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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오리올스

last modified: 2015-12-31 21:51:01 Contributors

MLB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소속구단
yankees.png
[PNG image (Unknown)]
뉴욕 양키스
(New York Yankees)
redsox.png
[PNG image (Unknown)]
보스턴 레드삭스
(Boston Red S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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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탬파베이 레이스
(Tampa Bay Rays)
orioles2.png
[PNG image (Unknown)]
볼티모어 오리올스
(Baltimore Orioles)
bluejays.png
[PNG image (Unknown)]
토론토 블루제이스
(Toronto Blue Jays)

모자 로고[1] 구단 로고
볼티모어 오리올스
Baltimore Orioles
창단 1894년
연고지 메릴랜드볼티모어
현재 연고지로 이전 1954년
구단 연고지 변천 밀워키 (1894~1901)
세인트루이스 (1902~1953)
볼티모어 (1954~)
구단명 변천 밀워키 브루어스 (Milwaukee Brewers) (1894~1901)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St. Louis Browns) (1902~1953)
볼티모어 오리올스 (Baltimore Orioles) (1954~)
홈 구장 로이드 스트리트 그라운드 (Lloyd Street Grounds) (1901)
스포츠맨스 파크 (Sportsman's Park) (1902~1953)
메모리얼 스타디움 (Memorial Stadium) (1954~1991)
캠든 야드 (Oriole Park at Camden Yards)
(1992~)
구단주 피터 앙헬로스 (Peter Angelos)[2]
사장 공석
단장 댄 듀켓 (Dan Duquette)[3]
감독 벅 쇼월터 (Buck Showalter)
월드 시리즈 우승
(3회)
1966, 1970, 1983
아메리칸리그 우승
(7회)
1944, 1966, 1969, 1970, 1971, 1979, 1983
지구 우승
(9회)
1969, 1970, 1971, 1973, 1974, 1979, 1983, 1997, 2014
와일드카드 획득
(2회)
1996, 2012
홈페이지
유니폼
원정 얼터네이트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창단부터 1980년대까지
2.2. 나름 잘 나갔던 1990년대
2.3. 시궁창의 2000년대
2.4. 2010 시즌
2.5. 2011 시즌
2.6. 2012 시즌
2.7. 2013 시즌
2.8. 2014 시즌
3. 이모저모
3.1. 아시아와의 인연
3.2. 홈구장
3.3. 영구결번
4.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4.1. 트리플 A
4.2. 더블 A
4.3. 싱글 A
5. 선수 목록

1. 개요

MLB의 프로야구단.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볼티모어. 그리고 AL 동부지구에 속해서 슬픈 본격 2000년대 호구팀. 약칭 O's로 불린다. 어느 팀의 별명을 따라하는 듯 하다. 따라쟁이들.


볼티모어로 옮긴 이후의 성적은 대단히 좋았지만 98년부터 팀 성적이 추락하여 역시 국내 팬들에겐 약팀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다. 2012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을 진출하며 약팀의 이미지를 떨쳐내는 중.

2. 역사

2.1. 창단부터 1980년대까지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St. Louis Browns
(1902~1953)
과거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시절 로고.

19세기 후반 밀워키 브루어스[4]로 시작했지만 20세기가 시작되고 난 직후 세인트 루이스로 연고지를 이적하여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가 된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에는 먼저 자리를 잡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있어서 인기 면에서는 그저 그랬던 팀이었다. 1944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함께 세인트루이스 팀들간의 월드시리즈덕아웃 시리즈가 펼쳤지만 아쉽게도 2승4패로 패퇴했다. 월드시리즈가 펼쳐진 경기장은 당시 두 구단이 공유했던 스포츠맨 파크(부시스타디움 I)였는데, 시리즈 6경기 모두가 여기서 열렸다. 그리고 사첼 페이지가 말년에 뛰었던 구단으로도 유명하다.

현재의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된 것은 1954년부터이다.[5]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된 후부터 적절한 성적과 유망주 육성으로 호성적을 거두기 시작하며 거포 프랭크 로빈슨과 전설의 공수겸장 3루수 브룩스 로빈슨, 오리올스의 에이스 짐 파머의 등장과 1970~80년대에 감독으로 역임한 칼 립켄 시니어[6]의 신들린 유망주 육성능력으로 60년대 중반~80년대 초반 리그내의 최강팀 중 하나로 등극한다. 83년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다음해부터 왠지 모르게 성적이 죽을쑤기 시작한다. 1988년에는 시즌 개막후 무려 21연패를 기록하면서 최종기록 107패를 기록,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 그런데 15년 뒤에 꼴랑이가 무려 119패 승률 .265를 기록하며 이 치욕스런 기록을 깼다. 칼 립켄 주니어가 MVP를 달성했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 할수 있을듯 하다.

2.2. 나름 잘 나갔던 1990년대

1991 시즌 오프 후 오리올즈는 약 40년 동안 영광과 오욕(...)을 함께한 메모리얼 스타티움을 뒤로 하고 새 구장인 캠든 야드[7] 로 옮기게 된다. 이후 1993년 터 안젤로스톰 클랜시가 주축이 된 투자그룹이 오리올즈를 인수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라파엘 팔메이로의 영입, 칼 립켄 주니어의 꾸준한 활약, 젊은 에이스 마이크 무시나의 등장으로 당시의 강팀인 뉴욕 양키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견줄만큼의 건실한 팀을 구축하게 되고 다시금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1990년대 후반 로베르토 알로마, 라파엘 팔메이로 등의 주축 선수들을 FA로 내보내며 다시 밑도 끝도 없는 시궁창으로 빠지기 시작한다(...). 00년대 초반 다시 의욕적으로 팀을 밀어붙이게 되지만 새로 들어온 선수들은 어김없는 먹튀였으며, 유망주들도 생각되로 되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팀 마운드의 기둥인 마이크 무시나가 라이벌 팀인 뉴욕 양키스로 이적[8]하고 칼 립켄 주니어도 은퇴를 하는 등 점점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다.

이 당시 팀을 엿먹인 결정타이자 각주에도 언급된 피터 안젤로스의 비상식적인 타자사랑이 빚은 참극은 다름아닌 인디언스,화이트삭스를 거쳤던 외야 거포 알버트 벨의 영입. 인디언스에서 맹활약을 하고 나서 화이트삭스와 5년 5500만 달러의 당시 FA 최고가 계약을 맺었던 알버트 벨의 계약조건에는 계약기간 내에 반드시 리그 최고연봉자가 되어야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알버트 벨이 2번째 시즌을 마친 1998년 오프시즌 예상치못했던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6년 7500만 달러의 계약이 터졌다. 이 때문에 알버트 벨은 조항에 따라 자신의 연봉을 올릴 것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한 화이트삭스는 그를 FA로 풀어준다. 그리고 당시 DTD중이던 오리올스의 피터 안젤로스는 또 거포 수집병이 도져 FA 최고가격이었던 5년 6500만 달러에 벨을 영입하지만... 채 2년 뛰고 그대로 배깔고 드러누워 버렸다. 부상 핑계로 시즌을 뛰지도 않으면서 로스터엔 남아있는채 생떼를 부린 벨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오리올스는 그가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은 2001~2003년간 총액 370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지불한 오리올스는 급격하게 약체팀으로 무너진다.

2.3. 시궁창의 2000년대

알버트 벨 이외에도 다시 영입한 라파엘 팔메이로는 약물 스캔들로 시궁창이 되었고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에 미겔 테하다를 비롯한 투/타의 주축 선수들이 거의 참가하게 된다.[9] 참가한 선수들은 거의 모두가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2006년 성적도 역시 시궁창으로 마감하게 된다. 이로써 볼티모어는 그야말로 안되는 팀은 뭘해도 안 된다는 것의 정석을 보여주게 되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지구 4위를 9번이나 했는데, 이건 그당시 탬파베이가 워낙 못해서 그렇지 이 팀이 잘해서가 아니었다.

2008년 탬파베이가 갑툭튀하면서 이제는 별수없이 5위로 떨어졌다. 2009년 최종 성적은 64승 98패, 울자.

그 와중에도 새 구단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해체될 위기에 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워싱턴 D.C. 이전을 자신들의 마켓이라는 이유로 결사반대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MLB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구단 이기주의라고 까이기도 했다. 결국은 워싱턴 내셔널스의 TV 중계권을 자기가 대주주로 있는 볼티모어-워싱턴-버지니아지역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국인 MASN이 꿀꺽하는 조건으로 워싱턴의 이전을 승인.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입단한 선수들이 그럭저럭 제 몫을 하고있고 유망주도 닉 마카키스, 맷 위터스같은 대형 유망주들이 포텐셜이 만개하면서 팀의 힘을 실어주고 있기에 마냥 절망적이지는 않다. 확실한 원투펀치를 이룰수 있는 투수가 있다면 1970~80년대의 넘사벽 시절까지는 부족하지만 1990년대 초중반의 중흥기는 다시 이룰 수도 있다는게 주변의 평. 문제는 구단주인 안젤로스가 거포수집에만 눈이 뒤집힌 인간인지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2.4. 2010 시즌

2010 시즌, 볼티모어는 제대로 망한 시즌을 보냈다. AL 동부라는 저주받은 지구[10]의 탓도 있지만 B급 타자로 도배한 타선은 침묵 행진을 했으며 첫 두 경기를 깔끔하게 블론 처리한 마무리 이크 곤잘레스는 쾌속 DL행을 확정지었다. 그렇다고 다른 불펜이 잘 하냐면 거의 망했다...싶은 수준.

후반기에는 결국 감독을 교체, 쇼월터가 감독으로 들어오면서 팀의 분위기가 일신, 후반기에 크게 떠오를 수 있었다. 물론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꼴찌란 건 변하지 않았다.[11]

결국 비싼 돈주고 사온 에이스 밀우드는 패왕에 등극하고 말았고(4승 16패) 그나마 틸먼을 제외한 매티스, 베르거슨, 아리에타같은 영건들은 후반기에 그나마 살아났고, 기존 에이스 거스리도 나름 좋은 활약으로 시즌을 마무리지었다.

2.5. 2011 시즌

2011 시즌에도 유력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꼴찌후보였고, 한국에는 팬도 별로 없다.[12] 차기 시즌 보강은 J.J. 하디 트레이드, 마무리 빈 그렉 영입, 우에하라 고지 재계약, 지명타자 블라디미르 게레로영입, 릭 리, 마크 레이놀즈 영입.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보다 돈도 없고, 토론토 블루제이스보다 파워, 투수력 모두 부족하고, 탬파베이 레이스보다 유망주도 없다. 한 번 더 울자. 시즌 개막 시리즈에서 갑자기 연승을 했지만, 결국 DTD. 다만 예년에 비해서 초반부터 5할 승률에 근접한 성적을 내 주목을 하려고 하지만... 결국 69승 93패로 가볍게 지구 꼴찌에 머물렀고 시즌 중후반에 릭 리우에하라 고지, 이크 곤잘레스를 모두 트레이드로 내보냈다.[13] 벅 쇼월터 부임 직후 좋아졌던 투수진이 다시 꼴아박은 게 제일 큰 패인. 몇몇 사람들은 쇼월터를 자르고 다시 감독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했을 정도.

하지만 정작 이들이 나간 9월 들어 고추가루부대로 변신하면서 여럿에게 고추를 뿌렸다.(...) 보스턴에게 5승2패를 해서 DTD 와일드카드에서 탈락하는데 영향을 준다거나 벌괴의 25승을 저지한다던가... 결정적으로 시즌 최종전 레드삭스와의 홈경기에서 9회말 2아웃부터 조나단 파펠본을 두들겨서 역전 끝내기 승리를 거두며 에반 롱고리아가 끝내기 홈런을 친 레이스가 와일드카드를 차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탬파네 조 매든 감독이 오리올스 선수단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 항목을 참조.

3. 이모저모

3.1. 아시아와의 인연

대구 상원고의 前 투수 김성민을 스카웃하려다가 출입금지를 먹은구단이 이 구단이기도 하다.

단장인 댄 듀켓이 친아시아파이다보니 볼티모어는 유독(?) 아시아 선수 중에서 투수를 영입하려 많은 공을 들였던 팀이다. 하지만 한국인 선수가 볼티모어에 입단한 사례는 한 어린이가 오기 전까지 없었다. 그리고 이 어린이 덕분에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전망이다

보스턴 레드삭스우에하라 고지의 MLB 데뷔 팀이 볼티모어였기도 하며 현재 볼티모어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하는 타이완 출신 좌완투수 천웨이인도 있다. 다만 아시아 투수들에게 항상 재미를 보지 못한 적도 있는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출신의 와다 츠요시의 경우 2년 계약을 맺고 나서 바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볼티모어가 큰 손해를 본 채 시카고 컵스로 이적하면서 볼티모어가 새로운 선수와 계약을 할 때 메디컬 테스트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윤석민과 3년 575만불 계약을 맺었으나 메이저도 아닌 트리플A에서 영 좋지 못한 성적을 보여주어 방출대기 조치를 취했다.

2011 시즌을 마치고 FA를 선언하여 해외 진출을 타진했던 정대현류현진보다도 먼저 KBO 사상 첫 메이저리그 직행이라는 선례를 만들 뻔 했던 팀이 볼티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메디컬 테스트에서 떨어지면서 해외 진출이 무산되기도 했다. 2013 시즌 후에는 또 다른 한국인 선수 윤석민이 볼티모어의 문을 두드리면서 과연 볼티모어에서 첫 한국인 투수를 데려올지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데려왔다 망했어요. 이보다 앞서 동국대를 중퇴한 투수 윤정현과 계약했는데 계약금이 불과 3만 달러여서 사실상 로또를 긁은 것과 마찬가지. 2015년 말에는 FA 자격을 얻고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김현수를 영입하였다.

한국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 중에서 여기에 뛰었던 선수들이 좀 있다. 루크 스캇을 비롯하여 펠릭스 피에,레다메스 리즈,관광객브라이언 배스,조쉬 벨,하이로 어센시오 등등.

3.2. 홈구장


홈구장은 앞서 소개한 오리올 파크 앳 캠든 야드(Oriole Park at Camden Yards)로 1992년 개장. 팬들에게는 뒤에 붙은 지명인 캠든 야드(Camden Yards)로 더 친숙한데, 이는 메릴랜드 주의 지역철도인 메릴랜드 통근철도(MARC)의 통근열차(커뮤터 레일)가 운행되는 시발역인 캠든 역 일대를 가리킨다.

캠든 야드는 1990년대 메이저리그 신축구장 붐을 일으키고 새로운 야구장 건축양식의 전형을 만들어낸 구장이다. 이전까지 원만히 타원을 그리는 외야펜스 모양에서 벗어나 옛날 미국 야구장에서 볼 수 있었던 여러 각도로 쪼개진 기이한 펜스모양을 다시 채택했다. 그리고 고풍스러운 구장 외관과 시가지 주변과 어울리는 구장배치는 후대에 새로 지어지는 야구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측 외야 밖에 서 있는 B&O(볼티모어&오하이오 철도회사) 웨어하우스가 인상적인데, 이 건물은 1905년에 준공된 문화재급 건물이기도 하다. 이 건물 넘어 캠든 역이 위치해 있다.

즐길 수 있는 먹거리로 메릴랜드의 대표적 음식 크랩 케이크, 팀 레전드 출신 북 파윌이 연 프랜차이즈 BBQ 전문점 '북의 BBQ'를 매장 내에 열어 직접 음식을 만들며, 원하면 사인도 해준다.

3.3. 영구결번

2012년에 캠든 야드 개장 20주년을 기념하여, 캠든 야드 광장에 아래 6명의 영구결번 선수들의 동상을 세우고 있다. 일명 "오리올스 레전드 기념 시리즈". (Orioles Legends Celebration Series)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영구결번
4 5 8 20
얼 위버 브룩스 로빈슨 칼 립켄 주니어 프랭크 로빈슨
22 33 42
짐 파머 에디 머레이 재키 로빈슨
4. 얼 위버(Earl Weaver) : 1970년대 팀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으로 명예의 전당에도 이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들어갔다. 통산 1480승을 달성.

5. 브룩스 로빈슨(Brooks Robinson) : 통산 2,848안타를 기록할 정도로 공격력도 훌륭한 편이었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사기적인 수비 실력. 도저히 그가 지키는 3루 쪽은 뚫을 수 없다는 평까지 나올 정도였다. 볼티모어에서만 23시즌[14]을 뛰며 1970년대 팀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16번의 골드글러브와 18번의 올스타에 선정된 팀 최고의 스타.

8. 칼 립켄 주니어(Cal Ripken, Jr.) : 공격형 유격수의 시초로 통산 431홈런에 1695타점, 3184안타를 기록했고, 8번의 실버슬러거와 두 차례 리그 MVP, 19번의 올스타에 선정된 당대 최고의 스타. 그러나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유격수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기록인 2,632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볼티모어 뿐만 아니라 전 미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슈퍼스타.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0. 프랭크 로빈슨(Frank Robinson) : 신시내티 레즈에서 버림받는 트레이드를 당해 옮겨왔지만, 여기서 더 맹활약하면서 통산 586홈런을 달성한 한 시대를 풍미한 강타자. 로빈슨의 합류 이후, 팀은 최고 전성기를 열었고, 본인은 양대리그에서 MVP를 수상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여담으로 선수생활 막바지 선수 겸 감독을 뛰면서 MLB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되기도 했다. 물론 국내에서는 김선우를 차별대우한 꼴통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22. 짐 파머(Jim Palmer) : 1970년대 야구판의 섹시 스타이자, 볼티모어가 가진 최고의 에이스. 볼티모어에서만 20년을 뛰면서 팀에게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겨줬고, 선수 자신은 세 차례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1990년 92.6%라는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

33. 에디 머레이(Eddie Murray) : 행크 아론, 윌리 메이스와 함께 500홈런과 3000안타를 동시에 달성한 선수. 스위치히터로서 역사상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선수이기도 하다.

42.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 전 구단 영구 결번.

4.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4.1. 트리플 A

노퍽 타이즈
Norfolk Tides
창단 1961년
계약년도 2007년
소속 리그/지구 인터내셔널 리그/남부지구
연고지 버지니아 주 노퍽
홈구장 하버 파크

4.2. 더블 A

보위 베이삭스
Bowie Baysox
창단 1993년
계약년도 1993년
소속 리그/지구 이스턴 리그/서부지구
연고지 메릴랜드 주 보위
홈구장 프린스 조지 스타디움

4.3. 싱글 A

프레데릭 키즈
Frederick Keys
창단 1989년
계약년도 1989년
소속 리그/지구 캐롤라이나 리그/북부지구
연고지 메릴랜드 주 프레더릭
홈구장 해리 그루브 스타디움

델마바 쇼어버즈
Delmarva Shorebirds
창단 1991년
계약년도 1997년
소속 리그/지구 사우스 애틀랜틱 리그/북부지구
연고지 메릴랜드 주 솔즈베리
홈구장 아서 W.퍼듀 스타디움

애버딘 아이언버즈
Aberdeen IronBirds
창단 1977년
계약년도 2002년
소속 리그/지구 뉴욕 펜 리그/맥나마라 지구
연고지 메릴랜드 주 애버딘
홈구장 립켄 스타디움

5. 선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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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사용하던 로고인 카툰 버드를 리모델링해서 쓰고 있다. 흰색 바탕의 카툰 버드를 홈경기에서 사용하며 검정색 바탕의 카툰버드는 원정경기에서 사용한다. 이거 말고 O's 모자도 사용중이다.
  • [2] 거포에 환장한 타력덕후로 유명하다.
  • [3] 공식 직함은 'Executive Vice President, Baseball Operations'.
  • [4] 현재의 밀워키 브루어스와는 무관하다. 현재의 밀워키 브루어스는 1969년 시애틀 파일러츠로 창단된 팀이었다.
  • [5] 여담이지만 베이브 루스가 처음 프로입단을 한 구단도 볼티모어 오리올스지만 현재의 오리올스와는 관계없다.
  • [6] 칼 립켄 주니어의 아버지
  • [7] 원래는 이자리에 미식축구 겸용으로 7만석짜리 돔경기장을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돈먹는 하마인 돔경기장 건설비용문제로 건설이 질질 끌리다가 백지화 되면서 오리올스는 1979년 구단주가 교체되고 홈구장을 같이쓰던 NFL 볼티모어 콜츠가 1983년 인디애나폴리스로 야반도주하고 만다. 결국 그 자리는 야구장 캠든 야드가 세워진다.
  • [8] 이때 구단주 피터 안젤로스가 했던 유명한 말이... 투수에게 1천만 달러를 주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이때가 2000년 겨울이었고 당시만 해도 천만달러는 초특급 선수만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볼티모어는 지금도 투수 1명에게 천만달러를 준 적이 없다. 그 대가로 볼티모어는 2000년대 아메리칸리그 최악의 투수진하면 손꼽힌다.
  • [9] 뭐 선수들을 탓할 필요도 없는 게 2년전인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그리스 계라는 이유만으로 당시 트리플A에서 메이저 콜업 예정이었던 닉 마카키스(할아버지가 그리스 출신이다)등 자기 팀 마이너리그에 있던 그리스 계 선수 두명을 그리스 대표로 참가시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구단주인 피터 안젤로스가 자기가 그리스 계라고 당시 급조된 그리스 야구 대표팀에 소요되는 비용을 전부 다 대줬다. 유니폼 값, 훈련비용 등등(...)
  • [10] 영원한 톱클래스 양키스와 라이벌 레드삭스, 신흥 강호로 떠오른 탬파베이, 그리고 못해도 승률 5할 안팎 혹은 4위는 찍는 토론토...
  • [11] 벅 쇼월터가 오기 전까지 32승 73패. 팀 승률이 .300에 걸쳐 있었다. 쇼월터가 오면서 34승 23패로 급반전. 그나마 4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 [12] 이는 국내 MLB관련 매장에서 쉽게(....)확인 할 수 있다. 볼티모어 유니폼이나 모자는 언제든지 구입 가능하다.
  • [13] 우에하라를 레인저스로 보내고 얻어온 선수가 토미 헌터, 그리고 2013년 53홈런의 주인공 크리스 데이비스.
  • [14] 보스턴 레드삭스칼 야스트렘스키와 함께 원클럽맨 선수로서 가장 오래 뛴 기록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