을 두고 이런 만화가 나왔다.

1.4. 2012 시즌: 넥센의 명실상부한 에이스

이전까지의 부진은 모두 털어내고 2012 시즌 최강 외국인 에이스로 군림하였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을 완전히 털어낸 것에 더해 2011년 전지훈련지에서 손승락에게 싱커를 전수받았는데, 이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키면서 싱커볼러로 재탄생한 것. 덕분에 탈삼진 개수는 2011년에 비해 줄었지만 땅볼 유도율이 높아졌고, 무엇보다도 방어율이 2점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아쉽게도 시즌 MVP는 팀내 동료인 박병호에게 밀렸는데 정작 문제는 골든글러브 수상에서 터졌다. 승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부문에서 나이트에 뒤쳐지는 장원삼에게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골글에서 밀려버린것. 그런데 아이러니 한 점은 바로 이 외국인 차별정서 덕에 다음해에는 넥센이 수혜자가 되버리고 역시 한참 우월한 성적을 찍은 용병이 골글에서 밀려버리게 된다(...)

자세한 활약은 브랜든 나이트/2012시즌 항목 참고.

1.5. 2013 시즌


시즌 초반 송신영 트레이드로 24번을 쓰던 박정준이 NC로 건너가게 되면서 미국, 일본에서 쓰던 등번호인 24번을 다시 달게 되었다.

1.6. 2014 시즌

2013 시즌 종료 후 거취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전[8]도 있었으나 앤디 밴 헤켄과 함께 일찌감치 재계약을 맺었다. ###
이로써 한국에서만 6시즌째 선수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는 다니엘 리오스와 같은 기간의 투수 최장기록이며, 용병 전체로 확대해도 제이 데이비스 다음으로 긴 기록이다. 아예 본인은 선수의 마지막 커리어를 KBO에서 마무리하려고 마음을 굳혔고, 인터뷰에서도 번번히 넥센의 투수 코치를 하고 싶다며 의견을 피력하였다.

4월 6일에 선발등판해서 지난 첫등판 때와는 달리 7이닝 2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지만 팀은 이재학을 공략하지 못했고 9회에 손승락이 시원하게 불을 지르며 팀은 지고 말았다.

4월 12일에 선발등판해서 5와 2/3이닝 사사구 4개 3삼진 1자책점의 준수한 투구 내용을 보이고, 팀 타선이 홈런 3방을 터트리는 등 6점의 득점 지원을 받아 2014년 첫 승리를 기록했다. 다음 등판은 유리하게 가져갔던 롯데 자이언츠전.

4월 23일 롯데 자이언츠전에는 4이닝동안 피안타 8개 3볼넷을 내주고 8실점 했다. 로나쌩 클럽이였던 지난때를 생각해볼수 없는정도의 처참한 성적.

4월 29일 두산 베어스전에는 4와 1/3 이닝동안 피안타 6개, 볼넷 5개,사구 1개를 내주고 2실점했다. 꾸역꾸역 막았다 볼수 있지만 2경기 연속 5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강판되었다.

5월 6일 NC 다이노스전에는 4와 1/3이닝동안 11개의 피안타를 맞으며 6실점. 피안타율 5할을 기록하며 장렬하게 퐈이야!

그 후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노쇠화의 영향 때문인지, 당시 나이트의 세부기록은 용병 중 최하위권에 속했다. 나이트와 비슷한 ERA, FIP을 기록하던 용병 투수는 케일럽 클레이가 유일했는데 나이트의 BABIP이 더 낮았다(...). 정상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돌고 있는 선수 중 나이트와 비슷한 성적을 보였던 건 봄 타는 송승준정도.

그렇다고 운이 없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NC 다이노스전 이전의 FIP6.98, BABIP0.288로 FIP은 ERA보다 훨씬 높았고 BABIP은 리그 평균(0.300)보다 낮은 축에 속했다. NC 다이노스전 이전의 잔루율 역시 0.832로 리그에서 굉장히 운 좋은 투수였는데도 성적이 그랬다.

장점이었던 제구력이 엉망인 게 원인일지도 모른다. 9이닝당 볼넷 개수는 6.750개 이며 정상적인 선발 로테이션을 돌고 있는 투수 중 2위(1위는 7.615개의 유창식). 허나 NC 다이노스전에서는 제구가 되는 공으로도 그냥 주구장창 얻어터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많은 혀갤러넥센 팬들이 불안해했다. 노쇠화로 인해 구위가 떨어져 프로에서 타자들을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온 듯. 다시 말하자면 나이트의 나이는 39세로, 한국 나이를 치면 40세다. 노쇠화가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나이다.

결국 5월 14일자로 웨이버 공시되었다. 한때 넥센의 마운드의 기둥이었기 때문에 많은 팬들이 아쉬워했지만, 성적이 우선순위인 프로의 세계인지라 구단의 행보도 이해가 간다는 의견도 많았다. 구단으로서도 스프링캠프 때부터 하락세를 보였던 나이트를 5월까지 기회를 주고 웨이버 공시 후 잔여 연봉도 모두 지급하기로 하는 등 예우는 다했다. 기사 은퇴식이나 투수코치 부임을 기대하는 팬들도 있지만 나이트가 현역으로 뛰고 싶다는 의사가 강해서 언제 성사될지는 미지수. 나이트는 퇴단이 결정된 날 "넥센이 내 퇴단으로 한층 발전하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며 동시에 "삼성에서 버려졌던 내게 다시 기회를 준 넥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아...

야구 프로그램인 사사구에 따르면 은퇴 이후 모 구단측에서 코치제의가 들어갔다고 한다.관련 글

그리고 6월 28일 자신의 트위터로 SK 와이번스에 스카우터 자격으로 간다고 밝혔다. SK 외인 선수진의 막장 행보를 본다면 자신을 추천하는게 최선일듯 단기 계약으로 14시즌 후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여기에는 뒷얘기가 있는데, 자세한 건 기사 참조.

1.7. 기타


네 아이의 아버지다. 아들 셋과 막내딸이 있는데, 2013년에 막내딸이 태어나면서 넥센 구단 측에서는 가정적인 나이트를 배려하여 열흘간의 출산휴가를 내주었다고 한다. 기사의 베댓 중 '나이트는 이름답게 밤에도 강했군'을 한번 펼쳐서 읽어보면 재미있을듯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 단장이 선수 목록을 살펴보는 장면에서 잠깐 등장한다. 나이트 외에도 몇몇 KBO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 나온다.
나이트.png
[PNG image (Unknown)]


1.8. 연도별 성적[9]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9 삼성 라이온즈 11 60⅔ 6 2 0 0 3.56 52 28 51
2010 21 83⅓ 6 5 0 0 4.54 87 42 66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 ERA 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11 넥센 히어로즈 30 172⅓
(5위)
7 15
(1위)
0 0 4.70 169 98 115
2012 30 208⅔
(1위)
16
(2위)
4 0 0 2.20
(1위)
180 60 102
2013 30 172⅔ 12 10 0 0 4.43 192 93 129
2014 6 29⅓ 1 2 0 0 5.52 36 23 19
통산(6시즌) 128 727 48 38 0 0 3.84 716 360 482

2. NBA의 농구선수

Brandon_Knight_suns.jpg
[JPG image (Unknown)]

피닉스 선즈 No.3
브랜던 나이트(Brandon Knight)
생년월일 1991년 12월 2일생
191cm(6 ft 3 in)
체중 86kg(189 lb)
출신학교 켄터키 대학교
포지션 가드
드래프트 2011년 1라운드 8순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지명
역대 소속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2011~2013)
밀워키 벅스(2013~2015)
피닉스 선즈(2015~)
등번호 7번(디트로이트)
11번(밀워키)
3번(피닉스)
수상내역 NBA All-Rookie First Tea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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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디트로이트 시절

NBA의 가드. 켄터키대학에서 1학년을 마치고 NBA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입성했다. 듀얼가드로서 나쁘지 않은 활약은 보여주고 있으나 디트로이트가 2000년대 후반 이후부터는 약체팀이기도 하고 리그에 워낙 괴물같은 가드들이 날뛰고 있다보니 그렇게 주목받고 있지는 않다. 디트로이트는 12-13 시즌이 끝나고 나이트를 키우는걸 포기하고 브랜든 제닝스와 트레이드시키면서 밀워키 벅스로 떠났다. 밀워키에 왔더니 팀이 막장이 되서 얼떨결에 거지 왕초에이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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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벅스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오프 진출도 바라볼 수 있게 되며 중심 선수로 자리잡는 듯 했으나 2015년 트레이드 데드라인 기간에 뜬금없이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 되었다.나이트는 행복할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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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열심히 하려다 굴욕씬을 찍는 모습을 종종 보여줘서 그런지 불쌍한 애라는 기믹을 얻은 듯.사실 실력은 나쁜 편은 아니다. 올스타 루키 퍼스트팀에도 들었고, 드래프트 상위픽이었다. 그러나 캐릭터는 안습 위 사진은 LA 클리퍼스 소속 센터 디안드레 조던의 덩크를 막아보려다 나가떨어진 모습.나이트가 죽었슴다 메타 월드 피스에게 주먹질을 당하기도 했다.

사실 레전드 센터 패트릭 유잉이나 블럭슛만큼은 리그 최상위권이었던 숀 브래들리의 경우같이, 굴욕장면이 많다는 건 그만큼 열심히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샤킬 오닐의 경우 골밑존재감은 역대 최강급이지만 굴욕장면을 피하기 위해 블럭하기 힘든 덩크의 경우 시도조차 안하고 피해버린다는 비판을 받았다. 본인은 "내 위로 덩크한건 데릭 콜먼 딱 한명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손도 안 들어올리는 등 블럭시도도 안하는 경우가 대부분. 그런점에서 정말 택도없는 상대한테도 쫄지않고 덤벼드는 나이트는 정말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youtube(wj1--j4fi4U)
그의 개고생 모음. 눈물이 앞을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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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5위 게리 레스&앤디 밴 헤켄 43승, 3위 맷 랜들 49승, 2위 더스틴 니퍼트 52승, 1위 다니엘 리오스 90승하지만 약쟁이으로, 공교롭게도 모두 두산 베어스넥센 히어로즈 출신이다.
  • [2] 물론 2011년 후반에 활약했던 덕 매티스저스틴 저마노도 괜찮았고, 2012년 미치 탈보트브라이언 고든도 나름대로 잘 했기 때문에 삼성팬들은 크게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트가 잘하면 격려하는 훈훈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나이트를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내보냈기 때문에 전 소속 구단인 삼성의 팬들이 모두 아까워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 [3] 미국 독립리그인 '아틀란틱 리그' 소속팀. 넥센에서 같이 선수 생활을 한 앤디 밴 헤켄도 한때 여기 소속이었다.
  • [4] 평균자책은 다소 높았으나 일단 선발 로테이션을 단 1차례도 거르지 않은 팀 내 유일한 이닝이터였고, 그가 등판할 때 호투에도 팀 내 타선의 지원이 유독 빈약했던 것도 감안해야 한다. 물론 잘 던지다가 볼넷을 남발하는 점은 다소 흠이였지만.
  • [5] 선발, 계투를 모두 소화한 고원준이나 코리는 제외.
  • [6] 해설자들도 이를 수 차례 지적하곤 했다.
  • [7]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이닝이터를 찾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기아 타이거즈가 아킬리노 로페즈의 후반기 부진을 보고도 재계약 쪽에 무게를 두는 이유 중 하나가 그만한 이닝이터를 찾기 어렵기 때문. 나이트 다음으로 넥센에서 2011년에 많은 이닝을 던진 투수는 문성현이었고, 130이닝을 살짝 넘었다.
  • [8] 2013시즌 내내 기복 있는 롤러코스터 피칭과 불혹에 접어드는 나이 때문에 재계약을 포기해야 된다는 여론과 비록 2013년의 기록은 좋지 못하지만 나이트만한 용병 구하기도 쉽지 않다는 여론이 대립했다.
  • [9] 한국에서만의 기록만 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