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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트리아

last modified: 2015-03-16 19:03:24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초기 역사
3.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1. 개요

Bactria. 고대 트란스옥시아나 중앙아시아의 지명. 아무다리야(Amu Darya) 강과 힌두쿠시(Hindu-Kush) 산맥 사이의 평야 지대로써, 현대의 아프가니스탄 북부 일대를 가리킨다. 사산 왕조이후 이슬람 시대에는 토하리스탄(Tokharistan), 중국에서는 대하(大夏)라고 불렀다.

좁은 의미로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정복 이후 박트리아 지역에 들어섰던 헬레니즘 국가인 그리스-박트리아 왕국(Greco-Bactrian Kingdom)을 가리키기도 한다.

낙타 중 쌍봉낙타를 박트리아 낙타라고 하기도 하는데, 서식지가 그 주변이기 때문이다. 단봉낙타는 아라비아 낙타라고 한다.

2. 초기 역사

인도유럽어족의 발상지에서 인도, 이란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지역인 데다 강이 많아 토지가 비옥하였으므로 고대부터 정착 사회가 발달했으며, 이란 지역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 이웃한 지역인 소그디아나, 마르기아나[1]와 합쳐서 옥수스[2] 문화권이라고 하기도 한다. 페르시아의 국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선지자 조로아스터가 태어나 처음으로 교세를 편 곳도 박트리아였다.

키루스 2세에 의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병합된 후에는 비옥한 토지, 중앙아시아와 이란, 인도를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라는 입지 덕택에 이집트, 바빌론에 버금가는 번영을 누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에 쳐들어왔을 때,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패배한 다리우스 3세가 도망쳐 재기를 도모한 곳도 박트리아였다. 하지만 그는 박트리아의 사트라프였던 베소스에게 살해당했고, 베소스 역시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살해당했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디아도코이 전쟁의 결과 다른 동부 지역들과 함께 셀레우코스 왕조의 땅이 되었다.

3. 그리스-박트리아 왕국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최대 판도. 가운데 표가 원래 중심지인 박트라(현대의 발흐Balkh).

하지만 시리아에 기반을 둔 셀레우코스 왕조는 서방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사태에 정력을 기울이느라 동방 영토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그 틈을 타 BC 250년 경 박트리아를 다스리던 그리스사트라프 디오도토스 1세가 반란을 일으켰다. 상술했다시피 박트리아는 아케메네스 왕조 때부터 번영하던 땅이었으며, 셀레우코스 왕조 역시 이 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다수의 그리스-마케도니아인 식민자들을 유치하고 도시 건설에 힘썼으므로 디오도토스 1세는 그들을 포섭하여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 게다가 마침 박트리아 서쪽의 파르티아에 이란계 유목민들의 아르사케스 왕조가 들어섰기 때문에 박트리아는 서부 헬레니즘 세계와 거리를 두고 독자적으로 발전할 기회를 얻었다.

디오도토스 1세의 아들인 디오도토스 2세는 왕위를 이어받았지만 곧 소그디아나의 사트라프였던 에우튀데모스에게 왕위를 빼앗겼다. 에우튀데모스는 BC 210년 안티오코스 3세의 침공을 받아 초반에 다수의 기병을 동원했다가 발렸지만, 수도에서 농성하여 결국 형식적인 복종으로 전쟁을 마무리지었다. 마침 인도의 대제국 우리아 왕조의 왕 아소카불교를 받아들여 유화 정책으로 내치를 다지고 있었고, 파르티아와도 휴전했으므로 박트리아 왕국은 외형적으로는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전쟁과 내분으로 인해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코끼리 가죽 모자(...)를 쓴 데메트리오스

BC 180년 경 인도에서 마우리아 제국이 무너지자 에우튀데모스의 아들인 데메트리오스는 인도 원정을 감행, 마우리아 제국의 옛 수도 파탈리푸트라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박트리아 본토에서 에우크라티데스라는 장군이 반란을 일으켜 박트라를 점령해 버렸고, 뒤이어 곳곳에서 반란이 창궐하여 박트리아 왕국은 거의 해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데메트리오스는 인도 쪽에 아예 눌러앉아 인도-그리스 왕국(Indo-Greek Kingdom)을 세워 박트리아 왕국과 대립했고, 후대의 왕 메난드로스 1세는 인도인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 아예 불교로 개종하기에 이르니 그가 바로 유명한 밀린다 경에 등장하는 밀린다이다.

이처럼 내분으로 약해진 박트리아 왕국은 BC 130년 경 중앙아시아에서 밀려 내려온 유목민 집단들의 공격을 받아 무너졌다. 우선 몽골 지역에서 흉노 세력이 대두하자 밀려나게 된 대월지(大月氏, Yuezhi) 세력이 남하했고, 이들은 다시 박트리아의 북동쪽 변방에 살던 스키타이계 종족인 사카(Saka)를 남쪽으로 밀어냈다. 사카 족은 다른 이란계 유목민들과 함께 파르티아와 박트리아로 쳐내려왔다. 파르티아는 고전하긴 했지만 이들의 침입을 막아낸 반면, 약해질 대로 약해진 박트리아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이후 대월지 세력까지 남하에 가세하면서 박트리아는 완전히 멸망했고, 인도 지역에 있던 인도-그리스 왕국은 BC 1세기 말까지 버텼으나 결국 대월지의 일파가 북인도에 건설한 제국인 샨 왕조에 합병되었다.

대월지를 서방에서는 토하르인(Tokharians)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박트리아 멸망 이후에는 이 지역을 페르시아어로 토하리스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국에서 이곳을 대하(大夏)라고 부른 것도 그것을 음역한 것이다. 3세기 경 쿠샨 왕조가 해체되는 와중에 페르시아에서 일어난 사산 왕조에 의해 정복되었고, 다시금 확고한 페르시아 문화권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는 에프탈이나 튀르크의 침입, 이슬람의 대정복과 같은 호라즘과 같은 트란스옥시아나의 다른 페르시아 문화권 지역들과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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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소그디아나는 사마르칸트(Samarkand), 부하라(Bukhara) 등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 우즈베키스탄 동부와 타지키스탄 일대를 가리키며, 마르기아나는 메르프(Merv)를 중심으로 한 투르크메니스탄 동부 지역을 가리키는 고대 지명이다.
  • [2] 아무다리야 강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