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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클라바 전투

last modified: 2016-05-21 19:02:16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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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 전쟁 와중이던 1854년 10월 25일 크림 반도발라클라바에서 영국군러시아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

크림 전쟁 당시엔 항상 그랬듯이, 연합군이나 러시아군이나 다들 머리가 텅텅 빈 귀족 출신 장군들이 지휘권을 잡은 것과 그로 인해 결국 말단 장교와 병사들만 죽어나갔던 것도 똑같았지만, 이 전투가 특히 유명한 이유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공격을 감행한 영국 기병대의 왠지 병신같지만 멋있는(?) 작전 행동 때문이다. 근데 냉정히 따지면 이정도로 명백히 불합리한 명령은 일선 지휘관의 재량으로라도 거부했어야 옳다. 결국 대전차총검술이 되어버린 거나 다름이 없잖아... 물론 현대의 군법에는 대부분 명백히 불합리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지만[1] 그 당시의 군법을 충실히 따르려고 했다면 닥돌해야 했을지도...

발라클라바 전투 당시 영불 연합군 사령관은 레글런 경, 기병 부대의 지휘관은 루컨 백작이었다. 당시 러시아군은 오스만군을 기습해서 탈취한 대포로 연합군의 발라클라바 요새를 노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스칼렛 장군의 믿지 못할 선전으로 영국 중기병대가 러시아 기병대를 격파, 코스웨이 고지와 대포를 탈환할 기회가 생겼다. 그 때 그가 급하게 갈겨쓰느라 마지막 문장이 어긋난 세 번째 명령서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 되었다.

원래 레글런 경이 쓰려고 했던 내용은 "기병대는 코스웨이 고지로 진격하라. 이미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하라는 명령을 받은 보병대가 지원할 것이다."라는 내용이었으나, 막상 기병대의 지휘를 맡은 루컨 백작에게는 "기병대는 코스웨이 고지로 진격. 그 후 보병대가 전열을 갖추어 지원할 것이다. 두 개의 전선을 만들어 진격하라."라는 내용으로 전달되었다. 즉,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한 보병의 지원을 받으면서 진격하라는 게 아니라 기병대 두 곳으로 진군, 보병이 지원할 것이다로 전달. 원래 전하려 했던 내용: Cavalry to advance and take advantage of any opportunity to recover the Heights. They will be supported by infantry, which has been ordered to advance on two fronts. - 잘못 전달된 내용: Cavalry to advance and take advantage of any opportunity to recover the Heights. They will be supported by infantry, which has been ordered. Advance on two fronts. 잘 읽어보면 콤마(',') 하나 잘못 찍어서 이 사태가 터진 것이다.

레글런 경보다 저지대에 있어 전장을 전혀 살필 수 없었던 루컨 경이 우유부단한 태도로 일관하자 연락을 맡은 에드워드 놀란 대위가 화를 참지 못한 채 탈환하라는 대포가 있는 쪽이 아니라 러시아 포병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계곡을 가리키면서 "저기에 작전 목표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른 루컨 백작은 그대로 경기병대를 이끄는 카디건 경을 비롯한 부하들에게 진격 명령을 내렸고, 700여 기의 영국 기병대는 포병대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계곡으로 진군해갔다.

무자비한 포격에 기병들이 죽어나가는 걸 본 기병대의 모리스 대위가 직속 상관인 카디건 경[2]에게 "돌격하면 모두 죽은 목숨입니다!"라고 진언하자 카디건 경은 "그렇다. 나도 귀관의 조언이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루컨 경은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계속 진군하라. 부하들에게 진열을 잘 지키라고 전하라"라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프랑스 장군은 "장관이로군. 하지만 저건 전쟁이 아니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보다 못한 프랑스군이 러시아군 포대의 우측을 습격한 덕분에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생존자들이 조지 패짓 경이 이끄는 제11드라군 대대와 모리스 대위가 이끄는 제17경기병 연대, 그리고 스칼렛 장군이 이끄는 중기병 연대의 부대원들이었는데, 이들은 죽기살기 식으로 맞은 편에서 달려오는 러시아 기병대를 박살내고서 간신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기병들은 700여명 중에 194명이었고, 그 중에서 상처가 악화돼서 죽은 사람들도 많았다. 제11드라군 대대에서는 14명, 제17경기병 대대에서는 17명이 살아남았을 정도로 커다란 병크·팀킬이었지만 이 지휘관들은 그 뒤로도 군직을 유지했다고 한다. 재판이 열렸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상이었고, 죄질은 모두 지워졌다.

참고로 사건의 장본인 중 한 명인 놀란 대위는 진격을 개시한 직후에 갑자기 전열의 맨 앞으로 달려가다가 포탄을 맞고 전사했다. 뒤늦게 자신이 뭔 짓을 했는지 깨닫고 진격을 말리려다가 전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레글런은 "전쟁에서는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다."라고 뻔뻔한 말을 남겼다.

개인적인 사항으로 루컨과 카디건은 처남-매제 관계였다. 루컨의 매제가 카디건이었다고.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대화도 나누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윗대가리들을 잘못 만난 군인들에게 닥친 비극이지만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경기병대의 돌격이라는 시를 써서 그 용기를 기리고 그들을 추모했다.

"경기병 여단 전진!"
당혹해하는 자가 있었을까?
비록 병사들은 몰랐지만
머뭇거린 자들이 있긴 했다.
그들은 항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명령대로 나아가 죽었다.
죽음의 계곡으로
600명은 달려갔다.[3]


여담이지만 이 시는 90년 후 한 해전에서 한 제독의 뚜껑이 열리게 만든,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은 시이기도 하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발라클라바 전투 당시 경기병대의 사상자 수가 실제보다 과장되었다는 내용(그 돌격이 삽질이라는 걸 부정하는 건 아니었음)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나온 적이 있다. 전쟁 현장인 러시아에까지 가서 유물 발굴까지 한 뒤, 이 다큐멘터리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첫째 오스만군은 당대의 인식처럼 무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앞서 대포가 탈취된 사건만 해도 영국군의 시각으로는 러시아군이 공격하자마자 무너진 것으로 보도되었지만 당시의 실제 기록들이나 유물 측정 등으로 봐서 적어도 3시간 이상 오스만군은 외부의 도움 없이 버텼고 영국군은 방심과 무지로 인해서 근처에 있음에도 늦게 출동하였다는 것(…). 하필이면 무너질때 도착한 영국군은 바로 오스만군의 비겁성을 개탄해서 이후 세바스토폴 점령을 제외하면 오스만군을 전력에 투입하지 않고 '''노동부대''로만 이용했다.

두번째로 실제 경기병대의 돌격 이후에 귀환한 사람들의 명부, 그것도 현장에서 체크한 인원수와 명단을 비교하면 적어도 그 작전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수는 발표보다는 적었고 부상후 상처가 악화되어 사망한 사람들이 현장에서 전사로 기록된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의외로 삽질이면서 나름대로 성과를 거둔 작전이었다는 것이 결론이다. 진짜로 병신같지만 멋있어(?)

아이언 메이든의 곡 The trooper가 이 전투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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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론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이 져야 한다.
  • [2] 흔히 '가디건'이라고도 불리는 윗옷 카디건(cardigan)의 이름의 유래가 되는 사람이다. 입에 은수저, 아니 은수저 몇 다스는 물고 태어나 무지막지하게 빵빵한 집안의 후광으로 살아갔는데,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학교도 때려치우고(패싸움하다(!) 손가락에 골절상을 입었는데 당시 런던에서 제일가는 외과의사한테서만 치료받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학교에서 결석으로 처리해자 아버지라는 사람이 무슨 학교가 이러냐고 카디건을 학교에서 데리고 나와버렸다!부전자전, 그 애비에 그 자식) 돈으로 케임브리지에 합격하고(당시에는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기부금을 내면 그 어떤 대학이라도 쉽사리 입학할 수 있었다. 지위까지 높다면 두말할 것도 없고.) 무능한 실직자가 되자 아버지가 돈으로 사 준 의원직을 맡는 등 그야말로 개판 인생을 살았다. 이 인간의 생애 중 제일가는 개판은 이 크림 전쟁인데, 병사들이 옷이 없어 동사하고 식량이 없어 아사하는 동안 매일 집에서 직접 공수해 온 최고급 와인을 저녁에 한 병씩 곁들어 마셨으며, 군복은 제일 잘나가는 디자이너가 만든 맞춤형 군복이었으며, 빽으로 장교가 되었고, 부하가 군법을 어기면 장갑을 뺨에 던지며 결투를 신청했다. 발라클라바 전투 이후 '안전하게' 제대한 그는 자신이 전투 당시 병사들과 물이 발목까지 차는 천막에서 동고동락했다고 이빨을 깠고, 아내가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는 동안 그녀의 임종도 지키지 않고 새 마누라랑 놀아난 놈이다. 저 '카디건'이라는 윗옷은 두 가지 일화가 존재하는데, 하나는 어느 파티에서 벽난로에 너무 가까이 갔다 긴 코트의 뒷자락이 타자 가위로 잘라냈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의 이름을 붙여 마구잡이로 판매한 상인들의 술수라는 것. 지금으로 따지자면 '김태희 가방', '송혜교 립스틱' 정도. 하여간 인간 말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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