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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last modified: 2015-03-15 15:46:16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일생
2.1. 유소년기
2.2. 행위예술가로
2.3. 비디오 아트
2.4. 결혼
3. 미술관
4. 여담

1. 개요

대한민국 출신의 미국 예술가. 1932년 7월 20일 ~ 2006년 1월 29일 대한민국 서울 출신.

그 특유의 파격적인 예술세계로 유명하다. 지금은 프 보스텔과 더불어 비디오아트의 세계를 개척한 누구도 부정 못할 예술가지만, 뉴욕에 막 도착한 시절에는 굉장히 난해한 퍼포먼스 작가였다. 그래서 그의 파란만장한 예술 인생 때문에 B급 예술가의 예술이 주류 예술이 되어버린 사례로 백남준을 꼽는 경우도 많다.

자신과 비슷한 예술가와 결혼했다고 한다. 부인은 일본인인 구보타 시게코(久保田成子). 구보타 시게코는 처음 봤을 때부터 그에게 매료되어 자신의 남자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결국 결혼.

2. 일생

2.1. 유소년기

어렸을 적 백남준은 매우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집에는 피아노나 전축은 물론 당시에 서울에 딱 두대 밖에 없었던 캐딜락도 있었고, 해방 전에 유치원(애국유치원)에 다녔으며 한국전쟁의 그 아비규환 속에서도 파인애플을 먹을 정도의 부잣집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돈은 물 쓰듯 쓰는 거다'라고 했다고 한다.(...) 조부 백윤수는 청나라 비단을 독점 판매했던 거부로, 종로 5가와 동대문 일대의 포목상 절반이 그의 것이었고 국상 때 만조백관의 상복과 제복을 일체 도맡았을 정도로 섬유업계의 막강한 실력자였다. 후에 그는 직물, 대부업, 의약 회사 등을 세웠고, 재산은 한성은행 자본금의 3배에 달했다. 백남준은 당시 상류층만 다니던 수송국민학교와 경기보통중학교를 다녔는데 그 시절에(해방 전) 학교에는 풀장과 영사기가 있어서 학부모였던 당시 대한극장 사장이 학교에서 직접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경기보통중 음악교사로 후에 이대음악학장을 지냈던 신재덕에게 피아노를, 작곡가 이건우에게 작곡을 배웠다. 1949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부탁으로 무기구입을 위해 홍콩으로 갔다는 설이 있는 부친 백낙승[1] 씨의 통역으로 따라가 홍콩의 로이덴 스쿨로 전학한다. 백남준은 이때 영어와 중국어를 배우게 된다.


2.2. 행위예술가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여권[2]일본 비자가 있었던 백남준은 도쿄로 건너가 도쿄대학 미학과를 졸업하였다. [3] 그리고 대학원을 독일 뮌헨대학으로 진학하였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현대음악 쪽에 더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독일에 있을 때쯤 존 케이지지 마치우나스 등의 영향을 받아 행위예술을 접한 뒤 행위예술가로 변신하게 된다. 머리카락에 먹을 묻혀 선을 그리는 것도 사실 백남준이 했던 퍼포먼스다. 이후 플럭서스의 일원이 되고, 미국 뉴욕독일을 오가면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사실 백남준이 1964년 미국 뉴욕에 도착했지만,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았었다. 주목받지 못하는 행위예술가였기 때문에 더더욱 퍼포먼스의 강도는 쎄졌고, 무대에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같은 악기를 때려 부수거나 넥타이를 자르기도 했다. 1967년에 백남준이 누드인 첼리스트 샬롯 무어먼과 공연하다가 샬롯이 경찰에 체포당해 논란을 일으킨 사건은 유명하다.[4] 그 결과 백남준은 미국 예술계에서 제대로 된 예술도 못하고 기행을 일삼는 사람, B급 예술가 정도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백남준의 인지도는 꾸준히 쌓여가고 있었고, 기괴한 퍼포먼스에서 조금씩 시도했었던 비디오아트는 점점 백남준의 예술 세계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1974년부터 비디오 아트 설치 작업을 선보였으며, 영상이 공중파 TV에 방영되는 등 점점 유명해지고 예전과 다르게 높은 평가를 받는다. 결국 1982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 회고전이 전시되었고, 뉴욕뿐만이 아닌 미국 예술계에 큰 인지도를 얻게 된다.

1979년부터 1996년까지 17년 간 독일 뒤셀도르프 미술대학 조각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작품활동 하느라 바빠서 학생들을 자주 보지 못해 미안해 했다고 한다.

2.3. 비디오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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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 다다익선, 1988년작,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국 대중들에게 '백남준'이라는 단어는 이러한 악동 행위예술가 같은 이미지는 거의 없고, 오로지 TV 여러 대를 이용한 비디오 아트의 이미지만 강하게 남아있다.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다.[5]한국에선 듣도 보도 못 하다가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비로소 한국에 알려지게 된다. 당연히 작품활동을 하는 데 많은 TV가 필요했는데, 초기엔 소니 제품을 쓰다가 어느 시점 이후로는 삼성전자의 협력을 받아 삼성 TV를 사용하였다. 이 때를 즈음해서 삼성 텔레비전 광고도 찍었다. (백남준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

사실상 한국은 백남준에 대해서 역수입을 했다고 할 수 있는데,(...) 백남준이 일본에서 뉴욕에 가기까지는 한국에서도 무명이었고, 그가 악평을 들을 때도, 유명해지고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기까지도 한국에서는 잘 알지 못했었다. 그래서 사실 백남준보고 세계적인 예술가라고 해도, 한국에서는 잘 실감이 안나기 마련[6]이다. 하지만 한국 현대 예술가 중에 백남준의 명성을 넘은 사람은 없고, 백남준의 작품은 세계 유명 미술관에서 소장한 것도 전혀 신기한 수준이 아닐 정도다.사실상 비디오아트를 말할때 백남준을 빼놓고 말하는 것은 힘들 정도다.

1984년 새해 벽두에 전세계 동시송출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의 풀 버전 영상. 뉴욕,샌프란시스코,파리의 다원생중계였다!

youtube(http://youtu.be/71CytirNP9g)

▲ 칠성사이다 CF 1편 - "기억하는 과거"

youtube(http://youtu.be/486zzdA0uzA)

▲ 칠성사이다 CF 2편 "창조하는 현재"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제작된 칠성사이다 CF에 출연하여 과거 칠성사이다의 CF 영상들과 시대별 영상자료들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었다. 특히 웅장함으로 뇌리에 깊숙히 남는 1편의 BGM은 가수 김수철이 작곡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2.4. 결혼

오노 요코 때문에 잠깐 존 레논과 약간의 교분이 있었다고 한다. 백남준은 그 당시 그녀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으나 요코는 존을 선택해 그와 결혼했고, 백남준은 꽤 충격 받았던 듯. 존 케이지 등과도 교분이 있었으며 비디오 아트 예술가 이전에는 피아노 행위예술가로도 알려진 바 있다. 무엇보다 연주하다가 도끼로 피아노를 부숴버리던 짓도 곧잘 했었다.


▲ 뉴욕 웨스트베스 작업실에서의 백남준과 구보타 시게코

평생 구보타 시게코를 쳐다보지도 않았었다가 뇌졸증으로 쓰러진 다음 그녀가 지극으로 챙기면서 그나마 쳐다보기라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혼녀[7]인 구보타 시게코가 자궁암으로 불임 진단을 받고 엄청난 수술비에 모든것을 포기하고 돌아가려는데, 백남준이 본인 명의의 의료보험 혜택[8]을 활용하자며 먼저 을 하고[9] 결혼 후에도 구보타 시게코의 불임 진단과 의료보험과 관련해서는 주변 친구들에게 전혀 입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면, 백남준의 구보타 시게코에 대한 배려도 상당했음을 알 수 있으며, 구보타 시게코 역시 이런 백남준의 배려와 사랑에 사후에도 그를 아끼는 마음에서 백남준과의 삶을 회고하는 책 "나의 사랑, 백남준"을 출간하기도 했다.# 다만 양자격인 백남준의 사촌과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갈등을 빚어서 이미지 하락을 겪기도 했다.

3. 미술관

2008년 용인 상갈동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백남준 아트센터를 개관했다. 정기적으로 행위예술 페스티벌이 열리곤 한다. 또한 용인 마북동에 있는 한국미술관은 그의 작품과 그의 아내의 작품이 자주 전시된다. 이래저래 백남준과 용인은 인연이 깊은 듯.

용인의 백남준 아트센터 외에는
  • 부산시립미술관 : 1층 로비의 "덕수궁" 외에 4점 보유.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 엄청 큰 작품을 갖고있다. 모니터가 자그마치 1003개... 작품명은 '다다익선'. 수리할 때가 되었는데 이미 단종된 CRT를 구해서 고칠지 이참에 LCD로 바꿀지 고민하더니 그냥 CRT로 고친듯.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지하층 통로에 설치되어 있는데 웬만한 사람들은 전시물인지 모르고 지나친다. 작품명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1965-67»
  • 삼성미술관 리움 : 2동 1층에 «My Faust-Communication» 전시중. 도슨트가 투어중에 설명해주는 작품에 포함되어 있다.
  • 세종문화회관 : 대극장 로비에 "호랑이는 살아 있다" 영구설치.
  • 한국산업은행 : 여의도 영업부 로비에 1점. 산은본점 내부에서는 사진촬영이 불가능하니 눈으로만 보자. 다이렉트 계좌개설 핑계삼아 가보자
  • 수원역 AK프라자 : 6층 문화센터 입구에 전시중 2003년 수원역 민자역사 (개관당시 애경백화점) 준공당시부터 2층 로비에 있었던 작품이지만 AK프라자 측이 매각을 시도한적이 있어서 논란이 되었던 작품이다.
  • 우리들병원 : 병원로비에 안심낙관 작품이 전시중이다.
  • 전시립미술관 : 1993년 전엑스포당시 재생관에 전시되었던 비정수의 거북선(일반에는 TV거북선으로 잘 알려져 있다.)이 있다. 근래까지 재생관에 방치되어 있었으나 현재 대전시립미술관으로 이동, 수리후 전시중이다.
등이 백남준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해외에는 미국 워싱턴 DC의 허쉬혼 미술관과 아메리칸 아트 미술관, 예일대 미술관,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 일본 후쿠오카의 후쿠오카 미술관, 독일 뒤셀도르프의 노르트라인주립미술관, 호주 캔버라의 국립미술관 등이 소장중이다.

다만 소장중이더라도 모니터가 나가서 수리중일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말자. 실제로 백남준 작품은 CRT 모니터가 나가서 수장고에 끌려가거나 가림막으로 가려놓거나 아예 TV를 꺼버리는 경우가 있다.

4. 여담



2010년 7월 20일구글에서는 그의 탄생 78주년을 기념하여 로고를 특별히 제작하기도 했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앞에서 큰 실수(?)를 범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1998년 6월 김대중 대통령 방미에 맞춰 백악관에 초대받은 백남준은 클린턴 대통령 면전에서 그와 악수하다가 바지가 흘러내렸다. 아무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단순한 실수였다고는 하는데 당시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빌 클린턴은 얼마나 놀랐을까고 전하였다. 왜 그랬을까? 연이은 섹스 스캔들에 시달렸던 클린턴을 '빗대어' 이 같은 '퍼포먼스'를 한 것이란 추측이 있는데, 사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이전의 예술 세계를 보면 이정도는 충분히 할 법한 사람이다.

여담으로 원로 코미디언 백남봉과 앞글자 두자가 동일하고 연령대도 비슷한데다[10] 두 사람 모두 국내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진 관계로, 80~90년대에는 대중들이 두 사람의 이름을 은근히 헷갈려 하거나 백남봉백남준의 짝퉁 취급[11]을 받는 안습한 경우도 많았다. 물론 최근인 2006년 백남준의 작고와 더불어 2010년 백남봉까지 작고하면서 이런 논란은 완전히 사그라 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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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백낙승은 당시 메이지 대학 법과와 니혼 대학 상과를 나온 당시의 최고 엘리트로, 해방 이후 최대 섬유업체인 태창방직의 사장이었다. 하지만 해방 전에는 비행기 회사를 운영하며 헌납금과 비행기를 바치는 등 친일 행위를 하기도 했다.
  • [2] 여권 번호가 '7번' 이었다. 여권 번호는 발행순서임을 기억하자.
  • [3] 수험준비기간이 3개월 밖에 안걸렸다는 전설이 있다. 백남준의 가족은 백남준이 법학부나 경제학부에 지망할 거라고 생각하고 입학 절차를 전적으로 백남준 본인이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었는데, 입학 전 도쿄대학에서 학부모 모임을 초대하는 편지에서 백남준이 미학과를 지원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 [4] 샬롯은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당시 뉴욕 예술계는 유죄 판결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이 있었다. 결국 당시 주지사였던 넬슨 록펠러는 예술적인 퍼포먼스라면 누드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법을 개정하게 만든다. 이로써 뉴욕은 퍼포먼스에 관해서 보다 자유롭게 변했다.
  • [5] 볼프 포스텔(Wolf Vostell)이 먼저 TV를 사용하긴 했는데, 포스텔은 TV를 끈채로 부수기만 했다.
  • [6] 박하 줄거리, 허영만 그림인 만화 비트를 보면 여주인공 로미의 부모가 부자인데 80년대 백남준 관련 작품을 티브이로 보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데 도무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모르면 수준이 낮다고 할테고 이런 생각으로 작품을 보면 당황해하더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 [7] 게다가 전 남편은 다름아닌 백남준의 친구인 작곡가 데이비드 베어맨이었다. 백남준을 기다리다 지친 상황에서 베어맨이 청혼을 해서 결혼하게 된 것. 하지만 일본인과 독일인을 싫어했던 시아버지 때문에 갈등을 빚고 결국 이혼한다.
  • [8] 미국의 의료보험은 악명이 높다.
  • [9] 어차피 백남준 입장에서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기 때문에 불임은 문제가 아니었다고 한다.
  • [10] 백남준은 1932년생, 백남봉은 1939년생으로 두 사람은 7살 차이밖에 안 난다.
  • [11] 참고로 백남봉의 경우 본명은 박두식으로 백남봉이라는 이름은 연예인 활동을 위한 예명인데, 백남준이 국내에 알려지기 십여년 전부터 이 예명을 사용했기 때문에 백남준의 명성을 노린것과는 전혀 관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