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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야구선수)

last modified: 2014-12-28 13:19:41 Contributors

Contents

1. 한국 프로야구투수
2. 한국 프로 야구의 내야수
2.1.KIA 타이거즈 소속 내야수
2.2.삼성 라이온즈 소속 내야수


1. 한국 프로야구투수



이름 박정현
생년월일 1969년 7월 10일
출신지 경기도 수원시
학력 유신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
프로입단 1988년 태평양 돌핀스 고졸 연고지명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1988~1995)
현대 유니콘스(1996~1998)
쌍방울 레이더스(1998~1999)
SK 와이번스(2000)

1989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이용철[1](MBC 청룡) 박정현(태평양 돌핀스) 김동수(LG 트윈스)

태평양 돌핀스 -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1번
박정현 (1988~1998) 조규제 (1998~2000)
SK 와이번스 등번호 21번
구단 창단 박정현 (2000) 조규제 (2001)

나는 투수다 명예졸업자 이름은 박정현인데 얼굴이 김범수
190cm가 넘는 키와 그런 큰 키와는 어울리지 않는 땅 위 5cm 언더핸드 투구로 유명했던 선수로 태평양 돌핀스, 현대 유니콘스, 쌍방울 레이더스, SK 와이번스를 거쳤다. 통산 성적은 65승 54패 21세이브 3.45
최창호,정명원과 함께 돌핀스 트로이카 3총사로 불리었다.

(출처 : 포토로)
쌍방울 레이더스 현역 선수시절

(출처 : 포토로)
SK 와이번스 말년현역 선수시절

수원 유신고를 졸업하고 1988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하지만, 부진한 한 해를 보내고 1989년 19승 10패 2세이브 2.15, 242 2/3이닝을 투구하며 신인왕을 품에 쥔다. 동시에 다승과 평균자책점 2위를 기록.(이 때 돌핀스의 또다른 선발 최창호와 정명원은 평균자책점 3,4위를 기록하며 돌핀스의 투수력을 입증해보였다.)당시 신인왕 후보로서 유력한 선수로 강기웅이 있었는데 김성근은 강기웅 견제를 위해 박정현에게 역대 최다승(그전까지는 MBC의 김건우가 18승으로 신인왕 최다승을 차지하고 있었다.)을 안겨주기로 결심하고 8-1로 이기고 있던 대 해태전에서 선발 최창호를 강판시키고 박정현을 등판시켜 19승째를 올리게 한다. 그리고 3년 뒤, 역사는 반복된다는 교훈대로 1992년 송진우가 19승을 기록할 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염종석 문서 참고.

이어서
1990년 13승 7패 7세이브 2.63 191 2/3이닝
1991년 10승 12패 3.47 184이닝
1992년 13승 7패 6세이브 3.69 165 2/3이닝

으로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따내지만 결국 언더핸드로서 그렇게 많은 이닝을 던진 게 탈이 나서 1993년엔 재활로 허비한다.

김성근 감독의 투수혹사 대목에서 빼놓지 않는 선수가 박정현인데 선발투수의 이닝으로 따지면 그리 많지 않은 이닝을 던졌다. 때때로 로테이션뿐 아니라 중간중간의 등판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이지만 박정현의 부상은 혹사라기 보단 당시 투수 중에서도 최장신급인 190cm의 키에 쓰리쿼터나 사이드암이 아닌 밑바닥에서 퍼올리는 언더핸드의 투구폼으로 인해 허리에 큰부담을 주었던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볼수 있겠다.[2]

언더핸드는 공자체의 무브먼트와 궤도의 메커니즘자체를 완전히 바꾸어버려 혼란시키는 투구폼으로 빠른구속은 엄두도 못내고 관리를 잘해도 부상이 있을까 말까인데 키까지 커버리니 이건 부상을 안당할래야 안당할수 없는 노릇. 실제로 김성근 감독 역시 이러한 점을 인정했다. 대표적 언더핸드인 정대현이나 김병현같은 선수들은 신장이라도 루저다.정대현은 185인데?? 4년 동안 매시즌 평균 190이닝을 선발, 중간,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노예처럼 혹사시켰다는 점에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전성기인 89~92년동안 최다 이닝 소화 3위 투수가 박정현이다. 1위는 이강철 , 2위는 윤학길). 다만 8,90년대 프로야구는 잘하는 투수 한 명이 선발-중간계투-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등판하여 경기에서 이기게 하는 투수 운용이 주류였다. 선동열,송진우 등의 유명 투수들 역시 선발보다는 릴리프로 등판한 적이 많았으며, 웬만한 에이스급 투수들이 이런 식으로 등판하는 것 역시 일상사] 1994년 복귀하고 돌핀스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며 4명의 10승 투수를 배출하고 정명원이 40세이브를 돌파하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그는 이미 25세의 나이에 추락해 있었다.

89년 태평양 돌핀스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을때 3차전에서 자진 구원등판 9회 1사까지 던지다가 허리 통증으로 주저앉아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구급차에 실려가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이후 패전처리로 4년여 동안 암울한 세월을 보내던 박정현은 1998년 조규제가 현금 트레이드되면서 쌍방울 레이더스로 이적한다. 99년 초반 4연승을 올리며 질주하던 박정현은 친정팀 현대 유니콘스를 만나 무너지며 5승 11패 3.92로 그 해를 마감하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쌍방울이 해체 후 SK 와이번스가 창단되어 기존 선수들과 계약하면서 다시 인천에 돌아와서 2000년 시즌을 보내고 은퇴했다.

2009년 초까지 고양시의 주엽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일하다가, 주엽고 야구부가 해체하며 그 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2014-04-10-22-12-36.jpg
[JPG image (Unknown)]

2014년 4월 10일, 마구마구2014 1주년 기념방송 예고대로 89 박정현의 엘리트 카드 가 업데이트되었다.(다른 신규 엘리트는 95 전준호(가명:박현석), 06 권오준, 02 송진우(가명:박흥진).)

2. 한국 프로 야구의 내야수


2.1. KIA 타이거즈 소속 내야수

이름 박정현
생년월일 1981년 6월 4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고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00년 해태 타이거즈 2차지명 9라운드 지명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2000~2003)

KIA 타이거즈 소속의 내야수였다.

서울고 졸업 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으나, 2군에서만 4년간 활동하고 2003년 방출되었다.

2.2. 삼성 라이온즈 소속 내야수

이름 박정현
생년월일 1982년 8월 9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배재고-단국대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2년 삼성 라이온즈 2차지명 10라운드 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2006)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6번(2006)
허연철(2005) 박정현(2006) 추승민(2007)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였다.

배재고 재학 시절 삼성에 2차 10라운드 때 지명되었으나 단국대에 진학해 2006년 입단했다. 그러나 그해 방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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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KBS N 스포츠의 해설자인 그 분 맞다. 그런데 가끔 야구팬들이 중앙일보에 계셨던 동명이인인 이용철 기자와 헛갈려 하는 경우가 있다. 조심하자.
  • [2] 이때만 해도 선수들의 제구 안정을 위해 언더 전향은 수시로 있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196cm 언더핸드 박진철도 그런 케이스. 하지만 박정현만큼 낮은 릴리스 포인트는 아니었다.