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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깁슨

last modified: 2015-01-25 22:55:55 Contributors



공을 던진 후 1루로 뛰어나가는듯한 괴랄한 딜리버리.[1]

이름 로버트 "밥" 깁슨(Pack Robert "Bob" Gibson)[2]
생년월일 1935년 11월 9일
국적 미국
출신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57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자유계약
소속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59~1975)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영구결번
No.45

1968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이크 매코믹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톰 시버
(뉴욕 메츠)
1970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톰 시버
(뉴욕 메츠)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퍼거슨 젠킨스
(시카고 컵스)

1968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랜도 세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리 맥코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64년 월드 시리즈 MVP
샌디 쿠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샌디 쿠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67년 월드 시리즈 MVP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키 롤리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Contents

1. 커리어
1.1. 1968
1.2. 월드시리즈
2. 그 외

1. 커리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의 성적을 남긴 우완 에이스이자, 스탠 뮤지얼의 투수버전이라 할 수 있는 선수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만 17년의 선수생활을 보내며 시대를 지배한 완투형 투수. 아울러 역대 MLB에서 타자들과 달리 꽤 드문 편에 속했던 흑인 에이스 계보[3]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인물.

고교시절 농구와 야구를 병행하고 대학도 농구 장학금으로 입학했지만 깁슨은 야구를 더 좋아했고 트리플A팀이 고향 오마하에 있었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4천불의 계약금에 합의하고 입단했다.

1959년 13경기, 60년 27경기 등판에 그쳤던 깁슨은 트리플 A에서 자신을 조련한 조니 킨 감독이 빅리그 감독으로 내정된 61년부터 에이스 본색을 드러냈다. 비록 볼넷이 많긴 했지만 첫 풀타임 선발 시즌부터 10완투로 13승을 거둔 것.

그 이후로 영점이 잡히자 매년 200개 내외의 삼진을 기록하며 73년까지 매년 두자릿수 승리와 10~20완투(74년은 11승을 거뒀지만 9완투를 했다.)를 기록[4]하였고 두차례 사이영상과 MVP 1회를 차지했다. 월드시리즈에서도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카디널스의 월드시리즈 2회 우승을 이끌었다.

투수로서 수비도 뛰어나 65~72 8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차지했고, 불같은 패스트볼과 역사상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슬라이더[5][6]를 앞세워 통산 3000K를 돌파했으며[7] 잔부상으로 인한 300승 좌절(251승)만 아니라면 그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HoF 커리어를 보냈다.

그중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세 차례의 월드시리즈와 1968년의 충격적인 퍼포먼스.

첨언하자면, 미국에서 올타임 투수를 뽑을 때 거의 매번 10위 안에 포함된다. (2005년 폭스 스포츠 선정 역대 5위, 2006년 ESPN 선정 현존 투수 4위, 2013년 ESPN 선정 역대 레전드 중 투수 9위 등) 팬 인기 투표 반영이 안된 순위에서는 대부분 쿠팩스보다 순위가 높다. 올타임 10위 안에 들기에는 누적 성적이 살짝 부족한 느낌이 없지는 않은데 아래에 기술된 엄청난 임팩트에다 거의 유일한 (미국 출신) 흑인 레전드 투수라는 점이 플러스 요인이 되는 듯.

1.1. 1968

1968년. 메이저리그는 사상 최악의 투고타저 시즌을 보냈다. 오죽하면 정규 이닝 채운 1점대 ERA 투수가 무려 7명이었고 그 해 아메리칸리그에서는 타격왕 칼 야스트렘스키가 3할을 겨우 턱걸이하는 타율을 찍었을 정도.[8]

그 해에 깁슨은 스핏볼이 금지되고 공인구가 교체되어 라이브볼 시대가 개막된 이래 유례가 없는 22승, 평균자책점 1.123, 304.2이닝 28완투 중 13완봉승을 기록했다. 특히 평균자책점이 걸작인데, 이는 데드볼 시대까지 합칠 경우에도 MLB 역대 4위[9]에 해당하는 충공깽한 기록이다.

MLB 사무국은 이런 미칠듯한 투고타저에 대한 대책으로 이듬해 69년부터 마운드 높이를 15인치에서 10인치로 낮추고 스트라이크존을 좁히는 등 룰을 개정하였고 실제로 내셔널리그 ERA가 2.99에서 3.60으로 오르는 성과가 있었다. 깁슨 역시 ERA가 오르긴 했다만, 깁슨은 20, 28완투를 기록하며 2.18의 ERA를 기록했다.

1.2. 월드시리즈

깁슨의 업적으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칠듯한 월드시리즈 퍼포먼스다.
세차례 월드시리즈에 나가서 모두 7차전까지 등판하며 9경기에서 81이닝을 던졌다.

첫 월드시리즈는 64년으로, 요기 베라가 감독으로 재직하고 미키 맨틀로저 매리스의 M&M 포가 가동되던 뉴욕 양키스였다. 처음 등판한 2차전에서 8이닝 4실점으로 패전했지만 시리즈 전적 2-2로 맞선 5차전에 10이닝 2실점(무자책) 완투승을 거뒀고, 이틀 후 등판한 7차전에서는 5실점을 했지만 완투승을 거뒀다. 당연히 MVP 수상.

두번째 월드시리즈는 67년 보스턴 레드삭스전. 로베르토 클레멘테의 타구에 다리를 맞아 시즌의 3분의1을 결장했지만 깁슨은 1차전 1실점 완투승과 4차전 완봉승에 이어 7차전 2실점 완투승으로 다시 한번 MVP에 올랐다.

마지막 월드시리즈는 역사에 남는 시즌을 보낸 68년. 1차전에서 깁슨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최후의 30승투수' 데니 매클레인(Denny McLain)과 대결하여 월드시리즈 기록인 17개의 탈삼진을 곁들인 완봉승을 따냈다. 4차전 매클레인과의 리턴매치에서도 1실점 완투승. 하지만 최종 7차전에서는 이전과 달리 완투패의 멍에를 쓰고 말았는데, 7회 중견수 커트 플러드[10]가 평범한 플라이 타구를 2타점 3루타로 만들어준 탓에 3점을 내줬고 결국 4실점 완투패를 당했다(세인트루이스 4-1 패배). 실책으로 기록되지 않은 플러드의 판단착오가 없었다면 3연속 월드시리즈 7차전 승리라는 대기록을 만들어냈을 지도 모른다.


충격과 공포의 68년 월드시리즈 1차전 동영상. 역동적인 투구폼과 압도적인 구위가 인상적이다. 바로 이 경기에서 17탈삼진을 잡으며 완봉승을 거뒀다.

이 세 차례 월드시리즈에서의 위대한 업적은 역사상 최고의 포스트시즌 퍼포먼스로 꼽히고 있으며, 클리프 리가 2009~10 포스트시즌에 미칠듯한 활약을 할 때도 자주 회자되었다.[11]

하지만 1974년부터 뜻하지 않은 부진을 겪게되고 75년에는 다리 부상까지 겹치면서 5점대 ERA를 찍고 3승 10패를 당하는 등 커리어 로우를 찍었는데, 깁슨은 결국 39세의 나이까지 겹치면서 251승으로 커리어를 마감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부상이 아쉽다.

1981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서 84%의 지지율로 헌액되었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는 깁슨의 45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세인트루이스 시의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헌액되기도 했고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지역 방송국에서 카디널스 전속 해설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2. 그 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2011년에 홈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시구를 했다.


같이 나온 이들은 역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멤버로 카디널스의 영구결번자인 브루스 수터토미 존 서저리로 2011년을 결장한 카디널스의 現 에이스 아담 웨인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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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는 팀 린스컴의 투구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팀의 아버지가 만든 그 괴랄한 투구폼은 샌디 코팩스를 기반으로 밥 펠러밥 깁슨의 장점을 결합한 것이라 한다.
  • [2] 본인이 팩이란 이름을 싫어해서 그냥 빼버렸고 미들네임인 로버트 깁슨으로만 굳어졌다. 결국 로버트애칭(Bob)으로 활동.
  • [3] 오늘날에도 MLB에서 흑인 에이스로 꼽힐만한 선수는 히스패닉 계통을 제외하면 CC 사바시아, 데이빗 프라이스 정도가 전부로, 재키 로빈슨 이래 윌리 메이스, 행크 애런, 에디 머레이, 배리 본즈 등 수많은 타격 거성들이 등장했음에도 유독 흑인 투수(포수도 마찬가지)는 타자에 비해 심하게 적었다. 이는 지금도 이어지는 현상으로 미식축구계의 흑인 쿼터백 떡밥과 함께 미국 내 인종차별 떡밥으로 꼽힌다. 역대 non-히스패닉 흑인 투수 중 메이저리그에서의 업적만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는 밥 깁슨과 캐나다 출신 흑인 투수 퍼거슨 젠킨스가 전부.
  • [4] 실력과 체력도 당대 최고였지만 전투근성과 자존심도 매우 강해서 경기 중 감독이 교체를 위해 올라올 때면 흑형의 분노를 담은 눈빛을 교환하다 마지못해 공을 내줬다고 한다(...) 특히 가끔 조기강판될 때면 덕아웃이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고.
  • [5] 특히 바깥쪽 슬라이더를 공략하기 위해 플레이트에 바짝 붙은 우타자들은 언제 몸쪽으로 날아올지 모르는 무지막지한 구위의 패스트볼에 대비해야 했다. 깁슨의 빈볼이 두려워서 깁슨의 등판일이면 상대팀은 카디널스 선수들이 아니꼬운 행동을 해도 어떻게 보복을 하지도 못한채 치를 떨어야 했다.
  • [6] 역시 사상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졌다고 평가받는 스티브 칼튼의 1994년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했을 때 현역 시절 칼튼과 깁슨의 슬라이더를 모두 캐치했던 절친한 포수 팀 매카버는 축하 연설에서 칼튼이 역사상 최고의 슬라이더를 던졌다고 말했는데 옆에 홀연 나타나더니 "좌완 중 최고임ㅋ"라면서 놀려댔다(...) 하여간 자존심은 끝내줬다.
  • [7] 1974년 달성했으며, 1923년 월터 존슨이 사상 처음으로 3000탈삼진을 기록한 이후 51년만에 처음으로 3000탈삼진을 돌파한 투수가 되었다.
  • [8] 다만 내셔널리그는 그 상황이 훨씬 덜해서 피트 로즈, 리페&티 알루 형제, 알렉스 존슨 등이 3할을 기록했다. 이런 아메리칸리그의 투신타병 현상으로 인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찰스 핀리 구단주가 지명타자 제도를 주장하게 된다.
  • [9] 2011년 중에 1880년 팀 키피가 .857의 ERA를 기록한 것이 밝혀져서 기존의 1,2위였던 치 레너드의 .961과 모데카이 브라운의 1.038이 한단계씩 밀렸다. 조정 평균자책 1위였던 2000년의 페드로 마르티네즈(291) 역시 1880년의 팀 키피(295)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 [10] FA 제도의 유래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의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소송을 진행했던 그 선수 맞다.
  • [11] 2010년 클리프 리의 포스트시즌 활약 당시 espn에서 마련한 'Best playoff pitchers of all time' 이라는 특집기사에서 1위에 선정되었다. 클리프 리는 8위였는데 기사가 나간 후 월드시리즈에서 제대로 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